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습니다. 다음부턴 긴 글은 쓰지 말자고... 흑. 그래봤자 작심사흘.
몽땅 때려치우고 12토막 살인 사건 이야기나 쓰고 싶어요~!
어쨌거나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
하지만 미처 몸을 일으키기 전에 억센 힘이 딘의 머리를 움직이지 못 하게끔 꽉 밟았다.
『아읏!』
슬리퍼를 신은 발로 기어다니는 바퀴벌레를 냉큼 밟았다는 식이어선 당연히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눈물이 쏙 우러나오게끔 아프다는 걸 잊을 정도로 분통이 터졌다. 나아가 무거운 닻과 밧줄로 선착장에 단단히 고정된 보트인양 꼼짝을 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어의가 없었다. 이럴 수는 없는 거다. 딘은 헐떡임 비슷한 소리를 내며 두 팔을 버팀대로 사용해서 정신적, 육체적 학대로부터 탈출하고자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자신의 머리 위로 올라간 싸가지 없는 구둣발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딘의 머리를 무슨 더러운 깔개로 여기는 듯했다.
참을성이 바닥났다. 옆으로 버둥거리며 딘은 악을 써댔다.
『발 치워! 치우라고!』
『진정하게. 이래선 대화를 시도할 수가 없잖아.』
남자의 목소리는 대단히 반듯했고, 선생님이 말썽쟁이 어린애를 타이를 때처럼 또박또박 음절을 끊어 말했다. 그 얘기인 즉, 누군가에게 조정을 당하고 건 아니라는 거였다. 약물에 취한 좀비처럼 굴던 예의 뱀파이어와는 확실히 차별되는 모습이었다.
찬 물을 뒤집어쓴 느낌이었다. 딘은 헤엄치는 동작을 멈추고 잠시 숨을 골랐다.
『대화?』
『그렇네.』
눈을 치켜올리고 속으로「이게 대화를 하자는 자세냐?!」반문부터 하고 보았다. 자고로 대화라는 걸 하려면 편안한 자세로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앉아 커피라도 권해야 예의다. 그보단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 익숙한 목소리라는 점이 더 마음에 걸렸지만, 어쨌든 상대의 머리통을 밟고서 대화 어쩌고 운운하는 건 넌센스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하! 예의라고 했나. 그럼 내가 먼저 말하지. 나는 분명히 노크를 했다고.』
남자가 할아버지 설교조로 다시 말했다.
『그런데 낼름 창문으로 도망부터 치는 건 어디서 배워먹은 버르장머린가. 응?』
화가 난 모양이다. 머리를 꾹꾹 밟아대는 힘이 곱절로 세졌다.
『누군가 문을 두드리면「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대답을 했었어야지! 원, 기가 막혀서. 밖에서 한참 서성이며 이제나 저제나 기다린 나만 바보가 되었...』
순간 기습적으로 접근해온 샘이 무서운 기세로 주먹을 날렸다. 각도가 맞지 않은 관계상 눈으로는 볼 수 없었지만 딘은 두껍게 썰은 바비큐용 고기를 3층 높이에서 떨어뜨리는 둔탁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단순히 내찌르기만 해선 저런 소리가 나지 않는다. 팔꿈치로부터 강렬하고 재빠르게 내뻗어야 한다. 우리 동생이 제대로 해치웠구나! 딘은 흐믓했다.
하지만 위력 충분한 곰의 앞발 공격은 이번의 경우엔 그다지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어디까지나 기세만 등등했을 뿐, 남자의 팔이 재빨이 샘의 주먹을 잡아챘고 손바닥이 주먹을 보자기처럼 감싸버렸다. 샘은 커다란 다이아몬드가 박힌 금반지를 보았고, 도자기처럼 하얀 피부와 그 아래로 거미줄처럼 깔힌 파란 힘줄을 보았다. 고개를 들자 석탄처럼 활활 타는 두 개의 눈동자가 그를 쏘아보았다. 남자의 가지런한 입술 위로 오만함이 물에 풀어진 기름처럼 둥실 떠올랐다.
『이런, 이런. 침착하게. 두 사람 모두 충동적이군. 그다지 칭찬할만한 성격은 아닌데.』
붙잡은 주먹을 옆으로 뿌리치며 그가 혀를 끌끌 찼다.
섬뜩해진 표정을 한 샘이 크게 두 발짝 후퇴했다. 그러다 자기 발에 자기가 걸렸는지 꼴사납게 비틀거리기까지 했다.
참 잘 했다, 샘 윈체스터. 동생을 한 입에 잡아먹고 싶어하는 딘의 미친 뱃가죽이 꾸룩거렸다.
『그러겠다고 마음만 먹었다면 주먹을 완전히 못 쓰게 만들어버렸을 수도 있었어. 뼈마디 몇 개 부러뜨리는 건 일도 아니거든. 그건 그쪽도 잘 알고 있지?』
대답 대신 마른 침이 넘어가는 꿀꺽 소리만 크게 들려왔다.
『나의 아량이 바다처럼 넓다는 점에 감사하도록 하게. 그건 그렇고... 슬슬 원래의 용건으로 돌아가볼까. 그렇게 긴장하지 말게. 생각보다 별 거 아닐세. 존 윈체스터를 이리로 불러주었음 하는데. 어떤가. 아주 어려운 부탁은 아니지?』
다 듣고도 이해가 가지 않아 샘은 짧게 아, 소리를 냈다.
뭐? 존 윈체스터를 이리로 불러내라고?
『전화를 걸어 아들인 딘 윈체스터가 위험한 뱀파이어에게 붙잡혀 갔다고 말하게. 강조하여 대.단.히. 위험한 뱀파이어라고 해도 괜찮네.』
이게 무슨 철 지난 농담인가 싶어 샘은 눈을 가늘게 떠보였다.
존을 불러내려면 강신술을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라스베가스의 라바 할멈 같은 능력자 말이다. 하지만 존의 죽음이 정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만큼 보통의 강신술로는 존을 이승의 테이블로 초대하긴 꽤나 어려울 것이다. 어쩌면 불가능할 수도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악마와 계약한 영혼은 저승으로 가지 않는다 - 바늘 구멍과도 같은 저승의 문을 힘겹게 열어도 그가 찾는 영혼은 결코 그곳에 있지 않다.
설령 지옥 앞에서 허리에 손을 얹고 존 윈체스터야 빨리 나오너라 호령을 했다 쳐도...
불현듯 냉소적인 웃음이 터져나왔다.
『전화를 하라고?』
『바로 그걸세. 설마, 피붙이가 위험에 빠졌다는데 나 몰라라 하진 않겠지.』
그건 뭘 몰라서 하는 소리다. 샘의 표정이 냉장고에서 식어버린 버터처럼 되었다.
생전에도 존은 사냥 중에 실수로 몸을 다친 아들이 죽어간다는 비보를 듣고도 나 몰라라 했던 인간이다. 손상된 심장으론 앞으로 일주일도 못 산다고 의사들이 선언했음에도, 샘이 애가 타서 우는 소리를 했음에도, 존은 귀를 막았다. 그들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아픈 아들을 보러 한 걸음에 달려오지도 않았다.
《아빠, 저예요. 샘이예요. 그러니까... 형이 아파요. 의사들도 어쩔 수 없대요.》
그 메시지를 듣고 존이 무어라 대답을 했던가? 아니다. 그는 철저히 침묵했었다.
《우리만의 방법이 있으니까... 제가 어떻게든 해볼게요.》
큰 기대는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11월의 하늘은 회색인 것처럼, 한 겨울에는 으레 눈이 내리는 것처럼 전화기를 붙잡은 샘은 존이 연락을 취해오지 않을 거라는 걸 막연히 짐작했다.
《저는 그냥... 아빠가 알고는 계셔야 할 것 같아 말씀드리는 거예요.》
그러나 기대를 하지 않았다고 그걸 당연시 여겼던 건 절대 아니다.
세상의 어떤 아버지가... 아들이 죽어간다는데도 꿈쩍을 안 할 수가 있지?!
평소에도 미워하던 마음이 고삐가 풀리기라도 한 것처럼 달려나갔다. 감정은 원망을 넘어서 증오를 닮아갔다.
당신을 결코 용서하지 않겠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몸을 웅크린 딘을 부축하면서 샘은 자신의 결심을 곱씹고, 곱씹고, 또 곱씹었다. 딘이 여기서 죽으면 그 길로 난 당신의 등짝으로 칼을 박으러 갈 거야. 그것도 모르고 겉멋만 잔뜩 든 형은 조용히 죽게 좀 내버려두라고 투덜댔다. 의사를 만나러 갈 줄 알았는데 기껏 추천하는게 신앙 치료술사냐며 짜증을 부렸다. 잔뜩 지쳐서 좋아하는 메탈리카 음악도 들으려 하지 않았음에도, 조수석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풀이 죽은 표정으로 신발만 쳐다보았음에도, 자신을 보러오지 않는 아빠에 대해선 말을 삼갔다.
샘은 그가 울지는 않을까 겁이 났었다. 이렇게 죽고 싶지 않다고, 살려달라고 애원하면 어쩌나 무서웠다. 하지만 딘은 어른이었다. 샘이 걱정하는 얼굴로 쳐다보면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고개를 빳빳이 세우곤 했다. 허세를 부리며「멀건 꿀꿀이죽 말고 스테이크 먹고 싶어」라고 불평했다.
망할 대갈통, 망할 아버지, 망할 윈체스터의 피.
엄지손톱의 절반을 물어뜯고 난 뒤에야 샘은 가까스로「콜레스테롤은 심장에 좋지 않아」라고 농담 아닌 농담을 할 수 있었다. 딘은 바보처럼 헤헤헤 웃었고, 그 모습이 어찌나 처량맞고 속상하던지 샘은 더러운 변기에 대고 피 섞인 위액과 같이해서「몽땅 다 죽어버렷!」욕설을 한웅큼씩 뱉어내곤 했다.
『존에게... 전화를 하라고?』
샘은 등을 돌린 채 물 위를 걷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기분을 느꼈다.
백금처럼 하얀 피부를 가진 남자가 조용히 채근했다.
『자네 동료의 머리가 눈앞에서 박살나는 광경을 보고 싶은 건 아니겠지? 장담하는데 결코 유쾌한 장면은 아닐 걸세.』
아무래도 저 남자는 존이 이미 죽은 사람이라는 것뿐만이 아니라 딘과 샘이 한 배에서 나온 형제라는 것 역시 모르는 모양이었다. 샘은 여러 가지 가능성을 저울질했다. 한쪽에 걸린 추가 내려갔다 도로 올라왔다.「우리가 좀 심하게 안 닮긴 했지」느릿느릿한 동작으로 주머니로 손을 넣었다.
남자가 머리를 밟은 다리로 힘을 주었던지 딘이 크윽 하고 신음 소리를 흘렸다.
샘은 더욱 조심해가며 핸드폰을 꺼냈고, 남자에게로 눈을 고정시킨 채 단축키를 눌렀다.
아빠의 핸드폰을 아직 정지시키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신호음이 두 번 갔고, 너무 들어 통째로 외워버린 익숙한 멘트가 흘러나왔다.
《존 윈체스터입니다. 지금은 부재 중이니 응급상황 시에는 제 아들 딘에게 연락을 주십시오.》
딘이 어깨를 꿈틀거리는게 느껴졌다. 그러든 말든 샘은 침착하게 핸드폰에 대고 말했다.
『저예요, 존. 샘 버커비츠이고 여긴 인디애나 주 에반스빌 부근이예요. 간단히 안부 인사를 할 상황이 아니라서 유감이군요. 딘이 좋지 않은 일을 당했어요. 그러니까... 뱀파이어에게요. 존, 이 메시지를 듣는대로 빨리 와주셨으면 해요.』
샘은 전화기를 귀에서 떼어내고「이제 되었지?」식의 몸짓을 해보였다.
땅바닥에 엎드린 딘이 어이구 하며 다시금 신음했다. 기가 막혀서 그러는 거라는 걸 샘은 눈치챘지만 뱀파이어 남자는 그 사실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아버지가 걱정이 되어 그러나? 그렇다면 진작에 자신의 행동거지를 조심하라 일렀어야지.』
남자는 만족스럽게 후후후 웃으며 자신이 밟은 인간을 짐짓 내려다 보았다.
『처음부터 존이 루더를 죽이지만 않았으면 이런 소동은 벌어지지 않았을 거야. 그렇다면 나도 편하게 암스테르담에서 와인이나 홀짝거리며 한가롭게 책이나 읽고 그림이나 그리고 있었겠지. 그치만 피 흘림은 일어났고, 누군가는 그 일에 대해 댓가를 치러야 할 걸세.』
딘은 이맛살을 잔뜩 찌푸렸다.
『당신, 도대체 누구야. 루더의 가족인가.』
『설마. 나는 생판 남일세.』
『그런데 왜...?』
남자는 한숨을 섞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어댔다.
『그게 좀 복잡하다네. 내가 하는 일은 일종의 교통 정리야. 비유하자면 축구 경기의 심판 같은 거랄까. 호루라기를 불면서「하프 코트 바이얼레이션~!!」을 외치는 거랑 비슷해.』
『이봐? 그건 축구가 아니라 농구라고.』
남자는 천둥이 하늘을 메웠다는 식으로 흠칫 몸을 사렸다.
『어? 농구였어? 미안, 미안. 하지만 농구면 어떻고 골프면 또 어떤가. 마찬가질세. 누군가를 죽이면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할 각오를 다져야 하지. 죽음은 죽음으로, 복수는 복수로 계승되는 걸세. 나는 그것을 지켜보고 피를 저울에 달아 그 값을 매기지. 그게 내 일이라네.』
저울에 올라가는게 양파나 토마토라고 해도 관심 없었다. 샘은 차갑게 응수했다.
『알게 뭐야. 하라는 대로 했으니 이제 그만 딘을 놓아줘.』
남자가 언뜻 자극적인 웃음 소리를 냈다.
『놓아달라고?』
『그래.』
『흐음. 존에게 전화를 걸면 자네 동료를 놔주겠다는 약속을 내가 했던가.』
크게 부릅 뜬 샘의 눈에서 검푸른 스파크가 튀었다.
『이 자식!』
『워워! 화내지 말게.』
그는 팔짱을 낀 자세로 도전하듯이 턱을 들어올렸다.
『기억을 더듬어보게. 부탁을 들어주면 이 자를 풀어주겠다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어. 나는 그저 존 윈체스터에게 전화를 걸어달라고만 했다고.』
『같잖은 말장난은 그만 둬. 그를 다치게 하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아이고, 무서워라.』
『장난 아니야! 당장 풀어줘! 지금 당장!』
『미안해. 그건 좀 곤란할 것 같아, 덩치 큰 친구. 일종의 보험이라고 생각하고 그를 계속해서 붙잡아 둘 필요성이 있거든. 혹시라도 존 윈체스터가 나타나지 않을 때를 대비해서 말이야.』
『뭐라고?!』
『그러지 말고 작별 인사나 하지 그래. 살아서 만나는게 이번이 마지막이 될지 누가 알겠나.』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