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son of interest (39)

세상에는 도움을 거부하며 망가진 채로 있는 사람들도 있다.
「저도 그런 사람을 좀 알죠. 나쁜 짓을 저질렀으니까 남의 도움을 받는 대신 벌을 받아야 할 것 같았대요. 그래야 공평하다고요. 어때요, 당신도 그런 종류의 사람인가요?」
리스는 경찰서에서 맨 처음 카터 형사를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그리고 정확히 같은 대사를 흉내내어 읊었다.
『당신도 그런 종류의 사람입니까.』

상대는 큰 혼란에 빠진 듯했다. 표정으로 봐선 영어를 전혀 못 알아듣는 제3세계 난민처럼 보였다. 그리고 미안한 이야기지만 땟국이 줄줄 흐르는 행색 또한 난민을 연상시켰다. 그가 입은 셔츠와 바지는 최소한 6개월 이상 비누와 물 구경을 못 해봤다. 악취는 당연히 코를 찔렀다.
『무슨 종류?』
이라크에 다녀왔던 군인 - 현재는 무직 - 넝마주이가 된 예레미야는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내가 벌을 왜 받아야 허우?』

그의 이름은 예레미야다.
물론 당연히 본명은 아니다. 평소 횡설수설해 하는 그를 일컬어 주변에서 우스개 소리로 예언자라고 부르곤 한다. 가벼운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데 원인은 놀랍게도 두부 총상에 의한 후유증이다.
아, 실례. 총상이라고 하기는 좀 그런게 그의 머리에 박혔던 건 실제로 총알이 아니고 폭발로 날아간 동료의 정강이뼈 파편이었다. 음속으로 튄 작은 뼛조각이 하필이면 그의 머리를 휘젖고 망가뜨린 것이다.
뼛조각이 워낙에 미세해서 다행히 예레미야는 죽지 않았다.
그런데 이후로부터 그는 온전한 제정신을 가지지 못하게 되었다. 그는 수시로 유령들과 말을 나누게 되었으며, 하늘에서 내려오는 신령한 음성을 들었다.
이를테면 43번가 주택가 골목의 쓰레기통을 뒤지면 누군가가 버린 총이 나타날 것이다 - 너는 그 즉시 총을 들고 사람 많은 장소로 내려가 야훼의 말씀을 선포하라 - 대략 이런 식이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니느웨(고대 앗수르의 수도이자 상업도시)의 멸망이 목전에 임박한 가운데《회개하라! 너희는 모조리 흰수염 고래에게 잡혀 먹힐 것이다!》라고 담대히 선포하였다.

《니느웨에 고래... 그건 예레미야가 아니고 요나잖아요.》
『저 사람에겐 디테일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핀치.』
두 팔을 가볍게 벌려「나를 쏘지 마시오」의사를 표현한 리스는 예레미야의 움직임을 계속해서 주시하며 그와의 거리를 약간 좁혔다.
곤란하게 되었다. 그가 쥐고 있는 글록의 안전장치가 풀려 있다.

《대화를 해요, 리스. 그와 대화를 해보세요.》
핀치의 요구에 리스는 난감함을 느꼈다. 악당들의 쓸개골을 망가뜨리는 일을 수행함에 있어 쌍방간 대화는 그다지 필요가 없다. 눈짓하고, 움직이고, 바닥에 쓰러뜨린다, 끝. 상대의 감정에 호소하거나, 감언이설로 설득하는 일은 그다지 잘 하는 편이 아닌데다가 해본 적도 많지 않다.

예레미야가 수상쩍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리스는 마른침을 삼켰다. 혓바닥이 모래를 핥기라도 한 것처럼 까끌거렸다.
『총을 바닥에 내려놓으세요.』
핀치가 엿듣고 아우성을 쳤다.
《그건 대화가 아니고 명령이잖아요! 미스터 리스.》
『핀치? 조용히 하세요. 그리고 예레미야? 총을 바닥에 내려놓으세요. 당신은 누군가가 다치길 원하지 않아요, 내 말이 맞죠?』
『이상한 사람일세.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요. 내가 사람을 헤친다는 거요?』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그는 권총을 흉기로 인식조차 못 했다. 예레미야의 눈이 커졌다.
『나는 사람을 헤치지 않소.』
『하지만 당신은 총을 들고 있잖습니까.』
『총? 그건 먼 과거의 일이오. 그리고 나는 그 일에 대하여 이미 댓가를 치렀소.』

세계는 이미 붕괴하였기에 그 폐허의 파편 속에서 발버둥을 친다는 건 전부 무의미했다. 다시 적응해야 할 세계따윈 없었다. 다시 붙잡아야 할 세상도 없었다. 삶의 가치, 마주잡을 손, 살아갈 이유, 타인의 체온... 예레미야는 그 전부를 바람에 실어 날려 보냈다. 그리고 멸망한 세상에 홀로 남아 싸늘한 유령들이 우글거리는 곳에 머리를 뉘였다.
『육신은 늙고 병들었소. 힘들고 괴롭지. 그래도 난 불평따윈 하지 않아.』
그리하여 한 인간이 저지른 행위에 대한 댓가는 정당하게 치러졌다.
『나는 핏값을 전부 치렀소. 그러니까 나는 자유요.』

저승에 속한 예언자는 다시금 타락한 도시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쳤다.
오른손에 쥔 글록을 위태롭게 흔들어대면서 무지몽매한 인류를 향하여 설교했다.
『담배를 피우면 싫든 좋든 폐가 나빠지게 되어 있지. 담배를 끊으시오. 어서 끊으시오!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자주 먹으면 싫든 좋든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지오! 성인병과 비만으로 고통 받기 싫다면 야채를 섭취하도록 하시오! 비타민을 먹으시오! 만약 비타민을 먹지 않는다면~!!』
예레미야의 눈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흰수염 고래가 머지않아 너희를 심판하리라! 아멘, 아멘!』

핀치와 리스는 나란히 궁금증을 느꼈다.
《왜 하필이면 흰수염 고래인 걸까요.》
『모르겠습니다, 핀치. 혹시 고래가 도시를 멸망시켰다는 이야기에 대해 알아요?》
《바다에 사는 고래가 도시를 멸망시킬 정도로 그렇게 재주가 뛰어났던가요. 것보다 리스 씨, 저 권총이 살인 사건의 중요한 증거물이니 돌려달라 설득을 하여야 합니다. 앞으로 2시간 내로 증거물이 확보되지 않으면 카터 형사가 붙잡은 용의자가 풀려나게 되요.》
『압니다, 알아요. 하지만 저 사람은 증거물을 모세의 지팡이로 착각하고 있다고요.』

갑자기 예레미야가 노골적으로 호기심을 드러내며 리스에게 질문했다.
『난 봤다. 당신, 지금 누구와 속닥속닥 이야기를 하는 거요?』
리스는 여전히 두 팔을 벌린 안정적인 자세를 취한 채 대답했다.
『들켰군요. 지금 나와 대화를 나눈 상대는 내 오른편 어깨에 앉은 천사입니다.』
예레미야의 표정이 어린애처럼 밝아졌다. 목소리도 어린애처럼 높아졌다.
『천사! 천사라고?! 아, 천사구나. 나도 그와 대화할 수 있을까?』
리스는 거부했다.
『그건 곤란합니다. 그는 내 천사이지 당신의 천사가 아니니까요.』
『쳇. 뭐여... 치사하게.』
『실망시켜서 미안합니다. 천사와 대화하기 위해선 특수한 장비가 필요해요. 그리고 이 천사는 뭐랄까... 고집이 강하고, 추측이 되질 않고, 낯을 가리고, 성격도 좀 이상하거든요. 직접 말을 나눠봤자 당신이 생각하던 이미지와는 많이 다를 거예요. 오, 잠깐만요. 핀치... 이건 그냥 비유라고요. 흥분하지 마세요.』
『그렇군. 천사 이름이 핀치입니까?』
『진짜 이름은 아니지만 나는 그를 핀치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지금 이 양반... 자기가 왜 괴짜냐며 펄펄 뛰고 있어요, 아, 기다려요.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예레미야. 저에게 그 이유를 알려줄 수 있습니까? 천사가 무척 궁금해 하는게 있는데요. 어째서 흰수염 고래입니까?』

예레미야가 별 것 아니라는 투로 즉답했다.
『그는 고래 로고가 인쇄된 스포츠 가방을 들고 있었소. 머리는 짧았지만 수염을 지저분하게 길렀지. 수염 색깔이 가로등 아래서 하얗게 보였다오. 천사님께 말하쇼, 그가 위험한 물건을 쓰레기통에 버렸소.』
찰나와 같았자먼 그 사실을 고하는 예레미야는 그 순간만큼은 온전히 제정신으로 보였다.

Posted by 미야

2012/07/17 15:59 2012/07/17 15:59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iya.ne.kr/blog/rss/response/1548

Trackback URL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

Leave a comment
« Previous : 1 : ... 639 : 640 : 641 : 642 : 643 : 644 : 645 : 646 : 647 : ... 1974 : Next »

블로그 이미지

처음 방문해주신 분은 하단의 "우물통 사용법"을 먼저 읽어주세요.

- 미야

Archives

Site Stats

Total hits:
1019292
Today:
998
Yesterday:
133

Calendar

«   2024/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