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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뚫어질테다

엄하고 냉정하게 키웠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내 주장에 바비 아저씨는 특유의 표정으로 눈동자를 굴리곤 한다.
『물고구마다, 물고구마. 네가 네 동생을 대하는 태도라는 건 더도 말고 딱 그거다.』
과연 그런가. 내가 그렇게 물러터졌나.
여차하면 주먹을 눈앞에 대고 흔들며「대세는 형님 사랑~!」을 외쳤던 나는 잠시 헷갈렸다.
그렇지만 결론적으로 샘을 대하는 나의 자세라는 건 물고구마를 닮았음을 부정할 길이 없다.

『으음, 으음.』
양말을 감췄더니 저놈의 고자 자식은 이제 내 엄지발가락을 추룹추룹 소리를 내며 빨기 시작했다.
절대로 안 된다며 수십 차례 발길질을 퍼부었지만 괜한 짓거리다. 내 동생의 똥고집이라는 건 발길질 정도로는 꺾을 수 없다는게 기정 사실로, 최소한 핵폭탄이라도 투하해야 일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
얼굴색을 바꾸고 고함을 질러봤자 돌아오는 대답은「닥치고 발 내놔」...

『이 변태야. 넌 지금 나한테 약점 잡혔어. 얼레리꼴레리. 죽을 때까지 골려줄테다. 어디 그뿐이야? 동네방네 소문낼테야. 발꼬락 변태, 발꼬락 변태, 창피해서 어쩌나. 얼레리꼴레리. 앞으로 얼굴도 못 들고 다닐...』
『조용히 해. 집중을 못 하겠잖아.』
순간 충격으로 숨이 턱 막혔다.
하늘 같은 형에게 조용히 하라 윽박지르는 건 그렇다치고 이 마당에 집중을 해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겁니까.
그래서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농담이지요? 그죠?』
대답 대신 샘의 콧구멍이 눈에 띄게 벌릉거렸다. 설마... 흥분하신 겁니까.

크아, 진짜지 모르겠다. 이 귀신은 누군지.
누워있는게 여자고, 게다가 매우 아름다운 여자고, 샘이 그 미녀의 발을 정성을 다해 핥고 있다면 나도 이렇게까지 반발하진 않을 거야. 물론... 킁. 심리적으로 부담스럽기는 해. 기왕 하려면 슴가를 만져야지. 안 그려? 슴가가 최고야. 슴가. 그런데 이게 뭐냐고. 그림이 영 아니잖아. 티눈도 있고, 굳은살도 박혔고, 허물도 벗겨지는 남정네 발에 탐닉해서 뭐에 써 먹어. 안 돼, 안 돼.

기가 차고 숨이 막혀 몸부림을 쳤다.
그러나 그 몸부림이라는 것도 탈진해서 기력을 잃은 금붕어가 입을 뻐끔거리는 정도에 불과하다.
여기서 억지로 발을 뺐다간 엄지발가락을 꽉 물고 있는 샘의 이가 부러진다.
그렇기에 싫다고 반항하는 내 동작은 아무래도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고, 바비의 표현대로 물러터진 물고구마 어쩌고였다.
『아~ 씨이~!!』
형님의 위엄을 잃은 지금,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울상만 지을 뿐.

Posted by 미야

2009/08/26 13:08 2009/08/26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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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이렌드 2009/08/26 15:42 # M/D Reply Permalink

    이거이거... 발끝에서부터 타고 올라오는 건가효....

  2. T&J 2009/08/27 08:31 # M/D Reply Permalink

    우어-생각도 못한 횡재+ㅁ+
    이리 빨리 오실줄이야~!ㅋㅋㅋㅋㅋㅋㅋ
    윽, 새미......귀엽습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좀 엽기긴 하지만....그래요, 형님 발은 물집도 잡혔을거고, 굳은살도 박혔을거고....벗겨지기도 하겠죠...냄새도 무시못할 거라 생각되는데...ㅋㅋㅋㅋㅋㅋㅋㅋ형님, 그러지 말고 비누칠해서 빡빡 씻어보는 건 어떠시우?-라고 말해주고 싶네요...ㅋㅋㅋㅋㅋㅋ
    근데, 그와중에도 동상 이 다칠까 싶어 발을 빼지 못하는 형님이라...젠장, 너무.......좋다.....ㅠㅡㅠ...물고구마 횽님, 표현 좋아요-딱이야, 딱...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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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은 언제오나

긍정적인 면도 있었다.
평생 못 고칠 거라 생각하고 단념했던 형의 버릇 - 싱크대 위로 굴러다니는 더러운 양말 - 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얘들아, 문가에 소금 뿌렸냐 잔소리를 했어도 아빠는 평생 구역질나는 양말에 대해선 이렇다 꾸지람을 하지 않았다. 문제의 장남은 누렇게 찌든 자기 팬티를 어디다 벗어 던졌는지 기억을 못해도 총기구 청소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했다. 결국 이것저것 저울질을 하던 아빠는 딘에게 훈계를 하지 않았고, 대신 인상을 엄청나게 써가며 더러운 양말을 집게손가락으로 집어올려 쓰레기통으로 골인시켰다. 그리고 폭탄 맞은 꼬락서니의 침대에 앉아「사내 자식들이 다 그렇지, 뭐」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말도 안 된다.
세상의 모든 사내 자식들이 협탁 아래로 햄버거 포장지를 굴리지 않는다.
난 그런 적 없다.
『그려요. 누구 동생인지 정말 잘 났어요.』
구린내 나는 자기 침대에서 도망쳐 깨끗한 동생의 침대로 피난가지도 않는다.
『쓸쓸하니까 같이 자자 징징거린 건 어디에 사는 누구냐! 부활한 엘비스냐?!』
진흙물이 든 셔츠를 흰색 빨래와 섞어 세탁기에 돌리는 무신경함.
『바빠 죽겠는데 그걸 분리하고 앉았냐. 한 번에 돌리고 말지.』
내 양말은 내 양말이오, 네 양말도 내 양말이라는 용서할 수 없는 논리.
『마트에서 왕창 세일하는 똑같은 색깔에 똑같은 크기, 똑같은 디자인인데 어떻게 구분이 가니.』

말대답을 꼬박꼬박 잊지 않는 형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소파에 널부러진 채 스무 번 더하기 일곱 번째로 맨인블랙 2탄을 감상하던 딘은 지지 않고「덤벼, 판초!」이러며 파이팅 포즈를 취했다. 악당으로 나오는 여자 외계인의 결코 지구인 답지 않은 커다란 젖통을 곁눈질하는 바람에 위풍당당한 기세가 한 풀 꺾였다는 문제가 좀 있었지만 - 그럼에도 불구하고「반항하는 동생은 형님에게 맞는다」를 의미하는 주먹은 허공에서 보란 듯이 흔들렸다.

『셀리나 나왔다.』
『앗흥.』
딘은 반사적으로 텔레비전으로 눈을 돌렸고, 기회는 이때다 형의 몸을 뒤로 훌쩍 떠밀었다.
벌렁 쓰러진 병사가 악에 받쳐 외치는 소리.
반칙이다, 반칙이다. 불시 습격은 반칙이다.
『그럼 형은 바야바랑 붙을 적에도「앞으로 1분 30초 뒤에 산탄총을 발사할테니 각오하여 주시면 참 감사하겠습니다」이러고 미리 예고하고 방아쇠를 당기우?』
『미친나. 물론 그러지 않지. 하지만 나는 바야바가 아니거든.』
『아, 그러셨나요. 미처 몰랐습니다요. 그러고보니 바야바가 감자튀김을 입에 달고 소파에 늘어져 있을 것 같진 않군.』
덧붙여 형의 배를 장난스럽게 조물거렸다.
『그리고 바야바는 이렇게 뱃살이 나오지도 않았을 거야.』

딘은 펄펄 뛰었다.
『근육이다 근육!』
『군살이다, 군살.』
『근육근육근육!』
『군살군살군살!』
『아, 씨이! 정 못 믿겠음 눌러보란 말이야! 이렇게 단단한 군살 봤어?!』

눌러보라고?
사악하게 씨익 웃으며 엄지손가락으로 젖꼭지를 꾸욱 눌러봤다. 그리고 너스레를 떨었다.
『오오~ 진짜다. 정말 단단하네.』
형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Posted by 미야

2009/08/24 12:59 2009/08/24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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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달비 2009/08/24 21:26 # M/D Reply Permalink

    앗흥. ㅋㅋㅋ 그 몇년 떨어져 어찌 살았누- 싶네요.
    다 큰 사내 둘이서 이러고 노는건 반칙! 반칙! >_<//

  2. T&J 2009/08/25 10:23 # M/D Reply Permalink

    억, 기다리던 포스팅이군요...
    미야님 소설에서 대화를 보면 말입니다, 딱 윈체스터들 같아서 더 좋은 것 같아요...ㅡㅠㅡ...깔끔한 지문도 좋고.........한마디로 전 미야님 덕후.....;;;깔끔한 문체 부럽습니다요, ..컥컥
    암튼.........미야님의 윈체스터들은.....억, 귀여운 자식들....둥기둥기 막 해주고 싶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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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마, 다쳐

※ 덥구먼유... 메롱메롱입니다.


마녀는 괘씸한 남자친구를 아주 뒈지게 만들 작정은 아니었나 보다.
극적인 효과까진 보지 않았지만 소금물 목욕 이후 샘의 상태는 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밸속에서 내몽이여. 형은 루즈랑케 아몽하고 닥락거릴능?』
음... 녀석은 이제 술도 마실 수 있다.

보다 위협적으로 보이게끔 허리에 손을 얹었다.
알다시피 마이애미 쪽으로 이 포즈로 아주 유명한 경찰이 있다. 음주난봉을 벌이는 취객을 제압하려면 능력 좋은 경찰관 흉내도 나쁘진 않을 터, 신분증을 보자고 요구하면 보여줄 수도 있다. 간단하다. 주차장으로 나가서 자동차 선반만 열면 된다. 자랑은 아니지만 이 몸은 법집행 관련 쪽의 신분증은 다섯 개인가 여섯 개인가 갖고 있다. 물론 진품이 아니긴 하지만.

『하여간 못 말려. 네놈이 뭐라고 지껄이는지 알아들을 수 있음 미 합중국 대통령이다.』
『몽게몽게.』
『우리나라 대통령 이름은 몽게몽게가 아니야, 샘.』
『알랍니다. 벵길거리는 좀삭이긴.』
『아, 쫌~!!』

개구리 내장 맛이 난다는 콜라도 버전 업그레이드 되어 구토약이 섞인 탄산음료가 되었다. 그놈의 토기가 올라온다는 문제만 극복하면 먹거리 고민은 끝이다. 나는 냉장고를 향해「파이팅, 콜라!」응원하고 싶어졌다. 실제로도 그렇게 했고 샘은 날 바보 취급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콜라는 호날두가 아니다. 알게 뭐람. 나는 콜라 앞에서 신나게 엉덩이를 흔들 의향도 있었다. 샘은 더 기분이 나빠져 나를 향해 멍청이, 얼간이, 원숭이 별별 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렇다 한들 특별히 화가 나거나 하지 않았다. 다만 입에 넣고 씹던 감자 튀김을 샘이 내 침대 위로 고스란히 뱉어냈을 적에만 화가 났다. 젠장, 나더러 오늘밤 어디서 자라고.
기름기가 밴 시트는 진작에 벗겨냈기 때문에 내 침대는 포근함이라던가, 안락함이라던가 하는 단어와는 이미 거리가 멀었다. 곁눈질로 소파를 살폈다가 다시 황폐해진 침대로 시선을 돌렸다. 아무라도 좋으니까 밖으로 나가 괜찮은 여자 한 명을 낚아 그녀의 풍만한 엉덩이와 그녀의 침대를 마음껏 찬미하고 싶어졌다.

『묵말, 묵말어.』
위스키 석 잔에 구제불능으로 혀가 꼬부라져선 목이 마르다는 걸 저렇게 표현하고 있는 동생을 놔두고 그렇게 할 수 없다는게 속상할 뿐.
『엉아, 묵말...』
내가 아놀드 슈워제네거였음 말이지. 널 번쩍 들어 구석에 처박았어, 쨔샤.
그렇게 궁시렁대며 곤죽이 된 샘의 몸을 꽉 붙들었다. 녀석은 키도 크고, 몸무게도 많이 나간다. 의식이 불분명하면 평소보다 곱절은 더 무거워진다. 휘청이지 않으려고 기를 쓰며 앞으로 이동해야 할 거리를 짐작했다. 바람이라면 다섯 발자국 미만이었음 좋겠다. 그 이상이면 둘이서 같이 나동그라질 확률이 높다.
『아놀더 슈어제거.』
빌어먹게도 샘은 재밌어 하는 눈치다. 킬킬 웃으며 엉겨붙었다.
『올랴~! 번들 들어 궁상 처바가라~!!』
제발, 샘.
더욱이 이젠 졸린 눈치다. 목덜미에 대고 얼굴을 부비부비 문지르더니 분명히 하품했다.

좋지 않았다. 좋을 리가 없잖는가. 목덜미 쪽으로 소름이 돋는 것과 동시에 발이 삐끗했고, 누가 밀고 누가 당겼는지 모르게 우당탕 굉음을 내며 고꾸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생은 뭐가 그리도 기분이 좋은지 크하하하 웃어댔다.
너나 실컷 웃으세요. 하지만 내 무릎은 무덤에 들어갈 날이 멀지 않은 영감탱이의 그것처럼 콕콕 쑤씨고 아팠다. 그것으로 주정뱅이를 보살피고 싶은 욕구가 말끔이 증발했고 엉거주춤한 자세 그대로 바닥을 기어갔다. 입으로는 불평불만을 쏟아내며 - 다 지겨워, 지겹다고, 이젠 다 포기할테다. - 항의하듯 께룩거리는 샘을 뒷발로 밀쳤다.

『혀-엉.』
『시꾸랍!』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샘은 내 발목을 잡고 징그럽게 늘어졌다.
이것도 역시 좋지 않았다. 좋을 리가 없잖는가. 네 발로 기어가는 사람을 뒤에서 덮치면 그림이 무척 상스럽게 되어버린다. 등으로 묵직한 체중이 실리자 나는 발톱을 세운 고양이가 될 지경이었다. 남들이 이 광경을 보면 천하의 딘 윈체스터가 덮쳐지고 있다고 착각할 거 아냐. 아, 짜증나.

『무겁다.』
『미안.』
『무겁다고!』
『미안.』
『너어~!! 미안한 줄 알면~!!』
튀어나온 말은 거기까지.
동생은 콧물을 훌쩍이며 이렇게 말했다.
포기하지 마, 형. 날 두고 포기하지 마.

뭐, 게슴츠레 눈을 뜨고 그런 말을 해봤자 이쪽에서 크게 감동받거나 그럴 일은 없지만...
충동적으로 몸을 돌려 동생의 몸을 으스러져라 끌어안았다.

술기운 탓인가.
샘의 체온이 지옥의 그것처럼 불구덩이다.

Posted by 미야

2009/08/06 13:33 2009/08/06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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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J 2009/08/06 19:33 # M/D Reply Permalink

    으악, 이 소설에 대한 애정은 날이 갈수록 커지네요.....악, 좋아요.....ㅠㅡㅠ 젠장, 별거 아닌 걸로 헐트시키고 심장 쥐어짜는 녀석들 같으니라고.....휴가 갔다 오니 소설이 올라와 있고....크헉, 은혜로운 밤이로군요...

  2. 나마리에 2009/08/06 21:39 # M/D Reply Permalink

    동생을 으스러져라 껴안았으니, 이제 다음 수순은 형님이 사고 치는 건가요? T^T
    귀여워요.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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