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불펌 및 무단 링크는 사양합니다. 비공개 카페라고 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예요. 툴툴... ※


화가 치밀어 그렇게 말은 하긴 했다만 곧 후회했다.
딘의 얼굴로 두려움이 떠올랐다. 헤프게 웃으며 여자에게 작업을 거는 형도 끔찍하지만 저것이야말로 샘이 가장 싫어하는 표정이다. 극도의 경계심을 띄우고 주춤거리는 딘을 볼 적마다 웅웅거리는 전기톱을 사람들을 향해 아무렇게나 휘둘러대는 사이코 연쇄 살인마라도 된 기분이 되어버린다. 평소처럼 몹쓸 강아지 예뻐하는 눈빛이 아니다. 뼈로 만든 왕관을 쓰고 붉은 카펫 대신 피바다 위를 걷고 있는 악마 대왕과 마주쳤다는 식이다. 뱉은 말을 도로 주워담는게 가능하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 밖으로 밀쳐내려는 동작과 같이 하여「저건 내 동생 샘이 아니라 몬스터다, 악마다, 귀신이다!」따위의 염불을 외우고 있는 딘은 진짜지 끔찍하다. 팔을 잡고 일으켜 세워봤자 소용 없을 거라며 엉덩이에 힘을 팍 주고 있는 모양은 또 어떻고. 이대로 의자에 달라붙고 싶다는 소원을 램프의 요정 지니에게 빌고 있다. 완력으로는 샘에게 이길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어떻게든 해볼 작정인가 보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되도록 테이블 모서리를 붙잡았다.「절대로 네놈에게 붙들려 화장실로 끌려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라는 굳은 의지가 읽혀지는 행동이었다.

대화의 주제를 슬슬 바꿔볼 필요가 있었다. 찡그리며 자기 몫의 커피를 입으로 가져갔다.
『긴장 풀어. 그러고 있으니까 꼭 악성 치질에 걸려 의자에 앉아있기가 대단히 곤란한 환자처럼 보여. 웃기는 행동은 그만하고 전화나 받아. 그거 알아? 아까부터 형의 핸드폰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고.』
『아항~ 안 속아, 샘. 그거 속임수지. 형을 너무 만만하게 봤어.』
『뭐? 이게 전부 페인트라고? 그러니까 일단 전화로 관심을 돌리게 한 다음에, 형이 시선을 아래로 내리깐다 싶으면 바로 지금이다 소리를 지르며 덤벼들 거라 생각한다는 거야?』
『응.』
『맙소사, 딘. 어떻게 거기서 정색하며「응」이라 대답할 수가 있어! 형과 얘기를 하다보면 나까지 머리가 이상해지는 것 같아. 남의 이목이 두려워서라도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을 번쩍 집어드는 짓은 하지 않아. 프로레슬링 놀이는 10년 전에 졸업했다고. 딘이 상상하는 그런 흉악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테니 마음 푹 놓고 전화나 받아.』
진짜로 그랬다간 지역 신문으로「식당에서 곰이 식사 중인 사람을 습격하다」라는 기사가 실리게 된다. 재작년 러시아 전역에 회자되었던「백곰이 모피를 벗어던지고 술집에서 난동을 부리다」뉴스 타이틀 다음으로 우스꽝스러울 거다. 아니, 다시 생각해보니 그 제목이「술 취한 백곰이 모피를 벗었다가 음란물 공연죄로 당국에 체포당하다」였던 것도 같다. 어느 쪽인지는 살짝 헷갈린다.

요구만 한다면 보이스카웃 선서라도 하겠다며 가슴을 똑바로 폈다.
『맹세라도 해줘?』
『못 믿겠는데. 너, 뒤로 손가락 꼬고 있지.』
행여 곰이 앞발을 들지는 않을까 주의를 흐트러뜨리지 않은 채 딘은 아침 밥을 오물거렸다.
『딘. 제발 살려줘.』
『하지만 벨소리도 안 울렸는 걸.』
『진동 모드로 바꿔놓은 거 아니었어? 그치만 진짜야. 전화가 왔다고.』

샘의 지적은 사실이었다. 그제서야 딘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시선을 내려 핸드폰을 확인했다.
『정말이네. 그런데 왜 벨이 안 울리냐. 게다가 발신자 정보 없음? 뭐야, 이거. 고장났나.』
땅바닥에 떨어뜨렸다거나, 실수로 변기에 풍덩 빠뜨린 기억은 없다. 그래도 침대에 훌쩍 던진 적은 있으니 납땜이 부실한 부품 하나가 제 자리를 잃었다는 가설에 힘이 쏠린다.
딘은 손바닥으로 애꿎은 기계를 탁탁 때려 말썽을 부리는 핸드폰이 저절로 고쳐지길 희망했다.
무식하다고? 설마. 듣자하니 최근 유행하고 있는 사이언톨로지 관계자들은 오작동을 일으킨 전자렌지를 기도 하나로 원래대로 복구시켰다고 주장하며 신도를 모집하고 있는 판국이다. 이게 진짜냐고? 진짜니까 문제다.
<오늘은 환상적인 날이었다. 커피를 마시러 아래층으로 내려갔는데 커피 기계가 윙윙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래서 앞으로 손을 뻗어 기계 주위로 손을 움직여, 광선을 발사시켜 반사되게 했다. 그 결과 미립자가 흐르는 위치를 통해서 고장난 기계 부위를 정확히 알아냈다. 그 부위의 분자 구조를 바로잡아 윙윙거리는 소리가 멎었다. 얼마 후에 내 방의 에어컨이 덜거덕거리는 소리를 내기에 어찌된 이유인지 알아내어 바로잡았다.>
거기에 비하면 지직거리는 텔레비전을 앞뒤로 마구 흔들어 기어코 미식 축구 중계방송이 나오게끔 만드는 우리들 아버지들은 예레미야 선지자나 다름 없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아무리 기다려도 들려오는 대꾸는 없고.
어깨를 으쓱이며 귀찮다는 듯이「종료」버튼을 눌렀다.
『이상하네. 요즘들어 자주 이런다니까. 아무래도 핸드폰을 새로 사던가 해야 할까봐. 통화가 연결되었는데도 소리가 하나도 안 들릴 때가 종종 생겨. 그것도 두 번, 세 번씩 꼭 그런다니까.』
『누가 장난치는 건 아니고?』
『그럼「하아, 하아」숨소리라도 들려야 하잖아.』
『아무 소리도 안 나?』
『전혀. 꼭 물속에서 잠수복 입고 전화 받는 기분이야.』
『음... 그렇담 혹시 받는 사람이 여자가 아니라서 그런 거 아닐까.』
『네 말대로 그럴 가능성도 없잖아 있겠군. 그럼... 옛다.』
딘은 두말할 것 없다며 자신의 핸드폰을 동생에게 훌쩍 던졌다.

샘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목소리도 커졌다.
『뭐야, 지금 그 발언은! 형이 아니라 내가 받으면 상대방이「하아, 하아」할 거라는 거야?!』
『응.』
『딘! 나도 남자야!』
『그랬어? 그거야말로 온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엄청난 소식이군. 그러니까 새미? 변태 자식이 숨을 헐떡이며 네 팬티 색깔이 뭐냐고 물으면 심플한 파랑이라 대답을 해주는 거다.』
『형!』
『아님 레이스 달린 섹시한 검정이라고 거짓말 하든지. 후후후.』

홧김에 식탁을 거꾸로 뒤집기 전, 다시 착신을 알리는 알람이 켜졌다.
샘은 손가락을 하나 들어「좀 있다 보자!」라는 뜻을 분명한 뒤에 형을 대신하여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다행이다. 변태는 샘을 여자로 착각하지 않았다. 하악거리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음에 노골적으로 안도해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상대방은 지금 입고 있는 속옷의 색에 대해서 물어보지도 않았다. 그저 기분 나쁜 - 이걸 도대체 무어라 해야 한단 말인가 - 엄청난 무게의 침묵이 전파를 타고 대량으로 흘러 들어왔다.

재차 확인해 보았다.
『잘못 거신 것이 아니라면... 여보세요.』
『어때, 새미. 저쪽에서 네 속옷 상표가 뭐냐고 물어보니?』
『쉿!』
수영장을 가득 메우고도 남을 량의 흙을 일시에 거꾸로 들이붓는 듯한 박력의 고요함이었다. 샘은 축축한 무덤가를 떠올렸고, 썩은 흙을 파먹는 벌레, 그리고 비루먹은 검은 말을 탄 해골의 기사가 등장하는 타로트의 열 세번째 카드를 생각해냈다. 기사는 왕관이 벗겨진 교황과 수치를 입은 여왕을 밟아대며 언덕 꼭대기로 정복자의 깃발을 꽂는다. 전쟁의 마지막을 알리는 환호성은 울려퍼지지 않는다. 대신 들판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건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침묵이다.
생명을 창조한, 태초의 말씀이 선포되기 이전의 대지.
그곳엔 그림자조차 깨끗하게 말살된 유령만이 하릴 없이 떠돌고 있다.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졌다. 직업적 직감이라는게 경고를 보내왔다.
『이봐요?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기계 결함으로 인한 단순한 오류라고 하기엔 석연치 않은 그 무엇인가가 신경을 긁었다. 샘은 계속해서 귀를 기울였다. 어두운 방안에서 의자와 같은 사물을 피해 돌아다닐 적의 요령으로 집중했다.
동생의 표정이 점점 더 심각해지자 딘도 시덥잖은 장난을 관뒀다.
『샘?』
『모르겠어.』
그래봤자 가벼운 기침 소리도 나지 않았다.
1분 정도 뒤에 전화는 저절로 끊겼다.

『쳇! 가뜩이나 호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데 핸드폰까지 말썽이야.』
딘은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다.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단말기 고장, 전파 방해, 수신지역을 벗어남, 아니면 대단히 수줍음이 많은 (나에게 반한) 아가씨, 기타등등의 가능성을 저울질했다. 특히나 마지막 가능성에 입술이 둥글게 구부러졌다. 예쁜 금발의 여자에게라면 스토킹 당하는 것도 괜찮다. 별자리를 물어봐서 기피 대상인 전갈좌가 아니라는 것만 확인이 되면「물 위의 하룻밤」이 아니라「물 침대에서의 하룻밤」소설을 즉석에서 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딘이 대단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동생이 방해 공작 및 훼방을 놓을 것이 분명하긴 하지만, 김칫국부터 마신다고 딘은 보들보들한 여자의 가슴을 상상하며 손바닥으로 살갗을 쓸어내리는 동작을 해보였다.

지나다니는 사람들 눈을 생각하쇼 - 단단히 주의를 주며 변태 형에게 핸드폰을 돌려주었다.
『이거, 어쩐지 오싹하지 않아?』
『응. 오싹해.』
『딘? 내가 지금 말하는 건 즐겁게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 종류의 그런 오싹함이 아니야.』
『음... 그랬니. 하여간 이 형은 잘 모르겠는데.』
딘은 별 일 아니라며 마지막 남은 팬 케이크 조각을 남김 없이 주워다 입안에 털어 넣었다.

허나 형의 말대로 정말로 별 일 아니라 생각하면 샘 윈체스터가 아니다.
8시간 뒤, 고된 육체 노동을 마무리하고 모텔로 돌아온 딘의 눈에 맨 처음 들어온 건 커다란 헤드 셋을 쓰고 노트북 앞에 앉은 샘의 거대한 등짝이었다.
다녀 왔느냐는 인사도 빼먹었다. 대신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사람처럼 등을 둥글게 구부리고는 마우스를 바쁘게 딸각거렸다.
『헤이.』
헤드 셋 때문에 귀는 닫혔다고 치자. 그래도 코는 열려져 있을 터이니 최소한 딘이 싸들고 온 햄버거의 맛있는 냄새는 맡았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얄밉게 고개 한 번 안 돌린다.
깡그리 무시당한 것 같아 약이 올랐다. 먼지를 뒤집어 쓴 겉옷을 벗어 아무렇게나 바닥에 던지면서 다시 한 번 힘 주어 동생의 이름을 불렀다.
『샘! 임마! 못난아!』
음악을 감상하고 있다? 정말로 그런 거라면 저놈의 망할 음악 CD를 발로 밟아 깨버릴테다.
『헤이! 아가씨!』
그제야 샘이 눈빛을 험악하게 치켜뜨며 딘을 돌아다 보았다.
『지금 누구더러 아가씨라 하는 거야.』
『바로 너. 그러니까 들리면 들리는 척을 하란 말이다.』
『미안. 일 하는 중이었어.』
『일? 무슨 일. 워터게이트*?』

노트북 화면에 가득 나타난 물결 무늬와 빨간색과 노란색으로 표현된 각각의 나무 막대 그래프를 눈여겨 본 딘이 이마를 찡그렸다. 머리가 깡통인지라 화면 속의 그림들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까진 모른다. 그래도 눈치껏 샘이 머리에 쓰고 있는 헤드 셋과 조합하여「불법 도청」이라는 단어를 어렵지 않게 유추해낼 수 있었다. 동생이 다시 마우스를 움직이자 노란색 막대 그래프가 천장까지 닿으려 했다. 딘은 그것이 대단히 불길하다고 생각했다.

『뭘 하고 있는 건데. 이참에 헌터 일은 관두고「뭉크」로 직업을 바꾸려고?』
『응?』
뭔 소리인지 모르겠다며 샘이 속눈썹을 깜빡였다. 동생은「탐정 뭉크」드라마를 잘 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샘은 대학에 다녔던 시절에 교양 과목으로 들었던 서양 미술사 강의를 떠올렸고, 노르웨이의 표현주의 화가인 에드바르드 뭉크의 이름을 기억해냈다. 설마, 딘이 말하는게 이건가. 샘은 뭉크의 대표작인「절규」를 흉내내며 손바닥으로 두 뺨을 감쌌다.
그래봤자 세기말 히스테릭한 절규가 아니라「나홀로 집에」의 매컬리 컬킨이었다. 덩치 커다란 곰이 사람의 바보 짓을 따라하는 것만큼 귀여운 건 없다. 딘은 가볍게 실소했다.
『올라온다.』
『뭉크라며.』
『장난하나.』
『이걸 말하려던게 아니었어?』
『아픈 다리가 아니라 엉뚱한 다리를 잘랐어. 거액의 의료 소송을 각오하도록 해.』
딘의 핀잔에 멎적게 머리를 긁던 샘은 귀에서 헤드 셋을 떼어냈다.

『딘? 혹시 사람의 가청 영역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손바닥을 비비며 조심스런 태도로 물어오는 말에 딘은 세차게 도리질했다.
『몰라.』
『20Hz에서 대략 16KHz 정도야.』
『그래서 뭐.』
『개는 그보다 더 높은 소리를 들을 수 있어. 50KHz까지 듣거든. 그래서 개를 훈련시키는 피리를 아무리 불어도 사람은 듣지 못해. 돌고래나 고래가 내는 소리도 마찬가지고.』
『그렇구나. 가르쳐줘서 고마워. 좋은 이야기였어. 그런데 지금 네가 말하고픈 요점이 뭐니. 동물의 왕국, 내지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이냐.』
『그게 아냐. 그러니까 내 말은... 이게「우리 일(our job)」이라는 거야.』
샘은 심각한 표정으로 형에게 들고 있던 헤드 셋을 내밀었다.

Posted by 미야

2007/04/17 15:40 2007/04/17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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