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비의 이름을 팔아 형제에게 일을 맡긴 천사. 터미네이터처럼 음성 변조가 가능하다는 거겠지. 능력자 맞구나, 카대리! 꺄울~ ※
지금 웃고 있느냐고? 샘은 주먹을 꽉 쥐고 대답했다. 『전혀.』 『진짜로?』 『여자를 주먹으로 쳤다는 말에 실실 웃으면 정신이 제대로 박힌 남자가 아니지.』 『곤란한데, 샘. 지금까지 뭘 듣고 있었냐. 방금 전에 내가 한 말은「여자를 때렸다」는게 아니라「비행기를 탈 수 없다」는 거였어.』
퉁명스레 쏘아붙였지만... 뭐, 그래도 괜찮다. 비록 1년치 햄버거 값을 일시에 날렸어도 결과적으로 딘은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샘은 바다 건너 외국으로 달아나지 않았다. 대신 언제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식으로 스탠포드 대학 법학부에 진학했다. 천진난만하게 자신에게 이것저것 털어놓던 신변잡기 - 한치의 오차도 없이 - 그대로여서 딘은 처음엔 믿지 않으려 했다. 설마, 벽촌에서 태어나 엄격한 가정에서 자란 그 샘 윈체스터는 아닐 것이다. 아버지가 반대했다고 무려 로렌스에서 스탠포드 대학까지 두 다리로 걸어가겠노라 가출을 단행했던 건 아마 다른 사람일 것이다. 딘이 임팔라에 태웠던 건 동명이인이다. 자동차 뒷좌석에 놓인 여성용 가방이 대량의 혈흔만 남기고 행방불명된 마리아 윌튼의 소지품이라는 걸 깨닫자마자 산비탈을 넘어 달아나려고 했던 샘과는 우연히 이름만 같을 뿐이다. 급한 마음에 휘두른 쇠파이프에 다리를 다친 샘은 평범한 대학생 샘과는 다르다. 옷을 벗겨내고 결박했던 것도, 마음껏 뒤를 꿰뚫고 듬뿍 귀여워해주던 것도, 더 깊이 찔러달라며 신음하고 허리를 뒤틀던 것도, 부끄러움도 잊고 매달려오던 것도 전부 다른 샘, 다른 사람...
가로등 불빛을 향해 몇 걸음을 떼어 놓았다가 휙 소리가 나게끔 돌아섰다. 『달아나라고 했던 내 말을 귓잔등으로 듣고 흘려버렸냐?! 믿을 수가 없어!』 심지어 샘은 경찰에 신고하지도 않았다. 『넌 내가 마리아 윌튼의 시체를 자동차 트렁크에서 꺼내 모텔 주인에게로 넘기는 것도 봤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상한 사람이 커다란 비닐에 뭔가를 싸서 으슥한 곳에 버렸다는 내용의 익명 제보는 없었다. 『맙소사. 널 다시 봤다고 해야 할까?』 이렇게 되면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해진다. 『그것도 아니라면 아예 처음부터 내가 널 잘못 봤다고 해야 할까. 어느 쪽이야?』
유령의 흔적처럼 샘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하지만 허깨비를 보았나 싶어 눈꺼풀을 비비는 순간 감쪽같이 증발하는게 바로 유령이다. 그렇게 유령이 물러가자 순진함을 가장한 거짓 미소가 피어올랐다. 『내가 계속 겁에 질린 코요테로 있어줬음 하고 생각했구나.』 얄미울 정도로 상냥하고 나긋나긋한 목소리였다. 『실망시켰나보네. 벌벌 떨며 숨지 않아 정말 미안해.』 미안하다는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으면서 사과부터 하고 보았다.
어디를 가도 안전하지 않을 것이다. 땅 끝까지 달아나봤자 소용 없으리라. 경찰의 보호따윈 바람에 덜컹덜컹 요동치는 얇은 합판과 다르지 않다. 그들은 24시간 내내 곁에 붙어있어 주지도 않는다. 신변의 위험을 느끼고 있다고 호소한들 어쩌다 가끔 순찰차를 보내주는 것으로 끝날 뿐이다. 그리고「귀찮은 민원인」으로 샘을 기억할 것이다. 물론 천성이 친절한 경찰 몇 명은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은 시골뜨기 새내기 대학생을 측은하게 여길지도 모른다. 한 두 번쯤 늦은 귀가길을 따라가며 골목 안쪽을 유심히 관찰할 수도 있다. 그래봤자 관심은 한 달을 넘지 않는다. 그리하여 언젠가 벌어질 샘의 실종 사건은 단순 가출로 결론날 것이다. 그래서 샘은 다른 방식을 선택했다. 미친 듯이 공부에 매달리면서 동시에 많은 사람들과 친분을 쌓았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하던 일을 팽개치고 달려올 수 있는 친구들을 만들었다. 높은 학점과 선량한 품성은 의도한바 그대로 그의 주변으로 사람을 불러 모았다. 인간 방패다.
딘은 방금 그가 한 말을 믿을 수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너, 원래 그렇게 치사한 인간이었냐?』 『이런 경우엔 치사하다는 말 대신 치밀하다는 말을 사용하는게 좋겠지.』 살기 위해 변한다. 생존하기 위해 변화한다. 『그리고 친구들만 맹신하며 있었던 것도 아니고.』 어려서부터 농장에서 허드렛일을 하던 터라 체력에는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격투기를 배우고 호신술을 연습했다. 역기를 들고 런닝머쉰 위를 달렸다. 단순히 멋을 내기 위해 근육을 단단하게 만들었던게 아니다. 어디까지나 실전용으로 편의점 강도와 대적해서 이길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키웠다. 『나는 이제 당신을 두려워하지 않아.』 반대로 그가 샘을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머잖아 당신이 손댈 수 없는 곳까지 올라갈 거야.』 일주일 뒤면 로스쿨 면접이 있다. 친구들 앞에선 대놓고 자랑하지 않았지만 합격은 따낸 당상이다. 변호사의 미래가 있고, 검사의 미래가 있다. 살인마에게 쫓김을 당하는 대신, 법치국가의 권력으로 살인마를 뒤쫓게 될 것이다. 샘은 거만하게 코를 세우고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겁을 집어먹고 들판에서 울부짖던 코요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흐응.』 딘의 반응은 의외로 단순했다. 샘이 상상한 반응은 아니다. 오히려 뭐랄까... 예측과는 정반대다. 『그래서 똘똘이 새미퍼프는 아름다운 금발의 스머패트를 아내로 얻어 수영장이 딸린 으리으리한 저택에서 황새가 물어다 준 아이를 기르며 행복하게 잘 살 거라는 것? 맙소사, 샘. 이렇게 틀에 박히고 고리타분한 애들 동화는 생전 처음이다.』 딘의 비웃음에 샘의 뺨이 빨갛게 물들었다. 『애들 동화가 아니야, 딘.』 『그 말이 맞다. 요즘 애들 보는 만화도 그보단 수준이 훨씬 높다고.』 『마음대로 지껄여.』 『웃긴다. 그게 미래의 거물 변호사님의 으름장이라는 거냐? 늙은이들 떡치는 소리가 그보단 낫겠다.』 『허튼 소리가 아니야.』 샘은 침착하게 딘을 응시했다. 『지금쯤 제시카가 몇 명의 친구들에게 연락을 했을 거야. 그들이 이리로 오기까지 앞으로 얼마 남지 않았어. 만약에 날 죽이고 싶다면 서둘러야 할 걸. 하지만 썩 좋은 판단은 아니지. 내가 당신과 같이 밖으로 나갔다는 걸 그녀가 증언할테니. 경찰은 당신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할 거야. 미국 온 전역에 당신과 비슷하게 그려진 몽타주가 붙는 걸 상상해봐.』 언젠가 딘이 그에게 했던 말을 이때다 하고 고스란히 갚아주었다. 『이름을 바꾸고 숨어야할지 몰라. 누군가 전단지의 그림을 보고 알아볼지도 모르니 외국으로 달아나는 것도 한 방법이지. 아참~! 당신은 비행기가 싫다고 했지? 걱정하지 마. 배를 타면 되니까. 멀미가 그리 심하지 않다면 말이야.』
그러니까 여기서 떠나버려! 속으로 부르짖었다. 계속해서 지나가는 여자애들이나 괴롭히면서 살아가라고! 거칠게 심장 뛰는 소리가 도로 건너편까지 울려퍼졌다.
『에이미 웰치... 센테니얼 고속도로에서 행방불명되었다고 신문에 나오더군. 식장에서 주방보조 일을 하던 갈색 머리카락의 여자 말이야. 모른다고 하진 말아줘. 당신 짓이지?』 그는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인지도 모른다. 너무 오래되어 이제는 바꿀 수도 없을 것이다. 지금에 와서 지은 죄를 후회하라느니, 앞으로는 달라져야 한다느니 떠들어봤자 빈 우물에 두레박을 내려보내는 일이다. 샘은 사막에서 꽃이 피어나는 기적까진 바라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살아.』 나직히 속삭였다. 나는 나대로 살아갈테니. 우리의 접점은 그렇게 해서 끊어지는 거야.
『차에 기름이 떨어진 것도 몰랐다던 그 바보 계집의 이름이 에이미였나?』 당황한 기색도 없었다. 딘은 간단히 고개를 끄덕였다. 『살살 부추겨도 자기 이름이 뭔지 가르쳐주질 않더라고. 그래서 그녀의 이름이 에이미인지 에미년인지 전혀 몰랐지 뭐야. 다만 식당 일을 한다는 건 눈을 감고도 알겠더라고. 몸에서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했거든. 특히 목덜미와 손목에서 누린내가 심하게 났어. 그리고 여기.』 딘은 여성의 가슴 굴곡 부위를 암시하며 엄지손가락으로 정 중앙을 쓸었다.
건조한 방안에서 울 스웨터를 벗어던진 것도 아닌데 따끔거리고 아팠다. 『했어?』 『응?』 『했냐고.』 『뭘?』 딘은 어리둥절해하는 눈치였다. 하다니? 뭘? 『섹스.』 『뭐?』 『섹스 했냐고.』 말도 안 된다. 상식적으로 나가자면 그녀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먼저 물어야 옳다. 납치된 여자의 안부를 묻는 건 깔끔하게 생략한 채 다짜고짜 섹스했느냐 묻는 건 반칙이다. 딘은 눈을 크게 떴다. 이럴 적의 적절한 대답이라는게 뭔지 헷갈렸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샘으로부터 상황에 걸맞는 적절한 질문을 들었다고 가정하고 - 그 여자를 죽였어? - 거기에 맞게끔 고쳐서 대꾸했다. 『죽였어.』 덩달아 샘에게도 혼란이 왔다. 『하고 난 뒤에?』 『이봐!』 그만하자는 신호로 팔을 벌려 보였다. 이것저것 따져묻고 싶었지만 일단 샘은 입을 다물었다.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이건 완전히 질투다. 그래서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딘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정말 듣고 싶지 않았다.
『어쨌든 그 여자 얘기가 나와서 다행이야. 사실 그 년 때문에 너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거든.』 『왜. 에이미가 허리를 얼마나 잘 흔들었는지에 대해 자랑하고 싶어서?』 딘이 한숨을 쉬는 건 당연하다. 비뚫어졌다. 샘은 스스로에게 깊은 혐오감을 느꼈다. 『샘...』 『나도 알아! 제기랄!』 어린애를 타이르는 듯이 제스츄어를 취하는 딘에게 그래서 신경질이 났다. 『진정하라고, 새미. 왜냐하면 이제부터가 진짜 본론인데 말이지...』 거기까지 말한 딘은 주차되어 있던 임팔라 자동차의 뒷트렁크를 의미심장하게 손바닥으로 탁 내리쳤다.
오, 맙소사. 샘은 사색이 되었다. 이렇게 빌테니 에이미 웰치의 시체가 그 안에 들어있다고 하지 말아줘.
Posted by 미야
2009/03/16 12:55
2009/03/16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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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에게는 친구가 많았다. 엄청 많았다. 그러니까 한밤중에 술에 취해 쳐들어와「상황이 급해져서 말이지. 네가 저번에 빌려간 50달러를 지금 갚아줘야겠어. 뭐? 나한테 빌려준 적 없어? 네 이름이 토머슨 R 머치슨이 아니란 말이야?」호들갑을 떠는 것쯤은 별 일 아니었다. 점잖고 좋은 친구들만 있으라는 법이 있더냐, 샘을 호구로 여기는 망나니에 개자식도 분명 있어 지금처럼 봉창 두들기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그들은 지붕에 올라가고 싶어 했고 - 이유는 알 수 없다 - 엄마를 찾았으며 - 역시 이유 불명이다 - 마지막엔 거실 한 가운데에 벌렁 누워 시끄럽게 코고는 소리를 내곤 했다. 이걸 때려죽일 수도 없고. 다음 날 아침에 해가 뜨면 샘과 제시카, 그리고 망할 취객까지 세 명이서 머리를 맞대고 앉아 어이가 없다는 식으로 껄껄 웃음을 터뜨렸는데 제3자의 귀로 듣기엔 그 웃음소리는 그리 썩 유쾌하진 않았다.
코를 찌르는 알코올 냄새를 맡을 수는 없었으나 이번에도 제시카는 술이 원인일 거라고 판단했다. 천장을 노려봤다가 가까스로 평상심으로 돌아왔다. 『샘의 친구인가요?』 『어라. 샘이 제 이야길 하지 않던가요?』 낯선 남자는 빙긋 웃으며 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까닭 모르게 독특한 동작이었다.「맞습니다. 나는 샘의 친구입니다」라는 의미와「그렇지 않아요. 나는 샘의 친구가 아닙니다」라는 양측 의미가 동시에 읽혀졌다. 제시카는 한층 더 갈피를 잡기가 어려웠다. 친구가 아니야? 그렇다면「안녕하세요, 제시카」라고 이름까지 부르며 반갑게 인사를 해왔지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이 얼굴의 주인공은 누구란 말인가. 그녀는 눈을 부릅뜨며 바짝 긴장했다.
『아는 사람이야.』 그때까지도 얼어붙어있던 샘이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어, 고향에서.』 여전히 차가운 얼음 알갱이가 입안에 가득한지라 설명은 비루했다. 아니면 샘 자신이 큰 혼란에 빠진 듯했다. 옆집에 살던 사람이었어, 같은 학교를 졸업했어, 내가 단골로 다니던 커피숍에서 자주 봤던 사람이야, 우리 아버지 사촌의 이모의 세 번째 재혼 상대의 아들이야, 기타 등등의 부연 설명을 깡그리 생략한 채 입술을 깨무는 걸 봐선 그 점은 분명했다. 제시카는 참을성을 가지고 그가 더 많은 이야기를 해주기를 기다렸지만 그건 부질없는 짓이었다. 두 남자들은 다시 한 번 서로를 쳐다보았고, 그들 사이로 그녀가 이해하기 힘든 종류의 의사소통이 이루어졌다. 당사자가 아닌 한 듣거나 이해가 불가능한 차원의 대화, 그러니까 외계인들이 곧잘 써먹는 텔레파시 비슷한 것이 발사되고 있는게 분명했다. 단, 식물채집에 나섰다가 조난당한 ET와 소년 엘리엇 사이에서나 가능한 평화로운 메시지는 아니었다. 샘은 이제 화가 난 것처럼 보였고, 자신의 이름이 딘이라고 밝힌 남자의 눈빛은 음울해졌다. 그녀는 어떠한 기적이 일어나 백화점의 유리문이 자동으로 열린 것처럼 되어 그들의 세계로 풍덩 뛰어들 수 있게 된다면 맨 처음 듣게 되는 소리가 어떤 것일지 돌연 궁금해졌다. 어쩌면 그것은 가까운 곳으로 벼락이 치는 굉음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황소만한 크기의 검은 개가 마구 짖어대는 소리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올게요.』 두 사람 사이에서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제시카는 그렇게 말하며 한 발을 뺐다. 속으로는 어디에 전화를 거는게 좋을까 열심히 궁리하면서 말이다. 911에 전화를 거는 건 그리 좋게 생각되지 않았다. 누가 다친 것도 아니고, 칼부림이 벌어진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브래디와 혹스터에게 이리로 당장 와 달라 부탁할 수는 있다. 한밤중에 말도 안 되는 이유를 거론하며 호출을 해도 그들은 맨발로 달려와줄 것이다. 샘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도 그렇게 해줄 것이다.
『아뇨, 그러실 필요 없어요.』 딘의 음성은 놀라우리만큼 작았고, 놀라우리만큼 강했다. 『샘과 “잠시” 이야기만 나누고 “금방” 떠날 겁니다.』 제시카는 그 말에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토성의 띠처럼 그녀의 주변을 맴돌고 있는 브래디의 전화번호를 혹시 딘이 알아차린 건 아닌가 무서워졌다. 게다가 딘의 그 시선이라니. 실오라기 하나 없이 발가벗겨 피부를 혀로 핥아대고 있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와 비슷한 걸 보고 싶다면 식욕을 돋우는 고기 굽는 냄새를 풍기는 늦은 오후의 식당가를 어슬렁거리면 될 것이다. 덧붙이자면 뒤돌아서자마자 배가 고프다며 투덜대는 먹성 좋은 10대 남자 아이를 집중해서 보라고 권하고 싶다.
은밀한 허벅지 안쪽을 입으로 빨아들이는 촉감이 아무리 착각이라고 해도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은 가슴이 뾰족 서려고 했다. 그리고 그 신체적 반응을 샘이 알아차렸다. 『그만해.』 자기 여자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샘은 제시카와 딘 사이로 끼어들었다. 그리고는 든든한 병풍처럼 가로막고 서서 탐욕스럽게 뜯어보는 수컷의 시선을 창가로 반사시켰다. 『이거 억울한데. 난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고, 샘. 그저 스머프만 보고 있었을 뿐이야.』 항복의 표시로 딘이 팔을 들어보였다. 『그치만 네가 스머프를 그만 보라고 한다면 그만 볼게.』 『그만 봐.』 『오케이.』 너무나 간단하게 물러선다 싶었다. 『그럼 네 말대로 스머프는 그만 볼테니 대신 밖에서 나와 이야기 좀 하자. 그 정도는 괜찮지?』 말문이 막혔다. 샘은 그의 요구에「안돼」라고 말할 수 없었다.
원하는 바를 어렵지 않게 이루자 딘은 실실 웃음을 쪼개기 시작했다. 『그녀는 오래 전에 빚을 진 마약상이 집까지 쳐들어왔다고 여기는 눈치였어.』 손에 잡히는 대로 무작정 들고 나온 후드 티를 허겁지겁 뒤집어 입던 샘은 이 앓는 소리를 냈다. 『이렇게 잘 생긴 마약상이 세상 천지에 어디 있다고... 억울해. 이건 다 네가 정확히 설명을 하지 않아서야.』 제발 그 입 좀 닥쳤음 좋겠다. 계단을 빠르게 뛰어 내려가며 샘은 그렇게 빌었다. 『네 말주변이 형편없다는 건 잘 알고 있지만 말이지.「고향에서... 어, 아는 사람이야」이건 좀 심했어. 사막에 사는 낙타도 그보단 더 많이 말했을 거야.』 낙타는 사람 말을 하지 않는다는 걸 먼저 지적하고 싶다. 『어떤 거야, 새미. 정말로 마약을 하니? 공부 잘 하는 약이라면서 이것저것 주워 먹는 건 아니겠지? 만약 그렇다면...』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랬다면 어쩔건데! 응?! 그랬다면 어쩔 거냐고!』 『관두는게 좋을 거라 충고하지. 졸음을 쫓기 위해서라면 커피를 마시는게 더 나아.』 그래봤자 상대는 요만큼도 동요하지 않았다. 깊은 늪은 한 여름의 폭우에도 휘저어지지 않는다. 둥둥 떠다니는 부레옥잠으로 뒤덮힌 표면은 여전히 그 속을 짐작하기 어렵다. 『뭐... 성실한 네 성격에 약을 할 것 같진 않다만.』 마치 여성을 위하듯 샘이 지나갈 수 있게끔 출입문을 열어주면서 딘은 살가운 표정을 지었다.
문 바깥으로 나가기 전, 샘은 머뭇거렸다. 여자 취급은 둘째다. 사지로 뛰어들고 있다는 예감에 두려웠다. 『내가 약을 하는지 안 하는지가 궁금한 건 아니잖아? 딘.』 목소리가 떨려서 나오지 않음에 하느님께 감사했다. 『그것 말고 다른 할 말이 있지 않아?』 딘은 뒷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서서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래. 다른 할 말이 있지. 그것도 정말 많아.』
1년 동안 그는 샘에 대한 기억을 모두 지웠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바로 샘의 뒤를 뒤쫓아갔을 터였다. 그 얼마나 재미없는 일인가, 사냥감을 놓아주자마자 바로 목덜미를 물어버린다면 그것은 더 이상「놀이」라고 부를 수 없을 것이다. 멀리 도망가게 해서, 꼭꼭 숨게 해줘야 한다. 추적은 그 뒤다. 진정한 사냥꾼은 언제 숲으로 들어가 화살을 당겨야할지 알고 있다. 때가 되기 전까지는 매일이 무료해도 참는게 좋았다. 『그래서 자동차 정비소에 취직해서 죽은 듯이 일만 했지.』 쇳덩이 사이로 매복하고 숨어 사냥꾼을 수호하는 멋진 달이 하늘에 떠오르는 날을 꿈꾸었다. 크리스마스를 기대하는 어린아이의 심정이었다. 큰 사슴을 죽여 그 배를 가르는 기쁨을 상상하며 자위를 했다. 훌륭한 전리품 위로 정액을 흩뿌리는 건 정말 멋진 일일 것이다. 끈 팬티로 똥구멍만 가린 미스 아메리카 따윈 그에 비하면 개뼉다구나 마찬가지였다. 사슴의 다리, 사슴의 뿔! 사냥칼을 들어 단숨에 숨통을 잘라낼 적의 환희! 그 뜨거운 피를 알몸으로 뒤집어쓸 자신의 모습을 생각만 해도 아랫도리가 단단하게 부풀었다.
『그렇게 1년을 참았다고.』 많지는 않았지만 소파 밑에 아무렇게나 쑤셔박았던 1년치 월급을 한꺼번에 꺼내놓고 보니 감회가 남달랐다. 마침내 정비소 일을 그만두겠다며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을 적에 딘은 거의 울 뻔했다. 뼈가 부러져도 눈물 한 방울 나지 않았던 그였다. 일하던 중에 실수로 크게 다쳤을 적에도 침 바르면 낫는다고 말했던 그다. 그런 그가 울먹거리는 목소리를 내자 사장은 크게 오해를 했다. 돈을 빌려줄 수도 있다고, 자기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은 없느냐며 물어왔다. 그제야 정신이 바짝 든 딘은 자기를 키워준 숙모가 돌아가셔서 그런 거라 거짓말을 하고, 걱정해줘서 정말 고맙다고 인사를 하며 부리나케 전화를 끊었다. 그 뒤, 발기한 성기를 격렬하게 잡아당긴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많이 궁금했어. 샘은 어디로 도망쳤을까. 고향으로 돌아갔을까, 경찰에게 가서 내 이야기를 했을까, 아님 외국으로 피했을까.』 그러다 한 가지 문제가 생겼음을 깨달았다. 그것도 꽤나 심각한. 『있지. 고백하자면 나, 비행기를 못 타.』
기가 막혔던 샘은 한 박자 느리게 반응했다. 『.......... 뭐?』 딘은 다 타버린 냄비에서 눌러 붙은 콩을 주걱으로 긁어대고 있다는 식으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에이, 씨! 비행기를 못 탄다고.』 캐나다나 멕시코라면 괜찮았다. 자동차로 갈 수 있으니까. 하지만 샘이 선택한 나라가 영국이나 독일, 그것도 아니면 중국, 말레이시아라면 골치가 아팠다. 그의 이성은 외쳤다. 비행기 추락으로 죽을 확률은 과연 얼마인가. 길 가다 벼락을 두 번 연거푸 맞을 확률이 그보다 약간 높았다. 수치로는 70만분의 1이었다. 인간이 개발한 운송수단 중 가장 안전했다. 그러나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2만피트 상공에서 거꾸로 추락하고도 살아남을 확률이 얼마인지 굳이 계산기를 꺼내 눈에 보이는 숫자로 확인하고픈 마음은 들지 않았다. 딘은 비행기가 싫었다.
『수중에 돈이 있다는게 다행이었지.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 항공 훈련 센터라는게 있더라고. 실제 비행기 객실과 똑같이 만들어진 방에서, 녹음된 비행기 엔진 소음을 귀로 들으며, 우리는 안전하다, 안전하다 염불을 외워가며 시뮬레이션 훈련을 하는 거야. 그런데 가끔씩 방이 흔들리고 의자가 위아래로 기울어져. 그럴 적마다 심장이 얼마나 쿵쾅거리던지 오줌이라도 싸는 줄 알았어. 내가 지금 거금을 내고 만장하신 가운데 바지에 오줌을 지리는 건가 생각하니까 엄청 끔찍하데. 그렇게 속이 뒤집혀져 미칠 지경인데 스튜어디스로 분장한 여자가 그러는 거야. 우리는 안전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여자가 마취총 맞은 개구리처럼 뒤로 벌렁 넘어가 있더라고. 아마 내가 주먹으로 때렸나봐. 그런데 이봐... 너, 웃고 있는 거냐?』
Posted by 미야
2009/03/09 00:49
2009/03/09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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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려서 죄송. 그치만「고등어 자반」을 2년에 걸쳐 썼다는 걸 감안하자면 이건 엄청나게 빠른 거라고요. (그건 자랑이 아니지 않나) ※
두꺼운 구름이 해를 가려준 탓에 걱정했던 것처럼 끔찍스럽진 않았다. 무거운 가방을 어깨에 메고 꼬박 3시간을 걸었음에도 타고난 체력이 뒷받침을 해주어 그럭저럭 참을 만했다. 가끔씩 바람이 불어왔고, 운동화 끝으로 뽀얀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샘은 도로의 가장자리를 따라 걸으면서 땀이 차오른 목덜미를 긁었다. 빛깔이 없는 무채색의 하늘, 그리고 검게 물들어가는 지평선... 순간 방향감각이 마비되었다. 이곳은 도대체 어디인가. 손목시계의 초침이 거꾸로 돌고 있다. 우아하게 날개짓하던 공중의 새도 게시판에 붙여진 흑백 사진처럼 같은 자리에 못 박혔다. 가방을 아스팔트 바닥에 내려놓고 잠시 숨을 골랐다. 붕괴된 건물의 잔해처럼 보이는 낡은 울타리가 가깝다. 그 옆으로 시보레 임팔라가 매우 느린 속도로 미끄러져 지나가면서 강렬한 원색 - 피처럼 새빨간 - 의 길죽한 바퀴 자국을 도로에 남겼다. 샘은 분석하듯 꼼꼼한 시선으로 자동차를 관찰했다. 반들반들 윤이 나는 차체의 표면으로 입을 굳게 다문 샘의 옆모습이 고스란히 반사되었다. 아니, 꼭 그렇진 않다. 그것은 뒤집어진 요술 거울처럼 비춰진 형상 전부를 기괴하게 일그러뜨렸다. 코가 휘어지고 입술이 일그러졌다. 턱이 앞으로 길게 돌출되어 나오면서 주둥이가 짐승의 그것처럼 뾰족해졌다. 드러난 이는 누렇고 날카롭다. 코요테! 그 사실을 깨닫자 벼락이라도 맞은 듯한 강한 충격이 머리를 뒤흔들었다. 관자놀이가 제2의 심장처럼 맹렬하게 뛰기 시작했다.
「그거 알아? 코요테는 아즈텍 어로 노래하는 개를 의미해.」 쿵 소리를 내며 임팔라의 운전석 문이 열렸다. 아아, 그 남자다. 다시 반복되는 소음. 쿵쿵.
『...』 잠들지 못한 채 계속 몸을 뒤척이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꿈을 꾸고 있었다. 당혹감에 휩싸인 샘은 어설프게 남아있던 꿈의 찌꺼기를 떼어내기 위해 힘을 주어 두 눈을 깜빡였다. 한동안 이곳이 어디인지, 자신이 어디로 와있는 건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그곳 - 고향에서 가까운 국도변의 메마르고 음침한 풍경이 여전히 뇌리에 남아 있었고, 짓눌린 신음 소리는 목구멍 안에서 자신의 꼬리를 깨문 채 빙빙 도느라 바빴다. 그리고 가끔씩 경련을 일으키듯 펄쩍 뛰어오르기도 했다. 안 된다. 고함을 지르면. 등 돌리고 누운 제시카를 의식한 샘은 뻣뻣한 아랫입술을 가만히 빨아들이며 숨을 고르게 쉬기 위해 노력했다. 그와 함께 불쾌한 꿈에서 빠져나오는데 일조한 정체불명의 소음에 귀 기울이며「저건 뭐지?」생각했다.
오래된 배관이 드디어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물론 그럴 가능성은 높다. 12년 전에 지어진 4층 높이의 이 서민 아파트는 벌어진 창틀 틈새로 칼바람이 든다는 문제 이전에 이미 다른 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쥐가 망가뜨린 전기 배선은 누전으로 인한 화재의 위험성을 높였다. 옥상에 설치된 벤츄레타는 폭풍이 불기라도 할라치면 망령난 할망구처럼 끼꺽거렸다. 곳곳에서 막힌 하수도가 말썽을 부렸다. 구정물이 역류라도 할라치면 날벼락을 맞은 세입자들은 분노에 차서 문짝을 있는 힘껏 걷어차곤 했는데 나중에 발가락이 퉁퉁 붓게 된다는 점을 고려하자면 이는 곤란에 대처하는 현명한 태도라고는 할 수 없었다. 이웃집 침실에까지 소리가 들리게끔 발길질을 해봤자 막힌 하수도가 저절로 뚫리는 건 아니니까.
「그치만 홧김에 문을 찼다면 어이쿠 외침도 같이 들렸어야 옳지.」 기척을 죽이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샘은 카펫 위로 두 다리를 가만히 내려놓았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숨겨둔 야구 배트를 찾아 바닥을 더듬거렸다. 절묘한 타이밍으로 거실 쪽에서 다시 작은 기척이 들렸다. 샘의 판단으로는 분명 바퀴 달린 테이블이 옆으로 끌리는 소리였다. 화분을 올려두는 용도로 사용하는 이동식 테이블은 제시카의 표현대로라면「고약한 훼방꾼」이었다. 덤벙거리는 성격의 그녀는 여차하면 테이블 모서리에 다리를 부딪치곤 했는데 밤중에 목이 말라 물을 마시러 주방으로 나갈 적에 특히 더 그랬다.
「도둑치고는 주의력이 산만한 편이군. 짐작하자면 무릎에 퍼렇게 멍이 들었을 걸.」 몽둥이를 바짝 당겨 쥔 샘은 벽으로 바짝 붙어 천천히 이동했다. 그 자세에서 고개만 길게 내밀어 바깥을 염탐하려는 찰나 슥, 하고 그림자가 빠르게 지나갔다. 본능적으로 몸을 웅크린 샘은 숨을 멈추고 체내의 감각을 곤두세웠다. 눈에 보이는 것, 귀로 들리는 것, 코로 맡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머릿속으로 빨아들였다. 흥분감에 두 눈이 활짝 밝아졌다. 상대에게 들키지 않고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첫 발을 내딛은 뒤 재빨리 야구 배트를 둥글게 휘두른다. 그 모든 동작을 그림으로 그려본 뒤 참았던 호흡을 훅, 내뱉었다.
『!!』 앞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던 남자가 빠르게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정확히 샘의 오른팔 - 더 정확하게는 야구 배트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방어랍시고 왼팔을 들었지만 너무 늦었다. 손목이 뒤로 꺾기면서 관절이 고통을 호소했다. 이래서는 몽둥이를 휘두르기는커녕 주먹을 뻗을 수도 없다. 『젠장!』 상대는 샘이 가진 무기를 먼저 빼앗을 작정인 듯했다. 그것은 나름 정확한 판단이었다.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자면 지나치게 뻔한 행동이어서 다음 수를 어떻게 놓을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바로 이렇게 하는 거지.」 상대가 야구 배트에 열중한 사이, 샘은「하수구가 막혔을 적의 나의 분노」라는 걸 실감나게 재현하며 다리를 높게 들어 남자를 찼다.
와당탕 소리를 내며 상대방이 2m 뒤로 날려갔다. 샘은 이때다 하고 쫒아갔다. 단숨에 때려눕힐 참이었다. 하지만 녹록지 않은 상대는 몸의 균형을 바로 잡지도 못했음에도 샘의 얼굴을 향해 제대로 된 펀치를 먹였다. 뿐만 아니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눈앞으로 별이 반짝이게 만든 그 짧은 틈을 타고 샘의 어깨를 잡았다. 「이건 좀 위험하겠는데...」 그렇게 생각한 순간 벽이 아닌 천장이 시야에 가득 찼다. 바닥에 세게 부딪친 뒤통수가 깨지게 아픈 건 둘째다. 강철처럼 단단한 손이 샘의 목을 누르며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게 결박했다.
『저리 비켜!』 『워, 진정하라고, 아기 토끼 씨.』 『누가 아기 토끼라는 거야?!』 『하긴... 야구 배트를 힘차게 휘둘러대는 아기 토끼라는 건 좀 그렇네.』 남자는 즐겁게 말하며 친근감을 담아 샘의 어깨를 툭툭 쳤다. 『오랜만이야, 샘. 그동안 잘 있었어?』
샘은 그 질문에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심지어 눈꺼풀을 깜빡일 수도 없었다. 그 반응을 오해한 것 같다. 남자는 눈살을 찌푸리며 서서히 샘을 향해 상체를 기울였다. 마치 잠자는 공주님을 깨우기 위해 키스라도 할 것 같은 움직임이었다. 『뭐야. 설마,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는 건 아니겠지. 혹시 죄다 까먹었어? 기억이 안나?』 그럴 리 없다. 어떻게 잊을 수 있다는 건가. 샘의 눈동자가 경련하듯 분주히 움직였다. 『딘...』 그제야 남자는 매우 기쁘다는 투로 환하게 웃었다. 『그래. 나야. 날 기억해주고 있었구나!』
언젠가 이런 날이 오리라는 걸 알았다. 2년이나 되었다. 날 수로 따지면 730일이나 된다. 처음 1개월이 힘들었다. 샘은 두려웠고, 혼란스러웠다. 딘과 다시 만나게 될 수천 가지의 상황을 상상했고, 그때마다 겁에 질려 어찌할 바를 몰랐다. 사람이 살지 않는 아프리카 오지로 달아나도 딘은 싱겁게 뒤쫓아왔다. 그리고 자신은 코끼리에 밟혔다. 로켓과 미사일로 무장한 군대가 겹으로 둘러싼 요새에 틀어박혀도 소용없었다. 딘은 컴퓨터를 해킹해서 모든 암호와 비밀번호를 무력화시킨 뒤에 당당하게 정문으로 걸어 들어와 샘에게 총을 쏘았다. 무인도에 숨어 로빈슨 크루소 흉내를 내봤자, 고래 뱃속에 들어가 요나 흉내를 내봤자, 돌아서면 항상 딘이 있었다.
「나에게서 도망쳐봐. 시골로 돌아가도 좋고, 이대로 대학에 가도 좋아. 경찰에 가서 내 이야기를 해도 괜찮아. 그들에게서 보호를 받으렴. 이름을 바꿔 어딘가로 숨는 것도 좋지. 해외로 달아나는 것도 한 방법이야. 그렇게 필사적으로 내게서 도망쳐.」 상상 속에서 딘은 손가락을 세우고 장난스럽게 까딱까딱 흔들었다. 「네가 도망치면 도망칠수록, 머리를 써서 숨으면 숨을수록, 나는 널 찾아내는 일에 무한한 기쁨을 느끼겠지.」 하여 마지막은 항상 같았다.
「넌 내 꺼야. 다른 사람이 널 지키고 있어도 반드시 빼앗을 거야, 새미.」
그것은 떠벌이의 허풍 같은 것이 절대 아니었다. 지구 끝까지라도 추적해서 딘은 정말로 샘을 찾아낼 것이다. 그리고 그 뒤에는... 그걸 떠올리자 머리가 차가워졌다.
샘은 심각하고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응?』 독이라도 뿜어낼 듯한 눈빛으로 딘을 쏘아보았다. 『날 죽이러 온 거야?』 그렇다. 처음 1개월은 견딜 수 없게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로부터 2년이 지났다. 2년이면 상당히 많은 것들이 변화한다. 『아님 한가하게 맥주라도 마실까 생각하고 이 집에 들어왔어?』 딘의 눈썹이 곡선을 그리며 휘어졌다. 그리고 모든 의미를 함축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와.』
가시 돋친 발언이었어도 딘은 이 모든게 흥미로운 듯했다. 여전히 그는 재밌다는 투로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맥주를 얻어 마시려던 건 아니야. 다만 뭐랄까...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어.』 그가 화내지 말라는 제스츄어를 해보이며 약간의 거리를 두고 물러서는 것과 동시에 거실 불이 켜졌다. 샘과 딘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전등 스위치가 있는 벽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샘?』 속옷 차림새의 제시카가 이게 다 무슨 소동인가 근심하며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비록 눈꼽이 끼어 있었지만 졸음이 싹 달아난 표정이었다. 『무슨 일이야?』
샘의 입이 얼어붙은 것과는 대조적으로 딘은 친근감을 어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늦은 시간에 미안합니다. 안녕하세요? 제시카.』 그러면서 그녀의 속옷에 프린트된 스머프 그림 - 정확하게는 가슴 굴곡이 고스란히 드러난 부위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멋있네요. 저도 스머프를 아주 좋아하거든요.』
Posted by 미야
2009/03/03 10:02
2009/03/03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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