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술회전과 백귀야행의 설정을 대충 가져와서 붙인 오리지널 스토리입니다.
근육이 거의 없는 여자여서 그런지 움직임이 둔했고 속도도 매우 느렸다.
발동작이 전통 무용을 닮아 궤적을 예상하고 움직이면 중학생이라도 충분히 피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해도 들고 있는 것이 손도끼다. 상대가 날붙이를 들고 있으면 비벼볼 꿈은 꾸지도 말고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쳐야 하는 법, 도주할 방향으로 몸을 튼 다음 검지와 검지를 붙이고 호령했다. 개(開).
탕, 탕, 탕, 소리를 내며 헤아리기 어려운 수의 장지문이 일시에 열렸다.
현실에서 이런 구조의 집을 짓는 사람이 있다면 빌 게이츠 부럽지 않을 갑부일 거다. 어마어마한 크기를 가져 백 명 연회가 가능하다고 선전하는 료칸도 맞거울에 비친 형상처럼 되는 일은 없다. 따라서 공간이 기형적으로 왜곡되어 있다고 추측하는 편이 타당성 높았다.
뒤에서는 여전히 손도끼를 든 여자가 비틀거리며 따라오는 중이었다. 손도끼 무게가 버거웠던지 걸음을 옮길 적마다 좌우로 크게 휘청거렸는데 덕분에 문설주에 스스로 머리를 박는 꼴사나운 광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보는 입장에서 웃음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바나나 껍질을 밟고 넘어진 이가 출근 중인 샐러리맨이 아니고 요코즈나 스모선수라고 해보자. 아무도 안 웃는다.
『이유나 말해주고 쫓아오던가!』
여자가 신음소리 하나 없이 다시 몸을 추슬렀다.
이상하게 표정이 없어 인형 얼굴을 오려내어 가면처럼 씌워놓은 것 같았다. 덕분에 국화로 치장한 관속에 누워있는 송장 느낌이었다.
마주대고 있던 검지와 검지를 안으로 구부렸다. 폐(閉).
손도끼를 든 여자의 코앞에서 탕, 요란한 소리를 내며 장지문이 닫혔다.
토지신의 몸으로 쓸 수 있는 술(術)이 겨우 열려라 참깨, 닫혀라 참깨, 딱 두 가지라는 건 어디 가서 말하기도 부끄럽다.
하지만 나름 할 말은 많다. 새로 태어난 토지신은 아주 맛있는 영약이다. 먹고 싶다며 잔칫상 차려놓고 요리할 궁리를 할 신들이 일본에 무려 800만이나 있다. 지금까지 기척을 숨기는 데 기력을 집중하다보니 몸을 지킬 비기를 익힐 짬 같은 건 없었다. 맹물을 술로 만드는 잡술 정도나 겨우 해봤다고 할까... 사실은 보리차로 맥주를 만들려고 시도한 게 전부다. 그리고 성공도 못했다.
후회가 되지 않느냐고? 지금에 와서 이랬으면 어땠을까, 저랬으면 좋았을까 가정을 해보는 건 전날 야식으로 먹은 라면을 후회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미 얼굴은 땡땡 부었다.
술을 이용해 강제로 닫은 장지문이 달각달각 흔들렸다.
그래봤자 종이를 바른 장지문이다. 무겁고 단단한 서양식 문과는 애당초 기능 자체가 달라 공간을 분할한다는 의미밖에는 없다. 문 뒤에 숨어 몸을 지킬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거는 자체가 어리석다.
도끼질 한 방에 장식용 살이 떨어져 나가고 그 틈새로 이쪽을 응시하는 여자의 눈과 제대로 마주쳤다.
순간 찌릿하는 전기가 이이지마 하나에의 척추를 타고 흘렀다.
『샤이닝이냐! 맛 간 잭 니콜슨이냐고!』
옆으로 달아날 수 없다면 위를 노린다.
다시 검지를 마주대고 이번에는 머리 꼭대기를 향해 외쳤다. 개(開).
지붕 뚜껑이 날아갈 거라고 계산했는데 너무 얕봤나 보다.
팡, 하고 떨어져나간 반자의 장식판자 너머로 다다미가 보였다. 그러니까 꺼풀을 벗겨낸 천장 너머로 지붕을 지탱하는 대들보가 드러난 게 아니라 거울로 반사된 이미지의 방 구조물이 나타났다. Ctrl+C 복사하여 Ctrl+V 붙여넣기 하면서 위아래를 반전시킨 거다.
저릿한 느낌이 다시 척추를 타고 머리꼭대기로 향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공간에서 과연 탈출이 가능한가.
인외세계의 시간은 인계와 다르게 흐른다. 제 마음대로라서 느리게 흘러갈 수도, 빠르게 흘러갈 수도 있다.
하나에와 비슷하게 저쪽의 토지신에게 붙잡혔던 이이지마 카이는 무려 20년이 지나서야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경계의 덤불숲에서 이쪽의 사람들이 카이를 성공적으로 낚아챘을 적에 그는 놀랍게도 실종되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대학생의 말간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저 며칠이 흘렀을 뿐이었다며 카이는 말을 잃었다. 그동안 대학교 동기들은 결혼도 하고, 승진도 하고, 집도 샀는데 본인은 대학중퇴 이력을 가진 거주지 불명자 신세로 전락했다. 집 거실에 놓여 있던 버튼식 전화기를 한참이나 응시하던 카이는 그 전에는 다이얼식이었노라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일곱 살 무렵에 토지신에게 납치되었던 하나에는 5분 안팎의 시간을 그쪽에서 보냈다.
어렸기 때문에 더 길게 느꼈을 뿐으로 어쩌면 그 절반도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둥근 도넛 모양으로 양 갈래 머리를 묶은 동자가 작은 다과상을 가져왔고, 하나에는 잘 먹겠습니다 인사하고 떡을 집어 먹었다. 콩알 크기의 떡을 먹는데 몇 초가 걸리겠는가. 뒷맛이 떫어 몇 번 씹지도 않았다. 절반은 삼키고 절반은 뱉었더니 밖은 이미 6개월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안 돼. 절망하기엔 아직 일러. 무사히 빠져나갔더니 10년 뒤였습니다, 꼭 이렇게 될 거라는 보장이 어딨어. 여기서 30년을 보냈는데 바깥은 3초 뒤일 수도 있잖... 거헉!」
무릎을 꿇었다.
이곳 인외세계에서 배가 고파진다거나, 잠이 온다거나, 소변이 마려워지는 일은 없을 거다.
그렇다고 30년의 세월을 이딴 장소에서 낭비한다면 정신이 회까닥 돌아버린다. 30년은 고사하고 정신 줄을 놓아버리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을 거다.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게 과학적으로 설계된 특수한 방에 들어간 인간은 40분 이상을 참지 못했다. 환각을 보고 환청을 들으면서 종국엔 감각 소실까지 이어졌다고 했다. 이이지마 하나에도 그와 비슷한 과정을 겪다가 종국엔 완전히 망가져버릴 거다.
「밖에서 인외세계 안으로 들어오는 건 쉽다.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건 대단히 어렵다. 그렇다고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다.」
까득 어금니를 씹었다. 어떻게든 돌아간다. 포기할까보냐.
수직으로 떨어지는 손도끼를 피해 옆 구르기를 하면서 손가락으로 인을 맺었다. 개(開).
여자의 기모노 앞섶이 좌우로 벌어졌다. 속안까지 전부 풀어 헤쳐져 봉긋한 가슴이 드러났다. 술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열.어.라. 여자의 배가 위아래 방향으로 벌어졌다. 찢어진 틈새로 대장에 소장에 위까지 장기가 주룩 흘러내렸다. 아직이다. 열.어.라. 이제 여자의 등이 갈라졌다. 여자의 뒤편에 있던, 도끼질에 부서졌던 장지문까지 벌컥 열렸다. 주인을 잃은 손도끼가 바닥을 찍었다.
호흡이 거칠어졌다.
사람 모습을 한 뭔가를 고깃덩이로 갈아버렸다.
꿈에 보일까 걱정이 될 지경으로 끔찍한 몰골이었다.
그래도 갈라진 여자의 몸에서 피보라가 날리지 않아 다행이었다. 심장이 뛰지 않으면 출혈은 일어나지 않는다.
대신 생생하게 피를 쏟은 건 이이지마 하나에다. 뜨끈하고 비릿한 액체가 인중을 타고 턱 아래까지 흘러내렸다. 점막까지 부어오르는 건지 곧 숨 쉬기가 어려워졌다.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았지만 답답함을 못 견디고 코를 푸는 요령으로 킁킁거렸다. 그 즉시 쏟아지는 코피의 량이 배로 늘었다.
「이게 끝이 아니다. 지금부터가 진짜야. 소리가 들린다.」
손바닥에 피을 뱉고 손도끼를 집어 들었다.
스윽, 스윽, 다다미를 빗자루로 쓰는 소리였다. 그렇다고 누군가 빗자루로 방안을 청소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잔뜩 긴장한 채 귀를 쫑긋 세워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짐작해봤다. 도끼를 내려칠 준비를 하고 문설주 옆으로 기대어 섰다. 스윽, 스치는 소리가 한층 더 가까워졌다. 독이 오른 그녀는 발을 쿵 내딛고 선공을 시도했다.
《□□□ □◆□■■□□!》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며 천장으로부터 구렁이 몸집의 큰 뱀이 뚝 떨어졌다.
어리석은 것, 이럴 줄 알았다, 기습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대충 그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싶다.
기겁을 한 이이지마 하나에는 손목 스냅을 사용해 뱀의 머리부위를 향해 손도끼를 휘둘렀다.
아쉽게도 살을 가르는 대신 막대로 목탁 때리는 소리만 났을 뿐이다.
『이거 뭐야, 날이 없는 도끼야?!』
기술이 부족했던 건지, 아님 단순히 힘이 부족해서인지는 알 길이 없다. 어쨌거나 큰 뱀의 몸에는 생채기도 안 생겼다.
《●□□□ ○■■■, □□□□◆□□.》
어차피 해석되지 않는 말이니 귀에 담지 않았다.
보나마나 맛있게 먹어주겠다느니, 반항은 그만두라느니 식의 승자선언 발언이었을 거다.
『開 열어라!』
죽을힘을 다하면 죽는다. 이이지마 하나에는 평소에도 죽을힘을 다해 노력하라는 말을 엄청 싫어했다.
하지만 맹세코 지금만큼은 죽을힘을 다했다.
『開 열어!』
뱀의 입이 벌어졌다. 먹이를 삼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도구를 사용해 강제로 잡아 벌린 모양새가 되었다.
그것의 눈에 감정이 실렸다. 아마도 당혹감 비슷한 거였을 거다.
멈추지 않고 세 번째로 호령했다.
『開 열어라~!!』
《■■■ ◆○■■■■■■■□!!!》
멧돼지도 삼킬 수 있을 정도로 뱀의 입이 벌어졌다. 전후좌우로 부드럽게 움직임이 가능한 턱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한계는 존재한다. 결국 약간의 턱 아래 조각만 남기고 뱀 주둥이가 전부 찢어발겨졌다.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