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크와 션은 사실 딘과 샘이다? 가능성 높습니다. 헐헐... (멀리 도망간다)
그러나 이 제로스 단언하건데 이제 그들은 10대 소녀만 끔찍한게 아니라는 걸 깨달을 때가 되었다.
화장실에 다녀온 일행을 발견한 가우리는 눈에 띄게 눈썹을 찡그렸다. 새로운 등장인물이 영 탐탁치 않은 눈치다. 전골 냄비는 하나인데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던 리나는 어찌된 까닭인지 입을 두 개나 추가로 달고 돌아왔다. 그의 입장에선 지붕이 무너지는 소식이나 다름 없었다. 너그럽고 사람 좋은 그도 먹을 것 앞에서는 쓸데없이 투쟁심을 불태우는 경향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다 상대가 체격 건장한 남자들이고보니 숟가락에 대한 그의 집착은 평상시의 곱절이었다. 보아하니 션 메로우는 자기와 덩치도 비슷했다. 단순 공식 대입으로 가우리는 어깨 넓이만 비슷한 것이 아니고 식욕 또한 비슷할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여「내가 먹을 양도 모자르단 말이다」라는 표정으로 손가락 마디가 하애지도록 개인 접시를 붙잡았다.
디크 메로우는「이게 웬 일이니」표정으로 이마를 만졌다. 서른이 거의 다 된 사내가「내 밥! 내 밥!」이러고 있다. 밥 그릇을 사수하고 앉아 주인이 쓰다듬는 것도 싫다며 털을 곤두세우는 대형 개처럼 보인다.
『아예 냄비를 끌어 안아라.』 리나는 점잖치 못한 행동을 하고 있는 가우리에게 핀잔을 주며 그의 뒷통수를 딱 소리 나도록 쳤다. 『긴장하지 마. 잠시 얘기만 할 거니까. 같이 앉아 식사는 하지 않을 거라고.』 그리고는 형과 마찬가지로 당혹스러워하고 있는 동생 션을 향해 못 박았다. 『그렇지? 잠시 얘기만 하자고 했었잖아. 내 말이 맞지?』 다시 말해「동석해서 반찬 한 가지라도 집어먹는 날엔 국물도 없을 줄 알아」라는 뜻이다. 내가 보기엔 완전시 사람을 무시하는 행동이었다. 앉아서 남 밥 먹는 것을 실컷 구경만 하라니. 그런 왕 싸가지가 또 어디 있느냔 말이다. 마족인 나야 위장에 구멍도 나지 않았고, 흘릴 침도 없으니 옆에서 맛 있게 먹는 모습을 봐도 아무렇지 않다. 그치만 소화 기능 활발한 위장에, 입에 침이 고이는 인간에겐 차마 못할 짓이다.
『좋아. 얘기는 금방 끝날 거야.』 하지만 이 정도의 일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투로 메로우 가의 형제들은 고개 한 번 끄덕이고 자리에 앉았다. 나는 내심 감탄했다. 먹을 것 앞에서 종종 무너지곤 하는 리나와 달리 프로페셔널하다. 「그럼 나는 아마추어냐? 네 이놈!」 순간 종아리 부근으로 세찬 발길질이 날아왔다. 하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입이 비뚫어져도 말은 바르게 하라는 옛 교훈이... 아파!
첫 번째 운을 뗀 사람은 디크였다. 『초대받지 못한 식탁에서 군침이나 흘리고 있을 정도로 우린 바보가 아니거든. 시간을 많이 뺏거나 하진 않겠어. 그럼 요점만 간단히 말해서...』 표면으로 떠오른 불쾌감은 비록 완벽하게 감추지 못했지만 디크는 등을 똑바로 펴고 앉아 무릎에 건조한 손을 비볐다. 『나는 디크 메로우. 이쪽은 내 동생 션. 우린 몬스터를 사냥하는 전문 사냥꾼이야.』 형의 말이 맞다며 동생 션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령도 잡아.』 『사악한 정령도 다뤄.』 『그쪽은 렛셔 데몬을 사냥하러 왔다며.』 『아니라곤 하지 마. 벌써 소문이 쫙 퍼졌다구.』 리나는 숟가락으로 펄펄 끓기 시작한 전골 국물을 뜨다 말고 눈동자를 흘끔 위로 치켜 올렸다. 『그러니까... 고스트 헌터라고? 두 사람 다?』 『그래. 우린 고스트 헌터야.』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다 말고 리나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항~ 이제 알겠다. 왜 우리에게 접근했는지. 그렇다고 해도 나와는 상관 없어. 그러니 동업하자는 말은 꺼내지도 마. 난 생판 모르는 자들과 일을 나누는 취미는 없거든. 그러니까 두 사람 다 이만 가 보는 것이 좋겠어.』
냉정하게 잘라 말하는 리나를 향해 션 메로우가 앉은 자세를 바로 잡으며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오해하지 말아줘. 일을 빼앗으려는 것이 아니야. 우린 단지... 도움이 필요하진 않을까 해서.』 『동생 말이 맞아. 렛셔 데몬 사냥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 『그쪽은 아직 10대지? 이런 일은 경험이 중요한데 악마를 사냥해본 적은 있어?』 『후회할 짓은 하지 마. 일을 쉽게 생각하다 목숨을 잃는 사람도 우린 많이 봤어.』 『보수를 반으로 나누자고 하거나 하진 않을게. 돈 문제 때문에 그러는 거라면 재고해주기 바라.』 걱정도 팔자. 나는 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저 인간의 여자는 마왕도 잡았다구. 렛셔 데몬은 그야말로 껌이지. 서포트를 무료로 해주겠다는 당신들이야말로 리나에게 보호를 요청해야 할 거야. 내가 소환한 렛셔 데몬은 비유하자면 서민은 감히 꿈도 꾸지 못할 최고급 한우, 그것도 꽃등심이라고.
뭔가 잘못된 거 있느냐며 디크의 찡그린 시선이 내 얼굴에 와서 닿았다. 『무슨 문제라도...』 『없습니다.』 비웃음을 감추던 손바닥을 도로 아래로 내리고 얌전히 테이블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이때다 하고 정강이에 발길질이 또 한 번 날아들었다. 윽. 아프다니까요, 리나님!
가우리의 개인 접시에 오징어 다리 - 그것도 비통에 사무치도록 짤퉁하게 끊어진 것 - 을 덜어주던 리나는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 『보수를 반으로 나눌 것을 요구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나중에 말을 바꾸는 사람들을 부지기수로 만났어. 거기다 그렇게 자랑할 실력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었지. 나중에 왜 얘기가 달라지는 거냐고 항의하면 마초의 정신으로 무장하고 셔츠를 벗어 던지는 것으로 나를 위협하곤 했어. 여자는 뒤로 물러나라고. 이건 남자들의 일이라고. 그리곤 근육을 불뚝불뚝 움직여서...』 생전 처음 듣는 얘기에 가우리가 놀라 펄쩍 뛰었다. 『누, 누가 셔츠를 벗어 던지고 위협했다는 거야. 어, 어떤 놈이야!』 에이, 방금 전에 지어낸 얘기잖아요. 가우리씨. 어디서 강간범 나타났다는 식으로 화들짝 뛰면 안 되죠. 당신의 여왕님은 마초에게 위협받거나 할 분이 아닙니다. 아시잖아요. 괜히 쓸데없이 입을 놀려 일을 틀어지게 하지 말아주세요. 하여 나는 재빨리 젓가락을 들고 해파리 제국의 왕자의 입을 다물게 하기 위하여 전골 냄비에서 제법 커다란 생선 토막을 건져 그에게 흠향되는 제물로써 바쳤다. 효과 만땅. 가우리의 눈동자가 개인 접시로 옮겨왔다. 생선의 하얀 속살을 본 그는 자기가 뭐라고 떠들었는지도 순간적으로 망각하고 즐거운 표정으로 뼈를 발라내기 시작했다.
『우릴 사기꾼 취급하는 건 슬픈데, 베이비.』 『날 아기 취급 하는 것도 슬퍼, 아저씨.』 『난 말이지 열 두 살 때부터 이 일을 시작했어. 동생과 같이 한 번에 열 두 마리의 뱀파이어를 사냥한 적도 있다고.』 『나는 결계 안쪽 출신이야. 마법사라고. 경험은 부족해도 이 정도 일은 충분히 할 수 있어. 오히려 난 당신네들이 걱정이야. 거치적거리며 돌아다니며 내 일을 방해할까봐.』
얘기가 안 통한다는 걸 깨달은 디크 메로우는 질렸다는 투로 천장을 노려봤다. 『알았어, 아가씨. 맘대로 해. 억지로 도와주고 욕 먹을 까닭이 없지.』 그리고는 동생을 향해 일어서자는 신호를 보냈다. 『대신 나중에 울면서 잘못했다고 하기 없기다.』
두 사람은 자리를 떠나기 전에 조금은 화난 눈치로 리나에게 물 컵을 건냈다. 그 뜻은「냉수 먹고 퍼뜩 정신 차려라」. 비아냥거린 것이다.
『의외인데요. 두 사람과 동업하는 것이 계획 아니었습니까, 리나님.』 션과 디크가 음식점을 빠져나가기가 무섭게 자세를 낮추고 조용히 질문했다. 오독오독 소리를 내며 생선 뼈를 씹던 리나는 어디서 바보가 짖는다는 식의 표정을 지었다. 『그럴 리가 있나.』 『아닌 겁니까?』 『당연하지.』 밥그릇을 싹싹 비우며 그녀가 핀잔했다. 『그러니까 넌 평생 중간관리직에 말단인게야. 나처럼 머리를 써야지, 머리를. 우리가 여기서 할 일은 메로우 가의 형제들과 동업하는 것이 아니라, 렛셔 데몬을 날뛰게 하는 것이다.』 『에?』 『날뛰게 하라고. 아주 미처 날뛰게 만들어.』 『렛셔 데몬을? 인간의 마을 한 가운데서?』 책임은 누가 지고요 - 라는 소리가 입꼬리에 주렁주렁 달렸다. 머리가 쑤신다. 그래봤자 이 인간의 여자는「당연히 네가 책임져야지, 아님 이 큐트하고 샤방한 내가 책임지리?」라고 말하겠지. 고함치고 화내봤자 나만 손해다. 그래서 침묵으로 시위했다. 리나님 바보. 깍쟁이. 돼지. 돌아가자마자 수왕님에게 야단맞는 내 신세는 하나도 생각 안 해주고.
그때 리나는 보일락말락 웃으며 식탁 아래서 내 다리를 툭툭 쳤다. 『왜 이래. 너라면 상부에 안 들키게 잘 할 수 있잖아.』 그 말에 화가 다소 가라앉았다. 『물론 들키지 않게 잘 할 수 있지요.』 『그렇게 나와야 너답지.』 그녀는 만족해하며 냅킨으로 입가를 닦았다. 내가 악당인지, 그녀가 악당인지 정말 헷갈린다. 『우린 그냥 뒤에서 편안하게 뒷짐 지고 메로우 형제들의 사냥 솜씨를 좀 보자구. 꺼억-』
Posted by 미야
2006/11/11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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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퍼내추럴 2기 방영 기념, 아이구 멋져라 딘 - 그게 슬레이어즈완 무슨 상관이래? ※
『무드도 없고, 상식도 없고, 매너도 없고...』 『좀 조용히 해주시겠습니까, 제르가디스 씨.』 넘어진 키메라를 이때다 하고 깔고 앉은 나는 만장하신 가운데 그의 셔츠를 벗겼다. 단 둘이서, 그것도 침대 위에서, 달빛 어두운 밤중에 은밀히 벌어진 일이었다면야 마음에 제법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외야로 시끄러운 구경꾼이 둘씩이나 있는데다 장소는 딱딱한 마룻바닥이다. 색정적이긴커녕 이건 레슬링과 닮았다. 『나는 다쳤단 말이다. 환자란 말이다. 심하다는 생각은 안 드나.』 『바락바락 대들면서 환자라고 하면 아무도 환자 취급 안 해줍니다.』 처음엔 미친 사람처럼 발버둥치던 제르가디스는 그래봤자 자기 손해라는 생각이 들었던지 반항을 멈추고 곧 체념했다. 그래, 볶아라. 구워서 먹어라. 부탁이니 밧줄에 칭칭 묶어 살라미 소시지인양 천장에 매달지만 마라. 그는 손가락으로 마룻바닥을 톡톡 치며 목구멍으로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삼키려 애썼다. 좋았어, 마지막 단추! 몸통을 활짝 벗기고 리나에게 그를 넘겼다. 바톤 체인지! 『진작에 협조 좀 할 것이지. 그런데 이게 뭐야. 왜 이리 말랐어. 밥은 먹고 다니냐, 제르.』 『시끄럿. 이게 무슨 살인의 추억 리메이크인줄 알어?』 『갈비뼈로 기타 치게 생긴 주제에 말은 많다.』
쭈그리고 앉은 리나는 그의 몸을 옆으로 굴려 옆구리에 생긴 타박상, 내지는 찰과상이 잘 드러나도록 했다. 상처들은 검붉고 둥글었다. 그녀는 조심해가며 손가락으로 불에 덴 듯한 자국들을 지긋이 눌러봤다. 그러면서 제르가디스의 표정을 주의깊게 살폈다. 원래 이 소년은 죽도록 아파도 아프다는 말을 잘 안 하는 편이다. 손톱의 절반이 부러져 나가도 점잖게 음, 하고 딱 한 마디만 한다. 그래서 속눈썹 떠는 것까지 세심하게 봐야 진실을 알 수 있다. 『뼈는 안 부러졌군. 은총알에 얻어맞은 것치곤 양호해. 일주일 정도 잘 쉬면 괜찮아질 거야.』 여기까지 말하고 통나무를 굴려 도로 똑바로 눕혔다 - 라기 보다는 똑바로 눕히려고 애썼다. 무게가 꽤 나가는 통나무인지라 자체 협조 없이 옆으로 굴리는 일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 통나무는 지금 무쟈게 삐졌다. 따라서 제르가디스의 응용 회회편 한 마디엔 지금「협조」라는 단어가 흔적도 안 남기고 삭제된 상태다. 조금만 굴러가면 안 되겠니. 리나의 표정이 더 나빠졌다.
『하지만 제르가디스? 옆구리는 몰라도 어깨는 일주일가량 쉰다고 나아질 것 같지가 않아.』 독특한 별 무늬가 나타난 부분은 손가락으로 누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거무칙칙한 살색. 거기다 약초로 덮었어도 들큰한 냄새가 나고 있다. 가까이에서 코를 킁킁거린 리나는 콧잔등을 잔뜩 찌푸리곤 고개를 돌렸다. 더럽고 징그러워서라기보단, 불안해서 그런다는 걸 나는 재빨리 눈치챘다. 체열은 높지 않으니 상처 감염으로 인한 염증은 아니다. 이게 염증이었다면 세균과의 전쟁 탓에 진작부터 이마가 펄펄 끓었다. 그렇다는 건 순전히 마법적 데미지라는 것인데... 리나는 머리를 긁었다가, 천장을 노려보다가, 끙 소리내고 팔짱을 꼈다. 결론이 거기에 이르자 난감해하는 눈치다. 마력을 물리적 타격으로 바꾸는 공격 주문이라면 자신 있다. 그러나 이런 식의 상흔을 남기는 주문 - 저주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아는게 그리 많지 않다. 거기다 지금 그를 갉아먹고 있는 건 결계 밖 사람이 만들어낸 저주다. 듣도 보도 못한 종류일 수도 있다. 리나는 그점이 걱정되는 눈치였다.
『정화된 소금으로 문질러봤어?』 『성수로 씻어도 봤지.』 『통상적인 방법으론 안 된다는 건가.』 『글세다. 뭔가 하나는 걸리겠지. 허나 이 경우엔 일반적 방법이 너무 많다는게 문제가 돼. 내가 아는 저주를 푸는 방법만 3,400여가지나 되는데 그걸 하나하나 시험해보다간 할아버지가 되어 죽어버려.』 『음...』
무거운 침묵이 길게 이어졌다. 제르가디스는 누룩 빠진 떡을 씹은 표정으로 두로 셔츠를 주워다 입었다. 리나는 골똘히 자기만의 세계에 틀어박혀 성큼걸음으로 방안을 왔다갔다 거닐었다. 범인이 누구인지를 추리하는 셜록 홈즈인양 그 눈빛은 날카로웠다.
『하는 수 없군. 그렇다면 방법은 딱 하나밖에 없지. 그래서 말인데, 제로스.』 마침내 인간의 여자가 내 이름을 부르자 나는 얌전히 두 손을 깍지 꼈다. 나는 왓슨. 범인을 체포하러 가자고 말하는 탐정에게 무조건적인 헌신을 바치는 바이다. 『예, 리나님.』 『가서 렛셔 데몬 한 마리 좀 불러줘.』
짜장면 집에 연락해서 짬뽕 한 그릇 가져다 줘 - 라는, 아무렇지도 않은 말투였다. 그래서 엉겹결에「곱배기 말고 한 그릇이오?」라고 천연덕스럽게 반문할 뻔했다. 하지만 퍼득 정신이 들었고, 나는 그녀가 요구한 것이 짬뽕도, 만두도, 볶음밥도, 해파리 정식도 아닌 렛셔 데몬이라는 걸 깨달았다. 순간 있지도 않은 피가 다리로 쏠렸다. 『여, 여, 여보세요?』 『왜? 어려운 주문은 아니잖아. 가서 렛셔 데몬 한 마리 불러와. 할 수 있지?』 『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없어요!』 하얗게 질려 거의 비명을 지르다시피 했다. 말도 안돼! 결계 밖 신족들이 이 사실을 알아봐. 당장 전쟁이다. 가뜩이나 결계 파괴 이후 양쪽의 신경전이 장난 아닌 수준이다. 이 마당에 나 같은 순수 마족이 인간들이 사는 마을 한 가운데서 하급 마물을 불러내었다간「이참에 한 번 해보자는 거냐」라고 날뛰며 드래곤 한 부대가 출동한다. 내가 일부러 그런게 아니예요, 리나 인버스가 그렇게 하라고 시켰어요, 라며 변명해보리? 내가 생각해봐도 웃기지도 않는다.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
그런 까닭에 뒤로 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에이, 리나님이 그냥 소환하시지요. 리나님 실력이라면 간단할 거 아녜요.』 『얼씨구? 그 정도 일에 뒤로 빼는 겨? 내가 마왕을 불러달랬냐, 세계를 멸망시켜 달랬냐. 조무래기 하급 마족 하나 불러달라고 했는데 왜 땀을 뻘뻘 흘려.』 『차라리 세계를 멸망시켜 달라고 부탁하신다면 그건 들어드리겠습니다. 이 제로스, 신념과 이상과 목숨을 다바쳐 리나님 분부대로 어떻게든지 세상을 끝장내겠습니다. 하지만 렛셔 데몬은 소환 못 해드립니다.』 『공짜로 부탁한다고 그러기냐. 짠돌이 같으니라구. 알았다. 100원 줄게.』 『500원을 주신다고 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예요.』 『알았어! 1,000원. 됐지?』 『우와악~!! 안 된다니까요!!』 『인심 팍팍 쓴다! 1,500원! 그럼 약속한 거다? 됐스~』 가우리와 제르가디스가 어이 없다며 고개를 흔들어댔다. 아무렴, 세상엔 날강도가 너무나 많아 렛셔 데몬 소환에 겨우 천 오백원 주겠다는 마법사도 있다. 우씨. 만원은 줄 것이지... 투덜거려봤자 이미 그녀는 내 말은 듣고 있지도 않다.
『좋아요, 시키는대로 일단은 해보지요. 그런데 이건 무슨 작전인 건가요.』 『이른바 귀 있는 사람은 들을지어다, 작전. 자, 렛츠 고~!』 가우리를 옆구리에 꿰찬 리나는 작정했다는 투로 음식점과 술집을 마음대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맨 처음 마을로 들어왔을 적엔 행여 미행이 있을지 모른다며 바닥에 배를 납작하게 깔고 돌아다니더니, 지금은 언제 그런 적이 있었느냐는 식이다. 호쾌하게 웃으며 고소한 음식 냄새를 찾아 코를 벌릉거렸다. 그렇다. 배가 무지 고픈 나머지 여느 때처럼 음식점 싹쓸이에 나섰다... 가 아니라.
나는 조금 불안해졌다.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메뉴판을 집어들고「렛셔 데몬이 출현하는 마을치곤 제법 조용하잖아? 게다가 음식도 맛있어 보여」라는 말을 대놓고 떠들어댔다. 커피를 마시면서, 토스트를 주문하면서, 따끈따끈한 붕어빵을 입에다 넣으면서「렛셔 데몬」어쩌고 하면서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다. 배 따스하고 입이 즐거운 해파리 검사는 별 생각이 없는 듯 했다. 그래도 이쪽은 다르다. 『아까 무어라 하셨죠. 귀 있는 사람은 들을지어다 작전?』 귀 없는 사람도 데몬 어쩌구리 하는 말을 듣고 겁을 내고 있는데? 1,500원짜리 코코아 - 일회용 싸구려 인스턴트를 마시다 말고 신음했다. 『리나님, 제발. 목소리 좀 낮춰요.』 『쉰 소리! 메로우 가의 형제들을 불러내려면 이게 제일 좋은 방법이야. 반나절을 떠들어댔는데 가만히 있으면 은탄환 제임스의 아들이 아니지. 자자, 확성기 가져와라. 렛셔 데몬이다아~!』 그 덕분에 커피를 나르던 웨이츄리스가 얼굴색이 달라져선 180도 빙글 돌아 왔던 길로 돌아갔다.
결론적으로 리나의 말은 옳았다. 렛셔 데몬이라는 단어에 귀가 아파질 무렵, 형제들은 꿀단지 냄새를 맡은 곰처럼 귀를 쫑긋 세우고 알아서 납시었으니까. 고개를 들어보니 키가 작은 쪽이 화장실로 가는 입구를 가로막고 서서 눈을 야리고 있었다. 형으로 짐작되는 큰 쪽은 열 걸음 정도 떨어져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주변을 경계했다. 『어이. 할 말이 있다. 잠시 조용한 곳에서 얘기 좀 하지.』 그렇게나 기다렸던 주제에 리나는 시선도 주려 하지 않았다. 『그건 곤란한데. 손 씻고 저녁 밥 먹으러 자리로 돌아가야 해. 나중에 얘기하면 안될까.』 『꼬맹이? 기다려. 이건 밥보다 더 중요한 거야.』 지금 무시라. 꼬맹이? 맙소사. 저 인간, 간덩이가 부었다. 아니나 다를까, 분노 게이지 200%의 리나의 킥이 디크 메로우의 얼굴을 향해 날아갔다. 『누가 꼬맹이라는 거냐, 누가~!!』 예고도 없이 발길질을 당한 디크는 어안이 벙벙한 눈치다. 재빨리 팔을 들어 공격을 가로막았지만 다리 길이도 짧은 여자가 이런 식으로 나올 거라곤 짐작도 못했을 거다. 퍽, 하고 먼지가 피어 올랐다.
『디크!!』 공간이 좁은 관계상 멀직히 물러서있던 키 큰 쪽이 화들짝 놀라 성큼 걸음으로 달려왔다. 션은 디크보다 머리통 하나가 더 컸다. 덩치도 두 배였다. 화가 단단히 난 눈치다. 발도장이 찍혀 벌겋게 달아오른 디크의 팔을 보곤 흥분해서는 손가락질까지 해가며 언성을 높였다. 『뭐야, 당신. 얘기만 하자는데 싸움 거는 거야?』 『시비는 그쪽이 먼저 걸었잖아! 누구더러 꼬맹이라는 거야!』 『미안해. 실언이었어. 꼬맹이라 불러 잘못했어.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주먹질부터 하기냐.』 『흥! 주먹질은 하지 않았어. 발길질 했지.』 『좋아. 발길질 했다는 건 인정하는 거지? 그럼 사과해! 디크에게 사과하라고.』
어른 둘이 지나가면 꽉 차는 공간이었다. 거기다 먼지 쌓인 빈병까지 차곡차곡 구석에 쌓여 있는 실정이다. 좁아 죽겠는데 서로 물러 설 생각은 하지도 않고 껌 내놔라, 밥 씹어라 하면서 말싸움을 그치지 않고 있으니 이만한 민폐도 없다. 리나에게 발길질 당한 쪽도 당황한 표정으로 션을 끌어당겼다. 대중 음식점 화장실 앞이다. 장소가 나빴다. 커다란 남자와 조그마한 여자가 목에 핏대를 세우고 있으니 이거야말로「동네 사람들아, 여기 재밌는 구경 났소~」다. 소동을 눈치 챈 홀 안의 사람들이 목을 빼고 흘깃거리기 시작했다. 이거 안 좋다. 나 역시 리나를 잡아당기며 말렸다.
『션. 진정하고 앉자. 응? 내가 다 창피하다. 여자랑 말다툼 하는 건 남자가 할 짓이 아니란다.』 『자자! 리나님도 앉읍시다. 사람들이 죄다 쳐다보고 있다고요.』 『션! 이 형이 그만하라고 했다. 안 들리냐. 그만 눈 깔어.』 『맞아요, 그만하세요. 밥부터 먹읍시다. 여기서 계속 이러고 있으면 이미 식탁에 앉은 가우리씨가 우리는 빼놓고 모듬 해물 전골을 죄다 먹어버릴지도 모른다고요.』 가우리가 혼자서 마구 먹어버릴 거라는 말에 반응, 리나가 내쪽으로 시선을 얼른 돌렸다. 『엇, 그럼 곤란하지. 통새우는 내 거라고 미리 침 발라 놓았는데.』 그러다 퍼득 뭔가를 깨달았는지 디크 메로우를 향해 고개를 홱 하고 돌렸다. 지금 그깟 새우가 문제냐. 어쩐지 경악의 표정이다. 『형? 댁이 형이라고?』 그리고 쓸데없는 말을 덧붙였다. 『그쪽이 작잖아.』
디크의 눈빛이 심각하게 어두워졌다. 더하기 목소리 톤도 낮아졌다. 『이봐! 이렇게 나오면 나도 댁의 팔뚝으로 신발 도장을 콱 찍어놓을테다. 뭘 보고 내 키가 작다는 거야! 난 표준 사이즈란 말이야! 내 동생이 표준 사이즈 오버지. 난 키가 작지 않아!』 리나는 헤, 하는 표정으로 형제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확실히... 그랬다. 자세히 보니 디크의 눈가로 잔 주름이 많다. 찡그릴 적마다 주름의 명암이 짙어졌다. 션은 키가 커도 어쩐지 맹해 보이는 것이 아직 어린애의 느낌이 남아 있다. 곱슬거리는 앞머리가 귀엽게도 보인다. 거구라는 점만 빼면 풋풋한 청년이다. 반면 디크는 닳고 닳은 아저씨의 냄새가 났다. 『이번엔 아저씨냐?! 난 아직 26세란 말이야!』 디크는 팔을 활짝 벌린 채 세상의 종말에 대하여 불평했다. 『내 어디가 닳고 닳은 아저씨처럼 보인다는 거야. 어휴!』 이래서 10대 소녀는 딱 질색이라며 머리를 감싸쥐었다.
Posted by 미야
2006/11/0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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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편지 봉투에 넣어 리나에게 보낸, 몰래 찢어낸 일기는 다음처럼 시작된다. - 나는 지금 헌팅당하고 있다.
아멜리아 공주가 손수건을 씹어 먹으면서「오빠에게 꼬리치는 여자가 도대체 누구야~!!」라고 비명을 지르고도 남을 얘기다. 실제로 리나도 맨 처음엔 그리 착각하고「드디어 이 녀석에게 꽃 바람이 불어닥치는구나~♬」라며 반색했다. 성급한 그녀는 축의금 봉투에 금화 닷 푼을 넣고「축하한다, 잘 살아라」라고 적었다. 그 헌팅이 그 헌팅이 아니라는 걸 알고 나서야 얼굴색이 바뀌었지만, 그 전까진 희희락락하며 미니 스커트에 빨간 루즈를 바른 당돌한 여자를 상상했다.
『미니 스커트에 빨간 립스틱? 그쪽에게 쫓기는 것도 충분히 공포스럽다.』 행여나 미행당한 건 아닌지, 커튼 사이로 눈만 빼꼼 내밀고 밖을 살피던 제르가디스는 코웃음부터 쳤다. 이 남자의 결벽증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밥사발 가슴의 여자가 엉덩이를 흔들면 인상을 찌푸리고 도망간다. 저 멀리서「이 아저씨의 운명은 자나깨나 독수공방」이라는 제목의 노래가 들려오는 듯하다. 이 키메라는 보기와는 달리 꽤나 보수적이다. 여자는 다소곳해야 하며, 남자보다 먼저 프러포즈 해선 안된다고 믿고 있다. 『차라리 총들고 사냥하겠다고 날뛰는 남자들이 훨씬 괜찮겠다.』 『괜찮다고? 그게 괜찮아? 그게 네 취향이었어? 알았어. 다음부턴 총들고 사냥하는 남자를 소개시켜주지. 남자가 좋다는데야.』 리나는 어이가 없다며 팔을 벌렸다. 『내 취미는 오리 사냥입니다 - 라고 자기 소개를 할, 덥수룩한 턱수염의 아저씨를 소개시켜줄게.』 그러니 빨랑 닥치고 의자에 앉으라고 시늉했다.
『커튼은 그만 만지작대고 이리 와서 나에게 말해봐. 어떻게 된 일이야? 제르.』 『별 일 아니야.』 『경고하는데 나에게 거짓말 세 번 하면 후환이 두려워질게야. 그리고 지금은 원 스트라이크야. 별 일이 없어? 옆구리와 어깨에 붕대를 감고, 목에는 밧줄에 쏠린 듯한 상처가 보이는데 별 일이 없으시다?』 『자다가 침대에서 굴러 떨어졌어.』 『투 스트라이크.』 손가락마디를 뚝뚝 꺾으면서 리나는 위협했다. 그런데 그게 단순한 위협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 인간의 여자는 정말로 주먹을 갈길 것이다. 그것도 인정사정 안 봐주고 말이다. 더도 말고 어금니를 부러뜨리고, 콧잔등을 주저앉게 만들 위력으로 펀치를 날릴 것이다. 제르가디스는 질겁하며 뒤로 물러섰다. 방어하듯 손을 내밀고 워워 소리를 냈다.
『리나? 날 도와주려는 건 고맙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내 문제야. 혼자서도 잘 해결할 수 있...』 『좋아. 혼자 해결해. 난 옆에서 그저 보고만 있겠어. 하지만 일이 어떻게 된 건지는 알아야겠어.』 여자는 도끼눈을 부릅뜨곤 조금도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
제르가디스는 땅 꺼지는 한숨을 몰아쉬었다. 『알았어, 알았다구. 말하면 되잖아. 그러니까 디크와 션 형제라고 알아?』 『디크와 션? 그런 이름은 아직까진 들어본 적 없어.』 『귀신 잡는 메로우 가문은?』 『오, 갇.』 대륙 남동부에선 알아주는 집안이라고 한다. 마법이 발달하지 않은 결계 밖 세계에서 마물을 상대로 싸우는 일을 직업으로 가진, 한 마디로 이들은 유별난 별종이었다. 특히나 제임스 메로우는「은탄환 제임스」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고스트 헌터들 사이에선 거의 신화적 존재라고 한다. 목표물을 선택하면 절대로 놓치는 법이 없었고, 길게는 10년 이상 공을 들여 어떻게든 사냥을 성공시켰다. 그렇게 어렵게 일을 마무리 하고 나서도 의뢰인에게 막대한 금전을 요구한 적도 없었다. 상황이 딱하게 되었다 싶으면 공짜로도 일을 했단다. 수고비는 무조건 금화로 두둑하게 뜯고 본다는게 생활 철칙인 리나가 보자면 완전히 미친 사람이다.
『미친 사람이지. 그게 어디 정상이냐. 저속령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판국에 공짜 서비스가 웬 말이냐. 내 말이 맞지? 가우리.』 『어, 그런가. 여차하면 전 재산을 뜯어내는 너보단 정상인 것 같은데...』 『시꺼! 원래 싼게 비지떡이야! 비싼만큼 그 값을 하는 거라고.』 뭘 몰라 반박하는 가우리에게 매섭게 핀잔부터 준 뒤, 리나는 어흠 헛기침 했다. 『아무튼 그 은탄환 제임스는 나이가 들어 은퇴했다고 들었는데.』 『은퇴를 한건지, 아님 사고로 죽은건지는 아는 바 없어. 관심도 없고. 고스트 헌터들과 마주칠 일 자체가 없었으니까. 다만 듣기론 그 아들이 최근에 가업을 물려받았다고 해. 디크와 션은 그 은탄환 제임스 메로우의 아들들이야.』 『에게~ 그렇다는 말은 파릇파릇 애송이라는 거잖아.』 『네가 몇 살 적에 드래곤 슬레이브를 최초로 발동시켰는지는 기억하고 있는 거냐. 나이와 실력은 비례 관계가 결코 아니지. 애송이라고 무시했다간 큰 코 다치는 거다. 동생인 디크는 그렇다치고 형인 션은 장난이 아니라고. 열 두 살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고스트 헌터 일을 했다고 하더군. 실력은 어지간한 마법사 뺨쳐. 마법력은 가지고 있지 않은데 그걸 무기로 죄다 커버한다. 어디서 듣도 보지도 못한 걸 잔뜩 가지고 있더군. 속도도 빠르고, 살상력도 있어서 곤란할 지경이야. 이 어깨 상처...』 제르가디스는 쓴 웃음을 지으며 붕대로 감은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뭘 어떻게 했는지 몰라도 한 방 맞았는데 리커버리 주문으로도 치유가 잘 되지 않아. 인간인 부분은 회복되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반복해서 덧나는 것 같더군.』 『그럼 큰일이잖아!』 리나는 걱정하며 제르가디스의 셔츠 자락을 번쩍 들어 올리려 했다. 뭐, 곧장 저지당했지만. 제르가디스는 아녀자가 사내 옷을 함부로 벗기는게 아니라며 허겁지겁 벽쪽으로 물러섰다.
『다 좋다 이거야. 그런데 왜 네가 은탄환에 맞아야 하는 건데.』 『몰라. 아마도 걔네들 눈엔 내가 사람으로 안 보였던 모양이지.』 『그거 무지 괘씸하군!』 리나는 진심으로 분노해하며 버럭 고함질렀다. 『이유도 안 가르쳐주고 생 사람을 잡으려 한단 말이야?! 비록 머리카락이 철 수세미라고 해도! 몸의 2/3이 딱딱한 돌이라고 해도! 피부색이 새파랗다고 해도! 눈깔이 번들번들 빛나는게 수상쩍긴 해도!』 『리나. 방금 난 네 말투로 무지하게 상처 받았어...』 『사람처럼은 안 보여도 사람 맞잖아!』 『아예 상처에 소금 뿌려.』 『어떻게 널 때려눕힐 수 있냐구!』
추적은 석달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늦은 점심을 먹고 화장실에 다녀왔는데 대수대에서 미적미적 손을 씻으며 눈을 흘끔거리는 남자 둘이 보이더란다. 먼지가 잔뜩 낀 셔츠에다 낡은 부츠를 신고 있었다. 눈빛은 날카로웠다. 평범한 사람들로는 보이지 않아 내심 긴장하고 있는데 키가 작은 쪽이 큰 쪽을 향해 텃짓으로 신호하더란다. 행여나 여행객들을 퍽치기하는 건달들인가 싶어 제르가디스는 재빨리 뒷문으로 빠져나갔다고 했다. 후드를 눌러쓰고 빠른 걸음으로 가까운 수풀로 몸을 감췄다. 『그런데 뻥 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들입다 총을 쏜 거지. 이건 무장 강도들이다 싶었어. 그래서 마법으로 무장해제를 시키려고 봄디 윈 주문을 영창하기 시작했는데...』 키가 작은 쪽이 단도를 던져 어깨를 맞춰버렸다. 『정확하게는 맞고 튕겨 나갔다고 해야 옳겠지. 단도 같은 걸로 내 피부를 꿰뚫을 수는 없으니까.』 피멍이 들었고 얻어맞은 자국이 쓰라렸다. 하지만 피는 나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마법 제어가 잘 되지 않았어.』 손안에 모여졌던 마법력은 순간 붕괴되어 사라졌다. 어처구니가 없어 재 시도를 해봤다. 역시 잘 되지 않았다. 천둥 벼락을 날릴 모션을 취했는데 쉭 소리를 내며 옆으로 마력이 새어나갔다. 마력이 봉인당한 건 아니었지만 제어할 수 없었다. 『엉망진창이었다구. 달거리 시즌의 네가 어떤 심정이었는지 이해가 가기 시작하더군, 리나.』 『그딴 건 이해하지 마.』 『음, 정확히 뭐라고 그랬지? 마법도 쓰지 못하는 식충이가 된 듯한 기분이라고 그랬던가.』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나도 그랬어. 가슴도 작고, 목소리만 큰 바보가 된 기분이었어.』 『이 자식! 거기서 가슴 얘기가 왜 나와!』
내가 몰래 뜯어낸 그의 일기는 그리하여 이렇게 이어진다. - 마력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리나는 단호하게 셔츠를 벗으라 명령했다. 단도에 맞은 상처를 직접 눈으로 봐야겠다는 거였다. 『봐서 뭐. 연고라도 손수 발라주게?』 쓰게 웃으며 그는 거부했다. 『냅둬, 이미 할 수 있는 치료는 끝냈어.』 『우리 사이에 뭘 부끄러워 하는 거니. 벗어, 벗어. 훌렁 벗고 빨리 이 의자에 앉아.』 『싫어, 의사 선생. 가까이 오면 성희롱으로 고소해 버리겠어.』 『어쭈?』 『냅두라니까.』 가까이 오면 그 손을 물어뜯을 기세로 제르가디스는 몸을 사렸다.
왜 그가 물벼락 맞은 고양이처럼 구는 건지 모르겠다며 리나는 화를 냈는데... 사실 난 그 까닭을 진작에 알고 있다. 실은 그 상처는 성스러운 다비드의 별 문양을 피부에 남긴 채 서서히 썩어들어가고 있다. 「리나에게 사실대로 말하면 죽여버린다」라는 눈빛으로 날 노려본 뒤, 제르가디스는 지금쯤 꽤나 아플 거라고 짐작되는 어깨를 손바닥으로 감쌌다. 짐작하기로는 그가 당한 기술은 파마(破魔) 저주의 일종이 아닐까 싶다. 제대로 제어할 수 없음에도 억지로 마법을 사용하려 하면 할수록 상처가 무섭게 덧난다는 증상을 봐선 아마도 그게 맞을 거다. 마력에 반응하고, 그 상대를 착실하게 갉아먹는다. 상대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저주다. 데몬이나 몬스터를 상대로 하는 기술인만큼「그냥 봉인하고 말지」수준의 친절함은 결코 가지고 있지 않다. 피 말리는 고통을 주다가 확실하게 끝장내겠다는 의지마저 느껴진다. 사태는 제법 심각해서 나는 그가 상처를 아예 도려내고 말까 고민하는 것도 지켜봤다. 피해 부위가 더 커지면 목숨이 위태롭다. 차라리 한쪽 팔을 전혀 쓰지 못하는 팔 병신으로 사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결정을 내리기 힘들었던지 그는 칼날을 불에 새빨갛게 달구다 말고 신음했다. 그리고 울었다.
그래서 난 그의 일기장을 훔쳤다. 리나를 불러왔다. 내 장난감이 내가 아닌 다른 자에 의해 망가지는 건 딱 질색이다. 울어? 어디 한 번 더 울어보시지. 팬티를 벗겨 그 날로 세일룬 왕궁에 소포로 부쳐버릴테다.
『뭐, 뭐야. 불안하게. 왜 그렇게 웃는 거냐, 제로스.』 『글쎄요, 제르가디스씨. 나는 지금 왜 웃고 있는 걸까요.』 여전히 날 맹렬히 쏘아보고 있는 제르가디스를 향해 씨-익 웃어보인 뒤, 리나의 신호에 맞추어 그에게 덤벼들었다.
Posted by 미야
2006/11/03 15:39
2006/11/03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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