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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션 맘대로 설정...

팬픽션 작업을 통틀어 전체적인 큰 줄거리는 가닥이 잡혀 있습니다만, 본인의 머리가 대단히 나쁜 관계로 아귀도 안 맞고... (중얼중얼) 500년 전이랬다가, 다시 800년 전이랬다가, 결국은 이도 저도 아니게 된... (중얼중얼) 언젠가 연표까지 만들어 정리를 해보자고 도전했다가 스스로 좌절까지 하고 만... (중얼중얼)
신마전쟁으로 대륙 곤드와나의 붕괴 - 로 시작되는, 쉬피드와 샤브라니구드의「너죽고 나살자」부터 시작되는 연표를 정말로 만들었었습니다. 이걸 여전히 기억하시는 분들도 계시더군요.

잊어주세요!

하여간 칸자카 하지메씨에겐 늘 죄송한 마음입니다. 남의 소중한 자식놈의 머리를 맘대로 파마시킨 기분이랄까, 아님 멋대로 단발머리로 꾸며댄 기분이랄까.
그치만 이거 중독되어요. 신마전쟁부터 시작해서 현대물까지 연결할 수 있다니까요. 로스트 유니버스의 시대까지 끌어당기면 대략 3만년 정도는 가뿐하게 잡아먹을 수 있어요. 말이 그렇지 3만년. 카아~
덕분에 원작자를 무시한, 다음과 같은 맘대로 팬픽션 설정이 제법 됩니다. 아하하...;;
뭔가 도움이 될까 싶어 적어봅니다.

. 북의 마왕의 이름은 루토이고, 그는「분노」라는 샤브라니구드의 파편이다.
. 북의 마왕의 쌍둥이 동생은 루토나로 그녀의 죽음이 샤브라니구드를 각성시켰다.
. 루토나는 불멸자로 북의 마왕의 육체가 계약의 돌이다.
. 결계 밖 나라에서는 사제들이 절대 권력을 가진 신의 대리인이다.
. 결계 밖 나라 사제들은 쉬피드가 살해당한 관계로 현재 신이 부재한다는 걸 알고 있다.
. 쉬피드는 여성체고, 샤브라니구드는 남성체로 이들은 쌍둥이다.
. 빛의 검 고룬노바는 소환에 실패한 로스트 쉽이다. - 엘로고스가 콧방귀를 뀌겠군.
. 마지막 대현자 레이 마그너스 역시 로스트 쉽이다.
. 레이 마그너스는 소환되기 전 기계 고장을 일으킨 관계로 무시무시한 방향치가 되었다.
. 적법사 레죠는「질투」라는 샤브라니구드의 조각이다.
. 샤브라니구드의 7조각 중에서 가장 무섭고, 절대로 부활하면 안되는 조각의 이름은「광기」다.
. 항마전쟁 시절 해왕은 전쟁에 참여하라는 북의 마왕에게 항명한 죄로 신분이 격하되었다.
. 제멋대로 마왕 다루핀은 항마전쟁 시절, 딴짓에 바빠 천룡왕을 섬기는 천신족을 혼자 도륙했다.
. 다루핀의 인간 세계에서의 닉네임은「은둔하는 철학자」이다.
. 리나 인버스의 몸에는 쉬피드와 샤브라니구드의 혼이 잠재되어 있다.
. 다루핀은 미치광이 골디와 함께 마족 찻집을 하나 열고 있다.
. 미치광이 골디가 다루핀과 불사의 계약을 맺었는지에 대해선 알려진 바 없다.
. 해신관의 이름은 다루안이다. 해장군은「해장국」이란 별명만 밝혀져 있다.
. 아멜리아의 증손자이자 제르가디스의 대자인 세일룬의 왕손을 제로스가 치정 관계로 살해했다.
. 결계 밖 세계에는 마법력이 제로가 되는「블루 존」이 상당 수 존재한다.
. 레이 마그너스가 곳곳에 남겼다는「인간의 신전」은 대륙 크기의 거대 결계 구조물이다.
. 대단위 결계는 파괴될 적에 필연적으로 물질 붕괴를 일으킨다 - 스프링 이론
. 마법은 언령계(주문)와 화령계(마법진)으로 나뉜다. 슬레이어즈 마법은 기본적으로 언령계다.
. 절대지식 묵시록 비나는 쉬피드의 잔존 기억이다.
. 제르가디스 그레이워즈는 레죠의 복제 세포로부터 만들어진 아이다.
. 가우리는 바보인 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바보다. (싫다, 이런 얘기!)
. 용족들 중에서 은수룡은 1개체 일족이다. 황금용족보다 지위가 높다. 레이 마그너스와 웬수다.
. 레이 마그너스는 마력 폭주를 빙자하여 화려하게 자살했다.
. 레이 마그너스의 원래 이름은 레 이위 마그너스다. 레 이위의 뜻은「짝퉁」.
. 리나 인버스는 동네 앞산에 드래곤 슬레이브를 날려 먹곤 고향에서 도망쳤다.
. 리나 인버스의 조촐한 장래 희망은 마법 상점 점포 주인이다.
. 가우리의 조촐한 장래 희망은「멋져 남편」이다. 멋진 남편이 아니라 멋져 남편이다.
. 제르가디스가 가장 좋아하는 요리는 모듬 해물 전골이다.
. 바르 테일러는 어머니 피리아에 의해 어릴적 기억 및 전생 기억 대부분을 봉인당한다.
. 제르가디스는 육아 서적 읽는 것을 광적으로 좋아한다.
. 제르가디스는 아멜리아의 첫 출산시 아기 아버지를 재빨리 밀치고 제일 먼저 아이를 안았다.
. 실피르는 사일라그를 재건하는데 성공했다.
. 사일라그 멸망 기록사.
  1차 : 마수 자나파 덕분에 와장창.
  2차 : 복제 레조 덕분에 와장창.
  3차 : 피브리죠 때문에 와장창.
  4차 : 제로스 덕분에 와장창.
. 가우리 가브리에프는 자연사했으나 사후 제로스에 의해 무덤에서 끌려나와 목이 잘렸다.
. 제르가디스의 손녀딸은 사일라그 대 화제 이후 행방불명이다.
. 아멜리아의 애독서에는 [고담시를 지키는 용감한 배트맨] 이 포함되어 있다.
. 마법사는 마법력을 행하기 전에 장갑을 끼는 것이 관습이다.
. 고대어인 크랍수시아 언어는 1만년 전부터 사용된 신관문자(파베)로 기록되어 있다.
. 물질 전송 마법으로 살아 있는 생명체를 이동시키는 건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Posted by 미야

2006/07/05 16:49 2006/07/05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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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List

  1. 시나 2006/07/06 07:49 # M/D Reply Permalink

    학교 입학하기 전에 서두를 떼 둔 팬픽이 아직도 블로그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게 왠지 찔리는군요..(..);
    시험 끝나면 저도 다시 팬픽작업에 몰두해야겠습니다. 이번만은 결심만으로 끝나지 않기를...

  2. amille 2006/07/06 08:43 # M/D Reply Permalink

    우와, 이것만 해도 내용이 상당하네요... +_+

  3. 신쿠♡ 2006/07/06 09:56 # M/D Reply Permalink

    더 많은 설정을 생각해두고 계시겠지만 여기에 적어두신 내용도 상당한데.. 원작자의 설정 노트는 장난 아니겠군요(...) 뭐, 팬픽이라는 게 또 하나의 작품을 탄생시키는 거니까 죄송해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만;ㅁ; 저는 미야님의 필체가 너무 좋아요! 앞으로도 좋은 작품 기대할께요.*^^*(아.. 압박하는 건 아니니까 부담 갖지 마시길;)

  4. Yuri 2006/07/06 10:53 # M/D Reply Permalink

    원작보다 더 치밀한거 같아요+_+ 근데 리나가 죽은 이유는뭐고 성마강림이라는 건 뭐에요? 이건 소설줄거리인가 ㅠ 소설을 기다리기가 ㅡㅠ 알고싶습니다(호호)

  5. kr 2006/07/07 22:12 # M/D Reply Permalink

    정말이지 저는 저 상상력에--; 고대에서 현대물로까지 이어지는 이야기... 한마디로 얘기할께요. 소름이 돋았습니다. 저는 제르가디스 사망으로 장대하게 끝나는! 그 '연표'라는 것을 보지못한게 두고두고 마음에 걸렸었어요. 미야님은 정말 슬레에대한 사랑이 넘쳐나시는것 같습니다. 글쎄요 저는.. 그것도 다른나라에서, 이렇게 오래전부터 그리고 정성을 들여 높은 완성도로 팬픽을 써왔다는걸 원작자분께서 아시면 감격하실꺼라고 생각해요. 원작에 대한 최고의 찬사가 아닐까요.

  6. 비밀방문자 2009/07/11 01:11 # M/D Reply Permalink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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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4 : 풀무불의 노래 8

인공으로 키워낸 열대의 나무들이 더위에 비적거리고 있다. 장벽으로 보호받고, 지하 200m 아래로부터 끌어올린 지하수를 편하게 얻어 먹는 팔자라고 해도 사막의 열풍 공격이라는 건 가히 살인적인 법이다. 크기로 보아 다 자란 것이 분명한 나뭇잎들은 그리 파랗지 않았고, 얄팍한 모양이 튼실해 보이지도 않았다. 술집 앞에 장식용으로 세워둔 싸구려 모형 같다 - 그것이 칭송 자자한 이 기적의 오아시스에 대한 첫 감상이었다.
손가락으로 가볍게 툭 튕겨보자 기운을 잃은 나뭇잎 몇이 안녕을 고하고 가지에서 떨어졌다. 아차 싶어 얼른 손을 거두어 들였다. 그렇다 해도 끝 부분이 누렇게 타들어간 잎사귀들은 어차피 회생 불가능으로 병색이 완연하다. 바람도 불지 않았는데 몇 개의 나뭇잎이 추가로 더 떨어졌다. 그것이 묘하게 마을 분위기를 설명해주는 것 같아 그라바스는 눈살을 찌푸렸다.

인기척도 없고, 개 짖는 소리도 안 나고, 개미 한 마리 안 보인다.
고개를 갸웃했다. 사막 썰매를 찾아 며칠 머물렀던 룬데긴의 분위기는 이렇지 않았다. 지나가는 사람도 많았고, 호객 행위를 하는 썰매 몰이꾼들의 아우성으로 귀가 따끔거렸다. 외지인들을 벗겨 먹겠다며 멀건 대낮부터 술을 팔았다. 와중에 말다툼이 주먹다짐으로 번져 골목은 24시간 계속하여 호황. 바삐 걷는 짐꾼에 장사꾼에 정신 없었다.
그런데 그 룬데긴보다 인구 숫자만 두 배라던 테라는 어찌된 영문인지 절간, 내지는 물에 잠긴 무덤터를 연상시켰다.

『아직 저녁이 되지 않아서 그런 걸까요?』
더운 지방에선 살인적인 햇살을 피해 낮과 밤을 바꿔 생활한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기억이 있다.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달의 축복을 빌고, 심지어 결혼식도 밤에 한다고 했다. 해가 지는 것과 동시에 피로연은 끝~ 인 고향 풍습과는 정 반대다. 한술 더 떠서 일몰 시각에 일어나 머리를 빗고 양치질을 하는게 일상이란다. 이른바 뱀파이어 라이프다.

『꼭 그 때문인 것 같진 않은데... 살펴보자.』
시험삼아 제일 가까운 집으로 접근해 봤다. 허락도 구하지 않고 남의 집을 엿보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잔소리하는 그라바스는 그냥 찌그러뜨리고 출입문의 손잡이를 앞으로 당겼다.
놀랍게도 집 주인은 자물쇠 장치를 채워두지 않았다. 찰칵 소리가 나고 그대로 문이 열렸다.
안에 누구 없느냐 목소리를 내기 전, 유나는 벽쪽으로 주의깊게 몸을 붙이고 숨을 죽였다.
더위를 피하고자 지하로 땅을 깊게 파고 축대를 세운 탓인지 코로 축축한 내음이 올라왔다.
지상과의 기온 차를 설명해주는 축축함이었으나 결코 쾌적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이 집을 지은 사람은「서늘한 집 만들기」에는 성공했는지 몰라도 환기 면에서는 실패한 것이 분명하다.

『유나. 그러면 안됩니다. 먼저 문고리를 두들겨야지요. 아님 초인종을 누르거나.』
『그럴 필요 없다. 안에는 아무도 없어.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

생활 공간은 땅 아래로 자리를 잡았다. 삐걱이는 계단의 맨 마지막에 내려서자 눈앞으로 잔뜩 어질러진 거실이 나타났다. 당장 돈을 갚으라고 아우성을 치는 빚쟁이들을 피해 식구들 전부가 허겁지겁 달아난 풍경이었다. 의자는 죄다 엎어져 있고, 칠칠치 못하게 떨어뜨린 슬리퍼 한짝이 식탁 아래로 굴러다녔다. 접시가 한 장 깨졌고, 화덕용 불쑤시개가 그 옆으로 팽개쳐져 있다. 양초 그릇이 선반 아래로 거꾸로 뒤엎혀져 있는게 눈에 들어왔다. 집안에 불을 내지 않은게 천만 다행이었다. 바닥에 그을음을 조금 남기고 양초는 저절로 꺼졌다.

그 어수선함에 질려 그라바스는 뺨을 긁었다.
『야밤도주?』
『글쎄. 당장은 판단하기 힘들겠는데. 이웃 집을 더 보자.』
그녀는 턱짓으로 밖으로 나가자는 시늉을 했다.

『이봐요. 누구 없습니까? 이봐요?』
이번엔 제대로 현관 문을 노크했다. 그러나 집안에선 아무 반응도 없었다.
문고리를 세게 잡아당기자 쇠붙이 긁히는 소음을 내고 출입 문이 활짝 열렸다. 이곳 역시 집 주인이 문단속을 하지 않았다. 기가 찰 노릇이다. 집 주인은 꽤나 듬직해 보이는 자물통까지 걸어두고 정작 중요한 열쇠를 채우지 않았다. 건망증 때문에 그런 거라면 치료를 위해 병원을 꼭 방문할 필요가 있겠다. 그라바스는 반질반질 빛이 나는 자물통을 쥐었다 놓았다 하며 눈썹을 한곳에 모았다.

『문단속을 하고 싶어도 못 했을 수도 있어. 저길 봐라. 모자가 떨어져 있군.』
집안으로 내려가는 계단 바로 앞으로 모자가 보였다. 그런데 그 모자 챙에는 도장으로 찍어놓기라도 한 것 같은 선명한 구두 자국이 남아 있었다.
『나를 존경한다면 내 모자도 존경하라...』
굳이 오래된 격언을 읊조리지 않더라도 집 주인이 일부러 자기 모자를 밟아댔다고 보기는 어렵다.
허리를 굽혀 모자를 주워든 유나는 갑옷이라도 뚫을 듯한 눈빛으로 더러운 얼룩을 쏘아보았다. 사이즈로 보아 이 모자를 밟은 사람은 체격이 큰 성인 남자다. 밑창의 한쪽만 닳은 모양을 봐선 좌우로 건들건들 움직이며 걷는 습성이 있다. 모양이 망가지도록 밟은 걸 봐선 성마른 성격이다.
흠, 신음하며 모자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었다.

『몸 싸움이 있었던 모양이예요. 봐요, 이 핏방울. 코피라도 떨어진 것 같네요.』
많은 량은 아니었다. 두어 방울의 피가 문설주에 튀어 있었다. 시간이 제법 흘렀던지 얼룩을 손톱으로 긁자 마른 피가 가루가 되어 떨어졌다. 그라바스는 곧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찌꺼기가 달라붙은 손톱을 옷에다 문질러 황급히 닦아냈다. 예나 지금이나 피라면 질색이다.

『유나. 제일 가능성 없는 얘기지만 한 번 들어보실래요?』
『해봐.』
『남편과 아내가 부부싸움을 했어요. 남편은 여자의 모자를 보란 듯이 밟아댔고, 부인은 홧김에 남편의 얼굴로 커다란 주전자를 휘둘렀죠. 정면에서 얻어맞고 코를 다친 남편은「이혼이다, 이혼!」라며 한참을 악을 쓰다가 술집으로 가버렸어요. 여자는 가방을 꾸려 친구 집으로 떠났고요.』
『썩 괜찮았다만 가능성 제로의 얘기군. 그 첫째, 이 모자는 여성용이 아니라 남성용이다. 둘째, 코를 찌르는 홀애비 냄새로 보아 이 집엔 여자가 없었다. 셋째, 술집에 간다면서 뭐하러 식탁에 1인분의 음식을 차려둔 거지.』

정말이다. 유나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테이블 위로 나이프와 포크, 보리 빵과 스프 접시가 보였다. 빵은 이미 말라 쪼그라들었고, 접시에는 악취가 대단한, 초록색의, 외계인 콧물로 연상되는 무엇인가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접시를 살짝 들어 기울이자 덩어리진 곰팡이가 하얀 벌레와 같이 해서 둥실 떠올랐다. 음식의 부패 정도를 보아 차려진지 사흘은 족히 지난 듯했다.
식사 준비를 다 끝마치고 수저를 들기 전, 갑자기 마음을 바꿔 밖으로 나가 이후로 다신 돌아오지 않았다?
그라바스는 코를 쥐고 웅얼거렸다.
『이거, 안 좋아.』
『맞는 말이다. 대단히 안 좋군. 냄새가 고약해.』
『아뇨, 유나. 제 말은... 휴우, 그러니까 냄새가 아니라 상황이 안 좋다는 거였어요.』
그는 옆으로 쓰러진 의자를 도로 일으켜 세우면서 말을 이었다.
『부부싸움이네 술집이네 하는 쓸데없는 소린 관두고 가장 가능성 높은 이야기만 하도록 하죠. 애시당초 가능한 이야긴 딱 두 가지밖에 없었어요. 난리가 싫어 자발적으로 떠났거나, 아님 강제적으로 끌려갔거나. 그런데 밥상을 차려둔 채 피난을 떠났다고 하면 아구가 맞지 않아요. 난리통에 도둑이 든 것처럼 어수선할 수는 있겠죠. 옷가지가 사방에 널려있고, 농기구가 죄다 쓰러져 있고... 하지만 사람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식탁에 빵을 올려둔 채로 떠나지 않아요. 도망치려면 먹을 것을 최대한 잘 챙겨야 하니까요. 보리 한 톨이 아까운데 스프를 그냥 썩게 만들었을까요. 아니죠.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딱 하나...』
『강제로 끌려갔다?』
『맞아요.』
『어디로?』
『그걸 알면 귀신이죠.』
『귀신은 아니더라도 마법사잖아.』

말문이 막혔던 것 같다. 그라바스는 항의조로 아, 하고 입을 열었다가 무어라 말은 못하고 멎적은 표정이 되어 머리통을 긁었다. 지금까지 이런 오해를 몇 번 받았더라. 하나, 둘 하고 손가락을 접으려다 관뒀다.
때로 어떤 사람들은 항구에 깔린 안개를 치워 배가 무사히 출항할 수 있도록 해달라 요청하기도 한다. 죽은 애완용 고양이를 다시 살아나게 해달라고 하는 건 애교다. 심각해지면 화산폭발을 멈추게 하라고 명령한다. 난처해 하는 그 앞에서 빨리 주문을 외우라며 성화다. 주문을 외우는 바로 그 순간, 지진은 멈추고 폭우는 당장 그친다는 식이다.

『유나, 마법사는 만능이 아녜요. 마법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하느님 대신 그 자리에 마법사를 올려놓았을 겁니다. 하지만 하느님 자리에 마법사는 못 올라가죠. 그리고 이게 가장 중요한데... 전 일반적으로 말하는 그런 마법사가 아니예요.』
이번엔 유나가 아, 하고 입을 벌렸다. 그리고 정색하며 눈을 똑바로 떴다.
『해골 밸트를 차지 않아서?』
그라바스는 순간적으로 미끄덩 하고 몸의 균형을 잃었다.
그러니까 마법사에 해골 밸트가 왜 세트로 따라 붙느냐니까! 도대체 누구야! 이 여자에게 잘못된 정보를 가르쳐준 인간이! - 망연자실하여 비명을 질렀다.
『그딴 것하고는 상관 없어요! 해골 목걸이, 해골 팔찌, 해골 귀걸이 몽땅 다 상관 없습니다! 그리고 불안해서 덧붙이는건데 검정색 망토 역시 상관 없어요.』
『하지만 카오스 워드를 사용하는 건 맞지?』
『맞아요.』
『그런데도 마법사가 아니라고?』
『슬프지만.』
그라바스는 애교를 곁들여 윙크했다.
『혼돈제어 구축문자, 일명 카오스 워드를 사용할 줄 아는 사람 전부를 마법사라고 하면 한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 모두가 똑같은 인간이란 말이 됩니다. 그렇지만 형제 자매는 공통점이 많아도 결코 동일한 인물은 아니지요. 마찬가지예요. 비슷은 해도 같지 않습니다. 점술가와 점쟁이가 다르고, 마술사와 마법사가 다른 것처럼요.』
『어떻게 틀리지.』
『기술적인 면에서 큰 차이가 납니다. 주술의 완성된 최종적 형태도 다르고요. 최고급 웨딩 케이크나 장터 만두의 재료는 둘 다 밀가루지만 만드는 방법이나 그 맛은 차이가 나잖아요? 그런 거예요. 저 같은 정령술사는 찐빵이고 마법사는 제과점 빵이라 할 수 있죠. 전 보유한 마력도 그리 크지 않고, 지극히 제한된 조건 하에서 오로지 계약된 정령의 술만 사용할 수 있어서 마법사라고 하기엔 조금은 무리예요.』

다 듣고 난 유나는 시린 표정을 짓곤 팔짱을 꼈다.
『뭐냐, 그것은. 설명은 길었지만 결국「난 실력이 한참 부족해요」라는 거잖아.』
『욱!』
『간단히 말하면 지금의 너로선 마법으로 없어진 사람들을 찾지 못 한다는 거지? 그거 유감이군. 하는 수 없지. 직접 발품을 팔아 알아내야겠군.』

대단한 마법사도 그런 건 못 해요 - 라는 말이 목젖을 간질간질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해봤자 사내답지 않게 변명한다며 오히려 면박을 당할 것이 뻔하다. 그라바스는 처량맞도록 어깨를 떨군 채 굴욕을 감수했다.
『하아.』
하는 수 없다. 마법사는 반드시 해골 밸트를 차고 다닌다고 굳게 믿는 인간을 상대로 더 이상의 것을 설명하는 건 무리다. 차라리「날 마법사로 만들고 싶으면 직접 해골 밸트를 사 주시구랴」라고 못 박는게 쉽겠다. 자포자기하고 넘어져 있는 의자 하나를 더 일으켜 세웠다. 아니, 세우려 하다 제지당했다.

『멈춰.』
『네?』
『움직이지 마.』

왜 말리는 거지? 의자에 폭탄이라도 달렸나, 아님 뱀이 붙어 있나. 영문을 모르겠다며 엉거주춤한 상태로 얼어붙었다. 유나의 심각한 표정으로 보아 장난은 아닌 것 같았지만 의자는 딱히 수상하다할만한 구석이 없었다.

『유나? 뭐가 잘못되기라도...』
『이런, 젠장. 숨어.』
『뭐요?』
『귀가 먹었나. 숨어! 빨리!』

동시에 집안으로 내려오는 계단으로 커다란 그림자가 하나 드리워졌다.
쉬이이- 하고 어금니 사이로 썩은 숨 내음이 비어 나온다.
그라바스의 안색이 달라졌다.
데몬이다. 데몬이 집안으로 들어왔다.

Posted by 미야

2006/07/05 13:51 2006/07/05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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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4 : 풀무불의 노래 7

그래도 운명은 살짝 자비를 베풀어 지나가던 배의 선장을 애꾸눈 잭이 아니라 하록으로 바꿔놓았다. 같은 해적이라도 한시름 놓았다고나 할까. 총포를 쏘아대는 사람의 수가 서른에서 마흔까지 불어났고, 더 많은 인기척에 반응한 렛셔 데몬은 어느 틈엔가 방향을 돌렸다.
몬스터들도 반찬 투정을 한다. 달랑 콩나물 무침만 올라간 밥상보단 고기 산적에 두부 부침, 김말이까지 곁들인 푸짐한 밥상을 선호하는 걸 보면 그렇다. 웰빙보단 기름진 식탁이다. 머리수 겨우 둘뿐인 이쪽보단 숫자가 많은 저쪽이 훨씬 매력적이다 싶자 본체만체하고 반대편으로 몰려갔다.

그라바스는 폭포수처럼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닦아내며 숨을 돌렸다. 살았다.

『누가 고기 산적이고 누가 김말이라는 거지.』
사람을 음식에 비유한 것이 기분 나빴던 모양이다. 유나가 장검을 도로 검집에 집어 넣으면서 매섭게 쏘아붙였다.
그걸 살짝 비켜가면서 쥐가 나려는 종아리를 어루만졌다. 갑작스런 운동에 근육이 비명을 질러대고 있는 중이다. 손으로 누르자 단단히 당겨진 힘줄이 나 죽는다 엄살을 부려댔다.
『우리 말고도 테라로 접근하려는 무리가 더 있는 모양이네요. 총포를 저렇게 쏘아대는 걸 봐선 결계 밖 사람들이고요.』

총은 괜찮은 무기다. 앞으로 칼이나 도끼 같은 무기는 사양길에 접어들 거다. 화약을 장전하고 잽싸게 불을 땡기기만 하면 귀청이 떠나가는 굉음과 함께 적이 쓰러진다. 그만하면 작동법도 간단하고, 파괴력도 크다.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러나 대륙 남동부에서 다수가 제작되는 이들 총포의 값은 특별 소비세에 수입 관세까지 붙어 악 소리 나게끔 무지 비싸다. 더하여 아직 개량해야 할 소지가 다분하다는 점에서 총포의 도입은 생각만큼 빠르게 퍼져나가지 않고 있다.
검집에서 칼을 꺼내 휘두르는 속도와 총알을 장전하고 발포하는 속도를 비교하면 이건 토끼와 거북이다. 저칫 실수로 조작을 하는 날엔 총알이 앞으로 나가지를 않는다. 미친 듯이 방아쇠를 잡아당겨도 철컥 소리만 나니 환장한다. 마음을 비우고 처음부터 다시 조작, 어렵게 기껏 쏘았더니 목표물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무슨 일이죠?」라고 되묻는 일도 있다. 당연히 장군들은 구관이 명관이라며 신식 무기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총신이 엉뚱한 폭발을 일으켜 병사가 다치는 일도 생기자「총포의 도입은 세금의 낭비」라며 원로회에서 대 격돌이 벌어지기도 했다.
앞으로 30년 안에 대륙 어디에서나 일반화는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아니어서 여전히 결계 안쪽 사람들은 총포가 뭔지 잘 몰랐다.

귀에 손바닥을 깔대기처럼 가져가 소리의 울림을 최대한 모아봤다.
떼를 지어 달겨드는 데몬에 놀랐는지 탕탕 소리가 빠르게 멀어졌다. 콩 볶던 소리가 손톱 튕기는 소리로 조용히 잦아들었다. 아무래도 저들은「정면 돌파」대신「작전상 후퇴」를 선택한 모양이다.

『괜찮으려나 모르겠네.』
모래 언덕 그늘 아래로 내려가 두 다리를 탁탁 털던 유나가 걱정도 팔자라며 잔소리했다.
『쓸데없다. 당연히 괜찮지. 챙이 커다란 모자를 눌러쓴 방물 장수가 아니라는 건 소리만 듣고도 알 수 있어. 장전과 동시에 발포하려면 상당한 훈련이 필요하니까. 큰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이상 죽는 사람은 안 나올 거다.』
『심해요, 유나. 의도한 건 아니라지만 저 사람들, 결과적으로 우릴 도와줬잖아요. 조금은 걱정해줘야 의리 아녜요?』
『아까는 고기 산적에 김말이라며. 그러고도 누구더러 심하다는 소리를 하는 건지. 나 참.』

조금은 얼굴이 빨개졌다. 두부 부침에 김말이 운운했던게 사실이니 이러쿵 저러쿵 해도 변명도 못 한다. 청년은 어색함에 어흠 헛기침했고 유나는 그런 바보를 향해 휴대용 물병을 던졌다.
깨끗한 곡선을 그리며 물병은 곧장 그라바스의 손아귀로 빨려 들어갔다.
『머리 회전이 느린 걸 보니 뇌에서까지 수분이 빠져나갔나 보군. 이참에 물 보충이나 해둬라.』
『마침 목이 말랐던 참입니다. 찰랑 소리가 반갑군요. 감사합니다.』
그라바스는 기뻐하며 얼른 입으로 가져갔다.
『감사는 뭘. 수면제에 설사약, 초강력 근육 이완제에 변비약까지 탔는데 고맙다고 벌컥벌컥 마셔주니 내가 다 부끄럽구먼.』
『푸웃-』
맛있게 물을 마시다 말고 입안에 든 물을 왈칵 쏟았다. 뭐? 수면제에 근육 이완제? 변비약?
입을 벌린 채 놀라서 쳐다보니 유나가 허리에 손을 얹었다.

『주의력이 한참 부족하군. 포장을 뜯지 않은 새 것이 아닌 이상 함부로 입에 넣지 말라고 했었지?』
『뚜껑이 열려져 있긴 했지만... 약을 탔어요?! 아무런 맛도 나지 않았는데!』
『무색 무취의 약들도 많아. 그러니 혀를 맹신하지 말도록. 그리고 아군인지 적군인지 모르면서 함부로 마음을 주지 마라. 독이라도 탔으면 어쩌려고 내가 주는 걸 안심하며 넙죽 받아 마시는 거냐. 다행히 이번엔 약을 타지 않았지만 또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으니 주의해라.』
『우왁~! 지금 병 주고 약 주는 거예요?』
『병은 안 줬다. 몸에 좋은 충고만 해줬지.』

그라바스는 다리에서 힘이 빠지는 걸 느꼈다. 얼핏 봐선 기껏해야 한 살이나 두 살 연상일 뿐인데 사람을 호되게 흔들다못해 바보로 만든다. 땅바닥에 엎드려 눈물을 떨구고 싶어졌다. 유나는 몸에 좋은 약이라 했지만 잠자코 입에 넣기엔 그 맛이 너무 썼다. 삶지 않은 쑥의 쓰고도 쓴 맛이었다.
『심해, 심하다구. 세상 사람들 전부를 의심하면서 살라는 거예요?!』
『불신하는게 뭐가 어때서.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것보단 훨씬 낫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쉽게 마음을 주지 마. 안도하는 바로 그 순간에 세상은 너의 코를 베어갈 것이다.』
슬슬 걷자며 신호하면서 유나는 손가락에 침을 발라 바람의 방향을 확인했다.
동풍. 이것은 좋은 징조.
조금은 긴장을 풀고 가방에서 소금 사탕을 꺼냈다. 작은 알갱이를 혀 밑에 두자 강렬한 짠 맛에 머리까지 찡했다. 퉷- 하고 침을 뱉은 뒤, 얼른 다리를 움직여 뱉은 침 위로 모래를 끼얹졌다.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예, 예. 잠자리에 들기 전에 침대 밑으로 도적이 숨지 않았나 매번 살피고요. 식당에서 밥을 주문하면서 주방장이 소금 대신 쥐약을 몰래 계란에 뿌리지는 않는지 의심을 해봐야겠군요.』
이죽거리는 말에 유나는 되려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거야. 필요하다면 식탁 아래도 살펴보는 거다.』
『난 그렇겐 못 해요!』
『어째서.』
『세상은 아름답단 말예요!』

귀신이 씨나락을 까먹는다. 차라리 귀찮아서 그렇게까지 못 한다고 투덜거렸으면「아, 그러냐」하고 대충 넘어갔을 거다. 그런데 세상이 아름다워 그리 못 한다고 하니 당장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는 이거 하나밖엔 없다.
- 대왕 철부지

그 대왕 철부지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아직도 3/1 가량 물이 남은 물통을 다시 유나에게로 던졌다.
의도하는 바를 모르겠다. 유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입을 대고 마셨던 걸 다시 다른 사람 마시라고 건냈을 것 같지는 않고... (예절 빵점이다) 하여 그녀는 별 생각 않고 물통을 거꾸로 뒤집어 황금 같이 소중한 물을 그냥 모래에 쏟아버렸다.

가만히 이를 지켜보던 청년의 눈이 바늘처럼 가늘어졌다.
안에 든 물을 버릴 거라고 예상은 진작에 했지만 그렇다고 정말로 그렇게 하길 원했던 건 아니었나 보다.
『기대했던 내가 바보지.』
그라바스는 화가 단단히 났다는 걸 감추지도 않을 채 몸을 핑글 돌려서는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이봐? 그라바스.』
『됐어요!』
『왜 신경질이야.』
『몰라요!』
『어린애.』
『그래! 나는 철부지 어린애다. 그러니까 어른인 댁은 평생 그러고 살앗!』
저주하듯 외치며 젊은이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태양을 가로막았다.

여자와 남자는 40분간을 그렇게 말 없이 걸었다. 앞서거니뒤서거니 땅과 하늘이 하나로 녹아든 대지를 꾹꾹 밟아가며 가파지는 호흡과 싸웠다.
아지랑이 탓에 시야가 굴절되었다. 커다란 바위가 하늘에 둥둥 떠있다. 정확하게는 떠있게 아니라 떠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겠지만 - 여하간 유나는 가벼운 현기증을 느꼈다. 때마침 뜨거운 바람까지 불어닥쳐 눈을 감아야할지 떠야할지 종잡을 수 없었다.
후드를 한층 더 깊숙이 눌러쓰고 머릿속으로 지도를 그려봤다.
원래대로라면 이미 도착했어야 한다. 걱정하며 고개를 들었다.
근처에 바다 비슷한 것도 없는데 쏴아- 하고 파도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쩌면 그 다음으로 인어의 노랫소리가 들려올지 모른다.
입으로만 호흡하려 노력하면서 커다란 배와, 활기찬 항구와, 갈매기를 상상했다.
혹시라도 오늘 저녁에 신선한 회를 먹을 수 있으려나. 그게 무리라는 걸 알면서도 군침이 돌았다.
그러고보니 배가 고프다.

『생선 좋아하나.』
예기치 않은 질문을 받은 그라바스는 이상한 얼굴을 했다. 보아하니 여기서 생선 이야기가 왜 나오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투다. 앞서 말싸움을 한 탓도 있어 뺨이 퉁퉁 부어 있었다.
『사막엔 물고기가 없어요, 유나.』
대신 말라 비틀어진 뼉다구는 있다. 무슨 암초인양 툭 튀어나온 뼈에 발이 걸려 넘어질뻔한 것이 이것으로 두 번째. 첫 번째 것은 티카티카 바위 새의 뼈인 듯했고, 지금의 것은 추측하자면 아마도 드래곤의 뼈가 아닐까 싶다. 오래되기도 되었고 그 크기도 어른의 앉은 키만큼은 되었다. 엄지발가락에서 피가 나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제자리에서 동동 뛰었다. 드래곤의 화석을 캐는 사람이라면 심 봤다며 기뻐했겠지만 별 관심이 없는 그라바스에겐 남의 발톱을 아프게 만든 웬수일 따름이었다.
『뜬금 없이 뭐예요. 생선이 먹고 싶은 거예요?』
절룩거리며 언덕을 내려갔다. 거치적거리는게 많아 성가셨다. 곳곳에서 발목을 후려치며 딴죽을 걸었다. 모래를 뚫고 튀어나온 뼈들 중 일부는 오랜 풍화 작용 끝에 날카롭게 마모가 되어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는 식으로 마구 밟고 지나갔다간 발바닥에 빨간 오선지가 그려질 판국이다. 끙끙대며 엉덩이를 뒤로 돌리고 재주껏 미끌어졌다. 불안해 보이던 모래 바닥이 순간 빠르게 무너져 내렸다. 아차 하는 사이에 바닥 아래로까지 추락하면서 입안으로 모래가 가득 찼다.

『퉤엣, 퉤!』
『너야말로 모래가 먹고 싶은 거냐.』
『그렇게 웃지만 말고 손이나 잡아줘요.』
『싫다. 혼자서 빠져나오도록.』
이미 손을 잡고 일으켜 세우고 있으면서도 말은 그렇게 차갑게 하고 보는 유나였다.

가까이에서 물의 냄새가 났다.
고개를 돌리니 근방으로 푸른 녹색이 보였다.
기적의 오아시스, 테라다.

Posted by 미야

2006/06/28 15:41 2006/06/28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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