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미야, 이 누나가 삽 가져왔다~♬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이건 아니다 싶으면 마우스를 움직여 재빨리 화면을 닫아주세요. ※
고장난 인공위성을 머리 위로 이고 앉았다는 막중한 압박감을 일부러 즐기는 사람은 없다. 나름 스트레스가 컸던 딘은 대놓고「악마고 신이고 닥치고 꺼지삼」이라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한 손에는 시뻘건 멕시코 고추와 다른 한 손에는 삼지창을 쥔 코믹한 풍의 악마 그림이 인쇄된 피자 포장지를 이쑤시개로 마구 찔러대는 것만 봐도 짐작이 갔다. 단지 입에서 불이 나온다는 의미일 뿐인데 - 설명하기도 귀찮아진 샘은 도저히 삼킬 수 없었던 매운 맛의 피자를 쓰레기통으로 던졌다. 그리하여 공짜로 얻은 10% 할인 쿠폰은 재앙으로 끝났다.
위장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버려지는 양이 많다는 건 모르는 척 외면하기 힘든 문제다. 지금도 9억 2천 3백만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사람들이 식량 부족에 허덕이고 있다. 비율로 따지면 무려 전 세계 인구의 7분의 1이나 된다. 머리 속이 뒤엉켜 엉망이었어도 맛도 보지 않은 채 파이를 꿀꺽 삼키곤 하던 딘은 그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음식을 낭비하면 벌 받아, 샘. 먹을게 없어 굶어죽은 사람이 널 보면 뭐라고 하겠냐.』 『다시는 거기서 배달시키지 말아요 - 라며 충고하겠지.』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말대꾸한 샘은 휴지를 들고 테이블을 정리했다. 어차피 식욕도 없었고, 것보다 노트북 화면을 딘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펜실베니아 지역 신문으로 이런 기사가 났어.』 『워워, 난 아직 식사 중이야. 혹시라도 내게 구역질나는 사진을 보여주고 싶은 거라면...』 『형을 구토하게 만드는게 목적이었다면「어제 저녁에 실수로 형의 칫솔을 변기에 빠뜨렸는데 새 걸로 바꿔놔야지 생각만 하고 그만 깜빡 잊었어」라고 말했어.』 유치한 애들 장난을 치려는게 아니라는 걸 강조하며 전원이 켜진 노트북을 코앞으로 들이밀었다. 그리고는「난 아무 것도 몰라요」라며 순진하게 되물었다. 『표정이 왜 그래. 속이 울렁거려?』 『욱, 새미...』 노트북은 뒷전이다. 딘은 동생을 두 손으로 목 졸라 죽이는 문제에 대해 잠시 심사숙고 했다.
웹 사이트에 기재된 신문 내용은 단순했다. 『미첼 로프만, 각기 다른 장소에서 동시에 목격되다. 응? 이거 *도플갱어냐?』 올해 마흔 여섯 살의 평범한 전업주부인 샌드라는 손으로 직접 그림을 넣어 구운 수제 도자기를 두고 이웃 주민인 미첼과 즐거운 수다를 떨... 대화를 나눴다. 마침 근처 공방에서 일반인을 위한 도자기 교실을 열고 있었는데 일련의 교육 과정을 끝마친 취미생들이 각자의 작품을 팔아 유기동물을 위한 성금을 모으자며 결정을 내린 참이었다. 샌드라는 붓으로 보라색 난초를 그린 도자기 접시에 대한 기대가 컸고, 미첼은 개를 좋아했다.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목요일에 만나 같이 쇼핑을 하자 약속을 잡았고, 각자 손을 흔들며 반대편으로 헤어졌다. 그로부터 10여분 뒤, 샌드라는 식료품을 가득 싣고 쇼핑센터를 빠져나오는 미첼을 목격했는데 그녀가 걸어간 방향이라던가, 쇼핑에 할애되는 시간을 고려하자면 이건 완전히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그래서?』 딘은 두 다리를 길게 늘어뜨린 채 우두커니 샘을 쳐다보았다. 그 시선에는「이 형더러 어쩌라고?」묻는 구석이 있었다. 샘은 조심스럽고 민감한 얼굴이 되어 볼 안의 살을 가만히 빨아들였다. 『어... 그러니까 내 생각엔 형이 관심을 가질 법한 이야기란 생각이 들어서.』 맙소사, 딘의 판단으로는 그 주장은 완전히 엉터리였다. 『이보라우, 동무. 어딜 봐서 이게 내 흥미를 끈다는 거니? 첫째, 이건 우리가 아는 그 도플갱어가 아니야. 양쪽에서 목격된 미첼은 모두 유령으로 착각되지 않을 정도로 형체가 뚜렷했고, 샌드라와 대화까지 나눴어. 나라면 이 미첼이라는 여자에게 어려서 헤어진 일란성 쌍둥이가 있는지부터 조사할 거야. 둘째, 설령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미첼의 도플갱어가 맞다 해도 우리가 뭘 어떻게 할 수 있겠냐. 이건 녹색을 띄는 *세인트 엘모의 불이 높은 산꼭대기에서 번쩍이는 거나 마찬가지야. 도플갱어는 사람을 해치려는 악령이 아니라 그 자체로 불길한 징조일 뿐이라고. 따라서 당신이 타고 가는 버스가 도중에 전복될 수 있으니 부디 조심하세요, 라고 말하는 것 외엔 할 일이 없어. 그러니까 내 말은, 무지개가 떴다고 그때마다「삽 가져와라, 저기에 요정이 숨겨둔 황금단지가 있다」달려갈 수는 없다는 거야. 알겠니?』 그리고 딘은 재미없다는 투로 푸념하며 바닥에 깔린 카페트로 시선을 내렸다. 『여성 전용 피트니스 클럽 샤워실로 유령이 출몰하고 있다면 또 모를까, 아메바처럼 둘로 분열한 노땅 아줌마라니. 기가 막혀서.』
이쯤해서 딘은 동생이 보일 반응을 추측했다. 1번,「그래, 여성 샤워실에서 유령이 나오질 않아 정말 안 됐다!」버럭 고함지르며 테이블을 뒤엎는다. 2번, 가소롭다는 식으로 웃으며「형은 구제불능의 변태야」스트레이트로 한 방 날린다. 3번,「내가 미리 알아봤는데 그 아줌마에겐 쌍둥이 자매가 없었어. 그리고 덧붙이지면 정자 기증으로 태어난 것도 아니라서 외모가 닮았을 또래의 유전적 형제의 존재 가능성도 사실상 제로야」라며 상식적으로 설득하려 든다, 기타등등.
곁눈질로 동생을 흘끔거렸다. 기대가 어긋났다. 샘은 냉동된 생선을 가득 실은 트럭이 식당 주차장에서 천천히 후진하는 광경을 보고 있다는 식으로 굴었다. 쉽게 말하자면 그 표정은 일상적이었고, 어떠한 뜻과 의미를 부여하기엔 지극히 평범했다. 단단히 골이 났을 거라 생각했는데 완전히 헛다리짚었다. 샘은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노트북을 자신의 침대 쪽으로 옮겼고, 나아가「알았어. 혹시 샤워실에서 목격된 유령이 있는지 조사해볼게」라고 말하는 것으로 딘의 안구가 앞으로 돌출되게 만들었다.
네가 내 동생이 맞냐. 그 샘 윈체스터 맞냐고. 최근들어 딘은 불투명한 차단막이 내려진 유리창 너머로 뿌옇게 흐려진 동생의 형상을 보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곤 했다. 감정을 제대로 읽을 수가 없다. 아니, 사고방식 자체를 모르겠다. 화를 내야 할 부분에선 웃었고, 웃어야 할 부분에선 짜증을 냈다. 때로는 회로가 끊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둘 다 하지 않았다. 그럴 적의 샘은 흡사 솜뭉치로 만들어진 인형처럼 보여 딘을 바짝 긴장시켰다.
『샘?』 이건 절대로 아니다. 커피에 소금 두 스푼을 넣어 마시는 것만큼이나 괴상하다. 번들거리는 눈으로 자신을 노려봤음 희망하는 건 결코 아니나 밋밋한 목소리로「샤워실에 출몰하는 유령이 있는지 알아볼게」말하는 건 하느님께 맹세코 분명히 잘못된 거다. 『너, 어디 아프냐?』 네 살 터울의 동생을 보살피는 형의 목소리를 낸 건 그래서 불가항력적이었다.
『아프지 않아.』 샘은 그가 왜 그런 질문을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아픈 사람으로 보여?』 딘은 심심하게 받아넘겼다. 『아니, 그게... 어흠. 평소의 너 같지 않아서.』 다르고말고.「맨날 읊어대는게 샤워실, 탈의실, 누드 해변... 지겨워. 혹시 형은 불알이 다른 사람처럼 두 개가 아니라 하나인 건 아니야?」라며 빈정거려야 샘 윈체스터다. 그러면 딘은 킬킬 웃으며「궁금하냐? 그럼 형님 몸에 달린 방울이 몇 개인지 보여줄까, 새미」이러며 바지 지퍼를 내리는 시늉을 해보였을 터. 아니, 시늉만 하는게 아니라 진짜로 벗었다. 그러면 샘은 얼굴을 붉힐 것이고, 무릎을 꿇을 것이고, 눈을 감을 것이고, 입을 벌릴 것이고... 『어?』 순간 뭐라 설명하기 힘든 오싹함이 등줄기를 타고 빠르게 흘러내렸다.
음식을 먹을 때처럼 입을 벌려선 제대로 삼킬 수가 없다. 하마가 하품하는 걸 흉내내어 턱을 더 내려야 한다. 익숙하지 않은 행위에 난처함마저 느끼던 샘은 콧잔등을 찡그린다. 그렇다고 해도 입 안 가득 채운 페니스를 도로 뱉어낼 생각은 눈꼽만치도 없다. 오히려 혀 위에서 커다랗게 부풀어가 그것이 전해주는 짜릿함에 잔뜩 취했다. 남자의 냄새가 짙어지면 짙어질수록 쪽쪽 빠는 음란한 소리는 커져갔다. 「무리하지 마.」 위로도 아니고 격려도 아닌 그 말에 샘은 부스스 눈을 뜬다. 하지만 동생의 눈꺼풀은 다시 감긴다. 오로지 집중하기 위하여. 딘도 이를 악물고 주의를 기울인다. 허리를 움직여 보다 더 깊숙이, 안쪽까지 단번에 밀어넣고 싶다. 하지만 진짜로 그랬다간 샘을 질식시켜 죽이게 될 것이다. 그것이 동생이 진심으로 원하던 바라고 할지언정 그렇게 결론이 나는 건 끔찍하다. 그러니 인내심을 발휘해서 샘이 찝찔한 맛의 분비물이 아닌 공기를 제대로 들이마실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천천히.」 부드럽게 만류하며 목구멍 깊숙이 삼켜졌던 페니스를 도로 꺼내려 했다. 불평 섞인 신음소리. 딘의 동작을 거부하며 따라붙는다. 고개와 혀를 빙글 돌려 더욱 열심히 애무한다. 「안돼. 나에게 전부 쏟아, 딘. 한 방울도 남기지 말고 모두. 다 마셔버릴 테니까.」 유혹하는 샘의 목소리는 깊고 나른하다.
목울대 바로 밑에서부터 울렁거렸다. 갑자기 토할 것만 같았다. 딘은 인상을 구긴 채 손바닥을 들어 벌레를 쫓는 시늉을 했다. 『날파리라도 있어?』 『비슷한 거겠지.』 욕구불만이다. 그렇고말고. 보다 적절하게 설명하려면 머리가 돌았다고 하면 될 것이고... 정신이 나갔다고 해도 옳고... 미쳤다고 해도 그럴 듯하고... 샘이 그의 물건을 빨았다고? 그것도 좋아하면서? 맙소사, 샘에게 이 말을 꺼내면 고지식한 동생은 화산을 폭발시키는 기세로 자동차 뒷트렁크에서 산탄총을 꺼내올 것이다. 암연탄이 장전되는 찰칵 소리를 귀로 들으며 딘은 도리질했다. 『여자가 필요해.』 『뭐?』 『문제를 제대로 바로잡으려면 여자가 필요하다고, 새미.』 아마도 샘은 그가 (저질스런 수준의) 연극 대사를 연습하고 있는게 분명하다고 여기는 듯했다. 좋다, 싫다의 반응을 깡그리 생략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걸 봐선 그랬다. 물론 찰나와도 비슷하게 시퍼런 불꽃이 번쩍였지만 번개가 친 건 너무도 순식간이라 어쩌면 샘 본인도 깨닫지 못했을 수 있었다. 『여자?』 『이 형을 봐, 샘. 흉터 하나 없이 말짱하다고. 부러진 곳이 잘못되어 휘어버린 손가락도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며 반짝반짝해요.』 『그래서?』 『내 거시기도 완전히 신품이라는 거지!』 『뭐?』 『귀 먹었냐. 네 형은 동정이라고.』 입을 쩍 벌린 샘은 자기 몫의 대사를 낭독하기를 거절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젠장맞을 연극이라니.
Posted by 미야
2008/12/14 22:57
2008/12/14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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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짧은 습작. 그나저나 요즘 갑자기 새미 괴롭히기 운동본부가 되어버린 듯한 기분이 드네요. ※
시야가 온통 붉다. 아니 파란 것도 같다. 해석하기 힘든 색이 어지럽게 뒤섞여 순식간에 암전된다. 이것은 비명인가. 통곡을 닮은 침묵... 듣는 기능을 상실한 귀가 쑤시듯 아파온다. 기진맥진한 몸으로 내 것이 아닌 토막난 다리를 베고 가프게 호흡한다. 이곳은 정글이다. 그러나 하늘에서 쏟아지는 건 폭우가 아닌 살점, 핏덩이, 오물, 그리고 놈이 내는 웃음 소리. 기어서라도 도망쳐야 하지만 슬프게도 바닥을 휘저을 팔이 없다. 버둥거리고 싶어도 허리 아래로 감각이 없다. 결국 춤추며 내려오는 거대한 낫을 무기력하게 쳐다보며 이를 악다무는 것밖에는...
『후욱!』 눈을 뜨는 것과 동시에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났다. 꿈을 꿨다. 그리고 굉장히 놀랐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내용도 기억나지 않고, 뭘 봤는지도 상세하지 않다. 요컨대「블로우잡을 해주던 창부가 갑자기 광분해선 남의 귀한 똘똘이를 물어뜯었다」라는 줄거리였다고 해도 그런가보다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어쩌면 상어가 헤엄치는 바다에서 조난을 당한 건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라면 쥬라기 공원에서 긴박감 넘치는 티라노사우르스 투어를 즐기던 내용이었을지도. 하여간 땀이 많이 났고, 시체 썩는 악취가 희미하게 남았다. 실제로 그런 냄새를 맡은 것도 아닌데 불가사의한 뇌는 사실도 아닌 정보를 그럴 듯하게 포장해서 그의 판단력을 교란시켰다. 귓속에서 파리가 앵앵거리는 감각이다. 딘은 구역질을 참으며 숨을 헐떡였다.
샘도 덩달아 잠에서 깨어났다. 『딘.』 작게 속삭이던 동생은 날렵한 동작으로 침대에서 뛰어내렸다. 손에는 권총이 들려있다. 그리곤 불도 켜지 않은 채 순식간에 벽 반대 편까지 이동했다. 딘은 순간 당황해서「그게 아냐, 임마!」소리를 지르려고 했다. 하지만 신중하게 주변을 살피던 샘의 동작이 어찌나 날카롭던지 그 소리가 목구멍 속으로 쏙 들어가고 말았다. 동생의 움직임은 흡사 먹이를 추적하는 육식 동물과도 같았다. 천천히, 동시에 확실하게 기척을 읽으며 긴장을 풀지 않았다. 등 근육이 덩어리지며 단단하게 뭉쳐졌다.
『괜찮아.』 여전히 창밖을 응시하며 샘이 말했다. 『괜찮아, 딘.』 그제야 동생은 꼭 쥐고 있던 권총을 아래로 늘어뜨렸다.
원래 잠이 짧은 녀석이다. 신경이 예민해서 조그만 소리에도 반응하여 깨어났다. 익숙하지 않은 잠자리는 이러한 증상을 악화시켜 눈자위를 붉게 충혈시키기도 했다. 뭐, 그걸 모르는 바 아니긴 한데... 지금의 건 오버 아니야? 딘은 손가락으로 콧망울을 긁었다. 그걸 엉뚱하게 오해한 모양이다. 샘은 빠르게 다가와 여러가지 의미를 담아 딘의 어깨를 툭 쳤다. 안심해도 된다고, 수상한 건 없다고, 절대로 지켜줄테니 마음 놓고 계속 잠들어 있어도 된다는 뜻이리라.
딘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투로 엄마 오리처럼 행동하는 샘을 올려다 보았다. 나는 네가 돌봐야 할 어린애가 아니라고!
아무래도 불빛 한 점 없는 어두운 방안에선 표정을 읽기 힘들다. 동생은 다시 딘의 어깨를 힘 줘서 툭, 툭 쳤다. 마침내 입이 풀려 꿀 먹은 벙어리 신세에서 해방된 딘은 버럭 외쳤다. 『무섭다, 야!』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 말은 하지 않았어야 했다. 샘은 흠칫해서 딘에게서 재빨리 멀어졌고, 그는 곧바로 자신의 방정맞은 주둥이를 저주했다. 징그럽다, 웃기게 논다, 같지도 않게 유세를 떤다, 그 외 다른 표현이 얼마든지 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무섭다」라는 말을 했고, 그 표현은 지금의 그들에겐 일종의 금기어나 마찬가지다.
『젠장, 그게 아니라.』 동생의 얼굴이 어떤 식으로 일그러지는지 딘은 알 수 있었다. 『알지? 내 말은 네가 무섭다는게 아니라...』 그래봤자 이미 늦어서 샘은 자기 침대로 되돌아가 머리 끝까지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누워버렸다.
우는 것도 아니다. 눈을 감은 것도 아니다. 단지... 뭐랄까, 단지.
그저 뼛속까지 안타까울 뿐.
Posted by 미야
2008/12/10 11:26
2008/12/10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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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4시즌을 기준으로 잡았으나 드라마의 스토리 라인과 일치하는 건 아닙니다. ※
행선지도 알리지 않고 무작정 외출하겠다는 말을 꺼냈음에도 딘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아니,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는 표현을 쓰기엔 어폐가 있다. 두 눈을 어린애처럼 반짝반짝 빛내면서「어디 가? 누구랑 만나? 혹시 데이트야?」진심으로 궁금해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까. 차마 입밖으로 꺼내지 않은 건 수줍음 많은 동생을 배려해야 한다고 진심으로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새끼손가락을 들어보이며 음탕하게 씨익 웃었다간 샘은 아마 발광할 터, 그래서 묻지 않았고, 권총은 왜 안 가져가느냐 잔소리도 하지 않았다. 대신 약간의 지폐를 반으로 접어 샘의 호주머니 속으로 은밀히 넣어주었는데 그 동작은「올해도 잘 부탁합니다」라며 뇌물을 찔러주는 악덕 업주를 많이 닮아 있었다.
샘은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티를 냈다. 『형이 이러는 거, 짜증나.』 『시끄러, 짜샤. 형이 오랜만에 귀여운 동생에게 용돈을 주겠다는데 왜 지랄이야.』 그러면서 딘은 동생의 정리되지 않은 머리카락을 불만스럽게 쳐다봤다. 길게 자란 옆머리는 삐죽 튀어나왔고 뒷머리는 무슨 잡초처럼 덩굴을 치고 있다. 슬픈 노릇이다. 빗질을 아무리 부지런히 해도 곱슬머리는 여차하면 제멋대로의 방향으로 날뛰어버린다. 헤어왁스를 사용해 단단히 고정을 시키면 상황은 개선되겠으나 대신「멍구」가 되어버린다는 단점이 있다. 유일한 해결책은 가위를 사용해서 길이를 짧게 다듬는 것이다. 그가 귀 부근에서 짤각거리며 움직이는 가위를 대단히 끔찍해 한다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서도. 『나가기 전에 물이라도 발라야 하는 거 아냐?』 『그래?』 멋내기에 별 관심이 없는 샘은 딘이 던지는 시선의 방향을 쫓아 대충 여기겠거니 지레짐작하며 뻗힌 머릿결을 쓸어 넘겼다.
순간 딘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왜?』 『아냐, 아냐. 진짜로 별 거 아냐.』 피가 통하질 않아 저리기라도 한 것처럼 손바닥을 오므렸다 폈다 하던 딘은 신경 쓰지 말라는 투로 싱긋 웃었다. 그러니까 이건 말도 안 된다. 다 큰 남동생의 머리를 쓰다듬는 괴팍한 취미따윈 그에겐 없다. 손가락 틈새로 부드럽게 휘감기는 머릿결의 촉감 따위가 다 뭐냐. 땀에 젖은 두피, 그런 거 모른다. 하지만 한편으론 자세히 알고 있는 것도 같다. 손바닥을 활짝 펴서 뒷통수를 감싸안으면 이렇게, 이런 식으로 묵직하게... 『엉?』 까마득히 먼 옛날에 비누 거품이 맵다며 도망치던 동생을 몽둥이로 뚜드려 잡아 머리를 감겨주던 기억이라고 하기엔 어쩐지 아구가 안 맞는다.
「크리스티」와는 일절 연락이 되질 않고 있다. 「미쳤어? 천사를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만나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 딘을 지옥에서 꺼내온 존재가 천사라고 판명나기가 무섭게 그녀는 얼굴색을 바꿨다. 「난 떠나. 잘 있어, 샘. 계속 건강하길 바라.」 우습게도 갑작스런 루비의 작별 인사는 장기 출장을 떠난 남편이 비행기 표를 끊고 돌아왔으니 우리 관계는 이제 끝장났노라 선언하는 것과 흡사했다. 그녀는 답지 않게 허둥거렸고, 누구에게라도 들킬까봐 조급해하는 눈치였다. 저만치서 이혼 전문 변호사가 흡족한 표정으로 계산기를 두들기고 있다는 식이었다. 고개를 숙인 채 종종 걸음으로 떠나려는 걸 붙잡자 꽥 소리까지 질렀다.
「나는 악마고 저쪽은 천사야. 혹시라도 그들이 날 발견하면 어떻게 반응할 것 같아? 안녕하쇼, 형씨. 지상에서의 생활은 재밌소? 이러고 담배라도 권할 것 같아? 천만에. 내 몸을 반으로 접어선 다시 일곱 번을 찢은 뒤에 다짜고짜 심문부터 하려고 들 거야. 내가 널 돕고 있다고 말해도 소용없어. 물에 적신 밧줄로 묶어 허공에 높게 매달아선, 손바닥과 발바닥에 못을 박고, 이마에 낙인을 찍고, 불타는 석탄으로 가슴을 지질 걸. 그렇게 뒈지는 건 절대로 사절이야.」
천사를 본 적도 없고, 아는 것도 거의 없다고 말했으면서 루비가 입에 담은 심문 방식은 꽤나 구체적이었다. 그래서 샘은 천사가 과연 그런 식으로 잔혹하게 행동할 것인지를 고민했다. 하지만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천사는 상냥하니까. 자비로우니까. 중세 시절에 마녀라 고발된 자를 장작불에 세워 화형에 처하던 인간의 야만과는 닮지 않았을 거라 믿는다. 「난 천사가 두렵지 않아, 루비.」 루비는 그렇게 대답한 샘을 바보 천치인양 쳐다보았다.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트럭을 보고도 피하려고 하지 않는 어린애라도 되는 것처럼 비웃었다. 그리곤 등을 돌렸다.
에바레카 에호와 엘로헤카. 너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시리라.
샘의 몸에서 기운이 빠져나갔다. 축복의 말임에도 오히려 저주처럼 느껴지는 건 역시 그녀의 정체가 악마이기 때문일 것이다.
신께서 내려주신 축복. 맛탄(선물), 슈미타(해방), 로하브(그들의 힘). 눈물 자국을 감추기 위해 손바닥으로 얼굴을 세게 문질렀다.
『당신은 천사인가요.』 유행이 지난 양복을 곱게 차려입은 초로의 신사는 그 질문에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천사냐고? 곧이어 초콜릿처럼 검은 피부 위로 홍조가 번졌다. 최고로 아름답다거나, 선량하다는 칭송의 의미로「천사 같다」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는 만큼, 그의 부끄러워하는 태도는 지극히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평소에도「선한 사마리아 인」이라며 이웃들로부터 존경을 받아왔어도 천사의 옷자락까진 닿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거라 여겨왔다. 천사라니. 노인은 교회 유리창에 장식된 아기 천사 그림을 곁눈질로 훔쳐본 뒤에 짐짓 헛기침 했다. 『안타깝지만... 어흠. 아니라오.』 『그렇군요. 나는 천사를 만나고 싶었는데.』 이곳 교회는 365일 내내 열려있다. 도둑의 침입을 걱정하는 신도들은 운영 방침에 불만을 토로했지만 목사의 뜻은 의외로 확고해서 예배당 입구로 자물쇠가 채워지는 날이 없었다. 약에 취한 노숙자가 구석으로 오줌을 갈기는 사고(?)는 종종 발생했지만 냄새 지독한 오물이야 걸레로 닦아내면 되었다. 그리고 참나무로 만들어진 의자는 너무나 무거워서 땔감으로 쓰겠다며 훔쳐가려 해도 막상 실행에 옮기려면 장정 세 사람이 필요했다. 그 외의 금붙이는 순수하게 정신적인 종류여서 전당포에 팔아먹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는 것들이었다. 사랑, 기쁨, 소망, 믿음... 노인은 무사태평한 표정으로 예배당의 정면을 응시했다. 아니, 응시하는 척하며 사실은 피곤한 안색의 젊은이를 살폈다.
주일에는 신자들이 교회를 방문한다. 평일에는 막다른 곳에 다다른 이들이 교회로 도망쳐온다. 그리고 절망에 가득차「그래서 나더러 어쩌라고요」혼자서 혼잣말을 한다.
『미안하오. 기도하는데 방해가 된다면... 그러니까... 저기, 비켜주리다.』 『괜찮습니다. 상관없어요. 기도하고 싶어도 기도가 되질 않으니까요.』 젊은이는 피식 웃으며 손톱을 튕겼다. 『입만 열면 감사는 고사하고 원망이 터져나올 것 같아서요. 그래서 차라리 입을 다물고 있는 편이 나아요.』 딘을 살려줘서 고맙다고, 형을 지옥에서 꺼내줘서 감사하다고 말해야 한다. 그런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고 싶을 뿐이다. 카스티엘의 멱살을 잡고 드잡이라도 했으면 한다. 그게 한 점 거짓이 섞이지 않은 그의 본심이다. 『그거 아세요? 인간은 어처구니없는 욕심 덩어리예요.』 샘은 청바지의 허벅지 부분을 잡았다 놓았다 반복했다.
딘을 지옥에서 해방시킬 수만 있다면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영혼이 철저하게 파괴된다고 해도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여겼다. 만약 딘을 도와주겠다고 한다면 그 상대가 악마라고 해도 기꺼이 손을 잡을 의향이 있었다. 남은 인생을 내던지고, 삶을 내던지고, 세상을 포기하고... 그렇게 했다. 『그 사람이 다시 살아날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하겠다고 맹세했어요. 나가서 사람을 수 없이 죽이고 오라고 해도 그렇게 했을 거예요. 내가 악마가 되어야 한다고 해도 수긍했을 거예요.』 『이해합니다.』 『아뇨, 아무도 이해하지 못 해요.』 샘은 화가 치민 상태에서, 그리고 동시에 깊은 슬픔에 빠져서 고개를 열심히 가로저었다. 『난 뭐든지 할 수 있었어요.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으니까요. 나는 낙담했어요. 포기했죠. 엉망으로 망가졌어요. 그런데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어요. 천사가 은총을 베풀어 그 사람을 나에게로 돌려보내줬어요. 하느님, 감사합니다. 당연히 나는 기뻐해야 해요.』 묘하게 가시가 박힌 말투에 노인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뭐죠. 그 뜻은 기쁘지 않다는 겁니까?』 샘은 거의 속삭이듯이 음성을 낮춰서 말했다. 『그 사람은 날 사랑했다는 걸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해요.』 『교통사고 후유증... 그런 겁니까?』 머리를 심하게 다쳤거나, 장기적인 혼수상태에 빠졌던 사람들 중엔 간혹 기억을 잃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다. 그리고 그 기억은 때로는 영구적으로 손실되어 회복되지 않는다. 노인은 아마도 치명적이었을 사고를 상상했고, 그것은 비행기와 기차, 그리고 자동차, 오토바이 등등으로 시시각각 모습을 바꿔갔다. 그리고 하얀 가운을 걸친 의사가 각종 튜브와 기계 장치에 연결된 환자의 눈꺼풀을 뒤집는 장면까지 이어졌다. TV 연속극에서나 그럴 뿐이고 실제로 병원에선 그러지 않는다는 건 어디까지나 둘째다.
『어쨌든 무사히 깨어난 거죠? 그렇다면 잃어버린 기억을 하나하나 설명해주면 되지 않을까요. 사진을 보여준다거나, 데이트를 하던 소중한 장소로 그 사람을 데려간다거나.』 『그에게 사실대로 말하라고요. 당신과 나는 살을 섞었던 사이라고?』 샘은 구제불능의 미치광이처럼 눈빛을 번득였다. 『피붙이의 하체를 탐했노라고, 남녀가 교합하듯 형제끼리 교합했다고 말하라고요?』 가엾게도 노인은 혀가 입천장에 달라붙었다.
미움이 아니라 사랑인데도 죄. 끔찍한 죄.
『천사가 저에게 벌을 주려는 건가요.』 그것은 고통에 가득찬 소리였다. 『그 감정은 옳지 않다, 그 행동은 옳지 않다 나에게 가르치는 건가요.』 감사의 기도는 그래서 막혔다.
샘은 아무도 자신의 일그러진 얼굴을 볼 수 없도록 등을 구부렸다. 나는 잘못하지 않았어, 잘못되지도 않았어. 반복해서 중얼거리며 손으로 눈을 문질렀다.
Posted by 미야
2008/12/07 20:47
2008/12/07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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