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fanfic] Orion 09

이것은 옳지 않은 일이라고 흐릿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왼쪽 어깨로 앉은 사악한 악마 한 마리가 쉬어빠진 목소리로 재잘거렸다.
아주 끝내줘. 그러니까 계속 점잖게 굴지 않아도 된다고.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데 누가 뭐라고 그러겠어?
이제는 완전히 드러누운 자세가 되어버린 샘은 무방비한 태도로 그 다음을 기다렸다. 손가락 하나 까딱일 의지도 없다. 될 대로 되라 심정이다. 아무런 준비 없이 무리하게 삽입을 당하면 무척 아플 것이다. 하지만 고통 다음으로 느껴질 쾌락에 대한 기대가 컸다. 뜨겁고 단단한 것을 몸속에 가득 채워 넣고 민감한 내벽을 반복해서 문지르는 거다. 더욱 깊게, 더욱 강하게 - 바짝 마른 입술에 침을 발랐다. 그다지 의식하지 않았음에도 항문 근육이 움찔거리며 수축했다. 그때로부터 시일이 제법 흘렀음에도 샘의 몸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딘과의 행위를, 그 열락의 감각을... 그러니까 탐욕스럽게 반응하는 것이다. 수치스러움과는 겨우 종이 한 장 차이밖에 나지 않는 기대감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하지만 딘은 크게 숨을 들이마신 후 곧바로 샘에게서 떨어졌다. 그와 시선도 맞추지 않았고, 이렇다 말도 하지 않았다. 바지와 속옷을 발목 아래까지 내린 채 벌렁 드러누운 샘을 내버려두고 그대로 몸을 벌떡 일으켰다.
자동차 밖으로 나간 딘은 노상에서 소변을 눌 때처럼 다리를 적당히 벌리고 섰다. 스스로 뒤처리를 하는 건 빠르게 끝났다. 딘은 짧게 음 소리를 냈고, 붉게 발기된 성기를 몇 번 잡아당기는 것으로 간단하게 사정했다. 이미 몇 번이나 그렇게 해본 투다. 아무렇지도 않게 허공에 대고 정액이 묻은 손가락을 탁탁 털곤 바지 지퍼를 닫았다.

그제야 속옷을 허겁지겁 끌어올린 샘은 낯 뜨거움에 얼굴을 붉혔다.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했지만 얼굴이 일그러지는 걸 숨길 수가 없었다. 덥혀졌던 체온이 차디차게 식어갔다.
나는 화가 나지도 않았고, 마음이 상하지도 않았어. 딘이 위로 올라 타주길 원하지도 않았고, 엉덩이가 크게 벌려지는 걸 기대한 적도 없어 - 순간 맥이 탁 풀렸다. 저것들이 모두 반어적 표현임을 감안하자면 지금 그가 느끼는 실망감의 정체는 너무나 뻔했기 때문이었다.
날 안아주지 않아 실망했다고? 내가 완전히 미쳤군 - 망연자실하여 입을 벌렸다.
어떻게 바지의 버클을 채웠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노망이 난 나머지 오늘이 화요일인지 수요일인지도 구분 못하는 늙은이처럼 그저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을 뿐이었다.

『어이. 담배라도 피울래?』
이미 불을 붙인 한 개비를 입에 물고 있던 딘은 유리창 너머로 샘에게 담배를 권했다.
『아니. 나, 담배 안 피워.』
『하지만 아버지와 전화로 말다툼을 하고 난 뒤에는 꼭 핀다며.』
『누가 그런 말을 해?』
『주둥이가 가랑잎만큼 가벼운 네 친구가. 이름이 랠프랬던가... 랜돌프였던가.』
샘은 허망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걸 신호로 딘은 들이밀던 담배를 도로 치웠고, 다시 두 사람 사이로 어색한 적막감만 맴돌았다.

이따금씩 하얀 연기가 허공을 향해 뿜어졌다.
부끄러웠다. 참담했다... 2분 동안 내내 샘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자신의 잘못을 곱씹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거였다면 딘은 담배를 피우는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거였다. 약 올리는 말이나 어떠한 비아냥거리는 말도 없이, 그저 묵묵히 자신의 폐를 더럽히는 행위에만 열중했다.
그것이 자신을 위해서인 건지, 아니면 샘을 배려하기 위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어쨌든 방금 전에 벌어진 일에 대해 언급하기 싫은 건 딘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마치 그것이 어처구니없는 실수였음을 인정하는 것 같아 샘의 마음은 더더욱 안 좋았지만... 어차피 애정으로 시작한 것도 아니었으니 실수였는지 아닌지를 판단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웠다.

껄끄러움이 고스란히 묻어나오는 태도로 딘이 자신의 목덜미를 문질렀다.
『브렌켄릿지.』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린가 싶어 샘은 눈을 가늘게 떴다.
『뭐라고?』
딘은 천천히 숨을 고르며 예의 단어를 반복하여 말해주었다.
『브렌켄릿지.』
소름끼치도록 깊은 눈동자가 어둠속에서 반짝였다. 샘은 담배 냄새 섞인 딘의 체취를 가까이서 맡을 수 있었다. 싸한 맛이 느껴지는 남자의 냄새였다.
『그 여자가 있는 곳이야.』
찰칵 소리를 내며 조수석의 손잡이가 잡아당겨졌다.
『이제 됐지? 도중까지만 태워다주겠다고 했으니 그만 내려. 여기서부터는 난 가지 않아.』
같이 가지 않아. 우습다. 그 말을 듣는게 어쩐지 벌을 받는 듯한 기분이었다.

샘은 빠른 걸음으로 계속해서 앞을 향해 걸었다. 자동차 엔진에 시동을 거는 소음은 한참 뒤에야 들려왔다. 딘은 꽤 오랫동안 그의 뒷모습을 전송하며 보고 있었던 것 같다. 그걸 깨닫자 가슴이 욱씬 조여오는 듯했지만 그 통증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면 좋을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샘은 편한대로 아예 생각을 안 하기로 결심했다. 대신 브렌켄릿지, 주술의 단어처럼 딘이 가르쳐준 주소를 중얼거리며 낯선 장소에서의 낯선 공기를 코와 입으로 하나 가득 들이마셨다.
멀지 않은 곳으로 강이 흐르고 있다.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소리로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수량이 그리 많지는 않다. 강이라고 하기보단 개울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어쩌면 날씨가 가물어 그 많던 물이 다 마르고 바닥이 드러난 것일 수도 있었다.
『완전 엉터리야...』
확실히 그렇다. 강이든 바다든, 상관없지 않을까. 돌부리에 걸려 잠시 비틀거리던 샘은 어둠으로 채워진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하늘에는 동쪽이란 방향이 없었다. 서쪽도 없다. 동서남북이 송두리째 지워진 어둠은 샘이 느끼는 절망과 많이 흡사했다.
『빌어먹을!』
갑자기 화가 치밀었다. 갑자기 구제불능의 바보가 되어버린 듯한 기분이었다.
『나쁜 자식!』
돌을 주워 이미 멀리 가버린 사람을 향해 던졌다.
『쳇!』
그리고 깨달았다.
지금 그 순간만큼은 찾아내야 할 시체에 대한 생각은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대신 샘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었던 건 오직 하나 - 끝까지 갈 수 있었음에도 절제의 미덕을 발휘한 딘이 이번에는 그를 안지 않았다는 거였다.

속이 단단히 상한 샘은 돌을 하나 더 집어 들었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멀리 던질 수 있었다.
강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다 다 썩어가는 다리를 만났다. 겉모습만 위태위태한 것이 아니라 안전상의 문제로 통행을 금한다는 표지판이 정면으로 크게 붙어 있었다. 달빛에만 의지해서 그 다리를 건넌다는 건 모험이었다. 하지만 딘은 그 장소를 지나야 한다고 못을 박았고, 실제로 겁대가리를 상실한 그 남자는 임팔라를 운전해 그 위를 두 번씩이나 왕복하여 지나치기도 했다.
『무거운 자동차가 지나갔는데 사람이 못 지나갈 이유가 없지.』
질끈 주먹을 쥔 샘은 가급적 아래를 보지 않으려 애를 쓰며 오른발을 올려놓았다.
이곳을 지나 20분을 더 가면 - 어디까지나 자동차로 운전했을 때가 기준이니 오로지 두 다리로만 이동해야 하는 샘의 입장에선 몇 시간은 걸어야 할 것이다 - 오래 전에 버려진 집이 한 채 나온다고 했다.

「버려진 집이라고? 글쎄... 경찰들이 그곳에 대한 수색을 빠뜨렸을 것 같진 않은데.」
「어쩌면. 하지만 그렇게 꼼꼼하게 뒤져보진 않았을 거야. 빗물에 썩은 마루가 폭싹 주저앉은 부분이 있는데 그걸 소파로 가려놓았거든. 얼핏 봐선 지나치기 쉬워. 손전등으로 대충 비춰봐선 바닥 아래로 구덩이가 있는지 알아차릴 수 없을 거야. 가구를 치우고 냄새 지독한 카펫트까지 걷어야 하니까.」
그러면서 딘은 웃었다.
「그거 알아, 샘? 경찰은 게을러.」
그 의견에 딱히 이렇다 맞장구칠 기분은 아니다. 글쎄다... 그보다는 시체를 감추기엔 지나치게 눈에 띄는 곳이라서 열심히 수색할 기운이 나지 않았던 건 아닐까.

사람이 살지 않게 되어 버려졌다고 해도 그로부터 10년은 지나지 않은게 확실하다. 활짝 벌이진 입구 주변으로 쓰레기가 널렸어도 아주 험한 상태는 아니었다. 유리창도 부분적으로만 깨졌고, 지붕의 형태는 온전했다. 지하수가 마른 탓에 외지로부터 수도를 끌어와야 한다는 문제만 해결된다면 지금도 거주가 가능할 것 같았다. 을씨년스런 분위기도 페인트만 바르면 도로 산뜻해질 것이다. 청소를 하고, 문짝을 손보고, 천장에 핀 곰팡이를 닦아내고...
『휴우, 내 팔자야.』
좌우를 살펴 부근에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한 샘은 부러진 의자 나부랭이를 옆으로 치웠다.
생각보다 기척이 커서 깜짝 놀랐지만 그 소리를 듣고 뛰쳐나올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심호흡을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럼 이제부터 시체를 찾아야 한다.
반쯤 무너진 벽과 썩은 냄새를 풍기는 더러운 카펫트, 커다란 소파.
딘이 사전에 설명한 바 그대로였다.

딱 하나만 빼고.

인상을 쓰며 더러워진 여자의 머리카락을 노려보았다. 구덩이에 빠져 있을 거라던 여자가 바닥에 얼굴을 향한 채 납작 엎드려 있었다.
이럴 리가 없는데 혼잣말을 주워 삼키며 더 가까이 접근해봤다.
낡은 바닥이 삐그덕거렸다.
순간, 에이미의 몸뚱이가 전기에 감전되기라도 한 것처럼 꿈틀 움직였다.

얼마나 놀랐던지 샘은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깜짝이야! 이, 이봐요?! 괜찮아요?』
『제발... 물을 좀... 목이...』
『세상에. 아직 살아 있잖아! 정신이 들어요? 이봐요!』
『도와줘...』
『그게 아니라 밖으로 나가 도와줄 사람을 찾아봐야겠어요!』
『안돼! 날 혼자 두고 가지 말아요.』
죽었다던 여자가 멀쩡히 살아 있었다. 탈진하여 숨이 가늘었지만 의식이 있었다.

뒷통수에 굳은 피가 엉겨붙은 걸 눈여겨 보던 샘은 조바심을 내며 질문했다.
『이 상황에 이상한 질문이라는 건 알지만요... 당신, 혹시 지금 입에 뭐 물고 있는 거 있어요?』
여자는 초점이 잘 맞지 않는 흐릿한 눈을 들어 샘을 한참동안 쳐다보았다.
『셔츠 조각이라던가! 하여간! 입에 뭐 물고 있느냐고요!』
도움을 받게 되어 천만다행이지만 하필이면 정신 나간 미친놈에게 구조를 받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끙끙 신음하던 여자가 마룻바닥에 다시 얼굴을 파묻었다.
『911에 전화... 부탁... 허억.』
벌레구멍(윔홀)에 빠졌다던 에이미 웰치는 그렇게 해서 샘 윈체스터에게 발견되었다.

Posted by 미야

2009/05/03 22:53 2009/05/03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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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리 2009/05/04 17:37 # M/D Reply Permalink

    아닛, 예상과는 전혀 다른 전개! 에이미가 살아있었군요...딘이 에이미를 살려둔 이유가 대체 뭘까영, 그리고 샘을 놔두고 부릉부릉 임팔라를 타고 사라져버린 이유도...으아아, 궁금해요!

  2. 나마리에 2009/05/04 21:41 # M/D Reply Permalink

    너무 좋아요!!!!!!!!!!
    저도 모르게 열락에 대한 기대를 품었다가.. 기대가 좌절되고 경악하는 샘!!!
    우아아앗! ㅠㅠ

  3. T&J 2009/05/05 00:42 # M/D Reply Permalink

    오오오오=기다렸던 만큼 멋진 글입니다.
    샘의 열락을 한순게 차갑게 식혀버린 딘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요?-
    무튼-여자가 살아있다는 데서 안심이에요...그래요, 딘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구요...........ㅡ.ㅡ;

  4. 아이렌드 2009/05/05 20:51 # M/D Reply Permalink

    대체... 길가에 던져두고 간 이유가 뭐야!!!
    (횽아의 멱살을 붙잡고 앞뒤로 탈탈 흔들고 싶어요...)

  5. 노랑괭이 2009/05/06 05:16 # M/D Reply Permalink

    오래전에 본 내용이라서 앞에 내용이 뭐였는지 잊어버렸군요.. 다시 1편부터 봐야겠네요

  6. 식흐 2009/05/06 12:25 # M/D Reply Permalink

    꺄악 ㅠㅠ// 이 맛에 들른다니까요 ㅠㅠ
    미야님 팬픽은 끝까지 읽고 나서도 기억에 오래 남아서 정말//////
    오늘도 잘 보고 갑니다! 으으 '살아갈 이유'에 오리온도 추가해야겠어요 T_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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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란해요

아버지가 워낙에 갑작스럽게 돌아가셔서 장례를 어떻게 치뤘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아요 - 라기 보단 절차를 전혀 몰랐지요. 사람이 태어나는 것보다 죽는게 그래서 어렵다는 말이 실감이 갈 정도로요. 기진맥진해서 그냥 휩쓸렸다고나 할까, 묘지 쓰는 문제는 더더욱 생각을 못했어요.
다행히 "친척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대단히 젊어서 급사하셨다는 할아버지의 누나의 재처의 아들의~ 대충 그런 겁니다 - 무지하게 먼 관계의 분이 땅을 빌려줘 묘를 썼는데... 사람이 왜 느낌이라는게 있잖습니까. 뭐가 잘못된 거라는 걸 알겠더라고요. 그래서 남의 땅에 12년을 모셨으니 납골당으로 옮깁시다, 말은 꺼냈는데 어머니가 싫어하시더라고요.
강하게 밀고 나갈 수도 없어 될 대로 되라 심정이었는데요.
그 땅이 3년 전에 경매로 팔려 바뀐 주인이 절차를 밟아 묘를 없애려 했다는 걸 엇그제 알게 되었어요. 새로 주인이 된 사람도 우리 연락처를 모르고, 우리도 도중에 먼저 주인과 연락이 끊겨 상황을 전혀 몰랐던 거죠. 아무리 집안이 망했다고 해도 부친이 묻힌 선산을 팔아먹겠느냐 - 안이한 판단이었어요. 망하는 집에서 못 팔게 뭐가 있겠어요. 뼈라도 팔텐데.
결국 이번 달 안에 개장을 해야 하게 되었네요.
알아보니 납골당은 시립으로 모실 자격이 안 된다고 해서 결국 선골하자고 의견을 모았는데요.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만 심란해요.

Posted by 미야

2009/05/03 13:41 2009/05/03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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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크 2009/05/03 16:53 # M/D Reply Permalink

    힘내세요 ㅠㅠ
    정말..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런 상황에 심란하신 건 당연한 거에요. 복잡하시겠네요.. 이럴 땐 마음 놓고 휴식기를 가져보는 것도 좋을 텐데 말이지요..

  2. 노랑괭이 2009/05/06 04:53 # M/D Reply Permalink

    언제나 눈팅만 하고 갔는데
    기운내시라는 말이 얼마나 도움이 될까마는 "기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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