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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돌이켜보니 무모한 짓거리였습니다. 3시즌이 시작하기 전에 끝낸다는 원대한 포부는 물거품으로 사라졌고... 딘은 점점 리나 인버스가 되어가고 있고... 몰라. 어떻게든 완결이다 아자아자인 겁니다. ※


샘은 좀처럼 방아쇠를 당길 기회를 잡을 수가 없었다.
뱀파이어의 머리를 제대로 겨냥했다고 생각하자마자 곧바로 딘의 등이 시야에 가득찼다. 흠칫하고 놀란 그는 총구를 아래로 내리고 자신이 명 사격수가 아니라는 점을 상기했다. 담장 위로 빈 맥주 깡통을 죽 진열해놓고 화약을 당기면 딘은 열 개 가운데 열 개를, 샘은 기껏해야 여섯 개를 맞추는 실력이다. S자로 유연하게 휘는 마법의 탄환으로 퍼레이드 중인 존 F 케네디를 암살하는게 아니라면 쓸데없는 모험은 하지 않는게 낫다.

『빌어먹을!』
평소에 사격 연습을 열심히 할 걸 그랬다는 때늦은 후회는 쓸데없다. 그런 여유로운 행동을 할 짬은 있지도 않다. 이제 딘은 뱀파이어에게 가까이 붙어 훅을 날리고 있었고, 주먹을 날린 횟수의 정확히 그 두 배를 고스란히 얻어맞고 있었다. 샘은 도리질을 했다. 완전히 미친 짓이다. 으르렁대는 늑대인간에게 살아있는 고양이를 집어던질만큼 원래부터 무모한 인간이었지만 뱀파이어와 주먹다짐을 할 정도로 정신이 나갔을 거라고는 미처 몰랐다. 설마, 저 인간은 학교에서 호모 파베르 - 인간은 도구를 사용하는 동물이다 - 라는 단어를 배운 적이 없는 건가. 아님 교과서를 덮자마자 시험 범위가 아니라는 말만 믿고 뇌리에서 죄다 삭제시킨 건가.
『칼은 왜 안 쓰는 거야! 총은 뒀다 뭐해! 수족관에서 펭귄을 찾을 멍청이 같으니!』
이건 말이 안 된다. 도구의 사용을 잊고 오로지 맨주먹만 갖고 덤비는 형은 낯설다. 딘은 상대에 따른 적절한 무기 사용이라는게 뭔지 제대로 꿰고 있었고, 그들이 숙지하고 있는 뱀파이어에 대항하기 위한 도구는 사람의 주먹따위가 결코 아니었다.

여자가 기회를 잡고 딘의 목울대를 후려쳤다. 외마디 비명을 지른 딘이 몸의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위험이라는 글자와 같이 해서 머리로 빨간 불이 들어왔다. 샘은 각도를 다시 잡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래봤자 매순간 목표물의 위치가 변하고 있으므로 빗나갈 가능성은 높았고, 어쩌다가 운이 좋다보니 식의 기적은 일어날 것 같지 않았다.
확신이 들지 않자 총구가 흔들렸다.
하는 수 없었다. 샘은 보다 나은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이를테면 나사의 인공위성 시스템을 해킹한다던가, 마피아 두목의 여자 친구와 스트립 포커를 친다던가, 주유소 앞에서 라이터를 들고 가스통을 터뜨린다던가 하는 식의...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뒤로 젖혔다. 판단이 서자 몸을 돌려 여기까지 들고 왔던 가방의 소재를 찾기 시작했다.

그 정신 없는 와중에도 리가 앙칼진 목소리로 버럭 고함을 질러댔다.
『샘! 옆을 봐!』
『안다고! 알아요, 리! 나도 안다고요!』
무릎으로 미끌어지며 가까이 접근하는 사내를 향해 세 발의 총을 쏘았다. 탄환 한 발이 목덜미 정 중앙을 관통했고, 두 발의 탄환은 팽창하는 우주 어디론가로 깨끗하게 증발했다. 1/3의 확률이었지만 남자는 온몸을 비틀며 옆으로 나동그라졌다. 검고도 작은 구멍에서 생명이 탈출을 시작했고 사내는 몸을 굴려 어떻게든 일어서려 발버둥을 쳤다.
「무시해. 이제 저건 더 못 움직여. 그러니까 찔끔거리며 쳐다볼 것 없어. 침착해야 해!」
의자 아래로 몸을 끼워넣으며 재빨리 탄창을 갈아끼웠다. 호흡! 호흡! 샘은 커다란 갈색 곰인형을 껴안는 감각으로 무거운 가방을 꿰찼다. 성부, 성자, 성령, 그리고 라마즈 호흡법의 이름으로! 훅 하고 숨을 들이키는 것과 같이 하여 좁은 의자 틈새로 피투성이 팔이 튀어나와 샘의 엉덩이를 덥썩 쥐었다. 샘은 조금은 다른 의미로 비명을 지르며 - 이것아, 지금 너의 행동은 명백히 말해 성희롱이닷! - 허겁지겁 손길을 뿌리치고 반대편 의자 밑을 향해 기어갔다.

가방 안에는 갖은 종류의 쇳덩이 말고도 포도니 오렌지 같은 과일 그림이 그려진 음료수 병이 너 댓개 가량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목이 마를 때를 대비해서 냉장고에서 무작위로 적당히 꺼내온 주스 같은게 아니었다. 샘은 제일 먼저 보라색 포도 그림을 골랐고, 노랑과 주황색의 오렌지와 망고 그림의 병은 예비품으로 양쪽 주머니 속에 찔러넣었다. 뚜껑이 제대로 잘 닫겨 있었음에도 휘발유 특유의 싸한 냄새가 코를 찔러댔다.
무척 먼 거리였음에도 액체가 찰랑거리는 소리를 들은 것이 분명하다. 양손에 칼을 쥐고 깍뚝썰기에 열중하던 리가 매운 고추를 입에 잔뜩 넣고 씹기라도 한 것처럼 난리를 치기 시작했다. 그녀는 방금 전에 신속한 동작으로 뱀파이어의 목을 친 뒤라서 얼굴 절반이 핏물로 세수한 몰골이었다.
『새~앰!』
『지나가는 똘똘이 부르듯 하지 마요! 바빠요!』
『이 망할 자슥아! 틀려! 성수는 안 통해. 뱀파이어에겐 성수는 안 통한다고!』
『누가 그걸 모를까봐! 이건 성수가 아녜요.』
『뭣?!』
『성수가 아니라고!』

준비가 되었다고 판단이 되자마자 엎드려 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텅 비어있는 성가대석을 향해 주스 병을 높게 던졌다. 유리로 만들어진 병이 박살나는 쨍그랑 소리가 먼저였는지, 아님 샘이 발사한 총성이 먼저였는지는 불분명하다. 아무튼 여기서 중요한 건 불꽃이 치솟으면서 화염이 예배당 안의 공기를 탐욕스레 빨아당기기 시작했다는 거였고, 화학섬유로 만들어진 얇은 장식용 커튼이 순식간에 오그라들며 시커멓게 타들어갔다는 거다. 예배당은 소방관이 눈살을 찌푸릴 만큼 광택이 나는 바니쉬로 마감질을 한 나무들 천지였다. 유독가스와 화염으로 눈이 따가워졌다. 1초도 채 지나지 않았음에도 곧게 발기한 불기둥이 천장까지 닿으려 했다.

맙소사. 불! 리는 경악에 가득차 머리로 손을 올렸고 샘은 어딘지 모르게 나사가 두 개는 빠진 듯한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불덩어리는 이제 여러 줄기로 나뉘어져 벽을 타고 이동하는 중이었다. 그 모습은 밝게 빛나는 수만 마리의 벌레가 무리를 지어 일시에 날개짓을 하는 것처럼도 보였다. 벌레들의 동작은 척척 손발이 맞았고, 자기네들만의 신호를 주고 받으며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것들은 열대지방의 햇살처럼 지독했고, 뜨거웠다.

『이 병신 낯짝이 지금 무슨 짓을! 뱀파이어만 불에 타는게 아니야! 우리도 불에 탄다고!』
『알아요.』
『정말로 뭘 알긴 아는 거니?! 콜록!』
벌써 시야가 흐릿해지고 있었다. 뜨거운 열기는 어디까지나 둘째고 이러다 호흡곤란으로 죽게 생겼다. 연기가 차오르는 속도가 장난이 아니다. 좌우를 두리번거리던 리는 발작적으로 기침을 터뜨리며 허리를 구부렸다. 그녀는 뱀파이어를 죽이는 일엔 그 누구보다 도사였지만 소화기를 작동하는 법이라던가 불을 끄는 일엔 관해선 문외한이나 다름 없었다. 귓청이 떠나가라 화재 경보기가 울렸다. 불똥이 날리기까지 하자 이젠 진짜지 장난이 아니게 되었다.

『케엑! 켁켁! 목 아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잘 들어요, 리!』
『뒈져 죽어. 이 석탄 곰국아.』
『잘 들으라니까!! 봐요. 이 예배당은 입구가 하나예요. 출구를 지키고 서서 녀석들이 밖으로 못 나오게 막기만 하면 된다고요. 그럼 깨끗하게, 나중에 머리 아파할 일 없이, 완벽하게 끝나요.』
『말은 쉽지! 쿨럭...!! 벽지에 불 붙었잖아! 자칫하면 우리도 휘말리게 된다고! 이 정도의 건물이 전소되는 건 순식간이야! 인석아! 난 베리 웰던으로 구워지는 건 싫엇!』
『내 말을 믿어요. 우린 모두 안전할 거예요. 자! 이걸 갖고 문쪽으로 가요!』
샘은 리에게 망고 그림이 그려진 병을 던져주며 입구를 향해 손가락질 했다.
『가요!』

그녀는 전국을 순회중인 사기꾼 부흥사를 쳐다보듯 샘을 봤다. 비록 순백의 양복을 입고 있지는 않았지만 알맹이도 없이 무조건 믿으라고 말하는 건 똑같았다. 그리고 불쑥 내어미는 것이다. 커다란 연봇함을. 리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지갑을 털어가는 강도를 쏘아보며 치를 떨었다.
『이놈이 지금 나더러 뭘 믿으라고?』
『제발, 리...』
지금은 잘 했네, 잘 하지 않았네를 두고 논쟁할 때가 결코 아니었고, 샘은 다시 고함을 질러댔다. 홍해는 갈라져라! 반석은 깨질지어다! 개구리의 비는 내려라!
『가요!』
리는 코를 찌르는 땀냄새를 맡았다. 그러자 갑자기 뛰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그녀의 입이 딱 벌어졌다. 미치광이의 냄새다.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가 굳어 썩어가고 있다.

코를 쥐고 부리나케 입구를 향해 뛰어가는 리와는 달리 샘은 꼼짝도 않고 서있었다. 너무나 많은 자료를 한꺼번에 연산 처리해야 하는 컴퓨터가 그러하듯, 필사적인 마음과는 정 반대로 속도가 느려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덧붙여 일시적인 오류 현상마저 일어나 오른팔과 오른다리가 동시에 앞으로 나갔다.
불은 싫다. 엄마가 죽었다. 제시카도 죽었다. 시뻘건 불길에 휩싸인 그녀들은 뼛조각 하나 남기지 않았다. 미래는 송두리째 삼키워지고, 그녀들의 아름답던 육신은 연기로 화했다. 샘은 천장을 올려다 보았다. 슬립 차림새의 그녀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아파서, 괴로워서, 신음을 흘리는 엄마도 거기에 있었다. 피는 붉고, 불꽃도 붉다. 몹시도 고통스러워하는 그녀들은 숨을 크게 들이킨 뒤, 최후의 기력을 쏟아부터 짧은 한 음절의 단어를 뱉는다.
「샘.」
불은 싫다. 아무리 없애버리려 해도 검게 그을린 자국이 사라지지 않는다. 얼룩은 - 오래되어 말라붙은 핏자국을 닮은 그것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오늘도 그의 엄마는, 가엾은 여자 친구는 뜨거운 화염 속에서 그의 이름을 부르며 모든 재앙의 원흉이 누구인지를 고발한다.
「샘...」
그런가. 샘은 묘하게도 납득할 수 있다. 이곳은 법정이다. 그러니 죄인은 자신이 지은 죄를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샘은 혀를 내밀어 입술을 축였고, 어쩔줄 모르는 어린애처럼 울음을 터뜨리기 전에 그녀들을 향해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새미~!!』
환청이 아니었다. 호령하며 부르는 목소리에 배가 가로로 갈리워진 그녀들이 똑같은 동작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망할 자식! 염소 똥! 맨날 계란 후라이만 먹다 콜레스테롤에 중독되어 죽어버릴 자식!』
샘은 그가 은빛의 후광으로 둘러싸여 있다고 착각했다. 높은 산에서 폭풍우가 칠 적에 가끔씩 보인다던 성 엘모의 불빛처럼 딘의 머리둘레는 번쩍번쩍 빛이 났다. 샘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고 미소를 지었다. 아아, 천사다. 변호인이다. 유일하게 그의 무죄를 주장해주는 듬직한 아군이다. 연기와 먼지를 배경으로 하고 등장한 그는 날개를 여섯 장이나 가진 미카엘 대천사처럼 씩씩했다.
『망할! 맹세코 앞으로 3개월동안 계집애처럼 쭈그리고 앉아서 소변 보게 해주겠어!』
매운 연기에 콜록대며 기침을 터뜨린 딘은 허공에 대고 주먹을 흔들어 보였다. 입이 걸걸하다는 것만 빼면, 그리고 협박의 내용을 절대로 잊지 않고 실천에 옮길 위인이라는 점만 빼면 그는 모든 걸 맏기고 의지해도 되는 사람이었다. 샘은 그 사실이 기뻤고, 안심이 되었다. 매일이 불안하고 고통스러워도 형만 옆에 있어준다면 이 모든 혼돈에서도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었다. 자신이 짊어지고 갈 것의 무게로 인해 압사당하지 않을 자신이 생겼다.

아아, 웃는 엄마가 불속에 있다.
웃어주는 제시카 또한 불속에 있다.
그녀들이 딘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콜록! 샘. 나랑 약속했잖아! 일을 전부 마무리짓고 나서 불을 지르자고! 이놈의 썩은 무우 대가리가 왜 벌써부터 설치고 지랄이야!』
『약속 못 지켜서 미안. 하지만 형이...』
『설명은 나중에 듣자, 동생아. 뜨거워 죽겠다! 바비큐! 젠장! 바비큐!』

그는 불이 싫었다. 불은 늘 딘에게서 소중한 걸 빼앗아가곤 했다. 매일밤 천사에게 보호를 부탁하던 엄마가, 환하게 웃어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아빠가 그날 밤의 불과 함께 사라졌다. 한 번 사라진 것들은 두 번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증발해 버렸다. 그렇게 해서 딘은 집을 잃었고, 미소짓는 가족을 잃었다.
딘은 자신에게 마지막 하나 남은 행복을 으스러져라 붙잡았다.
불은 짜증난다. 머리카락으로 재앙이 붙기 전에 서둘러 동생을 데리고 피해야 했다.

『그 여자는? 형이랑 주먹질하던 뱀파이어는 어딨어.』
『게지나? 알게 뭐람. 너 때문에 뒤로 밀치고 그냥 나왔다. 하여간 너란 녀석은 내가 눈만 뗐다 하면 이때다 하고 사고만 치...』
거기까지 말하고 딘의 목소리가 갑자기 뚝 끊겼다.

영문을 몰라 눈만 동그랗게 떴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건 뭘까, 샘은 곰곰이 생각했다.
딘의 목덜미로 뭔가가 들러붙었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다. 굉장히 크다. 그리고 어쩐지 무시무시하다.

싫은 느낌.
하얗게 번득이는 날카로운 송곳니.
힘주어 아득 씹는 소리... 굉장히 멀리서 들려왔다.

Posted by 미야

2007/09/30 17:45 2007/09/30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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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List

  1. 고고 2007/09/30 23:45 # M/D Reply Permalink

    앗싸......덩실덩실. 드디어 딘이 물리는군요. 시즌 3에도 요런 장면 나와주면 정말 고맙겠는데요. 잘 읽고 갑니다.

  2. 이즈 2007/10/01 16:25 # M/D Reply Permalink

    정말 딘이 물린걸까요?? +_+ 왠지 샘의 긴 팔이 딘 목을 감싸을 수도...
    그럼 샘이??...+_+;;; 다음편이 궁금하옵니다...ㅠ0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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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아무래도 늦었습니다. 마음에 안 든다고 메모에《철썩, 철썩, 철썩》이라 적어 보내지 말긔. ※


딘은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한 괴물과 싸운 적이 있다.「모습 변환자」라고 불리우는, 하수구 냄새를 뼛속에서부터 풍기는 무지 더러운 녀석이었다. 재주도 좋아 남의 목소리까지 훔쳐간 괴물은 남의 집에서 위험천만하게도 부엌칼을 휘둘러대고, 샘을 흠씬 두둘겨 패고, 더욱이 동생을 깔고 앉아 두손으로 목을 졸라대기까지 했다.
은탄환이 장전된 무기를 들어 녀석을 조준하면서 딘은 기계적으로 딱 한가지 생각만 했다.
- 심장을 노려. 행여라도 빗나가면 안돼.
거울을 마주본 채 총을 쏘고 있다는 떨떠름한 기분은 0.5초도 지속되지 않았다. 어차피 그것은 딘이 아니었고, 무엇보다 그가 진심이 되어 샘을 죽이려 들 리가 없었다. 방아쇠를 당기는 동작엔 그래서 한치의 머뭇거림이 없었다. 겉가죽이 많이 닮은게 그게 뭐가 어때서? 처음부터 녀석은 남의 외모를 등쳐먹고 사는 괴물이었다. 은탄환을 심장에 박아넣으면 죽일 수 있었고, 딘은 녀석을 골로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어서 다행이라 여겼다. 그게 전부였다.

그치만 지금은?
모르겠다.

『어느날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이제부터의 내 앞날이 지금과는 달라도 한참 다를 거라는 걸 깨달았다. 그냥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어. 소중한 것이 영원히 사라졌고, 드디어 나는 이 세상에 홀로 남겨졌고, 그 때문에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는 걸 말이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루더의 이름을 불렀지만 그 아인 이 누나의 부름에 대답하지 않았어. 아니, 대답할 수 없었지. 사무엘 콜트가 만든 총에 맞고 영혼이 갈기갈기 찢겼으니까. 맙소사... 그 아이의 심장 소리가 사라졌는데도 난 울 수도 없었어. 눈물이 말랐어. 그렇게나 두려워하던 일이 현실이 되었어. 가족을 전부 잃었어. 나만 남았어. 어머니, 아버지, 동생... 다 떠났어. 카밀은 도망쳤고, 내 혈종들은 침묵했어. 내게 남은 건 오로지 절망뿐이었다. 정말 무서웠다. 견딜 수 없어 비명이라도 질러볼까 생각했는데 배를 바짝 끌어당겨도 끙끙 소리조차 나오지 않더군. 그저 온종일 거칠게 헐떡거리는게 전부였어. 가슴이 짓이겨지는 것처럼 아팠는데도 목에선 아무 소리도 안 나왔어.』
그녀의 입술 귀퉁이가 가늘게 경련을 일으켰다.
『나는 혼자야. 이 세상에 나 혼자! 나만 남았어!』
눈을 커다랗게 뜨고 뱀파이어를 쳐다보았다.
그 다음 말에 딘은 등줄기로 소름이 얼음 알갱이인양 쭉 뻗쳐올라는 것을 느꼈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었어! 나는 뭔가를 해야만 했다. 뭐라도 해야만 했다!』

뼈와 가죽이 끊기는 우득 소리가 나면서 가슴에 박혔던 칼이 다시 온전히 그 모습을 드러냈다. 셔츠 앞섶이 시뻘겋게 젖어들었다. 외관상 출혈은 제법 커보였지만 인간이 봤을 적에나 그런 것이고 불사에 가까운 뱀파이어에겐 그리 심각한 상황은 아닐 터, 그녀는 상처가 난 부위를 손바닥으로 지긋이 눌렀다가 피투성이로 변한 손을 들어 보란 듯이 길게 혀로 핥았다.
『우습게도 난 아.직. 제정신이다. 차라리 이대로 미쳤으면 하고 간절히 바랬지만 그것도 그리 쉽지는 않더군.』
녹슨 쇠붙이 냄새가 더욱 짙어졌다. 똑, 하고 한 방울의 피가 바닥을 향해 떨어졌다.
피! 딘은 자신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동시에 원추형 무늬의 자잘한 핏방울이 구두에 지워지지 않을 얼룩을 남겼고, 단숨에 눈을 찌르려 하는 칼날을 피해 옆구리를 세게 비틀었다.

『딘!』
경고하는데 거기서 내 이름을 부르지 마, 새미.
『디인!』
지금은 아무도 날 불러선 안돼.
『물러서! 물러서라고! 나, 여기서 저 여잘 쏠 거야! 딘! 제발 비켜! 듣고 있어?!』

아니.
네 말은 듣지 않겠다.
여기서 어떻게 물러설 수 있을까.
저 여자의 모습은 미래의 내 모습. 저 여자는 나. 언젠가... 멀잖은 시간 뒤의.
피하지 말고 똑바로 보아야 한다.
샘, 네 형도 곧 저렇게 될 거란다.
그러니까, 새미.
이 형은 어디로도 갈 수 없어. 그저 필사적으로 주먹을 쥐어야만 하는 거야.

옆구리의 통증을 묵살한 채 있는 힘을 향해 팔을 휘둘렀다. 이번에도 여자는 딘의 눈을 공격하려 했고, 둘 다 무시무시한 기세로 충돌했다. 피투성이 주먹이 딘의 머리를 잡아챘고 딘은 질세라 이마를 바짝 들이밀었다. 몸과 몸의 좁은 틈새에서 유리 칼날이 어지럽게 칼춤을 추어댔다. 몇 번인가는 옷자락과 같이하여 살갗을 베었다. 딘은 이를 악물었고 게지나는 으르렁대는 개처럼 입술을 위로 말았다. 날카로운 이빨이 송곳처럼 튕겨나왔다. 위험하다. 딘은 온몸이 진땀으로 흠뻑 젖은 것 같았다. 축축해진 속옷이 기분 나쁘게 들러붙었다. 근육을 당겼다가 그대로 찌르면서 주먹으로 여자의 입을 쳤다. 때리고, 한 박자 쉬었다가 다시 때렸다. 그 충격으로 두 서너개의 엄니가 잇몸에서 빠져나왔다. 날카롭고도 하얀 이빨은 흡사 줄이 끊어진 목걸이에서 빠져나온 깨어진 진주처럼 보였다.
『카악!』
그녀는 보복으로 박치기를 시도했다. 망치로 벽을 찧는 퍽 소리와 함께 눈앞이 잠시나마 흐릿해졌다. 광대뼈 위쪽으로 활활 다는 통증이 산불처럼 번져나갔다.

옆에서 누군가 쇳소리를 질러댔다. 찢기는 듯한 처참한 비명이었다. 딘은 누군지도 모를 그 멍청이에게 시끄러워 죽겠으니 제발 입 좀 닥치라고 한바탕 욕설을 퍼부어주고 싶었다. 그 소리가 계속된다면 멋지게 발광해버릴 것만 같았다. 제발, 제발, 제발! 그러다 깨달았다. 그놈의 시끄러운 멍청이는 그렇게 멀리 있지 않았다. 뱃속 깊숙이로부터 올라오는 악악대는 비명은 다름 아닌 자신의 입에서 터져나오는 중이었다.

《겁 내지 말거라.》
마구 날아다니던 칼날이 2cm 깊이로 어깨를 찔렀다. 통증과 쓰라림에 등까지 다 찌릿거렸다. 그래도 물러설 수 없다. 딘은 호흡을 멈추고 배 아랫부분으로 강하게 힘을 주었다. 그리고는 칼의 손잡이를 쥔 뱀파이어의 손을 수직으로 들입다 내리찍었다.
《네 동생을 잘 지켜주어라, 딘.》
귀라는게 몸에서 떨어져 나갔음 좋겠다. 진심으로 딘은 그렇게 생각했다.
뇌라는게 녹아서 흔적도 안 남기고 송두리째 증발했음 좋겠다. 진심으로 딘은 간절히 원했다.
《만약 지킬 수 없다면...》
말 그대로 스컹크가 방구를 뀌다 배를 뒤집고 죽을 발언이었다.
《샘을 네 손으로 죽이거라.》
저항할 틈을 주지 않고 뱀파이어의 주먹이 딘의 목울대 한 가운데를 강하게 가격했다. 앞이 까맣게 변하려 했다. 딘은 두손을 목으로 가져가곤 그대로 뒤로 나동그라졌다.

- 똥 덩어리 같은 아버지!

판단력이고 체면이고 뭐고 다 집어던진 여자가 괴성을 지르며 쓰러진 그의 몸 위로 올라탔다. 통증, 절망감. 상실감, 왜 나는 이대로 미칠 수 없는 거지, 거울처럼 서로의 모습을 고스란히 반사한 눈동자가 충격적인지라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상대방의 눈을 후벼파려 했다. 저렇게 흉측하게 생긴 건 세상에서 없애버려야 한다. 새카맣게 죽어버린 눈빛. 그렇지 않은가. 끔찍해, 정말 끔찍해. 종말과 파괴를 선언하며 위로 치켜올려진 여자의 팔을 간신히 붙잡았다. 푸른 핏줄이 도드라진 매마른 팔이 나무 막대기처럼 딘의 얼굴을 깊숙이 긁으려 했다. 딘도 지지 않고 바둥거렸다. 붙잡은 그녀의 팔을 왼쪽으로 힘껏 비틀면서 강제로 뚝뚝 끊기까지 했다.

『카밀은 날 보자마자 살려달라 애원하며 벌벌 떨더군.』
하지만 손목이 반대 방향으로 꺾어지는 것쯤은 위협이 되지 않는 모양이다. 이제 그녀의 눈은 백만볼트의 전기가 통하기라도 한 것처럼 번쩍번쩍 빛을 뿜었다. 풀어지지 않는 왼손이 딘의 멱살을 잡고 바닥으로 밀어젖혔다. 덕분에 뒷통수가 닿은 시멘트 바닥이 쿵쿵 울렸다.
『그 계집은 자기 남편의 시신을 차가운 길가에 그대로 내버려두고 도망을 쳤어. 그 멍청한 것은 내 동생의 장례조차 치러주지 않았다고!』
주먹이 다시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압도적인 힘이 실린 팔꿈치가 늑골을 찍었다. 아파 죽을 지경이었다.
『정신을 차리고보니 그년의 목을 물어뜯고 있더군. 뭐, 어차피 그 자리에서 죽일 생각은 눈꼽만치도 없었으니까... 대신 나는 카밀에게 멕시코로 가서 어린애를 죽이라고 명령했지. 그래야 남미의 뱀파이어 헌터들이 불을 밝히고 그녀를 사냥해서 잔인하게 죽일테니까. 그 계집은 그렇게 당해도 싸.』
왼쪽 넓적다리에 격심한 통증이 찾아왔다. 딘은 복날에 더위를 먹은 짐승처럼 끙끙거렸고 다음으로는 어깨뼈가 비정상적으로 구부러지는 감각에 치를 떨었다.
『난 그렇게 해야만 했어. 그것이 내가 할 일이었던 거야.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그녀의 오른쪽 주먹이 번개처럼 내뻗었다. 그것이 딘의 코를 정면으로 갈겼고 퍽 하는 소리가 나면서 피가 흘러나왔다. 이제 찌릿찌릿한 고통은 엉덩이 아래까지 내려갔다. 갑자기 가슴이 오그라들면서 탁한 기침이 터져나오려 했다. 하지만 쿨럭이는 기침은 그리 길게 이어지진 않았고 대신 걸죽한 느낌의 코피가 목구멍을 타고 아래로 내려가면서 숨 쉬는 일을 방해했다.
『내가 알게 뭐야~!! 시끄러! 입 닥쳐! 다들 조용히 해! 제발 나에게 묻지 마! 묻지 말라고!』
바닥을 거머쥐고 다리를 들어 발길질을 했다. 두 다리가 정확히 뱀파이어의 가슴을 쳤고 미처 피하지 못한 그녀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뒤로 쿵 하고 쓰러졌다. 이때다 싶자 딘은 피가 흐르는 코를 한 손으로 감싸쥔 채 넘어진 뱀파이어를 재차 걷어찼다. 하얀 몸뚱아리가 쓸모없는 물건처럼 앞뒤로 흔들렸다. 핏기를 잃은 창백한 얼굴이 악 소리를 내며 튕겨 올랐다가 다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걸 차갑게 쏘아보며 여자의 등을 향해 킥을 날렸다.

뿌리부터 올라오는 짙은 혐오감.
《너라도 그렇게 했을 거야.》
물론 그렇게 했다.
《뭐라도 해야만 했다고.》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새미를 죽이고 나서.
새미가 죽고 난 뒤에.

그 역시 인간이고 짐승이고 가리지 않고 전부를 죽이려 들었을 것이다.

서있는 건지, 아님 누워있는 건지 구분이 안 갔다. 헛구역질이 나려 했다. 온몸의 힘이 다 빠져나간 것 같았다. 두통과 피로감이 철사가 되어 몸을 칭칭 감았다. 무릎이 와들와들 떨렸다. 불가항력적으로 딘은 고개를 숙였고 웩 하고 노란 신물을 한웅큼 토해냈다.

살과 피를 먹여 손수 키웠다.
품에 안고 자장가를 불러주었다.

비난하는 눈길.
아버지.
비난하는 눈길.
아버지.

그 소중한 걸 내 손으로 숨통을 끊으라고?
딘은 토악질한 것과 피가 들러붙은 주먹으로 자신의 왼쪽 뺨을 쓰다듬어 내렸다.
그게 자기 아들에게 할 말이라고 생각하우?! 이 좇 같은 놈아!

Posted by 미야

2007/09/23 23:55 2007/09/23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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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고 2007/09/25 00:48 # M/D Reply Permalink

    그래도 딘씨는 싸우는군요. 그냥 홀라당 홀릴 줄 알았더니...두근두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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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


예배중에 난입하여「이 그지 발싸개 같은 것들아!」라고 소리를 지르면 천벌 받습니다. 머리 꼭대기로 천둥 벼락이 내리꽂혀도 할 말은 없는 거예요.

무장하고 난입한 이쪽이 되려 악당이 된 기분이다. 앞으로 진격하려다 말고 주춤거렸다.
의자에 띄엄띄엄 신자들이 앉아있다. 아니, 정확하게는 사람이 아닐테니 신자라고 할 수 없겠지만 - 여하간 진짜로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식으로 다들 자세를 바르게 하고 고개를 숙였다. 성경책을 읽고, 찬송을 부르고, 콧잔등에서 미끌어진 안경을 손가락으로 밀어올리고는 목사의 설교에 아멘으로 화답하고, 자기 코에서 나는 드륵 소리에 화들짝 놀라고도「절대로 안 졸았어요」주장하고.
제단 위로 목사로 짐작되는 양복 차림새의 남자가 어깨를 떨구고 서있다. 다 같이 기도합시다 말만 꺼내면 완벽하다. 좌편으로 덩치가 남산인 흑인 사내가 얼굴을 땅에 박은 채 큰 대자로 뻗어있다는 점만 빼자면 하품이 나와 미칠 것만 같은 수요일 오후 예배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딘은 구석진 자리로 가서 엉덩이를 붙여야 하는 건 아닌가 싶어 고민이었다. 사냥도 좋지만 일단은 예배가 다 끝날 때까지 얌전히 기다렸다가... 그러니까 밥 먹는 개는 안 건드리는 거라고 누군가 말했다. 거기까지 생각한 딘은 살짝 눈가를 찡그렸다. 어쩌면 그 표현은 이럴 적에 쓰기엔 안 맞을지도. 아닌게 아니라 리의 눈이 도끼날처럼 변했다.
『무쉰 비유가 그 따위야. 네놈 학교 다니던 시절의 작문 점수가 눈에 훤하다!』
『안 앉았어. 의자에 안 앉았다고. 그냥 고민만 한 거야. 진짜야!』
『그러니까 그딴 고민을 왜 하냐고! 이것들이 지금 하느님께 기도라도 드리고 있을까봐? 진짜로 그랬다간 살로메와 세례자 요한이 어화둥둥 내 사랑 이러고 노래를 불러댔다.』

씩씩한 자세로 붉은 카펫이 깔린 정 중앙으로 다섯 걸음 전진했다. 기척에 반응하여 제단 위에 선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죽을 만큼 린치를 당한 탓에 눈동자가 흐릿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의식이 있었다.
『도와... 주세요... 제발.』
거기에 대답하지 않고 앞에서 다섯 번째 줄에 앉은 검정 머리카락의 여자 앞으로 가서 똑바로 섰다. 팽팽한 공기가 샛노란 불꽃을 뿜어냈다. 진검 승부다. 증오심과 적개심, 그리고 기나긴 세월동안 몸을 침식해온 원망이 한덩어리로 뒤엉켰다. 가죽으로 만들어진 째찍이 부드럽게 몸을 내리치는 감각이었다. 날카롭게 피부 속으로 스며든다. 이것은 독이다. 사람을 죽이고, 영생한다는 그 뱀파이어마저도 죽게 만드는 맹독이다. 생명력을 송두리째 고갈시키는 저주 그 자체다. 소중한 걸 영원히 잃어버린 자들이 그 무기력감에 울부짓는다. 외침은 진동이 되어 건물을, 땅을, 하늘을 흔들어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는 건 없다. 사랑하는 이들은 돌아오지 못 한다. 그것이 더욱 슬퍼져 가장 강력한 소리로 자신의 아픔을 탄원한다.
울림은 새카만 암흑으로 치장되어 오염된 비닐 껍데기처럼 대지를 덮는다.
그 소복히 어둠이 내린 곳으로 커다란 낫을 든 죽음이 청동색의 말을 타고 달려나간다.

리는 카메라 플래쉬 앞에서 포즈를 잡는 모델인양 허리로 손을 얹었다. 턱을 치켜올렸다. 그리고 검정 머리의 여자를 향해 들입다 쏘아댔다.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야. 뱀파이어 주제에 기도라도 하겠다는 거냐. 이 변태-♡』
말꼬리로 하트를 붙이는 당신이 훨씬 더 변태 같아요 - 라고 샘은 생각했지만 현명하게도 느낀 바 그대로를 소리내어 말하진 않았다. 여자들이 손톱을 세우고 싸울 적엔 남자들은 함부로 끼어들지 않는 법이다. 그래서 샘은 리를 계속해서 주시하며 물결 무늬 스테인드 글래스가 장식된 오른편의 성가대석 쪽으로 바짝 접근했다. 그리고 그런 샘의 움직임에 식겁한 딘은 두 걸음 빨리해서 앞줄로 이동했다.

세어보니 중간 좌석까지 차지하고 앉은 뱀파이어의 숫자는 모두 열 하나.
샘이 형을 향해 눈짓으로 신호를 보내왔다.
딘은 너무 빠르다며 일단 멈춤의 의미로 손바닥을 짧게 끊어 가로로 휘둘렀다.

『겨우 세 명뿐인가. 의외네.』
성인 여자라고 하기엔 깜짝 놀랄 정도로 목소리 톤이 낮았다. 게다가 서랍장에 달린 낡은 경첩이 움직일 적마다 내는 끼꺽이는 소음을 닮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듣는 이의 몸을 움찔하게 만드는 미묘한 힘이 있었다. 아름답진 않았지만 소름끼치도록 압도적이었고, 그것은 아무런 색이 칠해지지 않은 거대한 바위로만 만들어진 집 - 이를테면 태고적의 피라미드 같은 - 을 연상시켰다. 값비싼 대리석으로 한껏 치장한 꽃병 장식 따윈 문제가 아니었다. 하늘을 찌르는 듯한 천장과 높이가 무려 100미터에 이르는 도리아식 기둥의 위엄 앞에선 수영장 딸린 방 열 여덟 개짜리 저택도 한풀 위세가 꺾이는 법이다.

리는 핏기 하나 없는 창백한 안색의 여자를 자세히 뜯어본 다음, 어깨를 으쓱였다.
『왜. 군대라도 출동할 거라 생각했어?』
『군대까진 아니어도... 세 명은 너무 적다는 생각이 드는군.』
『걱정 마, 오리진. 숫자는 적지만 어떻게든 해볼 작정이야.』
『호오. 대단한 자신감이네. 상대가 뱀파이어 오리진이라는 걸 알아면서도 그대처럼 동요를 보이지 않는 헌터는 그리 흔치 않지.』
『착각 마셔. 자신감이라고 하긴 뭐하지, 이 경우는. 죽음을 바라는 자에게 죽음을 내리는 건 마치 정해진 운명과도 같아서 피차간에 피해갈 수가 없다고나 할까.』

뱀파이어는「운명」이라는 단어에 반응하여 피식 웃으며 팔과 다리를 쭉 폈다. 근육이 거의 붙지 않아 가느다랗고 연약해 보였다.
『운명이라고?』
『사실대로 얘기하자면 난 이런 건 딱 질색이야, 뱀파이어 씨. 누군가에게 멋지게 농락당하는 기분이 되거든. 그치만 때로는 도망치고 싶어도 결코 피할 수 없는 일이라는게 있더라고. 예를 들면 이런 거지. 당신은 여기서 죽는 거고, 나는 당신의 목을 따고.』
보란 듯이 도발했음에도 뱀파이어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였다.
『그 반대도 있을 수 있지. 내가 당신의 목을 물고, 당신은 여기서 죽고.』
『하아! 서로 다른 두 가지 내용의 결론이라... 흥미롭군.』
『전혀. 사실을 말하자면 어느쪽이든 이미 내게는 그다지 중요치 않아.』

리는 빠른 속도로 오른팔이 뒤쪽으로 휩쓸리는 것을 느꼈다. 어느틈엔가 자리에서 일어난 혈종(血奴)이 리의 상의를 붙들고 잡아당기고 있었다. 겨드랑이가 닿을 정도로 끌어당겨지자 리는 반사적으로 허리를 회전시키면서 칼을 들어 남자를 쳤다. 그런데 서두르다보니 높이가 안 맞았다는게 심히 유감이다. 노리던 목이 아니라 하필이면 이마를 쳤다. 파고 들어가는 기세는 박수를 받을 만큼 훌륭했어도 칼날은 머리 뚜껑의 1/3 가량까지만 절단한 다음, 더 이상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리의 눈이 짜증을 담아 가늘어졌다.
『쳇! 이 자식이 갑자기 허리는 왜 굽혀가지고... 초장부터 일진 사납네.』
목뼈까진 어떻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두개골을 두쪽내려면 전동 드릴이 필요하다. 머리는 제일 단단한 뼈다. 이렇게 도중에 박혀버린 상태에선 팔의 힘만으로는 밀고 당겨도 꼼짝도 안 할 것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다. 아깝지만 저 칼은 그만 버리는게 좋겠다.

『시끄러운 암캐다. 얘들아. 갈기갈기 찢어버려라.』
『닥쳐, 할망구! 누가 암캐라는 거냐!』
머뭇거리며 뇌조직이 흘러나온 자기 이마를 만지작대는 바보 혈종따윈 다리로 걷어찼다. 그치만 손을 뻗어 찍어누르려는 손길이 모두 여덟이나 되었다. 한쪽 어깨가 잡혔고, 그것은 무의미한 위협과는 차원이 달랐다. 리는 얼굴을 바닥으로 문지르며 나동그라졌다. 뺨이 눌린다 싶자 그들 중 하나가 무릎으로 그녀의 등을 체중을 실어 찍었다.

『리!』
『샘, 딘! 내 걱정은 관두고 저 빌어먹을 년부터 조져!』
그녀는 숨을 몰아쉬며 욕설을 퍼부어댔다. 동시에 뭔가가 반짝였고 몇 마리의 뱀파이어들이 비틀거리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엉거주춤 넘어진 뱀파이어들은 하나같이 발목으로 빨간색 발찌를 차고 있었는데 그게 실은 악세사리가 아니라 날카롭게 베어진 자국이라는 건 상처 틈새로 선홍색의 피가 흘러나오고 나서야 확실하게 알아볼 수 있었다.
- 젠장. 뱀파이어의 피도 인간처럼 붉다는 건 언제 봐도 짜증나.
리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나이프를 들어 쑤시고, 헤집고, 여기저기 더 찔러댔다.
『망할! 우라질! 이 쓰레기 잡탕들은 나에게 맡기고 저 여잘 잡아!』

그치만 그 잡탕 쓰레기 셋이 이미 샘을 둥글게 에워싸고 있었다. 샘은 허겁지겁 산탄총을 꺼내들고 위협의 의미로 정면으로 한 발, 오른쪽으로 다시 한 발을 발사했다.
나이 오십 줄의 아줌마가 총열을 잡으면서 위협을 주는 행위는 위협을 당하는 것으로 교묘하게 바뀌었다. 막막했다. 그들이 아무런 생각이나 확신도 없이 움직인다는게 문제였다. 샘은 그들이 앞으로 어떻게 나올 것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고 그래서 대응이 쉽지 않았다.
늙은 여자는 여전히 총을 붙들고 늘어졌다. 남자 하나가 방울뱀처럼 민첩하게 샘의 허리를 잡고 터치 다운을 시도하려 했다. 균형을 잃은 샘은 윽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손바닥을 짚었다.
그걸 본 딘의 눈에서 불이 튀어나갔다.

『샘에게서 당장 떨어져! 내 콧구멍에 넣어도 하나도 안 아플 녀석에게 무슨 짓거리야!』
헐크가 된 딘이 이얍 소리를 내며 커다란 장식용 화분을 들어 던졌다.
커다란 쾅 소리가 울려퍼지면서 사내가 쓰러졌다.
도와주는 건 고맙지만... 왜 나를 콧구멍에 넣는 건데? 넘어져 있던 샘은 잠시동안 일어설 생각도 않고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야! 얼른 일어나. 뭐야, 그 얼 빠진 표정은. 내 콧구멍이 그렇게 싫어?』
『싫고 좋고의 문제가 아니잖아, 딘! 그 지저분한 콧구멍에 날 넣기만 해봐! 가만 안 둬!』
그럼 어떤 구멍이면 된다는 거야. 동생을 일으켜세운 딘은 계속해서 빠른 속도로 전진하며 스냅용 나이프를 들어 검은 머리카락의 뱀파이어를 조준했다. 그럼 정확히 심장을 꿰뚫는 거다. 술집에서의 다트 게임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인기척을 느끼고 여자가 눈을 들었다.
불현듯 시선이 마주쳤다.
- 내 동생을 죽였어.
죽도록 싫었지만 딘은 그녀를 똑바로 쳐다본다는게 매우 까다로운 일이라는 걸 인정해야 했다.
- 너희들이 내 동생을 죽였어!
얼어죽을 다트 게임! 손이 떨렸다. 딘이 던진 나이프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가슴 한 가운데에 가서 박혔다. 그러나 깊이가 형편 없이 얕았다. 이래선 윈스턴 처칠이 영국의 수상 자리로 오르기 전에 상한 햄버거를 먹고 식중독으로 쓰러진 것과 마찬가지였다. 딘은 그의 첫 번째 공격이 무위로 돌아갔음에 혀를 깨물었다. 헌터 생활 15년이 상표도 없는 햄버거 포장지처럼 구겨지는 순간이었다.
아버지 존의 성난 목소리가 뇌리에서 되살아났다.「이 형편 없는 녀석!」
그보다 더 직접적인 목소리로 샘이 울부짖었다.『위험해!』

그림자가 위로부터 길게 드리워졌다. 분명 자신보다 키가 작은 여자일 터인데 어찌된 영문인지 새카만 암흑의 눈동자가 딘을 아래로 해서 지긋이 쳐다보았다. 그런 일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는 당장 생각해내기 어려웠다. 확실한 건 뱀파이어의 시선이 그의 머리를 덮었다는 거였고, 그것도 심장에 칼을 박은 채였다는 거였다.
코로 역한 피냄새가 몰려왔다.
뒤로 물러서는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얼어붙은 다리는 생각처럼 빠르게 움직여주지 않았다.
서늘한 호흡이 뺨을 간질였다.
안 좋다, 이런 건.

『그 작은 핏덩이를 처음 안아들었을 적의 감동을 난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입술을 거의 움직이지 않으면서 그녀가 가까이에서 속삭였다.
딘이 눈이 옆으로 이동했다. 마찬가지로 뱀파이어의 눈동자도 딘을 따라 흔들렸다.
『온통 주름 투성이에 온몸이 새빨갰지. 처음엔 무척이나 못 생겼구나 혀를 끌끌 찼던 것이 생각이 난다. 하지만 그 작은 아이는 내 품에서 자지러지게 울음을 터뜨렸고, 나는 그 즉시 더할나위없는 사랑을 느꼈어. 내 분신이고, 내 형제이자, 어머니로부터 받은 최고의 선물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동생에게 키스하고 나의 자유 의지로 내 피를 루더에게 주었지.』
그녀는 천천히 자신의 심장에 박힌 칼의 손잡이을 쥐고 잡아당겼다. 피투성이 칼날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러나 고통은 전혀 다른 곳으로부터 솟구쳤다.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쉽게 잠들어버리는 아기. 사랑스럽고, 또 사랑스러운 아기.
『내 품에 안고, 내 피를 먹여 키웠단 말이다! 내 동생! 내 동생이란 말이야! 이제 네놈들이 뭔 짓을 저지른 건지 알겠어?! 그러고도 나를 비난할 자격이 있어? 말해봐, 인간. 너에게도 소중한 가족이 있을 거 아니냐!』

더 이상 어디에로도 추락할 수 없는 비통이 머리를 때렸다.
가슴이 심하게 두근거리면서 딘의 손 떨림은 한층 더 심해졌다.

Posted by 미야

2007/09/16 18:33 2007/09/16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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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캬초 2007/09/17 00:55 # M/D Reply Permalink

    흑.ㅠㅠ 이밤중에 심장이 너무 떨려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어요. 동생. 그 짧은 한단어만큼 딘에게 커다랗게 다가오는 것도 없겠지요.ㅠㅠ 미야님 소설은 재밌는 표현들이 많고, 샘이랑 딘이 투닥대는 것도 즐거운데. 가끔씩 이렇게 가슴을 찔러요. 흑. 담 편 기다릴께요~^^

  2. 고고 2007/09/18 23:52 # M/D Reply Permalink

    캬아.....동생 이야기만 나오면 시공이 정지하나니...딘 어쩐답니까. 이럴때면 불쌍하고 가엽고 이쁘고...허어..다음편은 재촉하면 안되나요? 건투를 빕니다. 미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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