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
스탠드를 끄고 서둘러 장비 가방부터 챙겼다. 예상치 못한 묵직함에 이크 소리가 절로 나왔다. 아무래도 내용물의 전부가 쇠붙이다보니 무게가 장난이 아니다. 자꾸만 옆으로 미끌어져 흘러내리려는 걸 끙끙대며 어깨에 둘러멨다. 덕분에 체중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다리가 휘청거렸다.
『보행기가 필요할 것 같음 빨리 말해라, 아가. 엄마가 마트 가서 사올게.』
『제 걱정은 말고 형님 몫의 젖병부터 챙기세요.』
동생의 툴툴거림은 한쪽 귀로 흘리고 창가로 다가갔다. 손을 뻗어 걸쇠를 단번에 잡아 올렸다. 다른 투숙객들이 베개를 집어던지며 시끄럽다 난리를 치든 말든, 배려라는 걸 모르는 문 두드리는 소리는 더욱 커졌다. 미친놈 육갑한다 욕설을 중얼거린 딘은 한쪽 다리를 열려진 창틀 위로 올려놓았다. 탄력을 이용해 체중을 앞으로 이동시키자 작은 머리가 밖으로 쏙 빠져나갔다. 이제 엉덩이만 들면 흙밭, 청춘사업을 그리 좋게 생각하지 않는 여자친구 부모님을 따돌리려는 것도 아닌데 신세가 무지하게 처량맞다.
『딘, 잠깐만!』
『왜!』
『지금은 새벽 3시야.』
『누가 뭐랬냐. 내가 아까 말한 거잖아. 정확히 3시 8분이다.』
『그래! 새벽 3시라고. 이런 시각에 문을 두드리는게 정상이 아니라는 건 누가 봐도 분명한데 뭐하러「수상한 사람들이 왔소이다」티를 내겠느냐고. 이상하다는 생각 안 들어? 잘못 판단했어, 딘. 정답은「정문으로 나가야 한다」야. 그것들은 일부러 문을 노크하는 걸로 주의를 돌리고는 십중팔구 반대편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듣고보니 그 말이 맞는 것도 같다. 딘의 움직임이 딱 멈추었다.
『그러니까... 샘, 네 말은 문밖에서 씩씩거리는 엄마는 속임수고, 여자친구의 아빠는 사다리 아래서 저놈 시키 다리 몽둥이를 확 분지르겠노라 단단히 벼르고 있을 거라는 얘기니?』
『무슨 비유가 그 따위야. 하여간 다시 들어와!』
라고 해도... 이미 몸통의 2/3 가량이 빠져나온 상태다. 딘은 남의 집 담장을 뛰어넘으려다 발목이 철창 사이에 끼어 오도가도 못 하게 된 멍청이처럼 눈을 동그랗게 떠보였고, 눈치가 빠른 샘은 그를 다시 방안으로 들어오게 만드는게 생각만큼 쉽지 않을 거라는 걸 깨달았다. 우리 형이 그동안 파이를 얼마나 먹어치웠으면 엉덩이가 코끼리 하마가 되어버렸어 - 과잉 영양소와 잉여 지방이 만들어낸 재앙에 탄식하며 물고기로 가득찬 그물과 씨름중인 어부처럼 딘의 옷자락을 거머쥐었다. 안으로 해서 힘껏 당기자 셔츠의 박음질된 부분이 찌익 - 수상쩍은 소리를 냈다. 아무래도 잡힌게 물고기가 아니라 바위인 모양이다.
『이잇! 당분간 애플파이는 구경도 못할 줄 알아! 맥주도 금지! 피자도 금지! 중국음식도 금지! 앞으로 맨날 야채만 먹는 거다!』
『생뚱맞게 갑자기 뭔 소리야.』
『살쪘어! 무겁다고!』
『이게 지금 누구더러 돼지라는 거야! 나는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너는 반대로 안으로 끌어당기려 하고 있으니까 그렇지! 당장 손 놔. 너, 지금 내가 가장 아끼는 옷을 찢어먹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니?』
『No! 내 말 들어, 딘. 그리로 나가면 안돼. 매복하고 있을 거라니까!』
누가 그걸 모르나. 딘은 다급한 마음에 옷자락을 붙잡은 샘의 손등을 찰싹찰싹 때렸다.
『시끄러. 저기서 문짝을 흔들어대고 있을 애들은 뱀파이어가 아니라든? 이쪽이나 저쪽이나 어차피 매한가지라면 제일 짧은 거리를 택하는게 현명한 거야. 우아하게 카페트 깔린 현관으로 걸어나오고 싶음 맘대로 해. 하지만 난 지름길로 갈란다. 우린 임팔라를 세워둔 곳까지 어떻게든 가야만 한다고.』
그리곤 위아래 방향으로 눈을 흘겼다.
『어쩔겨. 형의 말은 무시하고 네 맘대로 해볼텨?』
끙 소리를 내뱉은 샘은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을 딘에게로 훌쩍 던졌다. 이렇게 되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따라나설 수밖에 없다. 서두르느라 창틀에 이마를 세게 부딪쳤다. 설마, 자기 머리를 깨뜨릴 작정인가 - 아파하는 샘을 본 딘은 늘 그렇듯 인상을 찡그리고는 꽉 다문 입술 끝을 1cm가량 아래로 내렸다. 재빨리 양팔을 뻗어 누구보다 긴 다리를 가진 동생이 혹시라도 껑충걸음을 하다 넘어지지 않도록 붙잡았다. 그리고는「야채를 먹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너다. 왜 이렇게 무거워?!」라고 쏘아붙였다.
『어두워...』
입구를 장식하고 있던 색색이 전구가 꺼져 있었다. 샘은 그 점이 마음에 걸렸다. 물론 전기요금을 한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관리하는 직원이 일부러 전원을 내렸을 수도 있다. 그러나 흉물스런 분위기를 감추고자 대낮에도 불을 환히 켜놓는 업소가 많다라는 걸 염두에 두자면 그 가능성은 매우 적었다. 차갑게 식은 몸이 부르르 떨렸다. 샘은 근심에 젖어「모즈볼리 모텔」이라 적힌 간판을 올려다 보았고, 거짓말 같은 타이밍으로 순간 전기가 팟 하고 떨어졌다.
두개골에 박힌 조임쇠의 나사가 한도 이상으로 돌아갔다. 샘은 압력에 의한 두통을 느꼈다.
새카맣다. 샘은 모텔의 구부러진 지붕창으로 비명이 깃발처럼 걸리는 걸 보았다. 세계는 검은 마법에 걸려 이미 오염되었다. 발등을 타고 불길함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려 했다. 질겁을 해대며 바지를 털었지만 그것은 암처럼 조용하고도, 신속하게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검정... 목탄을 스케치북에 겹겹이 문질러댄 검정의 얼룩이다. 아니, 이것은 초자연적 어둠이다.
그는 늘 어둠이 두려웠다. 세계의 절반은 죽음으로 이루어졌다는 걸 끊임없이 주장하는 어둠이 싫었다. 어둠은 엄마를 데려갔고, 평온한 삶을 망쳤고, 아빠를 나쁘게 변화시켰고, 형을 위험에 빠뜨렸다.
존 윈체스터는 용감하게 맞서 싸우라며 권총을 선물했다. 무기를 들어 결코 흐트러질 일 없는 절대적 어둠을 조준하라고 명령했다.
「그치만 아빠!」
윙윙 소리를 내는 바람이 다듬어지지 않은 긴 머리카락을 들었다 도로 놓았다.
한참이나 먼 옛날에 시들어버린 풀의 내음이 토기를 불러 일으켰다. 이제는 더 이상「생명」이라 할 수 없는 것들이 빛바랜 호흡을 내뱉었다. 샘은 그놈의 빌어먹을 숨결이 피부에 닿는 감촉을 차마 견딜 수가 없었다. 차라리 지하실의 곰팡이 냄새와 젖은 하수구의 냄새를 평생 맡는게 나았다.
「아버지, 권총으론 부족해요. 턱도 없다고요. 아홉 살, 나는 아홉 살이예요. 어둠은 너무 커서 오히려 내가 잡아먹힐 것만 같아요. 그리고 그것들은 사방에 있어요. 나의 오른쪽, 왼쪽, 그리고 앞과 뒤, 어디에든 있어요.」
『진정해, 새미. 전기가 나간 것뿐이야.』
사실은 그게 아니라는 걸 잘 알면서도 딘은 상황의 심각함을 애써 축소시켰다.
『단순히 합선된 것일 수도 있다고.』
샘은 가쁘게 숨을 헐떡거리며 딘을 돌아다 보았다. 동생의 눈이 이상하게 빛나고 있었다. 화를 내는 것 같기도 하다. 아니면 눈물이 고인 것일 수도 있다.
『하필이면 이 순간에?!』
『우연이라는게 존재하기에 세상은 요지경인 거야. 까마귀가 날면 배는 떨어지게 되어 있다고 누군가 그랬어. 그런데 그게 누구냐고 꼬치꼬치 따져묻지는 마. 기억이 나지 않으니까.』
그런게 어딨느냐며 샘이 싫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말대로라면 배를 키우는 과수원 주인이 독약을 풀어 까마귀를 모조리 잡아죽이려 하지 않겠느냐 한 마디 할 기세다. 딘은 귀찮아지기 전에 동생의 등을 훌쩍 미는 것으로 선수를 쳤다. 어차피 떠오르는대로 아무렇게나 지껄여댄 말인데 이 마당에 진짜냐 가짜냐를 따지는 건 우스웠다.
『차 있는 곳으로 빨리 가기나 해!』
샘이 정신없이 뛰기 시작하자 딘은 산탄총을 꺼내들고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몹쓸 것들이 나무 뒤로 숨었을 수도 있다. 아님 주차된 자동차 사이로 웅크리고 있을 수도 있다.
헌터의 감각을 총동원해서 기척을 읽으려 노력했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기분이다.
다행이다. 긴장을 하면 할수록 냉정해졌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 사물을 분석하기 시작했고, 딘은 만약 그것이 아름다운 천사의 형상이나 엉덩이로 무지개를 쏘아대는 유니콘을 닮았더라도 망설이지 않고 참살해야 할 거라고 각오를 굳혔다. 어둠을 주시해라. 아버지의 목소리가 힘을 주었다. 동생을 지켜라. 딘은 반드시 그러겠다는 의지를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할 수 있다, 에이스. 총구를 옆으로 휙 하고 비틀어 접근해오는 모녀를 위협했다.
입술을 바짝 타들어가는 감각이다. 여자. 그것도 어린 딸의 손을 잡고 있는 여자였다. 헐렁한 사이즈의 녹색의 원피스는 어둠 탓에 상복처럼 검게 보였다. 나이는 서른 정도쯤, 대단히 말랐고, 머리를 짧게 다듬었다.
『경고하는데 거기서 더 이상 움직이지 말아줘.』
원피스 차림새의 여자는 야단을 잔뜩 맞은 초등학생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만 있었다. 지갑이나 핸드백도 없이 맨손이다. 대신 여섯 살짜리 딸을 무슨 트렁크 짐짝인양 꽉 붙들고 있었다.
『헤이!』
크게 불렀음에도 여자는 이렇다 할 대답을 하지 않았다. 실수로 떨어뜨린 결혼반지를 찾고자 땅바닥만 쳐다보며 30리 길을 걸어왔다는 식이다. 그만큼 지쳐보였고, 남에게 관심이 없는 듯했다. 설마, 잠이 든 채로 걷고 있는 건가. 어쩐지 의식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속이 텅 빈 쭉정이의 느낌이다. 손가락으로 문지르면 그대로 바스라져 사라질 것 같았다. 벌레에 물려 등이 가려워 미치겠다는 식으로 이리저리 몸을 비틀고 있는 아이와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찰칵 소리가 나게끔 총을 장전했다. 딘은 차분하게 엄마에게서 다시 딸로 시선을 옮겼다. 딱 이거다 하고 꼬집어 설명할 순 없었지만 그를 되바라지게 쳐다보는 아이의 눈은 검정에 가까운 짙은 갈색이었다. 도대체 무슨 의도로 저러는 것일까 하고 의아해 하는 것과 같이하여 아이가 엄마의 손을 놓았다.
『형!』
저편에서 샘이 그의 이름을 불렀고, 다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았다. 여섯 살짜리 아이의 눈동자에서 순수에 가까운 악의를 발견한 것과 동시에 왼쪽 손목으로 끔찍한 통증이 몰려왔다. 날카로운 침이 근육을 뚫고 뼈까지 곧장 닫는 것 같았다.
「망할 것이 내 손을 물어뜯었어!」
살살 해야겠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갖고 있지 않았다. 오른손에 쥔 산탄총을 휘둘러 아이의 머리통을 세게 때렸다. 신음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꽉 맞물린 어금니는 강철의 덫인양 쉽게 풀리지 않았다. 안 되겠다 싶어 총을 힘껏 뒤로 당겼다가 반동을 사용하여 다시 휘둘렀다. 이번에는 관자놀이를 정확히 명중시켰고, 아이는 트럭에라도 치인 것처럼 옆으로 고꾸라졌다.
신발이 벗겨지면서 어린애의 하얀 양말이 어둠속에서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걸 보자 숨이 턱 막혀왔다. 딘은 자신이 흉악한 강간마라도 된 듯한 끔찍한 감각에 몸부림쳤다.
『애까지 이용하다니! 죽일 놈!』
짐승이 목을 울려대는 것 같은 쇳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려왔다.
동시에 아이 엄마가 기다란 송곳니를 드러내며 덤벼들었다. 얼굴 전체가 뾰족거리는 뱀파이어의 이빨로 보였다. 두고 볼 것도 없었다. 딘은 여자의 얼굴 정 중앙, 정확하게는 코 부분을 노리고 한 방 쏘았다. 커다랗고 시뻘건 구멍이 뚫렸음에도 그녀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대신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손목을 갈고리처럼 휘둘렀다. 그것을 똑바로 응시하며 오른쪽으로 몸을 피했다. 동시에 제3의 존재가 불쑥 딘을 덮쳐왔다.
「젠장, 여자는 미끼였군. 온 가족의 협공 작전인가. 그렇담 이번엔 아빠 차례겠군.」
당했다고 생각한 것과 동시에 거한의 남자가 온 몸의 무게를 실어 딘을 쓰러뜨렸다. 바닥으로 넘어지면서 딘은 자갈에 닿은 등이 아파서 미칠 지경이었다. 아니, 그보단 자신을 깔고 앉은 남자의 몸무게가 신경이 씌여 견딜 수가 없었다. 100kg은 확실이 넘을 것 같고... 순식간에 머리로 피가 몰려 어지러웠다. 그래도 딘은 눈을 감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목을 노리는 손가락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굵은 엄지손가락이 신속하고도 깊숙하게 목을 파고들었다. 이 마당에 정신을 놓으면 저승길 행차는 상식이다.
《존 윈체스터...? 네놈이 존 윈체스터인가.》
이 바부탱이가! 아버진 이미 돌아가셨다고.
젖 먹던 힘을 다해 총구를 남자의 배로 돌렸다. 탕 소리가 나면서 남자의 몸이 크게 튕겼다. 목을 조르던 손가락 힘이 살짝 느슨해지자 두 번째로 방아쇠를 당겼다.
『똑바로 들어! 나는 존 윈체스터의 아들, 딘 윈체스터다!』
허벅지를 세우고 남자를 걷어찼다. 재빨리 몸을 뒤집고 왼편으로 미끌어졌다. 남자가 다시 붙잡기 전에 일어나야 했다.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