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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 라고 적고 우걱우걱 여행기라 읽는다. 진짜지 잘 먹는다. 전생에 굶어 원한이 사무쳤냐 -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


속을 메스껍게 만드는 신선한 페인트 냄새가 코를 찔렀다.
샘은 호주머니로 손을 집어넣은 채 여러가지 의미가 함축된「오우~」소리를 냈다.

보통「유령」이라고 하면 낡고, 오래되고, 지저분하고, 버려지고, 삐걱거리는 폐허를 연상시키는 법이다. 거울 대용품으로 사용이 가능한, 반질거리는 새 수도꼭지와는 아무래도 이미지가 맞지 않는다. 더러운 거미줄을 가발 대신 뒤집어쓰고 등장하면 모를까, 샤넬 립스틱을 곱게 바른 유령이라는 건 상식 밖이다.
『일단은 썩 괜찮은... 집으로 보이는 걸.』
수리가 끝난 지붕과 하얗게 칠이 발려진 회반죽, 보강된 나무 기둥들, 새로 짜맞춘 문짝이 세월의 때를 훌륭하게 벗어 던졌다. 얼핏 봐선 새로 지은지 한 달이 넘지 않은 주택처럼도 보인다. 가스 배관에 칠을 새로 했고 마당의 잔디도 보기 좋게 다시 깔았다.
시험삼아 울타리를 붙잡고 좌우로 밀어봤다. 튼튼하게 잘 만들었다. 열 받은 취객이 자동차로 들이받지 않은 이상 허리케인이 불어닥쳐도 끄떡 없을 것이다.

샘의 표정이 더욱 이상해졌다. 영감이 없다는 건 별도로 치고 수상한 기척은 전혀 느낄 수 없다.
오염을 막기 위한 비닐 포장은 아직 치워지지 않았다. 정리가 덜 되어 분위기는 산만하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점이 매력적이다.「새 것」의 이미지가 확고부동함이다. 대문 앞으로「임대합니다」라는 푯말이 붙어 있다. 아이들을 두 명 정도 낳아 키우는 중산층 부부라면 좋아라 하고 연락을 취해올 것 같다. 과연 저런 곳으로 유령이 숨어 가냘픈 호흡을 하고 있을까? 신나 냄새에 산 사람도 머리가 아플 지경인데?
그래서 뒤를 돌아다보며「잘못 짚은 거 아냐?」라고 물었다.
딘은 일단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은 유보했다.

『뒷마당으로 오래 전에 죽은 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뿌리가 썩어서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건물 쪽으로 쓰러졌다고 하더군. 다락을 덮치고 침실 쪽까지 멋지게 망가뜨린 모양이야. 마침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아서 큰 문제는 없었다고 해. 만약 사고 당시 사람이 있었으면 큰일날 뻔한 거지. 천만 다행이었다고 인부들 책임자가 그랬어.』
딘은 손가락으로 지붕의 한 지점을 가리키며「저기가 무너졌다」라고 말했다.
『언제까지고 구멍이 휑~ 뚫린 꼬락서니로 내버려둘 수는 없으니까 지붕을 고치면서 곳곳을 손봤어. 주인인 캐빈 쉐퍼드 씨는 동네 반대편에 살고 있고, 세입자 부부는 계약이 채 만료되기 전에 근방으로 이사를 갔다고 하더군. 그게 3개월 전이라고 해. 특별한 문제가 생겨 갑자기 떠난 건 아니야. 집에 대한 불평은 없었으니까.』
『음, 그렇다면 직장 문제이거나 아님 부인의 변덕이었겠지.』
『글쎄다. 어쨌거나 자칫하다간 자기 머리통이 지붕과 같이 해서 날아갈 뻔했다는 걸 알고는 놀란 마음에 세입자 남편이 한 번 들렸어. 서른 다섯 정도 먹은 젊은 사람이었는데 체격이 좋더구나.』
『직접 봤어?』
수고들 하십니다 - 하고 정중하게 인사하더라. 그리고 목소리를 낮추고 넌지시 묻더군. 쓰러진 나무에 그네를 달았다가 아닌갑부다 하고 철거했는데 그게 자기네들 책임이 되겠느냐고. 난 일용직 잡부라 잘 모르겠다고 했지.』
『흐응.』
 
여기서 서성이지 말고 가까이 가보자며 딘이 손짓했다.
발에 스친 포장용 비닐이 바스락 소리를 냈다. 샘은 페인트로 뒤범벅이 된 그것들을 피해 화단 가까이로 바짝 붙어 걸었다. 그리고는 곧 후회했다. 스프링클러 덕분에 물기를 머금은 풀들이 어찌나 미끄럽던지 두 번 정도 어이쿠 소리를 내며 비틀거려야만 했다. 앞장 서던 딘이「조심해, 아가!」라고 주의를 주었다. 못 마땅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샘은 툴툴대며 형의 뒤를 따라갔다.

집을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인지 현관 문은 잠겨져 있지 않았다. 조금은 부주의하다 싶은 조처였는데 탁 트인 동네 분위기로 보자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닐지 모른다.
샘은 고개를 길게 빼고 뒷문으로 이어진 기다란 자갈 길로 시선을 돌렸다. 눈에 띄는 거라면 언제 버려진 건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 담배 꽁초가 전부이다. 거기에 EMF 미터기를 가져대봤자 눈금은 요~만큼도 안 움직일 거다.
눈가에 손바닥을 대고 창문을 기웃거렸다. 거실은 녹색 계열의 페인트가 칠해져 있었다. 색감은 괜찮은데 조명이 달려 있던 곳으로 전선이 튀어나와 그게 좀 흉했다.

『주변 기전력은 정상 수치야. 건물 내력도 깔끔하고... 카운티 오피스에도 사고가 있었다는 기록은 못 찾았어. 집안에 강도 같은 강력 범죄가 있었다는 기록도 없고. 아직까진 수상하다 싶은 건...』
『이엽!』
『음? 따로 무슨 할 말이라도?』
말꼬리를 썩둑 자른 형을 향해 뒤돌아섰다.
딘은 특유의 입이 근질근질한 사람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잘 들어, 샘. 여기서 이사를 나간 넬슨 씨가 그랬어. 임대 약관에 이런 조항이 있다는 거야. 집안에서 개나 고양이를 키워서는 안 됩니다. 가족 중에 7세 미만의 아동이 있으면 안 됩니다... 집이 망가질까봐 걱정을 하는 것치곤 너무 예민하잖아. 어린애는 여기에 살면 안 된다니.』
마당에 심은 화초의 종류에 대해서까지 엄격한 규정을 지켜야 한다고 우기는 집 주인들이 더러 있다. 규정은 거의 편집증에 가까워 임대차 계약서 두께만 논문집 수준이 되기도 한다. 커튼을 달 적의 주의점, 그리고 창문을 열어 공기를 환기하는 시간까지 시시콜콜 참견을 하는 것이다. 가구 배치시 벽면에서 25cm 떼어낼 것, 벽에 못질 절대 금지, 거실 내 대형 어항 설치 금지, 정원에서의 바비큐 금지. 심지어 자국이 남지 않도록 침대 기둥에 고무 패드를 두겹으로 꼭 깔아두라 엄포를 놓기도 한다. 명문화된 내용이 어찌나 복잡한지 세입자들은 차라리 집을 사는게 낫겠다며 부르르 떤다.
 
그래도 이건 좀 억지다. 애완동물은 그렇다치고 아이들도 안 된다고?
차별성 조항이라며 고발당할 수준의 요구 사항이다. 샘의 눈이 휘둥그레 벌어졌다.
『헤에. 진짜?』
『넬슨 씨의 부인이 둘째를 임신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사를 나갔던 거래. 어떻게 알았는지 몰라도 중계인을 통해 출산 전에 집을 비워달라고 연락을 해왔다나. 갑자기 그러는게 어디 있느냐고 불평하니까 여기에 분명 싸인하지 않았느냐며 계약서를 들이밀더래. 그래도 속으로 너무 심했다 싶었는지 이사 비용은 집 주인이 전액 부담을 했다는 거야. 와우~! 놀랍지 않니. 캐빈 쉐퍼드 씨는 애들을 무지하게 싫어하나봐.』
『와! 그거 무지 이상하다!』
『그치?』

까닭이 궁금해진 딘은 벽돌을 나르다 말고 잠시 멈추어 서서 거기에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거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넬슨은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느냐며 어깨를 으쓱였댄다. 그것으로 얘기는 끝났다. 일용직 잡부 주제에 더 깨물을 분위기도 아니었고, 넬슨은 약속에 늦었다는 투로 짐짓 시계를 쳐다보았다. 이어지는 건 틀에 박힌 이야기였고, 그나마 짧았다.

 『애들이 살 수 없는 집이라.』
『개나 고양이도 살 수 없는 집이야. 오싹하지?』
『고약한 혼령이 머무르고 있는 건가. 어떻게 생각해? 딘.』
『그건 아닌 것 같아, 새미. 혹시 집안에서 쥐가 시끄럽게 돌아다니는 듯한 기척은 없었느냐고 물어봤을 적에 넬슨 씨의 표정을 네가 직접 봤어야 하는 건데. 전등이 깜빡이는 증상도 일절 없고, 수도관에서 이상한 소리도 안 났다고 했어. 오히려 살기 좋은 집이어서 이사를 나가는게 섭섭했다고 하드라.』
『단순히 입에 발린 소린 아니었을까? 쓰러진 나무에 그네를 달았다는 점 때문에 손해 배상을 해야 하는 건 아닐까 무지 걱정하는 눈치였다며.』
『알게 뭐람. 하여간 중요한 건 내가 맨 처음으로 이상한 전화를 받았던게 바로 저 집안에서 였다는 거야. 아직도 생생해. 워째 집의 구조나 모양새가 켄자스의 불타버린 우리 집이랑 비슷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전화가... 전...』

신나게 얘기하다 말고 딘은 서둘러 입을 다물었다.
실수로 금기어를 내뱉었다.
그게 꽤나 속상했던지 딘은 잔뜩 찡그린 표정으로 가렵지도 않은 머리를 긁어댔다.
그것은 억지로 봉쇄해버린 기억이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모양, 벽에 걸려진 사진 액자, 창문으로 내려다보이는 정원의 나무, 벽지의 색, 아기 방에서 들리던 딸랑 소리...「내가 미쳤지」혼잣말 했다. 덩달아 몸을 움찔거린 동생과는 눈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대신 애꿎은 현관을 노려보는 그의 눈동자는 평소보다 색이 곱절로 짙었다.

『콜록.』
어색함을 감추고저 샘이 기침했다.
엄마가 죽었을 당시 네 살이었던 딘과는 달리 갗난아이였던 샘은 켄자스의 집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기억이 없으니 아무렇지도 않다. 형이 워낙에 끔찍스럽게 생각하니까 덩달아 꺼림직스럽게 여길 뿐이다. 본인 스스로에겐 무섭다는 기분도, 두렵다는 마음도 남아 있지 않다. 사진으로만 그 집이 어떠하다는 걸 보아왔고, 아빠나 형의 입으로 설명만 들었다. 게다가 그 설명은 자세하지도 않았다.
겁에 질린 것이 분명해 보이는 여자가 울면서 창문을 주먹으로 두드리는 걸 환상으로 보았을 적에도「저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밖엔 들지 않았다. 그 이야길 들은 딘이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짓는 걸 보고 나서야「어라, 이게 아닌가 보다」싶었을 정도다. 그러고도 옛날 집으로 돌아가보자 당당히 얘기를 꺼내는 것으로 형을 기겁하게 만들었으니 생각이 없어도 진짜로 없다고 할 수 있다.

일부러 밝은 목소리를 내며 딘의 어깨를 쳤다.
『알았어. 여기가 처음 전화를 받은 장소라는 거지?』
『으, 으응.』
『좋아. 그럼 2층부터 올라가볼까?』
조사를 시작하자며 품속에서 측정기를 꺼내든 샘이 계단을 가리켰다.

그걸 보고도 딘은 뒤로 빼는 제스츄어를 취했다.
『난 여기서 일할 적에 2층엔 단 한 번도 올라가지 않았어, 샘.』
『에? 망가진 지붕을 고쳤다며.』
『무거운 자재는 도르래를 사용해서 위로 올렸고, 아래층에서도 할 일은 많았거든. 쓰러진 나무를 베어내고 그걸 치웠어. 2층엔 안 올라갔어.』
저 위로 무서운 괴물이 살고 있다. 그렇게 온몸으로 주장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흐음, 켄자스 집과 그렇게나 비슷하게 생긴 건가.
어쩐지 내키지 않는 기분이 되어 샘 또한 계단 위로는 다리를 올려놓지 않았다. 대신 계측기를 쥐고 있는 팔을 최대한 길게 뻗어 수상한 기운은 없는지를 살폈다. 그것은 전혀 전문가 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그런다고 괴이한 에너지를 포착할 수 있다면 진작에 그 집은 무너졌다. 당연히 계측기의 눈금은 정상 수치에 머물렀다. 샘은 스스로가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내가 돌았지.』
고개를 흔들며 난간을 잡았다.
그와 동시에 끄응끄응 이 앓는 소리가 들렸다.
『가지 마.』
평소라면 딘은 그런 동생을 향해 제대로 하라며 야단을 쳤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오히려 조사를 방해하려 들었다. 이거, 이거. 조금은 성가시다.
앞으로 그가 보일 반응을 걱정하며 샘이 어렵게 운을 떼었다.
『저어, 아무래도 올라가서 침실 쪽을 살펴봐야 할 것 같은데...』
역시나 생각했던 그대로다. 딘의 얼굴이 굳었다.
『형?』
『그래. 내가 아무래도 노망이 났다. 인정해. 제 정신이 아니야. 그치만 어쩌라고.』
땀으로 축축해진 손바닥을 바지춤에 문지르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거기서 널 다시 데리고 나오긴 싫단 말이야.』

Posted by 미야

2007/04/24 10:06 2007/04/24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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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


『가방을 꾸려, 샘. 당장 이놈의 재수 없는 동네를 뜰 거야.』
사방에 널어놓은 옷가지를 주섬주섬 챙겨가며 동생을 향해 명령했다. 이에 반하는 기타 의견은 일절 수렴하지 않겠음.「동생과의 사전 협의」라는 단어를 빼먹은 이 키 작은 보스는 성큼 걸음으로 반대편 벽장까지 곧장 향했다. 버릇대로 공처럼 둥굴게 말아둔 양말을 찾아 비닐 백에 넣었다. 꺼내놓은 책들과 자료로 모은 신문 스크랩들은 아무렇게나 쓸어담아 가방 속에 마구 찔러 넣었다. 냉장고에 넣어둔 음식은 두고볼 것도 없다며 포장된 상태 그대로 쓰레기통으로 직행, 그래도 무기류는 따로 신경을 써서 정리를 해두어야 한다. 베개 아래 숨겨둔 호신용 칼을 뽑아 육안으로 날의 상태를 점검한 뒤, 가죽으로 만들어진 전용 칼집에 잘 꽂았다.
어디 보자, 그럼 또 무엇을 챙겨야 하나. 좌우를 두리번거리던 딘은 아차, 소리를 내며 주먹으로 손바닥을 콩 찍었다. 제일 중요한 걸 깜빡 잊었다.
『널 두고 갈 뻔했네. 그러니까 새미? 싸게 움직여. 여차하면 여기다 두고 간다.』

공부를 도중에 때려치우고 뜨네기 여행자로 살아온지 어연 2년이다. 훌훌 털고 다음 목적지로 떠나는 일이 하나도 어려울 리 없건만 샘은 의자에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부지런히 움직이는 딘의 움직임을 눈동자로 쫓으며「제발」이란 단어를 연발했다.
『기다려, 형.』
『오냐. 화장실에 다녀와야 한다 이거지. 알았어. 딱 5분만 기다려주지.』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해.』
『오줌이 아니라 똥 마려워? 오케이. 그럼 1분을 더해서 6분.』
『디-인.』
제발 얘기 좀 하자며 두 팔을 벌렸다.
『이성에 호소해서 형이 지금 이러는게 결코 옳지 않다는 걸 말하고 싶어. 핸드폰에 남겨진 EVP가 애쉬의 장난으로 판명난 것도 아니잖아. 혹시라도 그게 진짜 유령의 짓이면 그때는 어쩌려고 그래.』
『어쩌긴. 말뚝으로 콱 박아버려야지.』
『쉽게 말하지 마. 그렇게 쉽게 끝날 일이 아니라는 건 나보다 형이 더 잘 알잖아.』

사람들 앞에 그 존재를 드러내는 유령은 무조건 경계하고 보는게 좋다. 자동차 사고가 나지 않도록 돕는다는 영국의 엘로브릿지 교차로의 유령처럼 선한 의지로 모습을 드러내는 유령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허나 보통은 겁에 질려있거나, 악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분노에 차있기 일수다. 이런 부류의 유령들은 대다수가 산 사람에게 적대적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공격적 성향이 악화되는 경향이 없잖아 있다. 어제는 예의바르게 문을 두드리다가 오늘은 노여움에 치를 떨며 무거운 가구를 거꾸로 집어던지는 식이다. 심각해지면 보이는 족족 유리창을 전부 박살내거나, 집안에 사는 어린아이를 일부러 물에 빠뜨려 죽게 만들기도 한다.
샘이 염려하는 부분도 바로 이것이었다. 지금은 별 해코지를 하지 않는다고 나중에까지 그러라는 법이 없다. 잠든 어린아이처럼 얌전하다가 갑자기 돌변하여 마약에 취한 람보가 되는 유령은 많다. 딘이 자기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고 갑자기 얼굴색을 달리하고 방법을 바꿔 물리적 영향력을 행사하려 할 수도 있다. 머리 위로 화분을 떨어뜨려 경고를 주는 식이다. 만사가 극단적인 유령은 화분에 잘못 맞으면 사람이 죽는다는 건 전혀 생각지 않는다. 아울러 머리통을 신나게 깨부수고도「미안하다」사과하는 법도 없다. 일단 죽으면 성인군자고 뭐고 다 그렇게 변하는 건지, 유령의 습성이라는게 원래 그렇다.

『그까짓 화분, 피하면 그만이지. 뭐가 문제라고 엄살이니.』
딘은 문제될 것 없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리고는 쇼트트랙 선수가 유연한 동작으로 얼음판을 미끄러지는 동작을 흉내내며 우쭐거렸다. 보았느냐, 형의 빼어난 운동 신경을. 화분이 아니라 바위가 떨어져도 끄떡 없느니라. 자, 아멘으로 화답하거라.
지퍼가 열린 가방을 침대 위로 던지고 샘의 재산 목록 제 1호인 노트북을 손가락질 했다. 어서 짐을 챙기라는 뜻이다.

『자, 이제 이야긴 다 끝난 거지? 그럼 싸게 가방을 꾸린다. 실시.』
『그치만 행여라도 형이 다치기라도 하면...』
『안 다쳐.』
『근거 없는 자신감이야, 그건. 내 생각은 달라. 모든게 확실해지기 전까진 섣불리 움직여선 안 된다고 봐. 형이 계속 모르는 척하면 유령이 화가 나서 공격할 수도 있어.』
『이봐? 재수 없는 추측은 하지 말아. 자칫하면 내 다리 몽둥이가 부러질 수도 있다는 거니?』
『그건 알 수 없지.』
『그래. 알 수 없어. 내 다리 몽둥이가 부러질 수도 있고, 안 부러질 수도 있는 거야. 알 수 없는 미래까지 염려해서 뭘 하게?』
두 다리를 벌리고 선 딘은 평소보다 키가 곱절은 커 보였다. 샘은 살짝 주눅이 들었다.
『어쩌다 내 핸드폰으로 정체불명의 유령 목소리가 포착되었을 뿐이야. 그것도「추워요」라고 말한게 전부이고. 이게 무서워 사방에 소금 결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거니? 입에다 마늘을 달고 살아야 하냐고. 내가 그래야 할 것 같아?』
『딘...』
『그만하자. 난 무시할테다.』

그래도 샘은 쉽게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
『물론 나도 형이 냄새 나는 마늘을 입에 달고 사는 건 반대야. 하지만 이건 확실해. 그 괴 전화가 내 핸드폰으로 왔다면 형은 이런 식으로 움직이지 않을 거야. 신중해져야 한다며 몸 조심을 다짐시키고, 유령의 정체를 확인한답시고 부랴부랴 지역 도서관으로 가 오래된 신문들부터 들쳐봤을 걸. 내 말이 틀려?』
음... 그건 부정하기 힘든 사실이었다. 딘은 끙 소리를 내며 어색함을 감추고저 코를 만졌다.
그것과 같이하여 샘은「이렇게 하는게 좋다」는 계산을 염두에 두고 물에 흠뻑 젖은 불쌍한 강아지 표정을 지었다. 어렸을 적부터 딘은 동생이 깽깽 소리를 내면 고집을 한풀 꺾는 경향이 있었다. 그 사실을 알고부터 몰래 표정 연습도 해왔다. 바로 지금처럼 눈꼬리를 내리고 울상을 짓는 거다.
『그리고 난 형이「이건 내 일이니 내가 알아서 할게」라고 말하는 걸 원치 않아. 형의 일이니까 나도 돕고 싶어.』
『동생아...』
『돕게 해줘. 그렇게 할 거지?』

타협을 하자며 손가락 다섯 개를 펴보였다.
딘이 인상을 찡그렸다.
되었다. 샘은 확신했다. 성공적으로 구워 삶았다.
『.......... 5시간?』
『아니, 5주.』
『야, 강아지! 그건 너무 길어. 그러지 말고 5일로 하자. 5일이면 충분하지 않겠어?』
『오케이. 그럼 당장 그 가방부터 내려놓자.』

그것은 제법 긴 이야기가 될 것이다.
샘은 처음부터 하나하나 되짚어 보자며 침착한 태도로 노트와 펜을 꺼내들었다.
『유령과 산 사람이 서로 마주치게 되는 원인은 크게 세 가지.』
『혈연, 장소, 사건... 이 자식이 지금 누굴 테스트 하자는 거야.』
딘은 불만을 표시하며 입을 삐죽거렸다.
『너만 헌터인 줄 알어? 네 형도 헌터야.』

그 첫 번째가 혈연으로 서로 연관이 있는 경우다. 할아버지의 유령이 손녀에게 나타난다거나, 어머니의 유령이 아들에게 나타난다거나 하는 식이다.
『우린 이 경우는 제외해도 될 거야.』
샘은 노트 위로 적은「혈연」이라는 단어에 X자를 그렸다.
그렇다면 그 두 번째 접합점은 장소다. 잿더미만 남은 화재 현장에서 피해자의 유령을 봤다고 진술하는 소방관들이라던가, 호수에서 친구들끼리 뱃놀이를 즐기며 사진을 찍었는데 어린애의 팔뚝이 노를 잡고 있는게 찍혔더라 식의 얘기가 여기에 속한다. 유령과 목격자들은 서로 아무 관계가 없다. 단지 그 장소가 문제였을 뿐이다. 불타버린 집, 그리고 아이가 물에 빠져 죽은 호수.
샘은「장소」라고 적은 단어를 볼펜으로 콕콕 찔렀다.

『지난 한 달동안 형이 어디를 갔다 왔는지를 파악할 필요가 있겠어.』
『파악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네요. 공사장, 집. 물류창고, 집, 공사장, 집, 물류창고, 집...』
여기서 숨 한 번 들이마셨다. 그리고 개미 기어가는 목소리로 우물거리며 한 장소를 덧붙였다.
『랩 댄스 클럽에 딱 한 번...』
몰래 댄서들의 홀딱쇼를 즐기러 갔다는 고백에 동생의 눈빛이 확 거칠어졌다.
책망하는 그 시선에 딘은 중요한 경기를 망친 운동선수인양 고개를 푹 숙였다.
감독님이 화났다. 무셔, 무셔. 딘의 등이 노인네의 그것처럼 구부정하게 변했다.
『으아, 진짜~! 죽어라 고생해서 돈을 벌어놓곤, 한 타임에 35달러나 주고 G스트링만 입은 여자들의 테이블 댄스를 침 흘리며 구경했단 말이야?!』
『팁은 별도야.』
『의기양양해 하며 말하지 마!』
『그럼 나더러 어쩌라는 거냐. 가끔은 오른손 애인이 싫어질 때가 있단 말이야, 샘. 너도 사내 자식이니까 내가 말하는게 어떤 건지 잘 알 거 아니냐. 리얼과 판타스틱이 교묘하게 만나...』
채 듣지 않고 버럭 고함을 질렀다.
『차라리 오른손 애인이 낫지! 놋쇠로 만든 봉을 타고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여자를 보며 욕구를 해소하는게 더 끔찍해! 그게 뭐야.』
『어. 가끔은 무대 밖에서 몸을 비벼주기도 하는데.』
『그만~!!』
샘이 쥐고 있던 볼펜이 뚝 소리를 내며 망가졌다. 더 얘기하다간 부러진게 볼펜 심이 아니라 다른게 되진 않을까 걱정이 된 딘은「무조건 내가 잘못했습니다」라고 고백하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슬그머니 더듬이질을 하는 건 잊지 않았다.
『조사하러 가 볼래?』
『랩 댄스 클럽에? 꿈 깨.』
성가시다는 투로 샘이 메모지를 찢어 구겼다. 그 평범한 동작 하나하나가 딘에게는 위협이었다. 정작 구기고 싶은 건 종이가 아니라 남의 멱살이겠거니 판단한 딘은 크게 욕심 부리지 않기로 했다. 아쉽긴 해도 좋지 않다고 판명된 패는 미련 없이 버려야 한다. 그래서 나름 안전하다 싶은 주제로 돌아갔다.
『그럼 공사장이나 물류 창고가 문제였다는 얘긴데... 이 형님은 모르겠다. 내가 굴리던게 중국에서 온 싸구려 가방 덩어리들이 아니라 수족이 잘린 시체였다는 가정은 꿈에도 하기가 싫구나.』
현명한 판단이었다. 씩씩거리던 동생의 호흡이 다시 안정되기 시작했다.
『일하면서 겪은 특별한 징조 같은 건 전혀 없었어?』
『음... 창고에서 같이 일하던 푸에타리코 씨가 먹어보라고 권한 햄 샌드위치는 참 맛있었어. 토마토와 양상치가 아삭거리는 촉감이 기가 막혔지. 두툼해서 배도 불렀어.』
『딘? 난 지금 무지 진지하거든.』
『네 눈은 해태냐. 나도 진지해.』
양손을 머리 뒤로 대며 딘이 툴툴거렸다.

잠시 두 사람은 대화를 중지했다.
토옥, 토옥 소리가 나게끔 볼펜의 머리 부분으로 테이블을 찍었다.
아무튼 물류 창고 괴담은 그 가능성이 적다. 설사 딘이 운반하던 상자 속으로 중국제 짝퉁 시계 대신 원한에 사무친 미이라가 들어 있었다고 쳐도 - 그게 세관 통과를 어떻게 했는지는 별도로 치고 - 이미 오래 전에 트럭에 실려 마이애미, 플로리다, 기타등등 어딘가로 훌훌 떠나버렸을 것이 분명하다. 그 시점에서 이미「장소」이론과는 맞지 않게 된다. 시체는 - 유령은 수천km 밖으로 멀어졌다. 추워요 어쩌고 하면서 딘의 핸드폰에 대고 나부렁거리기엔 장거리 전화 요금부터 걱정해야 할 판국이다.

샘은 메모지를 다음 장으로 넘기고 목소리를 바꿨다.
『좋아, 그럼 방법을 바꿔서 다시 기억을 더듬어보자. 일단 그놈의 괴전화가 언제부터 오기 시작했는지 생각 나?』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서 그게...』
『최초로 전화를 받았던 장소가 힌트일 수 있어.』
『음, 가만 있어봐. 뭔가 떠오를 것도 같으니까.』
입술을 문지르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흐릿한 그림이 떠오르려 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힘내.
샘이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그런 딘의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

Posted by 미야

2007/04/21 20:07 2007/04/21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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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신문을 보니까《난 영어를 못해, 버러지가 된 기분이야》라며 우울증에 빠진 대학생들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이게 저에게 닥치면《영어는 물론이고 일본어도 못해, 읽고 죽으려 해도 팬픽을 읽을 수 없어, 버러지가 된 기분이야》가 됩니다. 황금 어장을 코앞에 두고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한다는 이 절망감. 배고픔에 몸부림치다 못해 결국은 자체 먹거리를 제작하는 내가 너무 불쌍혀...
요즘 쥰쥰은 검은 별 아래서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뭔가 나사가 빠진 것처럼 굴어도 이해를 해주세요. 메시지 답변도 그래서 전혀 못 해드리고 있습니다. ※


『일단은 볼륨을 최대치로 올려봤어.』
간단하게 마우스를 움직여 빨간색 막대 그래프를 꼭대기까지 올라가게 만들었다.
최대치라는 말에 걱정이 된 딘은 행여 귓청을 일시에 날려버릴 엄청난 굉음이 들려오진 않을까 긴장하여 어깨를 바짝 움추렸다. 그게 꼭 예방 주사를 맞기 위해 소매를 걷어 올리고는《난 준비 되었어요. 보세요, 눈을 꼭 감고 있죠? 절대로 아프다고 울진 않을 거예요》라며 허세를 부리는 어린애의 모습인지라 샘은 덧붙여 길게 설명을 늘어놓을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봤자 노트북으로 다운로드 받은 파일의 길이는 겨우 40초밖에 되지 않는다. 프로그램이 어쩌고, 조작방법이 어쩌고 떠들기엔 주어진 시간이 너무나 짧다. 주사바늘로 찌르기도 전에 상황 종료. 안심하라며 딘의 어깨에 손을 얹는 순간 재생이 끝났다.

상상하던 대포 소리가 안 들렸음이다. 어리둥절해 하며「이게 뭐꼬?」라는 투로 샘을 쳐다봤다. 들을 수 있었던 건 치익- 하는 잡음이 전부. 나를 속인 거냐며 딘이 눈꼬리를 올렸다.
『유령이 내는 목소리는 인간의 귀로는 잘 들을 수 없다 - 라는 아빠의 말을 기억해?』
『음. 채널이 틀리다고 하셨지.』
『바로 그거야. 그래서 돌고래의 보호를 주장하는 환경 단체의 홈페이지에서「돌고래 목소리 들어보기」라는 프리웨어를 다운로드 받았어. 고주파수를 인간의 귀로 들을 수 있도록 변경해주는 프로그램이야. 머리가 기가 막히게 좋은 보스턴 공과대학 학생이「프리윌리」영화를 무지 재밌게 봤다면서 만든 거라는데 내가 봐도 썩 괜찮아. 조작법도 간단하고, 용량도 그리 크지 않고. 그걸로 딘의 핸드폰에 저장된 음성 파일의 주파수를 조정해봤지. 적당한 채널을 찾느라 고생을 좀 했지만 그래도 성과가 있었어. 그럼 변환한 파일을 다시 한 번 들어볼래? 헤드 셋을 도로 써.』

마음을 굳게 먹으세요. 준비 되었나요. 괜찮다 싶으면 오케이 싸인을 보내주세요.
고개를 끄덕이며 핵폭탄 미사일 발사 단추를 누르는 기분으로 엔터 키를 눌렀다.

《추워요.......... 엄마... 엄마?》

이번엔 약간 달랐다. 뱀이 쉭쉭거리는 듯한 노이즈에 섞여 가느다랗게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자인 것도 같고, 남자인 것도 같다. 어린애처럼 들리기도 하고, 노인네의 탄식 소리 같기도 하다. 쉽게 말해 종잡을 수 없다. 딘의 표정이 확 달라졌다.

『들었어?』
『EVP (Electronic Voice Phenomenon). 전자음성현상.』
『예스. 아쉽게도 상대는 입고 있는 속옷의 색깔을 묻는 변태가 아니었던 거야, 딘.』
『젠장! 이런 좇 같은!』

욕설을 퍼부으며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쩐지 그는 대단히 분노한 표정이다.
왜 딘이 저렇게까지 화를 내는 건지를 모르겠다. 당황한 샘은 펄펄 끓다못해 사방으로 음식물 찌꺼기를 날려보내고 있는 이놈의 양은 냄비를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를 쉽게 판단할 수 없었다. 무작정 뚜껑부터 덮고 봐? 자칫 실수하는 날엔 뜨거운 국물을 뒤집어쓰고 끔찍한 화상을 입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두 팔을 앞으로 뻗었다. 어쨌든 화덕에서 냄비를 내려놓아야... 얼굴이 시뻘겋게 변해「아이고, 혈압이야!」비명까지 질러가며 뒷 목덜미를 움켜쥐고 있는 딘을 다독거리려 애썼다.

『형? 일단 진정하자. 여기, 의자. 응? 앉아 봐.』
『Shit! 너라면 진정할 수 있겠어? 난 진정 못 해! 아빠나 삼촌, 최소한 아저씨 등등으로 부르기만 했어도 용서해줄 의향이 있었어! 그런데 엄마라닛! 이놈의 자식, 왕소금에 버무려 맛있게 태워줄테닷! 크앗~!』
분노의 원인이 (겨우) 그거였나. 샘은 바보처럼 굴고 있는 딘을 한심하다며 쳐다봤다.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맞았어, 아들. 사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지.』
딘은 여지껏 벌려져 있는 동생의 근육질 팔뚝을 피해 뒷걸음질을 치며 - 날 안으려는 거라면 맹세코 널 죽여버릴거야 - 위협적인 으르렁 소리를 냈다.

그들 형제는 헌터다. 유령을 잡는다.
『그런 우리들에게 보란 듯이 전화를 걸어? 유령이? 완전히 미친 또라이 짓 아냐.』

이걸 비유로 바꿔보겠다. 여우가 사냥꾼 앞을 어슬렁대며「제발 나를 잡아 값비싼 모피 코트로 만들어 주세요」애원하는 격이다.
『지능이라던가, 판단력, 내지는 생존 본능이라는게 있는데 그런 바보 같은 짓을 저지를 여우가 과연 존재할련지는 나도 모르겠다. 어쨌든 머리에 회충이 들어가 살짝 미쳤다고 치자고. 문제는 유령의 머리에도 회충이 들어갈 수 있느냐는 거야. 난 그게 불가능하다고 봐.』
『그러니까 형의 말은... 이게 유령의 짓이 아니라는 거야?』
『당연하지! 세상 천지 어느 유령이 헌터에게「나 잡아봐라~」전화를 걸겠냐. 수배범이 경찰서 앞을 어슬렁거리면 마음을 고쳐 먹고 자수를 하려나 보다 생각이라도 할 수 있지. 이건 두고볼 것 없이 장난이야. 게다가 나는 이런 짓을 저지를만한 엉뚱한 인간을 하나 알고 있어. 컴퓨터 사용에는 누구보다 능숙하지만, 머리가 텅 비었고, 상식이라는게 없고, 약에 쩔었지.』
형이 지목한 용의자가 누군지를 깨달은 샘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맙소사, 애쉬...?』

전화벨이 스무 번쯤 울렸다. 아직 영업 시간이 아니라서 그런가, 아님 뭔 일이 생긴 건가. 딘은 루미녹스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발을 동동 굴러댔다. 무남독녀 조가 독립을 선언하고 로드 하우스에서 나간 이후부터 앨런의 술집은 가끔 이런 식으로 삐걱거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종업원 애쉬는 애시당초 골칫덩이다. 앨런 혼자서는 일이 버겁다. 그리하여 감독하는 눈을 피해 사건이 벌어진다.
이제 전화벨은 서른 번을 훌쩍 넘어갔다. 또다시 끓는 국물이 넘쳐 흐르기 시작했다. 용암 저리가라로 뜨겁게 달아오른 화덕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던 샘은「내가 눈치도 없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나」걱정하며 손톱을 씹었다.
거짓으로 화를 내는 딘은 오히려 귀엽다. 단, 그가 진짜로 화를 내면 무섭다. 샘이 임팔라 천장에 구멍이 뚫렸다고 펄펄 뛰는 딘을 피해 걸음아 나 살려라 달아났던 건 다 까닭이 있다. 해안가로 200미터 높이의 쓰나미가 밀어닥치는 건 아무 것도 아니다. 대서양 한 복판으로 지름 50km의 운석이 떨어졌어도 이보단 덜 흉악하다. 잡히면 머리카락이 송두리째 뽑힌다. 애쉬는 아마 죽게될 것이다.

홧김에 핸드폰을 집어 던지기 전, 잠에 취한 것이 분명한 애쉬가 가까스로 수화기를 들었다.
《아음냐. 여기는 로드 하우스외다. 게 누구슈...?》
『나다! 네 애미다!』
놀란 애쉬가 헉,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샘의 귀에까지 들렸다.
《어, 엄마?》
『그래! 엄마다!』
딘이 고래고래 악을 쓰는 것과 같이하여 전화는 뚝 끊겨버렸다.
그것이 자신이 유죄임을 고백한 거나 다를 바 없다고 판단한 딘은 뚜껑이 열렸다.
『흥! 피한다고 피해질 줄 알어? 이놈의 망할 자식!』
맹렬한 속도로 숫자 버튼을 다시 눌러대는 걸 옆에서 지켜보던 샘은 잠자코 전화번호부 책으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장례식장으로 보낼 화환으로 뭘 주문하면 좋을지는 형과 상의해서 결정하도록 하고... 그보다 앨런에게 무어라 위로의 말을 전해야할지 모르겠다. 하나뿐인 종업원이 죽었는데 이참에 가게 문을 닫고 은퇴하는 건 어때요 - 샘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무리다. 입을 떼기가 무섭게 앨런 여사는 엽총을 꺼내들고 방아쇠부터 당길 거다.

『애~쉬~!!』
《옴마, 딘 형씨 아니쇼. 겁나게 와 그라슈. 징징.》
전화가 다시 연결되자마자 애쉬는 우는 소리부터 냈다. 시작부터 나쁘다.「누가 내 엄마라는 거요. 농담치곤 안 웃겨요」라며 너스레를 떨어야 얘기가 그럭저럭 진행이 될 수 있을 터. 더듬이를 길게 빼고「언제부터 내 짓인지 눈치챘어요?」라는 투로 나오면 빗발치는 기관총에 반드시 바람 구멍이 뚫리게 된다.
바보, 멍청이. 위기시 살아남는 법에 관하여 어드바이스라도 하고 싶어졌다. 샘은 30분간에 걸쳐 무료로 강의를 할 의사가 있었다. 한껏 잔인한 미소를 짓고 있는 딘을 보자 매뉴얼은 다시「피에 굶주린 식인 상어를 피해 해변가까지 무사히 헤엄칠 수 있는 법」으로 넘어갔다. 그럼 응원해보자. 죠스의 BGM, 빠밤, 빠밤, 빠밤빠밤 빠라바~ 가 웅장하게 울려퍼지는 가운데 샘은「네가 겪을 고통이 결코 길지 않기를 바래」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옴마! 그런 장난은 치지 않아요.》
잘 했어, 애쉬! 일단 발뺌부터 하는 거야.
《난 그저 조에게 당신 별명이「딩딩」이라 말한 것밖엔...》
그렇다고 지뢰를 밟으면 십중팔구 수족이 잘리게 되지, 이 얼간아.

샘은 본능적으로 두 귀를 막았다.
그렇게 하길 참 잘 했다. 가까운 곳에서 벼락이 쳤고, 지붕이 들썩거렸다. 압정을 밟은 사자는 마구 날뛰었고, 피 냄새를 머금은 가시 덩굴이 사방으로 자라났다. 무섭게 표정이 일그러진 딘은 코앞에 당사자가 있다는 식으로 마구 삿대질을 해댔다. 그러고도 성이 차질 않았던지 붕붕 소리가 나도록 주먹을 휘둘러댔다.
『죽고 싶은 거지. 응? 죽고 싶은 거야. 조에게 뭐라고 말을 했다고? 하하하, 유쾌하군. 대단히 즐거워. 그러니까 애쉬? 유서는 다 썼어?』
샘은 멀찍이 떨어져 이놈의 성가신 폭풍이 빨리 지나가기만 기도했다.
《지, 진정혀요, 형씨!》
『내가 지금 진정하면 딘 윈체스터가 아니야. 기다려. 금방 달려갈게. 그러니 목을 씻고 몸통에서 분리되어 떨어져 나갈 준비나 해.』
《으햣?! 나, 나를 죽이면 당신이 원하는「뱀퍼」에 대한 정보는 얻을 수 없다니까~!!》
『시끄럿! 지금 뱀퍼가 문제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내심 꺼림직스러웠던 모양이다. 높았던 목소리가 살짝 내려갔다.
『그런데... 뱀퍼가 뭐지.』
수화기 저편에서 애쉬가 휘우우 하고 숨을 몰아쉬었다.
아슬아슬하게 소행성이 지구를 비켜갔다. 아차했다간 최소한 10억명의 인류가 사망하고 현대 문명이 완전 붕괴되었을 거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재앙은 유보되었다.

《뱀퍼는「뱀파이어 헌터」의 약어라오. 감옥에서 10년 썩고 나왔수? 그런 것도 모르고.》
『닥치고 주둥이 정돈한다.』
《씨씨. 내가 죄인이오, 내가 죄인이라니까.》
애쉬는 답지않게 비굴 모드로 굽신거렸다.
여기서 샘은 한 가지 사실을 쉽게 알아낼 수 있었다. 애쉬는 형이 질겁을 하는 딩딩이라는 별명을 조에게만 불어댄 것이 아니다. 협박을 더 하면 그 별명을 알고 있는 자의 명단이 줄줄 흘러나올 거다. 그 맨 첫줄에는 앨런이 있고, 그 다음 줄로는 바비 아저씨가 있고, 그 다음 줄로는... 상상하기가 끔찍하다. 동업자들이 그들 형제를 보고 아는 척을 하면서「어이, 딩딩~!」이라 인사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랬다간 대형 유혈 사태는 불을 보듯 뻔하다.

《요즘엔 뱀퍼들 숫자가 그리 않지 않다오. 뱀파이어들이 싸그리 멸종했다는 소문도 있고 그러니까. 고든이란 자가 유명하긴 한데 댁들과는 악연이라지? 그래서 고든과 연관이 있는 뱀퍼들까지 빼니까 남는게 하나도 없지 뭐유. 하지만 내가 누구요. 천재 소년 애쉬 아니겠수?》
『그만 지랄해라. 지겨워지려 하고 있다.』
《오메, 무셔... 겁나서 오줌 싸겠수.》
『진짜로 질질 싸게 만들어줄까. 빨리 이름이나 불어!』
《쳇! 알았수. 똑바로 받아 적으슈.「리」라고 하는 자요. 퍼스트 네임, 미들 네임, 죄다 불명이고 나이 및 거주지 역시 불명. 하지만 자타가 인정하는 최고의 뱀퍼예요. 게다가 여럿이선 안 움직이고 단독 행동을 하는 사람이라 댁들관 아마 잘 맞을 게요. 형씨를 위해 내가 리의 우편 사서함으로 이미 전보를 넣었지. 조만간 그쪽에서 은밀히 만나자고 연락을 취해올 거예요. 그런데 갑자기 궁금해져서 그러는데 왜 댁들이 뱀퍼의 도움을 필요로 하...》
『끊자!』

딘은 애쉬의 질문을 싸늘하게 자르며 짜증나는 핸드폰을 침대로 던졌다.
그리고는 얼렐레. 생각해보니 미처 캐묻질 못 했다.
『씨잉. 그럼. 장난 전화질은 누가 했다는 거야?!』
그런 딘을 향해 장례식장에 어떤 꽃을 보낼 거냐며 샘이 전화번호부 책을 들이밀었다.


리는 이번 에피소드에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Posted by 미야

2007/04/19 20:05 2007/04/19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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