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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술회전과 백귀야행의 설정을 대충 가져와서 붙인 오리지널 스토리입니다.


두려움에 찬 눈빛은 익숙했다. 증오로 번득이는 눈빛도 길가의 굴러다니는 돌멩이처럼 흔했다.
때로 그 둘은 한데 섞여 고죠 사토루를 매우 성가시게 만들곤 했다.
그랬다. 날파리처럼 무익하고 너무나 지루해서 거들떠보기도 귀찮은...
『이거나 먹어라!』
그래도 다짜고짜 고자 킥부터 날리고 보는 건 참신해서 헛웃음을 삼키느라 애를 먹었다.

『이러지 말고 제대로 통성명부터 하자고?』
『카제야먀 중학교 2학년 5반, 이이지마 하나에! 에잇, 이거 뭐야!』

어떻게든 거기를 발로 차고 싶은데 닿을 듯 말 듯 닿지 않았다. 가까이 가면 갈수록 느려지다 못해 정지한다는 감각이었다.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벽이 있어 거기에 가로막혔다는 느낌이 아니다. 그보다는 도라에몽 사차원 주머니 안으로 손이 빨려 들어간 쪽에 가까웠다. 우주적 크기가 있으니 뒤적거려도 도라에몽의 배꼽에는 닿지 않는다.


『적당히 해라, 중학생. 치마를 입고 다리를 무릎 높이까지 들어 올리면 정면에서 보는 사람은 황송하다고. 흰색이네. 귀여워라.』
『변태야, 눈 돌리지 못해?!』
『남성의 낭심을 예고도 없이 발차기로 날려버리려 한 주제에 너무 당당하잖아. 아무튼 내 이름은 고죠 사토루, 주술고등전문학교 1학년 재학 중이지. 저쪽은 게토 스구루. 나와 마찬가지로 같은 1학년이고. 고양이 솜방망이라고 해도 일부러 고자 킥에 맞아줄 생각 따윈 요만큼도 없으니까 그 정도로 하지 않겠어? 중학교 2학년 이이지마 하나에 양.』

무척이나 분해하며 이이지마 하나에가 다리를 내렸다.
발을 구르는 간단한 동작만으로 스가와라 미즈키에게 매달려 있던 뱀을 산산조각 낸 주술사다.
솔직히 이이지마가 그 뱀을 떼어내려 했을 적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걸 저 사람은 뻥 터뜨렸다.
더하여 간섭 주력만으로 이이지마의 몸에 처치된 봉인술식을 망가뜨렸을 정도니 이러쿵저러쿵 따질 것 없이 대단한 실력가다.
봉인술식을 만들어줬던 카이 삼촌 – 사실 삼촌이 아니다. 따지기도 뭐한 먼 혈연으로 타인이나 다를 바 없다. 몸을 의탁한 이이지마 리쓰 할아버지가 이이지마 카이를 삼촌, 삼촌 불러대니 덩달아 하나에도 호칭이 입에 붙어 삼촌으로 부를 뿐이다. - 직접적으로 타격을 입히겠다고 날린 주력도 아니고 그저 간섭 주력만으로 이게 망가질 수 있는 거냐며 눈을 부릅뜨기도 했다.
삼촌 왈, 빙하가 옆에서 두 쪽으로 깨졌는데 그때 발생한 파도로 타이타닉이 침몰한 경우라고 했다.

『몸은 괜찮아졌어? 중학생. 리바운드가 제법 심해 보였는데.』
『병 주고 약 주시네요.』
봉인술식에 금이 가면서 반동이 왔다. 구역질을 너무 해서 나중엔 내장 찌꺼기가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열도 펄펄 끓어 해열제도 네 알이나 먹어야 했다. 지금도 정상 컨디션이 아니어서 지독한 감기를 앓는 느낌이었다.
『뭐? 리바운드에 해열제를 먹어? 제정신이야?』
저주술해 때는 그럼 근육이완제냐. 머리를 길게 기른 쪽이 그게 진짜냐고 물어왔다.
그럼 어쩌라고. 비술사 일반인은 저주로 몸이 상했어도 스님 독경을 청할 짬이 되지 않는다.

『미친! 스님이 독경하는 건 장례식장에서나 하는 거고... 환장하겠군. 어이가 없어서 도대체 뭐부터 말을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쓰고 있던 짙은 색 선글라스를 절반쯤 내린 고죠 사토루가 맨눈으로 이이지마 하나에를 훑었다.
누군가 주술적인 물건을 가지고 봉인술식으로 고쳐 썼다. 저주를 받아 츠쿠모가미가 된 인형의 머리카락으로 액땜부적을 만든 것과 비슷하다.
술식을 만든 주술사는 실력이 있는 쪽임이 분명했어도 처리가 그다지 깔끔하진 않았다. 자력으로 깨우친 술사들이 보통 이런 특징을 남긴다. 술식에 문제가 생겼을 적에 그걸 어떻게 고치면 좋을지 타인에게 물어보질 못하니까 힘으로 어떻게든 억지를 써서 해결하려 한 탓에 전체 균형이 무너져 버린 거다. 그래서 이이지마 하나에의 몸에 제법 부담을 주는 중이다.
코르셋도 너무 조이면 갈비뼈가 부러져 버린다. 강제로 힘을 가해 본연의 기세를 억눌렀지만 중학생의 신체로 감당하기엔 버겁다. 그야말로 난폭하기 짝이 없는, 날 것 그대로의 봉인술식이었다.
금이 간 정도의 상황에서의 리바운드가 그 정도였으면 술식이 강제로 해제되는 날엔 육체가 오마분시 (※죄인의 사지를 말에 묶어 사방으로 달리게 하여 찢어 죽이는 형벌. 거열이라고도 한다.) 형상으로 훼손되어 몰골이 제법 끔찍할 거다.

단단히 미쳤군. 평가를 마친 고죠 사토루가 선글라스를 똑바로 고쳐 썼다.

『이제야 확신이 가네. 너, 정체가 토지신이지?』
이이지마 하나에가 입을 꾹 다문 것과 대조적으로 게토 스구루가 펄쩍 뛰었다.
『쟤가?』
1997년에 제작된 원령공주 애니메이션의 이미지 탓도 크다.
사람들은 토지신이라고 하면 거대한 사슴, 거북, 엄청난 곰 같은 동물로 상상한다.
토지신 자체가 자연을 닮은 존재니까 지상으로 현현하여 인간 앞에 모습을 드러냈을 적에 인간 아닌 모습을 취할 거라 짐작한다. 이를 다시 비꼬면, 인간은 자연과 거리가 있는 존재라는 인식이 있다는 얘기다. 자연을 개발하고 지배한다고 착각하지, 사람 또한 자연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생각은 문명을 이룬 현대인의 머리에 들어가 있지 않다. 따라서 토지신은 등산로에 출몰한 멧돼지와 비슷한 형상일 거라 이해되고 있다.

『실눈 뜨고 보지 말아줬음 하는데요. 실례라고요.』
『아니, 그 뭐랄까... 신기해서.』
『사람 맞거든?!』
그녀는 인간의 모습으로 현현한 토지신이 아니다. 어엿한 사람이다.
어렸을 적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부주의하게 신령한 무지개떡과 복숭아 신주(神酒)를 집어먹었을 뿐으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육도윤회의 굴레에 갇힌 인간임이 맞다.
『그러니 이 망할 주술사 놈아. 내 뺨을 갖고 조물거리는 거, 당장 그만둬!』

일곱 살 여아가 살던 집에서 실종되었다.
일요일 쉬는 날을 맞아 가족이 전부 집안에 있었는데 벽장에 들어가 소꿉장난을 하고 있던 아이만 감쪽같이 증발해버린 거다. 외부의 침입 흔적이 없는 상황에서의 실종이라 친부 이이지마 노부히코가 아동 살해 및 시신유기 혐의를 받았다. 그러다 6개월 후 센다이 야산에서 실종 여아가 극적으로 발견되어 사건은 흐지부지 종결되었다.

『빌어먹을 골프장 같은 걸 너무 많이 만들어서 그래.』
이이지마 하나에가 이를 갈았다.
건설사에서 무턱대고 중장비를 동원하여 산을 세 개나 깎아먹은 탓에 지역 토지신이 힘을 잃고 붕괴할 위기에 처했다. 평소에도 힘이 약했던 토지신이었다. 주령으로 전락할 것도 없이 공중분해 되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래서 궁지에 몰린 토지신은 속눈꺼풀이 아직 닫히지 않은 인간의 어린아이를 골라 유괴했다.
없는 형편에 후계자로 삼으려 했던 게 아니다.
헨젤과 그레텔을 연상하면 된다. 그러니까 과자로 집을 지어 아이를 꿰어낸 뒤에 살 찌워 잡아먹으려 했다는 얘기다. 이 경우엔 살찌울 겨를도 없이 바로 잡아먹으려 했다는 차이점이 있지만.

『인간의 어린아이에게 미약하게라도 힘을 불어넣어 신령한 옥체로 만들면 매우 맛있는 보약이 되거든. 토지신은 자기보다 약한 토지신을 잡아먹고 힘을 키워. 세대교체도 대다수 그런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야, 킁킁거리며 남의 정수리 냄새 맡지 마. 실례라고.』
『아, 미안.』
하나도 미안해하지 않으면서 고죠 사토루가 대충 대꾸했다.

선글라스를 쓰고 있으니 눈이 가려져 표정을 읽기 힘들다.
입은 웃는 모양새가 맞으나 진짜로 웃고 있는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삼촌 이이지마 카이도 항상 웃는 얼굴이었고, 아무렇지도 않게 하나에의 몸에 여러 술식을 시험했었다.
「걱정 마라. 죽지는 않아.」
원래 주술사들은 감정을 잘 제어한다. 웃는 것도 거짓, 우는 것도 거짓.
「그렇게나 고통스러워하다니. 카이 삼촌은 정말 가슴이 미어질 것 같구나, 하나에.」

주먹을 질끈 쥐고 거리를 벌렸다.
고죠 입장에선 길고양이가 츄르 앞에서 콧방귀를 뀌는 느낌이었지만 어쨌든 이이지마 하나에는 정색했다.
『돌아가. 이곳은 이미 텅 비었어. 멋대로 들쑤셔봤자 뭐 하나 나오지 않을 테니. 얌전히 돌아가.』
『필통이 있던데?』
『애들 장난이야. 아무런 주력이 없는 평범한 물건이라는 건 그쪽이 더 잘 알잖아.』
『평범한 물건이라면서 우리가 그걸 밖으로 꺼냈을 적에 제법 긴장하는 모습이던데?』
『인디애나 존스가 생각나서 그랬다. 유적지에서 황금 신상을 들어 올리면 함정 발동하는 거 몰라?』
『오.』
『그러니 썩 꺼져. 꺼지라고.』
쉭쉭 소리까지 내가며 하나에가 날파리를 쫓는 시늉을 했다.

Posted by 미야

2021/03/18 10:42 2021/03/18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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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술회전과 백귀야행의 설정을 대충 가져와서 붙인 오리지널 스토리입니다.

며칠 동안 잿빛의 나날이 계속되어 스가와라 미즈키는 우울해졌다.
『아아, 하나에 선배, 그리운 하나에 선배. 어째서 당신의 이름은 하나에인 건가요.』
창문 밖으로 상체를 내민 채 로미오와 줄리엣 대사를 흉내 냈다.
하지만 연기력이 형편없다 훈수를 두는 반 아이들은 단 한 명도 없었고, 봄바람에 맛이 갔구나 비웃지도 않았으며, 심지어 바람이 아직 쌀쌀하니까 빨리 창문 닫으라고 타박하지도 않았다. 그냥 없는 사람 취급이었다.
부아가 치솟은 마즈키는 애들 눈깔이라도 삐게 만들겠다며 교복 치마를 배꼽 위까지 들어올렸다.
안에 체육복 바지를 입고 있어서 그런지 다들 본체만체 했다. 반장 하시모토 리코가 침 삼키는 소리를 낸 동급생의 배를 주먹으로 때렸을 뿐이다.

이이지마 하나에가 감기에 걸렸다는 이유로 학교에 나오지 않은지 이틀.
그동안 미즈키가 한 말이라고는 매점에서「딸기우유랑 야끼소바 빵 주세요.」라고 한 게 전부다.
이 상태로 2학년이 되면 혀가 굳어 말 하는 법을 까먹을지도 모른다.
위기감을 느끼고 머리를 쥐어뜯었으나 당장 좋은 묘수가 떠오르는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반 아이들은 미즈키를 더욱 완벽한 투명인간으로 만들기 위해 정해진 순번에 따라 주번활동을 하는 것까지도 막았다. 칠판을 정리하고 쓰레기통을 비우는 대신 고승처럼 묵언수행이나 하라는 거였다.

『잘 됐다. 손이 부족해서 그러는데 도와주지 않겠니?』
그래서 미술 교사 다나베 고우지가 말을 걸어왔을 적에 미즈키는 깡충깡충 뛰어갔다. 시큰거리고 아프던 발목 통증이 사라져 뛰어도 괜찮았다.
『무슨 일인데요? 뭘 도와드릴까요?』
『새로 주문한 석고상을 미술실까지 옮겨야 하거든. 내가 아레스를 들 테니 너는 아그리파를 옮겨다오.』
살짝 머뭇거렸다. 소묘화 수업 교과재로 도착한 석고상 중 어떻게 생긴 게 아그리파인지 미즈키는 구분하기 어려웠다. 악티움 해전 등 여러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로마의 정치가이자 군인이었던 이에 대해 배운 적이 없었고, 외국인의 얼굴을 한 석고상은 익숙하지 않았다. 그리고 1학년은 수업시간에 수채화 물감으로 정물화를 그리는 중이다. 정물화에 사용한 대상도 원뿔모형에 정육면체 모형이 다였다.

『그쪽의 작은 걸 들어주면 된단다.』
보다 커다란 조각상을 들고 다나베 고우지가 앞장섰다.
남은 걸 들쳐 메고 미즈키가 그 뒤를 따라갔다.

미술실은 어두웠다. 낮에도 햇빛을 가리는 용도의 커튼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때로 역광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는데 방해가 된다는 게 까닭이었다.
방과 후 활동을 위해 펼쳐둔 이젤에 스케치북이 아직 치워지지 않고 올라가 있었다. 훔쳐보니 일회용 카메라로 찍은 풍경 사진을 그대로 옮겨 그리는 중이었... 미즈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옮겨 그린다는 표현에는 어폐가 있다. 사진은 녹색인데 그림은 흑백이었다. 커다란 나무들이 새카맣게 칠이 되어 있어서 굵은 가지를 사방으로 뻗고 있음에도 이미 모두 말라 죽어버렸다는 느낌이었다. 먹을 사용하여 그리는 동양화도 아닌데 왜 굳이 흑백으로 묘사한 건지 미즈키의 입장에선 이해가 안 갔다.

『고맙다. 이쪽으로 내려주겠니?』
『네.』
스케치북에서 시선을 떼고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석고상을 적당한 자리에 내려놓았다.

『그림에 흥미가 있니?』
남이 그린 그림을 오래 쳐다보고 있으니까 미술에 관심이 있는 모양이라고 오해를 받았다.
미즈키는 헤실 웃으면서 손사래를 쳤다.
『손재주가 없어서요.』
다나베 고우지가 그럼 못 쓴다고 일갈했다.
『재능이 없으니 좋아하면 안 된다는 법은 없단다. 마음이 중요한 거지 재주가 중요한 건 아니거든.』
『그런데 선생님. 저 진짜 똥손이라서요. 어느 정도냐 하면 짝꿍 얼굴 그려주기 했을 적에 왜 너 혼자만 초상화가 아니라 추상화를 그리고 있느냐는 질문을 들었을 정도라서. 남의 얼굴을 가지고 이럴 수가 있느냐며 항의도 들었고. 지금도 정물화 그리기 과제에 애 먹는 중이고... 이상하게 다들 사과 그림자를 보라색으로 칠하더라고요. 하지만 그림자는 보라색이 아니잖아요?』

두서없이 이야기를 이어가는 와중에 방이 어둡다는 느낌에 전등 스위치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어쩐지 일몰 때가 다가왔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시간상 해가 지고 있을 리는 없으니 어쩌면 날씨가 흐려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우산을 미리 챙겨 등교하지 않았기에 난처했다. 편의점에서 일회용 우산을 구입해도 되었지만 미즈키의 어머니는 아메바처럼 무성생식 하는 일회용 우산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집구석이 좁은 탓이다.

『그러게. 보라색이라니. 그럼 미즈키는 그림자를 무슨 색으로 칠했니?』
선생님이 친근함을 드러내며 물어왔다.
그런데 너무 자연스럽게 이름을 불러 되레 경계심이 들었다.
명찰을 보고 알았다고 해도 이름인 미즈키가 아니고 성인 스가와라로 부르는 게 자연스럽다.
이때 퍼뜩 든 생각이 일부 남자 교사들이 여학생을 꾀어내어 은밀한 터치를 시도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는 거였다. 격려의 의미로 어깨를 툭툭 치는 척하더니 재빨리 손을 내려 브래지어 끈을 튕겼다, 식의 이야기는 어느 학교에서나 괴담처럼 존재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다른 걸 염려해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미술 교사 다나베 고우지의 동공이 뱀의 그것처럼 세로로 길죽해졌다.

『왜 그러니?』
이제 그는 미술 교사 다나베 고우지로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석고상을 옮겨 달라 부탁을 했을 적부터 다나베 고우지였는지 확신도 없다. 그림자가... 복도에 드리워진 그건 사람 형태였던가? 자연스럽지 않다. 그렇지만 이곳은 학교다. 게다가 아직 낮이다.
『미즈키는 그림자를 어떤 색으로 칠하면 좋을지 아직 고르지 못했니?』
그의 목소리가 더욱 나긋해졌다.
미즈키는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두 사람의 거리가 지나치게 가까웠다.

『검게 칠하면 되는데. 검고, 검게 칠하려무나. 어둠은 고쿠로쿠치나와님처럼 검게 칠하면 된단다.』
『저기요, 선생님. 수업이 시작하기 전에 자리로 돌아가야 할 것 같은데요.』
『참배를 하러 갔었잖니. 길을 따라 올라갔지? 선생님은 길을 올라가는 네 모습을 봤단다.』
『참배가 아니라 청소하러 갔는데요.』
온기를 잃은 차가운 손이 미즈키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미즈키는 핸드크림 한통을 한꺼번에 전부 바른 듯한 촉감에 질겁했다.
『그래. 거기서 무엇을 보았니.』
『뭘 보긴요. 별 거 없었는데. 정 궁금하면 직접 올라가서 보면 되잖아요.』
『비밀이야? 말해주지 않을 거야? 진짜 그러기야?』
『아니, 비밀이고 자시고 간에! 놔주시겠어요?』

체육관 뒷문을 열고 언덕길을 따라 쭉 올라가면 그 끝에 검은색으로 칠을 한 온도측정대가 있다.
어린이 키 높이의 관측대다.
양문을 잡아 열면 어찌된 영문인지 온도계는 보이지 않고 대신 빨간색 필통이 있다.

『필통이군.』
고죠 사토루는 한방 거나하게 맞았다며 허탈하게 웃었다.
아무런 기척이 없어 헛수고를 했노라 이미 짐작은 했다만, 안이 텅 비어있는 것과 생뚱맞은 학용품이 놓여 있는 건 느낌이 전혀 달랐다.
세상에, 도대체 어떤 멍청이가 여기다 필통을 넣어뒀어?! 장난이라고 치기엔 악질이잖아!

『과거에 뱀 신을 모셨던 사당이라고 하지 않았어? 고죠.』
『그랬지.』
『일단 사당처럼 생기지도 않았다는 건 둘째 치고... 언제부터 필통이 뱀 신이 되었는데?』
『묻지 마.』
『자율안전 인증. 이 제품은 품질 테스트를 마쳤습니다.』
『읽지 마.』
『와, 추억 돋는데? 초등학교 시절에 이것과 비슷한 걸 썼었어. 색은 빨간색이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학교 부지로 바뀐 탓에 애들이 짓궂은 장난을 친 모양이었다. 무리도 아니다. 지장보살의 머리 위로 찹쌀떡이나 귤을 올려놓는 게 애들이니까... 슬그머니 흘러나온 (웃음을 참느라 나온) 눈물을 닦은 게토 스구루는 필통을 다시 원래의 위치로 돌려놓았다. 주인도 그 존재를 까마득히 잊어 찾으러 올 일은 없겠지만, 혹시 또 아나. 만에 하나라는 게 있다. 어엿한 사회인이 된 아저씨가 「내가 말이지~ 어렸을 때 좀 놀아서 말이야~」후렴구를 넣으면서 추억을 뒤쫓아 이곳 언덕길을 터벅터벅 올라올지도 모른다.

『빨간색인데?』
『빨간색 티셔츠를 입는 남자들도 많아. 고죠, 너도 빨간색 운동화 신잖아.』
『하지만 난 빨간색 필통은 써본 적이 없어.』
『넌 아예 학교에 가본 적이 없잖아, 인석아. 너, 신발주머니가 뭔지는 알아?』
『스구루가 날 무시하네. 나도 학교에 가본 적 있거든? 여러 번 갔었거든? 주령이 잘 나오는 곳이라서 퇴치하러 자주 갔었거든? 신발주머니가 뭔지는 모르지만... 그보다, 얏호? 오랜만이야.』
거기까지 말한 고죠 사토루는 무서운 기세로 언덕을 올라오고 있는 여자애를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Posted by 미야

2021/03/17 10:10 2021/03/17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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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술회전과 백귀야행의 설정을 대충 가져와서 붙인 오리지널 스토리입니다. 주술회전은 애니 초반부만 감상한 상황이라 원작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합니다. 원작에서 이런 부분은 없었어, 라고 해도 용서해주세요.


핸드폰을 열고 글자를 입력했다.
《고죠가 주력으로 일반인을 위협하여 꿀빵을 강탈함》
《고죠가 주력을 실어 발목을 다친 일반인 여중생을 걷어찼음》


『사실과 다르잖아! 스구루!』
삑, 소리가 나도록 문자 저장 버튼을 누른 게토 스구루는 협박에 굴하지 않고 성질을 부리고 있는 고죠 사토루를 외면했다. 솔직히 입안이 미어터지도록 꿀빵을 씹어가며「지워, 지우라고!」다그쳐봤자 하나도 안 무섭다. 그보다는 한심해 보였다.
『내 말을 무시하면 안 나눠줄 거야! 나 혼자 다 먹을 거라고!』
아직 고등학생 미성년 신분이라 특급으로 승급하지 않았을 뿐인 1급 주술사, 사실상 일본 내 최강인 무하한과 육안 술식의 소유자가 다섯 살짜리 애처럼 굴고 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게토 스구루는 뒷목을 주물렀다.
망했네, 주술계. 최강자가 저따위여선 일본의 미래는 결코 희망적이지 않다.

『애초에 나눠먹을 생각 자체가 없잖아, 고죠.』
『그야 스구루는 빵이나 케이크 같은 밀가루 음식을 안 좋아하잖아. 싫어하는 음식을 먹으라고 권하는 건 폭력이지. 위대하신 고죠 사토루님은 평화주의자라서 그런 악질적인 만행을 저지르고 싶지 않아.』
『어라. 방금 북극곰이 춥다고 난로 가져오라는 식의 이상한 말을 들은 것 같은데.』
『아무튼 제대로 카드결제 하고 왔습니다, 게토 스구루님. 강탈했다는 거, 취소해주세요.』
설탕가루를 가볍게 털어내고 조림 사과맛 꿀빵을 한 입에 우겨넣었다.
혼자 다 먹겠다는 거, 진심이다. 심지어 즙이 묻은 손가락도 핥아먹고 있다. 그리고는 두뇌의 저장 공간을 낭비해가며 전국 맛 집 리스트를 갱신 중이다. 롯폰기 어느 가게의 다쿠아즈가 맛있다느니, 산노미야 다이마루 백화점 지하에서 파는 초코렛 무스가 최고라느니, 디즈니랜드에서 미키마우스를 만난 어린아이처럼 흥분하여 난리도 아니다. 먹고 있는 꿀빵도 제법 마음에 들었는지 이참에 허니 시나몬도 추가로 사 먹어봐야겠다고 다짐을 하고 있다. 신칸센을 타고 교토로 돌아갈 적에 기차 안에서 (처)먹을 작정인가 보다.

『아닌데.』
여전히 실실 웃는 모습이지만 분위기가 달라졌다.
여기서 가능한 줄거리는 둘.
① 오로보로당 꿀빵이 아니라 다른 걸 사서 기차 안에서 먹는다. 예를 들자면 JR 센다이역점 2층 개찰구 앞에서 파는 키쿠후쿠. 완두콩 크림 추천.
② 교토로 돌아가는 건 나중이다.
게토 스구루의 판단으로는 후자다.

『어제까지만 해도 대충 시늉만 내다가 적당히 눈치를 봐서 학교로 돌아간다고 하지 않았던가.』
『재밌는 걸 찾았는데 이대로 돌아가면 아깝지.』
『5급 주령화 된 부해가 사람에게 들러붙은 게 그렇게 신기했었어?』
『그쪽이 아니라 허리 구부리고 잔뜩 헛구역질한 쪽.』
『아, 흥미가 간 건 그쪽이었나.』

게토 스구루가 흐음, 이러고 숨을 길게 내쉬었다.
『느낌이 다소 이상하긴 했지만 그 정도면 정상 범주 아니야? 동네가 동네인 만큼 어느 정도 주력이 뒤틀린 건 어쩔 수 없지 않나. 일으켜 세워주면서 봤는데 손목에 구슬 팔찌 형태의 주물도 차고 있었어. 싸구려 부적 같은 게 아니고 주술사가 만든 진짜 물건이더라. 추측하자면 부해에 닿지 않으려고 만든 거겠지. 때로 부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조사하면 금방 나올 거야.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창에게 알아보라고 지시하면 되잖아, 고죠. 이게 네가 직접 나설 일이야? 여중생에게 양갱 취급받았다고 그새 억하심정이라도 생겼어?』
『슬퍼. 날 그렇게 속 좁은 남자로 보았던 거야? 스구루.』
『그 많은 꿀빵이 한꺼번에 다 들어가는 걸 보면 속이 작은 건 아니라고 생각해. 너는 느끼하지도 않냐.』
『하나도 안 느끼해. 맛있기만 하구먼.』
고죠가 별안간 웃음기를 걷어내고 표정을 달리했다.
『그리고 스구루, 창에게 조사를 미루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봐.』

어디 한 번 계속해 보라며 게토 스구루는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이유는?』
『비유하자면 이런 거야. 현대국가에서 살고 있는 나는 코카콜라 빈병을 보면 재활용 쓰레기, 이러고 주워서 쓰레기통에 넣겠지. 그런데 아프리카 사막지대에 사는 원시 부족민이 우연히 모래에 파묻혀있던 코카콜라 병을 봤다고 치자. 문명이라는 걸 접해본 적이 없는 그는 이게 유리병이라는 것도 모를 테고, 코카콜라라는 건 더더욱 몰라. 태어나 코카콜라를 마셔본 적이 없으니까. 입구에 대고 후후 숨을 불었다가 소리를 내는 악기라고 단단히 오해를 하고 집으로 가져가 보물로 삼겠지.』
『사막에 쓰레기 버린 놈, 죽어라.』
『아름다운 지구를 후손에게 물려주자! 분리수거 철저히!』
사이좋게 구호를 외친 뒤, 두 사람은 언제 그랬느냐며 다시 본론으로 돌아왔다.

『이해했어. 요컨대 코카콜라를 먼저 마셔봐야 한다는 거군.』
『대충 그런 셈이지.』
『그렇다면 네 녀석의 판단은? 육안(六眼)으로 봤을 거 아냐.』
『봤지.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창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는 거잖아. 걔, 인간 아닌 것이 미묘하게 섞였더라고. 아주 살짝.』
『뭐?』
『그렇게 정색하고 놀랄 일은 아니야, 스구루. 큰 접시에 날치 알 하나 정도로 섞였으니까 네가 눈치를 채지 못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고 봐.』
『날치 알이든, 가쓰오부시든, 인간 아닌 거라며. 그게 뭐였는데.』
『미안, 스구루. 나도 아직은 잘 몰라. 나 역시 코카콜라 빈병을 처음 보는 아프리카 부족민 심정이라니까. 주워서 쓰레기통에 버리면 좋을지, 집에 가져가 보물로 삼을지 판단이 서지 않아.』

저주와 동화한 인간은 주술 규정에 따라 사형을 집행한다. 예외는 없다.
그 저주가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재능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얼른 잡아다가 주술사로 키워야 한다. 가뜩이나 인력부족으로 허덕이는 주술계다.

『사형이라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구나, 너.』
『어라, 그러고 보니 스구루는 주술고전 입학식 날 야가 선생님 앞에서「주령은 얼마든지 잡아 족칠 수 있어요, 하지만 아직 인간은 죽이기 싫어요. 주령을 다루는 인간이라고 해도요.」라고 말 했었지?』
『야가 쌤에게만 말한 걸 네가 왜 알고 있는 건데.』
『음... 그건. 내가 1학년 반장이니까?.』
『주술고전 1학년생이 너랑 나, 이에이리 쇼코까지 딱 3명인데 누가 반장이야.』
『에잉, 반장이 하고 싶었으면 진작 말을 하지. 속상하면 부반장이라도 할래?』
『이야기의 논점이 빗나가고 있잖아, 고죠.』

게토 스구루가 진심으로 화를 내려고 했기 때문에 고죠 사토루는 약삭빠르게 화제를 바꿨다.
『있잖아~ 타락한 신을 조복하려면 스구루는 제일 괜찮은 방법이 뭐라고 생각해?』
『야가 선생님이 나불나불 거렸냐고. 아님 엿들었어?』
쉽게 안 넘어오네. 한숨이 푹 나왔다.
『나는 육안(六眼안)의 소유자이지 육이(六耳)의 소유자가 아니야. 엿듣는 짓은 하지 않아.』
『호오... 그렇다면 야가 마사미치 그 양반이 나불거렸다는 거네.』
『교사로서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 우리는 생과 사의 경계선을 항상 왔다 갔다 하고 있잖아. 상대방이 사람이라서 죽일 수 없다, 일찍이 단정지어버리면 목숨이 아홉 개라도 부족할 테지.』
팡, 소리가 나도록 게토 스구루의 어깨를 때렸다.
온전히 손목 힘으로만 때렸기 때문에 아플 일은 없겠지만 게토 스구루의 표정은 잔뜩 일그러진 채였다.

『각설하고, 다시 질문할게. 타락한 신을 조복하려면 스구루는 제일 괜찮은 방법이 뭐라고 생각해?』
『원자폭탄.』
『어이. 지금 화가 난 상태라는 건 알겠는데 대충 대답하진 말아주겠어?』
『대충 대답한 거 아니야, 고죠. 타락한 신이면 특급 오브 더 특급이잖아. 그걸 무슨 재주로 잡아. 네가 가진 무하한 술식이면 가능하겠지만 내 경우엔 비벼보지도 못 한다고. 1초도 되지 않아 머리가 몸뚱이에서 떨어져 나갈 거다. 1초 컷이야.』
『그렇군. 무하한이 없으면 1초 컷인가...』
그가 턱을 어루만지며 잠시 뜸을 들였다.

『혹시 스구루는 이이제이(以夷制夷)라는 한자성어의 뜻이 뭔지 알아?』
『오랑캐로 오랑캐를 잡는다는 의미잖아.』
『바로 그거야. 특급으로 특급을 잡는다는 의미지!』
고죠 사토루가 예고도 없이 불쑥 얼굴을 들이밀었다.
짙은 색의 선글라스가 가로막고 있었지만 게토 스구루는 육안의 파란 눈동자가 직접 닿았다는 느낌에 반사적으로 상체를 뒤로 물렸다.

Posted by 미야

2021/03/15 16:51 2021/03/15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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