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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교 독문과 불문과 폐지 소식이 뉴스로 올라왔다. 음. 문송합니다, 인가.
불문과 학생들이 기말고사 끝날 즈음에 500원짜리 (불법) 비디오를 시청각실에서 틀어주던 게 떠올랐다.
이젠 다 잊혀진 추억이다.

자극을 받은 김에 구글로 학교 전경을 구경했다.
못 보던 건물이 생기고 부지가 넓어졌다. 약초밭 이런 거 안으로 끌어댕겼수? 기억과 많이 달랐다.
F관 앞으로 주차장이 생겼다. 세상에... 주차장이 생겼다!!!
하지만 내가 공부하던 F관까지는 도로가 연결되지 않아 카메라가 닿지 않았다.
그래서 졸업생으로 추정되는 (확실하지 않다) 한 유투버의 뚜벅이 영상으로 F관을 다시 볼 수 있었다.
붉은 벽돌 겉 껍데기는 그대로여서 감동.
서양화과 학생인 듯한 재학생이 밖으로 캔버스 끌어놓고 열심 열심 하는 영상도 있더라. 고생해라...

그런데 말입니다.

화방이 없어졌어~!!!
서양화과 동양화과 그대로 있는데 화방이 없음 니들 재료 어디로 구하니?
구글로 이리저리 살펴봤는데 단골로 다니던 예림화방 자리에는 약국이 있었다.
떠올려보면 졸업할 무렵에 사장님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장사를 접을 거라는 암시를 주기는 했었다. 그렇다면, (손가락을 접어가며 헤아린다) 몰라도 1997년 봄에는 화방이 없어졌다는 야그... 아닛, 미술 재료 어디서 구해요?? 인터넷? 홍대 화방? 물감이야 그렇다치고 캔버스는 부피가 있는데 어디서 가져와??
궁금한 점은 많았지만 확인할 길은 없었다. 졸업한지 20년이 지났는데 워쩌.


합격자 발표가 예고되어 있던 날 밤, 꿈에서 나는 죽은 닭 머리를 흔들며 사방에 피를 뿌리고 좋아하고 있었다.
내 인생의 클라이막스, 그렇게 외쳤던 걸로 기억한다.
확실히 클라이막스였다. 이후로 줄곧 내리막길이었지만 재학 중에는 정말 행복했다.

울 마덜께서는 지금도 어이 없는 표정으로 "도대체 학교는 왜 다녔니?" 라고 하신다.
그러게요. 나는 그 질문을 들을 때마다 어색한 표정으로 웃는다.
그냥 좋았어요. 완벽한 낭비 행위였죠. 시간과 노력과 돈을 마음껏 낭비할 수 있었던 처음이자 마지막 사치 행위였으니까요.
난 지금도 학교로 돌아가는 꿈을 꾼다. 실기실에 앉아 캔버스를 꺼내 이젤에 세워두고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재료를 준비하고... 가장 행복했던 때다. 그래서 후회가 되지 않는다. 그렇게 행복했던 때가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뻐근해진다. 다시는 경험하지 못할, 내 인생의 클라이막스.



을랑이에게는 미안하다.
쑥스러움을 참고 나에게 연락을 주었을텐데 도저히 만나자고 할 수가 없었다.
왜냐면... 부끄럽거든.
자존감이 빵 부스러기처럼 남았는데 도저히 참을 수 있을 거 같지가 않았어. 그냥... 나는 없는 사람이야.
존재를 남기지 않고 없어져 버린 학교 앞 화방처럼, 그렇게 지워지는 게 옳은 거지.
나는 부끄럽다.

Posted by 미야

2024/04/25 20:16 2024/04/25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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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 백수는 숨쉰다

올해 1월 23일인가... 9년간 다니던 사무실 관뒀다.
당시에는 간절히 그만두고 싶었는데 4월까지 빈둥거리다 보니 인간적인 모욕은 다 감수하고 계속 근무할 걸 그랬나 후회하는 순간도 오긴 오더라. 3월까지는 정말 즐겁게 빈둥거렸는데 4월이 되니 기분이 급변했다.
지루한 겨울이 가고 봄이 왔음에도 나만 계속 딱딱한 흙 속에 정체되어 있다는 그런 느낌?
여행을 가겠다고 다짐해 놓고 정작 시간이 많아지니 밖에 나가 버스조차 타기가 힘들다.
지금은 히키코모리다. 아무와도 연락하지 않고 방구석에 숨었다. 계속 잠만 자는 거 같다.

객관화는 제법 쉬웠다. 유튜브에 나와 같은 상황을 호소하는 영상이 엄청 많았다.
그런데 뭐. 해결 방법이 있던가.
나이 쉰을 넘어 취업하기가 쉽지가 않다.
이력서 넣은 곳에선 날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아, 뭐. 그래서 어쩌라고. 생각을 멈춘다. 그럼 약간은 편해진다.

아침 7시에 깨어났다가 8시까지 다시 잔다.
8시가 넘으면 일어나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는다.
어디서 문자라도 날아오지는 않을까 긴장한 채로 간단한 식사를 한다.
스팸 메일과 광고성 전화가 간간이 온다. 전화벨 소리에 노모가 반색한다. 면접 보라고 연락왔니?
그럴 리 없다. 나는 웃는다. 그리고 멍하니 창밖을 본다. 오늘은 날씨가 흐리다.

심심해서 가방을 들고 마트에 나왔다.
저축해둔 돈이 있으니 당분간은 괜찮다. 옛날 하던 버릇대로 먹고 싶은 걸 골라 장바구니에 넣는다.
가격표를 보는 짓은 20년 전에도 하지 않았다. 필요하면 사고, 필요하지 않으면 사지 않는다. 내 경제 철학은 그렇다. 그래서 낭비가 심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세일하는 품목을 고르라고 조언을 듣는다. 한성 유부초밥을 저렴하게 팔고 있다. 당장 먹지도 않을 거면서 샀다. 그럼 낭비가 아닐까.
궁금해 하며 과자 코너로 간다. 하지만 딱히 먹고 싶은 과자가 없어 느린 걸음으로 코너를 빠져나온다.
건강이 나빠져 탄수화물과 액상과당의 섭취를 줄여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며 기어코 뻥이요 한 봉지를 손으로 잡았다.

가게에서 빠져나와 언덕길을 올라가며 하늘을 쳐다본다.
전깃줄 위로 비둘기 두 마리가 앉았다. 불결한 낙하물을 경계하며 비둘기와의 거리를 가늠한다.
동시에 뭐 하는 짓이지 라고 한탄한다.


다들 어떻게 살고 있는 건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건지.


마흔 살이 되면 스스로 죽겠다고 주변에 말하고 다니곤 했다.
그런데 그 방법은 딱히 생각해두지 않았다. 목을 매달아서? 번개탄을 피워서? 옥상에서 뛰어내려서?
사실 난 그 전에 내가 건강 상의 이유로 어느 날 갑자기 돌연사 할 거라 믿었다.
그냥 쓰러져 죽겠거니 - 저승사자가 코웃음을 칠 일이다. 세상 일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나는 올해 쉰 넷이다. 여전히 건강 상태는 좋지 않지만 곧 죽을 거 같진 않다. 펄쩍 뛸 일이다. 세상에... 나 아직도 살아 있어?! 어떻하지?
그리고 나서 오늘 저녁 식사로 어제 만든 카레를 먹으면 되겠다고 다시 생각한다.

와... 뭔가 뻔뻔한 거 같아.

아무튼.



9년 동안 쳇바퀴 돌던 생활을 하면서 정말 괴로웠는데
쳇바퀴에서 내려와도 여전히 괴로운 건 반칙이다.

예수님.
원망할테다.

Posted by 미야

2024/04/24 18:27 2024/04/24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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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감 백신은...

일단 한 번 잡숴봐, 이 개념인 듯.

해열 진통제를 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 갈등하다 안 먹는 걸로 결론내렸는데 미열이 계속 난다.
삭신이 쑤신다. 집에 가고 싶다. 손바닥이 불쾌하다 싶을 정도로 뜨끈뜨끈하다.

소장도서 전자책 전환은 여전히 지지부진이다.
국회도서관에서 2억원짜리 스캐너를 두 대나 구입해서 전자동으로 책을 긁어댔는지 이제 이해가 가자나.
두꺼운 책 위주로 스캔을 시작했더니 물량이 안 줄어.
예전에는 벽돌책을 그렇게 사랑했는데 지금은 육두문자가 절로 나온다. 씨ㅂ! 많잖아!

침대에 눕고 싶다. 손가락까지 아프다.

Posted by 미야

2023/11/06 15:23 2023/11/06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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