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나게 큰 실타래가 코앞에 있다. 크기만 한게 아니라 잔뜩 꼬였다. 전부 풀어 제대로 감아야지 마음을 먹었으나 엄두가 나지 않는 일에 선뜻 손이 가질 않는다. 차라리 가위로 싹뚝 잘라버렸음 좋겠다. 이도저도 아니라면 쓰레기통에 내다 버리고 먼지 묻은 손바닥을 툭툭 털어버리는게 현명할지도.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어, 딘.』 『어...』 『와이퍼를 작동시키는게 낫지 않을까?』
돼지처럼 꾸역꾸역 점심밥을 먹고 나서 4시간 10분이 지나 처음으로 대화를 나눴다. 사실 이건 대화도 아니다. 어, 그래, 응, 이런 종류로만 이루어진 대화라는게 세상에 존재한다면 별거에 들어간 남편과 아내가 전문 상담원에게「대화의 부재」라는 걸 하소연할 리가 없다. 대화라는 건 보다 많은 단어와, 보다 풍부한 손짓 발짓이 요구된다. 유리창에 가느다란 빗방울이 내려앉는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며「하루종일 흐리기만 한다더니 일기예보가 틀렸잖아」따위의 혼잣말을 중얼거려선 쓸모 없다. 최소한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기라도 해야 할 거다. 「그게 가능하다면 말이지.」 딘은 운전에 집중하고 있음을 온몸으로 주장하며 핸들을 조작했다. 쉽게 말해 초보 딱지를 붙이고 처음으로 도로로 나온 사람처럼 정면만 주시했다. 샘은 낡은 면바지에 생긴 보푸라기를 잡아뜯는 시늉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화를 내고 있는 거라면 차라리 쉽다. 주먹으로 몇 대 얻어맞고 끝날 수만 있다면 진작에 치기 좋은 각도로 얼굴을 내밀었다. 답답하고 무거운 공기에 깔려 죽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샘은 다음으로 어떤 말을 꺼내면 좋을지를 필사적으로 궁리했다. 평범하게 해야 한다. 평범하게. 마침 비가 내리니까 노란색 우산에 대한 옛날 이야기를 꺼내는 건 어떨까. 공동묘지를 파는 도중에 갑작스레 쏟아진 폭우로 흙탕물에 휩쓸려 죽을 뻔했던 경험을 떠올리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시신도 떠내려가고, 삽도 떠내려가고... 재수가 없으려니까 손전등까지 잃어버렸다. 거의 헤엄을 치다시피 해서 - 발버둥에 더 가까웠지만 - 기슭에 닿았을 적엔 운동화도 벗겨져 있었다. 딘은 그보다 상황이 나빠 바지도 벗겨졌다. 기록적인 폭우였다. 하루 190mm까지 쏟아졌던 뉴저지에선 가옥이 침수되고 주민 대피령도 내려졌다.
『있잖아...』 모르겠다. 입술이 바짝 타들어간다. 이제는 다 잊어버렸다. 평범한 대화의 시작은 어떤 거지? 『앞으로 비가 계속 내릴까? 딘 생각에는 어떨 거 같아?』 동생의 노력도 모르고 딘은 짧게 대꾸했다. 『글쎄.』 그것으로 예의 불편한 침묵의 연속으로 돌아가버렸다.
일상은 언제나처럼 흘러갔다. 때가 되면 배가 고프고, 때가 되면 졸음이 쏟아졌다. 그러면 형제들은 식당에 들려 밥을 먹었고, 후미진 곳으로 차를 세우고 적당히 눈을 붙였다. 커피를 마시고 싶으냐는 질문이 있었고, 누가 신문을 사러 갈 것인가에 대한 답이 있었다. 그리고 그게 전부였다. 정작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었지만 녹색의 혀를 가진 끔찍한 괴물이 옷장을 박차고 튀어나올까봐 함부로 시선을 마주칠 수도 없었다. 괴물을 잡는게 그들의 직업이라지만 때로는 은탄환이나 소금으로 죽일 수 없는 종류도 있기 마련이다. 평소와는 달리 어딘지 모르게 주눅이 든 딘은 수동적 태도로 옷장 문이 열리는 일 없기를 그저 바라는 눈치였다.
초록색 괴물은 외칠 것이다. 딘이 내 앞을 가로막고 있어. 징징거리느라 정신 없잖아. 약해 빠졌어.
엎친데 덮친다고 눈치도 없게 루비가 전화를 걸어왔다. 샘은 언제나처럼 화장실에 들어가 몰래 전화를 받을 수도 있었다. 그치만 샘이 어떤한 움직임을 취하기도 전에 선수를 친 딘이 옷가지를 들고 복도로 나가버렸다. 핑계는 있었다. 냉장고에 맥주가 떨어졌다. 그때가 새벽 2시라는 점만 빼면 그럴 듯했다.
샘은 손바닥으로 머리를 감싸쥔 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려던 걸 가까스로 참아넘겼다. 『다 풀어졌다고 했잖아. 사과했잖아.』
타인이 되어가는 방법. 이렇게나 간단했다.
Posted by 미야
2009/02/10 11:03
2009/02/10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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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돌아왔습니다. 덕분에 뭔 내용인지 다 까먹었습니다. 하하. (웃을 때가 아니지) 그동안 제법 심각하게 우울증을 앓았는데요, 이게 아홉 고개의 마수라고 하더라고요. 윈체스터 형제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
「짜증이 치솟다」라는 표현은 어디까지나 샘 윈체스터를 위한 거였다. 딘 윈체스터? 주문한 햄버거에 양파가 빠졌다는 걸 알아차렸을 적에도 그는 두 팔 벌려 한숨을 쉰 뒤에 바로 체념했다. 맹물에다 독약을 탄 끔찍스런 커피에 대해 사흘 내내 종알종알 곱씹어대는 동생과는 그릇이 달라 어지간한 일은 즉석에서 털어버렸다. 바지에 누런 흙탕물이 튀었을 적에도, 구멍이 난 양말을 신어야 했을 적에도 마찬가지였다. 궉 소리를 내며 눈꺼풀을 뒤집었지만 그때만 그럴 뿐으로 곧바로 여자들 엉덩이로 눈을 돌렸다.
그렇다고 그의 아량이 보리수 아래로 가부좌를 틀고 앉은 부처님 크기라고 착각하면 곤란하다. 일단 제대로 폭발하면 -『네가 그랬어?!』- 머리에 뒤집어 쓸 넉넉한 사이즈의 양은 냄비가 필요하게 된다. 그리고 -『나랑 정식으로 해보겠다는 거야?!』- 날아다니는 물건을 피해 바닥에 납작 엎드릴 줄 아는 처세술이 요구된다. 입 다물고 -『내가 비석 세워줘?』- 기절한 척 하는게 현명하다. 딘은 사람 몸의 어디를 어떻게 때리면 가장 고통스러운지 잘 알았다. 죽을 것처럼 아프게 만들어 어제 먹은 저녁을 고스란히 게워내게 만드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다. 진짜로 그러냐고? 말리지 않을테니 시험해봐라. 다만 그 전에 이 한 마디만 하겠다. 당신은 세상에서 둘째라면 서러운 멍청이다.
샘은 아버지의 일기장을 양손으로 들고 한 장 한 장 정성을 다하여 넘겼다. 천 년 전에 만들어진 고문서라도 다루듯 낱장을 넘기는 동작은 느리고 섬세했다. 어차피 일기장에 씌여진 글자를 읽겠다는 의지 따윈 없다. 다만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고「난 다른 일에 신경을 쓰고 있어」라는 걸 의도적으로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다. 곁눈질로 형의 안색을 살피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는다. 그보단 존 윈체스터가 묘사한 웬디고의 탁월한 외모에 관심을 보이는게 좋다. 머리는 세 가닥, 몸통은 성냥개비, 손가락이 생략된 막대기 팔뚝... 샘은 쓴 표정을 지었다.
아빠? 내가 본 웬디고는 이렇게 안 생겼어.
「그것은 뭡니까?」 얌전히 앉아있던 조나단 - 이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야 하나 - 이 흥미를 보였다. 『별 거 아닙니다. 음... 이건 아메리카 인디언이 숭배하는 성스러운 추장을 묘사한 거예요.』 구구절절 설명하기가 난처했던 샘은 즉석에서 거짓말을 지어냈다. 천사에게 거짓말을 해도 괜찮냐고? 살려달라. 어쨌든 웬디고는 이렇게 안 생겼다. 그 점이 중요했다. 그렇게 샘이 땀에 젖은 낡은 양말의 안색을 하고 있는 동안 딘은 차 밖을 서성이며 시간을 보냈는데 임팔라가 태양이고 딘이 지구라고 가정하면 그것은 매우 흡족할만한 지동설의 시뮬레이션이었다. 물론 지구는 어깨를 들썩이지 않지만, 가끔씩「젠장맞을」욕설을 입에 담지도 않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인가를 뻥 걷어차는 시늉 역시 하지 않지만, 말하자면 그렇다는 얘기다.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데 1년이 소요되니까 아마 52년쯤 뒤의 미래일 것이다. 호주머니로 손을 넣은 딘이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샘은 어디서 깃발이 올라갔다는 식으로 귀를 쫑긋 세웠다. 여전히 그 눈은 아버지의 망할 일기장에 틀어박힌 채였지만 신경은 온전히 딘의 움직임에 고정되었다. 딘이 숫자 버튼을 누른다. 신호음. 누구에게? 샘은 숨 쉬는 것도 까먹었다. 잠시 뒤, 딘은 이건 아니다 싶은 표정으로 폴더를 닫았다. 『젠장!』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형이 선수치고 내뱉는게 영 신기할 뿐이다.
어쨌든 태양 주위를 도는 지구 흉내가 지겨워진게 분명한 딘은 차에 올라탔고, 다시 시동을 걸었다. 입술은 한 일자, 불안해하는 동생을 흘끔 쳐다본 뒤에 기어를 조작했다. 『저어... 딘? 내가 운전할까? 피곤하지 않아?』 『괜찮아.』 『어, 그럼...』 딘은 불쑥 나타난 십자가 앞에서 흡혈귀가 고개 돌리듯 머리를 휙 틀었다. 『아울러 계속해서 대답하자면 배도 안 고프고, 머리도 안 아파. 어지럽지도 않고, 눈꺼풀이 뻑뻑하지도 않아. 나에겐 아무런 문제가 없어. 알겠니?』 『그거 다행이군. 음... 그치만...』 저 천사는 어떻게 하고? 라는 표정으로 뒤편을 손가락질했다. 그걸 무시한 채 딘은 라디오 버튼으로 손을 가져갔다. 『음악 들을까?』 섣불리 건드리지 말라는 의미인 듯하다. 『너도 음악 듣고 싶지? 그렇지?』 서슬 퍼렇게 윽박지르는 걸 봐선 아무래도 그게 맞는 것 같다.
끔찍스럽게 어질러진 방안에서 걸레를 들고 뭐부터 시작해야 좋을지 고민에 빠진 가정주부의 심정이었다. 『잠시 진정하고 내 말을 들어봐. 형이 천사의 존재 자체를 의심한다는 건 알아. 수많은 전설과 문헌에서 천사의 존재를 설명하고 있다고 해도 형이 정 못 믿겠다면 하는 수 없지. 그치만 이게 진짜라면? 우리들에게 주어진 일종의 기회라면?』 『기회?』 『저 남자가 정말로 천사라면... 딘.』 그는 못난이 더글러스가 5학년 여자아이의 치마 속을 들춰봤다고 선생님에게 일러바칠 때처럼 목소리를 작게 했다. 『우린 아빠에 대해 물어볼 수도 있다고.』 『호오. 그러니까 건강하던 우리 아빠가 갑자기 원인 모르게 돌아가셨는데 혹시 천국에서 본 적이 있으신가요, 이렇게?』 옆으로 돌아가던 라디오 버튼이 비틀어지다 못해 와지끈 부러지는 줄 알았다. 『차라리 하느님 허리 사이즈가 얼마냐고 물어보지 그러냐. 응?』
포기하지 않고 샘은 다시 주장했다. 『제발. 어쩌면 노란 눈의 악마에 대해 뭔가 아는게 있을지 몰라.』 『그래서 우리가 고개를 숙이고 정중히 물어보면 그 빌어먹을 노란 눈깔의 약점이 엉덩이에 붙은 꼬리라는 걸 친절하게 가르쳐줄 거라고?』 『그렇게 벌컥 화만 내지 말고 생각을 해봐. 나는 일말의 가능성을 얘기하는 거야, 딘.』 『관둬. 난 쓸데없이 지푸라기는 안 잡아.』 『어째서? 우린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할 상황이라고. 입맛에 안 맞느니 투정할 처지가 아니야.』 샘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래서는 관료주의에 찌든 고집불통 경찰관에게「내 차가 시속 4,800km로 달렸다며 과속 범칙금을 발부했는데 나는 결코 비행기를 몰지 않았소!」설명하는 기분이었다. 그것도 아니라면 우간다에서 비자를 새로 발급받고 있거나, 1990년대에 만들어진 IBM 컴퓨터로 구글 검색을 하고 있거나...
딘은 코웃음부터 쳤다. 『정 뭐하면 네 문제를 해결해달라 애걸해봐! 예를 들자면「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으면 좋겠어요.」라던가,「방구 냄새로 형을 질식시켜 죽일까봐 걱정이예요」라던가.』 샘의 어깨가 갑자기 뻣뻣해졌다. 『난 방구 안 꿔.』 『얼씨구? 요 고짓말쟁이. 오죽하면 내가 널 스컹크 사촌으로 착각했겠냐.』 『하는 수 없잖아! 생리 현상이야!』 『나도 알아. 하지만 최소한 자동차 안에선 끝까지 참는게 운전자에 대한 배려 아니냐?』 『참는다고 참아지는 종류가 아니잖아! 그렇게 따지면 형의 썩은 입냄새는 괜찮은 줄 알아?! 형이 양파를 날로 먹고 트림이라도 하는 날엔 달리는 차에서 문을 열고 뛰어내리고 싶어져!』 『잘났어!』 『형이야말로!』
그때까지도 얌전히 입을 다물고 있던 뒷좌석의 사내가 불편한 듯 어흠 헛기침했다. 그 의도는「서로 싸우지 마십시오」였겠지만 딘은 이걸 다르게 해석했다. 『그럼 결정난거지? 샘의 방구 냄새를 해결하면 댁은 얼른 여길 떠나는 거야.』 초록 점퍼의 사내와 샘이 동시에 놀라서 아우성을 쳤다. 『딘 혼자서 멋대로 결정하지 마!』 「평소 장이 좋지 않은 걸 하느님 탓으로 돌려선 안 됩니다!」 안 된다고? 좋다 말았네. 지역 방송국에선 느리고 부드럽고 낭만적인 음악을 내보내고 있었다. 꽉 끼는 가죽 바지를 입은 보컬이 기타를 바닥에 내동댕이치지 않아 슬퍼진 딘은 그 즉시 채널을 포기했다. 동시에 시선을 백미러로 고정시켰다. 『에이, 그러지 말고. 정말 안 되는 거야?』 『딘!』 창피함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샘은 딘의 옆구리를 꼬집었다. 이럴 적의 딘은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아이스크림을 더 달라고 졸라대는 어린애처럼 구는 경향이 있다. 20% 할인 쿠폰을 카운터에 올려놓고 이걸 가지고도 공짜로 먹을 수 있다고 우기는 식이다.
『아무튼 상관없어.』 세게 꼬집힌 부위를 문지르며 딘은 말했다. 『우린 계속해서 달릴 거고, 멀잖아 주 경계선을 넘을 거야.』 그에게는 이론이 있었다. 그것도 아주 강력한 이론이었다. 『미안하지만 난 천사는 안 믿어. 댁이 천사라는 주장도 못 믿어. 그럼 당신의 정체가 뭐냐고? 아마도 당신은 이 부근에서 자동차 사고로「거의」죽은 사람일 거야. 죽었지만 죽은 것도 아니고, 살았지만 살아있는 몸도 아닌, 말 그대로 어중간한 상태인 거지. 식물인간이라고 하면 비슷할까?』 업계에선 식물인간이라는 표현 대신 생령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보다 죽음에 가까운 존재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나 유령은 아니다. 어딘가에 아직 심장이 뛰고 있을 진짜 몸뚱아리가 있는 것이다. 하얀 가운을 걸친 의사들과 삑삑 소음을 내는 정교한 의료 장비들, 그것이 딘이 오랜 고민 끝에 결론지은 것들이었다. 『그래서 당신은 초현실적인 존재처럼 움직일 수 있는 거야. 어떠한 물리적 법칙에도 연연하지 않고 두꺼운 벽을 그대로 통과할 수도 있지.』
그렇다고 썩 좋은 소식만은 아니다. 『미안하지만 그런 존재들은 만능은 아니라서 특정한 장소에서 결코 벗어날 수가 없어. 예를 들자면 병원이라던가, 사고가 났던 고속도로 위를 계속해서 빙빙 돌며 방황한다거나...』 딘은 갑자기 이야기를 그쳤다. 그렇다고 해도 혀끝에 올라와 있는 단어는 여차하면 입 밖으로 다이빙을 할 기세다. 불편한 듯 엉덩이를 옴죽거리면서 인상을 썼다. 『이게 꼭 미친 헛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어흠.』 천사가 되어 착한 일을 한다며 우쭐거릴 때가 아니다. 불가능해지기 전에 한시라도 빨리 몸으로 돌아가야 한다. 늦으면 의사가 인공호흡기를 떼어내고 사망 선고를 내려버린다. 『그러니까 우리 뒷꽁무니를 따라 주 경계선을 넘겠다는 꿈은 꾸지도 말라고, 형씨.』 그러다 정말로 죽어버린다 - 딘은 무거운 마음으로 경고했다.
Posted by 미야
2009/02/08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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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윈체스터 형제들의 퇴마 여행기... 였던가,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
「아빠, 아무래도 나에게 초능력이 있는 것 같아.」 장남의 폭탄 발언에 존 윈체스터는 편치 않은 표정을 지었다. 전직 해병대 출신의 이 어휘력 짧은 사내에게는 초능력은 곧「유해함, 좋지 않음, 총으로 쏴서 제거해야 하는 대상 중 하나」등등을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존은 보다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며 수염이 까칠하게 자라난 턱을 문질렀다. 겉으로는 그렇게 평정을 가장했으나 속에서는「오, 메리! 우리 아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요?!」비명이 산꼭대기에서 울려 퍼지는 산악인들의 야호 외침 비슷하게 되어가고 있었다. 『별 거 아냐.』 『아들아! 방금 초능력이라고 했잖어!』 『음... 그게 말이지, 샘이 계집애처럼 질질 짜면서 놀이터 정글짐 속에 숨었는데 그냥 알 수 있었어. 일부러 찾으려고 한 것도 아닌데 거기 쭈그리고 앉았다는게 느껴지더라고.』 일주일을 굶기라도 한 것처럼 버터 바른 빵을 허겁지겁 한 입 베어 문 딘은 어쩐지 신이 난 얼굴로「그러니까 아빠, 이게 초능력 맞지?」되물었다.
존은 그 의견에 결코 동의한 적이 없다. 하지만「그런 바보 같은 소리를 하는게 아니다」정색하며 야단친 적도 없다.
『이 자식이 지금 내 동생에게 뭔 짓을 하려는 거야~!!』 샘은 아스팔트 바닥에 손을 짚은 채 늙은 개처럼 엎드려 있었다. 투실투실한 몸집의 사내는 무릎을 굽히고 그런 샘을 지긋이 내려다보았다. 『건드리지 마!』 쏜살같이 달려가 발길질부터 날렸다. 위대한 한 방이었다. 축 늘어졌던 뱃살이 안쪽으로 순식간에 이동하면서 내장마저 찌그러뜨렸다. 필시 엄청난 고통을 느꼈을 사내는 데굴데굴 구르며 맞은 부위를 손으로 감싸 안았다. 이어 울음소린지 신음소린지 모를 잡음이 도로에 울려 퍼졌다. 아랑곳 않고 다시 주먹을 들어 사내의 옆얼굴을 세게 후려쳤다. 꿈쩍도 않는, 크고 완강히 떠진 딘의 눈동자 안으로 이글거리는 살의가 떠올랐다. 『죽여버릴테다.』
다리와 등골의 쿡쿡 쑤시는 통증은 잊어버렸다. 『기다려, 딘. 잠깐만... 그러지 말...』 이쯤해서 뜯어말리지 않으면 딘은 정말로 그를 죽이게 될 것이다. 달리는 트럭에서 내려 비틀거리며 걷던 술주정뱅이에게 친절한 관심을 기울인 댓가치곤 너무 크다. 샘에게 못된 해코지를 하려던 것도 아니고, 수작을 부리려고 한 것도 아니다. 그는 악마가 아니다. 나쁜 악마에게 홀린 것도 아니다. 밥을 먹고 똥을 싸는 평범한 인간이었을 뿐이다. 공포에 질린 사내가 팔을 내밀어 제발 그만두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성이 날아간 딘은 성큼 한 걸음을 더 가더니 팔을 곧게 뻗어 덩치를 턱을 뭉개버렸다. 기이한 체험이었다. 주변이 어두웠음에도 꽉 쥔 주먹의 움직임은 너무나도 하얗고 뚜렷하게 그의 눈에 각인되었다. 그것이 참 아름답다고 느끼면서 샘은 입을 멍하니 벌렸다.
『멍청아! 다쳤어?! 다친 거야?!』 『어...』 『다쳤냐고!』 딘의 목소리는 소프라노 가수의 노래처럼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새미!』 스륵 눈을 감던 동생의 얼굴이 떠올랐다. 두꺼운 겉옷 위로까지 피가 번진다. 칼에 찔린 자국으로부터 생명이 빠져나간다. 불러도, 불러도 샘은 대답하지 못한다. 기대오는 동생의 체중은 점점 더 무거워지고, 아래로 축 늘어진 팔은 움직임이 없다. 애가 타서 뺨을 쓰다듬으며 열심히 말을 걸어보지만 소용없다. 어둠이 그를 삼켰다. 축축한 진흙 위로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진다. 멀리서 우레가 친다. 샘을 잃었다. 말썽쟁이 동생이 죽어버렸다. 그들이, 악마가, 악마의 자식들이 그에게서 샘을 빼앗아갔다. 가장 소중한 걸 강탈했다.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두 팔로 샘을 움켜잡았다. 그다지 좋은 생각이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충동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샘을 흔들고, 뒤집고, 다시 흔들어댔다. 『안 다쳤다고 말해, 인석아. 나에게 다치지 않았다고 말해! 말하라고!』 하도 흔들려 머리가 어질어질한 가운데 샘은 가까스로 대답했다. 『다치지 않았어.』 격앙된 딘은 동생의 어깨를 와락 감싸 안으며 익숙한 체취를 힘껏 들이마셨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해피엔딩이 아니다. 샘은 멀잖아 그「격앙된 감정」이라는 것이 고스란히 마이너스 에너지로 변해 자신의 머리로 유황불처럼 쏟아져 내릴 것임을 알았다. 화가 잔뜩 난 그의 형은 미친개처럼 그를 깨물고, 밟고, 잘근잘근 씹어댈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녀석이 널 납치한 거니?』 난 그저 술에 취했을 뿐이고 - 소리가 쏙 들어갔다. 샘은 최대한 몸을 작게 움츠리고 콕콕 쪼는 시선으로부터 얼굴을 가렸다. 『말도 없이 갑자기 사라져선, 전화도 받지 않고...』 숨 죽인 채 눈동자만 또록 굴렸다. 『게다가 여긴 모텔과 반대 방향이라고?』 그런 악조건 중에 용케도 찾았네, 스스로가 대견스럽다고 생각한 딘은 폭력의 여파로 부어오른 손등을 허공에 대고 흔들어댔다.
『자! 그래서?』 『그래서라니.』 『이 형에게 할 말이 있을 거 아니냐.』 『어...』 『기억이 혼란스럽니? 혹시 머리를 얻어맞았니?』 『그건 아니고... 음... 아무 것도 아니야.』 『아무 것도 아닌게 그런 얼굴이면 무슨 일이 생겼을 적의 얼굴은 도대체 어떤 거겠니.』 『글세.』 『저치 혼자야? 한 패는 없었어?』 입을 꾹 다물고 있으면 있을수록 공기는 불온해져 갈 뿐이다. 『새미?』
샘은 사태가 얼마나 참혹한 지경으로 흘러갈 것인지를 상상해보곤 다리를 오므렸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딘이 술집에서 빠져나간 그를 다시 찾아내는 일엔 초감각적인 어떤 직감이라는게 필요했지만, 앞으로 30초 뒤에 화산이 맹렬히 폭발하리라고 짐작하는 일엔 예지력이나 초능력따윈 필요 없었다. 지진이 나면 땅은 흔들리는 법. 『저기, 있잖아, 딘... 나는...』 하려던 말이 무엇이었든 도저히 끝마칠 수가 없었다. 딘의 눈빛이 서슬 퍼렇게 변했고, 샘은 공포에 가까운 초조감에 사로잡혔다. 눈치 빠른 그의 형이 마침내 진실이 뭔지 깨달았다. 동생은 술에 취했고, 그는 엉뚱한 사람을 잡았고, 악마따윈 있지도 않았고, 어렵게 작업을 걸던 여자는 이대로 안녕이고, 모텔은 멀고, 위는 쓰리고...
『넌 정말 나쁜 자식이야, 샘! 진짜지 나쁜 놈이라고!』 가끔씩 딘은 키높이 구두에 의지하지 않고도 샘보다 키가 커진다. 『나에게 어쩜 이럴 수가 있어?!』 목소리도 커진다. 『너라는 인간은 날 빼놓고 극장에 가서 인디애나 존스 3편을 봤어! 임팔라를 잘 보살피라고 당부했더니 아이팟을 달아 망가뜨리고!』 속으로만 생각하고 입에 담진 말아야지 다짐했던 것들이 이때다 하고 튀어나왔다. 『그러고도 성이 차질 않아 날 이렇게 골탕을 먹여?! 넌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거냐, 응?!』
오해다. 샘이 인디애나 존스를 봤던 건 순전히「딘이 그렇게도 보고 싶어했던」영화였기 때문이다. 시끌벅적한 오락영화는 그의 취향도 아니었고, 가족 단위의 관람객들 틈새에 끼어 홀로 남은 자의 비참함을 만끽하는 건 충분히 괴로웠다. 팝콘이 짜서 눈물이 났고, 늙은 해리슨 포드의 분투에 눈물이 나왔고, 결말부에 생각지도 않은 비행접시가 나와 또 눈물이 났다.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말이 나왔으니까 말인데 한밤중에 잠든 척하며 날 묘한 눈으로 훔쳐본다는 것도 알아. 흡사 모습 변환자를 상대하고 있다는 투로 말이지. 나라는 존재가 맞나 틀리나 계속해서 뜯어보면서 말이야. 욘석아, 넌 내가 아무 것도 모른다고 생각하겠지만...』 『아니야!』 『제기랄, 내가 그렇게도 귀찮고, 지겹고, 짜증나는 존재냐?』 『틀려!』 딘이 남긴 소지품은 하나도 버리지 않았다. 아니, 버리지 못했다. 누렇게 찌든 속옷과 신발, 그리고 구멍이 난 양말까지 소중히 끌어안고 버텼다. 무슨 수를 써도 딘이 돌아오지 못할 거라는 걸 깨달았지만 도저히 정리할 수가 없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 불에 태워버려야지 결심했다가 도로 포기하곤 고개를 가로젓곤 했다. 하소연하듯 팔을 벌렸다. 『그럴 리 없잖아! 내가, 내가 형을 어떻게...』 『시끄러!』 『도중에 말을 자르지 말앗!』 『알게 뭐야! 난 지금 화가 많이 났다고!』
그렇다. 화가 난 사람은 딘이다. 그런데 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샘이 아니라 소리를 질러대는 자신인 듯한 기분이 드는 걸까. 이해할 수 없다. 어째서 샘은 울음을 터뜨리고 - 자기가 잘못한 주제에 - 야단치는 그를 비난에 찬 시선으로 노려보는 걸까. 저 밑바닥으로부터 부아가 끓어오른다. 옛날부터 그랬다. 늘 그랬다. 어느새 화를 내며 펄펄 뛰는 사람은 샘이 되어버리고, 그때부터는 누가 잘못했고 잘못하지 않았는지를 따지는 건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되어버린다.
「자알~한다, 딘 윈체스터. 동생을 또 울리셨구먼.」
짜증에 겨워 길바닥으로 침을 뱉었다. 해보나마나 진 경기다. 한 두 해 겪어봤나, 꾹 참고 모텔로 돌아가 이불 뒤집어쓰고 잠이나 자자. 포기하고 샘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아빠? 아무래도 나에겐 초능력이 있는 거 같아.」 콧물 범벅의 동생이 뒤에서 덮쳐올 거라는 걸 어떻게 알고 있었는지 설명할 수 없다. 초능력이다. 『화내지 마, 딘. 나에게 등 돌리지 마. 제발...』 강한 충격이 다가오기도 전에 눈부터 감은 걸 봐선 초능력 맞다. 옴짝달짝 못하게끔 꽉 끌어안긴 딘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Posted by 미야
2009/01/01 16:18
2009/01/01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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