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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비)일상생활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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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일상생활57

※ 언제까지 이걸 쓸지 모르겠습니다. 미드 Person Of Interest 팬픽입니다. 그런데 야설을 쓰면 멘붕이 치료됩니까? 해보신 분 살짝 알려주긔. ※

주변의 높은 건물을 우러러보며 각도를 짐작해봤다.
오랜 스파이질로 축적된 경험으로 보아 쥐약의 위치다. 이웃한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가봤자 윙필드의 사무실을 훔쳐볼만한 자리는 아마도 나오지 않을 터, 그래도 만의 하나라는게 있으니 포기하지 않고 이거다 싶은 장소를 골라 시도해본다.
『역시나 헛수고였군.』
몸을 허공으로 던지다시피 한 상태에서 망원 카메라로 줌을 아무리 잡아당겨도 측면 모서리 - 그것도 약간밖에 안 보인다. 저격은 당연히 불가능하고 관찰 사진을 찍는다는 것 역시 오래된 램프를 문질러 소원을 빌지 않는 이상 역부족이다. 츳, 소리를 내며 철수 준비를 시작했다. 윙필드를 감시하려면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고집스럽게 포기 못 하고 옥상 여기저기 기웃거려봤자 칼 같은 바람에 콧물만 흐르게 된다. 아쉽지만 눈앞의 먹잇감을 내버려둔 채 등을 돌렸다.

『일개 사설탐정을 염탐하는게 아니라 국가안전정보국 뉴욕지부 사무실에 침투하는 기분이 드네요. 그녀는 누구처럼 편집증 환자임이 확실해요, 핀치.』
《직업 탓일 수도 있지요. 어쩐지 조이 모건 양이 생각나는군요.》
『글쎄요, 조이는 따로 사무실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이 둘을 비교하기가 그렇군요. 그래도... 만약이라고 가정을 하면 조이의 사무실도 아마 분위기가 이와 비슷할 겁니다.』
비상계단을 통해 빠르게 내려오며 아는 내용들을 곱씹어봤다.
건물 입구 및 복도에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 CC-TV가 없는 건물이 오히려 비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관계로 이 정도는 평범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 중 몇 개는 센서나 소방 장치를 위장한 몰래 카메라다. 이것들은 분명 불법인데다 평범하지 않은 것들이다.
출입문에는 원시적인 자물쇠가 달려 있는데 약간의 자물쇠 따기 실력만 갖추고 있다면 그다지 어렵지 않게 열 수 있다. 하지만 흔적이 남는다는게 문제다. 그렇게「나, 이곳에 침입하였소」광고하고 들어가면 그 다음은 약간의 난감함을 느낄 차례다.
《압니다. 사무집기와 낡은 가구가 전부인 것처럼 보이죠. 제가 그곳을 방문했을 적에 책상 위로 테스크탑 컴퓨터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노트북을 사용하는 걸까요? 컴퓨터 없이 일을 하기는 어려울텐데.』
《모르겠습니다, 리스. 어쩌면 사무실은 껍데기에 불과하고 다른 곳에 민감한 자료를 보관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죠. 모건 양도 중요한 것들은 USB에 넣어 가지고 다니잖아요?》

이쯤해서 리스는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모건, 모건, 모건.
오늘따라 이상한 빈도로 핀치가 모건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다.
글쎄다. 두 사람 다 여성이고, 연령대도 비슷하고, 특별한 재능을 가졌고,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을 직업으로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비교 대상으로 그녀를 떠올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껏 해야지. 손가락을 꼽아가며 헤아리진 않았지만 제법 많은 횟수로 모건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핀치의 성격을 몰랐다면 이번 일에 모건을 끌어들이라는 명령으로 착각했을 거다.
이상하다 생각하며 질문했다.
『혹시 조이로부터 무슨 말을 들은게 있나요? 핀치.』
대답은 즉시 나왔다.《아뇨.》
『그럼 조이의 USB 스틱에 윙필드의 이름이 들어가 있을 것 같아서 그래요?』
《나야 모르죠. 제가 그걸 어떻게 알겠습니까. 미스터 리스.》
더 이상해졌다. 핀치의 목소리로 뾰족한 가시가 돋은게 느껴졌다. 그것도 보통 가시가 아니다. 길이 13cm는 족히 될 강철의 가시였다. 리스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찔 떨었다. 핀치가 화를 내고 있다? 어째서? 뿐만 아니다. 불륜을 비난하듯 낮게 깔린 목소리로 따지는 모양새가 납득하기 어려웠다.
《미스터 리스. 혹시 모건 양을 불러 윙필드 양에 대해 물어볼 생각인가요.》
『어... 내가 왜요? 그래야 합니까? 조이의 도움이 필요해요?』
《아뇨.》
반응이 이게 뭐야. 나더러 어쩌라고.
리스는 목소리로가 아닌, 직접 얼굴을 마주보며 그와 대화를 하고 싶어졌다. 갑자기 왜 그러는 거냐 그의 눈동자를 지긋이 바라보며 까닭을 묻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그의 고용주는 뿌옇게 흐려진 커튼 뒤로 몸을 감춘 뒤였고, 그렇게 안전한 장소로 숨은 이상 고치 밖으로 쉽게 나오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어진 핀치의 목소리가 기계장치의 그것을 많이 닮은 것을 봐선 리스의 예상은 그리 많이 틀리지 않았다.

《어쩌면 모건 양의 데이터에도 들어가 있을 수 있지만 그녀의 도움 없이도 아직까지는 제 능력으로 알아낼 수 있습니다. 데보라 윙필드, 사립탐정. 2008년도까지는 강력계 형사로 근무했다가 내사과가 개입한 비공개 사건으로 사임했습니다. 퇴직 강요를 받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녀가 직접적인 비리 경관이었던 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만... 파트너인 에드거 디블이 총에 맞아 사망했고 윙필드는 허벅지에 심각한 자상을 입었다고 했네요. 재활치료까지 전부 마쳤음에도 달리기는 무리라는 판단이 내려졌습니다. 어차피 일반 사무직으로 돌려질 상황이었겠군요. 이후 자격증을 얻어 개인 컨설팅을 해왔는데 은행 잔고로 보자면 그다지 운이 따르진 않은 것 같아요. 거액의 빚은 없지만 저축한 돈이 너무 적네요.》
『그녀의 번호가 나온게 에드거 디블이라는 경찰관의 사망과 연관이 있는 걸까요?』
《아직 모릅니다.》
『그녀가 전직 경관이었다면... 카터가 아는 내용이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렇진 않을 걸요. 내사과가 개입한 일이니까요.》
리스는 다시 한 번 더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핀치는 필요 이상으로 서두르고 있고, 앞질러가고 있다.
이건 파트너 정신이 아니다. 리스의 목소리로 날이 섰다.
『핀치? 혹시 카터에게 벌써 물어봤습니까?』
《네. 하지만 큰 기대는 하지 말라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저 역시 기대를 품지 않았고요.》
『으음.』
《말씀하세요, 미스터 리스.》
『오늘 당신 이상해요. 단골 가게의 좋아하는 도넛이 전부 팔렸다고 그러는 건 아니지요?』
《그 무슨 실례의 말씀.》
그 말을 끝으로 핀치는 도망을 가버렸다. 무례하게 자기 멋대로 연락을 끊었다는 얘기다.

붉은 빛을 깜빡거리는 CC-TV 카메라를 쳐다보며 손짓발짓을 섞어 말하는 건 좋지 못하다. 일단 지나가는 사람들이 허우대만 멀쩡한 정신병자가 나타났다고 겁을 먹는다. 그리고 리스 본인도 그런 행동을 함에 있어 문제가 많다는 걸 자각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을 때 그는 충동을 강하게 느끼곤 했다. 너, 그 녀석, 혹은 머쉰의 앞 글자를 따서 장난처럼 M군이라 부르는 존재를 향해 항의도 하고 호소도 하는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아.』
그래봤자 위협이 되는 것도 아닌데 리스는 버릇처럼 총이 꽂혀진 자리로 손을 가져갔다.
『번호도 시간차로 핀치에게 먼저 보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냐, 너. 덕분에 핀치가 나에게 말하지도 않고 번호에게 접근했잖아. 위험할 수도 있었는데.』
카메라의 붉은 빛은 마치 사람의 심장이 규칙적으로 뛰는 것처럼 일정한 간격에 따라 꺼지고 켜지길 반복했다. 리스가 짐작할 수 없는 더 복잡한 계획과 목적을 가진 녀석은 이 정도의 푸념엔 반응을 하지 않는다.
어찌나 고상한지 투정하는 말엔 상대도 해주지 않는 기계로부터 눈을 돌리고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설치한 프로그램을 통해 도서관 내부에 달아놓은 몰래 카메라 화면을 핸드폰으로 전송받을 수 있다. 단추 몇 개를 누르자 의자에 앉아 모니터를 주시하고 있는 고용주의 모습이 보였다. 아기 돌봄이를 감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내니 캠의 위력이다. 테이블에 놓인 머그컵까지 선명하게 볼 수 있다.
『이건 마음에 드는군.』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로 집어넣었다.
이번엔 윙필드의 거주지로 무단 침입하여 나오는게 뭐가 있는지 뒤져볼 작정이었다.

Posted by 미야

2013/01/14 11:47 2013/01/14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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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List

  1. ㄷㅈ 2013/01/15 01:28 # M/D Reply Permalink

    일상생활 시리즈에 댓글을 한 번 달았다간 어마어마한 장문의 댓글이 되겠지, 난 논문을 쓰게 될지도 몰라.. 하고 우울해하고 있었는데 질문을 하셔서 답변한줄이라도 적어보리 하고 떠올랐습니다.
    어어.. 야설을 쓰면 멘붕이 치료.. 되지 않습니다!! 네!! 다른 분들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제 경우에는 아저씨들 모시고 방앗간 갔다가 진이 다 빠져서 무려 두 달을 멘붕상태로 지내기까지 했습니다!!!! 오히려 지금 생각해보면 제 덕질을 해한 악의 근원이 방앗간에 있지 않았나 싶기까지 합니다!! 어어 그래서 이 역사가 긴 일상생활 중인 아저씨들께서 물레방앗간에 가시는 것은 독자로서 환영할 일이지만... 모든 것은 미야님의 컨디션에 맞춰서... 네... 네..

    1. 미야 2013/01/15 13:30 # M/D Permalink

      멘붕 치료 안 됩니다? 헐헐... 그럼 이 악몽 같은 상황에서 3주씩이나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 걸까욤. 기가 차고 코가 차서 재채기가 나와옴.

낙서-일상생활56

※ 미드 Person Of Interest 팬픽입니다. 내일은 연말정산 관련 교육이 있어 자리를 비웁니다. ※

강박관념 탓에 다른 사람이 옆에 있으면 도무지 안심이 되지 않아 깊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핀치는 잠귀가 얇은 편에 속했고 힘겹게 잠들고 나서도 부스럭 소리만 나면 깨곤 했다. 궁여지책으로 귀마개를 사용해 보았지만 조그마한 기척에 저절로 눈이 번쩍 뜨였다. 결국 원하는 숙면을 이루려면 방문을 안쪽에서 걸어 잠그고 반드시 혼자 자야 했다.
스물 발자국 건너편 소파로 사람이 누워 있다고 생각하니 긴장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버릇이다. 고전적 방법대로 울타리를 뛰어넘는 하얀 양떼를 상상했으나 핀치의 고집스러운 의식은 도무지 깊은 수면의 세계로 가라앉으려 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가도 다시 파도를 타고 훌렁 수면 위로 올라왔다.
「차 지나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 아, 방금 존이 방구를 뀌었다. 냄새 나려나.」
가물가물한 상태에서 이런 잡생각을·꾸준히 하고 있는 걸 봐선 절반은 의식의 끈을 붙잡고 있는게 맞았다.

『핀치. 그만 일어날 시간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리스가 그의 어깨를 흔들었을 적에 그는 자고 있는 상태였다.
축 늘어져 있던 뇌세포가 깜빡깜빡 점등되는 것과 동시에 핀치는 졸린 목소리를 냈다.
『5분만 더요.』
그 요청을 듣고 리스는 군소리 없이 떨어져 나갔다. 어차피 그들은 정시 출근과는 담을 쌓은 사람들이라서 5분 더 꾸물거린다고 하늘이 반으로 두 쪽 날 일은 없다. 그리고 핀치는 게으름을 피우는 인종이 아니다. 알아서 잘 하겠거니 생각했는지 이불을 끌어안은 채 옆으로 돌아누운 고용주는 내버려두고 묵묵히 소파를 정리하고 담요를 갰다. 겸해서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하면 좋겠지만 조심성 많은 그는 블라인드조차 올려두지 않는다.
가까운 곳에서 드륵 소리가 났다. 붙박이장을 열고 닫은 눈치다.

짧은 군대식 샤워를 하러 가기 전, 리스는 침대가 놓인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핀치는 여전히 고른 숨소리를 내고 있다.
뭐랄까,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그런 기분이다.

5분만 더 자겠다고 해놓고 정작 침대를 떠난 건 30분 이상 시간을 지체하고 난 뒤였다.
의외로 꾸물거리며 느린 동작으로 안경을 찾아 썼다. 시야가 밝아졌으니 그만큼 정신도 밝아졌음 참 좋으련만 수마의 뒤끝은 영 개운치가 않아 여전히 멍한 기분이었다.
주방에서 소음이 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화장실은 이제 비어 있을 터,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도 아닌데 좌우방향을 확인한 뒤에 거실을 가로질러갔다. 눌린 자국이 선명한 뒤통수를 아무에게도 보여주기 싫었음이다. 화장실에 들어간 뒤에는 제일 먼저 문을 잠그고 혹시라도 문고리가 헛돌지는 않는지 확인한다. 이 또한 강박관념이다. 이 절차를 마치고 나면 뚜껑을 덮고 변기 물을 내린다. 그렇게 물을 낭비하는 죄를 저지른 뒤에야 쭈그리고 앉은 자세로 방광을 비운다. 남자라면 무릇 서서 용변을 봐야 한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지 않다. 게다가 사고로 척추를 다친 뒤로는 서서 볼일을 보는게 곤란했다.
캐비넷을 열어보니 포장을 뜯지 않은 칫솔이 여러 개 들어가 있었다. 그중에서 파란색을 골라 포장을 벗기고 입에 넣었다. 꼼꼼히 양치질을 마친 후에는 사용한 칫솔을 휴지에 싸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1회용 면도기는 서랍 어디에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자라난 수염을 그대로 방치할 수밖에 없었다. 물만 사용해 세수를 끝내고 손은 비누로 두 번 반복하여 씻었다.
샤워는 생략했다. 다른 사람의 집에서 속옷까지 전부 벗을 용기 따윈 없다.

『좋은 아침입니다, 핀치. 뭐, 시계를 보면 전혀 아침이 아니지만요.』
기이할 정도로 명랑해 보이는 리스는 이리 와서 앉으라며 손짓을 했다.
주방 테이블에는 접시 두 장이 올라와 있었는데 버터를 바른 토스트와 계란 프라이, 바짝 익힌 베이컨 두 장씩을 각각 담고 있었다. 카페인 중독자인 리스는 커다란 머그컵으로 이미 자기 몫의 커피를 홀짝거리느라 바빴고, 시커먼 국물은 질색이라는 핀치를 위해 대신 등장한 건 마트에서 파는 오렌지 주스다.
핀치의 눈이 휘둥글 벌어졌다. 어린애도 눈 감고 만들 수 있다는 간단한 메뉴지만 깡통을 사랑하는 남자가 프라이팬을 꺼내어 계란을 직접 조리했다는 점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게다가 계란의 모양새는 늘씬한 타원형으로 찢어지거나 구멍이 난 부위가 보이지 않았다. 여러 번 해본 솜씨 - 분하지만 요리를 전혀 못 하는 핀치보다 월등히 실력이 좋다.

얼이 빠진 상태로 의자에 앉으니 리스가 포크와 나이프를 쥐어주었다.
『어쩐지 궁금한게 많아 보이는 표정이네요.』
『어, 그게.』
『물어봐요. 대답해줄게요.』
소파에서 새우잠을 잤음에도 숙면을 취했나보다. 빤질빤질 광이 나서 눈이 부시다. 비싼 침대에서 자고 일어났음에도 형편없이 푸석거리는 누구와는 대조적이다.
덜 마른 머리카락에선 좋은 냄새가 풍겼다. 방금 전 포장을 뜯었을 셔츠는 눈부신 흰색이다.
핀치가 좀처럼 눈을 떼지 못하자 리스는 기분 좋게 웃었다. 그 모습이 멋있게 보여서 누린내가 진동하는 속옷을 갈아입지 못한 노인네 입장에선 질투가 날 지경이었다.
『리스 씨는 여기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잖아요. 그래서 항상 비어뒀고요.』
『맨날 자물쇠만 채워둬선 생일축하 의미로 선물해준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죠. 그리고 핀치? 마음에 들어 하지 않다니, 잘못 알고 있는 겁니다.』
『그래요?』
『전 이곳이 좋아요.』
『다행이네요.』
오렌지 주스를 한 모금 삼켰다. 차고 달았다.
『특이하다 생각해서 그럽니다만, 미스터 리스. 잠자리에 드는 사람의 다리를 모포나 홀겹 이불을 사용해 그렇게 꽁꽁 싸매는 까닭이 따로 있나요?』
『여긴 난방이 잘 되지 않아요. 다리가 차가우면 좋지 않을까봐 그런 거예요.』
사실은 자리에서 일어나기 힘들게 하려고 다리를 감는 거지만 - 설명은 그럴 듯했다.
「밤중에 몰래 일어나 나갈까봐 그랬어요」솔직히 말 하지 않았어도 핀치는 그렇구나 납득하고 넘어갔다.
『저어. 것보다 계란이...』
『장을 봐둔지 보름 정도 되었는데 그 정도 기간이면 보관만 잘 하면 상하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가 아니라.』
『콜레스테롤 걱정 때문에 그래요? 매일 먹는게 아니라면 괜찮아요. 그리고 오히려 계란 노른자를 먹으면 대사증후군이 있는 사람에겐 혈중지질 개선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요.』
거기까지 말한 리스는 버터를 바른 토스트를 덥썩 베어 물었다. 보는 사람이 식욕이 동할 정도로 맛있게 먹고 있어서 핀치는 자기 몫의 토스트를 그에게 줘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콜레스테롤 걱정이 아니고.』
『혹시 반숙이 아니라서 그러는 거예요?』
『아뇨, 아뇨. 그런게 아닙니다. 완숙이든 반숙이든 전 달걀을 좋아해요, 미스터 리스.』
『그럴 거라 생각했어요.』
리스는 다시 기쁜 모습으로 웃었다.
더욱 혼동되는 느낌.
『아, 그게.』
『달리 필요한 거라도?』
『야채가 부족해요.』
『sorry.』
중요한 순간이 닥치면 모호한 표현을 사용하여 말을 빙빙 돌리는 버릇은 진짜지 어떻게 해결이 안 되나 보다. 정작 하고픈 말은「다른 사람을 집에 데려와 재우고 아침을 만들어 먹이는 모습이 익숙한 것 같네요. 여러 번 해봤던 거예요?」라는 거였지만... 주스를 마시고 빵을 먹느라 입이 바쁘다보니 결국은 꺼내지 못한 질문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핀치는 짐짓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그가 이곳으로 여자를 데려오든 말든 그것은 온전히 그만의 사생활이다. 고용주의 신분으로 이래라 저래라 할 주제가 아니다.

침울해진 핀치는 그만의 안전한 장소로 달아났다.
『이번에 나온 번호 이야기를 해보죠. 이름은 데보라 윙필드. 직업은 사립탐정입니다.』

Posted by 미야

2013/01/10 16:38 2013/01/10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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