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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일상생활67

※ 미드 Person Of Interest 팬픽입니다. 숫자는 작성 순서를 의미하며 시간의 흐름과는 상관 없습니다. ※

『생일 축하합니다, 해롤드.』
『네? 지금 뭐라고요?』
드라이버를 쥐고 직접 컴퓨터를 손보던 핀치는 입에 물고 있던 나사를 실수로 삼켰다는 식의 표정을 지었다.
내 생일? 오늘이? 그건 아닌데.
깜짝 놀라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십자드라이버를 꼭 쥐었다. 그리고 영문을 모르겠다며 리스의 얼굴을 세밀하게 뜯어보았다. 장난인가? 분명 장난이겠지. 왜냐하면 리스는 자신의 몫인 커피를 포함하여 테이크아웃 종이컵을 두 개 들고 있었고, 설탕이 한 스푼 들어간 녹차로 고용주의 생일을 축하하기엔 선물이 지나치게 약소했다. 물론 그는 비장의 카드를 호주머니 속에 숨겨두고 아직 꺼내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이를테면 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던 세익스피어 희곡집이라던가, 1캐럿 다이아몬드가 박힌 넥타이 핀이라던가... 아니, 그런 사치스러운 물건을 꼭 바란다는 얘기는 아니고.
기습이 어찌나 훌륭했던지 핀치는 정신을 수습할 수가 없었다.
리스는 커버가 열린 컴퓨터를 흘깃 보고는 여느 때와는 달리 각종 잡동사니를 올려두는 보조 선반 위에다 녹차를 내려놓았다. 기계라는 종류는 아무래도 물과는 상극이었고, 특히 수리 중일 시엔 음료를 가까이 두지 않는게 상식이다.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사를 조립하다 팔꿈치로 종이컵을 밀어서 쓰러뜨리기라도 하는 날엔 대재앙이 따로 없게 되어버린다. 그걸 잘 알기에 다섯 걸음 이상 떨어진 장소에 뜨거운 음료가 담긴 종이컵을 내려놓고「마시고 싶으면 이리로 와요」유혹했다.

『오늘은 제 생일이 아닙니다, 미스터 리스.』
엉거주춤 일어나 마른수건으로 손을 문질러 닦았다.
서류상의 생일도 오늘이 아니며, 어머니 뱃속에서 벗어나 최초로 응애 소리를 내어 울었던 날은 더더욱 아니다. 게다가 여러 번 숫자를 고쳤던 출생연월 중 11월 13일은 한 번도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리스가 어디서 자료를 보고「해피버스데이」이런 말을 꺼낸 건지 궁금할 뿐이다.
『그래요? 오늘은 아니라고요?』
리스는 그다지 당황한 기색도 없이 커피를 홀짝였다.
그렇다면 1년 365일 중에서 이제 가능한 날짜는 364개 남았다.
수첩을 꺼내어 메모했다. 11월 13일은 해롤드 핀치의 생일이 아님. 기억해둘 것.
핀치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감추지도 못했다.
『뭡니까, 그럼 내일도「생일 축하합니다, 해롤드」이러고 살짝 떠봤다가 오늘은 아니다 대답을 들으면 달력에 빨간색 색연필로 X자를 그려 넣을 겁니까?!』
『알겠다. 내일도 아닌 거군.』
『리스~!!』
묘하게 개구쟁이 짓을 하는 전직 CIA 요원은 화내지 말라 손짓하며 얼른 자리를 비켜주었다. 불량섹터가 발생한 컴퓨터 때문에 가뜩이나 신경이 예민해진 고용주를 바가지로 박박 긁어 좋을게 없다.
열심히 하세요 격려의 말을 던지자마자 계단을 타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한때 시립 도서관이었던 건물은 두 사람이 사용하기엔 지나치게 면적이 넓어 여러 면에서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었다. 그들이 주로 이용하는 공간은 사실상 3층으로 한정되어 있었으나 지하 2층부터 시작해서 옥상까지 나 몰라라 이러고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는 핀치는 곳곳에 여러 감시 장비를 달았지만 아무리 정밀한 장비도 때에 따라 오작동을 일으키는 법이다. 따라서 사람의 눈으로 보고 사람의 손으로 만져봐야 안심,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리스는 한 달에 두 번 가량 림보의 보안 상태를 점검하곤 한다.
침입이 가능한 경로와 탈출 가능 경로는 진작에 암기해 두었다. 제일 먼저 확인하는 부분은 그런 것들이다. 커다란 자물쇠가 채워진 물류창고를 순찰하는 경비원처럼 뚜벅뚜벅 발소리를 내며 아무렇게나 돌아다녀서는 효과가 없다. 가상의 적들로부터 공격을 당하고 있다 가정을 하고 취약지점을 집중적으로 현 상태를 검토한다. 미리 설치해둔 부비트랩을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침입자가 함정을 건드린다고 큰불이 나거나 천장이 무너질 것은 아니겠으나 - 폭발물을 이용한 부비트랩 설치는 핀치가 강력하게 하지 못하게끔 막았다 - 우당탕 소리를 내며 사람이 넘어질 정도는 된다. 책이 꽂혀져 있지 않아도 천장까지 닿는 크기의 책장들은 대단히 육중하고 무겁다. 이게 쓰러져 사람을 덮치면 매우 효과적일 터, 그걸 노리고 몇 개의 책장은 일부러 입구 가까이 옮겨놓았다. 모르고 출입문을 열고 몇 발자국 걸었다간 그대로 황천행도 가능하다.

작동하는 조명도 없을뿐더러 달빛도 닿지 않는 어두컴컴한 복도 한 가운데로 손전등 불빛을 비춰보았다.「건물 리모델링 중입니다」이러고 외벽으로 두꺼운 방수천을 둘렀기에 건물 내부는 기이할 정도로 밀폐감을 가지고 있었다. 무겁게 가라앉은 먼지, 그리고 오랫동안 환기가 되지 못해 젇체된 공기는 그 자체로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 접근하는 이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공포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폐쇠된 정신병동과도 그 느낌이 흡사하다. 공포심을 엿과 바꿔 먹은지 오래였으나 머리카락이 쭈삣 곤두서는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날카로운 송곳니를 가진 유전자 조작 괴물과 마주치지는 않을까 근심하며 지하1층과 복도를 구분하는 철제 출입문 손잡이를 돌렸다.
「이거 뭐야... 돌아가잖아.」
원래대로라면 잠겨 있어야 한다. 그게 찰칵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긴장하여 허리춤에 차고 있던 권총을 꺼내들었다.
오른손으로 문을 열고 옆으로 비켜섰다. 혹시 무슨 소리가 들리지는 않을까 가만히 귀를 세웠다.

『핀치, 혹시 최근에 지하로 내려간 적이 있습니까.』
소리를 낮춰 소곤소곤 질문하자 핀치가 얼른 대답했다. 리스와는 달리 목소리가 컸다.
《아... 네. 플라스틱 바가지가 필요해서 거기 청소도구함을 뒤진 적이 있지요. 그런데 왜요? 배관에서 물이라도 샙니까?》
『문고리가 풀려 있습니다.』
《어. 그래요?》
핀치는 보기와 달리 물건 정리를 못 하는 편이다. 하지만 건망증으로 고통 받는 일은 없어 닫아야 하는 문을 그대로 내버려두고 몸만 빠져나왔을 리 없다. 오히려 반대로 이런 부분은 대단히 철저해서 뒤돌아 손잡이를 두 번 이상 잡아당긴다.
『들어가 확인하겠습니다.』
쥐고 있던 총의 안전장치를 풀고 당장에라도 방아쇠를 당길 수 있도록 몸을 긴장시켰다.

예전에 어떤 용도로 사용했을지 지금에 이르러 추측은 불가능하다. 도서관 직원들을 위한 휴게장소일 수도 있으며, 시청각 자료실로 테이프나 음반 종류를 산더미처럼 쌓아뒀을 수도 있다. 쇠붙이의 냄새가 희미하게 풍겼다. 팔면 돈이 될 집기비품 다수가 치워졌으나 철제선반 일부는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칠이 벗겨져 그곳으로 녹이 발생했다. 독특한 악취는 부식으로 인해 생겨난 것이다.
좌측으로 돌아 손전등 불빛을 비췄다. 더 안쪽으로 방화문이 보였다. 하지만 굵은 쇠사슬로 단단히 묶어놓아 바깥에서 들어가는 것도, 반대로 안에서 나오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이제 리스는 우측으로 움직여 벽으로 몸을 바짝 붙였다. 인기척은 없다. 그러나 만의 하나라는게 있다. 어둠속에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예측불허다. 어둠을 조준하며 안으로 몇 걸음 들어갔다.
『......!!』
리스가 밟은 건 초코바 포장지였다.
자세를 낮춰 바스락거리는 비닐을 집어 들었다.
겉에 적힌 유통기한으로 보아 버려진 건 극히 최근이다.
경찰이나 FBI가 현장에서 군것질을 집어먹다가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진 않았을 터.
귀를 만져 다시 핀치를 불러냈다.
『안으로 노숙자가 들어온 모양입니다, 핀치. 카메라에 혹시 수상한 기척이 보이지는 않나요?』
《전혀요.》
이상하게도 핀치의 목소리엔 걱정이라곤 요만큼도 묻어있지 않았다.

Posted by 미야

2013/01/28 13:18 2013/01/28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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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일상생활66

※ 오늘도 휴방. 미드 Person Of Interest 팬픽입니다. ※

『그럼 자료를 보세요. 그는 투자 은행가입니다. 월-스트리트 사람이죠.』
『그라고 얘기하니 좀 이상한 기분이 들어요, 핀치. 존 워렌은 결국 저잖아요?』
출력된 인쇄물에 시선을 내리깔고 있던 핀치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빨간색의 X자로 점칠된 답안지를 쥐고 있는 학교 선생님의 표정을 지었다.
야단맞을 거라는 짐작에 손가락으로 자기 가슴을 가리키던 리스는 재빨리 자세를 바로잡았다.
『미스터 리스? 당신과 존 워렌은 같지 않습니다.』

리스에게는 상당히 많은 숫자의 신분증이 있다. 이름도 각각 다르고 주소도 제각각인데다 당연히 직업도 그때그때 달랐다. 교도소에서 막 출소한 건달부터 시작해 유능한 자산관리자, 해충 구제업자, 개인 보안 서비스 팀장, 택배기사, 리무진 운전기사... 고인으로부터 훔친 배지를 사용해 경찰관을 사칭하기도 한다. 이러한 코스튬 이력을 직업 이력으로 착각하면 그는 정말이지 안 해본 직업이 없는 사람이었다.
『아뇨. 소방관이 되어본 적은 없어요.』
『리스.』
『의사 가운을 입고 돌아다닌 적도 없고요. 음악가나 화가로 꾸민 적도 없는 걸요.』
아무튼 여기서 중요한 건 다수가 일회성이었다는 거다. 돌아서서 가짜 이름으로 만들어진 가짜 신분증을 반으로 꺾어버리면 그만이었다는 말씀.

리스는 연대별로 상세하게 정리된 존 워렌이란 자의 이력을 읽어 내려가며 목덜미를 문질렀다. 아들이 성홍열로 앓아누운 리무진 운전기사의 대타로 활약하는「존」은 전화번호와 주소만 가진 가공의 인물이었는데 핀치가 제공한「존 워렌」은 엄청나게 상세한 디테일을 가진 인간이라서 지금 당장 도서관 안으로 씩씩하게 걸어 들어와 그에게 악수를 청할 것만 같았다. 워렌은 부모가 있었고, 대학교도 졸업했다. 군대도 다녀왔다. 헤어진 여자 친구도 있었다.
『상당 부분이 당신의 이력과 흡사합니다. 그래야 기억하기 좋을 것 같아서요.』
쓰레기통도 제 날짜에 안 비우는 남자가 이런 면에선 엄청나게 철저하다.
특기사항이라며 메모가 별첨되어 있었다. 95년 보스니아 평화유지군으로 파견 나갔을 적에 클라단즈 지역에서 세르비아 무장단원과 마주쳤음 - 이건 농담인가 싶어 한쪽 눈썹을 활처럼 구부렸다. 하지만 핀치는 언제나처럼 진지했다. 세상에... 그는 95년부터 2001년까지라는 한 줄짜리 군복무 이력이 아닌, 화약 냄새가 나는 진짜 군인을 만들어냈다.

『약간의 양념은 당신이 마음대로 지어내도 됩니다만... 아시죠? 진실의 조각이 지나치게 섞여 들어가면 그게 꼬투리 잡혀 들통이 납니다. 그럼 뒷장으로 가보세요.』
자료로 준 출력물의 다음 페이지를 넘겨보라며 핀치가 신호했다.
『이후 방황을 좀 해서 퍼시픽 캐피탈, 캠브리지 보안회사, BPC 등등의 회사를 전전했습니다.』
『그 이력은 확실한 건가요?』
『제가 소유한 회사들이니 워렌의 가짜 이력서를 끼워 넣는 건 하나도 어렵지 않아요.』
『하지만 이건 마음에 안 들어요. 결국엔 파산했음.』
입술을 안으로 지그시 말며「파산」이란 단어에 대고 손가락을 튕겼다.
동시에 핀치와 리스 두 사람은 정체불명의 신사와 노숙자 신분으로 처음 만났던 날을 떠올렸다. 비가 추적추적 내렸고 강변으로 바람이 많이 불어 추운 날씨였다. 핀치의 코는 우스울 정도로 빨갰다. 그래도 리스는 추위로 빨갛게 변한 코를 보며 웃지 못했다. 주변으로 거구의 보디가드들이 에워싸고 있었는데다 핀치가 초면임에도「미스터 리스」라고 서스럼 없이 불렀기 때문이었다. 리스라는 이름은 존이 자주 써먹던 가명이었다. 그 가명을 지어준 사람은 CIA 선배 요원이다.

무엇을 떠올린 건지 모르겠다. 핀치의 눈매가 돌연 구부러졌다. 어떻게 보자면 재밌어 하는 눈치다.
『어쨌거나 워렌은 하워드 프렌치라는 은인을 만나 재기에 성공했고...』
『하워드 프렌치? 이름이 좀 그렇네요. 이 하워드 프렌치라는 사람은 진짭니까?』
『해롤드 핀치가 진짜가 아니듯 하워드 프렌치 역시 정교한 가짜입니다. 하지만 상세하게 뜯어보지 않는 이상은 눈치를 채지 못할 거예요, 미스터 리스. 진짜 정체는 단역을 주로 하던 배우인데 바지 사장 역을 제안하자 아주 신나 하더군요. 당신의 상사이고 회사의 이사 중 하나입니다. 은퇴하기 직전이라 외국 지부에 3년 이상 나가 있다는 설정입니다. 이렇게 생긴 사람이니 얼굴은 외워두세요. 당신과는 일주일에 두어 차례 업무상 통화를 합니다. 실제 통화는 물론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제 컴퓨터 시스템이 자동으로 기록만 만들어낼 겁니다. 그러니 너무 염려하진 마세요. 그래도 프렌치 씨의 사생활 몇 가지는 꿰고 있는게 좋겠죠. 그는 와인 애호가고 클래식 음반을 수집합니다. 골프도 즐기고요.』
『와우... 핀치, 당신 골프 좋아해요?』
『농담해요? 터벅터벅 걸어가서 작은 공 하나 치고, 다시 터벅터벅 걸어가는 걸 제가 좋아할 것 같습니까. 운동을 하려면 그냥 운동화를 신고 공원 한 바퀴 뛰는게 제일 좋아요.』
모르긴 해도 부자라고 다 골프를 좋아하는 건 아닌 모양이다.

페이지가 팔랑팔랑 넘어갔다. 대부분 타인의 이력서들이었다.
『동료직원들과 부하직원입니다. 특히 코라 콜렛 양은 당신의 알리바이와 같은 인물입니다.』
『알리바이요?』
『당신은 1년 전에 입사했고, 코라는 4년 전부터 입사해서 2012년 올해 9월부터 당신의 부하직원으로 근무했습니다. 직위가 바뀐 것이 며칠 안 되었죠.』
『하지만 난 그러지 않았잖아요. 그렇게 꾸미는게 가능합니까? 핀치.』
『존 워렌은 상사인 하워드와 같이 외국으로 자주 출장을 갔어요. 그동안 코라가 당신 얼굴을 자주 보지 못한 까닭이 설명이 되지요. 그래도 승강기를 타러 가는 워렌의 뒷모습을 얼핏 보거나, 당신이 직접 작성한 생일 축하 카드를 받았습니다. 당신이 존재한다고 인식하고 있어요. 그래도 단 한 번도 사무실에서 상관 얼굴을 못 봤다는 건 말이 되지 않으니 이제부터라도 가끔씩 사무실에 들러 얼굴을 비춰야 할 겁니다. 단, 주의해야 할 것이 코라는 하워드와는 달리 진짜입니다. 그녀는 두 아이의 엄마이며 지금의 현 남편과는 재혼했습니다. 제가 하는 말의 뜻이 무엇인지 아시겠지요?』
『지나치게 가까이 두지 말고, 그렇다고 멀리해서도 안 된다.』
『정답입니다.』

이쯤해서 리스가 팔짱을 끼었다. 그리고 팔자 눈썹이 되었다.
『그런데 말이죠 핀치, 요즘 전 장갑차 수송 서비스 업체에 신참 경호원으로 취업했거든요. 내일 아침 일찍 머레이 랭스턴과 만나 아침 식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평소 토미와 같이 잘 가는 가게라고 하더군요. 당신이 만든 존 워렌으로 변신하고 월-스트리트로 근무하러 가려면 분신술이라도 써야할 텐데 제가 도술이나 마술 같은 종류는 잘 몰라서...』
핀치는 산뜻하게 대답했다.
『아, 걱정 마세요, 리스. 당신은 지금 런던에 있는 겁니다. 아, 그러니까 존 워렌이 런던에 있는 겁니다. 항공권 구입의 기록도 서버에 들어가 있으니 마음 푹 놓으십시오.』
자리에서 일어난 핀치는 뒤뚱거리는 걸음으로 컴퓨터 쪽으로 옮겨갔다.
장갑차의 디지털 통신망과 연결되었고 이미 판독기가 범위에 들어오는 차량들의 번호판을 스캔하기 시작했다. 핀치는 이들 자료 중 버릴 것과 버려서는 안 되는 것들을 추려내는 코드를 짜고 있었다. 혹시라도 트럭을 뒤쫓는 무리가 있다면 아마도 반복하여 나타날 터, 이들 번호판을 대조하면 진짜 위협에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미야

2013/01/25 13:04 2013/01/25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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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일상생활65

※ 자급자족은 배가 부르지 않아~!! 짜증나~!! 미드 Person Of Interest 팬픽입니다. ※

리스가 도서관으로 돌아왔을 적에 무슨 영문에서인지 핀치는 예의「단골 재단사가 갑자기 사업을 접고 시골로 냉큼 이사를 가버린」표정을 짓고 있었다.
리스는 상심에 빠진 고용주를 위로하고자 했다.
걱정 말아요, 핀치. 괜찮은 실력의 재단사는 분명 다시 찾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입을 열기도 전에 그의 고용주는 돌려서 뚜껑을 닫는, 손가락 정도 크기의 무색투명한 플라스틱 통 하나를 건넸다. 그리고 제법 근엄하게 눈짓했다.

플라스틱 통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이리저리 굴려봤다.
병원에서 쓰는 종류다. 그러니까... 리스의 속이 불편해졌다. 대학생들이 푼돈을 벌기 위해 정자 기증을 하러 가면 거기 직원이 무뚝뚝한 얼굴로 집어주는 것과 정확히 같은 종류다. 순간 편두통이 몰려왔다. 아니, 그러니까 불혹을 넘긴 내가 왜 이 나이에...? 콧잔등을 가득 찌푸린 채 의혹이 담긴 시선으로 핀치를 훑었다. 차마 입에 담기가 껄끄러웠던지 핀치는 조가비처럼 입을 다물고 애꿎은 키보드 자판을 - 탭 키를 꾹꾹 누르기만 했다.
죽으라고 하면 바닥에 뒹굴며 숨 넘어가는 시늉도 할 각오지만 이건 아니다.
여보세요 이러며 플라스틱 통을 눈앞에서 흔들었다.
『당신이 시키는 대로 할 겁니다만... 여자들 사진이 들어간 잡지는 안 주는 겁니까, 핀치.』
『예? 소변을 보는데 왜 잡지가 필요합니까?』
『어... 소변이오?』
『네. 큰 거 말고 작은 거요. 아니면 다른 걸 생각하셨던 건가요? 미스터 리스.』
『그게... 음.』
『아이고, 저런.』
거기까지 말한 두 사람은 동시에 낯을 붉혔다.
뭔가 오해가 있었던 것 같은데 까놓고 물어보기가 뻘쭘하다.
리스는 손을 들어 귀를 긁었고, 자기가 먼저 시작했음에도 답지 않게 크게 동요한 핀치는 짐짓 헛기침을 하며 책상을 정리하는 척했다. 먼지가 뽀얗게 쌓여도 걸레질 한 번 안 하던 양반이 책을 들었다 놓았다 하더니 연필꽂이 대용품으로 삼은 머그컵을 책상 오른편에서 왼편으로 빙빙 돌렸다. 그러고도 진정이 되질 않자 이번엔 모니터를 붙잡고 각도를 조정했다. 하지만 열을 내며 달아오른 귀는 여전히 빨간 빛이다.
『제가 저, 정ㅇ... 정, 아니. 그, 그걸 요구할 리 없잖습니까, 리스.』
『저야 모르죠.』
『뭡니까, 그 벌레 뒷다리 씹은 표정은. 전부 제 잘못이라는 거예요?』
『발끈해서 절 쳐다보지 말아요. 그럼 그게 제대로 된 설명 한 마디 듣지 못한 관계로 엉뚱하게 착각을 해버린 사람 잘못인가요?』
핀치의 눈동자가 위로 향했다가 한참만에 다시 아래로 뚝 떨어졌다. 성가시게 날아다니는 벌레를 쫓는 시늉을 하더니 이윽고 지은 죄를 자백하고 의자 등받이에 깊게 무너졌다.
『듣고 보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니군요. 제 잘못입니다.』

똥, 오줌, 정액 이런 단어는 일반명사임에도 아무래도 입에 담기가 어렵다. 지뢰를 피해가려니 그거, 이거, 이런 식으로 빙빙 돌려 말해야 하는데 그만큼 서로 착각하고 딴 얘기를 할 가능성이 높다. 어쨌든 시작은 해야 할 터, 핀치는 손가락으로 플라스틱 통을 가리키며「그것」이라고 말했고, 그 다음엔... 어쩐다.
주먹을 쥔 손으로 책상을 툭툭 치며 적당한 다음 단어를 골랐다.
『카터 형사님이...』
『네?』
『그녀도 당신과 마찬가지로「입안으로 고운 모래알갱이가 서걱서걱 굴러다니는」동네에 다녀오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스트레스와 피로가 심한 군인들에게 투약되는 정체불명의 약들에 대해 들은게 있다고 했습니다. 당신이 겪을 불쾌감을 알기에 미리 말해두는 거지만 카터는 당신이 걱정되어 저에게 연락을 한 겁니다. 음... 그러니까 리스, 이상할 정도로 기분이 좋아 보였다고 그녀가...』
『하아?』
『그렇게 된 거니까 빨리 화장실에 다녀오세요.』

리스는 화장실에 가지 않았다. 대신 팔짱을 꼈다. 그리고 핀치를 쏘아봤다.
『뭐예요. 제가 메탐페타민이라도 복용했을까봐요? 아서요.』
『아니, 그게...』
『피로를 풀어주고 생체활력 증강, 중추신경계 흥분 작용으로 수면 억제 등의 효과가 있죠. 이라크 전에서 병사들에겐 비밀로 하고 사용된 전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러 고백하자면 CIA 시절에 몇 번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말이죠, 이런 종류들은 반드시 부작용이 있습니다.』
약효가 떨어지면 극심한 피로감에 휩싸인다. 약을 더 먹거나 아니면 24시간 휴식을 취해야 한다. 의존성이 높고 장기적으로 복용하면 중독 증세가 나타나는데 혈압 상승 및 심박수 증가, 편집증 같은 부작용 말고도 표정이 멍하게 되며 기억력이 빠르게 감퇴한다.
『생각을 해봐요 핀치. 당신이 만든 기계가 줄리엣, 알파, 이러고 암호를 불러주는데 머리가 망가져서 암기를 못 하는 거예요. 그래서 수화기를 움켜쥐고「미안한데 한 번만 반복해서 더 말해줘. 약 때문에 바보가 되어버려 전부 까먹었어」애원을 해요. 그러고도 일을 참 잘 하겠죠?』
『어...』
『나는 이 일을 사랑해요, 핀치. 그러니 제가 펑펑 소리를 내며 불꽃을 뿜는 전자렌지 앞에서 막춤을 추면 그때 가서 다시 소변 제출을 요구하세요.』
포물선을 그리며 플라스틱 통이 허공을 날았다.
캐취볼 놀이를 하는 요령으로 날아오른 플라스틱 통을 받은 핀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인상을 구겼다. 그러다 넌더리가 난 것 같다. 아니면 통 안에 든 노란색 오줌을 상상한 것일 수도 있다. 부르르 떨더니 격앙된 몸짓으로 사용한 적 없는 빈 통을 쓰레기통에 휙 버렸다.

옷깃을 잡아당기며 의자에 바르게 앉았다.
『좋아요. 그럼 트레비노가 말한「모죠」에 대해 얘기해보죠. 출생신고서에 모죠라고 적었을 리 없으니 별명임이 확실한데 우리가 생각했던 것처럼 뒷골목 마약 판매상이 아니라...』
『핀치는 그저 숨 쉬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던 적 없습니까?』
경찰서에서 해킹한 것이 분명한 자료를 모니터 화면에 띄우다 말고 핀치가 입을 다물었다. 곁눈질로 리스를 쳐다보는데 어쩐지 불안해 보인다. 이런 화제는 달갑지 않다는 건 분명해서 대답이 빠르게 돌아오지도 않았을뿐더러 회피했다.
『좀도둑질이나 하는 불량배더군요.』
『핀치?』
고용주의 이마에 주름이 졌다.
『미스터 리스? 당신과 나는 17세 사춘기를 겪는 소년이 아닙니다. 호르몬 탓에 감정의 급격한 변화를 겪을 일이 없지요. 갑자기 행복해지지도 않고, 갑자기 슬퍼지지도 않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의 감정 기복은 있지만 옆에서 다른 사람이 보고「뭘 잘못 먹었나보다」이럴 정도는 아니라는 겁니다. 숨 쉬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던 적 있느냐고요? 글쎄요... 계란 프라이에 노른자가 하나가 아니라 두 개였을 적에 좀 기뻤습니다. 결국 그 정도라는 거지요.』
구석구석 살피는 시선이 리스의 피부 위로 쏟아졌다.
『당신도 계란 노른자가 두 개인 달걀을 먹은 겁니까?』
『오, 그건 아니고.』
『어쨌든 우울한 것보다 좋은 거겠지요. 행복한 기분이라는 건... 자, 어쨌거나!』
잡담은 그만하고 일을 하자며 컴퓨터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군대식 3분 샤워를 하고 있는데 욕실 선반장 꼭대기로 사용한 흔적이 있는 파란색 칫솔이 보였다.
칫솔은 빈 컵에 담겨「아침에만 쓰지 말고 저녁에도 꼭 사용을 해 주세요~」즐겁게 허밍을 하고 있었다.
매번 포장을 벗겨선 한 번만 쓰고 바로 버리더니만 자원을 아끼자 마음을 바꿔먹은 듯하다.
꺼내어 한참을 바라보다 에라 모르겠다 이러고 자신의 것과 나란히 두었다.
그러자 미칠 듯이 행복해졌다.
단지 그뿐이었다.

『미스터 리스, 제가 하는 말을 잘 따라오고 있나요.』
『듣고 있어요.』
싱긋 웃으며 의자에 앉아 다리를 떨어댔다.

Posted by 미야

2013/01/24 12:13 2013/01/24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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