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일상생활50

※ 미드 Person Of Interest 팬픽입니다. 번호는 작업 순서를 의미하며, 내용의 연속성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일부 내용은 드라마 설정과 같지 않습니다. ※


아세트알데히드.
알데히드 화합물의 일종으로 술의 주성분인 에탄올의 대사과정에서 형성되며 숙취의 원인 물질...
부리로 콕콕 쪼는 특유의 두통에 신음하며 왼팔을 이마에 올렸다. 시간관념이 뒤틀려 지금이 좋은 아침인지 늦은 오후인지 구분조차 가지 않았다.
부어서 잘 떠지지 않는 눈으로 창밖의 밝기부터 확인했다. 하지만 낮과 밤의 판단이 되지 않는 건 여전했다. 흐린 날씨 탓이거나 아니면 두껍게 쌓인 먼지 탓이다. 유리 건너편은 무어라 형용하기 어려운 추한 회색 빛깔로 덧발려 마치 현실이 아닌 듯한 몽환의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것은 새벽의 아스라함을 많이 닮아 있었고, 동시에 우거진 수풀의 그림자가 층층이 겹을 이룬 거스러미처럼 보이기도 했다.
핀치는 이마에 올린 팔을 조금 아래로 내려 눈두덩이를 둥글게 문질렀다. 투과되지 않는 입자, 그리고 굴곡 되는 광선, 천궁으로 삼켜질 별들이 눈꺼풀 속에서 왱왱 회전하는 그런 기분이었다.

『끄응... 15년만에 한 껀수 올렸구먼.』
네이슨 잉그램이 어렵게 구한 대마초 전부를 변기에 넣고 흘려보낸 건 룸메이트 탓이다.
동시에 어떻게든 핑계를 만들어 술을 즐겼던 것 또한 특이체질을 가진 룸메이트 탓이다.
「자네는 일정 주량을 넘으면 폭주하는 성향이더군. 옆에서 보기에 무척 재밌었어. 하지만 매키니 교수의 수업은 시험을 아무리 잘 봐도 F학점을 벗어나기 힘들게야. 다섯 명의 증인이 보는 앞에서《이것이야말로 멱수열의 합을 유도하는 과정입니다》어쩌고 떠들며 키스했거든. 여기서 맹세하는데 나는 보고만 있지 않았어. 너를 말리려 노력했어. 그 증거로 내 코를 봐, 해롤드. 어제와 같은 크기지?」
「네가 피노키오냣!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게!」
「아무튼 나는 노력했어. 그러니 나중에 나와 같이 사이좋게 추가 학점을 노리도록 합세.」
술에서 깨어나 고통 받는 건 숙취 때문이 아니다.
필름이 끊겨서 그랬다고 변명도 못 하게 세부 내역 전부를 상세히 기억하고 있어서다.
의식이 또렷해지는 것과 같은 속도로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져갔다.

초록색 군용담요에 돌돌 말린 상태라서 똑바로 일어나는 일은 쉽지 않았다.
『..........』
감기에 걸리면 안 된다며 친절을 베풀었다기 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짐짝 취급을 닮아있었다. 다리 부위는 강박증이 의심될 정도로 두 겹 포장이 되어 있었는데 베개 대신으로 접은 모포만큼이나 그 방식이 철두철미했다. 어쩐지 그 느낌이 납치범들이 인질을 다루는 방식을 연상시켜 입이 썼다. 한참을 바둥거려 상체를 일으키자 이번에는 오른팔이 조립식 소파에 결박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밧줄 대용품으로 사용된 건 핀치의 넥타이였다. 그걸 보트를 부두에 묶어둘 적에 써먹는 매듭으로 잘도 꼬아 놨다. 시험 삼아 팔을 잡아당겨 보았다. 자유로운 왼손 하나로 매듭을 풀기엔 아무래도 난이도가 제법 높을 듯. 핀치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이로 말미암아 전달되는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허름한 모텔 방에서 술에 취해 잠들었는데 전화벨 소리를 듣고 깨어나 보니 한 손이 케이블타이로 결박당한 채 오성급 호텔에 눕혀져 있었죠.》
리스는 그들이 처음 만났을 적에 자신에게 벌어졌던 일을 상기시키려 한 것 같다.
《우리 같은 사람은 만에 하나라도 벌어질 수 있는 일 때문에라도 과음을 해선 안 됩니다.》
빗물 얼룩이 생긴 천장을 쳐다보며 반복하여 한숨을 내쉬었다.
《과음을 해서는 안 됩니다. 과음을 해서는 안 됩...》
잔소리를 닮은 충고가 리스의 목소리로 머릿속에서 반복하여 자동 재생되었다.
동시에 오래된 고물 레코드는 거기에 약 먹은 소리를 섞어 내보냈다.
《나 같은 사람에게 장난으로 키스하면 안 됩니다. 장난으로 키스하면 안 됩니...》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근거리로 뚜껑을 따지 않은 생수병과 안경, 그리고 핸드폰이 일렬로 놓여있었다.
그중에서 안경을 제일 먼저 집어 들었다.
다음으로는 핸드폰을 잡고 시간을 확인했다.
이미 오후 5시가 넘은 시각이었고, 그는 6시간 정도 잠들어 있었다. 분발하자.
《R.J는 절도 혐의로 경찰에 수배 중입니다. 굿피플네이버스라는 봉사단체 사무실에 몰래 침입해서 금고를 뜯고 현금과 장부를 훔쳤다고 했습니다. 문제의 택시에 올라탔을 적에 그는 범행 후 도주 중이었던 모양입니다. 장부는 사실상 별 거 아닌 내용들이고 다수가 세탁소니 슈퍼마켓이니 하는 스폰서 업체 전화번호 기록이라고 해요. 하지만 R.J 가 그걸 어떻게 해석할지는 모르는 일이지요. 게다가 우리 때문에 풀려야 할 오해가 거꾸로 더 커졌어요.》
핀치는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하, 하, 하 이러고 쓰게 웃었다.
사실 이건 블랙 코미디와 마찬가지다.
성당이나 사원을 통해「우리에게 후원을 해주세요」홍보하는 단체 중 사기성 단체는 있어도 테러리스트들은 없다. 왜냐하면 국가가 이미 이런 통로를 통한 지원을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어서 진짜배기 악당들은 이슬람 사원 게시판을 일절 이용하지 않는다. 이 점을 모르는 건 기부에 일절 관심이 없는 일반인 - 그리고 R.J 뿐이다.

『원래대로라면 장부를 보고 오해가 풀려야 했는데 그렇게 되지 않았군요. 범죄를 저지르고 도주 중인데 경찰도 아닌 리스 씨가 과격한 방법으로 강제로 끼어들었으니까요. 시커멓게 생긴 당신을 보고는 장부를 되찾으려 한 테러리스트라고 오해를 한 거예요.』
저편에서 리스가 끙 소리를 냈다.
《에... 저는 시커멓게 생기진 않았지만. 뭐, 그런 겁니다. 당신을 구조하러 간 저를 보고는 굿피플네이버스 단체가 테러리스트 소굴이 맞다 단단히 착각했죠. 확신을 갖고 911에 전화를 걸었어요. 이때 자신의 신원을 밝히고, 자신이 한 짓은 파렴치한 도둑질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어요. 그 증거로 훔친 돈을 넣어둔 가방의 위치를 알려줬는데 카터의 말로는 대형마트 무인보관함이라고 하더군요.》
『카터 형사님과 같이 그쪽으로 가보실 건가요.』
핀치의 질문에 리스는 단호히 그럴 필요가 없다고 대답했다.
《그곳에 R.J를 추적할 단서가 남아 있지는 않을 겁니다. 것보다 자기 멋대로 착오를 일으킨 R.J가 누구를 노리진 않을지 그게 걱정이에요.》
『굿피플네이버스 단체를 다시 노리진 않을까요, 미스터 리스.』
《그럴 가능성도 있지요.》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그가 국토안보부에 신고한 내용을 토대로 누구를 1순위 테러리스트 분자로 의심하고 있는지 추정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좋아요. 전 그를 뒤쫓을 방법을 강구할게요, 아저씨.》
『응?』
취기를 쫓기 위한 따뜻한 녹차를 우려내던 손이 허공에서 딱 멈췄다.
아저씨?!

순간 리스가 작게 키득거리는 소리를 냈다.
《아저씨라고 불러라, 그러지 않음 화를 내겠다, 기억 안 나요?》
『..........』
기억이 너무 잘 나서 문제다. 하지만 핀치는 결코 인정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요.』
핀치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거짓말했다.
그게 거짓말이라는게 고스란히 보였던 걸까, 일말의 기대감을 가지고 리스가 다시 질문했다.
《정말 기억이 나지 않아요? 핀치.》
기억이 나다마다.
꺽다리 친구의 무릎이 휘청거릴 정도로 혀를 얽고 입술을 빨았다. 치아의 열을 하나하나 두드리며 확인하는 혀의 움직임과 감각적으로 찍고 누르는 입술에 취한 리스는 온 체중을 실어 핀치에게 기대왔고 덕분에 무거워서 죽는 줄 알았다.
『몰라요.』
《아저씨?》
『모른다니까.』
신경질적으로 통화 종료 버튼을 꾹 눌러버렸다.
자, 힘 내자. 집중하여 일할 시간이다. 그러니 잡담금지.

Posted by 미야

2012/12/31 12:53 2012/12/31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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