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술회전과 백귀야행의 설정을 대충 가져와서 붙인 오리지널 스토리입니다.


두려움에 찬 눈빛은 익숙했다. 증오로 번득이는 눈빛도 길가의 굴러다니는 돌멩이처럼 흔했다.
때로 그 둘은 한데 섞여 고죠 사토루를 매우 성가시게 만들곤 했다.
그랬다. 날파리처럼 무익하고 너무나 지루해서 거들떠보기도 귀찮은...
『이거나 먹어라!』
그래도 다짜고짜 고자 킥부터 날리고 보는 건 참신해서 헛웃음을 삼키느라 애를 먹었다.

『이러지 말고 제대로 통성명부터 하자고?』
『카제야먀 중학교 2학년 5반, 이이지마 하나에! 에잇, 이거 뭐야!』

어떻게든 거기를 발로 차고 싶은데 닿을 듯 말 듯 닿지 않았다. 가까이 가면 갈수록 느려지다 못해 정지한다는 감각이었다.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벽이 있어 거기에 가로막혔다는 느낌이 아니다. 그보다는 도라에몽 사차원 주머니 안으로 손이 빨려 들어간 쪽에 가까웠다. 우주적 크기가 있으니 뒤적거려도 도라에몽의 배꼽에는 닿지 않는다.


『적당히 해라, 중학생. 치마를 입고 다리를 무릎 높이까지 들어 올리면 정면에서 보는 사람은 황송하다고. 흰색이네. 귀여워라.』
『변태야, 눈 돌리지 못해?!』
『남성의 낭심을 예고도 없이 발차기로 날려버리려 한 주제에 너무 당당하잖아. 아무튼 내 이름은 고죠 사토루, 주술고등전문학교 1학년 재학 중이지. 저쪽은 게토 스구루. 나와 마찬가지로 같은 1학년이고. 고양이 솜방망이라고 해도 일부러 고자 킥에 맞아줄 생각 따윈 요만큼도 없으니까 그 정도로 하지 않겠어? 중학교 2학년 이이지마 하나에 양.』

무척이나 분해하며 이이지마 하나에가 다리를 내렸다.
발을 구르는 간단한 동작만으로 스가와라 미즈키에게 매달려 있던 뱀을 산산조각 낸 주술사다.
솔직히 이이지마가 그 뱀을 떼어내려 했을 적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걸 저 사람은 뻥 터뜨렸다.
더하여 간섭 주력만으로 이이지마의 몸에 처치된 봉인술식을 망가뜨렸을 정도니 이러쿵저러쿵 따질 것 없이 대단한 실력가다.
봉인술식을 만들어줬던 카이 삼촌 – 사실 삼촌이 아니다. 따지기도 뭐한 먼 혈연으로 타인이나 다를 바 없다. 몸을 의탁한 이이지마 리쓰 할아버지가 이이지마 카이를 삼촌, 삼촌 불러대니 덩달아 하나에도 호칭이 입에 붙어 삼촌으로 부를 뿐이다. - 직접적으로 타격을 입히겠다고 날린 주력도 아니고 그저 간섭 주력만으로 이게 망가질 수 있는 거냐며 눈을 부릅뜨기도 했다.
삼촌 왈, 빙하가 옆에서 두 쪽으로 깨졌는데 그때 발생한 파도로 타이타닉이 침몰한 경우라고 했다.

『몸은 괜찮아졌어? 중학생. 리바운드가 제법 심해 보였는데.』
『병 주고 약 주시네요.』
봉인술식에 금이 가면서 반동이 왔다. 구역질을 너무 해서 나중엔 내장 찌꺼기가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열도 펄펄 끓어 해열제도 네 알이나 먹어야 했다. 지금도 정상 컨디션이 아니어서 지독한 감기를 앓는 느낌이었다.
『뭐? 리바운드에 해열제를 먹어? 제정신이야?』
저주술해 때는 그럼 근육이완제냐. 머리를 길게 기른 쪽이 그게 진짜냐고 물어왔다.
그럼 어쩌라고. 비술사 일반인은 저주로 몸이 상했어도 스님 독경을 청할 짬이 되지 않는다.

『미친! 스님이 독경하는 건 장례식장에서나 하는 거고... 환장하겠군. 어이가 없어서 도대체 뭐부터 말을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쓰고 있던 짙은 색 선글라스를 절반쯤 내린 고죠 사토루가 맨눈으로 이이지마 하나에를 훑었다.
누군가 주술적인 물건을 가지고 봉인술식으로 고쳐 썼다. 저주를 받아 츠쿠모가미가 된 인형의 머리카락으로 액땜부적을 만든 것과 비슷하다.
술식을 만든 주술사는 실력이 있는 쪽임이 분명했어도 처리가 그다지 깔끔하진 않았다. 자력으로 깨우친 술사들이 보통 이런 특징을 남긴다. 술식에 문제가 생겼을 적에 그걸 어떻게 고치면 좋을지 타인에게 물어보질 못하니까 힘으로 어떻게든 억지를 써서 해결하려 한 탓에 전체 균형이 무너져 버린 거다. 그래서 이이지마 하나에의 몸에 제법 부담을 주는 중이다.
코르셋도 너무 조이면 갈비뼈가 부러져 버린다. 강제로 힘을 가해 본연의 기세를 억눌렀지만 중학생의 신체로 감당하기엔 버겁다. 그야말로 난폭하기 짝이 없는, 날 것 그대로의 봉인술식이었다.
금이 간 정도의 상황에서의 리바운드가 그 정도였으면 술식이 강제로 해제되는 날엔 육체가 오마분시 (※죄인의 사지를 말에 묶어 사방으로 달리게 하여 찢어 죽이는 형벌. 거열이라고도 한다.) 형상으로 훼손되어 몰골이 제법 끔찍할 거다.

단단히 미쳤군. 평가를 마친 고죠 사토루가 선글라스를 똑바로 고쳐 썼다.

『이제야 확신이 가네. 너, 정체가 토지신이지?』
이이지마 하나에가 입을 꾹 다문 것과 대조적으로 게토 스구루가 펄쩍 뛰었다.
『쟤가?』
1997년에 제작된 원령공주 애니메이션의 이미지 탓도 크다.
사람들은 토지신이라고 하면 거대한 사슴, 거북, 엄청난 곰 같은 동물로 상상한다.
토지신 자체가 자연을 닮은 존재니까 지상으로 현현하여 인간 앞에 모습을 드러냈을 적에 인간 아닌 모습을 취할 거라 짐작한다. 이를 다시 비꼬면, 인간은 자연과 거리가 있는 존재라는 인식이 있다는 얘기다. 자연을 개발하고 지배한다고 착각하지, 사람 또한 자연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생각은 문명을 이룬 현대인의 머리에 들어가 있지 않다. 따라서 토지신은 등산로에 출몰한 멧돼지와 비슷한 형상일 거라 이해되고 있다.

『실눈 뜨고 보지 말아줬음 하는데요. 실례라고요.』
『아니, 그 뭐랄까... 신기해서.』
『사람 맞거든?!』
그녀는 인간의 모습으로 현현한 토지신이 아니다. 어엿한 사람이다.
어렸을 적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부주의하게 신령한 무지개떡과 복숭아 신주(神酒)를 집어먹었을 뿐으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육도윤회의 굴레에 갇힌 인간임이 맞다.
『그러니 이 망할 주술사 놈아. 내 뺨을 갖고 조물거리는 거, 당장 그만둬!』

일곱 살 여아가 살던 집에서 실종되었다.
일요일 쉬는 날을 맞아 가족이 전부 집안에 있었는데 벽장에 들어가 소꿉장난을 하고 있던 아이만 감쪽같이 증발해버린 거다. 외부의 침입 흔적이 없는 상황에서의 실종이라 친부 이이지마 노부히코가 아동 살해 및 시신유기 혐의를 받았다. 그러다 6개월 후 센다이 야산에서 실종 여아가 극적으로 발견되어 사건은 흐지부지 종결되었다.

『빌어먹을 골프장 같은 걸 너무 많이 만들어서 그래.』
이이지마 하나에가 이를 갈았다.
건설사에서 무턱대고 중장비를 동원하여 산을 세 개나 깎아먹은 탓에 지역 토지신이 힘을 잃고 붕괴할 위기에 처했다. 평소에도 힘이 약했던 토지신이었다. 주령으로 전락할 것도 없이 공중분해 되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래서 궁지에 몰린 토지신은 속눈꺼풀이 아직 닫히지 않은 인간의 어린아이를 골라 유괴했다.
없는 형편에 후계자로 삼으려 했던 게 아니다.
헨젤과 그레텔을 연상하면 된다. 그러니까 과자로 집을 지어 아이를 꿰어낸 뒤에 살 찌워 잡아먹으려 했다는 얘기다. 이 경우엔 살찌울 겨를도 없이 바로 잡아먹으려 했다는 차이점이 있지만.

『인간의 어린아이에게 미약하게라도 힘을 불어넣어 신령한 옥체로 만들면 매우 맛있는 보약이 되거든. 토지신은 자기보다 약한 토지신을 잡아먹고 힘을 키워. 세대교체도 대다수 그런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야, 킁킁거리며 남의 정수리 냄새 맡지 마. 실례라고.』
『아, 미안.』
하나도 미안해하지 않으면서 고죠 사토루가 대충 대꾸했다.

선글라스를 쓰고 있으니 눈이 가려져 표정을 읽기 힘들다.
입은 웃는 모양새가 맞으나 진짜로 웃고 있는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삼촌 이이지마 카이도 항상 웃는 얼굴이었고, 아무렇지도 않게 하나에의 몸에 여러 술식을 시험했었다.
「걱정 마라. 죽지는 않아.」
원래 주술사들은 감정을 잘 제어한다. 웃는 것도 거짓, 우는 것도 거짓.
「그렇게나 고통스러워하다니. 카이 삼촌은 정말 가슴이 미어질 것 같구나, 하나에.」

주먹을 질끈 쥐고 거리를 벌렸다.
고죠 입장에선 길고양이가 츄르 앞에서 콧방귀를 뀌는 느낌이었지만 어쨌든 이이지마 하나에는 정색했다.
『돌아가. 이곳은 이미 텅 비었어. 멋대로 들쑤셔봤자 뭐 하나 나오지 않을 테니. 얌전히 돌아가.』
『필통이 있던데?』
『애들 장난이야. 아무런 주력이 없는 평범한 물건이라는 건 그쪽이 더 잘 알잖아.』
『평범한 물건이라면서 우리가 그걸 밖으로 꺼냈을 적에 제법 긴장하는 모습이던데?』
『인디애나 존스가 생각나서 그랬다. 유적지에서 황금 신상을 들어 올리면 함정 발동하는 거 몰라?』
『오.』
『그러니 썩 꺼져. 꺼지라고.』
쉭쉭 소리까지 내가며 하나에가 날파리를 쫓는 시늉을 했다.

Posted by 미야

2021/03/18 10:42 2021/03/18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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