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제멋대로냐 하면 유치장을 공짜 여관방 취급하더니 이제는 또 식당 취급을 했다.
『사람 사는게 전부 밥 먹자고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자, 자... 그러지 마시고.』
그리고는 간도 쓸개도 전부 내던지고 손바닥을 비벼가며 경비대소 내 간이주방을 빌려 달라 간청했다.
터무니없는, 말도 안 되는 요청이었다. 변호사를 불러달라면 또 모를까.
심각한 절차 위반이기에 루안은 굳은 표정으로 거절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에이, 괜찮다니까요. 그러지 마시고 여기 앉으세요. 어이, 텐. 물부터 끓여야지?』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불을 피운 화덕에 냄비를 올리고 있었다. 어째서?

『나보고 지금 물 끓이라고 했냐. 날 아주 허드레 일꾼으로 취급해라, 이 아저씨야.』
『그걸로 내 머리를 치려고? 들고 있는 프라이팬은 내려놔, 텐. 대신 칼을 들고 이거나 썰도록. 양파다.』
『감자가 먼저잖아. 분명 그렇게 배웠어.』
『채소를 다듬는 일에 순서가 어딨누. 그냥 한꺼번에 썰어도 되지. 그건 그렇고... 반죽을 해야 할텐데. 여기에 주둥이가 넓은 적당한 그릇은 있고. 죄송합니다, 나리. 밀가루는 어디에 있습니까?』
『아마 그 아래 칸에 있을 거요.』
『여기요? 아! 찾았다.』

밥을 해서 먹자는 제안에 왜 훌렁 넘어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루안은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기엔 자신의 몸뚱이가 너무나 피곤하다고 여겼다.
동료인 이슨은 나흘 전에 체력고갈로 쓰러졌고, 그 역시 번 아웃의 신체 신호가 잡히고 있었다. 복통이 심했고 건조증으로 눈이 쏘는 것처럼 아팠다. 두통도 심했다. 서서 소변을 누면서 졸거나, 상관에게 경례를 붙인다면서 멍하니 쳐다보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제대로 잠을 청한 건 보름 전이니 무리도 아니다. 사람은 정기적으로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데 3교대 근무가 꼬이면서 낮에 퇴근했다가 - 오전에 퇴근했다가 - 새벽에 퇴근하는 등 엉망진창이다.
거기다 일은 미쳤다는 표현이 딱 맞게끔 폭주하고 있다. 사방에서 주정뱅이가 날뛰었고, 소매치기가 창궐했으며, 골목에서 코를 찌르는 악취가 난다는 식의 민원이 300% 폭증했다.
5일만 더 참으면 축제가 끝나 기다리던 천국이 다가온다며 주문을 외워보지만.
알게 뭐냐, 지금 당장 죽을 맛이다.
그러니 유치장에서 꺼내주면 칼국수를 끓여주겠다는 꼬임에 이다지도 쉽게 넘어가는 것이다.

냄새를 맡고 나서야 루안은 배가 무진장 고팠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야근을 하는 내내 공복이었다.
루안은 군침을 삼키며 밀가루 반죽을 손바닥으로 탁탁 치대고 있는 사내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런데 칼국수라는 건 뭡니까.』
『아, 칼국수요. 먹어보면 조개로 국물을 낸 에조몰라와 비슷하다 생각하실 겁니다, 나리. 사실 그보다는 좀 담백합니다. 아무래도 포도주 없이 물만 넣고 끓인 거라서요. 그래도 뒷맛이 개운하죠.』
『방금 주머니에서 꺼낸 그 가루는 또 뭐죠?』
『이쪽에 있는 텐이 개인적으로 만든 건조시킨 양념입니다. 멸치와 다시마, 오징어, 쇠고기, 고추, 홍당무 외 기타 여러 가지를 섞어 만든 거지요. 넣고 물을 끓이기만 하면 되서 빠른 시간에 조리를 가능하게 해줍니다. 대신 짭니다. 그러니 조금만 넣어야 합니... 앗, 너무 넣었다! 물, 물.』
『의외로 냄새가 진하네요. 조개 냄새도 나고.』
여행자라 그런지 생소한 것들을 가지고 있었다. 익히 알고 있던 건조 육포와는 달랐다. 루안은 원래의 모양을 고스란히 간직한 건조채소라는 걸 신기하게 여기며 손으로도 직접 만져보았다. 시험 삼아 입에 넣고 씹어봤더니 이가 부러질 지경으로 딱딱했다. 하는 수 없어 손바닥을 대어 입안에 든 내용물을 도로 뱉었는데 이걸 보고 국자로 냄비를 휘휘 젓던 사내가 숨죽여 웃었다.
『아무래도 수분이 많은 신선한 채소를 먹는게 가장 좋죠. 저희도 여행 중이 아니면 이런 건 먹지 않습니다.』
간을 보기 위함인지 한 국자 떠서 국물을 입에 담았다.
『하윽. 하응.』
좋다는 건가, 끔찍하다는 건가.
진저리치는 것도 그렇고 음식의 맛을 보는 것치곤 신음소리가 어째 요상했다.
『어디서 성희롱이야. 반죽이나 썰어, 이 새끼야.』
얼굴 위로 핏기가 오른 검은 머리카락의 소년이 보다 못해 타박했다.

『면도 다 익었으니 슬슬 먹어볼까요.』
『아아, 깍두기가 먹고 싶다...』
『이상한 헛소리 하지 말고 너도 자리에 앉아라, 텐.』
『헛소리라니. 자고로 칼국수엔 깍두기가 진리란 말이다.』
『그런 진리, 소인은 모른다오. 자, 여기... 한 그릇 받으세요, 나리. 혀를 데울 수 있으니 조심하시고요.』
『확실히 뜨겁군요.』
『이건 후후 불면서 먹어야 제 맛입니다.』
뜨끈하니 국물이 죽여줬다.
피곤에 찌든 루안의 표정이 후루룩 소리와 같이하여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맛을 보자 입안에서 바다 향이 맴돌았다.
하여 이 순간만큼은 즉석 재판을 기다리는 피의자를 멋대로 꺼내왔다는 근심 걱정은 죄다 날아간 상태였다.

『어, 좋다... 그런데 두 분은 어느 지방에서 오셨습니까?』
한 그릇 덜어 염치없이 얻어먹으면서 루안이 지나가는 말투로 질문을 툭 던졌다.
옷차림으로 보자면 두 사람 다 언뜻 제국인처럼 보이기는 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 루안은 우물 안의 개구리여서 실제로 제국에서 온 여행자를 두 눈으로 본 적은 없다. 다만「이럴 것이다」라는 추측만이 있어 거기에 대입하여 동대륙 최강 제국 란데가스의 인상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은 그 인상에 부합했다.
뭐, 두꺼운 철면피와 뻔뻔함이 부합했다는 건 아니고.
그릇을 양손으로 쥐고 내용물을 호록 들이마시며 눈을 감았다.
이런 상황에선 누구나 비굴할 정도로 저자세로 나가기 쉬운데 그러지 않았다는 점이 호기로웠다고 할까.

『제국에서 오셨나요.』
『제국이라... 분명 란데가스를 거쳐서 오긴 했지요.』
의외로 사내는 말꼬리를 흐렸다. 그래봤자 신분증을 꺼내 확인하면 금방 알 수 있는데 어디서 왔다는 걸 굳이 숨기려 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느새 눈빛을 날카롭게 만든 루안은 불심검문에 임하듯 오남이라 불리우는 사내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러고 보니 오남이라는 이름도 영 이상하다. 다섯 번째 아들이라. 그렇다면 형님들의 이름은 각각 장남과 차남, 삼남에 사남이라는 건가. 부모의 작명 센스가 어쩐지 직무 유기를 연상시킨다. 게다가 아들만 다섯!

오남이 먹던 그릇을 조신하게 무릎 아래로 내려놓고 쓰게 웃었다.
『아, 그게 말입니다. 저는 장사치라서요.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거든요.』
『장사?』
『주요 품목은 고급 여성복이고 최고급 사라사 비단을 취급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게걸스럽게 칼국수를 흡입하고 있던 소년이 씹던 걸 채 삼키지도 않고 대화에 끼어들었다.
『드레스 말고도 새카맣게 썩은 양심도 팔고 있지.』
이런 모습을 접하니 왕자라는 첫인상은 확실히 실수다. 쭈그리고 앉아 오른손을 써서 복스럽게 먹는 모습은 이른 오후 새참을 먹는 농부의 자식 같았다.

『인석아. 그렇게 말하면 내가 천하에 둘도 없는 악덕 상인 같잖아.』
『어쭈구리? 당신, 천하에 둘도 없는 악덕 상인 맞거든?』
『아하하하, 나리. 이 녀석이 지금 뭘 잘못 먹었나 봅니다. 이 녀석이 하는 말은 듣지 마세요.』
오남은 태영의 옆구리를 찌르며 눈을 흘겼다.
『그렇게 말하면 오해를 받잖니. 쉭쉭!』
그리고 자세를 바로잡고 서둘러 자신을 해명했다.
『여성복 전문의 오남상회 상주 오남이라 합니다. 비타아른 공왕국에서 8년만에 성대한 축제가 열린다고 소문이 자자한지라 모처럼 꽃구경도 하고 시장 조사도 할 겸 와봤습니다.』

Posted by 미야

2015/09/16 13:06 2015/09/16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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