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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술회전과 백귀야행의 설정을 대충 가져와서 붙인 오리지널 스토리입니다.


이런 걸 두고 기시감이라고 하던가. 고죠 사토루는 가볍게 혀를 찼다.
살벌한 기세를 내뿜으며 중학생이 빠르게 다가오는 중이다.
배경으로 푸른 불꽃이 보이는 듯했다. 분노와 증오, 덧붙여 두려움과 공포가 한데 뒤섞인 눈빛으로 이쪽을 쳐다보면서 이이지마 하나에가 까득 이를 갈았다.
그래봤자 고죠 사토루에게는 고양이 하악질이어서 무심결에 손을 들고 여어, 인사하려 했다.
도중에 마음을 고쳐먹은 건 이번에도 남성의 중요부위를 걷어차려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옆에 자리한 게토 스구루도 PK에 대비하는 축구 수비수처럼 눈치껏 방어 자세를 잡았다.

그런 두 사람을 위아래로 흘겨보며 이이지마가 말했다.
『찾았으면 내놔.』
『뭘.』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언제 보따리 맡겼어?』
한쪽 눈썹을 갈매기처럼 휘게 만들며 게토 스구루가 항의했다.
듣는 척도 안 하고 중학생은 무슨 레이저 스캔하듯 그의 몸을 훑었는데 그게 거의 발가벗기는 시선이라 당하는 입장에선 매우 낯설고 불쾌했다.

『뭐야... 자세히 보니 빈손이네.』
『아니, 그러니까 언제 우리에게 보따리 맡겼냐고.』
막 입을 열어 다시 항의하려던 찰나, 관찰을 마친 이이지마는 용무 따윈 이제 없다는 투로 두 사람을 지나쳐 교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흡사 빈집털이범인양 이곳저곳을 빠르게 들쑤시기 시작했다.

장식장을 열어 트로피 안으로 일일이 손을 넣고 있다. 찾는 물건이 뭔지는 몰라도 나올 기미가 없자 액자 뒤도 더듬거리고, 책상서랍도 전부 열어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득이 없자 주둥이가 좁고 긴 장식화병을 집어 올렸다. 던져 깨뜨려 안에 내용물이 들었는지 확인하려는 거였다. 잘 몰라도 유명 장인이 만든 도자기였는데 한 번 결심하자 망설임이 없었다. 30만엔이 조각으로 부서졌다.

『쟤 지금 왜 저래.』
『글쎄다, 스구루. 쌓인 원한 풀기? 내가 당주 방에서 깽판 치는 모습과 비슷해 보이기는 한데...』
『잠깐만. 고죠 당주면 네 아버지잖아. 너는 아버지를 당주라고 부르냐?』
『아니. 평소엔 놈 자(者)로 부르지.』
소파쿠션을 잡아 뜯는 것까지 지켜보던 고죠 사토루가 짝짝 박수를 쳤다. 먼지가 나니 그만하라는 거였다.

무엇을 찾고 있는 거냐고?
슬프게도 이이지마 하나에 본인도 잘 몰랐다. 바람결에 전해들은 이야기도 있고 토막글을 읽은 적도 있으나 상세하게 묘사한 내용이나 그림은 본 적이 없었다.
그저 보면 알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 그거 하나만 지푸라기처럼 잡고 있는 거였다.

이이지마 본가에 있는 창고 깊숙한 곳으로 여인이 쓴 일기가 하나 봉납되어 있다.
《이소노카미 신궁에 급히 소식을 띄워 부해한 신의 목을 베려 하오니 청컨대 신물을 내리옵소서 읍하였으나 감히 매월 피 흘리는 몸으로 황가의 보물을 꺼내가려 하느냐 호통만 돌아왔다. 마음에 한스럽지 않다 그리 말하면 거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오는 되어 있었다. 하여 내 장례 절차를 미리 준(竣)하고 시신이 없이 묘를 쓰라 명하였다. 동생이 싫다 울었기에 그럼 이것으로 관(棺)에 넣어라 손가락을 잘라주었다. 동생은 울음을 그치고 두 번 절한 뒤 삼가 뜻대로 상(喪)고저하옵소서 말하고 물러갔다.》

1943년 8월 말, 주령으로 타락한 신을 조복하라는 명령을 받고 주술사들이 모였다.
내부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건지, 전쟁 중이던 사회적 배경 탓인지 모인 주술사들을 지휘하는 자가 여자였다.
지금도 남녀차별이 극심한데 1940년대였으니 여자가 우두머리인 조직이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었다.
적을 치기 위해 이소노카미 신궁으로 황가의 보물을 꺼내 달라 요청을 넣었으나 당연히 무시당했다.
심지어 더러워 초밥도 못 만드는 여자의 몸으로 감히 신물을 쥐는 게 가능할 것 같으냐며 난리가 났다.
9월 초, 시간을 더 지체할 수 없었던 여자는 동생에게 손가락을 하나 잘라주고 이것으로 무덤을 쓰라 유언을 남겼다. 신변 정리까지 마무리가 되어 여자는 체념 상태였다.

「누부(누이)는 잘린 손가락 대신 주구를 상처에 꿰매어 붙이고 그 길로 죽으러 가셨습니다.」
술사의 원념 때문인지, 아니면 동생의 집착 탓인지 잘린 손가락은 그대로 주물이 되었다.
이이지마 가문의 봉인술식으로 단단히 묶인 여자의 손가락은 상하지도 썩지도 않았다.
「주술사의 신체는 재가 되도록 태워야 합니다만... 억울해서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장례를 치루는 와중에 집안의 높으신 어르신이 그러더군요. 황국신민으로의 의무를 다 하게 되었으니 자랑스럽게 여기라고... 카리야세 집안의 경사라고.
그래서 그따위 축하 인사는 받고 싶지 않다고, 자살을 강요하는 황국은 차라리 망했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누부의 손가락을 빼돌려 히로시마로 도주했습니다.
장례식장이 발칵 뒤집혔지요. 하지만 알 게 뭡니까. 그 길로 주저사가 되어 저주발원을 했습니다. 망해라, 망해라... 집안이고 황국이고 몽땅 망해버려라 빌었어요.
몇 년을 그렇게 숨어 지내다보니 어느 날인가 하늘이 하얗게 불타오르더군요.
그 빛을 보고 제 눈도 타버렸습니다. 아팠어요. 죽을 것처럼.
그런데 반대로 속은 뻥 뚫리더군요.
절반만 이어진 핏줄 탓에 불량품 취급을 받던 몸이었어도 저주는 제대로 할 수 있었던 거예요. 기뻤습니다.」
저주반사 탓인지 남자는 제법 긴 세월동안 고통 받았다.
그래도 후회 한 점 없는 인생이었노라 웃으며 말하고 1962년 2월 암으로 사망했다.

빈집 털이범 쳐다보듯 하고 있는 고등학생 주술사 두 명을 무시하고 이이지마는 책상서랍을 거꾸로 뒤엎었다.
라이터니 볼펜이니 하는 잡동사니가 잔뜩 떨어졌을 뿐으로 눈에 띄는 물건은 없었다.
서류문진으로 쓰는 나무 조각에 잠시 시선이 머물렀으나 크기나 모양새가 잘린 손가락 부위에 대고 꿰매기엔 무리라서 곧 눈을 돌렸다.

『저기, 그보단 이런 게 돈이 되지 않겠어?』
고죠 사토루가 14K 금으로 만든 닙이 달린 만년필을 눈앞에서 흔들어댔다. 완전 도둑 취급이었다.
『썩을. 너는 만년필로 신의 머리를 자를 수 있어?』
쏘아붙이자 고죠 사토루는 달라진 표정을 하고 만년필을 얌전히 내려놓았다.
그럴 리가요. 펜은 총보다 강하다지만 무리.

『뭘 찾고 있는 건지 대충 짐작이 가. 그런데 찾고 있는 게 왜 교장실에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이번에는 게토 스구루가 질문했다.
바닥에 뿌려진 잡동사니를 헤집고 있던 이이지마 하나에는 잠시 눈을 깜빡이다가 뺨을 붉혔다.
어쩐다. 저 질문에 대한 답을 하려면 흑역사 강제 공개다.
1학년 입학시절부터 줄곧 곳곳을 뒤져봤다는 고백을 하기는 부끄러웠다. 남자 화장실은 물론이고 표본실에 과학실험실, 설비시설과 옥상, 자판기 안쪽까지 전부 훑었다. 아직까지 털어보지 못한 장소는 일반 학생이 출입하기엔 모양새가 어색한 교장실과 숙식실 정도다. 신발장도 전부 열어봤고 중간고사 시험지를 보관하는 금고도 열어봤다. 집중하여 개(開), 라고 주언하면 열지 못할 것이 없었다.

『장래 희망이 도둑이세요?』
『아니거든! 내가 원한 건 그저 이 학교 어딘가로 숨겨져 있다던 특급의 주물이지 돈이나 귀중품 같은 건 아니었어. 그리고 주물도 봉인술식만 빼고 어차피 제자리에 돌려놓을 작정이었다고!』
『어머~ 그거 엄청 위험한 발언이네.』
선글래스를 슬그머니 콧잔등 아래로 내려쓴 고죠 사토루는 파랗게 빛나는 육안의 눈동자로 이이지마 하나에를 응시했다.

타락한 신을 조복하는데 앞서 당대 주술사들이 특급의 주물을 사용했다는 추측은 누구나 가능했다.
주술계에 남겨진 기록이 전무한 관계로 그게 어떤 종류였고, 어떤 방식으로 쓰였는지는 불명이지만.
요점은 그 물건이 신을 조복하는데 사용되었을 정도의 특급이었다는 거다.

『그걸 봉인술식만 몰래 빼서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을 생각이었다고 말한 거냐, 너?』
『윽.』
하늘색의 눈동자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마가 닿을 정도로 거리가 가까웠다.
『이제 와서 일반인이라서 난 그런 거 몰라요, 따위로 변명하려는 건 아니겠지? 이 죽되만(죽이 되다 만) 인간아. 주물이라는 건 저주라고, 저주. 물리적으로 실체를 가진 매우 강력한 저주. 그걸 봉인한 술식을 빼버리고 제자리에 돌려놓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 줄 알고. 혹시 전교생을 몰살하고 싶었던 거냐?』
『아니. 어. 그건.』
『신을 죽일 정도의 저주를 학교에 풀어놓고, 봉인술식만 빼돌려 자기가 써먹을 심보였다고? 진심이냐.』
『아니. 저. 그게.』
『어머나. 이 새끼, 이제 와서 영혼 탈곡한 표정 짓는 거 봐라. 아~무 생각 없었어요?』
『네. 음. 아니.』
『아이고, 이걸 어쩐다. 아이고, 이걸 진짜 어쩐다.』
동물을 잘 모르는 사람이 고양이를 들어 올리는 자세로 – 겨드랑이 사이로 팔을 넣고는 번쩍 들어 올려 앞뒤로 흔들었다.
이이지마 하나에는 중학생 치곤 키가 큰 편에 속했지만 고죠 사토루가 그렇게 흔들자 발이 땅에 닿지 않아 허공에서 대롱거릴 수밖에 없었다.

『잘했어, 잘못했어!』
『잘못했습니다.』
『무지를 반성해라.』
『반성합니다.』
『좋았어. 그럼 지금부터 넌 고죠 사토루 꼬붕 1호다.』

어째서 결론이 그렇게 흘러가는 건데.
계속해서 흔들리면서 이이지마 하나에가 소리 없이 절규했다.

Posted by 미야

2021/04/14 17:29 2021/04/14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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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술회전과 백귀야행의 설정을 대충 가져와서 붙인 오리지널 스토리입니다.


보건실 벽으로 커다랗게 구멍이 뚫렸다.
1학년 2반 세리자와 아유미와 반 급우인 와타나베 다이치는 신발장 뒤에 숨어 최대한 몸을 웅크렸다.
구멍으로 들어온 사람크기 만한 개구리들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는데 잡히면 뼈도 못 추릴 거라는 생각밖엔 들지 않았다.
그것들은 사실 개구리라고 할 수도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몸집과 달리 유난히 길고 가느다란 팔과 다리의 모양새가 개구리를 연상시켰을 뿐, 기분 나쁜 파란색의 피부와 뻣뻣해 보이는 털은 그 무엇으로도 설명이 불가능했다.

이족보행을 하는 괴물이 제법 가까운 곳을 지나가면서 코를 훌쩍이는 소리를 냈다.
세리자와와 와타나베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바닥으로 코와 입을 가리고 숨을 참았다.
겁이 많은 와타나베는 속으로 귀명무량수각 진언을 외우며 눈도 감았다. 불교가 아니라 무교였지만 긴장해서 토가 나올 것 같으면 손바닥에 사람인(人) 글자를 반복해서 쓰며 나무아미타불을 외우면 효과가 있다는 말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나무아미타불 진언의 의미도 잘 몰랐지만 어쨌든 그렇게 했다.

세리자와가 와타나베의 옆구리를 찔렀다.
「여기서 이러지 말고 차라리 교실로 돌아가자, 와타나베.」
「다리가 풀렸어. 교실까지 가기 전에 당할 거야.」
「그럼 하나, 둘, 셋을 세고 화장실로 뛰자.」
「못 한다니까!」
괴물 양서류들은 보이는 족족 아이들을 씹지도 않고 입에 넣었다. 오로지 먹는 일에만 관심이 있어 일단 배가 빵빵해지면 무거워진 몸을 질질 끌며 구멍이 뚫린 보건실로 되돌아갔다. 10년치 앙화가 한꺼번에 내리는 건지 그렇게 잡혀 먹힌 학생들 숫자가 지금까지 열이 넘었다.

《찾았습니다. 인간, 인간... 여기에 있습니까?》
『히익! 들켰다. 뛰어!』
머리 위에서 소리가 들려오자 혼비백산하여 뛰쳐나갔다. 천장에 표주박처럼 매달려 있던 것이 끈적거리는 점액질로 뒤덮인 팔을 뻗어 두 사람의 머리를 잡으려 했다. 덕분에 정수리 털이 몇 가닥 뽑혀나갔고, 와타나베는 「대머리가 된다고 해도 괜찮아!」 고함치며 남자화장실 쪽으로 몸을 던졌다.
위기의 순간에서도 세리자와는 남자 화장실이 아닌 여자 화장실로 방향을 틀었는데 스커트를 입고 소변기가 있는 곳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서였다.
어찌 보면 전화위복이었다. 개구리는 그 정체가 수컷이었는지 와타나베 뒤를 따라갔다.

화장실 출입문을 재빠르게 걸어 잠그고 숨을 몰아쉬자니 누군가 밖에서 야단을 쳤다.
『망할 중학생들. 살려주겠다는데 왜 도망가는 거야!』
남자 화장실 방향에서 우당탕 물건 떨어지는 기척이 들려왔다. 양동이가 떨어진 것 같았다.
『야, 거기 너. 나머지 다 어디로 튀었어. 어?!』
『잘못했어요. 살려주세요.』
『이것들이 단체로 누굴 살인자로 만들고 앉았어. 누가 죽인데?! 입 다물고 썩 기어 나오지 못해?! 자, 자, 개구리(カエル카에루). 되돌아가라(返る카에루).』
다시 요란한 우당탕 소리가 들려왔다.

긴장한 세리자와는 와타나베의 비명에 귀를 틀어막은 채 제일 뒤편으로 위치한 칸막이 화장실로 들어갔다.
썩 좋은 판단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스릴러 영화에서 이런 장면이 곧잘 나오곤 했다. 세리자와는 영화 속 등장인물을 흉내 내어 변기 커버를 밟고 그 위로 올라갔다. 체중이 얼마 나가지 않았기에 변기가 깨질 걱정은 없었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변기를 밟은 발가락에 힘을 주고 자신의 체중을 헤아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다이어트를 하는 건데.
입술을 깨물고 있자니 와타나베의 외마디 비명소리가 들렸다.
끝마무새로 개굴거림이 들려온 건 아마 착각이 아닐 거다.

『열두 명 구조 완료. 여자 화장실에도 누가 숨은 것 같던데.』
『미치겠구만. 아니 그러니까 살려주겠다는데 왜 숨어.』
여자 화장실 출입문을 벌컥 열고 – 안에서 손잡이 장치를 돌려 잠궜다는 건 그자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 것 같았다 – 굳이 내부까지는 들어오려 하지 않으면서 외쳤다.
『맨 뒤 칸에 숨은 분. 똥 싸는 거 아니라는 거 압니다. 빨랑 나와. 3초 준다. 셋, 둘, 하나... 하나 반.』
『자, 잠깐!』
『못 기다려. 개구리(カエル카에루). 되돌아가라(返る카에루).』
말이 끝남과 같이해서 커다란 검은 보자기가 머리 꼭대기서부터 씌어졌다. 아니, 그건 결코 보자기가 아니었다. 촉감이 미끄덩했고 축축했다. 꼭 입안 점막 같은 느낌으로... 깨닫고 세리자와 아유미는 비명을 질러댔다. 사람만치 큰 개구리가 통째로 그녀를 삼켰다.

오늘의 운세는 개구리에게 잡혀 먹히는 겁니다.

소리를 지르면 지를수록 숨이 막혀와 나중에는 꺽꺽 소리밖엔 나오지 않았다. 질식한다는 느낌에 손으로 목을 감싸 쥐었다. 사람을 삼킨 개구리가 점프를 한 건지 몸이 크게 흔들렸다. 동시에 위아래 방향이 뒤집어졌다. 머리로 피가 쏠리자 질식의 위기는 그렇다 치고 이번엔 멀미가 났다.
그만하라며 내벽을 발로 찼다. 그래봤자 흔들림은 더 심해져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버스 맨 뒷좌석에 앉은 것처럼 온몸이 들썩거렸다.
고개가 꺾어지는 느낌에 정신을 놓고 기절하려던 찰나 개구리가 아닌 개구리가 구어억 하고 세리자와를 토해냈다.
『......』
침 범벅인지 양서류의 위산 범벅인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냄새 지독한 점액질을 뒤집어쓴 상태였다.
잘 떠지지 않는 눈으로 옆을 보니 엉덩이를 하늘로 들어 올린 괴상한 자세로 와타나베 다이치가 엎드려 뻗어 있었다.
위를 보니 하늘이다. 운동장이었다.
주변으로는 아타나베 말고도 2학년과 3학년 학생이 실 끊어진 인형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여름더위에 상한 오이냉국 악취가 진동했다.

『형편없지는 않네.』
주령 조종술에 따라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학생들을 삼키고 있는 개구리 모양의 주령에 고죠 사토루가 감탄했다.
개구리(カエル카에루). 되돌아가라(返る카에루).
술사인 게토 스구루의 지시에 학생들을 삼킨 주령은 들어왔던 보건실 구멍으로 다시 빠져나가 뱃속에 든 내용물을 착실하게 게워냈다. 냄새가 지독하고, 정신적 충격이 클 거라는 단점을 빼면 인질 구출용으로 써먹기에 제법 안성맞춤이었다.
『만약 뱉지 않으면 어떻게 돼, 스구루? 안에서 천천히 소화가 되는 거야?』
『산소부족으로 죽고 나선 시랍으로 변해. 처음 저걸 잡았을 적에 죽은 지 10년은 넘은 어린애의 하반신이 거의 외형 변화 없는 모습으로 나왔어.』
『아이구야.』
감탄도, 탄식도 아닌 어중간한 한 마디를 던지면서 고죠 사토루는 감각을 기민하게 세웠다.

인간에게도 주력은 있다. 따라서 주력을 추적하면 그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위치를 알 수 있다.
건물 내부에는 지금도 스무 명이 족히 넘어가는 인원이 쉬지 않고 움직이는 중이다. 진짜지 얕볼 수 없다. 궁지에 몰린 중학생들은 도토리를 모으는 다람쥐마냥 매우 빠르게 자리를 옮겨 다녔다.
여기에 게토가 풀어놓은 6급 주령까지 사방팔방 뛰어다니고 있어서 완전히 뒤섞였다. 이들에게 각각 빨간색 점을 붙이면 팝콘이 튀겨지는 모양새가 될 것이다.
문제는 그 중에서 인간이 아닐 거라 추측되는 대량의 주력은 느껴지지 않았다는 거다. 이미 안전한 곳으로 도망을 쳤거나, 학생들 틈새에 제대로 숨었다.
『젠장... 머리를 쓰는 놈이잖아. 녀석이 의도한 게 이거라면 성공했네.』

교장실 문을 벌컥 열어젖히고 내부를 살폈다.
주술고전이나 일반인 중학교나 교장실의 분위기는 그다지 차이가 없었다.
허세 가득한 커다란 책상, 뭐에 써먹을 건지 용도를 알 수 없는 깃발, 역대 교장들의 사진들이 벽에 붙었고, 장식장에는 상패와 트로피가 잘 정리되어 있었다.
책상에 놓여있던 전화기를 들어 올리자 정상적인 신호음 대신 자글자글 끓는 소리가 났다.
바로 내려놓고 한숨처럼 흠 소리를 내고 있는데 선풍기 미풍처럼 주력을 살살 내뿜고 있는 그.것.이 눈에 들어왔다.
부적이었다.

『미쳤다.』
교장은 제정신이었던 걸까. 알고 그런 거라면 미친 사람이 분명했다.
방의 네 방향에 부적을 붙여놓아 주력의 힘이 방안을 회전하며 움직였다. 미약하긴 했어도 정체가 저주인 것을 방안에 가둬놓고 빙빙 돌린 셈이다. 그런 방안에 앉아 업무를 본다? 소화불량은 기본으로 앓았을 거다.
혹시나 싶어 의자 방석을 들춰봤다. 역시나. 방석 아래 신사에서 사가지고 왔을 법한 부적이 달려 있었다.
이쪽은 벽에 붙은 것과는 달리 거의 가짜나 다름없었는데 비유하자면 물을 잔뜩 탄 간장 같아서 맛으로나 향으로나 조미료라 불릴 만한 종류가 아니었다. 기념품처럼 파는 종류라고 생각하면 될 거다.
『부적 마니아인가. 덕분에 헷갈렸잖아!』
스티커처럼 창문에도 붙여놓은 걸 보니 그쪽으로 아주 푹 빠진 사람인 모양이었다.
있는 대로 짜증을 내며 교장실에서 빠져나왔다.

Posted by 미야

2021/04/13 11:02 2021/04/13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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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술회전과 백귀야행의 설정을 대충 가져와서 붙인 오리지널 스토리입니다.


전화기가 놓여있는 책상 위에는 먹다 남은 과자봉지와 초콜릿 포장지가 소심하게 굴러다니고 있었다.
흘깃 보니 고구마 맛탕 과자다. 행정직 직원은 화재경종을 듣고 대피하면서 까먹던 간식을 제대로 치우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금방 돌아올 거라고 여겼는지 공기가 들어가지 않게 과자봉지 입구를 개어두지도 않았다.
그 태평스러움에 어쩐지 맥이 풀리려 했다.

이이지마 하나에는 과자봉지를 시선에 두지 않으려 노력하며 전화기 숫자 버튼을 눌렀다.
「리쓰 할아버지가 한 번에 전화를 받아야 할 텐데.」
생활력이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닌 이이지마 리쓰는 핸드폰 충전하는 일을 종종 잊어버리곤 한다.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먹거리를 구입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제 날짜에 공과금 내는 것도 힘들어하는 사람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모두가 핸드폰을 쓰는 시대에 이이지마 리쓰는 고집을 부리며 가정용 집 전화를 계속 사용하고 있다.
모르지 않았기에 용무가 있는 사람들은 핸드폰이 아니라 먼저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문제는 거실에 있는 전화기가 때릉때릉 울리면 서재에서 일을 하던 리쓰가 전화를 받으러 나오기도 전에 제멋대로인 성격의 사역마가 튀어나와 종료버튼을 눌러버린다는 거다. 벨 소리가 거슬린다는 게 이유였다.

신호가 다섯 번 갔다.
제발, 이러고 기원의 말을 중얼거리는데 신호가 뚝 끊어졌다.
「망할! 식충이 파충류 사역마가 이번에도 또!」
주먹질로 재다이얼 버튼을 누르려던 찰나 뚜우, 하고 죽었던 신호음이 다시 이어졌다.
학교 행정실에서 쓰는 공용 전화기는 집 전화와는 다른 방식을 사용하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들끓던 마음을 애써 가라앉혔다.

『여보세요? 리쓰 할아버지?』
다행이다. 별 문제없이 상대방이 수화기를 들었다. 이이지마 하나에는 만세라도 부르고 싶어졌다.
《무슨 일이니, 하나에.》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아듣자마자 기분이 시궁창에 처박혔지만.

『카이 삼촌?』
《하나에. 항상 말하는 거지만 나는 네 삼촌이 아니야.》
남자는 상냥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냉정한 것도 아닌 모호한 어투로 관계부터 재정립하고 보았다.
사실 틀린 지적은 아니다. 그는 리쓰의 작은아버지로, 건너건너건너 먼 핏줄로 태어난 하나에와는 사실상 타인이나 마찬가지라서 하나에가 그를 삼촌 호칭으로 부르는 건 맞지 않았다.
그렇다한들 그녀가 카이를 삼촌으로 부르는 건 일종의 버릇이었고, 그때마다 카이가 나는 네 삼촌이 아니다, 지적하는 건 온전히 습관이었다.

아니,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지.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 내렸다.
리쓰와 카이는 데면데면한 관계다. 아니, 이이지마 카이가 일방적으로 조카 리쓰로부터 거리를 두는 편이다. 명절을 맞아 본가로 찾아오는 일도 없고, 안부전화를 걸어오지도 않는다. 초대를 하면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대며 시간을 끌다 끝내 거절한다. 그렇다고 완전히 틀어진 사이도 아니다보니 뭐랄까.., 비유하자면 늘그막에 이혼한 부부처럼 건조했다.
다시 말하면, 집으로 전화를 걸었는데 손님으로 놀러온 카이가 거실에서 여보세요 이러고 수화기를 든다는 건 있을 수 없다는 얘기다.

『어째서 리쓰 할아버지 집에서 카이 삼촌이 전화를 받는 건데?!』
《무슨 소리니, 하나에. 번호를 헷갈렸니?》
『그건 아닌 것 같지만... 끊지 마세요.』
비유하자면 퀴즈 프로그램에 나간 참가자가 외치는 전화 찬스 같은 거다. 연결이 잘못되었다고 바로 끊어버리면 정답을 맞힐 기회는 영영 날아간다.
《급한 일이라서... 설명하자면 길지만 도움이 절실해. 학교에 문제가 생겼는데... 부해가, 제기랄, 이걸 어떻게 설명하라는 거야.』
《침착하렴.》
『지금 느긋하게 굴 때가 아니야, 삼촌. 그러니까..., 고쿠로쿠치나와님은 죽어서 부해만 남은 거 아니었어? 아니면 죽은 신은 좀비로도 변할 수 있는 거야? 여기, 우리 학교 지금 지랄 났어!』

어떤 말이 지뢰 포인트가 되었는지 몰라도 이이지마 카이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학교에 지랄이 났다 라... 흠. 과연. 큭! 게다가 좀비라니, 그럴 리 없잖아. 잘 생각해봐, 하나에. 고쿠로쿠치나와님이야. 이름 그대로 머리 넷 검은 뱀님이라고.》

잘난 주술사들은 신을 조복하겠다며 떠들어댔지만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태풍이 상륙하는데 거센 바람을 막아보겠다며 나무판자를 세우고 모래주머니를 산처럼 쌓아봤자 쓸려 나가는 건 크게 변함이 없다.
실제로도 이름을 날리던 술사 후지와라 오오모리노, 아베 나타, 하루하라 나쓰미, 아라후네 마시즈 등이 죽었다. 멀쩡한 자기 손가락을 하나 자르고 주물을 대신 상처에 붙이고 갔던 카리야세 사치코는 각오했던 바 그대로 뼈조차 안 남기고 장렬하게 산화했다.

《머리가 네 개. 자른 건 세 개.》
산수는 할 줄 알지? 넷 빼기 셋은 얼마 게.

목덜미가 서늘했다.
이이지마 카이는 주술사다. 본인은 어쭙잖은 잔재주를 부리는 정도라며 스스로의 능력치를 비하하지만 이이지마 하나에의 몸에 고차원의 봉인술식을 새겨 넣은 사람도 카이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가진 부의 사역마를 부리며 주술로 사람을 죽인 적도 있다.
누가 말해준 것도 아닌데 그냥 알 수 있었다. 카이는 이단(異端)이다.

부근은 토지신이 부재하여 덕분에 부해가 들끓는다고 했다.
8백만 신들에게 맛있는 잔칫상 음식으로 노림을 받고 있는 이이지마 하나에가 숨어 있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라고 했다.
몇 가지 꼼수를 더하면 완벽할 거라고 속삭였다.
주력을 담은 팔찌를 만들어 주고, 가서는 안 되는 장소와 반드시 가야만 하는 장소들을 알려줬다.
고쿠로쿠치나와님의 사당을 청소하라며 참배 길을 올라가게 만든 사람도 카이다.
콧쿠리님을 모시라고 아이들에게 암시를 걸기도 했다.

그런 사람이다.
매번 잔소리처럼 너와 나는 아무런 관계도 아니다 잘라 말하는 사람이었다.

전화기 너머 남자의 목소리는 음의 고저 없이 차분했다. 어쩐지 독이 든 사과인양 달콤하기까지 했다.
《왜 말이 없니, 하나에. 듣고 있단다.》
이이지마 하나에의 목소리도 덩달아 낮아졌다. 떨림을 감추려면 그렇게 해야만 했다.
『있잖아, 카이 삼촌... 카이는 왜 나더러 카제야마 중학교에 가라고 했어?』
《그게 좋을 것 같아서.》
『나에게 그게 좋을 거 같아서야, 아님 카이 삼촌에게 좋을 거 같아서야?』
《너를 위한 건 결코 아니었어. 그렇다고 나를 위한 것도 아니었어.》
『그건 무슨 뜻?』
《리쓰를 위해서.》
『뭐야 진짜... 그거 무슨 뜻인데.』
《인간은 신을 죽일 수 없어. 네가 너에게 손대지 못한 까닭이지. 신을 죽이는 건 신이다. 그러니까 이제 이 지긋지긋한 광대 짓을 멈추고 거기서 얌전히 잡혀 먹히라는 얘기야, 하나에. 틈만 나면 심기 여린 내 조카에게 달라붙어 살려 달라 애원하는 짓은 그만 하고, 이 양심도 없는 계집애야.》
하나에는 숨을 들이켰다.
『야, 이 미친놈아! 나는 아직 미성년이라고! 어른이면 도와줘야 하잖아! 사지로 몰아넣는 게 아니라!』
《소리 지르지 마. 뻔뻔한 것도 정도가 있어. 이대로는 8백만 신들에게 잡아먹힐 거라며 도망쳐온 게 3년 전이야. 무려 3년이라고. 어리니까, 약하니까, 앞으로도 계속 도와줘야 한다고? 그동안 조카 녀석이 몇 번을 손을 내밀어줬는지 기억은 하고 있나. 먹이고, 입히고, 재워준 것만으로도 부족해 앞으로도 쭉 목숨까지 구해 달라? 어리광이 심하잖아. 너무한 건 너다.》
『카이 삼촌!』
《항상 말하는 거지만, 나는 너의 삼촌이 아니야. 하나에.》
냉정하게 잘라 말하고 카이가 먼저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이런 날이 오리라고 어딘가로 짐작하고 있었던 건지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하기까지 했다.


※ 이이지마 카이는 부의 주술사입니다. 주술회전 설정으로는 주저사가 되겠군요.
백귀야행도 후반부를 보지 못했고, 주술회전은 만화책을 보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이건 아닌데, 라는 부분이 당연히 많습니다.
주술회전 설정이라면 식신인 아오아라시가 인간의 말을 한다는 건 무리죠. 그래서 아오아라시의 등장도 뺐습니다. 후시구로가 옥견을 부르는 것처럼 이이지마가 아오아라시를 불러내면 제법 멋질 것 같지만... 네, 삭제.
다음부터 후반부 들어갑니다. 업로드 속도는 많이 느려질 예정입니다.

Posted by 미야

2021/04/08 13:42 2021/04/08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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