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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에... 이번 이야기도 덜 끝났는데 다음 이야기《Bloody Blast》의 1차 콘티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예전의 슬레쪽의 기분 나쁜 소동의 재현을 걱정하시는 분들이 일부 내지는 전부를 블라인드 처리를 하자는 의견을 내놓고 계셔서 그 점을 두고 얘기를 다시 진행하는 중입니다. 상황을 보고 알려드릴게요. ※


「으아, 디러!」라는 의미로 손가락을 대놓고 옷에 비벼 문지르고 있는 형을 보고 샘은 발끈했다. 방구를 소리내어 뀌는 것으로도 모자라 손톱으로 엉덩이를 긁어대는 주제에「나는 네놈이 그렇게 지저분한 녀석인지 미처 몰랐어」라고 말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샘은 허리에 손을 얹은 채 삐딱한 태도를 취했다.
몽정하고 더럽힌 속옷을 만장하신 가운데 침대 위로 널어놓아 아버지에게 한바탕 야단을 먹은 것도 딘이다.
『임마! 사람이 열 네 살이었을 때 딱 한 번 실수했던 걸 아직까지 울궈먹기냐!』
땅콩 샌드위치를 걸고 누가 목욕을 하지 않고 오래 버티나 내기를 했을 적에 압도적인 차이로 승자가 되었던 것도 딘이다.
『그건 내가 여덟 살 때 얘기잖아!』
이가 드글거리는 노숙자 캠프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잠들곤 했던 대단한 신경줄이다.
『지저분하긴 했어도 이는 없었어. 너, 지금의 그 발언은 짐 신부님에게 큰 실례야.』
요컨대 하나도 깨끗하지 않은 사람이 깨끗한 척 하는 것 같아 기분이 안 좋다.
『개뿔 같은! 난 너와는 달리 어제 저녁에 머리를 감았다고. 봐, 이 청결한 머리카락을!』
흥이다. 짧은 머리에 비누칠 대충 하고 찬물로 얼른 헹궈냈으면서 뭐가 그리 잘났다는 것인지?

어둠 속에서 딘이 으이그 소리를 내며 두 팔을 들었다 놓았다. 가파른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는 일도 쉽지 않은데 동생의 짜증까지 고스란히 받아주어야 한다는 건 성가시다. 어깨를 가볍게 으쓱이는 동작은 이른바 휴전 신청이다. 입씨름은 나중에 계속하자는 간단한 몸짓에 샘은 일단 더 이상의 추긍 - 형이 나보다 훨씬 더럽잖아, 인정하란 말이야 - 을 멈췄다. 사실 이놈의 망할 계단은 더도 말고 발을 헛디디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깍아지른 절벽에 발판이랍시고 판자 몇 개를 대충 가져다 붙인 꼬락서니다. 이걸 만든 사람은 안전 수칙 미준수로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한다. 35° 내외가 아니라 50°가 넘는 살인적 기울기다. 그냥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는게 훨씬 쉽겠다. 머리 정수리부터 그냥 곤두박질치지 않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입을 다물어야 했다.

『어딘가에 전등이 있을 것도 같은데...』
조명 스위치를 찾아 벽면을 더듬거렸다. 아쉽게도 계속 허탕만 쳤다. 그래서 이번엔 재니스의 키가 자신보다 훨씬 작다는 걸 염두에 두고 짐작되는 높이보다 두 뼘 정도 아래 부근을 살폈다.
에이, 역시나다. 그 흔한 전선 기럭지 하나 안 보인다.
손전등을 들어 위를 비춰보았다. 이거다 싶은게 눈에 안 띈다. 대신 오래된 먼지가 가득하다.
가느다란 거미줄이 얼굴에 와닿는 듯한 불쾌한 느낌.
샘은 좁고 밀폐된 곳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하루에 세 번씩 식사를 가져다 주어야 했을 터인데 이건 좀 이상하군. 눈을 감고도 스프와 빵접시를 옮기는게 가능했다는 건가?』
아니면 하루에 단 한 번도 이리로 내려오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것은 너무나도 섬짓한 가정이었다.
심하게 두근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손전등을 아래로 치우쳐 발잔등을 비추어봤다. 역시나 바닥에도 고운 먼지가 수북하다. 사람이 계속해서 들락거렸다고 가정하기엔 상태가 썩 좋지 않다. 거기다 냄새도 났다.

『머리를 안 감았다며, 샘.』
『그 냄새를 말하는게 아니라는 건 딘도 잘 알잖아.』
감정을 가득 실어 형의 등을 쳤다.
누가 뭐라고 했는감요, 맞은 곳이 가렵다며 딘이 어깨를 움찔거렸다.

그러고도 영양가 제로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뭐랄까, 이 냄새... 빗물이 스며든 오래된 다락방 같아. 딘.』
『틀렸네요. 여기엔 습기는 없어. 그것보단 30년만에 옷장에서 꺼낸 청바지 냄새 같지 않니?』
『비유를 해도 참 독창적이다.』
『후후후. 내가 원래 시적이잖냐.』
『독후감 숙제랍시고「몽테크리스토 백작은 탈옥범입니다」라는 한 문장만 달랑 써갔으면서 그런 말이 참 잘도 나온다.』
『누구 동생이 이리 삐딱해. 최소한 난 너처럼「즐거운 우리집」이라는 주제로 허구 100%의 소설은 쓰지 않았어. 우리 할머니는 매일 아침 맛있는 팬 케이크를 직접 구워주십니다? 단풍나무 시럽도 많이 부어주시곤 해요? 그걸 읽고 아빠가 비참한 표정으로 줄담배를 피웠다고.』
『팬 케이크는 형이 구워주었으니 아주 거짓말은 아니지.』
『졸지에 할머니가 된 내 입장은 뭐냐. 난 미세스 다웃파이어가 아니야.』
『물론 그러시겠지. 미세스 다웃파이어는 번쩍이는 은식기에 프랑스 요리를 담아내면 담아내었지, 밑바닥이 새카맣게 탄 맛 없는 팬 케이크는 굽지 않을 거야.』
『자식, 그렇게 맛 없다면서 접시 밑바닥까지 싹싹 핥았니?』
『그야 음식을 남기는 건 일절 허락되지 않았으니까. 형이 주먹을 들고 있는데 어떻게 남겨. 그리고 아빠가 구워주신 것보단 양반이었거든.』
『음... 감히 부정은 못 하겠군. 천하무적이던 아빠도 가스렌지 앞에선 한 없이 키가 작아지셨지. 다른 건 몰라도 아빤 요리 솜씨 하나는 젬병이었으니까.』
딘의 불평에 샘이 킬킬 웃음을 터뜨렸다.
『맞아. 아빠가 만든 엉터리 치킨 스프를 두고 형이 먹고 죽을 것인가, 아님 개수대에 통째로 퍼붓고 장렬히 맞아 죽을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던게 생각나.』
『그런 적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결론은 먹고 죽자 - 였었던가.』
『아니.「실수로 냄비를 거꾸로 엎었다로 위장하자」였어.』
『뭐? 우리가 그런 얄팍한 술수를 썼다고?』
『왜 깜짝 놀라는건데. 그러니까 형이 독창적이라는 주장은 씨도 안 먹힌다는 거야. 뭐가 독창적이냐. 속이 훤히 보이는 거짓말인데. 아빠가「이것들이 어디서...」라며 화내시던게 지금도 선명하다.』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안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덧붙여 형의 기억력은 진짜지 형편 없어. 발효 요구르트 수준이야.』
폭언에 화가 단단히 난 딘이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동생을 돌아다 보았다.
『인석아! 자동차를 조립할 줄 아는 발효 요구르트라는게 세상에 있을 것 같냐!』
『알게 뭐야. 난 유산균에 대해선 아는게 그리 많지 않아.』
그걸 무시한 채 샘은 좌우로 불빛을 비췄다.

안쪽으로 걸어갈수록 공간은 더욱 좁아졌다. 여전히 사람이 오작가작 했다는 증거는 없다.
후우, 하고 딘이 숨을 길게 내쉬었다. 공기는 대단히 탁해서 솜으로 코를 틀어막은 듯했다. 공기중에 석면이 가득 떠다니고 있는게 아니길 바랄 뿐이다. 석면은 대단히 위험한 발암물질이다.

돌연 분위기를 바꿔 딘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새미는 아마 살아 있지 않을 거야.』
그리고는 쓸데없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 재빨리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내가 지금 말한 새미는 네가 아니야. 오케이?』
『오케이.』
한줌을 덜어내도 크게 변함이 없을 어둠 속에서도 샘이 인상을 잔뜩 찌푸리는게 느껴졌다.
『그러니까 형의 말은... 새미는 악령이다? 아, 여기서 새미는 내가 아니야. 오케이?』
『오케이.』
쓸데없는 혼동을 피하기 위해 별도의 장치가 필요할 것 같다. 이 새미, 저 새미 이러니까 골치가 아팠다. 칼칼해진 목도 있겠다, 딘은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오른쪽 벽면을 발로 툭툭 걷어찼다.

『너도 이미 짐작했겠지? 재니스는 아마 너랑 비슷한 별종이었을 거야.』
샘은 딘의 걱정과는 달리 담담하게 반응했다.
『초능력자라고 해도 괜찮아, 딘.』
『그래, 샘. 네 말대로 초능력자라고 하자. 그것이 집안 내력이었는지, 아니면 재니스 개인의 문제였는지는 지금에 와서 확인할 길이 없지만... 아무튼 그녀의 부모는 아이를 일곱 살이 될 때까지 특수하게 만든 방에 가둬두는 것으로 초능력을 없앨 수 있다고 믿은 것 같아. 점쟁이의 조언이었을까? 그거야 모르지. 마법에 대해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 그렇게 하는게 좋을 거라 알려 주었을까? 그것도 모르지. 부두교의 사제가? 알게 뭐야. 어쨌든 확실한 건 그녀는 일곱 살이 될 때까지 헥사그램이 그려진 방안에서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는 거야. 그건 나름대로 굉장히 힘든 일이었을 것이고, 그때의 상처는 어른이 되고 나서도 잠재 의식에 계속 남아 있었겠지. 아무래도 쉽게 잊혀질 종류의 경험은 아니잖아? 피크닉 가방을 들고 강가로 소풍을 갔던 것도 아니니까.』
『불쌍해...』
『나도 그렇게 생각해.』
『아빠가 알았다면 그런 바보 짓은 하지 말라고 말렸을텐데.』
『그러게나 말이야.』

오른쪽 벽면은 꽉 막혀 있다. 딘은 위치를 바꿔 이번엔 왼쪽 벽면을 발로 찼다.
『억지로 무의식 저 아래로 가라앉혔을진 몰라도 그런 경험은 일종의 시한폭탄이나 마찬가지지. 결국 뭔가가 계기가 되어 아물었던 상처가 도로 곪아 터졌어. 자글자글 끓던 물이 마그마처럼 폭발했고, 둑이 무너졌고, 봇물이 터졌고, 분노와 좌절감이 고스란히 되살아났어. 아마도 그건...』
『임신.』
『이엽.』
딘이 손전등을 손아귀에서 빙글 돌렸다.

『하지만 출산 기록은 없었는데?』
『임신 초기에 사산하면 기록엔 안 남아, 샘. 아니면 유전자 이상이다 뭐다 해서 의학적 이유로 중절을 했을 수도 있어. 아니면 그녀 스스로 아이를 원치 않았을 수도 있고. 내 생각엔 그녀는 임신 스트레스를 이겨낼 수 없었을 거야. 자신이 그렇게나 싫어했던 짓을 자기 자식에게 고스란히 반복해야 한다는 걸 깨닫는 순간... 팟.』
딘은 풍선이 터지는 듯한 손짓을 해보였다.
『평소에도 대단히 위태위태했을 거야. 아까도 전화기가 저절로 날아오는 거 봤지? 그건 염력으로 움직인 거야. 그녀의 부모가 딸 아이를 악마라고 무서워했을 법도 해.』
샘의 목소리가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재니스는 악마가 아니야, 형.』
딘은 서둘러 사과했다.
『그래, 악마는 아니지. 그녀는... 그래. 그저 남들보다 약간 다른 별종이었어.』

이쯤해서 샘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그녀가 출산을 하지 않았다면 도로 원상복구 되어야 하는게 옳지 않아? 불안감은 해소되었을 테니까. 우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어야 할 아기가 없으면 어둠에 가둬두어야 할 아기도 동시에 없는 거잖아.』
『아니. 아기는 있어, 샘. 망상, 환상, 착각, 나쁜 기억... 뭐라고 불러도 좋아.』
『맙소사... 일곱 살이 되기 전의 재니스 자신이라는 거야?』
『정답. 그래서 전화 목소리는 두 종류였던 거야. 춥다고 호소하며 엄마를 찾는 연약한 아기, 그리고 나쁜 년의 각을 뜨라는 무서운 말을 서스럼 없이 뱉는 어른. 둘은 같으면서 달라. 하나이면서 동시에 둘이야.』

막다른 장소에 이르렀다. 딘은 눈짓으로 급하게 그려넣은 듯한 헥사그램 무늬를 가리켰다.
딘이 긴장하며 무기를 챙기는 기척을 냈다. 덩달아 샘도 긴장했다.
한동안 그들의 숨소리 이외엔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숨 막히는 고요함과 어둠 속에서 샘은 자신의 손바닥이 땀으로 축축해지는 것을 느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바늘이 떨어지면 커다란 접시가 쨍그렁 깨지는 소리로 들릴지도 모른다.

『새미...?』
지금 딘이 조심스럽게 부른 건 샘 윈체스터가 아니다.
하지만 샘은 딘의 부름에「네」라고 대답하고 싶은 욕구를 강하게 느꼈다.
동생의 생각을 고스란히 읽어낸 것 같다. 딘이 쓸데없는 말을 덧붙였다.
『샘, 너 말고.』
『나도 알아.』
『새미?』
『이번에도 날 부른 거 아니지? 딘. 이거 진짜 무지 헷갈려.』
『미안해. 이번엔 널 부른게 맞아. 손전등으로 저길 비춰보겠어? 무슨 소리가 들린 것 같아.』
『젠장. 착각하지 않도록 따로 신호를 정하는게 낫지 않겠어?』
『알았어, 샘. 다음부턴 널 부를 때《멍청아》라고 할게. 그럼 안 헷갈릴...』

순간 호오, 하고 가늘게 내쉬는 숨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동시에 차가운 손이 딘의 다리를 잡았다.
《엄마...》
그것은 보라색 손톱을 가진 어린아이의 손이었다.

Posted by 미야

2007/05/15 19:23 2007/05/15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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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윈체스터 좀비 (젠장!)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아앗, 진짜지 애쉬까지 죽게 만들면 어쩌라는 거야~!! ※


이 경우엔 총은 그다지 소용이 없다. 죽음에 대한 공포를 넘어선 강력한 그 무엇이 이미 머리를 지배하고 있음이다. 짐승의 배를 갈라 방금 끄집어낸 내장을 코앞에서 흔들어봤자 겁을 먹을 리 없다. 눈이 뒤집힌 상황에선 그런 건 수퍼마켓에서 파는 훈제 소시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흥분한 나머지 피 냄새를 맡기는커녕 그게 무슨 색인지조차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손톱을 세우고 덤벼들지도 모른다고 판단한 딘이 오히려 안전권 뒤로 물러서야 했다.
눈이 붉게 충혈된 여자는 엉뚱하게도 그걸「덤벼라!」신호로 오해했다.
 『어쩔 수 없었어! 아이를 보호해야 했어! 내 어머니와 아버지가 날 보호했던 것처럼!』
『말도 안 돼. 이게 보호하는 거라고?』
『네놈들이 뭘 알아! 내 자식이 괴물이 되지 않게 하려면 이 방법밖엔 없었어! 우리 엄마가, 아빠가 가르쳐준 방법으로!』
『괴물?』
『그래! 괴물! 사악한 짐승이 되어 제 어미를 피 흘리고 죽게 만들 괴물! 괴물이야!』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그렇다고 해도 딘은 핸드폰을 꾸셔넣은 바지 주머니를 내려다볼 짬이 없었다. 제기랄이었다. 이런 절묘한 타이밍으로 바비 아저씨가 안부 전화를 걸어올 리는 없을 것이고...
재니스가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딘은 전화벨이 그냥 울리게 냅둔 채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가 핸드폰을 받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아차린 걸까. 이번에는 집안에 있는 전화벨이 시끄럽게 울리기 시작했다. 더하여 달각달각 소리를 내며 창틀이 흔들렸다.
재앙을 담은 대접이 거꾸로 뒤집어졌다. 양의 피가 문설주에 발라지지 않은 집으로 호곡소리가 울려퍼질 시간이 되었다. 이제 곧 장자들은 모조리 죽어나갈 것이다. 아니, 성읍에 거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들이 다 엎어져 죽임을 당할 것이다. 하늘로 재앙의 별이 떠올랐다. 노스트라다무스가 예언한 공포의 대왕이다. 소돔과 고모라로 재를 태우는 유황불이 내려올 것이다.

눈이 벌겋게 달아오른 재니스가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제발 그만하라 외쳤다.
『조용히 해! 시끄럽단 말이다! 닥쳐! 새미, 그만둬!』
새파랗던 샘의 얼굴색이 한층 더 창백해졌다. 이제 그는 스머프의 사촌이 되었다.
맙소사. 하필이면 아이의 이름이 새미였다.
딘은 속으로 식은 땀을 흘렸다. 덩달아 아명이 똑같은 그의 동생은 총 맞은 비둘기처럼 굴었다.
그걸 재니스가 놓칠 리가 없었다. 40kg의 여자가 자신보다 두 배의 몸무게를 가진 남자를 두 팔로 밀쳐 쓰러뜨렸다. 결과로만 보자면 요코즈나 등급의 스모 선수의 괴력이었다. 딴 곳에 정신을 팔고 있던 샘은 트럭에 치었다며 벌러덩 드러누웠다.
평소라면 그 꼴사나움을 마음껏 비웃어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혼이 절반은 증발해버린 듯한 샘의 모습이 영 심상치 않았다. 지금의 그는 끔찍이도 싫어하는 광대에게 손을 붙잡힌 다섯 살짜리 어린애였다. 강제로 싫어하는 놀이기구에 앉혀져 지구를 일곱바퀴 반이나 돌게 생겼다. 울먹거리던 동생이 팔꿈치를 세워 일어나려 애쓰며 짧은 단어를 입안으로 굴렸다. 그게 자신의 이름이라는 걸 알아차린 딘은 피가 마르는 기분이었다.

『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동생 곁으로 가고자 했다.
하지만 왼발을 드는 순간 새카맣게 생긴 덩어리가 일직선으로 날아왔다. 소스라치게 놀란 딘은 순전히 반사적으로 머리를 숙였다. 간발의 차이로 네모난 물건이 관자놀이를 스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를 공격한 것은 다름 아닌 가정용 유선 전화기였다.

자, 그렇다면 여기서 문제.
딘은 장총을 들고 있다. 샘은 바닥에 넘어져 있다. 재니스는 그들 형제를 위협하며 마룻바닥에 네 발로 서있다.
그럼 전화기는 누가 던졌나? 집안엔 그들 세명 외엔 아무도 없다.

딘의 뺨에서 핏기가 가셨다. 코드가 뽑혀진 채 전화기가 정상 작동했다. 탱크가 밟고 지나갔음에도 통화가 가능했다는 유명 제조사의 전화기보다 훨씬 굉장하다. 최대치로 하여 벨소리가 때릉때릉 울렸다. 뿐만 아니다. 징그러운 플라스틱 덩어리는 아무래도 자체적으로 생명을 얻은 것이 분명했다.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음에도 달각 소리를 내고 녹음된 음성 메시지를 자동으로 토해냈다.
《여보? 나요. 캐빈이오. 오늘은 늦을 것 같소. 저녁은 먹고 들어갈 터이니...》
삐익 신호음과 같이하여 전부 재생되지 않은 메시지가 일괄 삭제되었다.
《엄마... 엄마... 엄마...》
본체에서 흘러내린 수화기에서 이상한 소리가 흘러나온 건 그것과 거의 동시였다.

『망할!』
온몸을 칭칭 감은 투명한 밧줄을 떨어낸 건 세 사람 중 딘이 맨 처음이었다.
어디를 봐도 비정상적인 것이 분명한 전화기를 발로 걷어찬 뒤, 그는 여전히 뻣뻣하게 굳어있는 동생에게 단호한 투로 명령했다.
『샘! 이 멍청한 자식아! 자빠져 있지만 말고 움직여!』
『으, 으응...』
『움직여!』
품속에 넣어둔 소금통을 꺼내들었다. 그것이 과연 도움이 될련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 최소한 빈손인 것보단 나았다.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 이 집에 놓인 전화기가 모두 몇 개인련지 알 길이 없었다. 다만 일반적으로 한 가정에 전화기는 두 대 이상이다. 친구들과의 잡담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끝내는 말썽쟁이 청소년 자녀가 있는 경우엔 다섯 대도 가능하다 - 샘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형! 위험해!』
샘이 경고하는 것과 동시에 재니스가 원숭이처럼 펄쩍 뛰어올라 딘의 등으로 달라붙었다. 동시에 살이 씹히는 고통이 등줄기를 꿰뚫었다. 엄마야, 생으로 물어뜯긴다. 당혹감과 아픔에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제정신이 아닌 여자를 떼어놓기 위해 팔을 휘둘렀다. 그래봤자 생살이 고스란히 씹히는 와드득 소리는 멈출 줄을 몰랐다. 바깥으로 번개가 치고 있는 것도 아닌데 시야가 번쩍 빛났다. 이러단 살가죽이 뿌리채 떨어져 나가겠다.
「재앙이구먼. 십중팔구 병원에서 광견병 예방 주사를 맞아야 할 거야. 그치만 이빨 자국이 사람이라는 점에서 이걸 무어라 변명을 해야 하는 거지?」
목덜미가 타는 듯이 아파왔다. 견딜 수 없어 붙박이 책장쪽으로 뒷걸음질쳤다.
재니스의 몸이 야구와 축구에 관한 서적들과 정면 충돌하면서 산더미 같은 책들이 앞으로 쏟아졌다. 그의 목을 감싼 팔의 힘이 느슨해졌다. 이때다 싶었다. 쐐기를 박기 위해 쿵 소리가 나도록 책장으로 몸을 다시 한 번 더 찍었다. 그것은 적절한 판단이었다. 선반 부분이 정확하게 재니스의 옆구리를 치면서 그녀를 일시적인 호흡곤란 상태로 몰아넣었다. 신음을 토해낸 재니스는 집안의 각종 열쇠 꾸러미를 넣어둔 사각 접시와 함께 바닥을 뒹굴었다. 몸을 둥굴게 웅크린 채 기절이라도 한 모양이다. 누운 그대로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열쇠.
목덜미로 뜨뜻한 피가 흐른다는 것도 잊고 열쇠 꾸러미를 챙겼다.
아이를 가둬둔 방의 열쇠가 그중에 섞여있기를 간절히 빌면서 일단 주머니 속에 넣었다.

『어딘가에 지하로 내려가는 통로가 있을 거야. 그걸 찾아야 해, 샘!』
『맙소사...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려. 아무래도 남편이 돌아온 것 같아.』
『아무래도 좋아! 들어오고 싶으면 맘대로 들어오라고 그래! 우린 이걸 마무리 짓는다.』
성큼 걸음으로 복도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입사귀가 누렇게 뜬 스파티필름 화분이 놓여진 화탁을 지나쳐 집안을 두리번거렸다.
왼편으로는 주방 겸 식당이 펼쳐졌다. 오른편으로는 데스크탑 컴퓨터가 놓여진 남편의 서재, 부부의 드레스룸, 그리고 화장실로 짐작되는 문이 나란히 있었다.
이중에서 지하의 비밀 방으로 연결된 장소는 과연 어디일까. 초록색 눈이 사방을 훑었다.
재빨리 머리를 굴려봤다. 욕실은 일착으로 제외해도 무방할 것이고... 신문과 잡지, 플라스틱 책꽂이가 놓여진 무미건조한 방도 빼버렸다. 남편은 일벌레다. 그리고 평범했다. 아내 재니스의 비밀을 같이 공유하는 것 같지 않았다. 설사 안다고 해도 자신과는 관계 없다고 무시할 타입이다.

서재를 지나쳐 드레스룸을 벌컥 열어젖혔다.
『영화를 보면 비밀의 통로를 이쯤에다 만들어 두던데. 어디 보자...』
계절에 맞지 않아 치워둔 남편의 양복더미를 옆으로 밀고 손전등을 높게 들었다. 옷가지들을 넣어둔 상자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져 남는 공간이 거의 없었음에도 딘은 이곳저곳을 손바닥으로 탁탁 쳐가며 확인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이곳일까? 아니다. 울림이 둔탁하다. 그렇다면 반대편은? 원피스와 여성용 여름 재킷이 걸린 옷걸이 틈새로 주먹을 넣고 벽을 두드려댔다. 조사에 방해가 된다 싶자 자선 단체에서도 기부 받기를 거절할 것 같은 낡은 옷가지 몇을 끄집어선 공처럼 둘둘 말아 뒤로 던졌다.
물어뜯긴 목덜미가 욱씬거리고 아파왔다. 마르지 않은 피가 셔츠 깃을 적시고 있다는 걸 느끼며 작업을 계속했다.

『형! 남편이 왔다니까!』
『신경 꺼.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야.』
『신경을 안 쓰게 생겼어?! 부인은 기절해 거실에 누워있고, 사방으로 물건이 어지럽혀 있는데! 남편이 경찰을 부를 거야.』
『어쩌면.』
『틀려. 이 경우엔「어쩌면」이 아니라「확실히」라고.』
『쟁알거리지 말고 손전등으로 여길 비춰봐. 아무래도 내가 제대로 찾아낸 것 같다.』
『뭐?』
『여기 이 부분! 나무로 마감한 벽면이 헐거워. 충분히 떼어낼 수 있을 것 같아. 아니, 이 경우엔 옆으로 미는 건가. 기다려. 작은 구멍이 있어. 이거, 잘 만들었는데. 음, 열쇠 구멍인가. 좋아, 좋아... 열려라, 열려라. 착하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사이즈가 맞을 것 같은 열쇠들을 하나하나 꽂아보았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열쇠를 꽂았다 돌리는 동작을 반복했다. 단번에 맞는 열쇠를 찾아 문을 여는 행운까진 바라지 않았다. 그래도 이건 너무나 성가시다. 짜증이 치솟아 막판엔 열쇠 구멍으로 쇠붙이를 들쑤시는 형상이 되고 말았다. 최악의 경우엔 가지고 있는 모든 열쇠가 맞지 않는다는... 아! 돌아간다!

샘의 눈이 휘둥글 벌어졌다.
드륵 소리가 나는 것과 같이하여 성인 어른이 허리를 굽히고 충분히 지나갈 수 있는 통로가 나타났다. 여닫이 문 저편으로 드러난 수상쩍은 어둠을 쏘아보던 딘은「약속 시간에 늦었다고 발을 동동 굴러대는 토끼도 없는데 굴속에 들어가게 생겼어」라고 푸념했다.

『모르긴 몰라도 저 안은 위험할 거야.』
암염탄을 챙기면서 딘이 경고했다.
『내 뒤로 바짝 붙어 따라와. 정신 단단히 차려야 한다, 샘.』
그리고 혹시나 싶은 마음에 쓸데없는 잔소리 하나를 덧붙였다.
『저 아줌마가 말하는「새미」는 네가 아니야. 넌 나.의.「새미」이고, 손이 무진장 많이 가는 말썽쟁이 동생이지. 넌 그 점을 헷갈려서도, 잊어서도 안 돼.』
『......』

너는 괴물이 아니고, 괴물도 되지 않을 거야.
네가 뭘 생각하는지 다 안다며 딘이 손을 뻗어 동생의 머리카락을 아프지 않게 쥐었다.
『그 사실을 결코 잊지 마. 새미.』
얼굴을 잔뜩 찌푸린 샘이 무어라 반박하려 했다. 그러나 입안에서만 빙글빙글 도는 단어들은 적절한 문장을 만들지 못했다. 한참을 노력해봤으나 피곤함만 곱절이 되었다.
그래서 기껏 한다는 대답이 이거였다.
『형... 있잖아. 나, 어제 저녁에 머리 안 감았어.』
애정을 가득 담아 샘의 머리카락을 쥐고 있던 딘의 입술이 일직선으로 굳는 순간이었다.

Posted by 미야

2007/05/12 22:22 2007/05/12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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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딴짓을 좀 하느라 예정보다 늦었습니다. 까마득히 잊어먹고 있었는데 글의 배경이 2007년 3월이예요. 도중에 덥네, 어쩌네 하는 이야기가 나온 것 자체가 치명적 실수... (창백)
저도 다른 분들처럼 가슴이 화아~ 해지고, 심장이 찌릿찌릿해지는 멋진 글을 쓰고 싶어요. 하지만 이런 단순한 부분에서조차 감당이 되질 않으니 영 글렀어요. ※


뜬금없이 여기서 어린아이가 왜 나와.
『갑자기 왜 그래. 저 집에 어린애가 있다니. 쉐퍼드 부부에겐 자식이 없다는 건 형도 잘 알잖아. 재니스의 의료 기록엔 출산 이야긴 없어. 딘! 제발 나랑 말 좀 해. 얘기를 하자니까. 응?』
샘은 자신의 힘만으로는 형을 통제할 수 없음에 - 마찬가지로 딘 또한 자신의 동생을 통제할 수 없음을 늘 불평하니까 피장파장이지만 - 땅을 치고, 가슴을 쳤다. 긴급시 단추 하나만 눌러「동작 그만」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장치를 발명하는 사람이 나오면 필히 노벨상을 주어야 할 것이다. 뭐, 철인 28호는 싫다며 제대로 된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버린다 할지언정 샘은 사비를 몽땅 털어 감사한 마음으로 돈을 챙겨줄 의향이 있었다.

소매춤을 붙잡기도 전에 딘은 서슬 퍼런 표정으로 반대편으로 길을 건너갔다. 영화 포스터에 나오는 마지막 모히칸족 인디언 전사처럼 오른손엔 무시무시한 장총을, 왼손엔 손도끼를 들었다. 완전히 막무가내다. 그 뒷 모습에서 명백한 살인의 뉘앙스를 읽어들인 샘은 딘의 머리가 살짝 잘못되었다는 한 가지 가능성밖엔 생각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저녁으로 먹은 햄 치즈 샌드위치가 상했다. 마트에서 괜히 20% 할인을 한게 아니다. 추측하자면 유통기한이 1년은 넘었다.
그렇다고 해도 어째서 그놈의 몹쓸 대장균은 사람의 아랫배가 아닌 머리를 공격하는 것인지? 샘은 카누를 타고 강 하류를 따라 내려가다 나이아가라 폭포라도 만났다는 식으로 두 팔을 머리 위로 높게 올렸다.
『으아~ 이해가 안 가! 식중독에 걸리면 머리가 아니라 배가 아파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렇다고 여기서 외마디 고함을 질러대면 이웃들 중 누군가는 누가 부부싸움이라도 시작했나 싶어 호기심에 창문을 기웃거릴 것이다. 그러면 도끼를 든 수상한 사람을 눈으로 목격할 것이고, 한바탕 숨을 훅 들이마신 뒤에,《여보! 텍사스 도끼 살인마가 우리 동네에 나타났어!》호들갑을 떨다가, 결국은 숨 넘어가는 태도로 전화기를 찾을 것이다.
경찰과는 아무래도 사이가 좋지 않은 이상 샘은 딘의 뒤통수를 향해「멈춰!」라고 큰 소리를 낼 수 없었다. 엉거주춤한 것도 잠시, 산탄총을 품에 안고 성큼 걸음으로 형의 뒤를 따라갔다.

드라이아이스로 문지른 듯한 감각이다. 허리로 냉기가 자르르 타고 흘렀다.
햇빛 쨍쨍한 낮과는 완전히 달라 3월의 밤공기는 이가 시리도록 차가웠다.
더하여 고개를 뒤로 돌리고 동생이 잘 따라왔는지를 확인한 딘의 표정도 엄청 쌀쌀맞았다.

『샘? 이리 와서 여기 손잡이를 부수어라.』
『에엑?! 지금 농담하는 거지. 안엔 사람이 있다고!』
『그래서 뭐. 여기서 정중하게 초대장이 올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자고?』
『초대장까진 바라지 않아. 그치만 좀 더 은밀하게 행동했으면 좋겠어. 우린 지금 너무 눈에 띄어!』
『무슨 말이 그리 많아. 부술 거야, 안 부술 거야.』
『으이그!』

산탄총을 거꾸로 들고 문의 손잡이를 세게 내리쳤다. 한 번, 두 번... 쇠붙이로 만들어진 걸쇠가 불투명한 울림을 내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찌그러진 경첩이 성대가 망가진 고양이처럼 울어댔다. 동시에 딘이 오른 발을 들어 문짝을 세게 걷어찼다.
『샘! 넌 재빨리 거실로 가서 카펫을 치워!』
진입과 동시에 특공 대장이 호각을 불며 명령했다.
『맙소사. 집안에 있을 재니스는 어쩌고!』
『어쩌긴. 총으로 위협해야지. 그 일은 나에게 맡겨.』
『그게 그렇게 말처럼 쉬운 일인줄 알아?!』
악당으로 오해 받는 것과 정말로 악당이 되는 건 천지차이다. 속으로 욕을 한 바가지나 퍼부어대면서 - 당연히 겉으로는 그 두 배로 악담을 퍼부어대면서 딘을 지나쳐 거실 쪽으로 몸을 날렸다. 카펫을 치우라고? 말이 쉽지. 그 이전에 소파며 커피 테이블 같은 부피 듬직한 가구들을 모조리 끌어내야 한다. 덧붙여 정리가 되지 않은 잡지와 신문이라는 소품이라는 것도 있다. 평소 집안 정리를 게을리한 가정주부가 있어 유리 주전자와 마시다 만 커피잔까지 올라와 있었다. 샘은 어쩔 수 없이 바닥으로 떨어지면 깨지는 물건부터 주섬주섬 챙기기 시작했다.

철컥 소리가 나도록 총알을 장전하면서 딘이 악을 썼다.
『계집애 같은 자식! 네놈 엉덩이를 뻥 차주랴? 네가 무슨 출장 가정부냐! 조신하게 주전자까지 나르고 지랄이야!』
『그럼 나더러 어쩌라고!』
『두꺼운 팔뚝 근육은 두었다 어디다 써먹을겨. 내가 허락할테니 한 번에 밀어붙여!』
말을 끝맺기가 무섭게 2층 침실쪽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어깨로 푸른색 숄을 두른 재니스가 2층에서 총총걸음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살아있는 인간을 조준하는게 상당히 뒷맛 나쁜 일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그는 단호한 자세로 무기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큰 소리에 놀라 침실 밖으로 뛰쳐나온 재니스는 날벼락을 맞았다는 걸 미처 감추지도 못 했다. 가뜩이나 새하얀 얼굴이 약품으로 표백한 종이처럼 변했다. 그녀는 짤막한 비명을 질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혀가 굳었고. 손으로 입을 가렸으며, 자신의 머리를 정확히 겨누고 있는 총구에 경악했다.
샘은 그녀가 견기지 못하고 기절할 거라 생각했다. 정신을 놓지 않는다고 해도 최소한 다리가 풀려 주저앉겠구나 여겼다. 하지만 그건 XX라는 염색체를 가진 생물이 의외로 강하다는 걸 모르고 하는 소리였다. 그녀는 샘의 생각과는 정 반대로 행동했다.

『꺄아악! 이 뻔뻔한 도둑놈!』
그녀는 당돌하게도 벽에 걸려진 액자를 잡아뜯고 그것이 마치 성스러운 엑스컬리버라도 되는 양 높게 치켜들었다. 그리고 가죽 소파를 번쩍 들어올리고 있는 곰 덩치를 향해 힘껏 던졌다.
날아오는 흉기에 소스라치게 놀란 샘은「무기를 들고 침입한 괴한에게 결코 격렬하게 저항하지 마십시오」라는 경찰의 홍보 팜플렛이 다 까닭 있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것이 세금 낭비의 결정판이라고 욕하던 나를 부디 용서하여 주십시오. 극도로 흥분한 나머지 괴한이 쏜 총에 맞을 수 있다는 걸 새카맣게 잊었거나, 아니면 총알이 부드러운 밀가루로 만들어졌을 거라 굳게 믿는 눈치다. 그녀는 용감했다. 아니, 무모했다. 두 번째 엑스컬리버가 비수와도 같은 흉폭함을 띄고 날아왔다.
이제 치워야 할 의자따윈 문제가 아니었다. 샘은 넙죽 엎드리며 머리를 보호하고자 두 팔을 들었다. 재수가 없어 모서리로 맞으면 피가 나는 정도로는 끝나지 않는다. 게다가 악에 받친 사람은 평소보다 힘이 곱절로 세지는 법이다. 재니스의 눈동자로 수상쩍은 광채가 돌았다. 샘은 바로 그 점이 두려웠다.

『제발 진정해요!』
명백한 항복의 제스츄어에도 용서는 없었다. 쨍그렁 소리가 나면서 유리가 깨졌다.
『경찰을 부를테다! 당장 내 집에서 나가!』
기세가 한풀 꺾여 몸동작이 둔해진 동생을 대신하여 딘이 이에 응수했다.
『그거 좋지. 불러! 당장 경찰을 부르라고.』
그는 재니스가 무기를 든 자신이 아닌, 가구를 치우려는 샘을 공격했다는 점을 놓치지 않았다.
이는 곧 자신의 추측이 상당한 확률로 적중했음을 암시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녀는 분명히 딘이 가지고 있는 장총이 아닌, 샘이 옮겨대는 거실 가구들로부터 만만치 않은 위협감을 느끼고 있었다.

세 번째 엑스컬리버를 바위에서 뽑아낸 아더는 - 뭔 놈의 벽에 액자를 그리도 많이 걸어두었는지 그 소동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손에 쥐고 써먹을 수 있는 총알은 여전히 충분했다. - 작렬하는 태양빛 아래서 왕의 상징을 높게 들어올리는 대신 몸을 둥글게 움추렸다.
백성들이여, 마법사 멀린이여. 아더는 지금 번뇌하고 있소이다.
좌우를 힐끔거리는 눈매는 그녀가 이 상황을 마음속으로 저울질하고 있음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어쩐지 비열한 느낌을 주는 세로 모양의 잔주름이 그녀의 표정을 한층 더 음산하게 만들었다.
머뭇거리며 아더는 자신의 칼을 내려다보았다. 바위에서 뽑아낸 칼은 엘프의 피를 이은 음류시인이 노래했던 모습과는 너무나 달라 한낱 이끼보다 더 초라했다. 틀렸다. 이것은 전설의 무기 같은 종류가 아니다. 마법은 풀렸고 전설의 영웅은 사라졌다. 대신 그곳에 자리한 건 아이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게 될 발가벗은 임금님이었다.

『뭐해요, 아줌마. 어서 경찰을 부르라고!』
딘의 으름장에도 불구하고 재니스는 전화기를 잡지 않았다.
침입자, 경찰, 그리고 숨겨둔 비밀.
세 명은 동시에 서로의 표정을 살폈다.
그리고 알았다. 이들 중 그 어느 누구도 경찰의 개입을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총을 어깨 높이로 들고 있는 딘이 이때다 하고 턱을 움직였다.
소리 없는 종용에 샘은 다시 가구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재니스는 숨 죽여 우는 소리를 내며 계단 난간을 움켜잡았다. 금방에라도 바스라질 것 같은 그녀의 표정은 좀약 냄새 지독한 오래된 드레스를 입고 무도회장을 찾은 노처녀처럼 흉칙했다.
애원하며 팔을 벌렸다. 불쌍히 여겨달라며 호소했다. 그래봤자 가슴에 꽃을 꽂은 젊은 청년들은 빅토리아 시대의 유골단지를 피해 뿔뿔이 달아나느라 바빴다. 이를 본 바이올린 연주자가「당나귀 왈츠」를 신나게 켜는 것으로 그녀를 두 번, 세 번 조롱했다.

바짝 말라버린 입술을 혀로 핥으며 탄식했다.
『제발 그만둬요! 당신네들이 지금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 건지 알아요?!』
『당신이야말로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알고 있어요?』
그렇게 말하면서 딘은 드디어 조각 러그를 치우고 카펫을 싹 걷어내기 시작한 샘을 곁눈질로 보았다.
정확하게는 그가 보고 있는 건 동생이 아니라 화장이 말끔하게 지워진 맨 바닥이었다.
미모의 이집트 공주를 보쌈하는 식으로 카펫을 돌돌 말다 말고 샘이 심각한 얼굴을 했다.
의견을 구하려는 걸까, 그가 턱을 들었다.
나도 봤다며 딘이 눈짓했다.

이곳 바닥에도 무늬가 있다.
또다. 헥사그램이다.

재앙이 선포되어 두꺼비의 비가 대지로 내렸다. 차가운 파충류의 뒷다리로 얼굴을 얻어맞은 것도 아니건만 재니스가 의미가 불분명한 비명을 질러댔다.
『안 돼, 안 돼~!! 아직은 때가 다 차지 않았어! 만지면 안 돼~!!』
그걸 무시하고 딘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나중에 세척제에 적신 솔로 마루를 박박 문질러 그 흔적을 지웠죠. 그건 무척 힘든 일이었을 거예요. 오로지 혼자서, 그것도 남들 모르게 닦아내야 했어요. 덕분에 둥글게 원 모양으로 나무가 상했죠. 그치만 위로 카펫을 새로 깔면 모든게 감쪽같을 거라는 걸 알았어요. 그래요, 당신은 이 모든게 성공적으로 은폐되었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리고 수 년동안 안심했어요... 하지만!』
잠시 숨을 고른 뒤, 얼굴을 찌푸렸다.
『흔적을 지운다고 없었던 일로 할 수는 없어요. 당신은 똑바로 기억하고 있었죠. 화상 자국처럼 머리에 선명히 각인되어 있었어요. 곰팡이 냄새, 지하실의 탁한 공기, 불러도 오지 않는 엄마, 절대로 볼 수 없는 태양... 그러니까 당신은 그게 옳지 않은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을 거예요! 감옥 같은 곳에서 무려 7년 동안이나!』
비난의 빛을 띄고 딘은 그녀를 노려보았다.
『무려 7년 동안이나! 바로 그 점이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아요. 도대체 왜 그랬던 거죠? 일곱 살이 될 때까지 그 집 지하에 갇혀있던 건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당신이었잖아요.』
동시에 화가 나서 외쳤다.
『그게 어떤 거라는 걸 모르지 않았을 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멍청하게도 당신은 당신 부모님들이 그렇게 한 것처럼 똑같은 일을 했어요! 바로 이곳! 여기에서! 당신의 집에서!』
발을 굴러 헥사그램 문장을 짓밟았다.
『대답해! 어린 아이에게 뭔 짓을 저질렀느냔 말이다! 이 망할 잡년아!』

Posted by 미야

2007/05/09 21:54 2007/05/09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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