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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제멋대로냐 하면 유치장을 공짜 여관방 취급하더니 이제는 또 식당 취급을 했다.
『사람 사는게 전부 밥 먹자고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자, 자... 그러지 마시고.』
그리고는 간도 쓸개도 전부 내던지고 손바닥을 비벼가며 경비대소 내 간이주방을 빌려 달라 간청했다.
터무니없는, 말도 안 되는 요청이었다. 변호사를 불러달라면 또 모를까.
심각한 절차 위반이기에 루안은 굳은 표정으로 거절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에이, 괜찮다니까요. 그러지 마시고 여기 앉으세요. 어이, 텐. 물부터 끓여야지?』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불을 피운 화덕에 냄비를 올리고 있었다. 어째서?

『나보고 지금 물 끓이라고 했냐. 날 아주 허드레 일꾼으로 취급해라, 이 아저씨야.』
『그걸로 내 머리를 치려고? 들고 있는 프라이팬은 내려놔, 텐. 대신 칼을 들고 이거나 썰도록. 양파다.』
『감자가 먼저잖아. 분명 그렇게 배웠어.』
『채소를 다듬는 일에 순서가 어딨누. 그냥 한꺼번에 썰어도 되지. 그건 그렇고... 반죽을 해야 할텐데. 여기에 주둥이가 넓은 적당한 그릇은 있고. 죄송합니다, 나리. 밀가루는 어디에 있습니까?』
『아마 그 아래 칸에 있을 거요.』
『여기요? 아! 찾았다.』

밥을 해서 먹자는 제안에 왜 훌렁 넘어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루안은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기엔 자신의 몸뚱이가 너무나 피곤하다고 여겼다.
동료인 이슨은 나흘 전에 체력고갈로 쓰러졌고, 그 역시 번 아웃의 신체 신호가 잡히고 있었다. 복통이 심했고 건조증으로 눈이 쏘는 것처럼 아팠다. 두통도 심했다. 서서 소변을 누면서 졸거나, 상관에게 경례를 붙인다면서 멍하니 쳐다보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제대로 잠을 청한 건 보름 전이니 무리도 아니다. 사람은 정기적으로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데 3교대 근무가 꼬이면서 낮에 퇴근했다가 - 오전에 퇴근했다가 - 새벽에 퇴근하는 등 엉망진창이다.
거기다 일은 미쳤다는 표현이 딱 맞게끔 폭주하고 있다. 사방에서 주정뱅이가 날뛰었고, 소매치기가 창궐했으며, 골목에서 코를 찌르는 악취가 난다는 식의 민원이 300% 폭증했다.
5일만 더 참으면 축제가 끝나 기다리던 천국이 다가온다며 주문을 외워보지만.
알게 뭐냐, 지금 당장 죽을 맛이다.
그러니 유치장에서 꺼내주면 칼국수를 끓여주겠다는 꼬임에 이다지도 쉽게 넘어가는 것이다.

냄새를 맡고 나서야 루안은 배가 무진장 고팠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야근을 하는 내내 공복이었다.
루안은 군침을 삼키며 밀가루 반죽을 손바닥으로 탁탁 치대고 있는 사내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런데 칼국수라는 건 뭡니까.』
『아, 칼국수요. 먹어보면 조개로 국물을 낸 에조몰라와 비슷하다 생각하실 겁니다, 나리. 사실 그보다는 좀 담백합니다. 아무래도 포도주 없이 물만 넣고 끓인 거라서요. 그래도 뒷맛이 개운하죠.』
『방금 주머니에서 꺼낸 그 가루는 또 뭐죠?』
『이쪽에 있는 텐이 개인적으로 만든 건조시킨 양념입니다. 멸치와 다시마, 오징어, 쇠고기, 고추, 홍당무 외 기타 여러 가지를 섞어 만든 거지요. 넣고 물을 끓이기만 하면 되서 빠른 시간에 조리를 가능하게 해줍니다. 대신 짭니다. 그러니 조금만 넣어야 합니... 앗, 너무 넣었다! 물, 물.』
『의외로 냄새가 진하네요. 조개 냄새도 나고.』
여행자라 그런지 생소한 것들을 가지고 있었다. 익히 알고 있던 건조 육포와는 달랐다. 루안은 원래의 모양을 고스란히 간직한 건조채소라는 걸 신기하게 여기며 손으로도 직접 만져보았다. 시험 삼아 입에 넣고 씹어봤더니 이가 부러질 지경으로 딱딱했다. 하는 수 없어 손바닥을 대어 입안에 든 내용물을 도로 뱉었는데 이걸 보고 국자로 냄비를 휘휘 젓던 사내가 숨죽여 웃었다.
『아무래도 수분이 많은 신선한 채소를 먹는게 가장 좋죠. 저희도 여행 중이 아니면 이런 건 먹지 않습니다.』
간을 보기 위함인지 한 국자 떠서 국물을 입에 담았다.
『하윽. 하응.』
좋다는 건가, 끔찍하다는 건가.
진저리치는 것도 그렇고 음식의 맛을 보는 것치곤 신음소리가 어째 요상했다.
『어디서 성희롱이야. 반죽이나 썰어, 이 새끼야.』
얼굴 위로 핏기가 오른 검은 머리카락의 소년이 보다 못해 타박했다.

『면도 다 익었으니 슬슬 먹어볼까요.』
『아아, 깍두기가 먹고 싶다...』
『이상한 헛소리 하지 말고 너도 자리에 앉아라, 텐.』
『헛소리라니. 자고로 칼국수엔 깍두기가 진리란 말이다.』
『그런 진리, 소인은 모른다오. 자, 여기... 한 그릇 받으세요, 나리. 혀를 데울 수 있으니 조심하시고요.』
『확실히 뜨겁군요.』
『이건 후후 불면서 먹어야 제 맛입니다.』
뜨끈하니 국물이 죽여줬다.
피곤에 찌든 루안의 표정이 후루룩 소리와 같이하여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맛을 보자 입안에서 바다 향이 맴돌았다.
하여 이 순간만큼은 즉석 재판을 기다리는 피의자를 멋대로 꺼내왔다는 근심 걱정은 죄다 날아간 상태였다.

『어, 좋다... 그런데 두 분은 어느 지방에서 오셨습니까?』
한 그릇 덜어 염치없이 얻어먹으면서 루안이 지나가는 말투로 질문을 툭 던졌다.
옷차림으로 보자면 두 사람 다 언뜻 제국인처럼 보이기는 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 루안은 우물 안의 개구리여서 실제로 제국에서 온 여행자를 두 눈으로 본 적은 없다. 다만「이럴 것이다」라는 추측만이 있어 거기에 대입하여 동대륙 최강 제국 란데가스의 인상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은 그 인상에 부합했다.
뭐, 두꺼운 철면피와 뻔뻔함이 부합했다는 건 아니고.
그릇을 양손으로 쥐고 내용물을 호록 들이마시며 눈을 감았다.
이런 상황에선 누구나 비굴할 정도로 저자세로 나가기 쉬운데 그러지 않았다는 점이 호기로웠다고 할까.

『제국에서 오셨나요.』
『제국이라... 분명 란데가스를 거쳐서 오긴 했지요.』
의외로 사내는 말꼬리를 흐렸다. 그래봤자 신분증을 꺼내 확인하면 금방 알 수 있는데 어디서 왔다는 걸 굳이 숨기려 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느새 눈빛을 날카롭게 만든 루안은 불심검문에 임하듯 오남이라 불리우는 사내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러고 보니 오남이라는 이름도 영 이상하다. 다섯 번째 아들이라. 그렇다면 형님들의 이름은 각각 장남과 차남, 삼남에 사남이라는 건가. 부모의 작명 센스가 어쩐지 직무 유기를 연상시킨다. 게다가 아들만 다섯!

오남이 먹던 그릇을 조신하게 무릎 아래로 내려놓고 쓰게 웃었다.
『아, 그게 말입니다. 저는 장사치라서요.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거든요.』
『장사?』
『주요 품목은 고급 여성복이고 최고급 사라사 비단을 취급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게걸스럽게 칼국수를 흡입하고 있던 소년이 씹던 걸 채 삼키지도 않고 대화에 끼어들었다.
『드레스 말고도 새카맣게 썩은 양심도 팔고 있지.』
이런 모습을 접하니 왕자라는 첫인상은 확실히 실수다. 쭈그리고 앉아 오른손을 써서 복스럽게 먹는 모습은 이른 오후 새참을 먹는 농부의 자식 같았다.

『인석아. 그렇게 말하면 내가 천하에 둘도 없는 악덕 상인 같잖아.』
『어쭈구리? 당신, 천하에 둘도 없는 악덕 상인 맞거든?』
『아하하하, 나리. 이 녀석이 지금 뭘 잘못 먹었나 봅니다. 이 녀석이 하는 말은 듣지 마세요.』
오남은 태영의 옆구리를 찌르며 눈을 흘겼다.
『그렇게 말하면 오해를 받잖니. 쉭쉭!』
그리고 자세를 바로잡고 서둘러 자신을 해명했다.
『여성복 전문의 오남상회 상주 오남이라 합니다. 비타아른 공왕국에서 8년만에 성대한 축제가 열린다고 소문이 자자한지라 모처럼 꽃구경도 하고 시장 조사도 할 겸 와봤습니다.』

Posted by 미야

2015/09/16 13:06 2015/09/16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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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편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환생물에 괴기물, BL 요소까지 양념으로 팍팍 뿌려댄 자급자족용 습작입니다. 미려의 색의 배경이 서대륙이라면, 이쪽의 배경은 동대륙입니다. 뒤집혀진 세계라서 이 세계에선 남극대륙이 북쪽에 위치합니다. 설정은 구멍 투성이니 간혹 내용이 어긋나도 무어라 하지 말 것. ※


『진정하시죠. 마을 안에서 검을 뽑는 건 경범죄가 아니라 중죄에 해당합니다. 그러니 검집에서 지금 당장 손을 떼었으면 합니다. 듣고 있습니까, 외지인 분?』
교대 시간까지 이제 2시간밖에 남지 않았는데 여전히 사건 사고의 연속이다. 이러면 근무지로 돌아가 업무보고서를 작성할 시간적 여유가 없게 된다.
비타아른 공왕국의 푸른색 제복을 입은 사내가 그새 소동을 인지했는지 피곤함을 감추지도 않은 채 골목에서 달려 나왔다.
쪽으로 물을 들인 제복만큼이나 안색이 퍼렇다. 그 또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것 같았다. 피부가 거칠었고 입술 부위엔 마른버짐이 피었다. 그리고 지급된 제복이 체격에 맞지 않아 헐렁했다. 왕성에서 물품 지급을 대충 했을 리는 없으니 다시 말해 최근 들어 급속히 살이 빠졌음을 의미한다.

『여어, 고생이 많으십니다.』
남의 일처럼 얘기하며 오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꿈나라에서 티켓을 끊어 귀환하기엔 제법 이른 시각인데다 어딘가에 있을 푹신한 침대를 꿈꾸고 있어 아무래도 판단력이 엉망이었다.
『넋 놓고 있지 말고 당신도 어서 뭔가를 입으십시오.』
제복을 입은 자가 훤히 드러난 남정네의 굵은 허벅지를 보더니 고슴도치처럼 짜증을 냈다.
『어, 그게.』
『시종이면 시종답게 굴어요. 가방보다는 당신이 모시는 도련님이 우선 아닙니까. 제대로 옷을 갖춰 입고 모시는 도련님을 진정시키도록 해요.』
그러면서 길바닥에 떨어진 검정색의 바지를 주워 오남에게로 아무렇게나 던졌다.

아무래도 김가의 태영이 검을 가졌으니 그쪽이 윗사람이라고 판단한 모양이다.
아니, 것보다는 텐의 외모 탓일지도 모른다. 좇밥에 씨발 타령이 입버릇이라는 단점이 있지만 입을 얌전히 다물고 있는 소년은 대단히 곱상한 외모의 소유자다. 게다가 동대륙에서는 흔치 않은 검정색의 머리카락과 검은 눈동자는 매우 신비스럽게 보인다. 여기다 목 바로 아래까지 단추를 전부 채우는 강박증까지 더해져 그 첫인상은 상류층 교육을 받은 먼 이국의 왕자처럼 보인다. 더 자세하게 얘기하자면 불손한 자의 목을 당장 베겠다 고함을 지르며 검집으로 손을 내린 화난 왕자님처럼 보인다.
이와 비교하여 잔뜩 삐친 더벅머리인데다, 하의실종인 아저씨인 오남은 영 궁색하기 그지없다.

『텐.』
『태영이다. 남의 이름을 멋대로 뜯어 고치지 말라고.』
『발음하기 힘들어서.』
『혓바닥에 기름 발라. 그럼 나불거리기 한층 쉬워질 거다.』
『어쨌거나, 텐.』
『아아, 씨발! 정신 사납게 왜 자꾸 그래! 그것도 틀린 이름으로 부르고!』
『시내 한 복판에서 무기를 꺼내면 경범죄가 아니라 중죄래. 경비원 아저씨가 지금 널 사납게 노려보고 있다.』
벌게진 태영의 눈이 옆으로 휙 돌아갔다.
『중죄는 내가 아니라 저놈들이 저질렀지. 사흘 치 요금을 선불로 냈는데 다음날 아침에 얼굴색 싹 바꾸고 내쫓는다는게 말이 돼?! 완전히 사기꾼들이야. 저질이야! 미사일로 날려버려야 할 악의 축이야!』
『미사일?』
『넌 몰라도 돼. 넘어가.』

항의하며 목청을 돋구어봤자 이미 아무도 듣고 있지 않다.
8년마다 돌아오는 성대한 축제를 앞두고 바가지 상술은 이미 만성화가 되어버렸다. 이 정도쯤은 애교 아닐까 - 늘어져라 하품을 하며 오남은 손등으로 눈가를 비볐다. 짐을 빼앗긴 것도 아니고, 주먹으로 얻어맞지도 않았다. 약속 받은 아침 식사 풀 서비스가 공수표로 끝난 부분이 마음에 걸렸으나 아침 식사 요금은 후불이니 따지고 보면 손해를 본 것도 아니다. 그래서 입맛을 쩝쩝 다신 그는 사기꾼을 너그럽게 용서하기로 결정했다.

죄를 사한다는 의미로 허공에 손가락으로 무한의 여덟 팔 자를 그리자 태영이 발끈했다.
『네가 인산토리아의 사제라도 되냐?! 뭘 네 맘대로 용서를 하고 자시고 지랄이야.』
『그럼 어쩔건데. 문을 부수고 한바탕 난동을 피우겠다고?』
『환불은 제대로 받아야 할 거 아냐.』
따지고 묻겠다며 팔뚝을 걷어붙인다.
『대화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기꺼이 폭력으로 설득하겠어.』
그래서 오남은 경비원에게 느릿느릿 눈을 돌렸다.
그게 도움을 구하는 시선이 아니라서 경비원 루안은 그 점이 이상하다 여겼다.
『들으셨죠? 폭력으로 설득한다는데요.』
『음...』
『그러니 체포하시죠.』
『지금 뭐라고?』
『텐을 체포하시라고요. 체구가 작다고 안심하면 안 됩니다. 보기에는 저래도 제법 위험한 녀석입니다. 한다고 하면 반드시 해요. 포기라는 걸 모르고 적당히 라는 것 역시 모르는 사내입니다. 그러니 여관집 주인의 멱살이 쥐어뜯기기 전에 녀석을 체포하도록 해요. 지금 안 말리면 칼부림이 날 수도 있어요.』
졸음이 잔뜩 섞인 목소리로 사내가 주장했다.
『칼부림은 안 좋잖아요, 그렇죠? 그러니 잡아가요.』
경비원은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너, 너, 너... 는 나를 그딴 식으로... 팔아 먹냐~!! 이 망할 장사꾼아!』
대신 이국의 왕자처럼 생긴 자가 망연자실하여 울부짖었다.

루안은 이제 위장병을 확신했다. 전날 술을 마신 것도 아닌데 속이 쓰리고 아팠다. 찌릿거리는 부위를 손으로 압박하여 누르자 신물이 올라왔다. 망할 놈의 8년 축제 같으니. 속으로 있는 말, 없는 말 저주를 퍼부으며 자청하여 체포당한 두 사람을 시린 눈으로 관찰했다.
첫 인상은 축제를 즐기러 온 부잣집 도련님과 거기에 따라붙은 얼뜨기 시종처럼 보였다. 허나 두 사람의 대화를 가만 듣고 있자니 이미지가 뒤틀렸다. 처음에 그가 시종이라 생각한 서른 초반의 사내는 아무렇지도 않게 반말을 썼다. 아직 십대인 것이 분명한 소년 역시 반말을 썼다. 도련님과 시종이 서로 반말을 주고받을 리 없으니 처음 세웠던 가설은 포기다. 하지만 둘이 친구인 것도 아니다. 단순히 동료라고 하기엔 분위기가 묘하다.
책상 위로 일지를 탁 소리 나게끔 내려놓으며 루안은 골똘히 생각했다.
제법 벌어지는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 동등하게 대화 - 욕설 포함 - 를 할 수 있는 관계라는 건 뭘까.
『......』
하긴, 유치장 철창 안에 들어가 있으면 모두가 평등하다. 거지와 대지주 나리도 모두 사이좋게 철컹철컹.

『이 씨발 놈아. 너 때문에 갇혔잖아.』
검은머리의 총각이 분노했다.
『진정해, 텐. 지금도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고. 혈압 오르면 위험하지 않아?』
『여기서 진정을 어떻게 할 수가 있어! 응?!』
그리고 철장을 움켜쥐고 오로지 힘으로만 좌우로 벌리려 했다. 보고서를 쓰는 척하며 실상은 유치장 속의 그들을 관찰하고 있었던 루안은 속으로 실소를 금치 못했다. 구리처럼 무른 금속도 아닌 굵은 쇠붙이를 손으로 어째보겠다고 덤비다니. 보다 못한 술주정뱅이 하나가 끼어들어 죄가 없는(?) 쇠창살은 가만히 내버려두라고 야단했다.

휘어지지 않는 철장 사이로 얼굴을 억지로 들이밀며 소년이 야단했다.
『죄도 없는데 갇혔어! 우리를 등쳐먹은 여관 주인은 살판이 났고. 이 세상의 정의 구현은 어떻게 된 거야.』
『정의 구현은 너 님이 신경을 쓸 부분이 아니야. 네 의무는 그런게 아니라고. 어쨌든 공짜로 방이 하나 생겼으니 좋군. 분위기는 딱딱해도 생각보다 청결해.』
『너는 여기 유치장이 무슨 특급 여관이라도 된다고 생각하나 보지? 오남.』
『비교할 대상은 아니지만 이곳도 그리 나쁘진 않아. 보라고, 침대도 있다. 게다가 사용료는 공짜!』
『그렇게 마음에 들면 100만년동안 여기서 살앗!』
『내 수명이 100만년이나 되는 것이 아니라서 그건 무리일세. 것보다 슬슬 배가 고픈데.』
『야!』
『뭐 먹을 거 없을까?』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제멋대로인 남자다.

Posted by 미야

2015/09/15 13:15 2015/09/15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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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에 미친 바다가 마구잡이로 덤벼드는 꿈을 꾸었다.
그것은 흡사 거대한 벽처럼 보였다. 하늘을 가리는, 단단하고 거대한 물로 이루어진 벽.
밀려드는 물보다 더 높은 산은 존재하지 않았다. 언덕 위에 세워진 왕성의 지붕도 그보다는 훨씬 낮았다.

활을 접은 궁사들이 파랗게 질려 무어라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한다.
해가 지고 있는 것도 아닌데 주변이 어두컴컴해진다.
바다가 굉음을 내며 심해에서 두 다리로 일어난다. 사람들은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쪽을 돌아보곤 눈을 휘둥글 떠보인다. - 해일이다.

종말을 예감하고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넋이 절반은 나가 있다.
「저런 것과 어떻게 싸우라고. 해도 해도 너무하잖아.」
그것으로 끝이다. 집채만한 무거운 돌로 가슴을 후려치는 통증을 느끼고 시야는 이내 검게 변한다. 고요함과 적막이 그 뒤를 따르고 뒤죽박죽이던 세계는 하늘의 주먹으로 주물러져 기괴한 덩어리로 뭉치기 시작한다. 사람들도, 나무도, 새도, 짐승도 전부 한 덩어리가 되어간다. 그 위로 쏟아지는 건 몰타르처럼 걸죽해진 진흙으로 그 무게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렇게 살아있던 것 전부를 쓸어버린 뒤에야 신왕의 죽음으로 촉발된 재해는 마침내 가라앉았다.

『으으.』
파묻혀진 석화된 뼈들의 무게에 압사당하며 이불을 머리 위로 끌어당겼다.
『다들 그만혀. 아직 졸리단 말이야.』
누군가 방문을 두들기고 있다. 고함도 질러대는 것 같다. 좋지 않은 꿈을 꾼 탓에 소동을 무시하고 싶었지만 사나운 기척에 반응하여 서서히 정신이 말똥말똥해졌다. 짜증을 내며 베개를 끌어안았어도 잠자리는 더 이상 달콤하지 않다. 욕지기 비슷한 걸 중얼거리며 누운 자세를 바꿨다.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한층 선명해져「손님, 빨리 방을 빼주셔야죠!」내지는「지금 당장 정리를 해주시지 않으면 곤란하다고!」식의 내용으로 떠들어대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반말과 존댓말이 반쯤 섞였다. 외치는 목소리도 여자와 남자가 반반씩이다.

방을 빼라니. 분명 사흘치 선불이었는데. 오남은 속으로 이상하다 여겼다.
「충분히 경고했다고요. 그럼 문을 열겠수다.」
크게 숨을 몰아쉬며 베개에서 얼굴을 뗀 순간 잠가두었던 문을 따고 여관 주인이 직접 등장했다.
허락도 없이 방안에 들어온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데 뱃가죽에 기름 낀 남자는 옷장을 열어 짐 가방을 끄집어냈다. 그리고 혹시라도 떨어져 있을 옷가지를 찾아 서랍도 멋대로 열었다.
『거 참... 무슨 일이오. 불이라도 난 게요, 아님 지난 밤 도둑이라도 들었소.』
『손님? 아침 7시가 넘었습니다.』
『그렇다는 건 둘 다 아니라는 거군.』
이제 겨우 아침 7시다. 지끈거리는 두통을 느끼며 오남은 다시 푹신거리는 베개에 머리를 박았다.
『그럼 용건은 없는 거지? 다들 썩 나가. 나는 저혈압이란 말이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나가는 건 그쪽이우.』
『응?』
『시간이 되었으니 방을 빼달라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 듣겠수. 아침 7시라니까!』

1층 복도에서도 비슷한 내용으로 이미 싸움이 붙었다.
『사흘의 방값을 미리 계산했잖아!』
『그건 댁의 착각이지. 숙박부에는 하루라고 적혀져 있는 걸. 봐요, 여기에. 이렇게.』
『이 좇밥아, 그쪽에서 멋대로 숫자를 지우고 고쳐 썼잖아!』
『허어, 그 무슨 실례되는 말씀을. 실수로 생긴 얼룩일 뿐이오. 펜촉이 많이 낡았거든.』
『이 사기꾼이! 사흘치 방값을 이미 다 받아놓고서!』
『글쎄, 그게 하루치였다니까.』
『뭐야?! 이거 완전 도둑놈이잖아!』
『거 듣기 민망하구랴. 아까는 사기꾼이라더니 이번엔 나더러 도둑이라는 거요?』

목청이 그다지 크지 않은 김가의 태영이 악을 쓰고 있다.
끼걱대며 의자가 바닥을 긁는 소음도 들렸다. 약간의 몸싸움도 벌어졌다는 얘기다.
그제야 오남은 졸린 머리로 돌아가는 사정이 약간만 이해되었다.
「이거, 이거.」
바가지 상술에 도가 튼 여관 주인이 요금을 한 푼이라도 더 챙기고 싶은 욕심에 정식으로 계산을 치룬 투숙객을 제멋대로 내쫓기에 들어갔다.
최근 주변으로 유행하는 수법으로 일명「장부 조작」이다. 사흘 치나 일주일 치 방 값을 선불로 내면 5% 깎아준다고 속이곤 그 다음날엔 두꺼운 낯짝으로 딱 하루치만 계산하지 않았느냐 우기며 나가라고 하는 것이다.
세상물정에 어두운 젊은이들만 피해를 입는 것이 아니다. 이곳의 상인들은 전장에서 뼈가 굵은 용병보다 더 악마 같아서 뺨에 십자 흉터가 진 근육질의 사내조차 파자마 차림새로 쫓아버린다.

수법에 당한 검은 머리카락의 청년이 삿대질을 하며 화를 냈다.
『네놈들~!! 망할 것들~!!』
핏대를 세우며 억울함을 토로한들 이미 틀렸다. 얼씨구나 해가며 가게 종업원들이 가방이니 외투니 하는 것들을 길가로 던지기 시작했다. 주인이 악마라면 그들은 파리떼다. 양말과 구두가 마지막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마무리로는 예쁜 아가씨가 용용 죽겠지 표정을 지으며 침대 시트까지 걷어 탈탈 털었다.

『오호라, 텐이 당했으니 그럼 다음은 내 순서라는 거군.』
졸린 얼굴로 머리를 긁고 있자니 여관 주인이 헤헤 소리를 내며 손바닥을 비볐다.
『역시 이해가 빠르십니다. 그럼 밖으로 모시겠습니다. 에스겐? 가방을 들어라.』
『어... 기다려. 나 아직 옷도 안 입었는데.』
『의복은 나가서 찬찬히 입으시면 됩니다. 구두는 여기. 베개는 침대 위로 내려놓으시고요.』
『거 무지 야박하구먼.』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팁은 10세겔입니다.』
『여기서 팁을 왜 받아!』
버럭거려 보았자 살아있는 곰의 생 껍질까지도 벗겨낸다는 비타아른의 타고난 돈귀신 - 요괴들은 가차 없었다.
거기다 이미 다음 희생자가 성격도 급하게 방이 비어지길 기다리며 밖에 서있었다.
『......』
물론 그 본인은 또다른 희생자가 될 거라 전혀 생각하지 않겠지만 - 레이스로 장식된 부채를 쥔 소녀가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 나이는 열 여섯, 아니면 열 일곱...? 쳐다보는 오남의 시선을 알아차렸는지 기교를 부려가며 부채를 펼쳐 제 얼굴을 가렸다. 그러나 후후 웃는 소리만큼은 부채로 가려지지 않아 짙게 뿌려진 고약한 향수처럼 공중을 맴돌았다. 덕분에 그 웃음소리를 듣자 악취를 맡기라도 한 것처럼 어쩐지 코를 쥐고 싶어졌다.

『아가씨, 그럼 방을 곧 준비하여 드리겠습니다. 이 남자는 곧 떠날 겁니다.』
『고생이 많으시네요.』
소녀가 은전이 든 작은 주머니를 들어 공손히 내밀어진 여관 주인의 손에 얹었다.

당황하여 부정하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이봐, 난 아직 방을 비어주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에스겐? 뭐하냐. 손님 가신다.』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출구까지 안내해드릴게요.』
『망할 것들아~!! 어이! 밀지 마!, 어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 셔츠 한 장만 걸친 흉한 모양새로 길거리 한 가운데 서있었다.
다행히 슬리퍼를 신어 맨발은 아니었는데 그래봤자 바지를 입지 않았으니 경범죄 처벌 대상이었다.
『다 나왓! 베어버리겠다~!!』
아울러 마을 한 복판에서 칼부림을 선언한 김가의 태영 또한 마찬가지로 경범죄 처벌 대상이다.

셔츠에 속옷 차림새로 가방 위에 엉거주춤 앉은 오남은 잔뜩 흥분한 일행이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가는 모습을 졸린 눈으로 지켜보았다. 말려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저혈압인 관계로 찢어져라 하품만 터져 나왔다.

Posted by 미야

2015/09/14 15:14 2015/09/14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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