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fanfic] All Wet 03

※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


구름이 짙게 깔려 별들마저 숨 죽이고 있는 와중에 저 멀리서 손전등이 반짝인다. 그것은 작지만 부근에선 유일하게 빛나고 있는 존재다. 마치 텅빈 창고 바닥에 떨어진 새 동전처럼 말이다.
쭉 참고 있었던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리로 가면 살 수 있을 것 같고, 편히 누워 쉴 수 있을 것도 같다. 불빛이 보이는 곳으로 빨리 가고 싶은 마음에 가슴이 콩닥거렸다.
불현듯「구원」이라는 고풍스런 뉘앙스의 단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깟 손전등에, 엄청난 밝기의 헤드라이트도 아닌데도, 이다지 설레일 수 있다는 점에서 헛웃음이 나오려 했다. 동시에 그는 깨달았다.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버렸다. 물에 푹 젖은 솜뭉치다. 그러니까 그깟 작은 반딧불에 마음이 흐트러져 두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이다.

『헤이.』
턱짓으로만 간단히 인사하고 옆에 앉았다. 그리고 버릇처럼 손바닥을 싹싹 비볐다.
『날씨가 더워 그러나, 목이 마르네.』
요점은 난 결코 수상한 사람이 아닙니다, 라는 것.
그래봤자 청년은 뜨거운 담뱃불에 엉덩이를 데이기라도 한 것처럼 화들짝 뛰었다.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말 걸 그랬나. 딘은 아랫입술을 지긋이 빨아들이며 자신의 경거망동을 후회했다. 이래선 오히려 쓸데없이 경계심을 자극한 셈이다. 어깨를 움츠리며 허벅지를 긴장시키는 모양새를 봐선 금방에라도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갈 기세다. 다만 생각처럼 그러지 않은 건 누가 옆에 앉기가 무섭게 호출당한 경비원처럼 벌떡 일어서는 건 예절을 습득한 문명인으로서 썩 훌륭한 태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차분한 생김새만큼이나 점잖았고, 상대방이 모욕감을 느끼는 일 없게끔 충동을 애써 참는 듯했다.

괜찮아,괜찮다고.내가설마널잡아먹기라도하겠냐.일어나지말라고,일어나지말라니까.
애써 관심이 없는 척하며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면서 구둣발로 톡, 하고 건드렸다.
확 하고 청년의 뺨이 붉어졌다.
이어지는 건 어색한 침묵.

『어... 그러니까...』
『그쪽은 뭘 마시고 있어? 맥주?』
『아니... 저어... 그게...』
미성년의 신분으로 몰래 술을 마시다 들킨 것도 아닐 터인데 좀처럼 문장답게 생긴 녀석이 나오질 않는다. 당황해선 입만 뻐끔거릴 뿐이다. 어쩌면 정말로 나쁜 짓을 하는 중이었을지도? 예를 들자면 가게의 금전출납기를 터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거나, 으슥한 곳에서 여자 종업원의 가슴을 만질 궁리를 하고 있었다거나...
딘은 테이블에 공손히 내려놓은 두 손에서 시선을 들어 말더듬이 청년의 투명한 헤이즐넛 눈동자를 응시했다. 그러자 주변을 둘러싼 어둠이 한층 깊어졌다. 손전등의 불빛이 강해졌다. 그 감각에 놀라 어, 하고 입을 열었다가 재빨리 혀를 깨물었다. 남자의 눈동자 속에 들어 있는 특별한 무언가가 딘의 혀에 족쇄를 채웠다. 진한 슬픔. 그리고 쓸쓸함... 너무나 농도 깊어서 무엇으로도 희석될 수 없는 아픔.

『무슨 일 있어?』
목을 길게 빼고 걱정스러운 음성으로 물었다. 그리고 흠칫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생판 타인에게 이런 식의 목소리를 낸 적이 결코 없다.
오로지 단 한 사람에게만 허락했었다.
그리고 그 단 한 명의 사랑스런 존재는 지금 이곳에 있지도 않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다시 깍지 낀 두 손으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뭐, 어흠. 제3자의 쓸데없는 참견이라 생각하겠지만 말이야... 여자는 널리고 널렸다고. 길가에 돌멩이들처럼 흔한게 여자야. 오래되어 곰팡이 핀 치즈처럼 냄새 나는 이런 말도 있잖아. 인류의 절반은 여자다.』
『에?』
『내 말은 여자 친구랑 헤어졌다고 그렇게 세상 끝장났다는 식으로 굴 건 없다는 거야.』
『하아?』
이게 아닌가. 딘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하는 청년을 곁눈질하며 장단을 슬쩍 고쳤다.
『미안. 엉뚱한 다리를 짚은 거라면 용서해. 코에서 뇌수가 빠져나오도록 죽도록 공부했건만 학점이 바닥이라「장학금아, 바이바이. 이젠 널 다신 보지 못하리」이런 걸로 울고 있었다면 그 무엇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겠지. 나는 가방끈이 짧아 사실 그런 건 잘 이해가 가진 않지만 내 동생은 대학생이거든. 옆에서 봐서 대충 알고는 있어. 그래... 시험지가 코푼 휴지처럼 되었어?』

코미디였다. 딘의 질문에 청년은 버럭 소리까지 질렀다.
『뭐?! 동생이 대학생?!』
『얼레? 왜 그렇게 소스라치게 놀라는 거야. 진짜야! 걘 머리가 좋아 학교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고 공부한다고. 이름은 샘이고, 나보다 네 살 아래고, 지금은 스탠포드 대학에 다녀.』
그 즉시 청년의 표정이 혼란스러운 것으로 바뀌었다. 거기에 양념으로 섞인 건 분명 짜증이다.
『자~알 한다. 내가 아직도 대학생이냐.』
『지금 뭐라고.』
『하아... 신경쓰지 마. 혼잣말이었어.』

이후로 그는 오전 11시의 뜨거운 열기 속으로 사라져가는 우편배달부를 전송하는 것처럼 행동했다. 눈매가 가늘어지고 턱이 앞으로 돌출되었다. 딘에게는 매우 익숙한 모습이었다.「앓느니 차라리 혀 깨물고 죽겠어」라고 투덜거리던 어린 동생의 표정 그대로다. 사람을 묘하게 깔보는 것 같으면서도「저러다 더위를 먹고 꽈당 쓰러지면 큰일」이라 염려하는 착한 마음씨가 있다.
딘은 몸을 움찔, 움찔, 움츠렸다. 소금기 묻어나는 여름 한낮에 하얀색 이너 셔츠 한 장만 입고 창밖을 내다보던 샘의 가느다란 실루엣이 고스란히 망막에 살아났다. 찌르르 울어대는 벌레, 여전히 전화 한통 없는 야속한 아버지, 땀투성이가 되어 임팔라를 손질하던 그... 바람결에 커튼이 팔락이면 이마를 구기고 있는 샘의 얼굴이 흐려진다. 그게 싫어 샘의 이름을 크게 부른다. 어이? 밖으로 나와. 동생은 보란 듯이 마룻바닥을 쿵쾅거리며 거실을 가로질러 자기 방으로 돌아가고 먼지 내음 가득한 뒤뜰로는 깡깡 쇠붙이를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그치만 딘은 안다. 더운 대기 속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건 쇳가루와는 전혀 종류가 다른 것이다. 이를테면...

『딘. 괜찮아?』
『어.』
그제서야 넋을 놓고 허공을 쳐다보고 있음을 인식했다.
딘은 머리를 흔들며 지평선을 향해 뜀박질을 하고 있는 사념이라는 놈의 꼬리를 잘라냈다.
『미안. 그런데 내가 언제 그쪽에게 내 이름이 딘이라고 말해줬던가.』
청년은 그 의문에 대한 답을 회피하며 부드럽게 눈을 맞췄다.
『왜 그래. 머리가 아파?』
『편두통인가봐. 요즘 잠을 제대로 못 자거든.』
『어째서?』
『불면증이야.』
실제와 허구를 교묘하게 뒤섞으며 딘은 의미심장하게 새끼손가락을 들어보였다. 그러니까 여자와 섹스를 못해서, 애인이 없어서, 옆구리가 쓸쓸하다 난리치며 밤새 뒤척이면 어느새 새벽이었습니다, 그런 뜻의 간결한 제스츄어였다.
청년은 어이가 없는 듯 눈만 깜빡거렸다. 동시에 부르릉 하고 고물 트럭에 기적처럼 시동이 걸리는 듯한 소리도 났다.

『와, 와! 미안! 미안! 농담이었어!』
딘은 재빨리 청년의 옷소매를 붙잡았다. 스스로가 놀랄 정도로 꽉 쥐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놓치기 싫다. 이 사람.
『화내지 마. 부탁할게.』
『별로. 내가 그렇게 화낼 까닭도 없고...』
『그치만 진심으로 화내고 있잖아.』
『그럴지도. 하지만 세상엔 그보다 더 고약한 문제가 얼마든지 있고...』
청년의 눈빛이 흐려졌다.
『이까짓 일로 화내는 건 완전히 바보 같으니까.』

그 다음으로 벌어진 일은 무어라 설명하기가 난처하다. 신사가 아닌지라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낼 수 없었던 딘은 궁여지책으로 손등으로 청년의 눈두덩이를 쓱쓱 문질렀다.
완전히 미친 짓. 그럼에도 불구하고 딘은 자신의 행동을 통제할 수 없었다.
『아파!』
『미안. 너무 세게 만졌다.』
『갑자기 왜 그래.』
『뺨 위쪽에 뭐가 묻었어. 음... 눈썹 같은 거. 지금은 없어.』
그가 눈물을 찔끔거렸다는 것도, 딘이 그 눈물을 닦아주려 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두 사람은 사이좋게 거짓말하며 서로에게서 떨어졌다. 청년은 손바닥을 들어보이며 괜찮다는 시늉을 해보였고, 불편하게 허리를 꼿꼿하게 편 딘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이것은 부끄러운 행동이 아니다. 아마도 아닐 것이다. 때마침 주문을 기다리고 있는, 또는 그런 눈치인 종업원이 시야에 들어왔다. 딘은 일부러 색깔 없는 목소리를 내었다.

『맥주 부탁해요.』
이상한 일이다. 보라색 아이새도우를 짙게 바른 여자는 손님의 주문을 수첩에 받아적을 생각을 않고 대신 눈에 쌍심지를 곤두세우며 갈갈이 뛰었다.
『망할 자슥! 네 눈엔 내가 웨이츄리스로 보이나!』
『어... 그럼 혹시 직원이 아니고 이 친구랑 동행이야? 그렇다고 해도 당신, 이렇게 순진한 대학생이랑 놀기엔 나이가 너무 많지 않아? 가까이서 보니 잔주름이 장난 아닌데.』
『저게 뚫린 입이라고... 성질나는데 저 잘난 대가리를 한대 팍 올려칠까.』
『리!』
『왜 말려! 반 바퀴 돌면 정상으로 돌아오겠지. 잘 조준해서 딱 한 대만 칠게. 허락해줘.』
『형은 아파요! 정상이 아니라고요! 아시잖아요!』
『카악! 그런다고 용서해줄 것 같아?! 저것이 날 늙은 닭 취급 했어. 놔라, 샘!』

딘은 두 번 놀랐다.
청년의 이름은 샘이었다.
그리고 그 샘은 욕설을 퍼붓고 있는 여자의 팔을 밖으로 잡아끌며 그로부터 떠나려 했다.
셔츠 밑에서 심장이 엇박자로 박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검은 얼룩무늬가 무수히 시야에 나타났다. 딘은 무엇에 끌리기라도 한 것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여자는 가도 괜찮다. 하지만 남자쪽은 아니다. 딘은 여자로부터 샘을 힘껏 잡아채서 떨어뜨렸다.
간다 안 간다 몸씨름을 하던 두 사람이 동시에 짧은 신음소리를 냈다.
그러든 말든 딘은 샘의 손목을 움켜쥐고 외쳤다.

『여기 위스키 두 잔!』
흥분한 여자가 쟁반으로 추정되는 -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보다 더 두껍고 무게감이 심각한 것으로 딘의 머리를 향해 휘두르려 했다.
『얼음은 넣지 말고!』
그런다고 내가 겁 먹을 줄 아나.
곰 같은 여자를 똑바로 쏘아보며 딘은 샘을 자리에 도로 앉혔다.


★ 대박을 희망하며 300,000벨어치 흰무를 샀어요. 쪽박 안 차고 잘 되길 빌어주세요. ★

Posted by 미야

2008/07/27 20:58 2008/07/27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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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소나기 2008/07/27 22:53 # M/D Reply Permalink

    눈에 상대방이 어떻게 보이든 결국은 샘을 알아보는군요.ㅎ
    뒷얘기 느므느므 궁금해집니다.

    흰무가 어디에 좋은지, 어디에 쓰실건지 짐작도 할 수 없지만,
    대박을 빌어요!!!!
    아자!!!!

  2. 뒤잔봉 2008/07/28 17:26 # M/D Reply Permalink

    여자는 가도 괜찮다. 하지만 남자쪽은 아니다. 라니 꺄//
    딘의 기억이 샘이 대학생일때까지만 있다보군요.
    계속 기다려온 All Wet 잘보고감미다~!!
    위쪽에는 왈왈이 있다는 생각에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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