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일상생활53

※ 미드 Person Of Interest 팬픽입니다. ※

칼 비처는 8구역 마약단속반 소속의 젊은 형사로「엉덩이 무지 가벼움 = 아무튼 여자를 잘 꼬셔요」로 제법 이름이 높았다.
카터가 그쪽 부서로 비처의 연락처를 묻자 반응이「그럼 그렇지」로 들렸던 것도 다 까닭이 있었다. 평소에도 업무상 용무를 가장한 채 접근을 시도하는 여자들이 제법 있었던 모양으로 강력계 형사라는 이쪽의 신원을 밝혔음에도 수화기 저편의 접수계 직원은「비처, SOB(개자식). 원 스트라이크~!」반응을 보였다.
귓구멍에 닿은 소문이 그렇다보니 느끼한 바람둥이를 상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솔직히 카터는 손가락에 커다란 금반지를 세 개나 낀 남자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만나보니 예의바르고 정중한 타입이었다. 비처는 잘 생겼고, 손가락에 반지를 안 꼈고, 매너가 좋았다. 초대받은 저녁식사 자리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그는 어색함을 날려버릴 즐거운 화제로 여성을 기쁘게 해줬고, 저속하지 않은 농담으로 분위기를 띄울 줄 알았다. 첫 번째 데이트에서 그들은 가벼운 키스를 나눴는데 카터가 결정을 못 내리고 우물거리자 그 즉시 물러나 여성을 배려하는 자세를 보여주었다.
「당신은 좋은 사람이에요.」
「오늘 밤, 정말 즐거웠어요, 카터.」
「집까지 배웅해줘서 고마워요, 비처.」
만장하신 가운데 땀이 찬 사타구니를 손으로 벅벅 긁는 사람들이 주변에 널린 탓에 이런 식의 존중은 카터를 우쭐하게 만들어 주었다. 서로 눈인사를 나누던 그 순간만큼은 머리통 커진 아들을 키우는 싱글 마더도 아니었으며, 걸음아 나 살려라 달아나는 용의자를 향해 킥을 날리는 형사도 아니었다. 비처는 아름답고 섹시한 여성으로서 카터를 대우해줬다. 와우. 그건 정말 기분 좋았다.
집에 돌아와 화장을 지우며 거울을 보자 오랜만에 붉어진 뺨으로 행복해하는 자신이 보였다.
네글리제 차림으로 의자에서 일어서서 가슴과 허리, 그리고 골반으로 이어지는 라인을 차분히 뜯어보았다. 여전히 매력적이다. 머리를 빗는 브러시를 손에 쥐고 만세라도 부르고 싶어졌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어요? 카터.』
『제가 지금 콧노래를 불렀던가요.』
『오- 아뇨.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콧잔등 부위를 가리키며 동료 경관이 히죽 웃었다. 매일 찡그리고 있던 얼굴에서 주름이 없어졌다는 의미다. 하여간 고등학교도 아니면서 이런 방면의 소문은 무척 빠르게 돌았다.
「누구와 누구가 서로 좋아한대요. 얼레리꼴레리.」
사생활과 업무는 어디까지나 별개의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데이트를 궁금해 하는 눈빛들은「그 둘이 별개의 것이었어?」어처구니 없게 되묻고 있었다. 흥미진진해하는 표정들이 카터의 행동을 훔쳐봤다. 데이트 후에 꽃을 보내오지 않는다며 오지랖 넓게 대신 화를 내주는 이도 나왔다. 분위기 좋은 장소를 골라주겠다며 친절 아닌 친절을 베푸는 동료도 있었다. 카터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어떤 의미에선 그 간섭이 기분 좋았고, 어느 의미에선 성가셨다.

『의외로 이 바닥이 좁잖수.』
라이오넬 푸스코는 그 정도는 예상했었어야 한다며 가볍게 킁, 콧소리를 냈다.
『게다가 마음 놓고 데이트도 못 하는 세상이라고요.』
그게 무슨 동치미 국물로 발가락 닦는 소리야, 이랬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게 무슨 의미인지 뼈저리게 실감했다.
그렇고말고. 마음 놓고 데이트도 못 하는 세상 맞다.
《요즘 형사님 얼굴색이 무척 좋다고...》
『시끄러워욧, 핀치!』
《그 사내가 형사님을 괴롭게 만들면 제가 직접 찾아가...》
『시끄럽다고 했잖아요, 존!』
그녀의 데이트 사실이 타임스퀘어 광장 대형 광고판에 걸릴 정도의 사건이던가.
어질어질한 머리를 부여잡고 한참을 끙끙거렸다.
이제 그녀의 어머니가 부재중 전화를 걸어오는 일만 남았다.
딸아, 요즘 데이트를 하고 있다며. 그 남자가 누구니?

냉정한 자세를 잃지 않으려 기를 쓰며 그녀가 주장했다.
『이건 제 사생활 침범이에요. 당신들, 선을 넘었다고요.』
딱딱거리는 카터의 불만에 리스는 평소와 다른 목소리를 냈다. 그러니까 지루한 내용의 교과서라도 읽는 뉘앙스였다.
《주의하고 있어요, 카터. 분위기가 진전된다 싶으면 이어폰을 뺄게요.》
『그러니까~!! 누군가 다 듣고 있다 생각하면서 분위기를 로맨틱하게 진전시킬 수는 없다고요!』
《그럼 사전에 약속을 해둘까요. 테이블을 세 번 치면 진도 나가기 일보직전이다... 이렇게.》
『이 사람들이 진짜!』
여기서 무슨 덮밥처럼 얹어진 푸스코의 조언이 걸작이었다.
『핸드폰 전원을 끄고 밖에 나가면 괜찮을 것 같죠? 천만에요. 무슨 마법을 부리는 건지 쟁반에 얹혀진 1회용 핸드폰이 주문하지도 않은 와인과 같이 나오는 겁니다. 벨이 울려서 받아보면 척척박사 그 양반이고요, 점잖은 목소리로 당장 꺼놓은 핸드폰을 원래대로 해놓으라고 요구하죠. 기가 막혀서 난 아무 말도 못 했다우.』
그들에게 감히 대들 생각 자체를 못하는 푸스코는 엿듣고 싶음 맘대로 엿들어라 이러며 모종의 여인과의 만남을 이어가는 눈치다.
『성질 고약한 시어머니가 붙었다니까요. 이쪽 생각 좀 해달라 그랬더니 원더보이는 느끼하게 웃기만 합디다. 그래서 뭐, 다음부터는 극장처럼 시끄러운 장소를 고르고 있지요.』
『읔.』
보고서를 작성 중이던 푸스코가 안경을 고쳐 쓰며 그녀에게 충고했다.
포기해요, 카터. 포기하면 편해져요.

목요일 저녁에 시간이 날 것 같아 미리 약속을 잡아두었다.
평소에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과감한 디자인의 드레스를 입고 나갈 작정이다. 분위기가 좋게 이어지면 기꺼이 남녀관계도 가질 생각이다. 그녀는 그럴 자격이 충분했고,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을 까닭이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피임약도 구해다 놓았다. 야한 느낌의 속옷도 준비했다.
『목이 아픈가요, 카터?』
아까부터 헛기침을 하고 있는 그녀를 향해 비처가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오, 별 거 아니에요. 건조해서 그런가봐요. 물을 마시면 나아질 거예요.』
『어딘지 불편한 모습이군요,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른 곳으로 장소를 옮길까요?』
『아녜요, 칼. 그러지 않아도 되요.』
그러면서 카터는 테이블을 손등으로 초조하게 세 번 두드렸다.
『조스?』
『호호호, 별 거 아니라니까요.』
그리고 다시 세 번 더 두드렸다.
『오늘 좀 이상한데요, 조스.』
『그래요? 그렇게 보여요?』
포기하면 편해진다는데 그 포기가 쉽게 되지 않는다는게 문제다.

Posted by 미야

2013/01/07 13:20 2013/01/07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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