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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술회전과 백귀야행의 설정을 대충 가져왔고 등장인물 또한 오리지널 캐릭터가 거의 전부입니다. 주술회전은 애니 초반부만 감상한 상황이라 원작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합니다. 이 글의 배경은 2004년으로 고죠 사토루와 게토 스구르는 주술고전 1학년입니다. 주인공 이이지마 하나에는 중학교 2학년, 스가와라 미즈키 및 하시모토 리코는 1학년입니다. 손가락 대마왕님 료멘 스쿠나는 간접적으로 등장할 예정입니다.


혼란된 혼돈속의 혼미한 정신.

2학년인 이이지마 하나에가 1학년 교실 문을 벌컥 열어젖히고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반장이 이성을 잃고 괴성을 질러댔다.
상의 탈의 중 신체 건장한 남학생들에게 둘러싸이기라도 한 것처럼 비명을 질러댄 터라 옆 반에서 그 소리를 듣고 무슨 일이냐며 웅성거렸을 정도다.
『왜 이라 캅니까, 선배! 이러는 거 아닙니다!』
평소의 고급 외제승용차 이미지를 순식간에 말아먹은 것으로도 모자라 삑사리가 났다.
분명 표준어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빠른 걸음으로 교실 안으로 난입한 이이지마 하나에가 손가락을 쭉 뻗어 반장의 코로 딱밤을 먹였다.
힘이 하나도 안 들어간 딱밤이었음에도 상대방은 무릎의 힘이 풀렸는지 엉덩방아를 찧고 주저앉았다.
다리를 오므릴 힘도 없어 벌려진 스커트 사이로 속옷이 훤히 드러났는데 창피함을 느낄 겨를도 없었다.
깊은 산속에서 동면에서 깨어난 곰과 마주쳤다. 숲이 침묵했다. 새의 지저귀는 소리도,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도 전부 사라졌다. 하시모토는 시야가 어두워지고 있다고 착각했다. 여전히 하늘 위로 빛이 있음에도 맹렬하게 땅을 잠식하고 들어오는 저 공포스러운 것의 정체는 어스름이다.

이이지마가 팔짱을 낀 자세로 딱 한 마디만 했다.
『팬티 보인다.』
『히익!』
할 말은 제법 있었다. 솔직히 화도 좀 난 상태였다.
하지 말라고 하면 오히려 더 하고 싶어 하는 게 인지상정이라지만 콧쿠리님 모시기는 끝이라고 그렇게 강조를 했으면 들어먹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귓등으로 들은 척도 안 하고 멋대로 1학년의 콧쿠리님을 모셔?!
앙화는 이제 없노라 (※ 殃禍 지은 죄의 앙갚음으로 받는 온갖 재앙) 도대체 몇 번을 말해야 해?
전교 10등 안에 든다는 잘난 머리라면서 그 말을 이해하는 게 그렇게 어려워?!

츳, 하고 혀를 찼다.
그렇다고 1학년 후배를 겁먹게 만들어 가랑이를 벌린 채 교실 바닥을 기게 만들고 싶었던 건 아니어서 곧 표정을 풀고 기운을 갈무리했다.
게다가 피가 나도록 아랫입술을 깨물고 있는 반장이 이번 일의 주동자인 것도 아니다.
엄연히 따지자면 1학년 2반 전원이 피해자여서 이런 식으로 성을 내봤자 엄한 곳에 화풀이가 될 뿐이었다.

「하아. 어쩐지 기운이 쭉 빠지네. 화를 내야 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정작 이번 일의 가장 큰 피해자는 물에 술탄 듯, 술에 물탄 듯이 굴고 있고... 나 혼자서 열 내고 있는 기분이잖아.」
얼쯤하여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어깨 너머로 쓸어 넘겼다.

어쩐지 이번 1학년의 콧쿠리님은 매우 둔한 성격인 것 같았다.
반 아이들의 따돌림으로 친구를 사귀지 못한 1학년의 콧쿠리님이 야외용 벤치에 홀로 앉아있는 모습은 제법 여러 번 목격되었다. 보는 사람 입장에선 측은하기 짝이 없건만 당사자인 미즈키는 어째서인지 따끈해진 봄볕을 기분 좋게 즐기는 모습이었다.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따분하고 졸린 표정으로 입맛을 쩝쩝 다셨다.
심지어 발목으로 영 좋지 않은 걸 주렁주렁 매달고도 그늘이 없었다.
체육복을 입고 비뚤 걸음으로 걸으며 천연덕스럽게 농땡이를 피우고 있던 미즈키를 보고 그래서 놀랐다.
아, 뭐라더라... 이런 걸. 마이 웨이라고 하던가.
옥상에서 뛰어내려 죽어버릴 거라고, 귀신으로 변해 보란 듯이 저주를 내릴 거라 맹세하던 3학년의 콧쿠리님과는 양상이 180도 달랐다.

「발목의 붕대는 어쩌다 그런 거야?」
자판기에서 잘못 나온 우롱차를 핑계로 말을 걸어보았더니 발랄하게 대답했다.
「덜렁거리다 계단에서 굴렀어요. 뛰거나 하면 아직 욱신거리고 아프지만 거의 다 나았어요!」
뱀 한 마리가 송곳니를 박은 채 발목을 칭칭 감고 있는데 금방 낫겠니.
「괜찮아요. 이따~만한 바늘로 주사도 맞았거든요.」
아픈 발목을 앞뒤로 까딱거리며 미즈키가 말했다. 그때마다 피부에 이를 박고 있는 뱀도 마찬가지로 까딱까딱 흔들렸다. 두 눈이 퇴화하고 없는 눈 먼 뱀이었다.

지금도 그 뱀은 스가와라 미즈키의 발목을 물고 늘어져 땅바닥에 꼬리 일부가 닿아 질질 끌리는 중이었다.
불쾌하게도 땅에 끌린 흔적이 꼭 음식물 쓰레기 국물이 흐른 자국을 연상시켰다. 악취가 날 것 같아 코를 쥐어 막고 싶다는 욕구가 솟구칠 지경이었다.
「얘는 진짜지 어쩌다가 이런 음식물 쓰레기를 달 게 된 거람.」
눈이 퇴화한 뱀이니 분명 통할 거라 여기며 재빨리 발로 지려 밟으려 했다.
얄밉게도 그것의 반응이 빨랐다. 이이지마 하나에가 발로 밟으려는 것과 동시에 삿 하고 뱀이 꼬리를 위로 올려 피했다. 기분 탓일까, 눈이 퇴화해서 없는 주제에 뱀이 이쪽을 노려보며 눈싸움을 거는 것 같았다. 그리고 더욱 힘주어 미즈키의 발목을 칭칭 감았다.

『에고... 곤란하게 됐네.』
『아니오! 전혀! 전혀! 보기에만 그렇지 걷는데 크게 지장 없어요.』

스가와라 미즈키는 맹세코 사실이라며 붕대를 감은 다리를 척 들어보였다. 전혀 안 아픈 건 아니지만 빠르게 걷거나 뛰는 것만 아니라면 괜찮았다. 의사도 뼈에 금이 간 건 다 나았다고 장담을 했고, 일주일 정도 뒤에 붕대를 풀기로 되어 있었다.
언덕길을 올라가는 속도가 느린 건 다리가 아파서가 아니고 숨이 차서다. 생각보다 길이 가팔랐다.
『학교 뒤쪽으로 이런 길이 있는지 몰랐어요, 선배.』

클린업 클럽, 일명 청소 부는 카제야마 중학교에 존재하는 다수의 유령 부와 마찬가지로 부원도 딱히 없고 부실도 없었다. 감독하는 선생님도 부재다.
그런데 부 활동은 엄연히 있댄다. 그것도 무려 1945년부터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학교가 생기기도 전이다. 부활동이 아니라 당시에는 동네 행사처럼 행해졌던 듯하다.
손가락을 접었다 펼쳤다 반복하며 년 수를 헤아리던 미즈키는 진심으로 놀랐다. 자그마치 59년 전에도 양동이와 빗자루, 걸레와 같은 청소도구를 들고 이 길을 걸어간 학생들이 있었다는 얘기다. 그때 미즈키의 부모님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다.

체육관 뒤쪽으로 나무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철문이 있고, 녹슬어 뻑뻑한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뒷산으로 이어졌다. 그곳이 카제야마 중학교 부지의 연장선인지, 아니면 개인 사유지인지 알 수 없었다. 담장도 안 보였고 안내 표지판 같은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빗자루를 꼭 쥐고 가면서 미즈키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쓰레기를 버리지 마시오, 흡연금지, 버섯채취 금지, 대충 이런 문구를 적은 표지판 대신 돌을 쌓아 만든 탑들이 눈에 들어왔다. 크기는 크기 않아 한 자에서 두 자 정도였고 특이하게도 돌의 색이 검었다.
점판암? 글쎄다. 수업시간에 봤던 암석 샘플을 떠올려 봐도 종류를 짐작하기는 힘들었다. 돌은 표면이 거칠었고 색이 일정했다. 표면에 칠을 해서 인위적으로 색을 입힌 것일 수도.

『만지지는 말고.』
『네.』
방금 전 뱀 소굴에 손을 대려 했다는 것도 모르고 스가와라 미즈키가 밝게 대답했다.

「으, 진짜지 뱀 투성이! 온 동네가 뱀!」
지금도 스윽 소리를 내며 뱀이 땅바닥을 기어갔다. 탁하고, 물기가 있고, 꿈틀거린다.
처음에는 진짜 뱀이라고 착각해서 미친 듯이 발을 굴렀더랬다. 만약 그게 진짜였다면 자기 몸을 방어하려던 뱀으로부터 엄청나게 물렸을 거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실체가 없는 종류여서 「버려진 사탕 봉지를 먹바퀴로 착각한 이이지마 하나에가 킹콩처럼 발을 굴렀다」로 마무리가 되었다.
먹바퀴는 옥외 서식 습성이 있고 주택 부근의 숲이나 옥상 텃밭에서 잘 발견되는 종류다. 마침 창궐하는 뱀에 패닉을 일으켰던 장소가 수풀이 우거진 곳이어서 다행히 먹바퀴 핑계는 잘 먹혀 들어갔다.

『이 돌탑들은 누가 쌓은 걸까요?』
꿈틀거리는 뱀들이 먼지처럼 쌓인 수풀 앞에서, 발목에 눈먼 뱀을 매달고 있던 미즈키가 호기심을 드러내며 두 눈을 반짝거렸다.
『하나같이 다들 올망졸망해서 귀여운 느낌이에요!』
『......』
『에엣? 선배는 아니에요?』

걸레를 담은 양동이를 휘둘러 망할 뱀 구덩이 돌탑들을 전부 쓸어버리고 싶은 걸 시몬, 너는 아느냐.
해탈한 그녀는 아무 것도 모른 채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고 있는 후배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Posted by 미야

2021/03/09 13:48 2021/03/09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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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장~!! 2학년에 엄청 멋진 연예인 선배가 있어~!!』
견학 도중 땡땡이를 치고 달아나 반 아이들 전부를 기합 넣기 체조로 몰아넣은 주제에 목소리가 엄청 컸다.
몇몇 아이들의 표정이 대놓고 일그러졌다.
하지만 복잡하기 짝이 없는 그들만의 비밀스런 사정 탓에 스가와라 미즈키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눈에 힘을 주는 학생은 없었다.
대신 그들은 다음 수업 준비를 하거나 까먹고 있던 과제를 벼락치기 하며 각자 바쁘게 움직였다.
결과적으로 1학년의 콧쿠리님, 그러니까 일종의 카페인 과다섭취 비슷한 상태가 되어 남의 얼굴에 뜨거운 콧김을 뿌리고 있는 이 무례하기 짝이 없는 콧쿠리님을 응대하는 건 온전히 반장 하시모토 리코의 몫으로 떨어졌다.

「원래 대화 금지라고 하지 않았던가. 몇 번이고 말상대를 해줘도 괜찮은 건지 모르겠네.」
피곤에 찌든 콜 상담센터 근로자의 표정을 지으며 반장은 미즈키를 향해 빙글 돌아섰다.
『누구 얘기? 우리 학교는 외부활동 전면 금지야. 심지어 아르바이트도 금지거든. 연예인 지망생이면 우리 학교가 아니라 세-메이 학원으로 갈테지.』
『그렇지만 분위기가 딱 연예인이던데? 이름이 이이지마 하나에라고 했어. 2학년!』

순간 퍼렇게 날인 선 정적이 몰아쳤다.
이번에는 모두의 시선이 미즈키에게로 향했다. 하던 동작을 모두 멈추고, 심지어 책상에 엎드려 토막잠을 취하던 남학생조차 졸음이 싹 달아난 표정이 되어 스가와라 미즈키를 쳐다봤다.
모두가 일제히 숨을 죽였다는 것도 모른 채 미즈키는 두 팔을 붕붕 흔들어댔다.
『2학년의 콧쿠리님이라고 했어! 꺄아~ 혹시 그 선배 2학년 몇 반인지 반장은 알아?』

인위적으로 꾸며낸 접대용 표정이 삽시간에 무너질 뻔했다.
하시모토 리코는 속으로 하나, 둘, 셋, 넷 숫자를 세고 교복의 깃을 잡아당겨 정리했다.
은행원인 어머니가 진상고객을 응대할 적의 몸가짐을 고스란히 따라하고 있다는 건 꿈에도 몰랐지만, 어쨌거나 자세가 똑바르면 졸음도 달아나고, 허리통증도 완화되며, 마음의 동요도 곧 멈추는 법이다.

『미안. 아무래도 한 학년 위의 선배는 잘 몰라.』
잘 모르긴. 이 동네에서 이이지마 하나에를 모르면 외계인인데. 속으로 중얼거렸다.
칼빵 자국 선명한 야쿠자들도 슬슬 피하고, 심지어 정신 나간 개도 이이지마 하나에 앞에선 꼬리를 감춘다. 아무나 찔러 죽이겠다며 공원에서 칼을 소지한 채 난동을 부리던 괴한이 우연히 편의점에 가던 중이던 이이지마와 정면으로 마주치고는 곧바로 전의를 상실하여 무릎을 꿇었다, 카더라 소문이 돈 적도 있다.
단순 헛소문으로 치부할 얘기가 아니다. 이이지마 하나에라면 일개 여중생이 온전히 기백 하나만으로 예비 살인마를 찍어 누르는 일도 충분히 가능하다.

2학년의 콧쿠리님을 머릿속에 떠올렸을 뿐인데도 팔뚝의 털이 곤두서려 했다.
그 선배는 멋진 게 아니라 어딘지 모르게 섬뜩하다.
새 지저귀는 소리조차 들려오지 않는 으슥한 산속에서 길을 잃어버렸는데 갑자기 큰곰과 맞닥뜨렸다. 그것도 방금 동면에서 깨어나 심한 허기 상태인 곰이다. 대략 그런 느낌이다.

이쯤해서 하시모토 리코는 의아해졌다.
연예인 같은 멋진 선배? 그거 도대체 누구?

『근데 콧쿠리님이 뭐야? 반장.』
워, 잠시만. 깜빡이는 켜고 들어와라.
『우리 중학교에선 인기투표 1위를 콧쿠리님이라고 불러?』

때마침 예비종이 쳐서 정말 기뻤다.
영혼 없이 빙긋 웃던 반장은 간절하게 대답을 기다리던 미즈키를 나 몰라라 하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곤란하게 그런 거 묻지 마. 차라리 완전제곱식을 물어보라고.

이어지는 수업시간 내내 미즈키는 샤프를 윗입술에 올려놓고 딴생각에 빠졌다.
「2학년의 콧쿠리님이라. 흐응~ 분명 2학년 넘버원이라는 거겠지?」
초등학교 시절엔 인기투표 1위의 슈퍼스타들을 가리켜 멧챠라고 했다. (※한국식으로는 짱)
남자는 멧챠맨, 여자는 멧챠걸.
이마에 손가락을 대고 울트라 빔을 발사하는 흉내를 내던 동급생이 멧챠맨이었고, 분홍색 스커트를 나폴거리며 애니메이션 프롱프리걸즈 주인공의 동작을 따라하던 아이가 멧챠걸이었다.
멧챠맨은 축구를 정말 잘했기에 운동신경이 뛰어난 소년을 마음속으로 크게 동경했던 미즈키는 쉬는 시간에 멧챠맨과 같이 화장실에 다녀오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일기장에 기원하는 심정으로 적었을 적에 선생님은 여자애가 남자화장실에 멋대로 들어가려 하면 안 된다며 야단을 쳤다. 기억에서 도려내고 싶은, 미즈키의 흑역사 중 하나다.

『어흠!』
수업에 영 집중하지 못하는 미즈키가 거슬렸던지 2차방정식을 칠판에 풀어나가던 선생님이 헛기침을 했다.
『거기 너! 나와서 문제 풀어! 아까부터 계속 딴 짓이나 하고!』
『제가 풀어보겠습니다.』
교사의 말을 끊은 하시모토 리코가 냉정한 태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방금 지목한 건 네 녀석이 아니다. 하시모토!』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쪽의 고충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미즈키는 입술에 올려놓았던 샤프를 이번에는 손가락에 끼고 빙글빙글 돌리기 시작했다. 시선은 여전히 수업진도가 아닌 엉뚱한 페이지에 고정된 채였다.
「헤에. 그런데 좀 의외네. 중학생씩이나 돼서 멧챠코챠 부르는 거, 무지 촌스럽다는 건 알겠는데 말이지... 그렇다고 카제야마 중학교 넘버원을 콧쿠리님이라 부르는 것도 좀 아니지 않아? 콧쿠리님은 그거잖아. 여기로 와주세요 하는 그거. 미래의 애인 이름을 알려주는 엔젤님.」

세 명의 사람이 연필을 같이 쥐고 종이에 가져간다. 여기로 와주세요, 여기로 와주세요, 여기로 와주세요 세 번을 말하고 숨을 계속해서 참고 있으면 콧쿠리님이 현신하여 미래의 애인 이름을 적어주기 시작한다.
주의사항, 숨을 참지 못하고 뱉으면 콧쿠리님이 곧바로 자리를 떠나니 최대한 참는다.
「숨 막혀서 뒤지는 줄 알았지.」
콧쿠리님을 불러내는 건 매우 간단했다. 숨을 참고 있으면 어느새 쥐고 있던 연필이 마구 떨리기 시작했으니까. 다만 그 애인들 이름이 하나같이 찌그러진 동그라미에 갈지자인 건 심히 유감이었다.
노골적으로 실망을 드러낸 아이들을 향해 콧쿠리님을 부르는 방법을 알려줬던 멧챠걸이 변명조로 말했다.
엔젤님은 원래 서양인이야. 그래서 히라가나를 잘 몰라.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그래서 초등학교 시절 콧쿠리님은 영 인기가 없었고, 오래지 않아 장난도 하지 않게 되었다.

「뭐, 어쨌든 여기서 중요한 건...」
수업이 다 끝난 것도 아닌데 교과서를 탁 소리 나게 덮어버렸다.
『야! 인석아! 거기 너! 아직 종 안 쳤다! 왜 교과서를 덮는 거야!』
「2학년의 콧쿠리님이 몇 반인지를 알아내야 한다는 거지!」
선생님에게 미운털이 단단히 박히든 말든 결심부터 하고 보는 미즈키였다.

2학년의 콧쿠리님은 우롱차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러니 우롱차가 나오는 자판기 앞에서 무작정 잠복하고 기다리는 거다. 그러다 선배가 나타나는 순간,「어머, 이런 우연이!」공갈치고 덮치는 거다.
「그런데 우리 학교 자판기가 모두 몇 대지. 매점을 제외하고도 여섯 군데가 넘잖아.」
틀렸다! 이 방법은 닌자 분신술을 먼저 익히지 않는 이상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게다가 발목이 다 낫지 않아 여기저기 뛰어다닐 수도 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얼굴에 철판을 깔고 2학년 교실을 돌아다녀볼까. 덕질은 원래 뻔뻔하게 하는 거다.

뺨에 열이 오르면서 확 붉어졌다.
날 좋은 때 옥상에 올라가 직접 만든 도시락을 하나에 선배와 같이 먹고 싶다.
참고서 골라달라고 부탁도 해보는 거다. 주말에 약속을 잡아 같이 서점을 방문하고, 시간을 내주어 정말 감사합니다 인사를 드린 후에 케이크 가게로 가서 끝내주는 디저트를 대접해야지.
캬아~!! 좋구나. 미인이 케이크를 먹는 장면을 상상만 해도 아랫배가 욱씬거려!
그대로 전화번호 교환도 하고 - 방과 후 클럽활동도 같이 하자고 졸라야지.

『같이 부 활동? 오히려 내가 영광이지만... 괜찮겠어? 후배님. 나, 청소부야. 이름하야 클린업 클럽. 빗자루와 걸레, 양동이를 들고 고쿠로쿠치나와님 사당을 청소해야 해.』
결론부터 말하자면 스가와라 미즈키가 2학년 교실을 순례하기 전, 머리카락에 잎사귀 하나를 머리핀처럼 달고 나타난 이이지마 하나에가 1학년 2반 교실에 먼저 난입했다.

Posted by 미야

2021/03/07 00:17 2021/03/07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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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집단 따돌림을 당하고 있습니까 질문을 받으면 네, 라고 대답할 거다.
그리고 한 5초 정도 뜸을 들인 뒤 조심스럽게 아닐지도, 라고 말을 바꿀 거다.

무릇 일본에서 학교에 다녀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따돌림이 뭐라는 걸 잘 안다.
의자에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걸레를 올려놓거나, 안 보이는 구석에 압정을 숨겨 놓는다던가, 교과서에 잉크를 부어버린다거나, 교복에 껌을 붙이거나, 양말만 신고 집에 가라며 신발을 쓰레기장에 던져버리거나 하는 식이다. 심각할 경우 신체적 상해를 입히는 일도 허다하다. 예를 들면 담배빵 같은 거.

스가와라 미즈키가 기억하기에 2주 동안 반 아이들로부터 험한 짓을 당한 적은 결코 없다.
그저 무리에 끼워주지 않을 뿐으로 폭력이 동반된 배척행위는 하지 않았다. 좋은 아침, 기합을 넣고 인사하면 고개를 끄덕여줬다. 최소한 반장 하시모토 리코는 그렇게 해줬다. 실망스럽게도 단지 그뿐이었지만.
뭔가 더 얘기를 나눠보고 싶어 운을 떼면 반장은 어른스러운 표정을 짓고 자리를 피했다.
하시모토는 마치 고급 회피기능이 달린 고가의 외제 승용차 같았다. 삐삐삐 경고등이 들어오면 장애물을 피해 핸들을 돌려버리는 거다.

노력했음에도 클럽 입부서는 세 번 거절당했다.
라노벨 소설 창작부, 실내 캠핑 클럽, 십자 낱말풀이 동호회에서 연속으로 딱지를 맞았다.
거절의 이유는 인원이 꽉 차서.
실내 캠핑 클럽은 회원만이 4명밖에 되지 않아 정원초과는 순전히 핑계일 거라 짐작되었다. 하지만 도수 높은 안경을 쓴 부장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텐트가 4인용이야」 라고 설명해줘서 꿀멍하고 말았다.
텐트 속에 4명이 들어가 신나게 과자를 까먹고, 미즈키는 혼자 베개를 끌어안고 텐트 밖에 덩그러니 누워있는 거다. 상상해보고 작성했던 입부 신청서를 세로로 길게 찢었다.

『오늘도 견학이니? 어느 정형외과인지 몰라도 의사가 실력이 형편없구먼.』
체육과목 히무라 선생님이 발목에 감은 붕대를 한 번 쳐다보곤 쯧, 하고 혀를 찼다.
동감입니다, 스가와라 미즈키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서일까. 뼈가 동강 나도 사흘이면 부활한다는 기적의 연령대임에도 다친 부위의 통증이 영 가라앉지 않고 있다. 금이 갔던 건 다 붙었을 거라며 장담하던 의사가 엑스레이를 다시 찍어보자 권유하고 얼굴을 굳힌 건 깁스를 푼 자리에 마치 굵은 밧줄로 묶은 것 같은 묘한 자국이 생겨서다.
아무래도 상처가 덧나 염증이 생긴 모양이라며 병원에서 약을 잔뜩 지어주고 주사도 놓았다. 감기에 걸렸을 때 엉덩이에 맞는 주사와는 종류가 달라 바늘 굵기가 어마어마했다.
고릴라는 고릴 고릴! 바늘이 피부를 꿰뚫었을 적에 미즈키는 끔찍한 격통에 새파랗게 질려버렸다.

불운의 별이 머리 꼭대기에서 반짝인다.
구석진 잔디밭에 무릎을 세우고 앉은 미즈키는 발가락을 꼼질거렸다.
둘씩 짝을 지어 스트레칭을 하는 아이들을 구경하는 건 괴로웠다. 까르륵 웃으면서 서로 등으로 어부바를 하고 누구의 몸무게가 더 나가는 것 같으냐며 야단이었다. 미즈키에게는 계속 쌀쌀맞게 굴던 하시모토 반장은 방금 전 코끼리에게 짓눌려 죽을 뻔했다며 애교 섞인 농담을 하고 있었다. 반장의 친한 친구, 같은 초등학교 출신이라던 짝은 살짝 통통한 체형이었다.

어, 부러워 죽갔네. 질투나.

『팔을 수평으로 쭉 뻗고 이렇게! 배구공을 위로 쳐올리는 연습을 한다. 열 번 이상 쳐올리도록.』
『팔 아파요, 선생님.』
『가스나야. 누가 한 손으로 하래?』

우두커니 앉아 구경만 하고 있던 미즈키는 과감히 수업을 째기로 결심했다.
아무도 관심을 안 주는데 뭐.
그렇다고 혼자 교실로 돌아가는 건 좀 그렇고.
기분이 안 좋을 적엔 달콤한 걸 먹어주면 풀린다. 먼지를 털고 일어난 미즈키는 자판기가 있는 방향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마침 주머니에는 100엔 동전이 세 개 있었고 메론 맛 소다를 마실 생각이었다.
초등학교 시절엔 설탕을 증오하는 어린이 건강증진 위원회라는 곳에서 교내 자판기 설치를 전면 금지시켰다.
카제야마 중학교에는 아직 그들의 사악한 마수가 닿지 않아 좋았다.
「겨우 자판기 존재에 위로를 받는 상황이냐...」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 버튼을 눌렀다. 조금 걸었다고 붕대를 감은 발목이 욱신거렸다.

『부게에억! 어째서 여기서 우롱차가 나오는 건데?!』
초록은 초록인데 그 초록이 아니다. 자판기에서 빠져나온 우롱차를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것도 불운의 별 효과냐! 스가와라 미즈키는 절규했다. 전생의 나는 도대체 무슨 죄를 저질렀던 거지?! 메이레키 대화재 주범이 혹시 나였던 거야? 상사병에 빠져 죽어버린 열일곱 살 후리소데 소녀가 전생의 나?! 에도를 잿더미로 만든 저주의 원흉이 전생의 나였느냐고!
홧김에 우롱차를 집어던지려고 높게 들었다.
『크읏.』
그럴 리가. 단숨에 끓어올랐던 머리가 도로 식었다.
상사병으로 숨이 끊긴 예쁜 소녀라기보다는 절에 공양된 후리소데를 빼돌려 헐값에 팔아치우려 한 땡중이었겠지. 내 주제에 무슨 사연 깊은 미소녀 타령이람. 자고로 미소녀라 칭하려면 적어도 내 앞에 서있는 저 사람처럼... 그래, 저 사람처럼. 그쯤에서 망상의 실타래가 뚝 하고 끊어졌다.

예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그보다는 아름답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머리카락은 칠흑처럼 검고, 피부는 투명하다. 뺨 가운데 박힌, 동서남북 방향 네 곳을 찍은 점이 독특하게 시선을 끌었다.
맹세코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은 태어나 처음 보았다.
같은 교복을 입었음에도 이쪽은 선머슴이고 저쪽은 아가씨다. 사극에 등장하는 공주님이다.
공주님이 입술을 끌어당겨 미소를 짓자 눈이 부셔 미칠 지경이 되었다. 심장이 엇박자로 뛰었다.
아, 이게 엄마가 늘 말씀하시던 그 순간이구나.
반한다는 게 이거였어.

미즈키의 심장으로 불벼락이 내리꽂혔다. 영혼을 담고 있던 그릇이 쩍 소리를 냈다.

공주님이 옥구슬 굴러가는 고운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아무도 가르쳐준 사람이 없었나봐. 그 버튼을 누르면 항상 우롱차가 나오거든.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는데 매번 우롱차가 나왔어. 우리 학년에선 그래서 저칼로리 함정 버튼이라고 불러.』
블라우스 리본의 색이 파랑이었다. 고로 저 사람은 2학년이다.
『후후후. 비명까지 지른 걸 보면 우롱차를 안 좋아하나봐. 나는 좋아하거든. 오렌지 주스를 뽑을 테니 내 거랑 바꿔먹지 않을래?』
『고맙 좋습 바꿉.』
『응?』
고맙습니다, 오렌지 주스 좋아해요. 바꿔 마셔요, 이렇게 말한다는 걸 실수했다.
첫인상을 망친 건 아닐까 고민하는 건 둘째고 얼굴이 홧홧 달아올랐다.
다행히 상대방은 개의치 않아하는 눈치였지만.
그녀의 미소가 요요해졌다.
『안녕? 내 이름은 이이지마 하나에야. 2학년의 콧쿠리님이지. 잘 부탁해.』

체육수업을 모두 마치고 배구공 자재를 정리하던 반장 하시모토 리코는 약간 짜증이 난 상태였다.
1학년의 콧쿠리님이 견학 도중 탈주했다.
신입생 콧쿠리님은 은근 소심한 것 같으면서도 가끔씩 보이는 행동이 영 예사롭지가 않았다.
언제 사라졌는지도 몰랐는데 친구인 이시즈미 루미의 말에 의하면 제법 일찍이 도주한 모양이었다.

덕분에 히무라 선생님에게 한바탕 잔소리를 들었다.
잔소리로 끝난 것도 아니어서 1학년 2반 전원이 속칭 기합 넣기 체조라는 걸 1세트 했다.
팔 벌려 뛰기를 하다가 3의 배수가 되는 횟수에 귀 잡고 개구리 뛰기를 하는 걸 기합 넣기 체조라고 부른다. 단순한 것 같아도 근육통을 격발시켜 학생들은 히무라표 징벌 체조라고 바꿔 불렀다.

『히무라 선생님은 인정하지 않는 쪽이잖아. 눈치를 채고 떠본 것일 수도 있어. 1학년 2반에 콧쿠리님이 계신 거냐. 너희들 또 왕따 놀이 하냐. 입학식에 나오지 않은 애가 표적이냐...』
배구공 정리를 돕던 친구가 손바닥을 탁탁 털며 말했다.
『우리 언니 말로는 히무라 선생님, 몇년 전 졸업생 콧쿠리님 때 굉장했다던데. 전교생이 정학당하는 상황이 되더라도 콧쿠리님 모시는 걸 없애버리겠다고 그렇게 난리를 쳤대. 우주선을 쏘아 보내는 시대에 시치후쿠진에게 복을 빌 거냐면서 3학년들을 강당에 모아 넣고 기합 넣기 체조를 반나절 내내 시켰다는 거야. 밖의 온도가 37도 폭염이었는데. 덕분에 구급차가 몇 대씩이나 오고... 학생회장까지 가세해서 드잡이를 하고... 교사끼리 주먹질을 하고. 뉴스에도 나왔다나 봐.』
루미가 리코의 표정을 곁눈질로 흘깃 살폈다.
반장은 중립이다.
겉으로는 콧쿠리님을 모셔야 한다는 아이들을 적절히 편들어주고 있지만, 속내는 다소 복잡했다.
기본적으로 하시모토 리코는 사람이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는 걸 끔찍스럽게 여기는 사람이다.
다만 내재된 정의감 이전에 민주주의 절차에 따라 다수결 결정을 존중해주고 있을 뿐으로, 다시 말하자면 언제든지 태도를 바꿀 수 있다는 얘기다.
『루미는 그런 거 너무 싫어.』
『그러게. 미쳤다. 폭염의 날씨에 기합 넣기 체조라니.』
배구공으로 가득 찬 커다란 도구상자를 질질 밀고 가던 반장은 루미가 말한 「너무 싫어」의 대상을 착각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Posted by 미야

2021/03/04 12:50 2021/03/04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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