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침대에 꽃베개, 천사의 깃털로 만들어진 이불을 덮고 공주님은 잠들었어요 - 남자니까 동화책에서나 나올법한 그런 호사까진 바라지 않는다. 눈으로 봐서 적당히 깨끗하고, 손으로 눌렀을 적에 푹신거리면 된다. 까탈스런 성격의 누구 씨 동생처럼 천의 색깔, 이불의 두께, 세제의 잡냄새 어쩌고 불평한 적 일절 없다. 무릇 진정한 남자는 사소한 것에 불만을 품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사람 몸에 무거운 돌 이불을 얹어놓는 건 반칙이지...」
갑갑한 기분에 잠에서 깨어났다. 모로 돌아누운 상태에서 천천히 눈꺼풀만 올려 떴다. 그리고 잘 돌아가지 않는 흐릿한 머리로 자신이 처한 상황을 가만히 분석했다.
벼랑까지 몰려 코앞은 깎아지른 낭떠러지, 넘실거리는 파도가 가까이에서 보였다. 금방에라도 배는 좌초할 위기이고, 협탁 위에 놓인 휴대폰이 덩 소리를 내며 아래로 곤두박질하기 일보직전이다.
아찔한 위기감에 숨을 후후 불며 뒤로 엉덩이걸음을 해봤다. 그래봤자 적당한 공간 확보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 앞으로 진격하는 것밖엔 허락하지 않겠노라며 코가 뾰족한 인간 말종이 등을 떠밀었다. 뭐야, 이거. 해적의 판자에서 고무 튜브도 없이 바다로 풀쩍 뛰어내리라는 것?
흘깃 어깨너머를 돌아다 보았다.
색색 숨소리를 내는 동생이 몸을 둥글게 말고 잠들어 있다. 길게 자란 머리카락이 등을 찔러서 성가시다. 꿈도 꾸지 않는 깊은 잠에 빠진 그는 누가 엎어가도 눈치조차 채지 못할 것처럼 보인다. 땀에 살짝 젖은 앞머리 탓에 여전히 애띈 모습이다. 그런 주제에 덩치는 남산인지라 그 옆에서 반으로 쪼그라든 딘은 팔을 폈다 구부리는 동작마저 맘대로 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이놈이 왜 여기에...」
라고 생각했다가 실수는 자신이 했음을 깨달았다.
계속된 장거리 운전으로 피곤에 쩔은 그는「부탁이니 제발 신발이라도 벗어」라고 꾸중하는 동생 목소리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옷이 사람을 벗는 건지, 아님 사람이 옷을 벗는 건지, 아무튼 발버둥치며 겉옷에서 팔을 빼낸 건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 외에는 깨끗한 백지, 언제 TV를 켰는지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날씨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오늘 텍사스 지방으로 강한 돌풍을 동반한 폭풍우가... 』
노란색 투피스 차림새의 여자가 다소 긴장한 듯한 딱딱한 목소리로 일기예보를 전해왔다. 배경으로는 애들이 크레파스로 그린 듯한 회색의 구름이 빠르게 떠다녔다. 그래봤자 이곳은 미주리라서 바람 사이로 마구 날아다닐 불운한 젖소는 그들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할 것이다. 딘은 끙 소리를 내며 몸을 반대쪽으로 뒤집었... 뒤집으려 노력했다.
추측하자면 졸려 정신이 없는 나머지 제일 가까운 침대로 몸을 던진 모양이다.
결국 피해자는 딘이 아니라 샘으로, 78kg짜리 인간 폭탄에 얻어맞은 격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멍한 눈으로 동생을 쳐다보며 혀를 찼다.
「곧 죽어도 자기 침대다 이거지. 어쩜. 옆으로 비키면 남극 빙산이 무너지냐.」
블랙 아웃한 형의 머리를 향해『이건 내 침대야! 형 침대는 옆이란 말이야!』고함을 질렀을 샘을 상상하자 허탈해졌다. 나아~쁜 놈, 팔짱을 끼고 절대로 비켜주지 않은 행태가 야속하기만 하다. 이 불쌍한 형님, 편하게 잠 좀 자자. 여기서조차 내꺼 네꺼 싸워야 하냐. 하루 정도는 양보해도 좋잖아. 텁텁한 혀로 입술을 축이고는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싱글 침대를 설계한 사람은 애초부터 성인 남자 둘이서 매트리스에 나란히 누울 수도 있다는 걸 가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 중 하나는 표준 사이즈를 넘는다는 점을 기억하자. 필연적으로 겹쳐졌을 팔다리가 쿡쿡 쑤셨다.
온기 없는 이불 속에 몸을 집어넣는 건 정말 싫다. 끙끙거리며 빳빳하게 정리된 침대에 새 주름을 만들었다. 싸늘한 감촉에 움찔거리며 무릎을 오무렸다. 편하게 두 다리를 쭉 뻗었음 좋으련만, 가슴이 텅 빈것처럼 허전해서 차마 그렇겐 못 하겠다.
다시 따뜻해지길 기다리며 발가락을 꼼질거렸다.
「이 비단 이불이 네 이불이냐.」
비몽사몽인 와중에 존이 무뚝뚝하게 물어왔다.
「아님 이 육중한 돌 이불이 네 이불이냐.」
딘은 기가 막힌 표정으로 존을 한참동안 쳐다봤다.
감정이 메마른 것이 분명한 존은 무감각한 얼굴로「옛다, 돌 이불」하고 아들을 향해 바위를 던졌다.
답답한 기분에 다시 눈을 떴다.
여전히 그는 벼랑 끝에 몰려 있었고, 코가 뾰족한 악당이 등을 콕콕 찔러댔다.
옆 침대로 옮겨가겠노라 마음만 먹고 꿈에서나 실행에 옮겼나.
고개를 뒤로 돌리자 아까처럼 웅크리고 누운 샘이 보였다.
「내가 진짜로 많이 피곤했나 보다. 계속해서 꿈만 꾸고 있잖아.」
어쨌든 그는 요의를 느꼈고, 화장실에 가기 위해 부스스 일어났다.
전등은 켜지 않은 채 달빛에만 의지에 주섬주섬 바지를 내렸다.
시든 페니스로 변기를 조준하고 오줌 발사, 물 떨어지는 조로록 소리를 귀로 들으며 하품했다.
『형?』
덩달아 요의를 느꼈나 보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샘이 휘청거리는 걸음걸이로 방안을 어슬렁거렸다. 딘은 다시 찢어져라 하품했고, 손도 안 씻고 화장실에서 얼른 나왔다.
『어... 비었어. 들어가.』
어디가 위쪽이고 어디가 아래쪽인지도 헷갈린다. 그래도 문에서 제일 가까운 침대쪽으로 방향을 잡고 기어갔다. 때려죽여도 잔다. 배게로 얼굴을 파묻곤 이번에야말로 보드라운 비단 이불을 덮을 수 있기를 희망했다.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변기의 물 내리는 소리가 안 났다.
대신 방안을 빙빙 도는 걸 멈춘 샘은 가볍게 한숨을 쉬곤 딘의 옆으로 가서 도로 누웠다.
『음?』
거북살스런 바위 이불에 딘이 이마를 찌푸린 건 그로부터 약 3초 뒤다.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