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흥이 깨졌다.
오남은「귀양」운운하는 태영에게 구경거리를 적극 권하기가 난감해졌다.
예쁜 여자도, 맛난 풍토 음식도 그다지, 소년은 주체못할 지경으로 넘쳐나는 시간을 따분해할 뿐이다.
「난감하네. 아직은 이곳을 떠날 수가 없는데. 《미스트》로부터 연락도 없는 상태고.」
오히려 태영이 관심을 보인 건 미인대회가 아닌, 지나가는 삼색 뚱땡이 암컷 고양이였다.
『여기 고양이가 있어, 오남!』
그러더니 쭈쭈 소리를 내며 낯선 고양이의 턱을 만지려 들었다.
『쏘시지를 주고 싶다.』
태영에게 번쩍 들어 올려진 길고양이가 니아옹 소리를 내며 입맛을 다셨다.
그래도 정해진 시간이 임박하자 어느새 광장은 모여든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환호성이 터지고 공중에서 준비된 꽃가루가 뿌려졌다. 코앞으로 적이 쳐들어온 것도 아닌데 종루에서 종까지 치고 있다. 덕분에 귀를 막아도 시끄럽고, 막지 않아도 귓청이 떨어질 것처럼 얼얼하다.
마침내 미인이 탄 가마가 멀리서 그 화려한 모습을 드러내자 박수소리가 한층 요란해졌다.
발 디딜 틈도 없는 가운데 군중들이 가마를 더 가까이에서 보겠다며 앞에 선 사람을 밀기 시작했다. 지나치게 접근하지 말라며 행사 진행자들이 안간힘을 썼지만 현장 통솔은 엉망이다. 개 껌을 씹겠다며 달려드는 강아지의 꼬리를 어린애가 힘겹게 잡아당기는 꼬락서니다. 덕분에 맨 앞줄의 가마가 너울을 만난 것처럼 좌우로 요동쳤다.
가마 위에 올라탄 미녀가 굴러 떨어지지 않으려고 손가락이 하얗게 되도록 손잡이를 움켜잡는게 멀리서도 보였다. 당혹감을 감춘 채 애서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지만 여자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이 마당에 환호성인지 비명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소리가 사방으로 반사되어 더욱 웅장해졌다.
이런 식의 모습을 기대한 건 아니다. 내심 당황한 오남은 한 발 뒤로 빼려 했다.
『생각보다 엄청난 걸? 이래선 축제 어쩌고가 아닌데. 까딱하다간 깔려 죽겠군.』
『남의 일처럼 얘기할 때가 아니야, 오남. 우웃, 방금 발을 밟혔어!』
처음 이 두 사람은 골목 뒤쪽으로 자리를 잡고 남의 집에 불났다며 멀찍이 서서 구경을 하고 있었다.
분명 그랬는데.
갑자기 누군가 등을 확 떠밀었다.
불쾌감에 뒤를 돌아보고 따지려 했다. 하지만 상대방의 얼굴을 확인하기도 전에 또다시 밀쳐졌다. 어, 어 하는 순간 어느새 100보 거리를 떠밀렸다. 휩쓸린다는 건 이런 걸 말하는 것이다. 사람들 틈새로 몸이 꼈다. 끼기만 했던가. 납작하게 눌려 숨 쉬기가 힘들어졌다. 그 상태에서 제자리에 있지 못하고 어딘가로 계속해서 흘러간다. 버티고 서서 두 다리에 힘을 꽉 줬지만 격류에 떠내려가는 낙엽처럼 신발이 둥실둥실 떠올랐다. 사람의 얼굴이 휙휙 바뀌고 주변 건물의 모습이 휙휙 변해간다. 이대로는 멀미가 날 것 같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
『텐! 텐! 여기서 빠, 빠져 나가야 해.』
오남은 힘을 힘껏 팔을 뻗어 태영의 손을 잡았다.
그런데 태영의 손이 이렇게 굵고 포동포동했던가.
얼굴이 시뻘개지도록 힘을 주어 끌어당기고 보니 가슴 풍만한 아줌마가 잔뜩 삐져서 뾰로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 마당에 또 성추행이냐! 이 빌어먹을 옷 장사꾼아!』
고함소리는 뒤쪽에서 들렸다. 아니, 앞쪽이다. 아니면 그 옆이던가... 아무튼.
얼른 잡았던 손을 내려놓고 욕설이 들린 방향으로 헤엄쳤다. 하지만 태영이라 생각되는 머리통은 빠른 속도로 미끄러져 시야에서 계속 멀어져갔다. 잡힐 듯 말 듯, 이런 수준이 아니다. 거대한 힘이 그냥 확 채갔다.
『헐.』
의외로 포기는 빨랐다. 보호자가 필요한 코찔찔이 어린애가 아니니 어떻게든 자기 몸 하나는 건사할 것이다.
지금은 그를 걱정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오남은 자신에 대해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있으면 분명 시체가 되어버릴 것이다. 그것도 앞뒤로 납작하게 눌린 시체. 그 전에 무리에서 빠져나갈 궁리부터 해야 한다.
체면불구하고 옆에 있는 사람의 옆구리를 세게 밀었다.
산소부족으로 안색이 파랗게 변한 다부진 몸집의 사내가 통증을 느끼고 오남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남자는 넋이 절반은 나가 왜 남의 옆구리를 찌르느냐 항의할 생각조차 못하고 있다. 다만 무생물이 운동 에너지에 반응하는 것처럼 - 무거운 돌을 밀면 약간은 움직인다 - 땀을 비오듯 흘리며 옆으로 한 발자국 자리를 옮겼을 뿐이다.
그것으로 오남 주변으로 여유가 생겼느냐, 결코 그렇지 않다. 남자가 옆으로 한 걸음 이동하자 자신은 두 걸음 그에게로 다가섰다. 자의는 아니다. 자꾸 뒤에서 밀어대는데 견딜 재주가 있나. 어느새 포옹하듯 밀착하여 뜨겁게 숨을 몰아쉬고 있다. 사내가 뿜는 콧김이 불쾌하게 얼굴에 닿았다. 마찬가지로 오남 또한 뜨뜻한 입김을 사내의 목덜미에 내뿜었다. 하여 서로가 서로를 증오하며 몸을 비틀어댔다. 그럴수록 부딪치는 팔뚝과 비벼지는 허벅지의 느낌이 상상을 초월하도록 끔찍했다. 시큰거리는 땀 냄새가 코를 찔렀다.
가마의 행진이 인파에 밀려 광장 안쪽으로 쉽게 진입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군중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하나의 거대한 파도가 되어 가마를 노리듯 돌진한다.
『제발 그만해! 이러다 죽겠어~!』
오남의 비명은 환호성에 묻혀 제대로 들리지도 않는다.
결국 산소부족으로 인사불성 상태가 되어버린 그의 고개가 뒤로 확 젖혀졌다.
이런 오남을 내려다보는 시선이 있었다.
건물 옥상으로 자리를 잡고 느긋하게 시원한 바람을 즐기며 소동의 한 가운데를 내려다본 것이 아니다.
가마 위에 선 곱슬머리의 아가씨가 밀려오는 토기를 참으며 그를 보고 있었다.
속으로 외치는 말은 사.람. 살.려. 느끼는 것은 동질감.
견디지 못하고 손바닥으로 입가를 막는다. 동시에 뺨이 볼록해졌다.
아가씨의 위급함을 눈으로 본 것도 아니면서 가마를 메고 있는 가마꾼의 얼굴 또한 홀쪽하게 변했다. 이 마당에 그녀가 구토를 하면 뜨뜻미지근한 국물이 떨어질 장소야 불을 보듯 뻔하다. 그래서 가마꾼은 꾀를 낸답시고 어깨에 들쳐 멘 무거운 가마를 슬그머니 옆으로 기울였다.
몸무게가 옆으로 쏠리자 비틀거리는 여자의 동작이 더욱 커졌다.
이제 그녀는 필사적이다. 머릿속으로 경전을 암송하며 울렁거림을 진정시켜보고자 기를 쓰지만 파도치는 손바닥들이 가마를 쿵쿵 찍어대자 빠른 속도로 한계점에 이르렀다.
《안 됩니다, 안 되요.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아함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멀미라도 해봐요, 당장 탈락입니다.》
확성기 소리에 반응하여 이제 여자는 자신의 손등을 피가 나도록 꼬집었다. 경전 대신 원주율을 외운다.
이것이 미인대회.
8년마다 도래한다는 비타아른의 명물 축제다.
『오남, 오남!』
절반은 정신을 잃어 고개를 뒤로 젖혔던 오남이 목소리에 반응, 가까스로 의식을 되찾고 몸을 추슬렀다.
그래봤자 의식이 가물가물한게 그다지 좋지 않았다.
『정신 똑바로 차려! 그렇게 기절한 채 있을 때가 아니라고.』
『기절하지 않았어.』
『흰 눈깔 뒤집고 있었으면서 어디서 거짓말이야. 당장 거기서 나와. 아니면 너, 분명 후회한다.』
말이 쉽지. 나도 이런 곳엔 있기 싫다고.
몸부림을 치는 와중에 태영이 숨을 들이켰다.
『아... 저 여자, 토한다.』
탄식과 같이하여 얼굴로 뜨뜻한 것이 쏟아져 내렸다.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