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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일상생활64

※ 미드 Person Of Interest 팬픽입니다. 번호는 작성 순서를 의미할 뿐으로 내용은 서로 연결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나는 영양가 없는 짓을 계속하고 있는 거지. ※

『존! 기다려요! 존!』
당황한 카터는 도움이 될 것도 아니건만 팔부터 흔들어댔다. 그래봤자 전직 육상선수로 착각되는 인물은 그녀와 100보 가까이 거리를 벌리며 초고속으로 뛰어나가고 있는 중이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거리를 휙휙 벌려나갔다. 불꽃을 뿜으며 날아가는 로켓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는 기분이 든다. 조만간 뒤통수조차 보이지 않을 터.
『존! 내 말이 안 들려요?! 제기랄, 이 화상아~!! 어제까지 앓아누웠다는 작자가 왜 이렇게 펄펄 날아?!』
당연히 듣고 있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존 리스는 머리 어딘가가 고장이 나버린 제멋대로인 인간이었으니까.

전력질주를 3분도 채 하지 않았는데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운동부족이다. 그 사실을 부정하진 않겠다. 하지만 오늘날의 경관들은 들판을 가로질러 뛰어가지도 않으며, 바다를 헤엄쳐 건너지 않는다. 먼 거리는 자동차로 이동하고 책상에 앉아 자료를 정리하는 일도 꽤 많이 한다. 사무직 직원처럼 종일 의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날도 있다. 그 결과 엉덩이가 커지고 옆구리에 살이 붙기 시작한다. 근육은 두부처럼 말랑거리고 계단을 오르기만 해도 호흡이 거칠어진다. 인정한다고, 인정해! 카터는 짐승처럼 으르렁댔다. 굽이 높지 않은 웨지 힐 구두를 신었음에도 발목으로 독특한 통증이 몰려왔다. 입술을 깨물고 참아보지만 뛰는 속도는 점점 느려졌다. 시야가 빙글빙글 돌았다. 싫든 좋든 그녀는 머잖아 뛰기를 포기해야 할 판국이다.

그러나 마음대로 포기 못 하는 인간도 있다.
『허... 씨발!』
지옥의 악마가 따라붙고 있음이다. 삼지창만 안 들었지 악마 중의 악마, 그것도 상급 악마다.
어디까지 왔나 뒤를 돌아보다 하마터면 심장마비에 걸릴 뻔했다. 눈이 마주친 악마가 겁에 질린 그를 보곤 비싯 웃었던 것이다.「NY-PD다! 당장 제자리에 멈춰!」이딴 말 안 한다. 대신「이거 정말 죽여주는데!」이러면서 입술을 핥았다. 그리고는 속도를 더욱 올렸다.
오른편에 자리한 천사가 트레비노의 귀에 대고 이죽거렸다. 봤지? 죽기 싫음 뛰어.

산소를 가득 들이마셔 거기에 불을 붙인다. 근육은 타오르고 찢어질 정도로 부풀어 오른다. 당겨서 밀어! 당겨서 밀어! 지면을 박차고 투명한 공기의 벽에 몸통을 박치기 시킨다. 조금만 더 빨리! 형광 빛을 내뿜는 지옥의 개를 피해 달아나며 일방통행 차도로 겁도 없이 튀어나갔다. 놀라서 브레이크를 밟은 차량이 손가락욕설을 퍼부으며 난리를 쳤다. 그러든 말든 좌우를 살필 겨를조차 없다. 입을 하마처럼 벌려 다시 공기를 삼켰다. 산소가 부족하다. 심장은 풀무처럼 불탔고, 살과 피를 태우려면 산소가 더 많이 필요하다. 쪼그라들었던 폐가 갈비뼈를 압박하며 다시금 팽창했다. 숨 쉬는 것만으로도 죽을 지경이다. 전속력으로 돌아가는 내부 장기들이 굉음을 내며 요동쳤다. 보일러 = 심장은 폭발 일보 직전이었다.
『씨발! 씨발!』
이대로 캐나다까지 뛰어갈 수는 없다. 큰길에서 방향을 틀어 건물 틈새로 난 좁은 길로 뛰어들었다. 문제는 트레비노가 이 근방 지리를 잘 모른다는 거다. 그는 뉴욕 토박이가 아니었으며 이곳에 적을 둔지 이제 겨우 5년이다. 5년이면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겠으나 동네 곳곳을 탐방하고 다닌 적은 없다. 자릿세를 요구하며 시비를 걸어오는 갱들이 어슬렁거리는 쪼다를 그냥 내버려둘 것도 아니겠다, 능구렁이처럼 일생을 살아온 잔챙이 트레비노는「지나가서는 안 되는 길」엔 눈을 돌리지 않았다.
『비켜, 비켜!』
그게 오늘에 이르러 이렇게 비수를 꽂을 줄이야.
쓰레기통을 향해 저리 비키라 고함을 지르며 구석까지 도망쳤다. 그랬다, 구석이었다. 앞은 뻥 뚫려있지 않았다. 반대로 가로막혔다. 무슨 억하심정인지 반대편 출구로 사람 높이의 펜스를 둘렀다. 철망 입구엔 자물쇠까지 채워놓았다. 이렇게 무식하게 막아두면 나 같은 무고한 사람은 어쩌라는 거야 - 분하고 억울한 마음에 고함을 지르며 펜스에 몸통 박치기를 했다. 그래봤자 쇳덩이는 무겁게 철렁 소리를 내었을 뿐으로 그 형태가 약간만 망가졌다.
『안 돼, 안 돼.』
영화에서 본 것처럼 겅중 뛰어 펜스를 넘으려 했다.
두어 번 점프하고는 영화는 영화, 현실은 현실이라 깨달았다. 매달렸으나 맥을 못 추고 몸이 아래로 툭 떨어졌다. 이소룡이 아닌 이상 이걸 뛰어넘으려면 특수한 장비가 필요하다.

더 달아날 곳이 없음을 인지한 트레비노는 펜스를 등지고 앞을 바라보았다.
그리하여 공포가... 머리카락을 곤두세우는 공포가...
일본 헤이안 시대 주작대로 한 가운데서 어둠 사이로 지나가는 백귀야행 무리와 마주치면 이런 기분이 들지도 모르겠다. 검은 양복의 사내는 뛰어오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어쩐지 야비해 보이는 미소가 여전히 입에 걸려 있다. 아니, 야비하다는 표현은 잘못되었다. 흡사 고양이가 쥐를 보고 웃는 듯한... 트레비노는 고개를 흔들어댔다. 궁지에 몰린 쥐 입장에서 입맛 다시는 고양이를 상상하는 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쥐의 목덜미를 물어 그대로 땅바닥에 패대기치는 흉폭한 고양이 - 안 돼. 생각하지 말자. 그래봤자 좋을 거 없잖아?
후들거리는 두 다리에 힘을 주고 침을 삼켰다. 호주머니에 든 주머니칼을 꺼내어 단추를 눌렀다. 스프링이 당겨지며 은백색의 날이 튕겨 올랐다. 그걸 마법사의 지팡이처럼 높게 들어 적을 위협했다. 훅훅, 이러고 좌우로 베어 공기를 갈랐다.

망했다.
상식이 안 통한다.
번득이는 칼을 보았음에도 검은 양복의 사내가 와하하 소리를 내어 웃었다.
『미친!』
제정신이 아닐 것이다. 돌은게 맞다. 사이코패스인게 분명하다.
벌벌 떨며 각오를 다졌다. 죽을 위험에 처하면 쥐도 고양이를 문다고 하지 않더냐. 반격의 기회는 있다. 단 한 번뿐이라고 해도 있다. 있을 것이다.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으며 어느새 코앞까지 따라붙은 사내를 향하여 준비하고 있던 칼자루를 힘껏 내밀었다.
『어?』
배를 노리고 멋지게 찔렀건만 푸른 인광을 흩뿌리며 날아든 악마는「실례」이러고 몸을 비틀어 가볍게 피해버렸다. 피하기만 했던가, 엄청나게 빠른 몸동작으로 트레비스의 팔을 잡고 앞으로 세게 잡아당겼다. 찌르려고 쭉 뻗은 팔을 잡아당겼으니 체중 전부가 앞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아차 하는 사이에 피사의 사탑이 기울어졌다. 내버려둬도 쓰러질 판국인데 양복의 사내는 한술 더 떠서 팔꿈치를 도끼처럼 사용해 트레비노의 목덜미를 사정 봐주지 않고 내려찍었다.
『꽥!』
외마디 비명과 같이하여 시야가 시커멓게 변했다.
『칼은 그렇게 사용하는게 아니야. 짧은 칼을 잡았으면 짧게 움직여야지. 쓸데없이 크게 움직이면 빈틈이 많아지는 법이야.』
친절한 조언은 둘째고 무릎을 올려 킥을 넣었다.
『것보다 눈 감고 사람을 찌르려고 하면 그게 먹히겠냐고. 응?』
마무리로 오른주먹이 턱을 강타했다.

『아, 오랜만에 신나게 뛰었더니 개운하군.』
대자로 뻗은 트레비노의 등 위로 올라탄 지옥의 악마가 즐거운 소리를 냈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기분이 좋지? 그거 참 이상하네.』
그리고는 만족스럽게 기절한 = 사냥한 사내의 어깨를 툭툭 쳤다.

Posted by 미야

2013/01/23 10:45 2013/01/23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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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일상생활63

※ 미드 Person Of Interest 팬픽입니다. ※

변기를 부여잡고 통곡했다.
아파서 그런 것도 아니고 : 적으로부터 심각한 고문을 받았던 것과 비교하면 몸살은 애들 장난이다.
슬퍼서 그런 것도 아니고 : 제시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적에도 그는 소리내어 울지 않았다.
이것이야말로 훌륭한 자기혐오의 발현이었다.
마치 인간쓰레기라도 된 기분 -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뚱이와 현세와 내세를 오락가락하는 정신이 못 견딜 정도로 짜증스럽다. 토악질한 분비물의 악취는 그의 인간가치 그 자체인 것처럼 느껴졌다. 스위치를 여러 번 눌러 물을 흘려보냈지만 배수구로 빠져나가는 오물은 여전히 그의 뇌리에 처박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건 똥이고, 이건 엿이다.
화장실 문밖에서 베어가 앓는 소리를 내고 있다.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손등으로 문질러 닦으며 서둘러 심호흡을 했다. 변기와 어깨동무한 자세로 할 말은 아니지만... 아무튼 그는 개를 걱정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갑자기 다다닥 이러고 베어가 현관을 향해 빠르게 뛰어갔다.
이어 문이 열리고 닫혔다.
『아빠 왔다... 베어?』
개는 열성적으로 방문자를 환영하며 제자리 뛰기를 했다. 그리고 주둥이를 사용해 핀치의 몸을 화장실 방향으로 밀어댔는데 여의치 않자 옷을 물고 잡아당기기까지 하였다. 양손에 짐 꾸러미를 들고 있었던 핀치는 사람 손을 빌려달라는 개의 요청에 난색을 표할 뿐이었다.
『베어! 진정하렴. 무슨 일인데 그러니.』
『제가 화장실에 쓰러져 죽었다 착각해서 그래요.』
창백한 유령처럼 보이는 남자가 비척거리며 걸어 나왔다. 사내는 맨발이었다.

『열은 좀 내렸습니까? 미스터 리스.』
『약은 먹었습니다.』
등을 구부정히 하고 뒤편으로 걸어가는 사내를 곁눈질하며 상의를 벗었다. 옷걸이가 지척에 있었음에도 리스와 달리 정리벽이 없는 그는 반으로 접은 옷을 소파 등받이에 걸쳐두었다. 호기심을 느낀 베어가 이빨로 소매를 잘근잘근 씹어 먹을 수도 있는데 거기까진 생각이 닿지 않은 듯했다. 하긴, 어린아이와 동물에겐 한 없이 관대한 사람이다. 눈 튀어나오게끔 비싼 넥타이를 레일라가 침으로 범벅을 만들어 못쓰게 만들었을 적에도 불평 한 마디 하지 않았다.
그래도 리스는 베어가 벗어놓은 옷가지의 냄새를 맡으려 하자 쯧쯧 혀를 차는 소리를 내어 개를 멀리 쫓았다. 핀치의 냄새를 좋아하는 개가 자기 둥지로 양복을 물어갈 수도 있다. 그건 나쁜 짓이다.

자기 집처럼 곳곳이 익숙한 핀치는 집주인의 허락도 구하지 않고 곧장 주방으로 향했다.
꾸러미를 식탁에 내려놓는 것과 동시에 체크 들어가신다.
『빈속에 약만 먹음 안 됩니다, 미스터 리스. 보아하니 또 아무것도 먹지 않았군요.』
흘러내린 안경을 도로 치켜 올린 고용주는 끌끌 소리를 냈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환자가 프라이팬을 쥐고 요리를 할 수 있을 리는 만무하고... 그렇다고 통조림으로 끼니를 해결하기엔 식욕이 없다. 냉장고에서 꺼내 먹은 건 사실상 물이 전부, 휑한 주방엔 빈 그릇 하나 나와 있지 않았다.

돌아서서 가지고 온 꾸러미 포장을 풀기 시작했다.
핀치는 요리를 하지 못한다. 어쩌면 먹기 위해 무언가를 조리하는 행위를 귀찮아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리스는 그가 직접 요리하는 걸 본 적이 없고, 도마와 주방 나이프를 다루는 걸 본 적도 없다. 천문학적인 갑부답지 않게 배달음식을 잘 먹었고, 애들처럼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며 포장용기에 든 고기 튀김을 젓가락으로 집어먹는 경우가 흔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라서 환자에게 먹일 거라며 조리된 음식을 밖에서 사가지고 왔다. 그가 하는 일이라곤 환경호르몬이 나오지 않는 안전한 용기에 내용물을 덜어 전자렌지에 집어넣고 2분 40초 데우는게 전부. 수저는 플라스틱이 아니라는게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다.

그릇을 두 개 가져와 리스에게 하나 내밀고 하나는 자기가 집어 들었다.
『이게 뭐죠?』
『야채와 해물을 곱게 다져 만든 유동식입니다. 소화가 잘 될 거예요.』
먹어보라 권하지 않고 대신 자기가 먼저 입에 넣고 삼켰다. 맛이 있는지 없는지는 핀치의 표정만 봐서는 판단이 힘들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쩝쩝 소리를 냈고, 연거푸 수저를 들어 해물 죽을 입안에 가득 넣었다. 잠자코 남이 먹는 모습을 지켜보던 리스는 시선을 내리깔고 자기 몫의 그릇을 보았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도 눈으로는 그다지 식욕이 동하지 않았다. 오히려 흐느적거리는 식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걸 어쩌지 당황하여 다시 핀치를 쳐다보았다. 그는 빠르게 그릇을 비워나가고 있었다. 식사예절을 따지지 않아도 되었기에 입을 대고 후루룩 마시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보자니 갑자기 입안에 군침이 돌았다.
덩달아 게 눈 감추듯 수저로 죽을 떠먹었다.

『트레비노의 일은 어떻게 되어가고 었습니까, 핀치.』
『환자는 어떻게 하면 병이 빨리 나을까 그것만 생각하면 됩니다.』
『그가 엉뚱한 물건을 잘못된 장소로 배달한 것 같다고 푸스코가 말해주더군요.』
『그런 걸 고민하니 열이 안 내리는 겁니다.』
『그치만 마약상인이 연루되어 있다면 핀치 혼자서는...』
『리스? 말 들어요.』
먼저 식사를 마친 핀치는 잘 씻은 사과를 꺼내 껍질째 먹기 시작했다. 비타민 C를 섭취하려면 껍질까지 전부 먹어주는게 좋다. 과도를 사용하는게 서툴러 그러는게 절대로 아니라는 말씀.
책임량이라면서 리스에게도 사과 한 알을 건네주었다.
역시나 정리벽이 없는 사내라서 다 먹은 그릇과 수저는 그대로 방치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리스의 눈이 움직이는 핀치의 동작을 졸졸 따라갔다.

『핀치, 거기서 뭐해요?』
『따뜻한 물수건을 만드려고요.』
물에 적신 수건을 세 번 접어 전자렌지에 넣고 버튼을 조작했다. 땡, 소리는 금방 들렸다.
『따뜻한 물수건이 왜 필요한데요?』
『땀이 났을 거예요. 옷을 팬티까지 전부 벗고 이걸로 겨드랑이를 문질러 닦도록 해요.』
『어, 그건.』
『진정해요, 미스터 리스. 나는 가서 갈아입을 옷을 가져오도록 할테니 그렇게 허둥거리지 않아도 됩니다. 아무렴, 내가 당신의 프라이버시를 무시할 거라 생각해요?』
『어쩌면.』
『훌륭합니다. 의심은 좋은 태도죠.』
심술궂게 큭큭 웃으며 적당히 자리를 비워주었다.

배도 채우고 옷도 갈아입었겠다, 침대에 눕자 졸음이 쏟아졌다.
그래도 고집스럽게 눈을 꿈뻑거리며 소파에 앉은 고용주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몰래 설치한 감시카메라로 트레비노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는 중인가 보다. 핀치의 시선이 좌우로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가끔씩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깨물었다.
하품이 나왔지만 참았다. 그가 잠들면 핀치는 잠자코 일어나 도서관으로 돌아가 버릴 것이고 리스는 그게 죽기보다 싫었다.
애처럼 투정한다는 걸 알면서도 부탁을 해봤다.
『저어... 오늘밤 계속 여기 있어주면 안 돼요?』
노트북에서 얼굴을 떼어낸 핀치가 침대 방향을 쳐다보았다.
불빛이 반사되어 안경알이 하얗게 보였다.
『왜요?』
『......』
원하던 대답을 듣지 못한 리스는 이불을 얼른 머리꼭대기까지 뒤집어썼다.

Posted by 미야

2013/01/22 11:24 2013/01/22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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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일상생활62

※ 미드 Person Of Interest 팬픽입니다. ※

콧물의 양이 현저하게 늘어났다. 코를 하도 풀어대 콧구멍이 헐어 아프다.
그래도 강박적으로 손수건을 얼굴로 가져갔다. 자칫하면 뇌수까지 흘러나오겠다며 옆에서 경악의 시선으로 쳐다보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요령껏 코에 힘을 줬다. 그래봤자 덩어리진 분비물은 코를 곽 틀어막고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았다. 대신 점막에서 약간의 출혈이 생겨 피가 손수건에 묻어나왔다.
『약은 먹은 겁니까?』
『감기를 치료하는 기적의 약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습니다, 푸스코 형사님. 우리가 감기약이라고 부르는 종류는 그저 증상을 완화시켜주는 역할밖에는 하지 않지요.』
『그럼 질문을 다르게 하지요. 그 증상을 완화시켜주는 약은 먹은 겁니까?』
친애하는「미스터 전자사전」의 건강을 걱정하는 마음이 10% 정도 담겨 있는 질문이었다. 그리고 다음 10%는 조수석에 앉은 사내로부터 감기에 옮으면 어쩌지 하는 거였다. 유난히 춥고 변덕스러운 날씨 탓에 감기가 유행, 오늘 한 명이 훌쩍거리면 내일은 세 명이 훌쩍거리는 판국이다. 덕분에 경찰서 내부에는 때 아닌 긴박감이 감돌았으며, 농담으로 재비를 뽑아 순번을 정해 앓아누워야 한다며 서로를 격려하고 있는 중이다. 순서가 아니니까 아직 아프면 안 된다 - 푸스코는 바짝 긴장했다. 병에 걸리고 낫고 하는 일은 어디까지나 사람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겠으나 재채기를 연거푸 하며 열에 들뜬 상태로 운전하여 아들을 학교에 대려다 주는 건 죽기보다 싫다.
살집이 두툼한 엉덩이를 찔끔찔끔 움직여 어떻게든 핀치로부터 거리를 벌려보고자 애썼다.

『괜찮을 겁니다, 형사님.』
의도가 빤히 보이는 그 동작에 울컥했던 것 같다. 핀치가 답지 않게 이죽거렸다.
『속설에 의하자면 바보는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잖아요?』
푸스코는 화를 냈다.
『그럼 내가 바보가 아님을 증명하려면 감기에 옮아야 한다는 거요?!』
핀치는 대답을 회피한 채 손수건으로 또 코를 풀었다.
뚱한 표정이 된 형사는 스멀스멀 올라오는 혐오감을 애써 참으며 정면을 응시했다. 그들이 지켜보고 있는 대상인 트레비노의 집은 자정이 넘은 시간에도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게다가 외출이라도 하려는 건지 창문으로 언뜻 보이는 트레비노는 바람막이 점퍼 차림새다. 야구장에서 써먹던 망원경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전등불이 언제 꺼지나 감시했다.
『과자라도 드실라우?』
『고맙지만 사양하겠습니다, 형사님.』
『그럼 캔디라도?』
『(패앵!)』
차안에서 꼼짝 못하고 쳐다본지 벌써 2시간 째, 드디어 트레비노가 어둠을 틈타 집밖으로 걸어 나왔다. 이제 미행을 할 차례다. 차에 시동을 걸면서 형사는 툴툴거렸다.
『미행 정도는 혼자서도 할 수 있거든요? 도중에 병원이 보임 내려드릴테니 함 가보시구려.』
『이 정도로는 죽지 않습니다.』
『퉁퉁 부어 지금 눈이 절반은 감긴 거 알아요?』
『트레비노가 어딘가로 전화를 걸고 있군요. 그런데 세 번째 시도해도 상대방이 받질 않네요.』
『......』
곁눈질로 감기 걸린 천재 양반을 쳐다보았다.
콧물을 달고 있는 그는 엄지손가락을 현란하게 움직이며 자기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싸구려 넷북만 가지고도 펜타곤 해킹을 시도한 전적이 있었던지라 푸스코 입장에선 그가 뭘 하고 있는지 묻기가 심히 두려웠다.

그리고 지금 이곳엔 이미 감기에 걸려 바보가 아님을 멋지게 증명한 전직 CIA 요원이 있으시다.
『집에 가 누워있으라고 했을텐데요, 미스터 리스.』
『아아. 그게 말이죠...』
담요를 망토처럼 두른 그는 수퍼맨을 닮았다기 보다는 당나귀를 탄「판쵸」와 더 흡사해 보였다. 커다란 체격과는 별개로 오늘따라 대단히 납작한 인상이었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고개를 세우지도 못하고 키보드에 거의 머리를 박고 있었다. 나름 의자에 앉아 컴퓨터로 조사를 해보겠다고 시도를 한 모양이다. 그러니까 시도만. 결국엔 어지럼증에 굴복,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그대로 책상에 엎드려 뜨거운 김만 푹푹 뿜어대고 있었다.
『못 움직이겠어요, 핀치.』
『진작에 제가 하는 말을 들었어야죠.』
『그래도 당신 혼자 돌아다니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리고 핀치, 당신도 아프잖아요.』
『제 걱정을 할 때가 아닌 것 같군요, 미스터 리스.』
그도 그럴 것이 핀치와 대화하기 위해 책상에서 3cm 가량 들려진 고개가 다시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그러면서 키보드의 스페이스 키를 지그시 눌러 오작동을 경고하는 창이 수백 개는 열렸다. 기진맥진한 리스는 그걸 알면서도 책상에서 이마를 들지 못했다. 기껏 한다면서 마우스를 찾아 더듬었는데 실제로 그가 찾아 쥐고 있었던 건 연필꽂이 대용품으로 쓰던 머그컵이었다. 그리고는 마우스의 왼쪽 버튼을 누른답시고 손잡이를 고집을 담아 꾹꾹-
골치가 아프다는 걸 숨기지도 못하고 핀치는 이마를 짚었다.
『리스.』
『아아, 이것만 마무리하고요. 어랍쇼, 그런데 왜 화면이 파랗지.』
『적당히 해요. 그러다 다 날려먹겠다!』
 
묘한 일이다. 옮긴 사람은 콧물감기고, 옮은 사람은 몸살감기라니.
뜨거운 물에 부어 마시는 감기약을 약국에서 사왔다.
쌍둥이처럼 닮은 머그컵 두 개를 선반에서 꺼내 그 안에 뜨거운 물을 붓고 봉지에 든 노란색 알갱이를 털어 넣었다. 가루가 물에 녹자 톡 쏘는 레몬 향이 느껴졌다. 그렇다고 맛도 레몬 맛이라고 믿어선 곤란하다. 머뭇거리며 혀를 대자 비위 상하게 쓰고... 토기가 올라오는 특유의 향취가 났다. 웩 하는 표정으로 입가를 닦는데 구석에서 무거운 물체 - 사전 같은 물건이 떨어지는 쿵 소리가 났다. 바벨탑처럼 쌓아올린 책 더미를 아마도 실수로 무너뜨린 듯하다.
걱정이 되어 서둘러 돌아가 보니 바닥에 엎드린 리스가 떨어뜨린 책을 도로 줍는답시고 이상한 동작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하나를 주워 품에 안으면 다시 하나를 발잔등 아래로 떨어뜨리는... 더하여 횡설수설 무어라 혼잣말을 하는데 이쪽에서 귀 기울여 들어보니 영어가 아니다. 절반은 스페인어, 나머지 절반은... 음. 외계어?
『지금 뭐 하고 있습니까.』
『저것들이 달아나고 있어요, 핀치.』
『고용주로서 명령하는데 책은 냅두고 소파로 가서 앉아요.』
『그 전에 잡으러 가야할 것 같은데요.』
『됐으니 앉아요.』

어떻게 어떻게 소파에 앉은 남자에게 컵을 내밀자 멍하니 쥐고만 있다.
시범을 보인답시고 핀치가 한 모금 마시자 그제야 핀치의 행동을 고스란히 따라했다. 표정에 변화가 없는 것으로 보아 맛도 모르는 눈치다. 핀치는 그대로 쭈욱 들이키라고 손짓하며 리스의 행동을 격려했다. 그리고는 정작 본인은 절반도 채 마시질 못했다.
『추워요, 핀치.』
『열이 나서 그런 겁니다.』
『당신은요?』
『괜찮습니다.』
『우리, 담요를 나눠 덮을까요?』
『모양새가 이상해질 것 같으니 그러지 않는게 좋겠습니다.』
『그럼 이 담요를 핀치가 덮도록 해요.』
날생선 주제에 넙치가 팔을 들어 담요를 벗으려 했다. 단, 마음만 굴뚝이라 옆에서 보자니 촌극이 따로 없었다.
핀치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쯧쯧...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게 좋을텐데.』
『우. 메슥거려. 속이 뒤집어진다.』
『제가 뭐랬어요. 자요, 쓰레기통.』
『웨엑-』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고꾸라졌다.

Posted by 미야

2013/01/21 15:00 2013/01/2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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