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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 of interest (40)

이야기는 서로 느슨하게 연결되어져 있으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행되고 있지 않습니다.


점심으로 먹은 치즈버거가 아무래도 문제를 일으키는 듯했다. 배가 살살 아팠다.
그렇기는 해도 카터 형사가 이마를 찌푸린 건 소화기관의 아우성 탓만은 아니었다.
길거리에서 대놓고 총질한 혐의로 멍청한 놈팽이 하나를 신나게 잡아놨더니 자기가 가지고 있던 건 페인트탄이 장전된 애들 장난감이었다고 우겼다. 그 장난감 총은 그럼 어디다 곱게 모셔두었느냐 추궁했더니 어렸을 적에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쳐 기억력이 나빠 잘 모르겠단다. 자기가 총을 쏘았다는 걸 보았다는 목격자도 있다 으름장을 놓았는데 아뿔싸, 기껏 확보한 목격자가 저 사람이 맞는지 안 맞는지 헷갈린다고 딴 말을 시작했다. 거기다 주변을 샅샅이 뒤졌음에도 흉기가 안 나왔다.

『화약잔류 테스트는요.』
『양성이었어요, 후스코.』
『제가 맞춰보죠. 전날 사격장에 다녀왔다고 하죠?』
『아니면 슈퍼마켓을 털었을 수도 있죠.』
『호오, 전과가 있는 놈인가요?』

후스코가 그녀의 말에 관심을 보이며 자기 책상 서랍을 열고 닫았다.
그는 컴퓨터 암호를 포스트잇에 적어 서랍 안쪽에 붙여두고 있다. 참으로 확실한 보안 태도이다. 게다가 문제의 책상 서랍에 열쇠도 안 채운다. 본인 말로는 서랍 안엔 필기구 외엔 아무것도 들어가 있지 않다고 했다. 중요한 사건 파일을 복도에 흘리고 다닐 것만 같은 사람이다.

카터는 어느날 갑자기 전근을 온 그를 그다지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일단 소문이 좋지 않았다. 체포된 불량배 몇 명이 그를 알아보고 더러운 부패 경찰이 어쩌고 저쩌고 말을 흘렸다. 카터에게 조심하라 사적인 언질을 준 동료도 있다. 뇌물을 받은 전력이 있다, 그의 전 파트너 스틸스는 생사도 모르는 채 행방불명이다 등등의 이야기가 추가로 더 흘러 들어왔다. 같은 경찰관 입장으로 뒷조사는 불가능했어도 카터는 후스코를 경계했다. 그가「우리가 같이 일한지도 꽤 되었잖아요. 친한 사람들은 저를 라이오넬이라고 불러요. 형사님은요?」물어봤을 적에 냉랭한 목소리로 함부로 이름 까지 말라 주의를 주었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뭐, 정작 후스코는 그녀의 싸늘한 태도를 싱글 맘인 직장 동료가 이혼 경력이 있는 싱글 대디에게 보이는 일반적인 반응으로 이해한 듯했지만...

카터는 짐짓 시선을 들어 후스코를 쳐다보았다가 보고 있던 자료로 다시 고개를 숙였다.
『잡범이에요. 주차된 차량에서 오디오를 훔치고 빈집털이를 하고... 에스컬레이터(* 좀도둑이 갑자기 강도 살인을 벌이는 걸 일컬음)를 할 녀석으로는 안 보이지만 사람은 항상 예상이라는 걸 뛰어넘는 법이죠.』
『골목길에서 강도질을 꾸민게 잘못된 것 같습니까?』
『적어도 나는 그렇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본인은 강도가 아니라고 일관되게 우기고 있잖아요, 카터. 게다가...』
무슨 영문에서인지 병원에서 깨어난 피해자마저 입을 다물었다.
구체적으로는「충격을 받아 상세한 내용이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누가 나에게 총을 쏘았는지 전혀 보지 못했습니다」- 라고 했다나.
후스코는 이런 건 좋지 않아, 좋지 않아 혼잣말하며 체중을 의자 등받이에 실어 속칭「앉은뱅이 기지개」를 켰다. 낡은 스프링이 제발 그러지 말아달라고 굉음을 냈지만 두 다리를 쩍 벌린 채 고개를 뒤로 젖히는 동작을 멈추지는 않았다.
『상황이 별로네요. 그죠?』
하여간 얄미워 죽겠다.

리스는 도와줄 수 있다, 없다 사전에 언질을 주지 않았다.
솔직히 카터는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생리주기에 휩쓸려 답지않게 우는 소리를 해봤을 뿐이고, 쌓이는 업무 스트레스에 불평을 늘어놓았던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카터는「당신네들 능력으로 사라진 증거를 찾아줬음 좋겠어요」직설적으로 부탁하는 부끄러운 짓은 절대 안 했다.
그런데 은근히 그가 전화를 걸어오기를 기다리는 것도 사실이다.
「형사님, 익명으로 신고할게 있어요.」
이렇게 말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약해졌다, 예전의 나는 이렇지 않았는데 - 씁쓸하게 웃으며 시계를 쳐다보았다.
슬슬 붙잡아둔 용의자를 풀어주어야 할 시간이 되어가고 있다.

《안녕하세요, 카터 형사님. 지금 형사님 책상으로 올라간 사건과 관련하여 좋지 않은 소식과 더 좋지 않은 소식이 있어요.》
전화기 저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우리의 미스터 수트가 아니고 안경을 쓴 교수였다.
《어떤 소식을 먼저 들으실 건가요.》
교수는 차분하게 - 혹은 감정을 배제한 채 그녀의 의견을 구했다.
카터는 정말로 배가 아팠다. 으, 어쩌면 이건 망할 치즈버거 탓이 아니고 생리통일지도.

『잠깐만요. 보통은 좋지 않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잖아요.』
《보통은 그렇죠.》 
『저는 좋은 소식부터 듣고 싶다고요.』
《유감이지만 불가능합니다. 지금 선택이 가능한 건 좋지 않음, 그리고 더 좋지 않음 두 가지밖에 없거든요.》
주먹으로 벽을 후려갈기고 싶은 충동을 넘기고 카터는 가까스로 대꾸했다.
『하아... 좋아요, 그럼 좋지 않은 소식부터요.』

전혀 미안해하는 구석을 보이지 않으며 핀치가 말했다.
《용의자를 잘못 체포하셨습니다. 그를 풀어주세요. 그 사람은 더스틴씨를 총으로 쏘지 않았습니다.》
장소와 통화 내용을 고려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뭐라고 떠들었느냐 버럭 고함을 질렀을 것이다. 카터의 눈이 충혈되었다. 모르긴 몰라도 그녀를 훔쳐보고 있는 후스코는 그녀가 아들이 다니는 학교 생활지도부 상담사로부터「댁의 자녀분이 왕따를 당하고 있어요」내용을 통보받았다고 상상했을지도 모른다. 카터는 눈치껏 벽을 향해 돌아서며 휴대폰을 부러져라 움켜쥐었다.

『그는 현장에서 체포되었어요.』
《압니다.》
『그런데 범인은 아니라는 건가요.』
《그는 정말로 장난감 권총만을 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진짜 총격 사건이 벌어지자 겁을 집어먹고 갖고 있던 장난감 총을 빗물 통로에 버렸어요.》
『그걸 왜 치운다는 거죠. 그건 자기가 사람을 쏘지 않았다는 직접적인 증거물이잖아요.』
《병원에 실려간 피해자가 아는 내용이 없다 입을 다문 것과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무슨 이유요.』

핸드폰 저편에서 핀치가 잠시 숨을 골랐다.
《이쯤해서 형사님, 제가 보다 좋지 않은 소식을 알려드려야 할 것 같군요.》
핀치는 여전히 차분한 목소리로 - 그러나 흡사「영주님이 방금 운명하셨습니다」소식을 고하는 듯이 느릿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들은 예의 킬링 체크-인 게임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기억하시죠? 당국에서 불법으로 금지한 길거리 서바이벌 게임이오. FBI는 게임을 주관하던 오너, 자칭 사탄을 체포하고 케이스를 종결시켰습니다만... 아쉽게도 게임은 끝나지 않았어요. 누군가 서버를 열었고, 다시 킬링 체크-인 게임을 유도했습니다. 그리고 이게 문제인데... 질이 매우 좋지 않은 사람이 한 명 있습니다. 형사님도 이 남자 이야기에 대해선 아실 겁니다. 그 사람은 장난감 페인트 탄이 아니라 실제 총을 들고 게이머들 틈새에 몰래 끼어들어 사람들을 일부러 다치게 하고 있지요. 양상으로 보아 우린 이 범인이 곧 FBI에게 체포될 거라 여겼습니다. 하지만 섣부른 판단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녀와 통화를 하고 있던 건 핀치 한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제부터 우린 그 사람을 흰수염 고래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카터.》
갑자기 리스 목소리가 튀어나와 카터는 내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것보다 흰수염 고래라고?!
『뭐라고요?』
반문하던 목소리가 얼마나 크던지 구석에 몸을 감추고 카터를 훔쳐보던 후스코는 그녀의 아들 테일러가 학교 라커룸에서 치어리더와 키스하다 걸린게 맞다고 확신했다.

Posted by 미야

2012/07/18 16:11 2012/07/18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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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 of interest (39)

세상에는 도움을 거부하며 망가진 채로 있는 사람들도 있다.
「저도 그런 사람을 좀 알죠. 나쁜 짓을 저질렀으니까 남의 도움을 받는 대신 벌을 받아야 할 것 같았대요. 그래야 공평하다고요. 어때요, 당신도 그런 종류의 사람인가요?」
리스는 경찰서에서 맨 처음 카터 형사를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그리고 정확히 같은 대사를 흉내내어 읊었다.
『당신도 그런 종류의 사람입니까.』

상대는 큰 혼란에 빠진 듯했다. 표정으로 봐선 영어를 전혀 못 알아듣는 제3세계 난민처럼 보였다. 그리고 미안한 이야기지만 땟국이 줄줄 흐르는 행색 또한 난민을 연상시켰다. 그가 입은 셔츠와 바지는 최소한 6개월 이상 비누와 물 구경을 못 해봤다. 악취는 당연히 코를 찔렀다.
『무슨 종류?』
이라크에 다녀왔던 군인 - 현재는 무직 - 넝마주이가 된 예레미야는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내가 벌을 왜 받아야 허우?』

그의 이름은 예레미야다.
물론 당연히 본명은 아니다. 평소 횡설수설해 하는 그를 일컬어 주변에서 우스개 소리로 예언자라고 부르곤 한다. 가벼운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데 원인은 놀랍게도 두부 총상에 의한 후유증이다.
아, 실례. 총상이라고 하기는 좀 그런게 그의 머리에 박혔던 건 실제로 총알이 아니고 폭발로 날아간 동료의 정강이뼈 파편이었다. 음속으로 튄 작은 뼛조각이 하필이면 그의 머리를 휘젖고 망가뜨린 것이다.
뼛조각이 워낙에 미세해서 다행히 예레미야는 죽지 않았다.
그런데 이후로부터 그는 온전한 제정신을 가지지 못하게 되었다. 그는 수시로 유령들과 말을 나누게 되었으며, 하늘에서 내려오는 신령한 음성을 들었다.
이를테면 43번가 주택가 골목의 쓰레기통을 뒤지면 누군가가 버린 총이 나타날 것이다 - 너는 그 즉시 총을 들고 사람 많은 장소로 내려가 야훼의 말씀을 선포하라 - 대략 이런 식이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니느웨(고대 앗수르의 수도이자 상업도시)의 멸망이 목전에 임박한 가운데《회개하라! 너희는 모조리 흰수염 고래에게 잡혀 먹힐 것이다!》라고 담대히 선포하였다.

《니느웨에 고래... 그건 예레미야가 아니고 요나잖아요.》
『저 사람에겐 디테일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핀치.』
두 팔을 가볍게 벌려「나를 쏘지 마시오」의사를 표현한 리스는 예레미야의 움직임을 계속해서 주시하며 그와의 거리를 약간 좁혔다.
곤란하게 되었다. 그가 쥐고 있는 글록의 안전장치가 풀려 있다.

《대화를 해요, 리스. 그와 대화를 해보세요.》
핀치의 요구에 리스는 난감함을 느꼈다. 악당들의 쓸개골을 망가뜨리는 일을 수행함에 있어 쌍방간 대화는 그다지 필요가 없다. 눈짓하고, 움직이고, 바닥에 쓰러뜨린다, 끝. 상대의 감정에 호소하거나, 감언이설로 설득하는 일은 그다지 잘 하는 편이 아닌데다가 해본 적도 많지 않다.

예레미야가 수상쩍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리스는 마른침을 삼켰다. 혓바닥이 모래를 핥기라도 한 것처럼 까끌거렸다.
『총을 바닥에 내려놓으세요.』
핀치가 엿듣고 아우성을 쳤다.
《그건 대화가 아니고 명령이잖아요! 미스터 리스.》
『핀치? 조용히 하세요. 그리고 예레미야? 총을 바닥에 내려놓으세요. 당신은 누군가가 다치길 원하지 않아요, 내 말이 맞죠?』
『이상한 사람일세.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요. 내가 사람을 헤친다는 거요?』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그는 권총을 흉기로 인식조차 못 했다. 예레미야의 눈이 커졌다.
『나는 사람을 헤치지 않소.』
『하지만 당신은 총을 들고 있잖습니까.』
『총? 그건 먼 과거의 일이오. 그리고 나는 그 일에 대하여 이미 댓가를 치렀소.』

세계는 이미 붕괴하였기에 그 폐허의 파편 속에서 발버둥을 친다는 건 전부 무의미했다. 다시 적응해야 할 세계따윈 없었다. 다시 붙잡아야 할 세상도 없었다. 삶의 가치, 마주잡을 손, 살아갈 이유, 타인의 체온... 예레미야는 그 전부를 바람에 실어 날려 보냈다. 그리고 멸망한 세상에 홀로 남아 싸늘한 유령들이 우글거리는 곳에 머리를 뉘였다.
『육신은 늙고 병들었소. 힘들고 괴롭지. 그래도 난 불평따윈 하지 않아.』
그리하여 한 인간이 저지른 행위에 대한 댓가는 정당하게 치러졌다.
『나는 핏값을 전부 치렀소. 그러니까 나는 자유요.』

저승에 속한 예언자는 다시금 타락한 도시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쳤다.
오른손에 쥔 글록을 위태롭게 흔들어대면서 무지몽매한 인류를 향하여 설교했다.
『담배를 피우면 싫든 좋든 폐가 나빠지게 되어 있지. 담배를 끊으시오. 어서 끊으시오!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자주 먹으면 싫든 좋든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지오! 성인병과 비만으로 고통 받기 싫다면 야채를 섭취하도록 하시오! 비타민을 먹으시오! 만약 비타민을 먹지 않는다면~!!』
예레미야의 눈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흰수염 고래가 머지않아 너희를 심판하리라! 아멘, 아멘!』

핀치와 리스는 나란히 궁금증을 느꼈다.
《왜 하필이면 흰수염 고래인 걸까요.》
『모르겠습니다, 핀치. 혹시 고래가 도시를 멸망시켰다는 이야기에 대해 알아요?》
《바다에 사는 고래가 도시를 멸망시킬 정도로 그렇게 재주가 뛰어났던가요. 것보다 리스 씨, 저 권총이 살인 사건의 중요한 증거물이니 돌려달라 설득을 하여야 합니다. 앞으로 2시간 내로 증거물이 확보되지 않으면 카터 형사가 붙잡은 용의자가 풀려나게 되요.》
『압니다, 알아요. 하지만 저 사람은 증거물을 모세의 지팡이로 착각하고 있다고요.』

갑자기 예레미야가 노골적으로 호기심을 드러내며 리스에게 질문했다.
『난 봤다. 당신, 지금 누구와 속닥속닥 이야기를 하는 거요?』
리스는 여전히 두 팔을 벌린 안정적인 자세를 취한 채 대답했다.
『들켰군요. 지금 나와 대화를 나눈 상대는 내 오른편 어깨에 앉은 천사입니다.』
예레미야의 표정이 어린애처럼 밝아졌다. 목소리도 어린애처럼 높아졌다.
『천사! 천사라고?! 아, 천사구나. 나도 그와 대화할 수 있을까?』
리스는 거부했다.
『그건 곤란합니다. 그는 내 천사이지 당신의 천사가 아니니까요.』
『쳇. 뭐여... 치사하게.』
『실망시켜서 미안합니다. 천사와 대화하기 위해선 특수한 장비가 필요해요. 그리고 이 천사는 뭐랄까... 고집이 강하고, 추측이 되질 않고, 낯을 가리고, 성격도 좀 이상하거든요. 직접 말을 나눠봤자 당신이 생각하던 이미지와는 많이 다를 거예요. 오, 잠깐만요. 핀치... 이건 그냥 비유라고요. 흥분하지 마세요.』
『그렇군. 천사 이름이 핀치입니까?』
『진짜 이름은 아니지만 나는 그를 핀치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지금 이 양반... 자기가 왜 괴짜냐며 펄펄 뛰고 있어요, 아, 기다려요.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예레미야. 저에게 그 이유를 알려줄 수 있습니까? 천사가 무척 궁금해 하는게 있는데요. 어째서 흰수염 고래입니까?』

예레미야가 별 것 아니라는 투로 즉답했다.
『그는 고래 로고가 인쇄된 스포츠 가방을 들고 있었소. 머리는 짧았지만 수염을 지저분하게 길렀지. 수염 색깔이 가로등 아래서 하얗게 보였다오. 천사님께 말하쇼, 그가 위험한 물건을 쓰레기통에 버렸소.』
찰나와 같았자먼 그 사실을 고하는 예레미야는 그 순간만큼은 온전히 제정신으로 보였다.

Posted by 미야

2012/07/17 15:59 2012/07/17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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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 of interest (38)

각각의 이야기는 느슨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시간의 순서가 바르지 않습니다.


「당신은 질문을 잘 하지 않더군요.」
「그런가요.」
「뭐..., 나쁘지 않아요. 이 바닥에선 질문이 많은 사람을 좋아하진 않죠. 게다가 질문을 해봤자 제대로 답변을 해주는 것도 아니고요.」
「글쎄요, 캐라. 다음으로 우리가 가야 할 장소가 어디냐 마크에게 물었더니 콜롬비아의 산탄데르라고 상세하게 알려주던데요.」
스탠튼은 당신도 농담을 할 줄 아느냐 놀라워하며 위조된 여권을 존에게 내밀었다.

어쨌거나 존은 전직 군인이었고, 군인은 상부의 명령에 복종하는 법을 제일 먼저 배운다. 무기를 다루는 법이라던가, 매복을 제대로 하는 법, 사막에서 길을 잃지 않는 법 등등을 익히는 건 나중이다. 왜냐고 묻지 마라, 어째서냐고 따지지 마라, 이유를 생각하지 마라, 입대부터 8개월간 반복하여 주입시킨다. 구르라고 하면 굴러라, 뛰라고 하면 뛰어라, 앉으라고 하면 앉아라. 장교들이 추구하는 최고의 군인은 뇌가 콩알 사이즈여야 했다.

리스는 딱히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는 진작부터 벽창호 같은 구석이 있어「의문을 가지다, 그 까닭을 묻다」라는게 통하지 않았다. 
왜 나에게는 어머니가 없는 건가요 - 그 질문을 했을 적에 그의 아버지는 손바닥으로 눈가를 가리고 흐느꼈다. 이후로 존은 질문하지 않았다. 그러자 아버지도 다시는 자식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자네가 할 일은 내가〈스콜피오〉라고 명령하면 방아쇠를 당기는 걸세.」
「단독 임무는 아닐테고... 누구와 같이 가게 됩니까.」
「좋은 질문이야, 존. 누구를 쏘아야 하는지 묻지 않는 건 현명한 태도이지.」

107연대 소속의 스나이퍼였던 대니얼은 이 부분을 참지 못했다.
「나는 죽어 마땅한 놈들만 죽여요.」
실력은 제법 좋은 친구였으나 상부가 원한 이상적인 군인과는 거리가 있었다. 젊은 만큼 혈기가 넘쳤고, 정의로움에 목마른 만큼 대의명분을 따졌다.
「나는 뇌에 칩이 박힌 살인 기계가 아니야. 스콜피오, 명령하면 방아쇠를 당기라고? 그래서 나더러 열 살짜리 남자애의 머리통을 날려먹으라고? 미쳤어?!」
천국에는 우유와 꿀이 가득하다고 설득당한 여자와 어린애들은 너무나 쉽게 자살폭탄 테러리스트로 돌변한다. 자살폭탄 테러범의 90%가 열 두 살에서 열 여섯 살의 아동이다. 그들의 가난한 부모는 공짜 밥과 공짜 교육을 제공하겠다는 말에 혹해 아이들을 탈레반에게 보낸다. 하지만 텔레반은 아이들을 미래의 학교 선생님이나 재능 있는 음악가로 키우지 않는다. 아이들 전부가 머지않아 순교자가 된다. 갈가리 찢긴 유해는 수습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다. 아무도 눈물을 흘려주지 않는 가운데 따로따로가 되어버린 팔과 다리, 몸통에서 분리된 머리는 플라스틱 백에 담겨져 어디론가 실려간다. 유해는 가족들에게 절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가슴에 폭탄을 두른 어린애가 알라의 영광을 찬양하며 트럭 쪽을 향해 달려간다.
쏘야야 할까, 쏘지 말아야 할까.
「스콜피오.」
존은 조준하고 침착하게 방아쇠를 당겼다.
「안 돼!!」
대니얼은 존에게 덤벼들었고, 눈이 뒤집혀 주먹으로 그를 때렸다.
정확히 세 방 얻어맞은 뒤 존은 갑절로 이를 되갚아 주었는데 화가 나서 그런 건 아니었다.
그는 대니얼을 말로 진정시킬 수 없었다. 폭력 없이 진정시킬 수 있는 방법을 몰랐다. 군인은 상호 소통하며 대화하는 법을 배우지 않는다.

「대니얼! 이걸로 끝내도록 하자고, 대니얼.」
「끝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젠장! 이렇게 끝낼 수 있을 것 같냐고!」
「그만해. 저 트럭에 미군이 몇 명이나 타고 있었을 거 같나.」
「씨발! 저건 미끼잖아! 자살 폭탄 테러가 있을 거라고 이미 정보가 있었어! 게다가 저 어린애가 저 혼자 작정하고 자기 체중만큼 무거운 폭탄을 등에 짊어졌을 거라고 생각해?! 당신은 뇌가 없어?! 아메바야?! 저 애를 굳이 죽일 필요가 없었단 말이야!」
「명령이었어, 대니얼.」
「그딴 명령, 개나 줘버려!」
「그만해. 너는 군인이야. 명령을 부정하는 군인은 그 순간부터 군인이 아니야.」
대니얼은 머리를 좌우로 미친 듯이 흔들어댔다.
「맞아. 나는 군인이 아니야. 나는 군인이 아니라 살인자야.」
그리고 넋이 나간 얼굴로 눈물을 뚝뚝 흘려댔다.
「군인은 개뿔. 너도 나도... 우린 지옥으로 꺼져야 할 살인자라고.」

존은 자신이 살인자라는 인식을 늘 가지고 있었다.
「맞아요. 우리는 남들과 달라요.」
캐라는 가끔씩 자신의 손을 쭉 펴서 앞뒤로 뒤집어 보이곤 했다.
「이게 바로 매니큐어가 발려진 국가 공인 살인자의 손이라는 거예요. 어때요, 존. 예뻐 보여요?」
스탠튼의 손은 의외로 곱고 가냘펐다.
「다른 여자들처럼 요리를 하거나 설거지를 하지 않으니까요. 후후후.」
그녀는 최고급 구두에 집착하는 것만큼이나 자신의 손 모양에 늘 신경을 썼다.
스탠튼은 그런 여자였다... 그런 여자였다고 존은 캐라 스탠튼을 기억한다.

.......... 가방을 든 핀치가 뒤뚱뒤뚱 다가왔다.
평소보다 더 비틀거리는 걸음이었다. 그만큼 서두른 탓이다.
출혈 부위를 움켜쥐고 있던 리스는 어지러운 상념에서 깨어나 애매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본인은 꿈에도 생각을 못하겠지만 짙은 색의 양복을 입은 그는 동물원 밖으로 탈출한 펭귄처럼 보였다. 애처롭고, 귀엽고, 그래서 사랑스러운 펭귄 말이다.

『오른팔을 이리 내놓으세요, 미스터 리스.』
『보기에는 흉해도 상처는 그리 심하지 않습니다.』
『총알이 스치고 지나갔어요. 애처럼 굴지 말고, 빨리.』
그렇게 말한 핀치는 서류가방을 열고 다용도 접착 테이프를 꺼냈다.

리스는 쓰게 웃으며 단추를 풀고 피로 젖은 소매를 걷었다. 붕대가 아니라 테이프라니.
『근처에 약국은 없고 문구점만 있었나 보군요.』
『미안합니다, 존.「나는 얼간이다」문구를 넣은 티셔츠를 파는 가게까지 찾았는데 약국만 쏙 빠져 있더군요. 일단은 이것으로 참아주세요.』
『타박하려던게 아닙니다. 테이프도 써봤고 순간접착제도 종종 사용했었으니까요.』
물건을 포장하는 요령으로 리스의 팔에 테이프를 칭칭 둘러감던 핀치는 인상을 찌푸렸다.
『순간접착제요?』
『관통상 조처에 꽤 쓸모가 있어요.』
『허. 3M에서 그러라고 순간접착제를 만들어 팔지는 않았을 터인데.』
『마찬가지로 접착 테이프도 이러라고 만들어진 건 아니죠. 됐으니 여기서 빨리 빠져나갑시다, 해롤드.』

스콜피오.
살인자는 피 냄새 진동하는 손을 뻗어 자신을 세계와 연결해주는 소중한 존재를 붙들었다.

Posted by 미야

2012/07/12 14:58 2012/07/12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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