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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술회전과 백귀야행의 설정을 대충 가져와서 붙인 오리지널 스토리입니다.


근육이 거의 없는 여자여서 그런지 움직임이 둔했고 속도도 매우 느렸다.
발동작이 전통 무용을 닮아 궤적을 예상하고 움직이면 중학생이라도 충분히 피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해도 들고 있는 것이 손도끼다. 상대가 날붙이를 들고 있으면 비벼볼 꿈은 꾸지도 말고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쳐야 하는 법, 도주할 방향으로 몸을 튼 다음 검지와 검지를 붙이고 호령했다. 개(開).

탕, 탕, 탕, 소리를 내며 헤아리기 어려운 수의 장지문이 일시에 열렸다.
현실에서 이런 구조의 집을 짓는 사람이 있다면 빌 게이츠 부럽지 않을 갑부일 거다. 어마어마한 크기를 가져 백 명 연회가 가능하다고 선전하는 료칸도 맞거울에 비친 형상처럼 되는 일은 없다. 따라서 공간이 기형적으로 왜곡되어 있다고 추측하는 편이 타당성 높았다.

뒤에서는 여전히 손도끼를 든 여자가 비틀거리며 따라오는 중이었다. 손도끼 무게가 버거웠던지 걸음을 옮길 적마다 좌우로 크게 휘청거렸는데 덕분에 문설주에 스스로 머리를 박는 꼴사나운 광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보는 입장에서 웃음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바나나 껍질을 밟고 넘어진 이가 출근 중인 샐러리맨이 아니고 요코즈나 스모선수라고 해보자. 아무도 안 웃는다.

『이유나 말해주고 쫓아오던가!』
여자가 신음소리 하나 없이 다시 몸을 추슬렀다.
이상하게 표정이 없어 인형 얼굴을 오려내어 가면처럼 씌워놓은 것 같았다. 덕분에 국화로 치장한 관속에 누워있는 송장 느낌이었다.

마주대고 있던 검지와 검지를 안으로 구부렸다. 폐(閉).
손도끼를 든 여자의 코앞에서 탕, 요란한 소리를 내며 장지문이 닫혔다.
토지신의 몸으로 쓸 수 있는 술(術)이 겨우 열려라 참깨, 닫혀라 참깨, 딱 두 가지라는 건 어디 가서 말하기도 부끄럽다.
하지만 나름 할 말은 많다. 새로 태어난 토지신은 아주 맛있는 영약이다. 먹고 싶다며 잔칫상 차려놓고 요리할 궁리를 할 신들이 일본에 무려 800만이나 있다. 지금까지 기척을 숨기는 데 기력을 집중하다보니 몸을 지킬 비기를 익힐 짬 같은 건 없었다. 맹물을 술로 만드는 잡술 정도나 겨우 해봤다고 할까... 사실은 보리차로 맥주를 만들려고 시도한 게 전부다. 그리고 성공도 못했다.
후회가 되지 않느냐고? 지금에 와서 이랬으면 어땠을까, 저랬으면 좋았을까 가정을 해보는 건 전날 야식으로 먹은 라면을 후회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미 얼굴은 땡땡 부었다.

술을 이용해 강제로 닫은 장지문이 달각달각 흔들렸다.
그래봤자 종이를 바른 장지문이다. 무겁고 단단한 서양식 문과는 애당초 기능 자체가 달라 공간을 분할한다는 의미밖에는 없다. 문 뒤에 숨어 몸을 지킬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거는 자체가 어리석다.
도끼질 한 방에 장식용 살이 떨어져 나가고 그 틈새로 이쪽을 응시하는 여자의 눈과 제대로 마주쳤다.
순간 찌릿하는 전기가 이이지마 하나에의 척추를 타고 흘렀다.
『샤이닝이냐! 맛 간 잭 니콜슨이냐고!』

옆으로 달아날 수 없다면 위를 노린다.
다시 검지를 마주대고 이번에는 머리 꼭대기를 향해 외쳤다. 개(開).
지붕 뚜껑이 날아갈 거라고 계산했는데 너무 얕봤나 보다.
팡, 하고 떨어져나간 반자의 장식판자 너머로 다다미가 보였다. 그러니까 꺼풀을 벗겨낸 천장 너머로 지붕을 지탱하는 대들보가 드러난 게 아니라 거울로 반사된 이미지의 방 구조물이 나타났다. Ctrl+C 복사하여 Ctrl+V 붙여넣기 하면서 위아래를 반전시킨 거다.
저릿한 느낌이 다시 척추를 타고 머리꼭대기로 향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공간에서 과연 탈출이 가능한가.

인외세계의 시간은 인계와 다르게 흐른다. 제 마음대로라서 느리게 흘러갈 수도, 빠르게 흘러갈 수도 있다.
하나에와 비슷하게 저쪽의 토지신에게 붙잡혔던 이이지마 카이는 무려 20년이 지나서야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경계의 덤불숲에서 이쪽의 사람들이 카이를 성공적으로 낚아챘을 적에 그는 놀랍게도 실종되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대학생의 말간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저 며칠이 흘렀을 뿐이었다며 카이는 말을 잃었다. 그동안 대학교 동기들은 결혼도 하고, 승진도 하고, 집도 샀는데 본인은 대학중퇴 이력을 가진 거주지 불명자 신세로 전락했다. 집 거실에 놓여 있던 버튼식 전화기를 한참이나 응시하던 카이는 그 전에는 다이얼식이었노라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일곱 살 무렵에 토지신에게 납치되었던 하나에는 5분 안팎의 시간을 그쪽에서 보냈다.
어렸기 때문에 더 길게 느꼈을 뿐으로 어쩌면 그 절반도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둥근 도넛 모양으로 양 갈래 머리를 묶은 동자가 작은 다과상을 가져왔고, 하나에는 잘 먹겠습니다 인사하고 떡을 집어 먹었다. 콩알 크기의 떡을 먹는데 몇 초가 걸리겠는가. 뒷맛이 떫어 몇 번 씹지도 않았다. 절반은 삼키고 절반은 뱉었더니 밖은 이미 6개월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안 돼. 절망하기엔 아직 일러. 무사히 빠져나갔더니 10년 뒤였습니다, 꼭 이렇게 될 거라는 보장이 어딨어. 여기서 30년을 보냈는데 바깥은 3초 뒤일 수도 있잖... 거헉!」
무릎을 꿇었다.
이곳 인외세계에서 배가 고파진다거나, 잠이 온다거나, 소변이 마려워지는 일은 없을 거다.
그렇다고 30년의 세월을 이딴 장소에서 낭비한다면 정신이 회까닥 돌아버린다. 30년은 고사하고 정신 줄을 놓아버리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을 거다.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게 과학적으로 설계된 특수한 방에 들어간 인간은 40분 이상을 참지 못했다. 환각을 보고 환청을 들으면서 종국엔 감각 소실까지 이어졌다고 했다. 이이지마 하나에도 그와 비슷한 과정을 겪다가 종국엔 완전히 망가져버릴 거다.

「밖에서 인외세계 안으로 들어오는 건 쉽다.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건 대단히 어렵다. 그렇다고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다.」
까득 어금니를 씹었다. 어떻게든 돌아간다. 포기할까보냐.

수직으로 떨어지는 손도끼를 피해 옆 구르기를 하면서 손가락으로 인을 맺었다. 개(開).
여자의 기모노 앞섶이 좌우로 벌어졌다. 속안까지 전부 풀어 헤쳐져 봉긋한 가슴이 드러났다. 술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열.어.라. 여자의 배가 위아래 방향으로 벌어졌다. 찢어진 틈새로 대장에 소장에 위까지 장기가 주룩 흘러내렸다. 아직이다. 열.어.라. 이제 여자의 등이 갈라졌다. 여자의 뒤편에 있던, 도끼질에 부서졌던 장지문까지 벌컥 열렸다. 주인을 잃은 손도끼가 바닥을 찍었다.

호흡이 거칠어졌다.
사람 모습을 한 뭔가를 고깃덩이로 갈아버렸다.
꿈에 보일까 걱정이 될 지경으로 끔찍한 몰골이었다.
그래도 갈라진 여자의 몸에서 피보라가 날리지 않아 다행이었다. 심장이 뛰지 않으면 출혈은 일어나지 않는다.
대신 생생하게 피를 쏟은 건 이이지마 하나에다. 뜨끈하고 비릿한 액체가 인중을 타고 턱 아래까지 흘러내렸다. 점막까지 부어오르는 건지 곧 숨 쉬기가 어려워졌다.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았지만 답답함을 못 견디고 코를 푸는 요령으로 킁킁거렸다. 그 즉시 쏟아지는 코피의 량이 배로 늘었다.

「이게 끝이 아니다. 지금부터가 진짜야. 소리가 들린다.」
손바닥에 피을 뱉고 손도끼를 집어 들었다.
스윽, 스윽, 다다미를 빗자루로 쓰는 소리였다. 그렇다고 누군가 빗자루로 방안을 청소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잔뜩 긴장한 채 귀를 쫑긋 세워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짐작해봤다. 도끼를 내려칠 준비를 하고 문설주 옆으로 기대어 섰다. 스윽, 스치는 소리가 한층 더 가까워졌다. 독이 오른 그녀는 발을 쿵 내딛고 선공을 시도했다.

《□□□ □◆□■■□□!》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며 천장으로부터 구렁이 몸집의 큰 뱀이 뚝 떨어졌다.
어리석은 것, 이럴 줄 알았다, 기습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대충 그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싶다.
기겁을 한 이이지마 하나에는 손목 스냅을 사용해 뱀의 머리부위를 향해 손도끼를 휘둘렀다.
아쉽게도 살을 가르는 대신 막대로 목탁 때리는 소리만 났을 뿐이다.
『이거 뭐야, 날이 없는 도끼야?!』
기술이 부족했던 건지, 아님 단순히 힘이 부족해서인지는 알 길이 없다. 어쨌거나 큰 뱀의 몸에는 생채기도 안 생겼다.

《●□□□ ○■■■, □□□□◆□□.》
어차피 해석되지 않는 말이니 귀에 담지 않았다.
보나마나 맛있게 먹어주겠다느니, 반항은 그만두라느니 식의 승자선언 발언이었을 거다.
『開 열어라!』
죽을힘을 다하면 죽는다. 이이지마 하나에는 평소에도 죽을힘을 다해 노력하라는 말을 엄청 싫어했다.
하지만 맹세코 지금만큼은 죽을힘을 다했다.
『開 열어!』
뱀의 입이 벌어졌다. 먹이를 삼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도구를 사용해 강제로 잡아 벌린 모양새가 되었다.
그것의 눈에 감정이 실렸다. 아마도 당혹감 비슷한 거였을 거다.
멈추지 않고 세 번째로 호령했다.
『開 열어라~!!』
《■■■ ◆○■■■■■■■□!!!》
멧돼지도 삼킬 수 있을 정도로 뱀의 입이 벌어졌다. 전후좌우로 부드럽게 움직임이 가능한 턱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한계는 존재한다. 결국 약간의 턱 아래 조각만 남기고 뱀 주둥이가 전부 찢어발겨졌다.

Posted by 미야

2021/03/25 13:43 2021/03/25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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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술회전과 백귀야행의 설정을 대충 가져와서 붙인 오리지널 스토리입니다.
일본은 한국과 달리 4월에 학기가 시작된다고... 쿨럭. 하는군요. 이걸 어쩌나. 한국처럼 3월 학기 시작인 걸로 글을 써와서 수정을 할 부분이 제법 많을 것 같습니다. 



귀청이 떠나가라 화재경종이 울렸다.
비명 소리가 들린 것과 거의 동시여서 무엇이 먼저였는지 나중에까지 판단이 쉽지 않았다.

후에 출동했던 소방서 공식 보고서에는「비명 소리가 들렸다」내용 자체가 쏙 빠져 있었다.
따라서 뱀을 봤다, 천장에서 시커멓게 덩어리진 구정물이 떨어져 내렸다, 둥글게 말린 검은 밧줄이 곳곳에 방치되어 있었다, 등등의 진술 또한 당연히 빠진 채였다.
2004년 꽃이 만개하던 어느 날, 그날 학교에서는 화재경종이 울렸다.

모두가 놀라 비명을 질러댔다. 바닥으로 뱀이 기어갔다.
천장에서 정체 모를 시커먼 것들이 후드득 떨어져 체육복으로 갈아입던 중인 스가와라 미즈키를 덮쳤다.
『피해!』
이이지마 하나에가 체육복 상의를 붙잡고 미즈키를 검은 덩어리로부터 끌어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음에도 미즈키는 어느새 입안까지 들어간 시커먼 덩어리를 뱉어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모양은 그렇다 치고 뒷맛이 쉰 냄새가 진동하는 걸레를 짠 구정물과 비슷했다. 너무나 역겨워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냉장고에 집어넣은 채 까먹어 8개월 뒤에야 꺼내봤던 미역 초무침도 이것과 비교하자면 양반이었다. 미끄덩거리던 특유의 상한 미역 질감까지 떠오르자 어질어질해졌다.

「보통 일이 아니다. 다른 애들의 눈에도 보인다.」
소스라쳐서 뒷걸음질 치는 학생들의 반응으로 보아 눈에 보이는 게 분명했다. 어떻게든지 닿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책상 위로 올라간 아이도 있었다.
그런데 이이지마 하나에의 판단으로는 그다지 썩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부해는 천장으로부터 뚝뚝 떨어져 내리는 중이었다. 거기에 닿지 않으려면 책상 아래로 기어들어가야 했다.

대걸레 자루를 빼앗아 그걸로 검은 덩어리를 찔렀다. 눈에 보이니 어쩌면 물리적 대응이 가능할 거라는 판단이 들어서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대걸레 자루는 표면에 닿는 일 없이 깊이가 짐작되지 않는 연못 아래로 가라앉듯 빨려 들어갔다. 아니, 오히려 안쪽에서 세게 잡아당기는 느낌이었다.
「망했어! 이럴 적에는 어떻게 해야 하냐고!」
자칫하면 같이 휩쓸리게 생겼기에 쥐고 있던 걸 얼른 놓았다. 그러자 순식간에 대걸레 자루가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야말로 한 입에 꿀꺽 먹어치웠다는 느낌이었다.
『선배! 위험해요!』
검은 덩어리의 한 가운데 부분이 쩍 갈라졌다. 대걸레 자루는 맛이 없었는지 이번에는 사람을 삼키기 위해 입을 벌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눈을 부릅떴지만 피할 방법이 없었다.
얼굴에 차갑고 비린 것이 닿았다고 깨달은 것과 동시에 팟, 하고 빛이 사라졌다. 완벽한 암전이었다.

이불을 개어두던 벽장 안에서 인형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 날은 일요일이었다.
아버지 이이지마 노부히코는 거실에서 컴퓨터 마우스를 딸각딸각 움직이며 인터넷으로 바둑을 두고 있었다. 어머니는 밀린 집안일을 하느라 앞치마를 걸치고 거실에서 주방, 다시 안방까지 분주하게 움직이느라 바빴다.
오른손으로는 강아지 인형을, 왼손으로는 악어 인형을 쥔 하나에는 어른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두 인형을 서로 인사시켰다.

「안녕하세요, 어제 옆집으로 이사를 왔수다. 앞으로 친하게 지내요. 이름이 어떻게 되요? 저는 하나에라고 해요. 이 동네에선 쓰레기를 밖에 내놓는 요일이 어떻게 되요?」
「어머,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부인! 쓰레기는 수요일 날 아침에 배출되어야 해요.」
「정말 친절하세요. 그런데 빠가사리(ばか) 아들은 나이가 어떻게 되요?」
「하나에 씨와 같은 나이에요. 호호호.」
「저에게 모래를 뿌리더라고요, 세상에. 다음 주 수요일에 다른 쓰레기와 함께 내다 버리세요.」

딸의 기괴한 인형극을 목도한 어머니가 걸레질을 멈추고 잔소리를 퍼부었다.
일단 빠가사리란 말을 쓰면 안 된다고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의미도 잘 모르면서 어디서 배워왔는지 딸아이는 곧잘 빠가, 빠가, 이러면서 곳곳에 붙여 사용하곤 했다. 빠가사리 밀크, 빠가사리 텔레비전, 빠가사리 크레파스, 그나마 다행이라면 빠가사리 마마, 빠가사리 파파라는 말은 결코 입에 담지 않았다는 거다. 내색은 안 했지만 나쁜 말이라는 걸 아는 눈치였다.
건넛방 걸레질을 모두 마친 어머니는 하나에가 혼자서도 잘 놀고 있다는 걸 확인한 뒤에 영차 소리를 내어 몸을 일으키곤 방 밖으로 나갔다.

인형놀이가 지겨워진 소녀는 악어를 집어던지고 속눈꺼풀을 열었다.
언제부터인지 벽장 안쪽으로 속눈꺼풀을 열어야만 보이는 수상쩍은 무늬가 하나 생겼다.
구불구불한 선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무늬는 색을 내어 은은하게 빛이 났는데 손을 대어 만졌을 적에 손가락으로 그 빛이 옮겨 붙곤 했다. 때로는 파랗게, 때로는 붉게 번지는 빛깔이 고와 아이는 넋을 잃었다.
「차가워.」
밝게 빛나던 그것은 따스할 것 같다는 예상과는 다르게 얼음보다 차가웠다. 살이 에이는 느낌이었다.
냉동실에서 아이스크림을 꺼내어 먹을 적마다 코를 아프게 하던 냉기를 닮아 있었다.
「추워.」
입김이 나고 있는 건 아닐까 궁금해 하며 무늬에 손가락을 대고 둥글게 원을 그렸다.
번져나가던 빛이 손가락의 움직임에 따라 아름답게 회전했다. 꼭 마법사가 된 기분이었다.
「시려워.」
예쁜 건 예쁜 거고 북극곰과 나란히 냉동식품이 될 지경이었다. 끙 소리를 내고 문양에서 손을 떼어냈다.
그리고 세상이 뒤집혔다.

『어럽쇼.』
눈을 떠보니 다다미방 한 가운데다.
부스스 몸을 일으킨 이이지마 하나에는 낮잠을 자다 방금 일어났다는 멍한 느낌을 억지로 밀어내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가구 하나 없이 텅 비어있는 방이었다. 뺨을 대고 누워있었던 터라 한쪽 뺨에 다다미 자국이 생겼다.
여전히 잠에 취해서일까, 혼란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방금 전까지 집에서 놀고 있었는데 교복을 입고 낯선 방에서 눈을 떴다.
『뭐여. 여기가 어디여.』
침을 흘렸을지도 모를 입가를 닦고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다.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한참을 추스르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나 앉을 수 있었다.
배를 긁으며 눈꺼풀을 깜빡거렸다. 마음대로 안 움직이는 게 흡사 끈적거리는 풀이 발려진 것 같았다.
그러니까... 벽장 안에 빛나는 문양이.
아니다.
소스라치게 놀라 네발로 바닥을 후다닥 기었다.
『제기랄!』
어렸을 적에 인외세계로 떨어졌을 때의 감각을 몸이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오늘에 이르러 다시 그 느낌을 곱씹으면서 뇌가 어렸을 적의 경험을 재현해내 꿈으로 보여줬다.
농담이 아니다. 거칠어지려는 호흡을 억지로 진정시키며 눈만 데굴 굴렸다.

건물 내부다. 일본식 건물이었다. 장지문으로 사방이 가로막혔고, 어째서인지 아무런 색이 없었다.
마찬가지로 색이 없는 다다미를 더듬거리며 방의 가장자리로 신속하게 이동했다.
조명도 없는 방구석인데 구조를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깨닫고 보니 속눈꺼풀이 열린 상태다.
그렇다고 속눈꺼풀을 닫을 용기는 나지 않았다. 이럴 때 시야가 가려져봤자 이득이 될 건덕지가 없다. 공포영화 주인공처럼 손전등 불빛 하나에 의지해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도중에 건전지가 떨어지면 – 생각하지 말자. 지금은 일단 여기서 빠져나가는 것만 궁리하자.

숨을 죽이고 장지문을 가만히 열었다.
무턱대고 나가는 짓은 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감각을 세워 냄새부터 맡고 보았다.
「희미하게 썩은 내가 난다.」
오래된 폐가에서 맡을 수 있는 냄새였다. 방부목도 제때 처리를 해주지 않으면 습기를 빨아들이고 썩어가기 시작한다. 부패는 자연의 이치다. 철은 녹이 슬고 바위는 쪼개진다. 벌레가 갉아먹어 들보가 내려앉고 기둥이 부러진다. 이이지마 하나에는 나무가 송장벌레에게 먹혀가는 냄새를 맡았다.
무릎걸음으로 약간만 나아갔다. 신중하게 움직여야 좋다. 이곳은 인외세계다. 긴장하여 넙죽 엎드렸다.

부웅.
순간 바람이 정수리 위를 가깝게 스치고 지나갔다.
아니다. 단순한 바람 같은 게 아니다. 그보다는 묵직하게 물량감이 있는 거였다.
덜덜 떨리는 걸 참고 곁눈으로 옆을 보았다.
『미친!』
혀가 굳을 지경이었다.
어느 틈에 벌써 손도끼를 든 기모노 차림새의 여자가 무표정으로 이이지마 하나에의 머리를 노리고 있었다.


주술회전 팬픽이 아니라 일본 작가 미쓰다 신조를 찬양하는 글이 되어가는 것 같네요.
아무튼 취재를 하고 글을 썼다면 참 좋았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난 일본어를 하나도 모르듸. 지명이라던가, 이름이라던가 하는 부분도 그렇고 일본 고유의 사정을 잘 모르니 어색해지는 부분이 계속 발생하네요. 4월 입학도 그렇고... 세상에, 3월이 아니라니. 사건의 날짜가 그럼 4월이 아닌 5월로 넘어가게 되는데 일본의 공휴일은 어떻게 되는가, 머리가 지끈거립니다. 뭐. 늘 그랬듯이 어물쩍 넘어갑니다.

Posted by 미야

2021/03/23 17:07 2021/03/23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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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술회전과 백귀야행의 설정을 대충 가져와서 붙인 오리지널 스토리입니다.


수업이 시작된 지가 얼마인데 이게 무슨 짓이냐며 한문과목 선생님이 불호령을 쳤다.
빗자루를 끼워 넣어 열리지 않게 된 문을 힘을 주어 흔들면서 (한바탕 발로 차고 싶은 눈치였으나 폭력교사라는 오명이 두려웠는지 그러지는 않았다) 열어, 열어, 외쳤다.
연락을 받고 다른 반 수업에 들어갔던 1학년 2반 담임이 풍선처럼 부푼 배를 출렁이며 부리나케 달려왔다. 과체중인데다 평소 운동부족이었던 만큼 달리는 속도는 빠르지 않았다. 그래도 요시다 에이스케는 최선을 다해 한문 교사의 부름에 응했다. 교무부장인데다 학교 이사장과 인맥이 두텁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자의 눈 밖에 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입니까.』
『그건 제가 묻고 싶은데요, 요시다 선생. 도대체 1학년 2반에서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이제 교실 문을 두드리며 열어, 열어, 외치는 사람은 두 명으로 늘었다.

반 아이들에게 애원의 눈빛을 받고 있는 반장 하시모토 리코는 겉으로는 매우 침착해 보였다.
겉으로 봐서 그렇다는 얘기고 실은 진작부터 머리가 꼬여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오늘은 무슨 요일이었더라, 오늘 저녁 반찬은 뭘 만들까. 최근 아이스하키 선수가 나오는 드라마를 보고 있다. 2004년 1월부터 시작해서 이미 종영했는데 어머니 몰래 재방송을 챙겨보는 중이다. 기무라 타쿠야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하지만 아이스하키 골키퍼 포지션 역을 맡은 사카구치 켄지가 아무래도 취향인지라 기무라 타쿠야가 동생처럼 챙기는 모습을 보여주었을 적에 흐믓한 엄마 미소를 지으면서 – 이게 아니다.

학교 설립 시절부터 카제야마 중학교에서는 자질구레한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편이었다. 계단에서 구르거나, 창문에서 추락하거나, 거울이 깨져 파편에 다치거나, 승용차가 역주행하여 교문을 들이받는 식으로 말이다.
터가 안 좋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돌았다. 나이가 많은 어른들은 오래전 일가족 살인사건이 있었던 곳에 왜 학교를 짓는 건지 이해가 안 간다며 수군거렸다.
그래도 심각할 정도의 중상을 입는 경우는 없었기에 처음에는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편이었다.
애들은 늘 다치기 마련이다, 부주의하게 굴어서 병원 신세를 지게 되는 거다, 그 어느 누구도 끓는 솥에 들어간 개구리처럼 삶아지고 있다는 걸 눈치 채지 못했다.
손목이 절단된 학생이 나왔을 적에야 대단히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80년대 초반의 일이었다.

남들 알아차릴까 쉬쉬해가며 학교 윗선에서 용하다는 점술사를 불러 곳곳에 부적을 붙이게 했다.
화장실에서 남학생이 목을 매어 자살했다. 유서에는 뱀이 싫다고 적혀 있었다. 1985년.
곱절의 부적을 구입하여 다시 붙였다.
여학생이 옥상에 추락했다. 검은 옷을 입은 누군가가 등을 떠밀었다고 목격자가 증언했다. 1986년.
부적을 전부 떼어내고 건물을 현대화 한다는 이유로 밝게 페인트칠을 하여 손봤다.
장난을 치다 볼펜이 눈에 박혀 실명하는 사고 발생. 1987년.
교직원들이 이나리 신사를 찾아가 무사안전을 기원하였다.
원인불명의 화재가 발생하여 미술실이 검게 불탔다. 1988년.
같은 해 수학여행 중 교통사고로 2학년 4반에서 사망자가 나왔다. 멀미를 일으킨 학생이 속이 불편하다며 호소하다 입으로 뱀을 토해 운전자가 놀라 벌어진 교통사고였다. 사람이 뱀을 토할 리가 만무한 관계로 일종의 괴담으로 치부되었다.
영험하다고 알려진 무당을 불렀다. 무당은 자신의 영력으로 귀신을 쫓았다고 주장하고 소정의 사례금을 받아갔다.
1989년에는 학교에서 다치거나 죽는 사람이 나오지 않았다.
영력이 강한 사람을 불러 효과를 봤다고 칭찬하는 목소리가 나왔으나 정작 그 영험하다는 무당은 그해 7월에 죽었다. 사고사였다. 술에 취한 상태로 전구를 교체하겠다며 의자에 올라갔다가 발을 헛디뎌 떨어졌는데 테이블 모서리에 머리를 박아 그 충격으로 목뼈가 부러졌다.
이상한 점은 무당의 목에 띠 모양의 붉은 자국이 남았다는 거였다. 그래서 전구를 교체하러 의자에 올라갔을 적에 누군가 올가미 같은 도구로 목을 위로 잡아당겨 균형을 잃게 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나왔다. 하지만 천장에는 아무런 도구의 흔적이 없었고, 주변에선 끈이나 밧줄 같은 것은 발견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피해자를 의자에서 떨어뜨리려면 굳이 올가미 같은 도구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팔로 밀기만 해도 충분했다.
추리소설에서 나올 법한 일은 현실에서 벌어지지 않는다고 여긴 경찰은 불운한 사고였던 걸로 마무리했다.

학생들이 콧쿠리님을 모시게 된 건 대략 그 즈음의 일로, 전통 하오리 차림새의 한 나이 지긋한 남자가 3학년 학생회장에게 액(厄)을 피하라며 가르쳐준 방법이라고 했다.
그때에는 콧쿠리님이라고 부르지 않았고, 에둘러 손님이라고 불렀다.

➀ 한 학년에 한 명씩 손님을 정한다.
① 손님이 반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면 결코 대답하지 말 것.
② 대화 금지.
③ 손님이 주는 물건을 한 손으로 받지 말 것. 공손히 두 손으로 받되 집에 가져가지 않도록 주의한다.
④ 손님의 몸을 상하게 하지 말 것. 때리거나, 밀치거나, 꼬집어서는 결코 안 된다.
➄ 손님이 주번활동이나 체육대회 같은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하지 말 것.
➅ 9월 14일에 손님은 집으로 돌아간다. 이후부터 연말까지 손님 모시기를 하지 않도록 한다.

부적을 붙이는 것보다 효과가 좋아서 1991년부터 몇 년간 기억에 남을 법한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

1997년, 손님으로 모셔지던 학생이 따돌림을 견디지 못하고 전학을 갔고 이후 양심의 가책을 느낀 학생들의 반발로 손님 모시기를 중단했다.

1999년, 태풍 바람에 건물 외벽이 뜯겨져 나갔고,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통행인이 쏟아지는 파편에 맞아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자연재해로 벌어진 안타까운 사고라고 여길 법도 하겠지만 사고 현장에 제일 먼저 도착한 학교 수위가 주변을 덮은 검은 뱀 무리를 증언하면서 오컬트적 현상이 아니었겠느냐 소문이 돌았다.
뱀을 목격했다는 수위는 해고되었다.

콧쿠리님 모시기가 학생들 사이로 재차 등장한 건 조금 더 뒤의 일이다.
왜 하필 손님을 콧쿠리님으로 부르기 시작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코쿠리(※こくり 끄덕끄덕)로 부른 걸 다음 학년이 콧쿠리로 오해했다는 말도 있다. 
이때 날짜의 의미를 아무도 몰랐기에 9월 14일에 손님이 돌아간다는 부분이 빠지게 되었다.
놀랍게도 모시기 행위에 동조하는 교사가 나오면서 콧쿠리님에게 과제도 내어주지 않는 경우까지 생겼다.
소문에 불과했지만 공부도 하지 말라면서 시험 문제를 몰래 보여주기까지 했다고 한다.
진짜였다면 화가 날 일이다. 그래도 역대 콧쿠리님들이 죄다 공부를 못했으니 그렇게 신빙성 높은 이야기는 아니다. 현 2학년의 콧쿠리님도 성적은 바닥권이다.

「앙화가 내릴 거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하시모토는 앙화가 뭔지도 몰랐다. 그런 단어는 처음 접했다.
「콧쿠리님을 모셔. 너희도 다치거나 죽는 건 싫잖아?」
처음 그 말을 했던 사람은, 아마도 선생님이었을 것이다. 그게 누구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았다.
비밀... 손가락을 세워 입에 대고 들릴 듯 말 듯 소곤거렸다.
「입학식 날 나타나지 않았던 학생이 콧쿠리님이다.」
1학년들끼리 정하지 않았다.
그 사람이 스가와라 미즈키를 콧쿠리님으로 지목했다.

그 사람.
누구였지? 정말로 선생님? 모른다, 그런 사람. 남자. 꽃망울이 올라온 벚나무 아래에서... 머리가 아팠다.
귀신에게 홀렸던 거였나. 목소리와 체격이 기억났다. 그런데 얼굴은 온통 백지다. 눈도 없고 코와 입이 없었다. 달걀이었다.
장례식에 다녀오기라도 한 것처럼 옷을 차려 입었다. 분위기 탓에 절간의 향 냄새가 날 거라 짐작했던 것과는 달리 그 남자에게선 고급스런 화장수 냄새가 흐릿하게 났다. 백단목이라고 하는 것의 향기였다.

「1학년에게 암시 걸지 마세요, 삼촌.」
옆에서 볼멘소리를 내고 있는 건 2학년의 콧쿠리님이다.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어, 진짜. 집에나 가라고. 빨리 가라고. 리쓰 할아버지가 집에서 기다리잖아.」
「밀지 마. 그리고 나는 네 삼촌이 아니야, 하나에.」
「입에 찰딱 붙어서 그런 걸 어쩌라고. 빨리 가, 망할 할저씨야.」
「할저씨?」
「할아버지와 아저씨의 합성어야. 호적 나이는 60대고 몸은 40대니 딱 맞는 표현이네.」

퍼뜩 정신이 돌아왔다. 언제부터인가 친구인 이시즈미 루미가 하시모토 리코와 손깍지를 끼고 있었다.
리코는 기를 써가며 울음을 참고 있었다. 표정으로 알 수 있었다. 유치원 시절부터 가까이에서 보아왔다. 친구의 눈은 수도꼭지가 열리기 일보직전이었다.
하시모토 리코는 깍지 낀 손에 힘을 주고 이를 악물었다.
침착하자. 이 상황은 정리될 수 있다. 혼란된 세상에 고요를 가져다주는 것은 질서다.

『체육복으로 갈아입는 게 좋겠어. 피 묻은 옷을 그대로 입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상의만이라도 바꿔 입자. 남학생들은 전원 고개 돌려.』
『밖에서 선생님들이 난리야, 반장!』
『침착해. 문은 아직 열지 말고 일단 담임에게 전화를 해서 여기에 다친 학생이 있으니 병원 응급차부터 보내달라고 해. 문을 걸어 잠군 까닭은 때린 사람이 선생님어서 그렇다고 하고. 얼굴을 맞았다고 써.』
『반장. 나, 종례시간 끝나면 학원에 가야 하는데. 늦으면 엄마에게 혼 나.』
『와타나베. 이 마당에 진짜 이러기냐?!』
짐짓 손목에 찬 카시오 전자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이제 오후 3시 12분.

Posted by 미야

2021/03/23 10:30 2021/03/23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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