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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불펌 및 무단 링크는 사양합니다. 비공개 카페라고 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예요. 툴툴... ※


화가 치밀어 그렇게 말은 하긴 했다만 곧 후회했다.
딘의 얼굴로 두려움이 떠올랐다. 헤프게 웃으며 여자에게 작업을 거는 형도 끔찍하지만 저것이야말로 샘이 가장 싫어하는 표정이다. 극도의 경계심을 띄우고 주춤거리는 딘을 볼 적마다 웅웅거리는 전기톱을 사람들을 향해 아무렇게나 휘둘러대는 사이코 연쇄 살인마라도 된 기분이 되어버린다. 평소처럼 몹쓸 강아지 예뻐하는 눈빛이 아니다. 뼈로 만든 왕관을 쓰고 붉은 카펫 대신 피바다 위를 걷고 있는 악마 대왕과 마주쳤다는 식이다. 뱉은 말을 도로 주워담는게 가능하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 밖으로 밀쳐내려는 동작과 같이 하여「저건 내 동생 샘이 아니라 몬스터다, 악마다, 귀신이다!」따위의 염불을 외우고 있는 딘은 진짜지 끔찍하다. 팔을 잡고 일으켜 세워봤자 소용 없을 거라며 엉덩이에 힘을 팍 주고 있는 모양은 또 어떻고. 이대로 의자에 달라붙고 싶다는 소원을 램프의 요정 지니에게 빌고 있다. 완력으로는 샘에게 이길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어떻게든 해볼 작정인가 보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되도록 테이블 모서리를 붙잡았다.「절대로 네놈에게 붙들려 화장실로 끌려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라는 굳은 의지가 읽혀지는 행동이었다.

대화의 주제를 슬슬 바꿔볼 필요가 있었다. 찡그리며 자기 몫의 커피를 입으로 가져갔다.
『긴장 풀어. 그러고 있으니까 꼭 악성 치질에 걸려 의자에 앉아있기가 대단히 곤란한 환자처럼 보여. 웃기는 행동은 그만하고 전화나 받아. 그거 알아? 아까부터 형의 핸드폰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고.』
『아항~ 안 속아, 샘. 그거 속임수지. 형을 너무 만만하게 봤어.』
『뭐? 이게 전부 페인트라고? 그러니까 일단 전화로 관심을 돌리게 한 다음에, 형이 시선을 아래로 내리깐다 싶으면 바로 지금이다 소리를 지르며 덤벼들 거라 생각한다는 거야?』
『응.』
『맙소사, 딘. 어떻게 거기서 정색하며「응」이라 대답할 수가 있어! 형과 얘기를 하다보면 나까지 머리가 이상해지는 것 같아. 남의 이목이 두려워서라도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을 번쩍 집어드는 짓은 하지 않아. 프로레슬링 놀이는 10년 전에 졸업했다고. 딘이 상상하는 그런 흉악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테니 마음 푹 놓고 전화나 받아.』
진짜로 그랬다간 지역 신문으로「식당에서 곰이 식사 중인 사람을 습격하다」라는 기사가 실리게 된다. 재작년 러시아 전역에 회자되었던「백곰이 모피를 벗어던지고 술집에서 난동을 부리다」뉴스 타이틀 다음으로 우스꽝스러울 거다. 아니, 다시 생각해보니 그 제목이「술 취한 백곰이 모피를 벗었다가 음란물 공연죄로 당국에 체포당하다」였던 것도 같다. 어느 쪽인지는 살짝 헷갈린다.

요구만 한다면 보이스카웃 선서라도 하겠다며 가슴을 똑바로 폈다.
『맹세라도 해줘?』
『못 믿겠는데. 너, 뒤로 손가락 꼬고 있지.』
행여 곰이 앞발을 들지는 않을까 주의를 흐트러뜨리지 않은 채 딘은 아침 밥을 오물거렸다.
『딘. 제발 살려줘.』
『하지만 벨소리도 안 울렸는 걸.』
『진동 모드로 바꿔놓은 거 아니었어? 그치만 진짜야. 전화가 왔다고.』

샘의 지적은 사실이었다. 그제서야 딘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시선을 내려 핸드폰을 확인했다.
『정말이네. 그런데 왜 벨이 안 울리냐. 게다가 발신자 정보 없음? 뭐야, 이거. 고장났나.』
땅바닥에 떨어뜨렸다거나, 실수로 변기에 풍덩 빠뜨린 기억은 없다. 그래도 침대에 훌쩍 던진 적은 있으니 납땜이 부실한 부품 하나가 제 자리를 잃었다는 가설에 힘이 쏠린다.
딘은 손바닥으로 애꿎은 기계를 탁탁 때려 말썽을 부리는 핸드폰이 저절로 고쳐지길 희망했다.
무식하다고? 설마. 듣자하니 최근 유행하고 있는 사이언톨로지 관계자들은 오작동을 일으킨 전자렌지를 기도 하나로 원래대로 복구시켰다고 주장하며 신도를 모집하고 있는 판국이다. 이게 진짜냐고? 진짜니까 문제다.
<오늘은 환상적인 날이었다. 커피를 마시러 아래층으로 내려갔는데 커피 기계가 윙윙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래서 앞으로 손을 뻗어 기계 주위로 손을 움직여, 광선을 발사시켜 반사되게 했다. 그 결과 미립자가 흐르는 위치를 통해서 고장난 기계 부위를 정확히 알아냈다. 그 부위의 분자 구조를 바로잡아 윙윙거리는 소리가 멎었다. 얼마 후에 내 방의 에어컨이 덜거덕거리는 소리를 내기에 어찌된 이유인지 알아내어 바로잡았다.>
거기에 비하면 지직거리는 텔레비전을 앞뒤로 마구 흔들어 기어코 미식 축구 중계방송이 나오게끔 만드는 우리들 아버지들은 예레미야 선지자나 다름 없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아무리 기다려도 들려오는 대꾸는 없고.
어깨를 으쓱이며 귀찮다는 듯이「종료」버튼을 눌렀다.
『이상하네. 요즘들어 자주 이런다니까. 아무래도 핸드폰을 새로 사던가 해야 할까봐. 통화가 연결되었는데도 소리가 하나도 안 들릴 때가 종종 생겨. 그것도 두 번, 세 번씩 꼭 그런다니까.』
『누가 장난치는 건 아니고?』
『그럼「하아, 하아」숨소리라도 들려야 하잖아.』
『아무 소리도 안 나?』
『전혀. 꼭 물속에서 잠수복 입고 전화 받는 기분이야.』
『음... 그렇담 혹시 받는 사람이 여자가 아니라서 그런 거 아닐까.』
『네 말대로 그럴 가능성도 없잖아 있겠군. 그럼... 옛다.』
딘은 두말할 것 없다며 자신의 핸드폰을 동생에게 훌쩍 던졌다.

샘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목소리도 커졌다.
『뭐야, 지금 그 발언은! 형이 아니라 내가 받으면 상대방이「하아, 하아」할 거라는 거야?!』
『응.』
『딘! 나도 남자야!』
『그랬어? 그거야말로 온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엄청난 소식이군. 그러니까 새미? 변태 자식이 숨을 헐떡이며 네 팬티 색깔이 뭐냐고 물으면 심플한 파랑이라 대답을 해주는 거다.』
『형!』
『아님 레이스 달린 섹시한 검정이라고 거짓말 하든지. 후후후.』

홧김에 식탁을 거꾸로 뒤집기 전, 다시 착신을 알리는 알람이 켜졌다.
샘은 손가락을 하나 들어「좀 있다 보자!」라는 뜻을 분명한 뒤에 형을 대신하여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다행이다. 변태는 샘을 여자로 착각하지 않았다. 하악거리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음에 노골적으로 안도해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상대방은 지금 입고 있는 속옷의 색에 대해서 물어보지도 않았다. 그저 기분 나쁜 - 이걸 도대체 무어라 해야 한단 말인가 - 엄청난 무게의 침묵이 전파를 타고 대량으로 흘러 들어왔다.

재차 확인해 보았다.
『잘못 거신 것이 아니라면... 여보세요.』
『어때, 새미. 저쪽에서 네 속옷 상표가 뭐냐고 물어보니?』
『쉿!』
수영장을 가득 메우고도 남을 량의 흙을 일시에 거꾸로 들이붓는 듯한 박력의 고요함이었다. 샘은 축축한 무덤가를 떠올렸고, 썩은 흙을 파먹는 벌레, 그리고 비루먹은 검은 말을 탄 해골의 기사가 등장하는 타로트의 열 세번째 카드를 생각해냈다. 기사는 왕관이 벗겨진 교황과 수치를 입은 여왕을 밟아대며 언덕 꼭대기로 정복자의 깃발을 꽂는다. 전쟁의 마지막을 알리는 환호성은 울려퍼지지 않는다. 대신 들판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건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침묵이다.
생명을 창조한, 태초의 말씀이 선포되기 이전의 대지.
그곳엔 그림자조차 깨끗하게 말살된 유령만이 하릴 없이 떠돌고 있다.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졌다. 직업적 직감이라는게 경고를 보내왔다.
『이봐요?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기계 결함으로 인한 단순한 오류라고 하기엔 석연치 않은 그 무엇인가가 신경을 긁었다. 샘은 계속해서 귀를 기울였다. 어두운 방안에서 의자와 같은 사물을 피해 돌아다닐 적의 요령으로 집중했다.
동생의 표정이 점점 더 심각해지자 딘도 시덥잖은 장난을 관뒀다.
『샘?』
『모르겠어.』
그래봤자 가벼운 기침 소리도 나지 않았다.
1분 정도 뒤에 전화는 저절로 끊겼다.

『쳇! 가뜩이나 호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데 핸드폰까지 말썽이야.』
딘은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다.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단말기 고장, 전파 방해, 수신지역을 벗어남, 아니면 대단히 수줍음이 많은 (나에게 반한) 아가씨, 기타등등의 가능성을 저울질했다. 특히나 마지막 가능성에 입술이 둥글게 구부러졌다. 예쁜 금발의 여자에게라면 스토킹 당하는 것도 괜찮다. 별자리를 물어봐서 기피 대상인 전갈좌가 아니라는 것만 확인이 되면「물 위의 하룻밤」이 아니라「물 침대에서의 하룻밤」소설을 즉석에서 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딘이 대단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동생이 방해 공작 및 훼방을 놓을 것이 분명하긴 하지만, 김칫국부터 마신다고 딘은 보들보들한 여자의 가슴을 상상하며 손바닥으로 살갗을 쓸어내리는 동작을 해보였다.

지나다니는 사람들 눈을 생각하쇼 - 단단히 주의를 주며 변태 형에게 핸드폰을 돌려주었다.
『이거, 어쩐지 오싹하지 않아?』
『응. 오싹해.』
『딘? 내가 지금 말하는 건 즐겁게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 종류의 그런 오싹함이 아니야.』
『음... 그랬니. 하여간 이 형은 잘 모르겠는데.』
딘은 별 일 아니라며 마지막 남은 팬 케이크 조각을 남김 없이 주워다 입안에 털어 넣었다.

허나 형의 말대로 정말로 별 일 아니라 생각하면 샘 윈체스터가 아니다.
8시간 뒤, 고된 육체 노동을 마무리하고 모텔로 돌아온 딘의 눈에 맨 처음 들어온 건 커다란 헤드 셋을 쓰고 노트북 앞에 앉은 샘의 거대한 등짝이었다.
다녀 왔느냐는 인사도 빼먹었다. 대신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사람처럼 등을 둥글게 구부리고는 마우스를 바쁘게 딸각거렸다.
『헤이.』
헤드 셋 때문에 귀는 닫혔다고 치자. 그래도 코는 열려져 있을 터이니 최소한 딘이 싸들고 온 햄버거의 맛있는 냄새는 맡았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얄밉게 고개 한 번 안 돌린다.
깡그리 무시당한 것 같아 약이 올랐다. 먼지를 뒤집어 쓴 겉옷을 벗어 아무렇게나 바닥에 던지면서 다시 한 번 힘 주어 동생의 이름을 불렀다.
『샘! 임마! 못난아!』
음악을 감상하고 있다? 정말로 그런 거라면 저놈의 망할 음악 CD를 발로 밟아 깨버릴테다.
『헤이! 아가씨!』
그제야 샘이 눈빛을 험악하게 치켜뜨며 딘을 돌아다 보았다.
『지금 누구더러 아가씨라 하는 거야.』
『바로 너. 그러니까 들리면 들리는 척을 하란 말이다.』
『미안. 일 하는 중이었어.』
『일? 무슨 일. 워터게이트*?』

노트북 화면에 가득 나타난 물결 무늬와 빨간색과 노란색으로 표현된 각각의 나무 막대 그래프를 눈여겨 본 딘이 이마를 찡그렸다. 머리가 깡통인지라 화면 속의 그림들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까진 모른다. 그래도 눈치껏 샘이 머리에 쓰고 있는 헤드 셋과 조합하여「불법 도청」이라는 단어를 어렵지 않게 유추해낼 수 있었다. 동생이 다시 마우스를 움직이자 노란색 막대 그래프가 천장까지 닿으려 했다. 딘은 그것이 대단히 불길하다고 생각했다.

『뭘 하고 있는 건데. 이참에 헌터 일은 관두고「뭉크」로 직업을 바꾸려고?』
『응?』
뭔 소리인지 모르겠다며 샘이 속눈썹을 깜빡였다. 동생은「탐정 뭉크」드라마를 잘 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샘은 대학에 다녔던 시절에 교양 과목으로 들었던 서양 미술사 강의를 떠올렸고, 노르웨이의 표현주의 화가인 에드바르드 뭉크의 이름을 기억해냈다. 설마, 딘이 말하는게 이건가. 샘은 뭉크의 대표작인「절규」를 흉내내며 손바닥으로 두 뺨을 감쌌다.
그래봤자 세기말 히스테릭한 절규가 아니라「나홀로 집에」의 매컬리 컬킨이었다. 덩치 커다란 곰이 사람의 바보 짓을 따라하는 것만큼 귀여운 건 없다. 딘은 가볍게 실소했다.
『올라온다.』
『뭉크라며.』
『장난하나.』
『이걸 말하려던게 아니었어?』
『아픈 다리가 아니라 엉뚱한 다리를 잘랐어. 거액의 의료 소송을 각오하도록 해.』
딘의 핀잔에 멎적게 머리를 긁던 샘은 귀에서 헤드 셋을 떼어냈다.

『딘? 혹시 사람의 가청 영역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손바닥을 비비며 조심스런 태도로 물어오는 말에 딘은 세차게 도리질했다.
『몰라.』
『20Hz에서 대략 16KHz 정도야.』
『그래서 뭐.』
『개는 그보다 더 높은 소리를 들을 수 있어. 50KHz까지 듣거든. 그래서 개를 훈련시키는 피리를 아무리 불어도 사람은 듣지 못해. 돌고래나 고래가 내는 소리도 마찬가지고.』
『그렇구나. 가르쳐줘서 고마워. 좋은 이야기였어. 그런데 지금 네가 말하고픈 요점이 뭐니. 동물의 왕국, 내지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이냐.』
『그게 아냐. 그러니까 내 말은... 이게「우리 일(our job)」이라는 거야.』
샘은 심각한 표정으로 형에게 들고 있던 헤드 셋을 내밀었다.

Posted by 미야

2007/04/17 15:40 2007/04/17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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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님은 = 엄마다.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


어쩌면 어딘가의 창문이 열여져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빠의 가르침이 워낙에 강경한지라 잠자리에 들기 전에 문단속을 철저히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대단히 적다는 가설은 그렇다 치자. 이가 딱딱 맞물릴 정도로 추웠다. 바닥에서부터 찬 바람이 올라와 파충류의 혓바닥인양 몸을 핥았다. 덕분에 서리를 맞은 잎사귀가 되어 누렇게 시들 지경이다.
그렇다고 해도 딘은 쉬이 깨어나지 않았다. 일단 잠들면 시체 - 누가 가까이 와서 어깨를 흔들지 않는 이상 그의 의식이「번개처럼 빨리 - 프리 패스」표를 끊고 현실로 재빨리 돌아오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감각이 둔하다고 존에게 핀잔을 듣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자물쇠가 돌아가는 달각 소리만 나도 긴장하여 깨어나는 막내와는 달리 존의 첫째 아들은 옆집에서 격렬한 부부싸움 끝에「불이야~!」소리를 질렀어도 눈을 뜨려 하지 않았다.
『딘... 딘.』
혹자는 건강의 징표라고도 한다. 한참 크는 성장기 어린이답게 여러 번 이름을 불러가며 재촉을 해야 어렵게 깨어났다.

『우.., 지금 몇 시야. 도대체 무슨 일이야, 새미. 물 마시고 싶어서 그러니?』
눈꼽이 붙어 잘 떠지지도 않는 눈으로 동생을 쳐다봤다. 아직 한밤중이다. 주변이 새카맣다. 아침이 되려면 멀었다. 미키 마우스 캐릭터가 그려진 손목시계를 내려다보고 새벽 2시라는 걸 확인한 딘은 커다란 베개라는 소품을 품에 안고 나타난 어린 동생이 영 못마땅했다. 나를 이대로 내버려두면 안 되겠니, 형은 대단히 피곤하단다 - 라는 말이 목에 걸렸다. 아니,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놈의 자식이 혼자서는 냉장고도 못 여는 건가 싶어 미워졌다.

『아니. 목 마르지 않아.』
『그럼 거 뭐시다냐... 화장실 가고 싶어?』
샘은 특유의 뾰로통한 얼굴로 안절부절해 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밖에 비 오냐? 천둥이라도 쳤어?』
『아니.』
『나쁜 꿈이라도 꾼 거야?』
『아니.』
『벽장에서 부기맨이 어흥, 해가며 튀어나왔어?』
샘은 대답을 회피하고 강아지 눈빛을 했다.

그 애원의 눈초리에 기가 막혔다. 1번도, 2번도, 3번도 아니라면 답은 하나다. 몸과 머리와의 회선 연결이 그럭저럭 정상화되자 딘은 나쁜 짓을 한 어린이는 꾸중받아야 마땅하다며 콘크리트 저리가라로 표정을 굳혔다.
『너도 이제 다 큰 어른이라고. 벌써 일곱 살이나 되었잖아. 남자답게 굴어. 네 침대로 당장 돌아가.』
『그치만... 춥고... 쓸쓸해. 같이 자면 안 돼?』
희망의 여부를 실터럭만큼도 남기지 않기 위해 칼 같이 잘랐다.
『안 돼.』
『그럼 딱 1시간만. 응? 딱 1시간만 같이 자.』
『지금 나랑 협상을 하자고? 10년은 빨라! 이것으로 얘기는 끝. 난 다시 잘란다.』

어리광을 계속 받아주면 버릇이 나빠진다. 어린 것이 불쌍하다 생각하는 마음에 지금처럼 한 없이 너그럽게 봐주다간 씩씩한 남동생이 아닌 머리에 리본을 묶은 여동생을 갖게 될 판국이다.
아무리 빌어도 양보는 할 수 없다. 그래서 딘은 뒤돌아 누워 넓지도 않은 등으로 거부의 오라를 발산했다.
보아라, 형의 빛나는 경광등을. 접근 금지.
『딘.』
『포기해.』
그러나 이 정도로 마음을 고쳐 먹고 물러날 동생이 아니라는 걸 딘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녀석은 이기적이었고, 악당이었으며, 누구보다 고집이 강했다. 하여 샘을 자신의 잠자리로 돌려보내려면 방법은 딱 두 가지다. 하나는 묵사발로 만들어 폭력으로 설득하거나, 하나는 자물쇠를 채워 방안에 가둬두는 것이다. 두 가지 방법 모두 대단히 효과적일 거라 딘은 생각했다. 그리고 대단히 유감스럽지만, 그는 자신이 두 가지 행동 모두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가벼운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것으로 무언의 허락이 떨어졌다고 판단한 샘은 만족스런 신음 소리를 흘려가며 침대 위로 엉금엉금 기어올라왔다. 딘의 옆으로 몸을 뉘이고 꼼지락거리며 안겨왔다.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이 등에 닿자 피부가 간지러웠다. 딘은 울컥했다.
『야! 똥강아지!』
『춥단 말이야.』
정말로 차갑긴 했다. 지금 같아선 사람의 체온이 36.5℃라는게 거짓말이라 해야 할 것 같다. 양배추 밭으로 서리가 하얗게 내리려 했다. 목덜미에 얼음 알갱이가 닿았다며 소스라치게 놀란 딘은 무의식중에 동생의 몸을 팔로 밀었다. 뭐랄까, 이건 꼭 죽은 사람의 피부처럼 꺼림직스럽다.

《추워요..........》

그래봤자 좁은 싱글용 침대에서 밀고 피하고 할 공간은 충분치 않았다. 옆으로 한 바퀴 구르면 바닥으로 떨어지게 된다. 아니, 정정하겠다. 반바퀴만 굴렀는데도 비탈진 낭떠러지에 엉덩이가 닿았다.
바닥으로의 수직 낙하가 달갑지 않은 관계로 몸에 힘을 빼고 흘러가는대로 내버려둘 수밖에 없다. 딘은 얼굴 각도는 그대로 둔 채 눈동자만 아래로 굴려 코알라처럼 착 달라붙은 못난이를 쏘아봤다.
『뭐야, 이 자식. 진짜로 고드름이잖아. 네 덕분에 나까지 얼어 죽겠다.』
『이대로 꼭 붙어 있으면 금방 따뜻해질 거야.』
『쳇! 맘에 안 들어. 아무튼 딱 1시간만이다. 1시간이 지나면 네 침대로 돌아가. 알았지?』
당연히 그렇게 요구할 줄 알았다며 샘은 밝은 목소리로 선뜻 대답했다.
『알았어. 그럼 1시간 뒤에 날 깨워.』
기꺼이 제안을 받아들이겠다는 그 대답에 딘의 입술이 한 일자로 굳어졌다.
임마. 나는 잠들면 시체라니까. 아침에도 제 시간에 맞추어 잘 일어나지 못해 지각을 밥 먹듯이 하는 인간에게 정확히 1시간 뒤에 깨어나는 일이 가능할 것 같냐.......... 라고 해도 연장자의 체면상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고백할 수는 없고. 그럼 뭐야. 아침까지 내내 이 자세로 잠을 자라는 거야?!
극심한 피로와 절망감으로 맥이 빠져버렸다. 팔을 둘러 가슴을 껴안은 동생이 얄밉고 짜증스러웠다.

이대로 가단 단단히 미움을 받게 생겼다고 판단한 샘이 달콤한 말로 형을 구슬르기 시작했다.
『학교에 늦지 않게 아침에 내가 깨워줄게. 시리얼에 우유도 부어주고, 토스트도 만들어줄게.「공부 열심히 하고 오세요」하고 뽀뽀도 해주고. 응?』
『얼씨구? 텔레비전에서 또 이상한 드라마를 봤나 보구먼. 계집애 같은 자식. 뭐냐, 그게. 두꺼운 닭 껍질을 대패로 밀자는 거냐? 공부 열심히 하고 오세요? 뽀뽀? 너, 그러다 고추 없어진다.』

《고추라니오. 나는 여자 아이인데요.........》

동생의 대답이 가늘고 묘한 음색과 겹쳐져 불쾌한 불협화음을 만들었다는 건 미처 깨닫지 못했다. 문장의 뜻과 내용에 충격을 받은 딘은 - 고추가 없댄다 - 손을 아래로 내려 동생의 사타구니를 더듬었다. 가랑이 사이가 허전하다. 이럴 수는 없다. 잠이 확 달아났다. 당황하여 속옷 속으로 직접 손을 넣어 재차 확인에 들어갔다. 어쩌면 좋아. 만져지는게 없다. 그의 안색이 누래졌다. 없어, 없어, 없어!

『으아악! 큰일이다! 샘! 네 거시기가 없어! 없다고~!!』
잠 자다 말고 개지랄하고 있네.
보일러가 꺼진 모텔 방이 얼마나 춥던지 개꿈을 꾸어가며 자다 깨다를 반복하던 중이었다. 하얗게 눈 내린 시베리아 들판에서 닥터 지바고가 썰매를 끌고 달려가는 꿈을 꾸었다. 이대로 있다간 설원에서 조난을 당해 죽게 생긴지라 샘은 SOS 신호를 달나라까지 쏘아보냈다. 나도 그 썰매에 태워달라 손을 흔들어댔다. 하지만 쌀쌀맞은 오먀 샤리프는 내 알 바 아니라며 쌩 소리를 내며 샘의 곁을 지나쳤다. 그 사실에 애가 타서 발을 동동 굴러대고 있는데 망할 놈의 형은 도움은 주지 못할망정 충격적인 찬물을 머리 위로 부어가며 그를 못 살게 굴었다.
『으악! 샘! 네 거시기~!』
시끄러워 죽겠다. 내 거시기가 뭐. 잘만 제 자리에 붙어 있구먼.
어렵게 잠들었는데 바로 깨어나게 되어 기분이 대단히 불쾌해졌다. 샘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베개에서 고개를 들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며 흥분하고 있는 딘이 다시금 비명을 질러댔다. 저게 돌았나, 아님 미쳤나. 벌떡 일어나 남의 귀한 주니어가 가방을 싸들고 가출을 했다며 울부짓기 시작했다.

『어쩌면 좋아, 어쩌면 좋아! 새미, 새미!』
샘은 잔뜩 쉰 목소리로 점잖치 못한 형을 나무랐다.
『어쩌긴. 진정하고 제발 자리에 도로 누워. 형이 멋대로 이상한 꿈을 꾸는 것까진 상관 않겠는데 사지 멀쩡한 사나이를 고자로 만들진 말아줘. 정말이지 민폐야.』
『내가 만졌다고! 만졌어! 그런데 거기가 맨질맨질했어! 다림질을 한 것처럼 맨질맨질했다고!』
『얼굴이 다 화끈거리네. 내가 못 살아... 제발~!! 그만 떠들고 잠 좀 자자!』
『아냐! 이대론 못 자. 확인을 해야 해. 이건 아주, 아주, 아주 중요한 문제라고!』
『딘!』

잠에 취한 것이 분명한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다가온 딘이 샘의 이불을 확 들췄다. 샘이 놀라 몸을 웅크리는 것과 동시였다. 확고한 의지를 품고 두 팔을 사용해 동생의 속옷을 힘 주어 아래로 끌어내렸다. 단 한 번의 동작으로 팬티가 무릎 아래까지 내려갔다.
천장을 기어가던 쥐가 실수로 발을 헛딛고 식탁 위의 스프 그릇 속으로 다이빙을 했어도 이보단 덜 놀랬을 거다. 100년에 걸쳐 펄쩍 뛰었을 것을 일시에 경험했다. 샘은 모든게 제 자리에 있어 대단히 안심했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형의 얼굴과 차가운 공기 속에 치부가 고스란히 드러난 자신의 사타구니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음, 잘 붙어 있구나. 이 형은 안심했다.』
『지, 지... 지금 도, 도대체...!』
『큰일날 뻔했다, 새미. 난 네가 스스로 여자애라고 했을 적에 슬퍼져 울음이 나올 뻔했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를 깨닫기엔 다소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자지러지는 비명과 같이하여「야! 이 미친 놈아! 잠꼬대를 무슨 그 따위로?!」적절한 반응을 보이기까진 1분 20초 정도가 걸렸다.

『이젠 한계야. 이혼해줘.』
『뭐?』
『이혼해 달라고!』
그의 형이 아침 식사용의 팬 케이크를 주문하자마자 샘은 정색하며 덤벼들었다. 커피를 서빙하기 위해 다가온 웨이츄리스가 깜짝 놀라며 눈을 크게 뜨든 말든 상관 안 했다. 그만큼 절실했다.
『위자료는 한 푼도 안 받을게. 그러니까 닥치고 나랑 이혼만 해줘.』
『목소리를 낮춰! 그리고 우리가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다는 건 기억하고 있는 거니? 샘.』
단단히 화가 나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동생을 향해 눈총을 던졌다. 졸지에 아침 댓바람부터 사랑 싸움 중인 게이 커플로 오해를 받았다. 흥미진진한 표정을 하고 있는 웨이츄리스에게 멎적은 웃음을 팔고 - 우리들에게 관심을 꺼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부탁합니다 -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 아무래도 춥게 잔 탓에 감기에 걸린 모양이다. 음식물이 닿아 자극을 받은 목구멍이 따끔따끔했다. 역시 근성만으론 해결할 수 없는 일이었나 보다. 얼굴을 찌푸리며 커피 잔에 각설탕을 하나 넣었다. 취향이 아니라는 건 그렇다치고 단 맛이 고통을 완화시켜 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하아, 하고 의미 불명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렸을 적에 네 똥 기저귀를 누가 갈아줬다고 생각하니. 바로 나야. 네 머리를 감겨주고, 목욕도 시켜줬다고. 그런 이 형이 잠결에 고추 좀 봤다고 그렇게 과민 반응을 보일 것까진 없잖니.』
『과민 반응이라고 말 했어?! 말 했느냐고! 내가 지금 네 살짜리 어린애면 말을 안 해! 거기다 더하기 스무 살이라는게 바로 내가 말하고 싶은 요점이라고.』
씩씩거리며 계란 후라이를 난도질하던 샘이 엄한 화풀이를 중지하고 승냥이 같은 눈빛을 치켜떴다. 소원 같아선 계란이 아니라 딘의 머리를 나이프로 찢어발기고 싶었다. 기절초풍할 노릇이다. 이건 너무나 추잡해서 입에 담을 수조차 없다. 세상에... 형이 내 팬티를 내리고 그걸 봤어! 쇼크를 받은 심장이 엇 박자로 뛰었다.

팬 케이크를 우물거리며 딘이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쳇. 그 까짓 것,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수선은...』
『그래? 좋아. 그럼 나에게도 딘의 걸 보여줘.』
『뭐?』
『공평하게 하자. 화장실로 가서 바지를 내리는 거야. 그리고 나에게 딘의 걸 보여줘.』
『뭐?!』
『얼굴색이 왜 파랗게 변하는 건데? 테이블에 음식 흘리지 말고. 별 거 아니라며.』
쩍 벌어진 입에서 흘러내린 부스러기를 휴지로 닦아내면서 샘은 의기양양하게 선언했다.
자, 공명정대하게「남자」를 보여봐. 바지 내려.

Posted by 미야

2007/04/15 00:30 2007/04/15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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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ldlsl 2007/04/15 23:47 # M/D Reply Permalink

    푸하하하~딘이 너무 귀엽습니다~~과연 다음편에선 딘이 바지를 내리는 것일까요ㅋㅋ
    ㅋ꼬꼬마 일때도 참으로 사랑스런 윈체스터군요~저런 귀여운 형(?)하나 있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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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뱀파이어 루더의 가족 이야기는 지금 다루지 않아요. 쥰쥰이 좋아하는 고딕풍 내장 파이 이야기가 될 예정입니다.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


근육통에 좋다는 약을 다리 종아리에 바르면서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맨날 저지른다고 그게 쉬울 성 싶냐. 신용 카드 사기가 어렵다고 판단하자 신분을 속이고 단순 물류 운반 일용직 잡부로 취업한지 이제 만 일주일.
잔뜩 뭉친 살덩이들이 쇠심을 넣은 가죽 채찍에 맞았다며 비명을 질러대고 있다. 죽을 맛이다.
야밤에 삽으로 무덤도 파고, 유령에게 당해 벽 한가운데로 내던져진 적도 있고, 돌진하는 자동차를 피해 다리 위에서 번지 점프를 한 적도 있다. 힘든 일에 어려운 상황을 어디 한 두 번 겪어봤던가. 몸뚱아리는 누구보다 튼튼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착각이었다. 반복하여 무거운 상자들을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나는 누가 뭐래도 통뼈랍니다」신념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솜바지를 겹겹이 입고 풍랑 높은 바다에서 미친 듯이 헤엄을 치는 기분이다. 오른팔을 좌우로 돌리자 오래된 나무 문짝이 결이 어긋나 좌우로 뒤틀리는 우득 소리가 났다. 닌자 거북이가 곤봉으로 때렸다. 비명이 나오려는 걸 가까스로 참았다. 5m 깊이로 땅 파기는 식은 죽 먹기라고? 미안하다. 5m가 아니라 5cm였다.

이렇게나 힘든데 8년 전에 멕시코에서 건너왔다는 푸에타리코는 불평도 없이 하루 10시간이나 현장에서 일을 한댄다. 몸집도 작은 사내가 얼마나 바지런하게 움직이던지 옆에서 딘은 저 혼자서만 슬로우모션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착각을 할 지경이었다. 여기서 봤다 싶으면 어느 틈엔가 반대편으로 이동해 다시 상자를 굴리고 있다. 축지법을 쓰는 홍길동이다. 누구는 꼼짝 없이 엎어져「다리가 움직이질 않아요」라고 울상인데 누구는 흥분 상태의 다람쥐처럼 쌩쌩하다.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는 건가. 듣자하니 푸에타리코는 양파를 아주 좋아한다고 한다.
성격 좋은 그는 일에 익숙하지 않은 딘이 불쌍하다며 짧은 영어 실력으로「이렇게 하면 허리를 다치지 않아」,「배가 고픈 듯한데 이리 와서 집에서 만든 샌드위치를 같이 먹겠어?」라며 호의를 보이곤 했다. 임신한 아내 사진도 보여줬다. 정말이지 좋은 사람이다. 그리고 좋은 아빠가 될 것이다.

멍한 표정으로 전원이 꺼진 새카만 TV를 응시했다.
아버지라...
고개를 흔들며 다시 아픈 다리로 눈을 내리깔았다. 침을 바르면 낫는다는 통설이 있던데. 진짠가 싶어 입에 넣고 쪽 빨아댄 손가락으로 무릎을 문질렀다.

『아빠가 우리들에게 위조 지폐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셨으면 참 좋았을텐데.』
딘의 불평에 저편에서 압박 붕대를 챙기던 샘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평소라면「진짜로 범죄자가 되고 싶은 거냐」냉정한 목소리로 면박을 주었을 거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그 바른 생활 사나이조차 묵묵히 입을 다물었다.
고백을 하겠다. 사실 샘도 속으로 은근히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마법의 복사기로 돈을 품팡품팡 찍어내면 얼마나 편할까. 그러면 이 지긋지긋한 가난과도 안녕이다. 구멍난 자동차 지붕만 고치는게 아니라 우주인 암스트롱이 달에 깃발을 꽂은 것처럼 신형 포르쉐 스포츠카를 구입할 수도 있다. 뭐, 그 전에 스포츠카가 형제들 취향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긴 하지만.

딘과는 달리 공사장 인부로 취업을 나간 샘은 무거운 나무 자재를 나르느라 어깨가 바스라졌다. 그 까짓 것 이러고 콧방귀를 뀐 어리석은 나를 마음껏 꾸짖어 주십시오. 막판엔 시야가 마구 흔들려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달팽이 껍질은 빙글빙글」이러고 노래를 불러댔었다. 어디 아프냐며 인부 책임자가 달려와 그의 안색을 살폈을 정도다.

『힘들어... 우리도 이제 나이를 먹었나봐, 딘.』
슬퍼하는 샘의 말에 딘은 강력하게 반박했다.
『너나 그렇겠지. 난 아직 청춘이다.』
『그렇습니까. 그런데 왜 아이고 아이고 신음하며 다리를 주무르고 계십니까?』
『틀려. 내가 지금 하는 건 지방 분해를 도와 아름다운 각선미를 갖게 만드는 피부 마사지야.』
『그랬어? 그 심오한 뜻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해 미안해. 그런데 말 나온 김에 그 훌륭한 다리 각선미를 한 번 뽐내어보면 안 될까.』
『뭐냐. 그러니까 나더러 지금 모델처럼 워킹을 하라고?』
『역시 이해가 빠르군, 딘. 바로 그거야.』

이 얘기인 즉, 모텔 방문을 누군가가 쾅쾅 두드리고 있으니 누군가는 침대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이 오밤중에 뭔 일이오. 아래층에 불이라도 났소?」라고 대꾸를 해주어야 한다는 거다.
다친 어깨를 토닥거리던 샘은 턱짓으로 손잡이 쪽을 가리켰다.
형이 열어.
당연히 딘은 고슴도치처럼 두 다리를 안으로 오므리고 앉아 완강한 거부 의사를 표시했다.
동생이 하는 거다.
샘은「정말로 그러기야?!」표정으로 눈을 부릅떴다.
그래봤자 딘은 손가락으로 양쪽 귓구멍을 틀어막았다.

『이봐요, 문 좀 열어보라니까. 이봐요!』
『쳇. 잠시만요, 곧 엽니다. 연다니까요.』
형의 권리증서 및 연장자 우대의 법이라는 걸 반드시 폐지해야 한다. 고된 육체 노동으로 파김치가 된 건 둘 다 똑같은데 이럴 때마다 딘은 혼자만 편해지겠다고 같지도 않은 고집을 부린다.
짜증이 섞인 표정으로 출입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싸구려 과일향 코롱 냄새를 풍기는 관리인을 내려다 보았다. 바나나에 살구향, 그리고 홀애비 냄새가 교묘하게 뒤섞였다. 안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급한 일입니다.』
마흔이 넘은 것이 분명한 이 사내는 키가 대단히 작아 그 얼굴을 보려면 한참을 고개를 숙여야 했다. 목덜미가 아파 죽겠는데 156cm의 사내와 마주보라는 거냐. 차라리 날 죽여 소리가 혀 끝에 걸렸다.

『무슨 일인데... 읏. 그러죠.』
『할 말이 있으니까... 읏. 그럽니다.』
관리인 또한 한참 높은 곳에 있는 거인을 올려다 보느라 고개를 뒤로 꺾다 못해 벌러덩 넘어질 지경이었다. 전구를 갈아끼우기 위해 사용하는 접이식 사다리가 창고에 있다. 그걸 꺼내와야 하나 고민하며 남자가 인상을 찌푸렸다. 최소한 사과 궤짝은 필요하겠다. 샘의 얼굴이 멀어도 너무 멀다.
음, 옆에서 보니 아픈 목을 손으로 문지르는 두 사람의 행동이 거울을 마주하기라도 한 것처럼 똑같다.

『나쁜 소식이오. 형씨. 말썽을 부려대던 보일러가 드디어 맛이 갔소.』
『에... 그래서요.』
샘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쯧쯧! 뭘 모르니까 저런 태평스런 소리가 나오는게지. 하루치 요금을 환불을 해줄터이니 여기서 빨리 나가슈. 밤새 떨다 얼어죽고 싶은 건 아니겠지요? 새벽엔 제법 쌀쌀해요. 난방이 꺼지면 견디기 힘들어지지. 수리공은 해가 뜨고 나서나 올 수 있으니 오늘 밤은 북극 곰과의 댄스요.』
『예?!』
『이 사람이... 영어 몰라? 쿠바 사람이야? 영업 중지라는 것이외다. 당장 체크 아웃 하세요.』
벼락을 맞았다고 해도 이렇진 않다. 갑작스런 비보에 샘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치만 너무 늦은 시간이고요, 지금 가방을 싸서 당장 나가기엔 상황이...』

잠든 척하고 있어도 귀는 활짝 열려 있다.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딘은 속옷 차림으로 침대에서 내려와 놀라 어버버 입 벌리고 선 동생을 옆으로 밀었다.
『무리한 주문입니다. 피곤해서 못 움직여요. 게다가 이런 밤중에 어디로 가라는 겁니까.』
『이보쇼. 그럼 나더러 동태가 된 시체를 두 구나 치우라는 거요?』
남자가 손가락 두 개를 세워보이며 눈빛을 번득였다.

이미 다른 방 손님들은 따뜻한 남쪽 나라를 찾아 철새들의 대 이동을 시작했다. 커다란 여행용 가방을 끌고 모퉁이를 도는 흑인 남자의 등이 보였다. 짜증이 난다고 악을 쓰며 그 뒤를 나이든 여자가 따라갔다. 늦은 시각이었음에도 갑작스런 사람들의 움직임으로 건물 자체가 소란스러웠다. 동작이 시원찮은 승강기 포기하고 계단을 통해 걸어 내려가는 사람도 있었다. 희미하게 욕설이 들려왔다. 좀 떨어진 곳에서 직원이 잠긴 문을 또 두드려댔다. 숙면을 방해받은 트럭 운전사가 신경질을 부려댔다. 여차하면 멱살을 붙잡을 기세다.「어쩌라는 거야?!」라며 누군가 버럭 고함을 질러댔다.
자, 이제는 당신들 차례요. 엑소더스 영화 감상은 끝났느냐며 팬티 차림새의 딘을 흘겨봤다.

『시체는 치울 일 없어요. 3월 초에 얼어죽는게 이상한 거지.』
『몰라서 하는 소리. 이 지역에선 4월에도 눈이 내린다오.』
『그래봤자 얼마나 내린다고. 추위 같은 건 근성으로 이겨낼 수 있어요. 내 말이 맞지? 새미.』
춥다 불평하지 않을 터이니 자신들을 그냥 내버려두라 했다. 내친 김에 하루치 방세를 딱 절반만 받으라고 하면서 웃음을 팔았다.
『근성이면 되고 말고. 우린 아직 젋거든요. 그러니까 쉭쉭. 얘기는 이걸로 끝.』
『어허라, 나중에 후회할텐데.』
『후회가 뭐죠. 후후후 하고 웃다가 회반죽에 걸려 넘어지는 건가요.』
『알았소. 얼어서 죽던지 말던지 자네들 소원대로 하시오.』
힘에 붙여 말리고 싶지도 않은 눈치다. 관리인은「명복을 빕니다」라는 재수 없는 소리를 하곤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임팔라 지붕을 고치느라 거액을 지출하면서 세 개 먹던 샌드위치를 한 개로 줄이고 있는 판국이다. 식비마저 위협받는 마당에 - 샘이 빈혈을 일으킨 까닭이 여기에 있다 - 싸구려 모텔의 난방 장치가 고장났네 불평을 할 처지가 결코 아니다. 발 뻗고 누울 침대만 있으면 만족. 화장실에서 바퀴벌레 떼거리가 분노의 대탈주 영화를 촬영하는 걸 목격했어도 아무 말 안 했던 그들이다.
가방을 꾸려 여기서 얼른 나가라고? 웃기지 말라고 그래.
더 얘기할 것 없다며 딘은 서둘러 침대로 돌아갔다. 정상적으로 움직이려면 가능한 최대한 숙면을 취해주어야 한다. 끙 소리를 내며 이불을 끌어당겼다. 내일은 신축 주택 건설 현장에서 일을 하기로 했다. 인부들 집합 시간은 오전 7시다. 물론「제 시간에 일어날 수 있다면」이란 가정이 붙긴 하지만.
엉금엉금 기어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졸음이 달라붙은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자, 그럼 신사 숙녀 여러분? 싸게 취침이라는 걸 해봅시다.

『차라리 내기 당구를 하는게 낫겠어.』
어쩐지 기운이 없어 보이는 샘의 혼잣말에 딘이 한쪽 눈을 슬그머니 올려떴다.
『어엉... 네가 참말로 내 동생 새미가 맞는 겨? 혹시 껍데기만 새미고 내용물은 구멍이 퓽퓽 뚫린 모짜렐라 치즈라던가 하는 거 아냐?』
『뇌에 구멍 안 뚫렸으니 안심해, 딘.』
『너라면 안심이 되겠니? 네 입으로 내기 당구가 낫겠다는 문제성 발언이 나오고 있는데. 내가 아는 새미는 절대로 그런 말은 하지 않아. 반대로「흘리는 땀의 보람이 있어 내일도 션샤인!」이딴 소리를 읊지.』
『그런 계집애 같은 말을 잘도 하겠다.』
『녹음기 가져다 코앞에서 틀어주랴.』
『음..........』
『됐어. 잠이나 자. 몸이 피곤하니까 신념이 막 흔들리는 모양인데 네가 방황한다고 지구가 거꾸로 돌거나 하진 않을게다.』
여기까지 말하는 동안 이미 의식이 절반은 달아났다. 베개를 껴안고 황홀경에 빠진 나머지 맨 마지막 문장은「거우로 돌거나 하이 앙거든」이라 발음되었다.
생이 불만을 담아 무어라 중얼거렸다.
『지금 뭐라고 말을 하는 건지 못 알아 듣겠어, 딘... 딘?』
『옹, 형은 널 마이 살랑... 푸우.』
채 끝맺지 못 하고 딘은 곧 인사불성이 되었다.

Posted by 미야

2007/04/12 15:58 2007/04/12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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