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배경은 2시즌 중반 무렵으로 샘은 아버지 유언이 뭔지 아직 모르는 것으로 설정이 되어 있어요. ※
동생의 호흡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는 점을 깨닫자 팔뚝으로 소름이 돋았다. 잠자는 미녀처럼 조용한 샘은 무섭다. 너무 흥분했거나, 반대로 아무 것도 보이지 않게끔 꼭지가 돌았다는 의미다. 젠장, 그러고보니 이거나 저거나 둘 다 똑같은 얘기잖아! 입술을 질끈 깨문 딘은 최대한 뒤통수 쪽으로 눈알을 굴려 동생이 뭘 어쩌려는 건지를 확인하고자 했다. 『샘!!』 제발 무모한 짓은 하지 말아줬으면 하고 빌고 또 빌었다.
샘은 평소엔 장례식을 집전하는 천주교 신부처럼 점잖케 행동하는 녀석이었지만 일단 날뛴다 싶으면 레몬즙이 콧구멍에 잘못 들어간 사람처럼 구는 경향이 강했다. 미친 강아지가 벽에다 머리를 쾅쾅 박아대는 건 차라리 애교에 가깝다. 심각해지면 브레이크가 고장난 자전거를 몰고 가파른 언덕 아래를 무지막지한 속도로 질주해 내려간다. 도로가 끝나는 절벽의 마지막에선 힘찬 도움닫기를, 찰라이긴 해도 허공에 붕 떠서 만세를 불러댄다. 무거운 고철 자전거 앤드 수직으로 낙하하는 철부지 사내 자식을 두 팔로 고스란히 받아내야 하는 사람 입장에선 환장할 노릇이다.
딘은 가끔씩 대학 친구들이라던가, 동아리 선후배 기타등등이「으아, 미친 레몬이다!」사태를 어떻게 받아들였을지가 매우 궁금했다. 폭풍우에서 구조되기 위해 난간쪽으로 기어가는 선원처럼 굴었을까, 아님 만사 포기하고 제 생명을 주님께 온전히 맏기겠습니다 기도를 올렸을까. 「그게 뭔 소리야. 내가 무슨 지킬 박사와 하이드라도 되는 줄 알아?」 재주껏 술까지 먹여가며 넌지시 떠보았지만 샘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식으로 웃기만 했다. 「숨기지 말고 말해보렴. 이 형은 그저 네가 사고를 쳤는지 안 쳤는지만 알고 싶을 뿐이야.」 「사고를 왜 쳐. 아빠와 형, 세상에서 딱 두 가지라고. 날 화끈하게 돌게 만드는 폭탄은.」 술에 취한 샘은 손가락 세 개를 펼쳤다가 어랍쇼 하고 다시 하나를 접어 둘로 만들었다. 그 두 가지 모두 근처에 없었으니까 나의 축복받은 대학 생활은 끝내주게 밋밋했다고 - 딸꾹거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동생은 목이 꽤나 말랐던지 답답한 표정으로 물을 찾았다. 졸지에 폭탄이 된 딘은 입술을 삐죽거리며 물병을 테이블에서 감춰버리는 심술을 부렸고, 무울~ 하고 한참을 칭얼대던 샘의 눈동자는 토끼처럼 붉게 핏발이 섰다.
그래, 나는 폭탄이다. 내가 전혀 모르는 너의 평범했던 대학 생활을 위하여 건배.
그치만 딘의 우려처럼 콧구멍으로 레몬이 들어가거나 하진 않았다. 오히려 커다란 얼음 알갱이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샘은 냉기가 솔솔 뿜겨져 나오는 머리로 철저하게 계산을 해봤다. 남자는 딘을 밟고 있다 = 다리를 움직이지 못 할 것이다 = 핸디캡이 있으니 이쪽에서 덤벼볼 가치는 충분하다. 팔 하나 정도는 잃어버릴 각오는 해야겠지만 까짓 것, 관자놀이의 핏줄이 불끈 섰다. 샘은 날이 잘 손질된 단검을 꺼내들었고 이것은 언제나처럼 분명 가치있는 노력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샘! 제발~!!』 귀가 쫑긋 섰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딘의 목소리가「살려줘, 동생아!」로 번역되어 들렸다. 잔뜩 갈라졌고, 당황한 것처럼 보이는 형의 목소리는 샘으로 하여금 아드레날린이 들끓게 만들었다. 겨드랑이의 털이 한올한올 곤두섰다. 출산한 젖먹이 어린애를 생판 타인에게 빼앗긴 어미처럼 숨구멍이 열렸다 도로 닫혔다. 파도와도 같은 감정이 노아의 홍수를 일으키려 했다.
『하아! 그게 과연 올바른 판단일까.』 손에 쥐어진 번득이는 칼날을 본 남자가 침착한 어조로 물었다. 자신의 발치를 짐짓 내려다보는 사내의 동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불을 보듯 뻔했다. 그것은 경고였다. 『허튼 짓은 관두게. 그러다 인식표가 발가락에 매달린 시체를 돌려받을 수도 있어.』 입이 타들어갔다. 혀를 내밀어 바짝 말라붙은 입술에 침을 발랐지만 극심한 가뭄으로 고통받는 대지에 겨우 물 한방을 끼얹는 것에 불과했다. 샘은 꿈틀거리는 딘의 허리를 쳐다봤고, 다시 남자를 노려봤다. 『아니. 나는 지금의 당신 말이 허풍이라는 걸 알아. 보험이라고 했잖아. 딘을 시체로 만들어선 보험으로 써먹을 수가 없지. 당신은 싫든 좋든 지금 이 자리에선 딘을 죽이지 않을 거야.』 뱀과 같은 눈동자가 옆으로 기우뚱 움직이면서 도화지에 그린 웃는 입을 가위로 오려 붙인 듯한 괴상한 표정이 한층 더 요란해졌다. 『음... 확실히.』 남자는 어디까지나 진지했고, 샘의 말을 부정하진 않았다. 『거짓말은 하지 않겠네. 자네 말대로야. 아직은 존 윈체스터의 아들을 계속 살려둬야 할 까닭이 있으니 그러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라고 해도 함부로 손을 대선 안 되겠지.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딱 하나군. 그.쪽.이. 대.신. 시.체.가. 되.게.』
다이아몬드가 박힌 반지가 별처럼 반짝였다. 샘은 그것이 암을 유발시키는 기분 나쁜 형광색 물질처럼 느껴졌다. 죽음이라는 종착역으로 인도하는, 죽기 직전까지 사람으로 하여금 많은 고통을 느끼게 해주는 성분 = 공포였다. 등이 뻐근해졌다. 단 3초면 모든게 결정될 것이다. 샘은 자신이 어쩌면 죽을 수도 있다는 위험부담을 충분히 인식했다. 샘은 이것만이 최선책이라는 듯이 팔을 안으로 구부려 팔꿈치와 칼날이 각각 수평을 이르게끔 했다. 처음 호흡은 준비. 두 번째 호흡은 각오. 투우사가 붉은 기를 들면 황소는 뛰어나가는 거다. 튕겨나가면서 동시에 친다. 세 번째 숨은 가슴 안쪽으로 깊숙이 삼켰다. 하나, 둘, 셋... 멀리뛰기 도약을 준비하는 요령으로 다리 근육을 움츠렸다.
『하지 마!』 딘은 이것이 과연 효과가 있을지를 반신반의하며「아버지의 명령」투로 외쳤다. 그리고 기억해냈다. 그의 동생은 여드름이 나면서부터 항상 아빠에게 반항했다는 것을. 무기력증이 솟구쳤다. 싸움을 당장 멈추게 해야 했지만... 어떻게? 자전거를 탄 소년이 겁도 없이 절벽을 향해 질주해간다. 손잡이에 붙들어 맨 장식용 바람개비가 윙윙 소리를 내며 돌아간다. 아... 도로의 끝. 떨어진다. 허공에 붕 떠오른 자전거 바퀴가 흡사 정지된 것처럼 보인다. 딘은 필사적으로 손을 뻗어본다. 그러나 닿지 않을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다. 『그러면 안돼!』 속이 메스꺼웠다. 하늘을 나는 탈 것들은 뭐라고 할 것 없이 모조리 질색이다. 비행기, 행글라이더, UFO, 열기구, 자전거, 수퍼맨 할 것 없이 소금에 버무려 구덩이 속에 파묻어야 한다. 왜냐면 중력이라는 괴물이 모든 것을 땅바닥으로 패대기질을 쳐버릴테니까. 놈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예외라는 걸 두지 않는다. 예쁜 동생을 피투성이로 내동댕이치곤 나 몰라라 한다. 딘이 그 나쁜 놈과 대항하여 싸울 수 있는 도구는 아무 것도 없다. 자연의 법칙이다. 올라가면 아무튼 언젠가는 떨어지게 되어 있다. 오늘도 딘은 그놈의 망할 고물 자전거와 무섭게 곤두박질치는 깡마른 몸뚱이를 보았다. 빌어먹을, 다신 자전거에 올라타게 만드나 봐라. 절망하며 흙을 움켜쥐었다. 『샘! 홧김에 엉뚱한 짓 하려는 거 아니겠지? 내 말이 맞지?! 야! 인석아!』 그렇다. 이건 엉뚱한 짓이다. 샘이 해야 할 일은 딘을 구하는게 아니다. 이것은 옳지 않다. 『장난이 아니란 말이야!』
바로 그때, 정말로 장난처럼 타원형의 쇳덩이가 코 앞으로 툭 하고 떨어졌다. 뭐야 이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눈이 휘둥글 벌어졌다. 그중에서도 확실한 반응을 보인 사람은 땅바닥에 엎드려 있던 딘이었다. 『으아악! 망할!』 그것 보라니까. 레몬이다. 레몬즙이 동생의 콧구멍에 들어갔다. 딘은 이성을 잃고 팔과 다리를 심하게 버둥거렸고,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없을 정도로 지독히 바보스럽고 흥분된 상태로 빠져들었다. 살아있는 개구리가 스프 접시에서 튀어나왔으니 식탁은 거꾸로 뒤집어져야 옳았다. 국자가 날아갔고, 촛대가 글렀다. 식탁보에 휩쓸려 의자가 쓰러졌다. 바닥을 뒹구는 접시가 모조리 깨져나갔다. 찢어지는 비명에 덩달아 질겁을 한 뱀파이어 남자가 다섯 걸음이나 폴짝 뛰었다. 드디어 속박이 풀린 딘은 그보다 약간 더 빠르게 해서 한 번에 열 걸음이나 후다닥 기어갔다. 수류탄 투척시 대처 요령이 뭐더라. 아버지가 뭐라고 말씀하셨던 것도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두 팔로 머리를 감싸쥔 딘은 아무렇게나 생각나는대로 외쳤다. 『레몬이다아~!!』 외치고 보니 뭔가 틀린 것도 같다. 하지만 지금 와서 그게 뭔 상관이람. 딘은 걸음마를 처음 배우는 아기처럼 혼비백산하여 바닥을 기기 시작했고, 차가운 11월의 혹독한 칼바람을 헤쳐나가는 뉴요커처럼 어깨를 움추렸다. 시커먼 연기를 내뿜는 비행기가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갔고, UFO에서 수상한 광선을 쏘아보냈고, 자살 폭탄 테러가 벌어졌고, 압둘라인지 빈라덴인지 하는 이름의 사내가 비디오 테이프에서「미국이여 각오하라. 레몬이다!」라고 손짓을 섞어 말했다. 놀란 딘은 그저 뿌옇게 먼지가 일어나도록 발버둥치고 또 발버둥쳤다.
『딘! 진정해, 진정하라고!』 『진정?! 진정?! 나한테 진정하라고 말한게 누구야.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눈과 코와 입으로 대단히 뜨거운 숨이 불어닥쳤다. 딘은 눈을 질끈 감은 채 다시금 비명을 질러댔다. 그것이 자신을 와락 끌어안은 동생의 호흡이라는 건 까마득히 몰랐던 그는 정말로 가까운 곳으로 수류탄이 터졌다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 = 메카가 있는 방향을 향해 넙죽 엎드렸다.
『지리멸렬한 것들. 웃기고 있네.』 여자는 바지 주머니에서 빨간색과 흰 색으로 줄이 나있는 담뱃곽을 꺼내들었다. 치익 하고 종이로 만들어진 성냥개비가 노랗게 황을 태웠다. 『아주 쇼를 해라, 쇼를 해.』 조용하고 어두운 공간에서 빨간색 담뱃불이 깜빡깜빡 점등했다. 모락모락 피어나는 회색의 연기로 얼굴을 감춘 리는 싸늘하게 식은 말투로 모두를 한꺼번에 바보로 만들어 가난한 제3세계에 덤핑으로 묶음 판매했다.
이마에 20% 파격 세일이라는 문구가 적혀졌다는 것도 모르고 딘은 끙끙거렸다. 『리! 큰일! 폭탄!』 『주둥이 닥쳐! 2달러 주고 장난감 가게에서 구입한 장난감이다! 진짜와 가짜도 구분 못하는 그놈의 쓸데없는 눈깔은 뭐 하러 달고 다녀. 그냥 후벼파버렷!』 장난감? 장난감! 그제야 빼꼼 눈을 치켜 뜬 딘은 머뭇거리며 하늘로 치켜올린 엉덩이를 도로 내렸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보니 플라스틱 고무 모형에 조잡하게 색을 칠한, made im china 애들 장난감이 맞았다. 자세히 봐야 이게 진짠가 가짠가 구분이 가는 정교한 물건도 아니어서 착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우스울 지경이다. 딘은 지독한 코감기에 걸린 환자인양 얼굴이 새빨개졌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세상에. 애들 장난감에 놀라 사람 살려 난리 굿을 쳤다는 거냐. 자기가 던진 수류탄 모형을 손가락질을 하며 리가 꽥꽥거렸다. 『거기다 뭐? 레몬? 네 눈엔 저게 맛있는 과일로 보이든?!』
모양이 레몬 비슷하긴 하잖아요 - 정신 나간 형을 대신하여 늘어놓는 샘의 억지 변명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타이어에서 바람이 빠져나가는 듯한 흐흐흐 웃음이 터져나왔고 딘은 죽을 때까지 평생 놀림거리가 될 문제의 에피소드가 방금 탄생했음을 깨달았다. 이걸 어쩌면 좋노. 동네방네 소문이 쫙 돌 거다. 나는 너의 비밀을 죄다 알고 있다 빙그레 웃으면서 맥주를 마실 바비와「수류탄이 뭔지 모르니? 진짜 수류탄을 내가 보여줄까?」라고 진지하게 제안할 애쉬 및 앨런의 모습이 상상되자 구덩이라도 파고 싶어졌다. 아니, 그 전에 믿지 못 하겠다는 식의 다소 경멸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리가 당장 문제다. 이래서는 도움을 받고도 고맙다고 말도 못 붙인다. 이제 딘은 귀까지 새빨개졌다. 무릎이 시큰거리는 통증은 당장 잊었다.
『세상에. 나까지 감쪽같이 속았어.』 뻘쭘해진 건 뱀파이어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속으로 모래를 채운 장난감 폭탄을 발로 톡톡 건드려보곤 가뜩이나 혈색이 없는 하얀 뺨이 1mm 두께로 썬 비누처럼 한층 더 투명하게 변했다. 어처구니 없어하는 모습이 난잡한 욕설들로 도배된 담벼락을 눈앞에 둔 성직자처럼 보였다. 한 손엔 비누를, 다른 한 손엔 쑤세미를 쥐었다. 범인을 잡아 족치는 건 나중이다.「보지」라는 단어를 지우기 위해 일주일동안 씨름할 생각에 이마에 팬 주름이 깊어졌다.
『이거, 이거. 또 만났군, 뱀퍼 리?』 리를 쳐다보는 그 시선은 죽은 동물을 먹어치우기 전에 부패하길 기다리는 무자비한 하이에나처럼 살기등등했다. 『칼리아나 술집에서 인사를 나눈 걸로는 부족했던 건가. 이건 완전히 악연이로군.』 『누가 할 소리. 팔은 괜찮으신가, 뱀파이어 양반. 재생 능력이 뛰어나도 아직 다 낫지 않았을텐데. 그쯤하면 데웠다고 생각하고 얼른 꽁무니를 뺐어야지. 뭐가 잘났다고 어디다 대고 상판을 또 들이밀어. 그렇게 할 일이 없어 심심했나.』 『미안. 난 또 피투성이 자동차를 길가에 아무렇게나 세워두었길래 일부러「난 포기할테니 얘네들 빨리 잡아가시오」광고하는 거라 생각했거든. 난 그래서 당신이 은화 30개를 받고 좋아라 하면서 밭을 사러 갔다고 여겼지. 그런 내 생각이 틀린 거였나?』 『당연히 착각이지. 나로 하여금 예수를 팔아먹게 만드려면 은화가 아닌 금화가 필요하거든.』 그렇게 말하면서 리는 피우던 담배를 땅바닥에 던졌다.
Posted by 미야
2007/08/19 09:03
2007/08/19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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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습니다. 다음부턴 긴 글은 쓰지 말자고... 흑. 그래봤자 작심사흘. 몽땅 때려치우고 12토막 살인 사건 이야기나 쓰고 싶어요~! 어쨌거나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
하지만 미처 몸을 일으키기 전에 억센 힘이 딘의 머리를 움직이지 못 하게끔 꽉 밟았다. 『아읏!』 슬리퍼를 신은 발로 기어다니는 바퀴벌레를 냉큼 밟았다는 식이어선 당연히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눈물이 쏙 우러나오게끔 아프다는 걸 잊을 정도로 분통이 터졌다. 나아가 무거운 닻과 밧줄로 선착장에 단단히 고정된 보트인양 꼼짝을 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어의가 없었다. 이럴 수는 없는 거다. 딘은 헐떡임 비슷한 소리를 내며 두 팔을 버팀대로 사용해서 정신적, 육체적 학대로부터 탈출하고자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자신의 머리 위로 올라간 싸가지 없는 구둣발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딘의 머리를 무슨 더러운 깔개로 여기는 듯했다. 참을성이 바닥났다. 옆으로 버둥거리며 딘은 악을 써댔다. 『발 치워! 치우라고!』 『진정하게. 이래선 대화를 시도할 수가 없잖아.』 남자의 목소리는 대단히 반듯했고, 선생님이 말썽쟁이 어린애를 타이를 때처럼 또박또박 음절을 끊어 말했다. 그 얘기인 즉, 누군가에게 조정을 당하고 건 아니라는 거였다. 약물에 취한 좀비처럼 굴던 예의 뱀파이어와는 확실히 차별되는 모습이었다.
찬 물을 뒤집어쓴 느낌이었다. 딘은 헤엄치는 동작을 멈추고 잠시 숨을 골랐다. 『대화?』 『그렇네.』 눈을 치켜올리고 속으로「이게 대화를 하자는 자세냐?!」반문부터 하고 보았다. 자고로 대화라는 걸 하려면 편안한 자세로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앉아 커피라도 권해야 예의다. 그보단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 익숙한 목소리라는 점이 더 마음에 걸렸지만, 어쨌든 상대의 머리통을 밟고서 대화 어쩌고 운운하는 건 넌센스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하! 예의라고 했나. 그럼 내가 먼저 말하지. 나는 분명히 노크를 했다고.』 남자가 할아버지 설교조로 다시 말했다. 『그런데 낼름 창문으로 도망부터 치는 건 어디서 배워먹은 버르장머린가. 응?』 화가 난 모양이다. 머리를 꾹꾹 밟아대는 힘이 곱절로 세졌다. 『누군가 문을 두드리면「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대답을 했었어야지! 원, 기가 막혀서. 밖에서 한참 서성이며 이제나 저제나 기다린 나만 바보가 되었...』
순간 기습적으로 접근해온 샘이 무서운 기세로 주먹을 날렸다. 각도가 맞지 않은 관계상 눈으로는 볼 수 없었지만 딘은 두껍게 썰은 바비큐용 고기를 3층 높이에서 떨어뜨리는 둔탁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단순히 내찌르기만 해선 저런 소리가 나지 않는다. 팔꿈치로부터 강렬하고 재빠르게 내뻗어야 한다. 우리 동생이 제대로 해치웠구나! 딘은 흐믓했다. 하지만 위력 충분한 곰의 앞발 공격은 이번의 경우엔 그다지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어디까지나 기세만 등등했을 뿐, 남자의 팔이 재빨이 샘의 주먹을 잡아챘고 손바닥이 주먹을 보자기처럼 감싸버렸다. 샘은 커다란 다이아몬드가 박힌 금반지를 보았고, 도자기처럼 하얀 피부와 그 아래로 거미줄처럼 깔힌 파란 힘줄을 보았다. 고개를 들자 석탄처럼 활활 타는 두 개의 눈동자가 그를 쏘아보았다. 남자의 가지런한 입술 위로 오만함이 물에 풀어진 기름처럼 둥실 떠올랐다. 『이런, 이런. 침착하게. 두 사람 모두 충동적이군. 그다지 칭찬할만한 성격은 아닌데.』 붙잡은 주먹을 옆으로 뿌리치며 그가 혀를 끌끌 찼다. 섬뜩해진 표정을 한 샘이 크게 두 발짝 후퇴했다. 그러다 자기 발에 자기가 걸렸는지 꼴사납게 비틀거리기까지 했다. 참 잘 했다, 샘 윈체스터. 동생을 한 입에 잡아먹고 싶어하는 딘의 미친 뱃가죽이 꾸룩거렸다.
『그러겠다고 마음만 먹었다면 주먹을 완전히 못 쓰게 만들어버렸을 수도 있었어. 뼈마디 몇 개 부러뜨리는 건 일도 아니거든. 그건 그쪽도 잘 알고 있지?』 대답 대신 마른 침이 넘어가는 꿀꺽 소리만 크게 들려왔다. 『나의 아량이 바다처럼 넓다는 점에 감사하도록 하게. 그건 그렇고... 슬슬 원래의 용건으로 돌아가볼까. 그렇게 긴장하지 말게. 생각보다 별 거 아닐세. 존 윈체스터를 이리로 불러주었음 하는데. 어떤가. 아주 어려운 부탁은 아니지?』 다 듣고도 이해가 가지 않아 샘은 짧게 아, 소리를 냈다. 뭐? 존 윈체스터를 이리로 불러내라고? 『전화를 걸어 아들인 딘 윈체스터가 위험한 뱀파이어에게 붙잡혀 갔다고 말하게. 강조하여 대.단.히. 위험한 뱀파이어라고 해도 괜찮네.』
이게 무슨 철 지난 농담인가 싶어 샘은 눈을 가늘게 떠보였다. 존을 불러내려면 강신술을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라스베가스의 라바 할멈 같은 능력자 말이다. 하지만 존의 죽음이 정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만큼 보통의 강신술로는 존을 이승의 테이블로 초대하긴 꽤나 어려울 것이다. 어쩌면 불가능할 수도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악마와 계약한 영혼은 저승으로 가지 않는다 - 바늘 구멍과도 같은 저승의 문을 힘겹게 열어도 그가 찾는 영혼은 결코 그곳에 있지 않다. 설령 지옥 앞에서 허리에 손을 얹고 존 윈체스터야 빨리 나오너라 호령을 했다 쳐도... 불현듯 냉소적인 웃음이 터져나왔다.
『전화를 하라고?』 『바로 그걸세. 설마, 피붙이가 위험에 빠졌다는데 나 몰라라 하진 않겠지.』 그건 뭘 몰라서 하는 소리다. 샘의 표정이 냉장고에서 식어버린 버터처럼 되었다. 생전에도 존은 사냥 중에 실수로 몸을 다친 아들이 죽어간다는 비보를 듣고도 나 몰라라 했던 인간이다. 손상된 심장으론 앞으로 일주일도 못 산다고 의사들이 선언했음에도, 샘이 애가 타서 우는 소리를 했음에도, 존은 귀를 막았다. 그들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아픈 아들을 보러 한 걸음에 달려오지도 않았다. 《아빠, 저예요. 샘이예요. 그러니까... 형이 아파요. 의사들도 어쩔 수 없대요.》 그 메시지를 듣고 존이 무어라 대답을 했던가? 아니다. 그는 철저히 침묵했었다. 《우리만의 방법이 있으니까... 제가 어떻게든 해볼게요.》 큰 기대는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11월의 하늘은 회색인 것처럼, 한 겨울에는 으레 눈이 내리는 것처럼 전화기를 붙잡은 샘은 존이 연락을 취해오지 않을 거라는 걸 막연히 짐작했다. 《저는 그냥... 아빠가 알고는 계셔야 할 것 같아 말씀드리는 거예요.》 그러나 기대를 하지 않았다고 그걸 당연시 여겼던 건 절대 아니다. 세상의 어떤 아버지가... 아들이 죽어간다는데도 꿈쩍을 안 할 수가 있지?! 평소에도 미워하던 마음이 고삐가 풀리기라도 한 것처럼 달려나갔다. 감정은 원망을 넘어서 증오를 닮아갔다. 당신을 결코 용서하지 않겠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몸을 웅크린 딘을 부축하면서 샘은 자신의 결심을 곱씹고, 곱씹고, 또 곱씹었다. 딘이 여기서 죽으면 그 길로 난 당신의 등짝으로 칼을 박으러 갈 거야. 그것도 모르고 겉멋만 잔뜩 든 형은 조용히 죽게 좀 내버려두라고 투덜댔다. 의사를 만나러 갈 줄 알았는데 기껏 추천하는게 신앙 치료술사냐며 짜증을 부렸다. 잔뜩 지쳐서 좋아하는 메탈리카 음악도 들으려 하지 않았음에도, 조수석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풀이 죽은 표정으로 신발만 쳐다보았음에도, 자신을 보러오지 않는 아빠에 대해선 말을 삼갔다.
샘은 그가 울지는 않을까 겁이 났었다. 이렇게 죽고 싶지 않다고, 살려달라고 애원하면 어쩌나 무서웠다. 하지만 딘은 어른이었다. 샘이 걱정하는 얼굴로 쳐다보면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고개를 빳빳이 세우곤 했다. 허세를 부리며「멀건 꿀꿀이죽 말고 스테이크 먹고 싶어」라고 불평했다. 망할 대갈통, 망할 아버지, 망할 윈체스터의 피. 엄지손톱의 절반을 물어뜯고 난 뒤에야 샘은 가까스로「콜레스테롤은 심장에 좋지 않아」라고 농담 아닌 농담을 할 수 있었다. 딘은 바보처럼 헤헤헤 웃었고, 그 모습이 어찌나 처량맞고 속상하던지 샘은 더러운 변기에 대고 피 섞인 위액과 같이해서「몽땅 다 죽어버렷!」욕설을 한웅큼씩 뱉어내곤 했다. 『존에게... 전화를 하라고?』 샘은 등을 돌린 채 물 위를 걷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기분을 느꼈다.
백금처럼 하얀 피부를 가진 남자가 조용히 채근했다. 『자네 동료의 머리가 눈앞에서 박살나는 광경을 보고 싶은 건 아니겠지? 장담하는데 결코 유쾌한 장면은 아닐 걸세.』 아무래도 저 남자는 존이 이미 죽은 사람이라는 것뿐만이 아니라 딘과 샘이 한 배에서 나온 형제라는 것 역시 모르는 모양이었다. 샘은 여러 가지 가능성을 저울질했다. 한쪽에 걸린 추가 내려갔다 도로 올라왔다.「우리가 좀 심하게 안 닮긴 했지」느릿느릿한 동작으로 주머니로 손을 넣었다. 남자가 머리를 밟은 다리로 힘을 주었던지 딘이 크윽 하고 신음 소리를 흘렸다. 샘은 더욱 조심해가며 핸드폰을 꺼냈고, 남자에게로 눈을 고정시킨 채 단축키를 눌렀다. 아빠의 핸드폰을 아직 정지시키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신호음이 두 번 갔고, 너무 들어 통째로 외워버린 익숙한 멘트가 흘러나왔다. 《존 윈체스터입니다. 지금은 부재 중이니 응급상황 시에는 제 아들 딘에게 연락을 주십시오.》 딘이 어깨를 꿈틀거리는게 느껴졌다. 그러든 말든 샘은 침착하게 핸드폰에 대고 말했다. 『저예요, 존. 샘 버커비츠이고 여긴 인디애나 주 에반스빌 부근이예요. 간단히 안부 인사를 할 상황이 아니라서 유감이군요. 딘이 좋지 않은 일을 당했어요. 그러니까... 뱀파이어에게요. 존, 이 메시지를 듣는대로 빨리 와주셨으면 해요.』
샘은 전화기를 귀에서 떼어내고「이제 되었지?」식의 몸짓을 해보였다. 땅바닥에 엎드린 딘이 어이구 하며 다시금 신음했다. 기가 막혀서 그러는 거라는 걸 샘은 눈치챘지만 뱀파이어 남자는 그 사실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아버지가 걱정이 되어 그러나? 그렇다면 진작에 자신의 행동거지를 조심하라 일렀어야지.』 남자는 만족스럽게 후후후 웃으며 자신이 밟은 인간을 짐짓 내려다 보았다. 『처음부터 존이 루더를 죽이지만 않았으면 이런 소동은 벌어지지 않았을 거야. 그렇다면 나도 편하게 암스테르담에서 와인이나 홀짝거리며 한가롭게 책이나 읽고 그림이나 그리고 있었겠지. 그치만 피 흘림은 일어났고, 누군가는 그 일에 대해 댓가를 치러야 할 걸세.』
딘은 이맛살을 잔뜩 찌푸렸다. 『당신, 도대체 누구야. 루더의 가족인가.』 『설마. 나는 생판 남일세.』 『그런데 왜...?』 남자는 한숨을 섞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어댔다. 『그게 좀 복잡하다네. 내가 하는 일은 일종의 교통 정리야. 비유하자면 축구 경기의 심판 같은 거랄까. 호루라기를 불면서「하프 코트 바이얼레이션~!!」을 외치는 거랑 비슷해.』 『이봐? 그건 축구가 아니라 농구라고.』 남자는 천둥이 하늘을 메웠다는 식으로 흠칫 몸을 사렸다. 『어? 농구였어? 미안, 미안. 하지만 농구면 어떻고 골프면 또 어떤가. 마찬가질세. 누군가를 죽이면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할 각오를 다져야 하지. 죽음은 죽음으로, 복수는 복수로 계승되는 걸세. 나는 그것을 지켜보고 피를 저울에 달아 그 값을 매기지. 그게 내 일이라네.』
저울에 올라가는게 양파나 토마토라고 해도 관심 없었다. 샘은 차갑게 응수했다. 『알게 뭐야. 하라는 대로 했으니 이제 그만 딘을 놓아줘.』 남자가 언뜻 자극적인 웃음 소리를 냈다. 『놓아달라고?』 『그래.』 『흐음. 존에게 전화를 걸면 자네 동료를 놔주겠다는 약속을 내가 했던가.』 크게 부릅 뜬 샘의 눈에서 검푸른 스파크가 튀었다. 『이 자식!』 『워워! 화내지 말게.』 그는 팔짱을 낀 자세로 도전하듯이 턱을 들어올렸다. 『기억을 더듬어보게. 부탁을 들어주면 이 자를 풀어주겠다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어. 나는 그저 존 윈체스터에게 전화를 걸어달라고만 했다고.』 『같잖은 말장난은 그만 둬. 그를 다치게 하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아이고, 무서워라.』 『장난 아니야! 당장 풀어줘! 지금 당장!』 『미안해. 그건 좀 곤란할 것 같아, 덩치 큰 친구. 일종의 보험이라고 생각하고 그를 계속해서 붙잡아 둘 필요성이 있거든. 혹시라도 존 윈체스터가 나타나지 않을 때를 대비해서 말이야.』 『뭐라고?!』 『그러지 말고 작별 인사나 하지 그래. 살아서 만나는게 이번이 마지막이 될지 누가 알겠나.』
Posted by 미야
2007/08/13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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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
스탠드를 끄고 서둘러 장비 가방부터 챙겼다. 예상치 못한 묵직함에 이크 소리가 절로 나왔다. 아무래도 내용물의 전부가 쇠붙이다보니 무게가 장난이 아니다. 자꾸만 옆으로 미끌어져 흘러내리려는 걸 끙끙대며 어깨에 둘러멨다. 덕분에 체중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다리가 휘청거렸다. 『보행기가 필요할 것 같음 빨리 말해라, 아가. 엄마가 마트 가서 사올게.』 『제 걱정은 말고 형님 몫의 젖병부터 챙기세요.』 동생의 툴툴거림은 한쪽 귀로 흘리고 창가로 다가갔다. 손을 뻗어 걸쇠를 단번에 잡아 올렸다. 다른 투숙객들이 베개를 집어던지며 시끄럽다 난리를 치든 말든, 배려라는 걸 모르는 문 두드리는 소리는 더욱 커졌다. 미친놈 육갑한다 욕설을 중얼거린 딘은 한쪽 다리를 열려진 창틀 위로 올려놓았다. 탄력을 이용해 체중을 앞으로 이동시키자 작은 머리가 밖으로 쏙 빠져나갔다. 이제 엉덩이만 들면 흙밭, 청춘사업을 그리 좋게 생각하지 않는 여자친구 부모님을 따돌리려는 것도 아닌데 신세가 무지하게 처량맞다.
『딘, 잠깐만!』 『왜!』 『지금은 새벽 3시야.』 『누가 뭐랬냐. 내가 아까 말한 거잖아. 정확히 3시 8분이다.』 『그래! 새벽 3시라고. 이런 시각에 문을 두드리는게 정상이 아니라는 건 누가 봐도 분명한데 뭐하러「수상한 사람들이 왔소이다」티를 내겠느냐고. 이상하다는 생각 안 들어? 잘못 판단했어, 딘. 정답은「정문으로 나가야 한다」야. 그것들은 일부러 문을 노크하는 걸로 주의를 돌리고는 십중팔구 반대편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듣고보니 그 말이 맞는 것도 같다. 딘의 움직임이 딱 멈추었다. 『그러니까... 샘, 네 말은 문밖에서 씩씩거리는 엄마는 속임수고, 여자친구의 아빠는 사다리 아래서 저놈 시키 다리 몽둥이를 확 분지르겠노라 단단히 벼르고 있을 거라는 얘기니?』 『무슨 비유가 그 따위야. 하여간 다시 들어와!』 라고 해도... 이미 몸통의 2/3 가량이 빠져나온 상태다. 딘은 남의 집 담장을 뛰어넘으려다 발목이 철창 사이에 끼어 오도가도 못 하게 된 멍청이처럼 눈을 동그랗게 떠보였고, 눈치가 빠른 샘은 그를 다시 방안으로 들어오게 만드는게 생각만큼 쉽지 않을 거라는 걸 깨달았다. 우리 형이 그동안 파이를 얼마나 먹어치웠으면 엉덩이가 코끼리 하마가 되어버렸어 - 과잉 영양소와 잉여 지방이 만들어낸 재앙에 탄식하며 물고기로 가득찬 그물과 씨름중인 어부처럼 딘의 옷자락을 거머쥐었다. 안으로 해서 힘껏 당기자 셔츠의 박음질된 부분이 찌익 - 수상쩍은 소리를 냈다. 아무래도 잡힌게 물고기가 아니라 바위인 모양이다.
『이잇! 당분간 애플파이는 구경도 못할 줄 알아! 맥주도 금지! 피자도 금지! 중국음식도 금지! 앞으로 맨날 야채만 먹는 거다!』 『생뚱맞게 갑자기 뭔 소리야.』 『살쪘어! 무겁다고!』 『이게 지금 누구더러 돼지라는 거야! 나는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너는 반대로 안으로 끌어당기려 하고 있으니까 그렇지! 당장 손 놔. 너, 지금 내가 가장 아끼는 옷을 찢어먹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니?』 『No! 내 말 들어, 딘. 그리로 나가면 안돼. 매복하고 있을 거라니까!』 누가 그걸 모르나. 딘은 다급한 마음에 옷자락을 붙잡은 샘의 손등을 찰싹찰싹 때렸다. 『시끄러. 저기서 문짝을 흔들어대고 있을 애들은 뱀파이어가 아니라든? 이쪽이나 저쪽이나 어차피 매한가지라면 제일 짧은 거리를 택하는게 현명한 거야. 우아하게 카페트 깔린 현관으로 걸어나오고 싶음 맘대로 해. 하지만 난 지름길로 갈란다. 우린 임팔라를 세워둔 곳까지 어떻게든 가야만 한다고.』 그리곤 위아래 방향으로 눈을 흘겼다. 『어쩔겨. 형의 말은 무시하고 네 맘대로 해볼텨?』
끙 소리를 내뱉은 샘은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을 딘에게로 훌쩍 던졌다. 이렇게 되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따라나설 수밖에 없다. 서두르느라 창틀에 이마를 세게 부딪쳤다. 설마, 자기 머리를 깨뜨릴 작정인가 - 아파하는 샘을 본 딘은 늘 그렇듯 인상을 찡그리고는 꽉 다문 입술 끝을 1cm가량 아래로 내렸다. 재빨리 양팔을 뻗어 누구보다 긴 다리를 가진 동생이 혹시라도 껑충걸음을 하다 넘어지지 않도록 붙잡았다. 그리고는「야채를 먹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너다. 왜 이렇게 무거워?!」라고 쏘아붙였다.
『어두워...』 입구를 장식하고 있던 색색이 전구가 꺼져 있었다. 샘은 그 점이 마음에 걸렸다. 물론 전기요금을 한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관리하는 직원이 일부러 전원을 내렸을 수도 있다. 그러나 흉물스런 분위기를 감추고자 대낮에도 불을 환히 켜놓는 업소가 많다라는 걸 염두에 두자면 그 가능성은 매우 적었다. 차갑게 식은 몸이 부르르 떨렸다. 샘은 근심에 젖어「모즈볼리 모텔」이라 적힌 간판을 올려다 보았고, 거짓말 같은 타이밍으로 순간 전기가 팟 하고 떨어졌다. 두개골에 박힌 조임쇠의 나사가 한도 이상으로 돌아갔다. 샘은 압력에 의한 두통을 느꼈다. 새카맣다. 샘은 모텔의 구부러진 지붕창으로 비명이 깃발처럼 걸리는 걸 보았다. 세계는 검은 마법에 걸려 이미 오염되었다. 발등을 타고 불길함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려 했다. 질겁을 해대며 바지를 털었지만 그것은 암처럼 조용하고도, 신속하게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검정... 목탄을 스케치북에 겹겹이 문질러댄 검정의 얼룩이다. 아니, 이것은 초자연적 어둠이다. 그는 늘 어둠이 두려웠다. 세계의 절반은 죽음으로 이루어졌다는 걸 끊임없이 주장하는 어둠이 싫었다. 어둠은 엄마를 데려갔고, 평온한 삶을 망쳤고, 아빠를 나쁘게 변화시켰고, 형을 위험에 빠뜨렸다. 존 윈체스터는 용감하게 맞서 싸우라며 권총을 선물했다. 무기를 들어 결코 흐트러질 일 없는 절대적 어둠을 조준하라고 명령했다. 「그치만 아빠!」 윙윙 소리를 내는 바람이 다듬어지지 않은 긴 머리카락을 들었다 도로 놓았다. 한참이나 먼 옛날에 시들어버린 풀의 내음이 토기를 불러 일으켰다. 이제는 더 이상「생명」이라 할 수 없는 것들이 빛바랜 호흡을 내뱉었다. 샘은 그놈의 빌어먹을 숨결이 피부에 닿는 감촉을 차마 견딜 수가 없었다. 차라리 지하실의 곰팡이 냄새와 젖은 하수구의 냄새를 평생 맡는게 나았다. 「아버지, 권총으론 부족해요. 턱도 없다고요. 아홉 살, 나는 아홉 살이예요. 어둠은 너무 커서 오히려 내가 잡아먹힐 것만 같아요. 그리고 그것들은 사방에 있어요. 나의 오른쪽, 왼쪽, 그리고 앞과 뒤, 어디에든 있어요.」
『진정해, 새미. 전기가 나간 것뿐이야.』 사실은 그게 아니라는 걸 잘 알면서도 딘은 상황의 심각함을 애써 축소시켰다. 『단순히 합선된 것일 수도 있다고.』 샘은 가쁘게 숨을 헐떡거리며 딘을 돌아다 보았다. 동생의 눈이 이상하게 빛나고 있었다. 화를 내는 것 같기도 하다. 아니면 눈물이 고인 것일 수도 있다. 『하필이면 이 순간에?!』 『우연이라는게 존재하기에 세상은 요지경인 거야. 까마귀가 날면 배는 떨어지게 되어 있다고 누군가 그랬어. 그런데 그게 누구냐고 꼬치꼬치 따져묻지는 마. 기억이 나지 않으니까.』 그런게 어딨느냐며 샘이 싫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말대로라면 배를 키우는 과수원 주인이 독약을 풀어 까마귀를 모조리 잡아죽이려 하지 않겠느냐 한 마디 할 기세다. 딘은 귀찮아지기 전에 동생의 등을 훌쩍 미는 것으로 선수를 쳤다. 어차피 떠오르는대로 아무렇게나 지껄여댄 말인데 이 마당에 진짜냐 가짜냐를 따지는 건 우스웠다.
『차 있는 곳으로 빨리 가기나 해!』 샘이 정신없이 뛰기 시작하자 딘은 산탄총을 꺼내들고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몹쓸 것들이 나무 뒤로 숨었을 수도 있다. 아님 주차된 자동차 사이로 웅크리고 있을 수도 있다. 헌터의 감각을 총동원해서 기척을 읽으려 노력했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기분이다. 다행이다. 긴장을 하면 할수록 냉정해졌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 사물을 분석하기 시작했고, 딘은 만약 그것이 아름다운 천사의 형상이나 엉덩이로 무지개를 쏘아대는 유니콘을 닮았더라도 망설이지 않고 참살해야 할 거라고 각오를 굳혔다. 어둠을 주시해라. 아버지의 목소리가 힘을 주었다. 동생을 지켜라. 딘은 반드시 그러겠다는 의지를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할 수 있다, 에이스. 총구를 옆으로 휙 하고 비틀어 접근해오는 모녀를 위협했다. 입술을 바짝 타들어가는 감각이다. 여자. 그것도 어린 딸의 손을 잡고 있는 여자였다. 헐렁한 사이즈의 녹색의 원피스는 어둠 탓에 상복처럼 검게 보였다. 나이는 서른 정도쯤, 대단히 말랐고, 머리를 짧게 다듬었다.
『경고하는데 거기서 더 이상 움직이지 말아줘.』 원피스 차림새의 여자는 야단을 잔뜩 맞은 초등학생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만 있었다. 지갑이나 핸드백도 없이 맨손이다. 대신 여섯 살짜리 딸을 무슨 트렁크 짐짝인양 꽉 붙들고 있었다. 『헤이!』 크게 불렀음에도 여자는 이렇다 할 대답을 하지 않았다. 실수로 떨어뜨린 결혼반지를 찾고자 땅바닥만 쳐다보며 30리 길을 걸어왔다는 식이다. 그만큼 지쳐보였고, 남에게 관심이 없는 듯했다. 설마, 잠이 든 채로 걷고 있는 건가. 어쩐지 의식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속이 텅 빈 쭉정이의 느낌이다. 손가락으로 문지르면 그대로 바스라져 사라질 것 같았다. 벌레에 물려 등이 가려워 미치겠다는 식으로 이리저리 몸을 비틀고 있는 아이와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찰칵 소리가 나게끔 총을 장전했다. 딘은 차분하게 엄마에게서 다시 딸로 시선을 옮겼다. 딱 이거다 하고 꼬집어 설명할 순 없었지만 그를 되바라지게 쳐다보는 아이의 눈은 검정에 가까운 짙은 갈색이었다. 도대체 무슨 의도로 저러는 것일까 하고 의아해 하는 것과 같이하여 아이가 엄마의 손을 놓았다.
『형!』 저편에서 샘이 그의 이름을 불렀고, 다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았다. 여섯 살짜리 아이의 눈동자에서 순수에 가까운 악의를 발견한 것과 동시에 왼쪽 손목으로 끔찍한 통증이 몰려왔다. 날카로운 침이 근육을 뚫고 뼈까지 곧장 닫는 것 같았다. 「망할 것이 내 손을 물어뜯었어!」 살살 해야겠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갖고 있지 않았다. 오른손에 쥔 산탄총을 휘둘러 아이의 머리통을 세게 때렸다. 신음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꽉 맞물린 어금니는 강철의 덫인양 쉽게 풀리지 않았다. 안 되겠다 싶어 총을 힘껏 뒤로 당겼다가 반동을 사용하여 다시 휘둘렀다. 이번에는 관자놀이를 정확히 명중시켰고, 아이는 트럭에라도 치인 것처럼 옆으로 고꾸라졌다. 신발이 벗겨지면서 어린애의 하얀 양말이 어둠속에서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걸 보자 숨이 턱 막혀왔다. 딘은 자신이 흉악한 강간마라도 된 듯한 끔찍한 감각에 몸부림쳤다. 『애까지 이용하다니! 죽일 놈!』
짐승이 목을 울려대는 것 같은 쇳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려왔다. 동시에 아이 엄마가 기다란 송곳니를 드러내며 덤벼들었다. 얼굴 전체가 뾰족거리는 뱀파이어의 이빨로 보였다. 두고 볼 것도 없었다. 딘은 여자의 얼굴 정 중앙, 정확하게는 코 부분을 노리고 한 방 쏘았다. 커다랗고 시뻘건 구멍이 뚫렸음에도 그녀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대신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손목을 갈고리처럼 휘둘렀다. 그것을 똑바로 응시하며 오른쪽으로 몸을 피했다. 동시에 제3의 존재가 불쑥 딘을 덮쳐왔다. 「젠장, 여자는 미끼였군. 온 가족의 협공 작전인가. 그렇담 이번엔 아빠 차례겠군.」 당했다고 생각한 것과 동시에 거한의 남자가 온 몸의 무게를 실어 딘을 쓰러뜨렸다. 바닥으로 넘어지면서 딘은 자갈에 닿은 등이 아파서 미칠 지경이었다. 아니, 그보단 자신을 깔고 앉은 남자의 몸무게가 신경이 씌여 견딜 수가 없었다. 100kg은 확실이 넘을 것 같고... 순식간에 머리로 피가 몰려 어지러웠다. 그래도 딘은 눈을 감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목을 노리는 손가락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굵은 엄지손가락이 신속하고도 깊숙하게 목을 파고들었다. 이 마당에 정신을 놓으면 저승길 행차는 상식이다.
《존 윈체스터...? 네놈이 존 윈체스터인가.》 이 바부탱이가! 아버진 이미 돌아가셨다고. 젖 먹던 힘을 다해 총구를 남자의 배로 돌렸다. 탕 소리가 나면서 남자의 몸이 크게 튕겼다. 목을 조르던 손가락 힘이 살짝 느슨해지자 두 번째로 방아쇠를 당겼다. 『똑바로 들어! 나는 존 윈체스터의 아들, 딘 윈체스터다!』 허벅지를 세우고 남자를 걷어찼다. 재빨리 몸을 뒤집고 왼편으로 미끌어졌다. 남자가 다시 붙잡기 전에 일어나야 했다.
Posted by 미야
2007/08/09 23:32
2007/08/09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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