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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술회전과 백귀야행의 설정을 대충 가져와서 붙인 오리지널 스토리입니다.


체술을 사용해 학교 2층 유리창에 발 하나를 걸쳤을 적에 게토 스구루는 그제야 아차 싶었다.
「이러다 나까지 패널티를 받게 생겼잖아.」
올라가다 말고 화단 아래로 다시 뚝 떨어져 부랴부랴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형식과 절차를 중요시하는 윗분 어르신들은「선 지랄, 후 보고」방식을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핸드폰 버튼 위로 게토 스구루의 손가락이 빠르게 종횡무진 움직였다.

《센다이 오사다미야반초 소재 카제야마 중학교 저주 발생. 현 4급 추정, 특급으로 전환 가능성 높음. 교사와 학생 목격자 다수. 인명피해 가능성을 고려하여 긴급 개입 전개. 서포터 요청.》
이 문자를 보고 다들 어이없어하지 않으려나... 오만상을 쓴 채 혀를 찼다.
4급에서 특급까지 에스컬레이터가 가능하다는 말은 내일 낮 최고기온이 18도에서 182도까지 올라가갈 거라고 예보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외계행성 날씨다. 보조감독들은 거기는 지구가 아닌 거냐며 헛웃음을 터뜨릴 거다.

나중을 생각하지 않는 고죠 사토루는 이번에도 앞뒤 가리지 않고 보았다.
일직선으로 진격, 주력을 잔뜩 그러쥔 채 바닥에 점점이 떨어진 핏방울을 일종의 활주로 조명등으로 삼고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출혈은 정맥피야. 튄 모양으로 보아 높은 위치에서 떨어졌고. 머리를 다쳤거나 코피를 흘렸군.」
미술실 입구 앞에서 허리를 구부정히 하고 서있던 사내가 수직으로 떨어지는 고죠 사토루의 기척을 알아차리고 위를 올려다보았다. 남자의 눈은 흰자위가 없이 전부 검었다.
남자가 헤에, 하고 입술을 바짝 끌어당겨 미소를 지었다.
웃는 것과 동시에 노림을 지나쳐 옆으로 빠르게 움직여 공격을 피했다.
「얼굴이 멀쩡해. 피는 저 놈이 흘린 건 아니네.」
가볍게 바닥으로 착지한 고죠는 물 흐르는 동작으로 손칼을 만들어 남자의 복부 오른쪽의 윗부분, 횡격막 아랫부분을 향해 깊숙이 찔러 넣었다. 중요한 인체장기 중 하나인 간이 자리한 곳으로 여기로 카운터가 들어가면 누구든지 충격으로 몸을 가누지 못하게 된다.

『망할 자식아! 빙의자잖아! 주저사도 아니고! 주령은 더더욱 아니라고!』
계단 말고 벽을 타고 교실 2층까지 올라온 게토 스구루는 일반인을 줘패는 광경을 목격하고 악을 써댔다.
기운으로 봤을 적에 상대는 일반인이다. 뭔가에 씌인 건 확실하나 어쨌거나 일반인이었다.
교사일까? 그럴 것 같았다. 남자는 구두가 아니고 실내용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학교 관계자가 아닌 외부인이었다면 그것과 다른 종류의 신발을 신었을 거다.

혀로 아랫입술을 핥은 고죠 사토루가 투덜거렸다.
『잘 알고 있으니까 상냥하게 대하고 있는 거잖아, 스구루.』
주저사였으면 단숨에 팔과 다리를 꽈배기처럼 비틀어 몸뚱이에서 뜯어냈다. 진짜 신경 써서 살살 해줬다.
『어디가 상냥하다는 거야! 고죠! 그 정도면 대형트럭에 치이는 것과 마찬가지란 말이다!』
『그게 아니라 지나치게 봐준 것 같은데? 그다지 타격이 안 들어갔어.』
『그건 네 기준에서지!』
남자의 복부가 안으로 움푹 들어갔다. 지방으로 가득 찬 똥배를 감추기 위해 힘껏 숨을 들이마셨을 리 없으니 방금 전 외력을 받아 물리적인 변형이 일어났다는 얘기다. 갈비뼈로 보호받지 못하는 위치를 골라 아주 제대로 쳤다. 내부 장기가 제 위치에서 이탈해서 복막 안에서 엉망으로 꼬였을 터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눈치였지만 여파는 있었다.
남자가 입을 벌리고 길이가 1미터가 넘지 않는 뱀 한 마리를 주룩 토했다.
눈이 퇴화하고 없는 뱀이었다. 아니, 뱀처럼 보이는 다른 무언가였다. 복도 바닥에 닿은 그것은 검게 부스러지더니 기분 나쁜 얼룩을 남기고 거품으로 녹아버렸다.
그런데 몸속에 들어가 있던 건 그 뱀 한 마리만은 아니었던 것 같았다. 임신 8주차에 곱창 냄새를 맡았다며 요란하게 구역질을 시작했다. 그러더니 헐떡이며 눈먼 뱀 한 마리를 다시 꿀렁꿀렁 뱉어냈다.

뱃속에 들어있던 걸 게워냈어도 정신이 바로 돌아오지는 않았다.
《주술사인가.》
손등으로 입가를 훔치며 남자가 말했다. 남자라고 하기엔 목소리가 묘하게 높은 느낌이었다.
《성가신 것들... 이번에도 소원을 비려는 게냐?》

고죠 사토루는 일행인 게토 스구루를 돌아보며「쟤가 방금 지금 이상한 말을 했어」표정을 지었다.
소원이라니?
고개를 옆으로 기우뚱하고 질문했다.
『소원을 왜 빌어? 세계평화, 기아구제, 썩은 귤 박멸, 이런 걸 빌면 들어줄 수는 있고?』
《이번에는 그걸 소원으로 비려는 게냐?》
『아니, 들어줄 수는 있는 거냐고. 의심부터 해서 미안한데... 저기, 능력 있으시냐고요.』
목소리가 대답했다.
《합당하고 걸 맞는 대가가 주어진다면.》
『어머나. 설마, 돈을 받는 거야? 그래서 어떤 소원까지 가능한데? 듣자하니 저번에도 주술사가 소원을 빈 눈치인데 그건 제대로 들어줬어?』
남자의 검은자위가 물에 탄 잉크처럼 빙글빙글 녹으며 회전했다.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사랑하는 이의 얼굴이 보고 싶다고 소원했지. 빈사의 몸으로 구르는 주제에 애처로웠다. 그래서 보고 싶어하던 여자의 머리를 잘라 가져다가 안겨주었다. 아내의 머리를 넘겨주며 네 소원은 이제 이루어졌노라 말해주었더니 절망하다 그 즉시 심장이 멎더군. 대가를 가져가기도 전에 죽어버려서 난감했다.》
『호오.』

도발이다.
...... 그런데 진짜 도발일까?
부러 화를 돋우기 위해 꾸며서 말한 눈치가 아니다.
인간의 부정적인 감정의 덩어리로부터 기인한 주령이라면 과장하여 떠보 듯 말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저것은 기만이라기 보다 날 것에 가까웠다.
대화가 가능하지만 다른 의미에서 대화가 되지 않는다.
죽어가면서 마지막으로 부인을 보고 싶어 하던 남자에게 잘린 여자의 머리를 가져다주고 얼굴을 보아라, 라고 한다. 문제는 저게 진심이라는 거다. 애처로워 그 바람을 들어주었다고 말한다.
『성격 나쁘네.』
하지만 이쪽도 만만치 않게 성격이 좋지 않다.
손뼉을 짝 치면서 양손주먹을 쥐었다. 결(結).
전신이 밧줄에 세게 조이는 모양새가 되어 짜부라졌다. 중력가속장치에 억압된 전투기 비행사가 느끼는 압력으로 몸을 압박한다. 압박을 견디지 못하면 갈비뼈가 부러지기도 한다. 이때 부러진 뼈의 단면이 폐를 찌르는 일이 없도록 정당히 눌러주는 게 포인트다.
고죠 사토루는 성격이 나빠 일부러 갈비뼈를 부러뜨리곤 한다. 중력의 세 배 정도로 다리미질을 하면 아주 깔끔하게 부러진다.

『너희들 뭐야! 지금 뭐하고 있어! 어디서 굴러온 불량배가... 아앗, 다나베 선생!!』
츄리닝을 입은 것으로 보아 체육교사로 추청 되는 이와 야구부 유니폼을 입은 학생이 야구배트로 무장하고 달려오다가 쓰러진 남자와 고죠 일행을 보고 기함했다.
「망했네. 이걸로 페널티 확정이다.」
게토 스구루가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경찰 불러!』
저도 부르고 싶습니다, 경찰.
한숨을 푹 내쉬며 엄지손가락으로 체육교사와 야구부 유니폼의 이마 한 가운데를 지긋이 눌러줬다. 침(寢).
야구배트가 속절없이 굴러가고 두 사람이 자리에 벌렁 드러누웠다.

『학생들과 교사들 전부를 하나하나 기절시킬 수는 없다고.』
『불이야, 소리 질러. 스구루. 건물 밖으로 내보내려면 그게 최고다.』
결로 몸이 묶인 사내를 발로 툭툭 차며 고죠 사토루가 말했다.
성가시다. 빙의를 제대로 풀려면 이쪽으로 별개의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주술사가 필요하다.
여드름이나 치약처럼 짜서 나오면 참 좋으련만.

『꺄아악!』
윗층에서 누군가 비명을 질러댔다.
천장을 지긋이 쳐다보면 고죠 사토루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짜증을 부렸다.
『젠장. 하나가 아니라 여러 마리야?』
아 몰랑. 건물 안에 있는 사람들 전부를 결로 묶어버릴까. 한 학급에 서른 명이라고 치면 셋 곱하기 서른 곱하기... 600명 정도 되겠네.
두 팔을 크게 벌렸다가 파리를 잡는다는 식으로 박수를...
게토 스구루가 재빨리 고죠의 두 손바닥 사이로 제 것을 끼워 넣었다.
『될 거 같냐! 페널티! 한 달 내내 빗자루 들고 2천만㎡ 부지를 청소하고 싶어?! 머리 깎고 중이 되라면 어쩔 거야!』
『반성문 정도 쓰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반성문 길이가 도합 10미터가 넘어가야 할 텐데 쓰고 싶어? 고죠.』
『어... 아뇨.』
절대로 사양이라며 고죠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작가가 고죠 사토루를 봉인한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나가사키, 히로시마에 핵 폭탄을 던지면 전쟁이 끝나잖아요. 등장인물이 굴러야 하는데 구를 일이 없어지는 겁니다. 원펀맨이 되지 않도록 고죠 사토루를 분배하는 게 어렵군요. 다음부터는 이이지마 하나에가 무진장 구를 예정입니다.

Posted by 미야

2021/03/22 11:40 2021/03/22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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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술회전과 백귀야행의 설정을 대충 가져와서 붙인 오리지널 스토리입니다.


거짓말이다.
게토 스구루는 단번에 알아차렸다.
「살면서 거짓말쟁이를 하도 많이 봐서 속지 않게 되었다는 건 역시 좀 슬프군.」
교감신경이 항진되어 맥박, 호흡,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말이 많아진다.
머리나 코를 쓸데없이 만진다. 손짓 발짓이 커진다.
이이지마 하나에는 열이 나는 몸과 짜증이란 감정으로 이를 교묘하게 커버했지만 그래봤자 사과껍질보다 못한 거짓말의 두께였다.

멋대로 들쑤셔봤자 나오는 거 하나 없을 거다. (X)
들쑤시면 내가 곤란해진다. (O)


글쎄다. 그는 뱀 신 마을 관련으로 공식적으로 의뢰를 받은 내용이 없다. 이대로 도쿄로 돌아가 버려도 불이익은 없다. 주술고전 1학년 담임인 야가 마사미치는 고죠 사토루가 대형 사고를 치지 않도록 옆에서 잘 지켜보라고만 했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라 요구는 하지 않았다. 따라서 고죠가 건물을 폭삭 주저앉게 만들거나 대형 산불을 내지 않는 이상 딱히 액션을 취할 예정은 없었다.

팔짱을 낀 게토 스구루는 나무에 등을 기대고 서서 눈을 감았다.
봉사를 하는 셈치고 오지랖을 부려봤자 결말이 좋은 것도 아니다. 입맛이 쓸 바에야 처음부터 외면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중학생 토지신? 토지신 없는 동네로 이사를 와 한 자리 단단히 차지하려는가 보지. 단디하게 자신의 신체를 봉인술식으로 억누르는 걸 보아 그럴 배짱도 있어 보이지 않지만 - 신경 쓸 거 없다.
고죠 사토루는 촐랑거리는 겉모습과 다르게 부러 긁어 부스럼을 내고, 종국엔 종기를 짜버려 뿌리까지 뽑아버리는, 그야말로 지나칠 정도로 끝맺음을 내는 타입이지만 게토 스구루는 적당히 요령을 부리는 편이다.
본인은 그걸 중산층 스타일이라고 여기고 있다.
하여 서민출신 주술사는 제출할 보고서에 이이지마 하나에의 이야기는 단 한 줄도 쓰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나저나 주인공 인디애나 존스가 황금으로 만든 신상을 비슷한 무게의 모래주머니와 바꿔치기 하던 게 1편이던가, 2편이던가.」
딴생각에 빠졌다.
1편은 언약궤에 대한 이야기였다. 불길에 온몸이 녹아내리던 악당의 절규가 인상적이었다.
그럼 문제의 장면은 2편에서 나왔던가? 비디오 대여점에서 시리즈를 한꺼번에 빌려봐서 내용이 헷갈렸다.
그도 그렇고 구중궁궐 안에서 꽤 엄격하게 자랐을 것 같은 도련님이 할리우드 오락영화를 꿰고 있었다는 점이 의외다. 이이지마 하나에가 언급한, 유물과 모래주머니 바꿔치기 하는 장면이 뭔지 정확히 아는 눈치다.
물론 고죠 사토루는 채찍을 휘두르던 주인공 해리슨 포드가 멋있었다면서 아버지 허리띠를 가져와 흉내를 내는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남성용 가쿠오비를 채찍처럼 휘두를 수 없다는 건 둘째 치고, 고죠가의 후계자가 미국 배우의 연기를 따라하는 모습은 상상하기가 어려웠다.
감고 있던 눈을 오른쪽만 슬그머니 떠서 고죠를 쳐다봤다.
『왜 그래, 스구루?』
아니다. 배트맨과 로빈 흉내도 충분히 냈을 것 같다. 게토 스구루는 얼른 시선을 돌렸다.

까마귀가 날아오르자 배가 떨어진다더니 고개를 돌리는 것과 동시에 언덕 아래 중학교에서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세 사람은 누가 뭐랄 것 없이 동시에 흠칫했다. 아이들끼리 장난을 치며 시시덕거리는 느낌이 아니라 패닉에 빠진 비명이었다.
놀란 이이지마 하나에가 속눈꺼풀을 열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검은 깃털을 닮은 저주가 4층 창문 밖으로 후루룩 날아오르는 중이다. 먼지구덩이 속을 한참동안 굴러다니던 이불을 먼지떨이로 팡팡 두들기고 있는 모양새로 사방으로 휘날렸다.

『저기요, 주술사 분들. 사거리에 머리뼈라도 묻었어?』
『전혀.』
아니라고 부정했지만 충분히 오해받을 만하다. 흉물로 변한 병원 건물이나 일가족이 몰살당한 살인현장에서나 저런 식으로 저주가 휘몰아치는 법이다. 인위적인 부스터, 그러니까 주술적인 도구 없이 저주의 농도가 저 정도로 짙어지긴 어렵다.
악화되는 속도도 비정상적이다. 가늘게 내리던 비가 삽시간에 열대 스콜로 바뀐 식이다. 나풀거리며 날아오르던 저주가 크게 소용돌이치더니 어느새 옥상에서 1층까지 건물 전체를 덕지덕지 덮어나가기 시작했다.
여기에 마른벼락까지 치면 원령신 스가와라노 도신(※스가와라 미치자네)의 강림이 될 판이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이이지마 하나에는 부리나케 참배 길을 뛰어 내려갔다.
수풀에 감춰져 있던 수십 개의 돌탑에서 검은 기운이 보글보글 끓어올랐다. 처음 보는 광경이기도 하거니와 뜨겁게 가열한 양잿물처럼 부풀었다가 딱 소리를 내며 터지는 모습이 영 심상치가 않았다.
덕분에 참배길이 온통 검게 빛났다.
열이 오른 몸으로 용케 구르지 않아 다행이라 여기며 체육관 뒷길과 연결된 철문의 손잡이를 움켜잡았다.
윽 신음하며 얼른 손을 거둬들였다. 불에 달아오른 걸 만진 것도 아닌데 덴 자국이 생겼다.
안전을 도모하라고 본능이 시끄럽게 경종을 울려댔다. 이대로 돌진하는 건 마치 대형 화재현장에 맨몸으로 뛰어드는 것과 마찬가지니 잘 생각해 보라고 마음의 목소리가 주장했다.
「너는 명줄이 짧을 거란다, 하나에.」
먼 사촌 할아버지 이이지마 리쓰의 목소리도 같이 들렸다. 낙담해하고 슬퍼하며 그는 말했다.

학년이 낮을수록 교실은 높은 층에 자리한다.
계단을 한 번에 두 개씩 밟아 4층까지 진격하고는 때려 부순다는 감각으로 1학년 2반의 교실 문을 열었다.
주먹을 입에 넣어 울음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가는 걸 막고 있던 1학년이 덕분에 놀라 딸꾹질을 터뜨렸다.
어... 그러니까 이름이 전 일본 총리였던 아이다.
『무슨 일이냐, 나카소네!』
반대편에서 왜소한 체격의 남학생이 슬그머니 팔을 들었다. 딸꾹질을 터뜨린 쪽이 아니라 본인이 나카소네라는 뜻이었다.

스가와라 미즈키의 얼굴이 피범벅이었다.
언뜻 보기에도 출혈량이 상당해보여 유혈사태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이 단체로 겁을 집어먹을 법도 했다.
급한 마음에 손수건으로 콧구멍을 틀어막았어도 번져나가는 붉은 색의 속도가 예사롭지 않았다.
피에 익숙하지 않은 남학생들은 얼굴색이 새파랗게 변해 구역질을 참는 중이었다. 매월 주기적으로 하혈을 하는 여학생들은 그나마 쇠 비린내가 익숙했으나 코피가 터진 대상이 다른 사람이 아닌 콧쿠리님이었다는 점에서 충격을 받은 건 마찬가지였다.

이이지마 하나에를 알아본 미즈키가 자신의 몸 상태가 괜찮다는 걸 표현하기 위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덕분에 더 무서워졌다. 대량의 피가 기도를 타고 넘어갔다가 입안으로 역류했었던 것 같다. 치아가 시뻘겋게 얼룩이 져 사람을 날고기로 먹는다던 구울을 연상시켰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다나베 선생님이! 미술실에서 콧쿠리님을 습격했어요!』
반장 하시모토 리코가 앞문을 걸어 잠그면서 다급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대걸레로 무장한 남학생 두 명이 문가에 바짝 붙어 망을 봤다. 둘 중 하나가 요령껏 문틈에 빗자루를 끼워 밖에서 문을 열 수 없도록 만들었다.
『다나베 선생님이 아니야. 그건 앙화야. 미술 선생님은 오늘 출근하지 않으셨어.』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다나베 선생님은 항상 교무실 의자에 트레이드 재킷을 벗어 걸어두잖아. 오늘은 그게 보이지 않았어.』
삼삼오오 모여 웅성거리던 아이들이 그 말을 듣고 숨을 삼켰다.
이때 전 일본 총리와 같은 이름을 가졌다던 학생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제시했다.
『날씨가 따뜻해져서 재킷을 안 입고 출근하셨을 수도 있잖아. 오늘은 바람막이 점퍼를 입으신 건지도.』
그런 거라고 믿고 싶다 – 사람 아닌 것이 교사의 모습으로 꾸민 채 교내를 돌아다니고 있다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사람이어야 했다.

하지만.
선생님이.
1학년의 콧쿠리님을 먹으려 했잖아.
나카소네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입을 벌리고,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쥐어 고정하고, 빨아마시듯 숨을 후읍 - 그게 인간이야?

Posted by 미야

2021/03/19 17:01 2021/03/19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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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술회전과 백귀야행의 설정을 대충 가져와서 붙인 오리지널 스토리입니다.


두려움에 찬 눈빛은 익숙했다. 증오로 번득이는 눈빛도 길가의 굴러다니는 돌멩이처럼 흔했다.
때로 그 둘은 한데 섞여 고죠 사토루를 매우 성가시게 만들곤 했다.
그랬다. 날파리처럼 무익하고 너무나 지루해서 거들떠보기도 귀찮은...
『이거나 먹어라!』
그래도 다짜고짜 고자 킥부터 날리고 보는 건 참신해서 헛웃음을 삼키느라 애를 먹었다.

『이러지 말고 제대로 통성명부터 하자고?』
『카제야먀 중학교 2학년 5반, 이이지마 하나에! 에잇, 이거 뭐야!』

어떻게든 거기를 발로 차고 싶은데 닿을 듯 말 듯 닿지 않았다. 가까이 가면 갈수록 느려지다 못해 정지한다는 감각이었다.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벽이 있어 거기에 가로막혔다는 느낌이 아니다. 그보다는 도라에몽 사차원 주머니 안으로 손이 빨려 들어간 쪽에 가까웠다. 우주적 크기가 있으니 뒤적거려도 도라에몽의 배꼽에는 닿지 않는다.


『적당히 해라, 중학생. 치마를 입고 다리를 무릎 높이까지 들어 올리면 정면에서 보는 사람은 황송하다고. 흰색이네. 귀여워라.』
『변태야, 눈 돌리지 못해?!』
『남성의 낭심을 예고도 없이 발차기로 날려버리려 한 주제에 너무 당당하잖아. 아무튼 내 이름은 고죠 사토루, 주술고등전문학교 1학년 재학 중이지. 저쪽은 게토 스구루. 나와 마찬가지로 같은 1학년이고. 고양이 솜방망이라고 해도 일부러 고자 킥에 맞아줄 생각 따윈 요만큼도 없으니까 그 정도로 하지 않겠어? 중학교 2학년 이이지마 하나에 양.』

무척이나 분해하며 이이지마 하나에가 다리를 내렸다.
발을 구르는 간단한 동작만으로 스가와라 미즈키에게 매달려 있던 뱀을 산산조각 낸 주술사다.
솔직히 이이지마가 그 뱀을 떼어내려 했을 적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걸 저 사람은 뻥 터뜨렸다.
더하여 간섭 주력만으로 이이지마의 몸에 처치된 봉인술식을 망가뜨렸을 정도니 이러쿵저러쿵 따질 것 없이 대단한 실력가다.
봉인술식을 만들어줬던 카이 삼촌 – 사실 삼촌이 아니다. 따지기도 뭐한 먼 혈연으로 타인이나 다를 바 없다. 몸을 의탁한 이이지마 리쓰 할아버지가 이이지마 카이를 삼촌, 삼촌 불러대니 덩달아 하나에도 호칭이 입에 붙어 삼촌으로 부를 뿐이다. - 직접적으로 타격을 입히겠다고 날린 주력도 아니고 그저 간섭 주력만으로 이게 망가질 수 있는 거냐며 눈을 부릅뜨기도 했다.
삼촌 왈, 빙하가 옆에서 두 쪽으로 깨졌는데 그때 발생한 파도로 타이타닉이 침몰한 경우라고 했다.

『몸은 괜찮아졌어? 중학생. 리바운드가 제법 심해 보였는데.』
『병 주고 약 주시네요.』
봉인술식에 금이 가면서 반동이 왔다. 구역질을 너무 해서 나중엔 내장 찌꺼기가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열도 펄펄 끓어 해열제도 네 알이나 먹어야 했다. 지금도 정상 컨디션이 아니어서 지독한 감기를 앓는 느낌이었다.
『뭐? 리바운드에 해열제를 먹어? 제정신이야?』
저주술해 때는 그럼 근육이완제냐. 머리를 길게 기른 쪽이 그게 진짜냐고 물어왔다.
그럼 어쩌라고. 비술사 일반인은 저주로 몸이 상했어도 스님 독경을 청할 짬이 되지 않는다.

『미친! 스님이 독경하는 건 장례식장에서나 하는 거고... 환장하겠군. 어이가 없어서 도대체 뭐부터 말을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쓰고 있던 짙은 색 선글라스를 절반쯤 내린 고죠 사토루가 맨눈으로 이이지마 하나에를 훑었다.
누군가 주술적인 물건을 가지고 봉인술식으로 고쳐 썼다. 저주를 받아 츠쿠모가미가 된 인형의 머리카락으로 액땜부적을 만든 것과 비슷하다.
술식을 만든 주술사는 실력이 있는 쪽임이 분명했어도 처리가 그다지 깔끔하진 않았다. 자력으로 깨우친 술사들이 보통 이런 특징을 남긴다. 술식에 문제가 생겼을 적에 그걸 어떻게 고치면 좋을지 타인에게 물어보질 못하니까 힘으로 어떻게든 억지를 써서 해결하려 한 탓에 전체 균형이 무너져 버린 거다. 그래서 이이지마 하나에의 몸에 제법 부담을 주는 중이다.
코르셋도 너무 조이면 갈비뼈가 부러져 버린다. 강제로 힘을 가해 본연의 기세를 억눌렀지만 중학생의 신체로 감당하기엔 버겁다. 그야말로 난폭하기 짝이 없는, 날 것 그대로의 봉인술식이었다.
금이 간 정도의 상황에서의 리바운드가 그 정도였으면 술식이 강제로 해제되는 날엔 육체가 오마분시 (※죄인의 사지를 말에 묶어 사방으로 달리게 하여 찢어 죽이는 형벌. 거열이라고도 한다.) 형상으로 훼손되어 몰골이 제법 끔찍할 거다.

단단히 미쳤군. 평가를 마친 고죠 사토루가 선글라스를 똑바로 고쳐 썼다.

『이제야 확신이 가네. 너, 정체가 토지신이지?』
이이지마 하나에가 입을 꾹 다문 것과 대조적으로 게토 스구루가 펄쩍 뛰었다.
『쟤가?』
1997년에 제작된 원령공주 애니메이션의 이미지 탓도 크다.
사람들은 토지신이라고 하면 거대한 사슴, 거북, 엄청난 곰 같은 동물로 상상한다.
토지신 자체가 자연을 닮은 존재니까 지상으로 현현하여 인간 앞에 모습을 드러냈을 적에 인간 아닌 모습을 취할 거라 짐작한다. 이를 다시 비꼬면, 인간은 자연과 거리가 있는 존재라는 인식이 있다는 얘기다. 자연을 개발하고 지배한다고 착각하지, 사람 또한 자연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생각은 문명을 이룬 현대인의 머리에 들어가 있지 않다. 따라서 토지신은 등산로에 출몰한 멧돼지와 비슷한 형상일 거라 이해되고 있다.

『실눈 뜨고 보지 말아줬음 하는데요. 실례라고요.』
『아니, 그 뭐랄까... 신기해서.』
『사람 맞거든?!』
그녀는 인간의 모습으로 현현한 토지신이 아니다. 어엿한 사람이다.
어렸을 적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부주의하게 신령한 무지개떡과 복숭아 신주(神酒)를 집어먹었을 뿐으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육도윤회의 굴레에 갇힌 인간임이 맞다.
『그러니 이 망할 주술사 놈아. 내 뺨을 갖고 조물거리는 거, 당장 그만둬!』

일곱 살 여아가 살던 집에서 실종되었다.
일요일 쉬는 날을 맞아 가족이 전부 집안에 있었는데 벽장에 들어가 소꿉장난을 하고 있던 아이만 감쪽같이 증발해버린 거다. 외부의 침입 흔적이 없는 상황에서의 실종이라 친부 이이지마 노부히코가 아동 살해 및 시신유기 혐의를 받았다. 그러다 6개월 후 센다이 야산에서 실종 여아가 극적으로 발견되어 사건은 흐지부지 종결되었다.

『빌어먹을 골프장 같은 걸 너무 많이 만들어서 그래.』
이이지마 하나에가 이를 갈았다.
건설사에서 무턱대고 중장비를 동원하여 산을 세 개나 깎아먹은 탓에 지역 토지신이 힘을 잃고 붕괴할 위기에 처했다. 평소에도 힘이 약했던 토지신이었다. 주령으로 전락할 것도 없이 공중분해 되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래서 궁지에 몰린 토지신은 속눈꺼풀이 아직 닫히지 않은 인간의 어린아이를 골라 유괴했다.
없는 형편에 후계자로 삼으려 했던 게 아니다.
헨젤과 그레텔을 연상하면 된다. 그러니까 과자로 집을 지어 아이를 꿰어낸 뒤에 살 찌워 잡아먹으려 했다는 얘기다. 이 경우엔 살찌울 겨를도 없이 바로 잡아먹으려 했다는 차이점이 있지만.

『인간의 어린아이에게 미약하게라도 힘을 불어넣어 신령한 옥체로 만들면 매우 맛있는 보약이 되거든. 토지신은 자기보다 약한 토지신을 잡아먹고 힘을 키워. 세대교체도 대다수 그런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야, 킁킁거리며 남의 정수리 냄새 맡지 마. 실례라고.』
『아, 미안.』
하나도 미안해하지 않으면서 고죠 사토루가 대충 대꾸했다.

선글라스를 쓰고 있으니 눈이 가려져 표정을 읽기 힘들다.
입은 웃는 모양새가 맞으나 진짜로 웃고 있는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삼촌 이이지마 카이도 항상 웃는 얼굴이었고, 아무렇지도 않게 하나에의 몸에 여러 술식을 시험했었다.
「걱정 마라. 죽지는 않아.」
원래 주술사들은 감정을 잘 제어한다. 웃는 것도 거짓, 우는 것도 거짓.
「그렇게나 고통스러워하다니. 카이 삼촌은 정말 가슴이 미어질 것 같구나, 하나에.」

주먹을 질끈 쥐고 거리를 벌렸다.
고죠 입장에선 길고양이가 츄르 앞에서 콧방귀를 뀌는 느낌이었지만 어쨌든 이이지마 하나에는 정색했다.
『돌아가. 이곳은 이미 텅 비었어. 멋대로 들쑤셔봤자 뭐 하나 나오지 않을 테니. 얌전히 돌아가.』
『필통이 있던데?』
『애들 장난이야. 아무런 주력이 없는 평범한 물건이라는 건 그쪽이 더 잘 알잖아.』
『평범한 물건이라면서 우리가 그걸 밖으로 꺼냈을 적에 제법 긴장하는 모습이던데?』
『인디애나 존스가 생각나서 그랬다. 유적지에서 황금 신상을 들어 올리면 함정 발동하는 거 몰라?』
『오.』
『그러니 썩 꺼져. 꺼지라고.』
쉭쉭 소리까지 내가며 하나에가 날파리를 쫓는 시늉을 했다.

Posted by 미야

2021/03/18 10:42 2021/03/18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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