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나 여자나, 누구에게나 보물상자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 겁니다. 그 속에 현금을 보관할 수도 있을 것이고, 귀금속이 들어가 있을 수도 있을 것이며, 때로는 이미 헤어진 연인의 빛바랜 사진일 수도 있지요.
저에게도 보물상자가 있습니다. 그 중의 제1보물은 사하라 사막에서 (불법으로) 체취한 모래 한줌입니다. 고까이 모래, 이런 생각도 합니다만 손톱만한 콩알딱지 유리병에 든 사하라 사막의 모래를 보면 지구 스케일의 아주 큰 뭔가가 뭉클 작동하곤 합니다.
모래를 가져다 준 지인에게 늘 고맙다고 생각합니다.
몸이 약해 여행도 제대로 못하는 저에겐 아주 소중한 보물입니다.
그렇다면 다음 보물은?
남들이 보면 전부 쓰레기예요. (웃음)
작동하지 않는 시계가 넷. 비싼 물건은 절대로 아니지만 돌아가신 아버지가 재밌게 생겼다며 가져다 주신 딱정벌레 모양의 것도 있고, 자살한 사촌 오빠가 선물로 준 회중시계도 있고, 졸업 축하 선물 시계도 있고... 모두 망가져 작동도 하지 않는 것들이지만 추억의 무게 탓에 버릴 수가 없어요.
워메~ 이건 또 무엇이다냐. 성적표가 있군요! 창피하다. 주섬주섬 집어들어 봉투에 얼른 숨기긔.
92년에 단체로 제주도에 갔을 적에 산 색돌이 있습니다. 싸구려지만 이것도 보물이예요.
스무 살이 되었을 적에 처음으로 귀에 걸었던 귀걸이! (귓볼을 뚫지 않은 귀찌)
의미가 불명한 기념메달.
무려 40년 전에 워커힐 호텔에서 샀다는 목걸이의 메달.
메달은 싸구려고 줄이 고가였는데 백금 목걸이 줄은 나이가 한 살 위였던 학교 동창생 언니가 말아먹었습니다. 은색이니까 은 목걸이라고 생각하고 제 서랍에서 멋대로 가져가선 어디다 흘렸는지, 잃어버렸는지...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 버럭 화냈더니 3,000원짜리 목걸이를 하나 주더군요. 케세라세라 해버렸습니다. 성격은 나쁘지 않은데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스타일이었거든요. 가난한 복학생에게 90만원 물어내라 할 수도 없고. 것보단 보관을 아무렇게나 한 제 잘못이었다고 엄마에게도 꾸중을 엄청 들었죠. 결국 오닉스로 장식된 메달만 남았습니다.
이 일이 있어 아버지 결혼반지를 받았을 적엔 "이것도 잃어버리면 죽이겠다" 소리를 들었어요.
그 다음으로는, 어디 보자. 이것은 호 반장님! CSI 시리즈를 출판하던 출판사에서 뱃지를 선물해줬답니다. 배송 중 파손으로 일부 찌그러졌으나 레어 아이템이죵. 그리섬 반장님 알랍.
고모가 준 연수정 귀걸이. 50년 전의 물건이라 추정됨. 반지로 바꾸려면 세공비 30만원 필요.
그리고 이건 정말 모르겠어요.
트렉터를 몰고 가는, 스누피에 등장하는 담요를 쥐고 있는 사내아이 장난감 인형.
훗훗훗... 이런 것들이 보물상자 안에서 죄다 굴러다니고 있다 이거죠.
말만 보물상자지 쓰레기통이래요.
제가 보기에도 좀 그렇긴 해요.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