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게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다 - 딘의 마음은 희망으로 가득찼다.
오랜만에 배를 채우고 나자 샘의 안색은 눈에 띄게 좋아져 영양제를 처방받고 분갈이를 마친 화초처럼 보였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날아갈 것 같은데 6월의 햇살은 따스하고 기분 좋았다. 완벽하게 정비된 임팔라의 엔진은 시동을 걸자마자 건강한 소리를 냈다. 라디오 채널에서 흘러나오는 건 블랙 사바스, 거기다 운좋게 일거리다 싶은 것도 건져냈다.
『캘리포니아에 세입자 세 명이 연달아 자살한 아파트가 있대, 샘.』
사람이 죽었다는데 기쁜 듯이 말해 그거 하나는 유감이다. 그러나 본심은 캐스터네츠라도 두드리며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입에다 장미꽃 한 송이를 물고 탱고 박자에 맞춰 허리를 뒤로 꺾을 의향도 있다. 단, 운전 중에 그런 짓을 했다간 대형 사고는 필연인 관계로 거위처럼 목을 앞뒤로 뒤뚱거리는 걸로 타협을 봤다.

세 명의 천사들이 마리화나를 피운다. 세 명의 천사들이 사기 포커를 친다. 완벽한 삼위일체, 야이야이호~♪
토니 아이오미가 뿜어내는 전자 기타의 현란한 오르내림을 만끽하며 자동차 속도를 올렸다.
『어때, 동생아. 우리가 그 문제의 아파트로 가서 네 번째 세입자가 되는 건?』
조수석에 앉은 샘은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다만 딘의 제의에 보일락말락 고개를 끄덕였다.
『좋았어!』
치명상이라고 여겼던 상처로 분홍색 새 살이 올라온다. 그깟 딱지와 흉터가 다 뭐라냐. 아파트 입주금이 수중에 없다는 문제는 나중이다. 유리창을 열고 신선한 바깥 공기를 한껏 들이마셨다. 기다려라, 캘리포니아! 휘파람을 불며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었다.

『당장 캘리포니아로 가는 거 아니었어?』
그렇게 엉덩이를 들썩거렸으면 최소한 국도를 타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현실은 지극히 엉뚱해서 딘은 피자와 도넛, 콜라와 같은 불건전 음식을 잔뜩 챙겨선 상다리가 휘어지게 진열을 했다.
소화도 참 잘 되는 인간이다. 점심 먹은게 언제라고.
토기가 올라올 정도의 진한 양념 냄새에 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도 그랬음 좋겠는데 그곳 아파트 관리인이 지금 부재 중이야. 전화를 걸어 언제나 올 수 있느냐고 물어봤더니 빨라도 이틀 뒤에나 가능할 것 같다고 대답하지 뭐니.』
그래봤자 핑계다. 예전 같으면 관리인의 사정 같은 건 개의치 않고 무작정 현관을 따고 들어갔다. 실제로 필라델피아의 한 아파트에서 금발의 여자애가 감쪽같이 사라졌을 적엔 EMF 미터기를 들고 건축물 안전진단과 공무원인양 온 건물을 들쑤셨다. 출발을 미루고 지금처럼 미적거리는 건 단순히 딘이「그렇게 하고 싶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는 없다.

손바닥을 싹싹 비벼가며 아이스크림과 맥주도 꺼내놓았다. 안주로 삼을 짭짤한 맛의 과자도 샀다. 가게에서 몇 개의 DVD를 빌려오는 것도 잊지 않았다. 봉투 속의 내용물을 하나하나 체크하던 샘은「고질라」타이틀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것도 역대 최악이라 평가받은 1998년도 헐리우드 리메이크다. 저놈이 드디어 미쳤나 - 형을 쳐다보는 시선이 지극히 불손해졌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거라면 그나마 속는 셈치고 들춰보겠지만 영화는 지역 케이블 방송에서 지겹게도 틀어대는 블록버스터 오락물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돈이 썩었다.
『뭐부터 시작할까. 킹콩을 볼까? 아님 헐크부터 볼까.』
『진심이야, 형? 차라리 람보를 보겠어.』
『미안, 새미. 그건 안 빌려왔는데. 미리 귀띔을 해줄 것이지. 이 형이 눈치가 없었다. 언제는 톰 크루즈가 최고라더니 언제부터 네 취향이 실베스타 스텔론으로 바뀌었냐?』
『누가 내 취향이야! 둘 다 싫다는 얘기야!』
기가 막혔던 것도 같다. 어느새 샘은 엉덩이에 뿔난 강아지를 야단치는 엄마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DVD는 그렇다 치자. 딘이 사가지고 온 음식의 전부가 불량 식품을 닮아 있었는데다 둘이서 먹어치우기엔 터무니없이 양이 많았다. 핫도그 먹기 대회 최강자인 고바야시 다케루를 개인적으로 초대한 거라면야 또 모른다. 드럼통을 닮은 아이스크림 포장 용기만 봐도 질리려 했다. 4인 가족이 여름 내내 숟가락을 빨아대도 바닥이 안 드러날 정도의 어마어마한 양이다.
어느 정신 나간 시의원이 계곡을 채워 산으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관보에 게시했다. 40일 뒤에 엄청난 홍수가 날테니 시 예산으로 방주를 만들어야 한다고도 했다. 세금을 착실히 내는 일반인은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일이다. 죽일 놈의 시의원, 망할 탄핵소추, 얼어죽을 홍수.

『제정신이야?』
『아우움야우?』
타락의 로마는 영원하다. 입에는 도넛, 양손으로는 리모컨과 쿠션을 꿰찬 딘은「뭐가 잘못됐어?」라며 반문했다. 인간의 탈을 쓴 돼지 - 샘은 평균적 위장 크기와 올바른 식습관에 대한 설교를 포기한 채 맥주 뚜껑을 땄다. 상호는 아이다, 고맙게도 샘이 제일 좋아하는 종류다. 딘은 그거 하나는 동생을 위해 배려했다.

『그런데, 형. 아까 말한 신문은 어디에 뒀어? 사람 잡는 아파트 어쩌고 말이야.』
고질라가 미끼로 놓여진 물고기를 우적거리며 먹어치웠다. 그리고 그 고질라를 빼닮은 누군가 씨는 휴지를 들어 기름 투성이로 변한 입가를 허겁지겁 닦아냈다.
『와... 벌써 조사야? 이봐, 샘. 출발은 내일이라고. 좀 느긋해져라.』
『나는 지금도 느긋하거든?』
『참으로 그러십니다.』
모처럼 멍석을 깔았음에도 같이 어울려주지 않는 동생을 향해 눈을 야렸다.
그런다고 주눅들 샘이 아니다. 최신 유행식의, 사람을 깔보려면 이렇게 하라, 마이애미 과학수사대 반장이 범인을 쏘아볼 적의 스타일로 허리에 양손을 얹었다. 턱을 치켜올렸다. 그래, 노력 많이 해서 호레이쇼 케인* 닮았다. 다음부턴 제스로 깁스* 흉내라도 내보시지? 딘은 지겹다는 투로 피자 아래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으이그!』
존은 일기장에 이거다 싶은 정보를 꾸역꾸역 적어놓곤 했다. 신문에서 오려낸 기사를 문구용 풀로 빽빽이 붙여놓기도 했다. 단, 그게 정리와는 담을 쌓은 방식이라 헌팅이라는 가족 사업을 물려받은 아들들은 그걸 해독하느라 골머리를 앓았다. 웬디고에 대한 장황한 설명 옆으로 편하고 튼튼한 아웃도어 신발을 파는 가게 전화번호가 적혀져 있는 식이다. 그리고 수십 페이지 뒤로 다시 식인과 금지된 산테리아 종교의식에 관한 내용이 뜬금없이 튀어나왔다. 더하여 웬디고를 묘사한 그림은 원시인의 동굴 벽화 수준이었다. 두 개의 작대기가 머리와 몸뚱아리를 묘사하고 곧장 상황 종료. 그 정신사나움에 딘은 진작부터 진절머리를 냈다.

「아빠를 정말로 사랑하지만 이건 진짜지 아니라고 봐.」

말은 그렇게 했지만 팔자 편하게 남의 흉을 볼 처지가 아니다! 자료인 신문을 피자판 아래로 깔아놨다고라.
샘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기름기를 잘도 흡수한 종이는 반투명한 해초처럼 변해있었고, 서로 철썩 들러붙어 분리가 불가능해 보였다. 여러장이 겹쳐져 인쇄된 글씨는 당연히 읽을 수 없었다.
『딘!』
악에 받쳐 외쳐봤자 그의 형은 헤롱거리는 표정으로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내가 못 살아!』
나는 동생일 뿐인데 어째서 바가지를 긁는 마누라가 된 기분이 들어야 하는 거지 - 울컥하는 마음에 딘의 뒷통수를 찰싹 때렸다.
『왜 이래!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따로 잘 챙겨둔 거란 말이야!』
『그게 피자 상자 밑이야?』
『맙소사, 샘. 그럼 그걸 금고 속에라도 넣어둬야 했다는 거니?』
평화주의자 마하트마 간디 씨는 잠시 눈 감고 계십시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서 당연히 발끈했다. 복수랍시고 샘의 엉덩이를 힘주어 꼬집었다.
『아욱!』
아파서라기보단 당황해서 지른 비명이었다. 아기도 아닌 성인 남자의 엉덩이를 꼬집다니, 손바닥으로 얼얼한 살을 문지르던 샘은 머리 혈관이 끊어진 표정을 지었다.
『지금 했지.』
『했다. 어쩔래.』
『후회할 거야.』
『겍~ 지금 나에게 으름장 놓는 거야? 오, 새미... 분위기 잡아봤자 절대적으로 안 어울려.』
『흥! 어울리는지 안 어울리는지는 두고 보자고.』
두 팔을 걷어부치고 옆으로 털썩 앉았다.
『어쭈?』
리모컨부터 빼앗아 멀직히 집어던졌다. 다리를 들어 작정하고 딘의 허벅지 위에 걸쳤다.
『야! 무거워!』
그러든 말든「덤벼라!」표정을 지은 샘은 압도적인 신장의 차이를 이용해서 교묘하게 괴롭혔다.
이제 딘은 소파에서 일어날 수도 없고, 허리를 굽혀 땅바닥에 떨어진 리모컨을 주을 수도 없었다. 온몸으로 기대어오는 체중은 점점 더 무거워졌고, 샘은 천적을 만난 무당벌레처럼 팔다리를 활짝 벌린 채 벌렁 누웠다. 그것도 아니라면 자신이 여전히 주먹만한 크기의 작은 새끼라고 생각한 대형견 말라뮤트가 어리광을 부린답시고 앞발을 들고 주인에게 덤벼든 꼬락서니였다.
 
『치워!』
『숨막혀!』
『화면이 하나도 안 보이잖아!』
『샘!』
나 죽는다 야단에 샘이 장난스럽게 분홍색 혀를 쏙 내밀었다.

여기까지는 큰 문제 없었다.
으스스한 표정을 한 배심원들을 향해 딘 윈체스터는 더듬거리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잘난 척하는 모습이 하도 밉꼴맞아서 마, 말입니다. 옆구리를 간질이려고 했던 겁니다.」
떠민다고 움직일 녀석이 아니었다. 궁리 끝에 손가락이 셔츠 위를 부지런히 달렸고, 샘은 잔뜩 화난 표정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지 말라는 의미에서 팔꿈치가 휘둘러졌다. 하지만 헌터 생활 20년에 그까짓 공격을 피하는 건 어린애 수준의 장난이었다. 딘의 손은 다시 보기 좋은 근육으로 덮힌 샘의 허리를 더듬었고, 가엾게도 동생은 목이 쉬어버릴 지경으로 깔깔거렸다.
『어떠냐! 이렇게! 이렇게!』
『으하하하! 제발!』
거기서 그만뒀어야 했다. 그랬어야 했다.
늘씬한 신체가 막 뭍으로 올라온 물고기처럼 퍼득거리기 시작했다. 딘은 손바닥을 위로 더 찔러 넣었다. 셔츠 안쪽에서 벌어지는 부드러운 학대 행위에 동생은 눈물까지 질질 흘리며 몸을 좌우로 마구 뒤틀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부터 초록색 피부의 괴물 헐크가 갑자기 슈렉으로 정체를 바꿨다. 저만치 떨어진 꽃밭에서 피오나 공주가 환영의 의미로 팔을 흔들었다. 딘은 부근에서 장화를 신은 고양이도 봤다는 기분이 들었다.
『으응...』
어쨌거나 상관 없다. 장화를 신은게 고양이가 아니라 하마라고 해도 상황은 변치 않는다.
『샘...』
헐떡거리며 그 몸을 구속했다. 눈물로 인해 짠 맛이 나는 뺨 위로 입술을 눌렀다. 샘의 생각으론 틀린 위치였다. 즉각적으로 터져나온 건 불만의 신음 소리, 알고 있다. 더 정확한 지점을 찾아 고개를 움직이자 그제야 안심이라며 샘의 눈이 스륵 감겼다. 그 입술을 내밀고 - 부끄러움에 목덜미를 새빨갛게 물들인 채로.

Posted by 미야

2008/03/01 22:14 2008/03/01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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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렐라이 2008/03/02 14:13 # M/D Reply Permalink

    오마이갓ㅠㅠ 이게 웬 횡재랍니까 덩실덩실ㅠㅠ
    Paradise Lost 3편을 올려주셨네요!!
    행복의 구렁텅이속으로 빠져들어갑니다ㅠㅠㅠ
    마지막의 바람직한 상황에 그저 웃지요ㅠㅠ

  2. 밤맛만쥬 2008/03/02 14:48 # M/D Reply Permalink

    혹시,혹시..해서 들어왔는데 올라와 있네요~너무 좋아요~
    ㅎㅎㅎ 딘이 이제 빼도박도 못하게 된건가요?

  3. 2008/03/02 15:13 # M/D Reply Permalink

    안녕하세요? 글을 읽던 유령입니다; 인사를 드렸어야 했는데 늦었습니다. 죄송해요ㅠㅠ
    요즘에 글 읽느라 살맛납니다. 감사드려요!!!!!!
    끝이 절묘하게 잘렸습니다~ 그 뒤로는 어떻게? 아하하 흥미진진합니다.^^

  4. 아이렌드 2008/03/02 16:32 # M/D Reply Permalink

    아, 그렇게 다시 찰싹 붙어서 부비작거릴거면서 튕기긴 왜 튕겼대~~
    자자, 좀 더 진도를.... 훠이훠이.

  5. 모모야 2008/03/02 18:13 # M/D Reply Permalink

    아예 이젠 발뺌못하게...좀 더 진도를...저 역시.;..쭈우우웅욱..빼주세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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