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눈에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보일지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강도로 돌변한 마약 중독자로 착각된다고 해도 그런가보다 넘어갈 수밖에.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제시카를 옆으로 밀치고 옷장을 열었다. 여벌의 옷가지가 필요하다. 현금도 있어야 할 것이고... 구석구석을 두리번거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 무엇보다 여차하면 써먹을 강력한 스턴 건이나 후추 스프레이 같은게 절실했다. 제기랄, 이 마당에 후추 스프레이? 샘은 계집애처럼 생각하는 자신에게 절망했다. 총을 든 상대방에게 꼴사납게 최루액을 분사하는 장면을 상상하자 앞이 캄캄해졌다. 지금 그가 해야만 하는 일은 짧은 스커트를 입은 여성의 치한 격퇴 미션이 결코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무슨 일이야? 샘. 방금 브래디에게 전화해서 이리로 와달라고 했어.』 『그랬어? 그럴 필요까진 없었는데.』 제시카에게 험악한 표정을 지어보이며「문제 없음」을 강조한 샘은 지난 여름에 캠핑을 위해 장만했던 등산용 나이프를 찾아 벽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기껏해야 통조림이나 따던 싸구려 칼로 신통한 일을 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한 가지 좋은 점이라면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크기라는 거였다. 그거라면 몰래 숨겨뒀다가 비장의 카드로 써먹을 수 있을지 모른다. 제임스 본드가 악당 골드 핑거 앞에서 만년필을 빙자한 고성능 레이저 장치를 꺼내드는 것처럼 폼 나는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후추 스프레이보단 양반이었다.
『샘?』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하잖아. 그러니까 침실로 돌아가 누워.』 『자기는 지금 여행용 가방을 꾸리고 있는데 나더러 지금 잠이나 자라고?』 제시카의 목소리는 녹슨 쇠붙이처럼 거칠었다. 걱정한 것만큼이나 짜증도 나는 모양이었다. 『어느 여자가 이런 상황에서 발 뻗고 누워 태평스럽게 잠을 청할 수 있겠어!』 「날 똑바로 봐」명령하며 그녀가 어깨를 경직시켰다.
샘은 그제야 그녀의 벌겋게 젖은 눈자위를 알아차렸다. 아닌 척해도 눈물을 쏟은 흔적은 그렇게 쉽게 감춰지는게 아니다. 여자를 울렸음을 깨닫자 마음에 가책이 왔다. 샘은 남자였고, 무릇 남자라면 해서는 안 될 일에 대하여 꾸준히 설교를 들어왔다.
『오, 맙소사. 아니야, 맹세코 정말 아니야. 이건 당신이 상상하는 그런 일이 아니야.』 『정말로?』 『왜 반문하는 건데. 내 말을 못 믿어? 하지만 진짜야. 지금은 자세히 설명할 수 없지만... 음, 가족 문제야. 고향 집에 갑자기 골치 아픈 문제가 생겼어. 아버지가 몇 주 집을 비우고 혼자서 사슴 사냥을 나가셨는데... 어, 아무래도 날짜 관념이 무뎌지신 모양이야. 모시러 가야 할 것 같아.』 「내가 가면 해결될 거야」라고 서둘러 말을 덧붙인 뒤, 그녀의 불안감을 잠식시키기 위해 이마에 키스했다. 『그러니까 브래디에게 이리로 올 필요 없다고 다시 전화해. 알았지?』 일부러 밝은 목소리를 내며 거짓으로 웃었다. 당연히 제시카는 미심쩍다는 표정을 하고 샘을 쳐다봤다. 마술과도 같은 천리안의 능력이 없더라도 그 입가에 패인 보조개가 싸구려라는 걸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몸에서 나는 악취를 감추려고 향수를 덕지덕지 뿌린 것과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미소는 달콤하지 않았고, 오히려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나에게 뭘 숨기는 거야.』 『숨기는 거 아니야, 제스.』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샘은 가면과도 같은 웃는 얼굴을 포기하지 않았다. 『다만 오늘 밤에는 자세히 설명할 수 없을 뿐이야.』 제발 이해해줘 - 샘은 나름 필사적이었다. 『어쩔 수 없어. 나도 이 일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고. 약속해. 나중에 다 설명해줄게.』
지퍼가 열린 갈색의 가방을 곁눈질하며 제시카가 질문했다. 『알았어. 그럼 얼마나 걸릴 것 같아?』 『사흘 혹은 약 일주일 간, 확실히 그 이상은 걸리지 않을 거야.』 『일주일!』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크게 소리 질렀다. 『로스쿨 면접은 어쩌고!』 『그 전까지는 반드시 돌아와. 아무렴 내가 지금까지 힘들게 쌓아왔던 걸 이렇게 포기할 것 같아? 난 그런 멍청한 놈이 아니야.』 그렇게 심각한 일은 아니다, 금방 해결된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 방금까지의 샘의 말들은 그저 듣기 좋으라고 한 거짓말에 불과했지만 지금의 이야기만큼은 진심이었다.
반드시 돌아와. 그러자 몸에서 기운이 빠졌고, 팔이 아래로 축 늘어졌다. 『사랑해, 제스.』 등이 뻐근해지도록 세게 껴안으면서 샘이 말했다.
『탑승해주신 손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럼 출발하기 전에 안전밸트를 착용하여 주십시오. 보면 아시겠지만 안전밸트는 좌석의 오른편에 부착되어 있습니다.』 조수석에 올라타는 샘을 향해 딘이 썰렁한 농을 쳤다. 그럴 기분이 아니었기 때문에 샘은 이렇다 할 반응을 일절 생략한 채 - 그것도 웃자고 한 농담이라고 - 들고 온 가방을 뒤편으로 아무렇게나 던져 넣었다. 『쳇, 재미없어. 2년 전에는 깔깔거리고 잘만 웃었으면서.』 대학에 가겠다고 가출했던 샘을 차에 태워줬을 때에도 지금처럼 농담을 했었던 모양이다. 모르겠다. 기억이 나질 않는다. 사실은 기억을 하고 싶지 않다. 안전밸트를 끼우는 척하며 고개를 숙인 샘은 기계적이고도 냉정한 태도를 유지했다. 발광하지 않으려면 그렇게 하는 수밖엔 없었다. 『좋아요. 그럼 둘이서 사랑의 도피를 떠나볼까요.』 허나 딘은 눈치도 없게 계속해서 허튼 소리를 지껄였고, 샘은 언제 폭발할지 모를 시한폭탄을 아랫배에 품은 기분이었다. 죽음의 시곗바늘이 짤깍짤깍 움직였다. 아니, 밑바닥에서부터 덜덜덜 진동하며 움직이기 시작한 건 임팔라의 엔진이었다. 70년대에 생산된 무거운 강철의 차체는 부드럽게 회전하며 진입로를 벗어났다. 순간 속이 울렁거렸다.
『긴장 풀어. 지금 죽으러 가냐?』 돌연 샘은 평생 느껴본 적이 없을 정도로 강한 증오심에 사로잡혔다. 『지금 죽으러 가는 거냐고 물었어? 그와 비슷하거나, 아님 그보다 더 나쁘다 생각하는데.』 샘이 뿜어내는 분노의 오라를 고스란히 뒤집어쓴 딘은「어쩌면」이라 말하며 가볍게 응수했다. 동시에「아닐 수도 있고」후렴구를 붙이며 핸들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겉으로만 보자면 샘의 귀로는 들리지 않는 음악에 열중하고 있기라도 한 것 같았다. 핸들을 치는 동작엔 규칙적인 리듬이 실려 있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해, 샘. 시체는 아직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그게 긍정적으로 생각할 문제야?!』 『그~럼~!! 게다가 넌 그 여자의 시체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과 같이 있잖아.』 고속도로 진입로의 위치를 알리는 표지판을 곁눈질하던 딘이 느슨한 태도로 발을 뻗어 악셀레이터 패달을 조작했다. 『넌 시작부터 운 좋게 점수를 10포인트나 따고 들어가는 거라고.』
불 꺼진 가게 담벼락으로 누군가 스프레이 페인트로 낙서를 해놨다. 가는 데까지 가 보자. 새삼스럽게 실소가 나왔다. 10포인트고 30포인트고 여기서 점수는 중요하지 않다. 경찰이 에이미의 시체를 발견하는 즉시 샘의 밝게 빛나는 장밋빛 미래는 끝장이다. 그들은 그녀의 입안에서 찢어진 작은 천 조각을 어렵지 않게 찾아낼 것이고, 법적으로 공인된 봉투에 넣어져 범인이 남긴「가장 유력한」증거물로 해당 관리부서로 옮길 것이다. 상상만 해도 소름끼친다. 밀봉 테이프가 부착된 그것은 언젠가 샘의 목을 자를 것이다. 도끼로 내리치는 것 이상으로 확실하게. 살인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지금도 경찰이나 군인은 의무적으로 지문을 등록하고 있다. 100년 뒤에라도 시대가 바뀌면 DNA 등록마저 의무화될지도 모른다. 개인의 사생활 보호보다 국가의 안보를 우선시하는 애국법 제창자들은 어쩌면 그 시기를 100년이 아닌 50년 뒤로 앞당길 수도 있다. 다시 말해 백발이 성성한 은퇴 변호사의 DNA가 미해결 살인사건의 증거와 동일하다고 밝혀지는 것도 아주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말씀. 거기다 이것이「꾸며진 증거」라는 걸 과연 알아줄 사람이 있을까가 문제다. 반대로 증거 조작을 하는 경찰이 스캔들을 일으키는 판국이다. 1994년 아내 니콜을 잔인하게 살해했다고 기소된 OJ 심슨 사건에서도 피 묻은 양말과 장갑이 진짜인가 가짜인가로 논란이 일었다. 채집된 심슨의 혈액은 1.5리터 줄어들어 있었고, 장갑을 찾아낸 마크 퍼맨 형사의 경력은 그리 깨끗하지 않았다. 배심원들은 검찰이 제시한 증거를 믿지 않았다. 영화배우로 전향한 전 미식축구 선수는 운이 좋았다.
『호오, 미래의 변호사 나으리는 경찰을 불신하는 편인가.』 딘은 흥미로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거 의왼데. 그래서 2년 전에도 마리아 윌튼의 시신을 트렁크에서 옮기는 걸 눈으로 목격했으면서도 모텔 주인을 꼰지르지 않았던 거니?』 샘은 고집스럽게 계속해서 정면만 응시했다. 『어차피 경찰이 네 말을 믿어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구나.』 어처구니없게도 딘은 분개하는 기색이었다. 『나쁜 놈들! 하나 같이 멍청하고 게을러 빠져선!』 경찰들이 유능하고 부지런하면 가장 낭패를 당할 사람이 자신이라는 걸 염두에 두자면 결코 입에 담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참을성이 바닥났다. 심호흡을 하고, 셋을 세고, 다시 여섯을 세고, 다시 열둘의 숫자를 세었음에도 전혀 좋아지지 않았다. 『젠장. 좀 닥칠 수 없어?!』 그 정도로 딘이 주눅이 들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예상대로였다. 오히려 샘이 화를 내고 그의 말에 반응을 보이는게 마음에 드는 눈치다. 『저런! 우리 새미가 기분이 별로인가 보구나. 이거라도 들을래?』 그리고는 골동품 가게에서 통째로 들고 오기라도 한 모습의 구닥다리 테이프를 보여주었다. 메탈리카, 모터 헤드, 블랙 사바스... 그것도 정식으로 발매된 카세트 테이프가 아니다. 플라스틱 뚜껑에 적혀진 제목들은 모두 손으로 쓴 것들이었다. 직접 녹음해 라벨을 붙인 듯했다. 『요즘에 누가 그런 걸 듣는다고. 전부 쓰레기 록이잖아.』 『이거 왜 그러시나. 세기의 명곡을 그렇게 폄하하면 예술이 울어.』 찰칵, 하고 테이프가 세팅되었다. 그 즉시 AC/DC의 시끄러운 소음이 자동차 안에 가득 찼다. 다른 의미에서 딘은 샘을 죽이려고 아주 작정한게 분명했다. 세기의 명곡 좋아하네. 엄격한 눈으로 그를 쏘아보았다.
『있잖아. 제리코까진 멀어. 물론 난 도중까지만 널 태워다줄 거지만... 가는 내내 너와 말다툼 하고 싶진 않아.』 협상과 포용의 의미로 카세트 테이프의 볼륨을 작게 한 딘이 샘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 눈빛은 가슴이 무너져내릴 정도로 남자다웠다. 샘은 딘을 노려보던 걸 얼른 멈추고 밋밋한 가로등 불빛만이 전부인 도로로 시선을 돌렸다.
Posted by 미야
2009/04/05 23:30
2009/04/05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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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기에서 막 꺼낸 흰색 셔츠가 알록달록한 분홍색으로 탈바꿈한 걸 보고 나서야 부주의하게 섞여 들어간 빨간 손수건의 존재를 깨닫는 법이다. 작동 완료를 알리는 기계음이 울리기를 기다리며 무료하게 잡지를 들여다보던 과거의 철없음이 그저 원망스럽다. 「생각이 짧았어.」 딘은 샘이 살고 있는 아파트가 몇 호인지 정확히 꿰고 있었다. 그가 여자 친구와 동거하고 있다는 것도, 심지어 그녀의 이름이 제시카라는 것까지 알고 있었다. 단지 그것만일까? 캠퍼스는 넓다. 사람도 많다. 보안도 형편없다. 그 안을 정체불명의 이방인이 오랫동안 휘젓고 돌아다녀도 눈에 띄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 약간의 발품을 팔면 법학과 공부벌레 샘 윈체스터에 대해 많은 걸 알아낼 수 있다. 방정맞은 입방아를 찧어대는 사람은 주변에 널렸다. 그들에게서 좋아하는 단골 가게가 어디인지, 잘 먹는 점심 메뉴가 뭔지를 알아내는 건 식은 죽 먹기다. 샘이 친구를 많이 사귄다는 것, 중독인가 싶을 정도로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는 것, 장래 희망이 변호사라는 것도 역시... 더 이상 겁쟁이 코요테로 남아 있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까지 전부. 이쪽에서 자랑하듯 신나게 떠벌릴 필요조차 없었다. 그는 이미 다 알고 있었다.
사냥감이 행동방식을 바꾸면 사냥꾼은 거기에 맞춰 올무를 손본다. 예전 방식을 고집해봤자 산짐승이 자진해서 덫을 향해 머리를 들이미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열심히 궁리하며 미끼를 바꾸고, 과거와는 다른 모양으로 함정을 판다. 그리하여 쫒기는 쪽이나, 잡으려는 쪽이나 죽을 힘을 다하는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
샘은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딘이 지금 의도하는 건 뭐지? 함정을 파고 나를 궁지에 몰아넣는 것.
에이미 웰치가 행방불명된 건 언제였더라. 나흘 전? 아님 닷새? 시체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따라서 그녀는 공식적으로는 실종 상태다. 하지만 딘은 그녀를 죽였다고 말했다. 자! 생각해, 생각해내라고, 샘 윈체스터. 미국 내 비합법적인 장의사는 모두 몇 명이나 있는 거지. 사막 한 가운데나 호수 밑바닥으로 숨겨지는 시체는 1년에 과연 몇 구나 될까. 이곳 캘리포니아에도 시체를 가져오면 은밀히 처리해주는 업자가 있을까? 쓸만한 장기는 해부해서 팔고, 필요하지 않는 부위는 소각로에 태워서... 뺨에서 핏기가 가셨다. 완벽하게 왁스가 칠해진 검은색 임팔라가 장의용 운구차처럼 느껴졌다. 하얀 드레스를 입은 에이미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똑바로 누워 있는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머릿속에 떠올랐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해서 어쩌면 딘은 운반하기 쉽게끔 미리 그녀의 몸을 토막냈을지도 모른다. 얼음을 가득 채운 비닐봉투에 하얀 팔뚝을 넣고... 머리 따로, 다리 따로...
미친개처럼 소리치고 싶은 욕구와 뒤돌아 달아나고픈 충동이 샘을 괴롭혔다. 『비명을 지르고 싶으면 질러.』 딘은 그런 샘의 머릿속을 훤히 들여다보았다. 『목이 쉬도록 소리를 질러대는 걸 보고 싶군... 옛날에 그랬던 것처럼 말이야.』 혀가 빠져나와 입술 가장자리를 적혔다. 『하지만 이번에는 네 입에 재갈을 물리지 않을 거야.』 이렇게 되면 오기가 발동해서라도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다.
신경질적으로 엄지손톱을 물어뜯는 샘을 계속해서 주시하며 딘이 임팔라 트렁크를 열었다. 눈을 부릅뜨고 보기 흉한 모습으로 그 속에서 죽어있을 여자를 상상한 샘은 반사적으로 뒷걸음질 치며 물러났다. 그 허둥대는 모습에 딘은 낄낄거리고 웃었다. 『심하다고, 컬리지 보이. 도대체 뭘 상상한 거야.』 크렁크 안은 어떤 의미로는 평범했다. 햄버거 포장지 같은 지저분한 생활 쓰레기가 있었고, 묵직한 공구 상자가 있었다. 기름때가 묻은 걸레가 그 옆으로 굴러다녔고, 그 안쪽으로 납작하게 주저앉은 봉투가 하나 보였다. 얼핏 봐선 음료수나 감자칩 같은 먹거리를 사서 그대로 던져 넣은 모양새다. 부피가 그리 크지 않았고, 무게도 무척 가벼워 보였다.
『받아.』 『...』 『폭탄 아니야. 안 터져. 만진다고 죽거나 하지도 않아.』 샘은 딘이 건네려는 물건을 거부했다. 『죽은 그 여자의 소지품... 내 말이 맞지?』 당치도 않은 소리였다. 딘은 실실 웃던 걸 멈추고 급격히 인상을 썼다. 『그거 고약하네! 넌 여자가 이런 걸 입을 거라 생각하니?!』 봉투에서 꺼낸 건 남성용 캐주얼 스웨터였다. 새 것은 아니었고, 헌옷을 모아두는 상자에서 끄집어내기라도 한 것처럼 대단히 구질구질했다. 소매가 닳았고, 밑단 일부가 크게 찢어졌다. 샘도 덩달아 인상을 구겼다. 사이즈가 대단히 커서 옷의 원래 주인의 체격을 짐작가게 했다. 죽었다 깨어나도 여자는 못 입는다. 아니, 현대 미국인을 괴롭히는 불치병 - 비만으로 고통 받고 있었다고 가정한다면 못 입을 것도 없겠으나 아무튼 에이미 웰치와는 거리가 멀다. 신문 기사에 의하면 그녀는 마른 체격으로 키가 168cm에 불과했다. 에이미가 저 푸른 스웨터를 입었다면 옷에 깔려 허우적거리는 꼬락서니가 되었을 것이다. 멋 내기에 아무리 관심이 없다고 해도 유행도 아닌 빅 사이즈 옷을 여봐라 하고 입는 여자는 없다고 봐야 옳다.
딘은 스웨터의 양 어깨 부분을 쥐고 아래위로 흔들었다. 『것보단 이 옷, 네 눈에 익지 않냐?』 그의 말투에 기묘한, 그리고 짓궂은 장난기가 묻어나왔다. 『어디서 봤을까요?』
그가 살았던 고향에서는 옷이라는 건「튼튼한 옷감, 성실한 바느질, 정직한 가격」3대 원칙을 준수해야만 했다. 모양이나 색깔을 따지는 건 양아치들이나 하는 짓으로 샘의 옷장에는 고만고만한 셔츠와 바지가 걸려있었다. 여느 십대 청소년답게 샘 또한 텔레비전 주인공들이 입고 다니는 비싼 청바지와 운동화를 꿈꿨지만 그런 것들은 자신의 용돈으로는 손에 쉽게 넣을 수도 없을뿐더러 물건의 가치를 알아줄 주변의 시선도 많지 않았다. 말썽쟁이 강아지 셀리 앞에서 최고급 재킷을 뽐내어봤자 돌아올 대답은「왈왈~!」이거 하나밖엔 없었다. 『여자 친구는 어쩌고 웬 강아지?』 『데이트에 관심이 많았다면 전액 장학금이 가능했을 것 같아?』 쏘아붙이는 말에 딘은 항복의 표현으로 입에 지퍼를 채우는 시늉을 해보였다. 요컨대 멋쟁이 재킷보단 싸구려 스웨터가 샘의 스타일이었다.
눈두덩이를 세게 문지르다 주먹으로 이마를 툭툭 쳤다. 『그건 내 옷이야.』 『옳으신 말씀.』 『그때...』 기분이 괜찮냐고 누군가 물어본다면「아니오」라고 딱 잘라 대답할 거다. 조금도 괜찮지 않았다. 바싹 마른 입안이 아팠다. 세계의 표면이 뒤로 벗겨져 나가면서 지금 이 순간「과거」라는 놈이 이빨 투성이의 아가리를 벌렸다. 『우리가 만났던 그날...』 목소리가 갈라져 나오는 걸 깨닫고 흠칫 놀랐다. 안 된다. 샘은 공격조로 고개를 번쩍 들었다. 『당신, 내 가방을 뒤졌어?』 딘은 야유하듯 눈을 굴렸다. 『그렇게 말하면 내가 엄청 좀스러운 놈처럼 들리잖아. 물론 나중에 네 가방을 뒤졌던 건 맞지만... 그건 나중이고. 미안하지만 조금 더 앞쪽입니다. 기억을 더듬어야겠어, 새미.』
해가 지자 기온이 내려갔다. 계속해서 걷고 있었기에 땀이 났지만 머잖아 그것도 과거형이 되어버릴 것이다. 낮과 밤의 기온차가 크다는 건 상식이다. 그래서 푸른색 스웨터를 겹쳐 입었다. 검은 시보레의 엔진음이 들려왔다. 샘은 바위를 치던 모세처럼 손을 번쩍 들었다. 「캘리포니아로 가려고 하는데요. 방향이 비슷하다면 도중에까지라도 태워주지 않을래요?」 1970년대에 생산된 구형 자동차라 유리창을 아래로 내리려면 손잡이를 빙글빙글 돌려야 했다. 「헤이! 어디로 간다고?」 「캘리포니아요!」 목적지와 방향이 같은 차를 찾는데 반나절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스웨터를 입어 몸을 따뜻하게 하지 않았더라면 감기에 걸렸을 것이다.
다시금 소리치고 싶은 욕구가 치솟았다. 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말하고 도움을 청할 사람을 찾으러 갔다. 종종걸음을 하지 않으려고 기를 쓰며 눈앞의 가게로 향했다. 신중하게 뒤편으로 돌아가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반응이 없었다. 가게는 지나치게 조용했고, 계산대 앞에도 직원이 보이지 않았다. 잡아채듯 집어든 전화기는 먹통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딘에게 살해당할 거라고 생각했다. 다시 문을 열고 밖으로 뛰어갔다. 뒤편은 숲이어서 썩 훌륭한 선택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도리가 없었다. 『서두르다가 나뭇가지에 소매춤이 걸렸어. 올이 튿어진 건 그 때문이야.』 달빛이 밝았다. 바람의 냄새와 혀 아래로 씹히던 모래까지 모두 기억난다. 『목덜미 부위의 천이 늘어난 건 당신 때문이고.』 쇠파이프로 맞아 다리를 다친 샘을 주차장까지 질질 끌고 돌아왔다. 식품 저장고에서 초콜렛을 한웅큼 꺼내든 어린애처럼 그는 웃었다. 그리고는 제일 먼저 푸른색 스웨터를 벗겨냈다. 안쪽에 입었던 셔츠로는 손목을 묶었다. 바지를 끌어내렸고, 속옷을 찢었다.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계속해서 교성을 질러댔다. 그 자세에서 엉덩이만 위로 쳐들고 음란하게 흔들었다. 완전히 맛이 가서 빨리 빨리, 더 안쪽으로, 어서 어서, 졸라댔다. 남자와의 경험은 처음이었는데도 미친 듯이 불타올랐다. 쾌락에 몸부림치며 끙끙거렸다. 강제로 벌려진 그곳으로 무리하게 침입해오는 남자의 성기에 완전히 취해버렸다. 「계속 그러다간 목이 다 쉬어버리겠다.」 뒤에서 허리를 붙잡고 탐욕스럽게 찔러대던 딘이 혀를 끌끌 찼다. 「이거라도 물고 절조 있게 참아봐. 좀 아깝잖아?」 그렇게 해서 입에 물려졌던 건 맨 처음 벗겨졌던 푸른색 스웨터였다.
『그동안 갖고 있으면서 한 번도 빨지 않았어.』 딘은 들고 있던 스웨터를 이리저리 뒤집었다. 『오우, 이 얼룩은 네 침 자국일까?』 사람을 조롱하기 위해서가 아닌, 순수한 의문 같기도 했다. 『정액일지도 몰라.』 손가락으로 색이 변한 부분을 지적하며 샘의 의견을 구했다. 『아니면 그저 눈물일 수도 있겠지. 어떻게 생각해?』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다. 아까부터 배가 꾸룩거리고 아팠다. 샘은 입을 꾹 다문 채 한때 자신의 거였던 스웨터를 노려봤다.
어쨌든 딘은 샘의 침묵을 일종의 대답으로 알아들은 것 같았다. 『맞아. 아무려면 어때. 이제와 그런 건 상관없겠지. 그러니까 돌려줄게.』 『.......... 필요 없어.』 『여기까지 가져온 사람 성의를 봐서라도 받아.』 『필요 없다고 말했어.』 『그거 참 쌀쌀맞네. 왜 그래, 이 부분이 찢어진게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래?』 딘의 눈이 위아래로 번들거렸다. 『하지만 맹세코 내 잘못은 아니야. 정 야단을 치고 싶다면 그 에이미라는 여자를 탓하라고. 살쾡이처럼 옷을 뜯어먹은 건 그 여자지 내가 아니거든. 진짜야!』
하늘이 노랗게 변했다. 샘은 거의 덤벼들다시피 해서 스웨터를 빼앗아 들었다. 『이, 이걸로 그 여자의 입에 재갈을 물렸어?!』 딘은 쉽게 대답했다. 『응.』 『그, 그렇다면 찢겨져나간 나머지는...』 『글쎄. 주의 깊게 찾진 않았지만 추측하자면 그 여자의 목구멍 속에 지금도 계속 있을 걸.』
사냥감이 행태를 바꾸면 사냥꾼은 거기에 맞춰 올무를 손봐야 한다. 그렇고말고. 쫒기는 쪽이나, 잡으려는 쪽이나 죽을 힘을 다하는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
Posted by 미야
2009/03/29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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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냘프게 생긴 손가락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걸 멈추고 손을 도로 소매춤 속에 감췄다. 『어쨌든 나와는 상관이 없지. 어디 보자. 그럼 여기서 북쪽이...』 그리고 잠시 쓰게 웃었다.
방향 감각 제로. 미치고 펄쩍 뛸 일이다. 지도라는 훌륭한 문명의 이기도 절대 도움이 되어주질 않는다. 두서너 번씩 확인을 하고 계곡을 따라 걸음을 했건만 결론은「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시오」다. 마그너스는 고민했다. 글자를 똑바로 읽을 수 있도록 하여 지도를 들었을 적에 그림의 윗 부분은 관행상 북쪽이 맞을 것이다. 더하여 지금 그가 가고자 하는 사일라그는 지도의 맨 윗부분에 자리를 잡고 있다. 따라서 마그너스의 지팡이는 북쪽으로 향해야 한다. 어려운 것도 아니다. 북쪽으로만 가면 된다. 그런데 실제적으로 그의 지팡이는 사흘 내내 남쪽을 향해 있었다. 왜 그럴까.
『사일라그로 가려면 계곡을 따라 내려가셔야지요.』 주문받은 냉동 사과를 배달하던 장사꾼이 어쩔 줄 몰라하던 그를 향해 참견해왔다. 한 자리에서 빙글빙글 도는 모습이 어지간히 딱했던 모양이다. 하긴, 일직선 도로를 오르락내리락 왕복하는 것만 벌써 두 시간째다. 『계곡으로 내려가라니. 난 북쪽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그러니까 계곡을 따라 내려가시라니까요. 이쪽 방향으로 가셔야 할 거요.』 『내려가?』 『내려가는 겁니다.』 『북쪽이니까 올라가야 맞지 않나?』 『참 답답한 분이네. 그거랑 언덕으로 올라가는 것과는 얘기가 서로 다르잖습니까.』 그러면서 사과 장수는 무겁게 혀를 끌끌 찼다.
맞는 소리인 것 같았다. 그래서 마그너스는 사과 장수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그럼 이쪽이다. 『틀려, 틀리다니까! 이곳 레고지엔은 우물을 가운데 두고 윗 마을과 아랫 마을로 나눠집니다. 윗 마을로 가야 계곡으로 갈 수 있다고요. 여긴 아랫 마을입니다. 계곡으로 나갈 수 있게 뚫린 길이 없어요.』 『아까는 내려가라고 했지 않았나.』 『계곡을 따라 내려가라고 했지, 누가 마을 아래로 내려가라고 했소? 그냥 윗 마을로 올라가세요, 나으리.』 『올라가는 건가, 내려가는 건가. 아님 나 더러 지금 죽으라는 건가.』 『진짜 답답하네. 윗 마을로 올라가 계곡을 따라 내려가시라고요!』 이런 식이라면 사일라그까지 천 년은 족히 걸릴 것이다. 마그너스는 여전히 우물쭈물했다. 『올라가라고?』 『윗 마을까지만 올라가고 다음엔 내려가는 겁니다. 어휴~!』 넌 바보냐 - 사과 장수의 탄식이 목에 걸렸다.
솔직히 그렇게까지 설명해도 여전히 잘 모르겠다. 레-이위는 꽤나 자신 없는 눈치로 은화 닷푼을 주고 구입한 지도를 한숨과 같이 둘둘 말아 도로 품에 넣었다. 봇짐을 진 사과 장수가 불안한 시선을 힐끔거렸다. 저놈의 지도는 장식품이 맞다. 또다시 엉뚱한 방향으로 트는 걸 봐선 단순히 지도 탓만은 아닌 것도 같다만. 하여 고함은 또다시 터져나왔다.
『이곳이 계곡으로 보여?』 야단맞는 건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싫은 법이다. 레-이위 마그너스는 무작정 고개부터 떨궜다. 『당신 눈은 해태야? 도중에서 안 꺾었어? 언덕을 향해 무작정 올라왔다고?』 기념비적인 산적 데뷔를 위해 언덕에 대기하고 선 사내가 노골적으로 싫은 표정을 지었다. 사일라그? 완전히 반대 방향이다. 그것도 한참 반대다. 어디로 가면 좋을지 몰라 헤매는 것도 정도껏 하셔야지. 마이애미로 가겠다며 캐나다 국경 방향을 향해 이틀 내내 자동차 엑셀레이터를 밟아댄 꼬락서니... 물론 이 세계엔 마이애미도, 캐나다도 없다. 비유하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거기다 지도는 거꾸로 들고. 솔직히 불어. 길을 잃어버렸다는 건 순전히 공갈이지? 당신, 그냥 설교가 하고 싶어져 아까 술집에서부터 날 따라온 거 아냐. 내 말이 맞지? 오지랖 넓으신 사제 지망생 나으리님.』 레-이위는 화들짝 놀랐다. 이런 오해는 딱 질색이다. 『절대로 아니야! 그쪽의 뒤를 밟아온게 아니네! 내가 뭐 하러.』 『말은 잘 한다. 그게 사실이라면 왜 땀을 질질 흘려.』 『언덕을 30분이나 걸어서 올라왔네. 땀이 나지 않으면 그게 비정상이지.』 아니, 아니. 지금 땀 흘린 것이 대수냐. 마그너스는「걍 바다에 던져버리고 싶은」지도로 다시 눈을 내리깔았다. 거꾸로? 거꾸로?! 지도가 거꾸로 되어 있어?! 정말로 땀이 나는 것 같다. 그것도 식은땀이다.
『어이? 지금에 와서 지도를 보는 척해도 늦었어.』 웨더라는 이름의 친구는 버럭 화냈다. 『사일라그로 간다면서 이 언덕으로 올라왔다는 거짓말을 누가 고스란히 믿어줄 거 같냐!』 화만 냈던가, 펄펄 뛰었다. 『하여간 신을 섬기는 족속들이라니!』
『오해라니까. 거기다 나는 특별히 신을 모시거나 하고 있지 않네. 이 옷차림 때문에 오해를 하고 있는 듯한데 이건 순전히 보온성과 통기성을 강조한...』 『시끄럿, 사제 지망생! 내가 한 두 번 당해봤는지 아나. 안 봐도 뻔해. 산적질은 나쁘다느니, 회개하고 착한 사람이 되라느니, 신을 믿고 천국 가라느니 떠들면서 어떻게든 사람을 바보로 만들고 보겠지. 내 심정이 지금 어떤지 알기나 해?! 불명예를 안은 검사의 기분이 어떤지 눈꼽만큼도 모르면서!』 『모르이. 알고 싶지도 않고. 그러니까 안녕. 잘 있으시게. 나는 그만 가 보겠...』 『어딜 가!』 『왜 이러시나. 잡지 마시게. 나는 갈 길이 먼 사람이라네.』 『멀든 가깝든, 일단은 기다려!』 『어허라, 더 얘기할 것이 뭐가 있겠나. 그쪽은 산적질을 계속 하시게. 방해할 생각은 없다네.』 『당신 바보야? 사일라그는 그쪽이 아니라 이쪽이다!』 『...』 『이쪽!』
이렇게 되면 저주받은 거라고밖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레-이위 마그너스는 하얗게 질려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젠장, 나에게 동서남북의 개념에 대해 다시 설명해달라. 아니면 모든 길은 사일라그로 통한다고 말해주던가. 『와. 진짜 바보네.』 웨더 크라우의 눈이 땡그래졌다. 『그게 아니라면 내가 이제까지 들어본 역대 거짓말 중에서 가장 창의적인 거였어. 사실 나는 산적 데뷔를 하겠다는 댁이 걱정되어 따라온 것이 아니라 끝장의 방향치인 탓에 길을 잃어버린 거랍니다 - 이게 사실이라면 개가 웃을 노릇이지.』 『멍멍. 개가 웃었네.』 『.......... 우엑, 정말인 거야?』 『북쪽으로 가려면 올라가야 하는 거 아니었나?』 『방향은 높이완 상관 없지.』 『위도는 높이의 문제가 맞네.』 『그치만 산을 올라가고 내려가는 건 위도가 아니라 고도의 문제지. 그리고 이거 아슈? 사제 지망생 나으리님. 난 지금 산적 데뷔 중이라는 거.』
청년은 옆구리에 차고 있는 검을 툭툭 건드리며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레-이위 마그너스도 정색하며 이마를 찌푸렸다. 『그거 싫은데. 설마... 내가 처음인 건가?』 『처음이다.』 『믿기질 않는군. 그쪽이 산적 데뷔하러 나간지 시간이 제법 흘렀을 터인데... 그동안 이 길로 단 한 명도 안 지나갔다고?』 『날씨가 흐려서 그런가, 한 명도 안 지나갔다.』 『맙소사. 그럼 내가 산적 데뷔야?』 『바로 그렇다. 자! 갖고 있는 거 다 꺼내놔!』
Posted by 미야
2009/03/24 13:09
2009/03/24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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