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딘은 올해도 샘이 만들어준「이걸 음식이라꼬」에그노그 먹었을까. 에잇, 커플지옥 솔로천국이다.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
대학물을 꽤나 먹었음에도 멘델스존이나 브람스의 음악을 접할 적마다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장래 희망이 변호사라면 - 아울러 술에 취해 남의 집 지붕으로 기어 올라가는 바보들을 상대하는 무료 국선 변호사가 장래 희망이 아니라면 - 1920년에 발생한 사코와 반제티 무장강도 사건과 정치 사회적 이슈를 화폭에 담은 미국의 화가 벤 샨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킬 줄 알아야 했다.
물론 *도널드 주드와 잭 영거맨을 몰라도 유능한 변호사가 될 수 있다. 샘의 높은 성적으로 보자면 그건 확실하다. 그러나 브로드웨이에서「오페라의 유령」뮤지컬을 감상하면서「*팜플렛에 소개된 가스통 루루라는 사람이 주인공인가요?」식의 멍청한 질문을 던져선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착용한 여성을 고객으로 맞이하긴 힘들다는 것 또한 상식이었다.
성공에 대한 욕심이 있었던 샘은 찢어져라 악을 써대는 소프라노 가수들을 향해 전기 충격기를 들이미는 자신을 상상하며 극장 좌석에 앉곤 했다. 티켓은 눈이 튀어나오도록 고가였고, 혀가 꼬부라지는 이탈리아어 가사는 충분히 골칫거리였다. 푸치니를 좋아하느냐고? 쓴 표정을 짓고 있는 인간에게 참 적절한 질문을 하고 있으시다.
그렇다고 모두가 손톱으로 칠판 긁는 소리였다는 건 아니다.
이를테면 돈 조반니의「카달로그의 노래」같은 건 나름 괜찮았다.
그럼 나리의 애인 명부를 읽어보겠사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640명, 독일에서는 231명, 프랑스에서는 100명, 터키에서는 91명, 그리고 스페인에서는 무려 1003명의 여성을 헤아릴 수 있사옵니다. 시골 처녀, 하녀, 거리의 여자, 백작부인, 공작부인, 지휘고하, 스타일을 막론합지요. 금발의 여성은 아름답다 칭송하며, 갈색의 여자는 정숙하다고 찬양합니다. 몸집이 크면 당당하구나 말씀하옵고, 작으면 귀여웁다 하옵나이다. 부자건, 못생겼건, 이쁘건, 밉건, 치마만 둘렀다 하면...
와우! 모차르트에게 신비한 초능력이라도 있었던 걸까? 무슨 재주로 그 먼 옛날에 딘 윈체스터라는 인간이 저지른 업보를 이리도 상세하게 묘사할 수 있었던 걸까.
이걸 현대로 고치면 이렇게 바뀐다. 미주리에서는 7명, 와이오밍에서는 11명, 조지아에서는 5명. 금발은 섹시하고, 갈색머리 여자는 머리가 좋지요. 엉덩이가 펑펑해도 핫, 허벅지가 투실해도 핫. 다만 전갈좌의 여자는 남자를 깔고 올라가 리드하려 하니까 약간은 곤란...
빠른 속도로 맥주를 들이키던 샘은 낄낄 소리를 내어 웃음을 터뜨렸다.
황당하다. 기분은 최악인데 수도꼭지가 망가지기라도 한 것처럼 웃음을 그칠 수가 없다.
낯짝 두꺼운 하인 레포렐로가 다시 노래를 부른다.
송구하오나 작성된 바람둥이 리스트를 이 미천한 입으로 읊어보겠습니다.
차가운 맥주 거품이 곧바로 심장으로까지 내려간다.
뉴햄프셔에서 8명, 루이지애나에서 2명... 죽죽 내려가 샘 윈체스터 1명. 그런데 어랍쇼, 이게 끝이 아닙니다. 뉴저지에서 1명, 메릴랜드에서 3명... 숨 한 번 쉬고 다음 장으로 넘어갈까요.
아픈 곳을 직접적으로 건드린 맥주가 역겨운 맛으로 변해 역류하려 들었다. 추태를 바라지 않았던 샘은 손등으로 입술을 닦는 척하며 구토를 막았다.
전쟁과도 같았던 오랜 신경전 끝에 한 침대를 사용하게 되었지만 결코 그것이 행복한 결말은 아니었다. 딘은 틈틈이 유리창 너머로 시선을 돌렸고, 그 점을 애써 숨기려고 하지도 않았다.
「너와 행복한 기분으로 섹스하는 건 크게 잘못된 거라는 생각이 들어.」
잘못되었으니 바로잡아야 한다. 딘은 되풀이해서 질문을 던졌고, 그 답을 찾아 방황했다.
「그거 아니? 죄다 엿 같아.」
여명이 밝아올 무렵에야 돌아와 등 돌리고 자는 동생의 어깨 위로 차갑게 식은 뺨을 가져갔다.
「잘못된 길, 잘못된 방향... 때로 난 숨 쉬기가 힘들어.」
움직임이 없는 것으로 보아 샘이 잠들었다고 확신한 그는 조용히 속삭였다.
「너는? 새미... 숨 쉴 수 있니?」
자신이 성인군자도 아니고, 대인배도 아님을 깨달은게 그 즈음이다.
생각만으로 살인이 가능하다면 샘은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살인범이 되었을 터, 그리고 분명히 말하지만 그 최초의 희생자는 딘 윈체스터다.
『여어, 샘. 이 아름다운 숙녀님과 인사해라. 루이스? 이쪽은 내 바보 얼간이 동생이예요.』
즐겁고 기쁘다는 표정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술기운 탓에 시야가 흐릿했다. 이번에는 갈색 머리인가. 열심히 눈꺼풀을 깜빡거려 여자의 외모를 자세히 보고자 했지만 눈코입이 피카소가 그린 아비뇽의 아가씨처럼 일그러지기만 할 뿐이라서 그녀의 외모가 고릴라를 닮았다고 해도 그런가보다 싶을 지경이다.
『아아녀엉하세요.』
갈색 머리가 웃었다. 그녀는 샘이 쏟아지는 졸음을 참고 있다고 생각하는 눈치다. 하지만 천만에. 자랑은 아니지만 지난 1년 반동안 주당 뺨치게 마시는 양이 늘었다. 제3자의 눈엔 혀가 꼬인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렇다고 정신까지 꼬인 건 아니라는 말씀.
『안녕, 샘. 그럼 당신도 형님처럼 소방관인가요?』
그건 또 뭔 소리랴. 방송국 기자 레퍼토리는 어쩌고? 이번엔 소방관인가.
옆에서 입을 실실 쪼개던 딘은 눈치껏 루이스의 허리를 끌어당겼다. 명량한 웃음소리가 배경으로 깔렸다. 사람들이 주고받는 말소리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렇다고 할 수도 있고, 아니라고 할 수도 있죠. 그러니까 뭐라더라.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거예요.』
경황이 없어 내용을 못 따라가겠다.
『신발 보관 창고에 큰 불이 났고, 짐작이 가겠지만 사방이 꽉 막혀 있었죠. 우리는 불길을 쉽게 잡을 수 없었어요. 유독가스가 대단히 심했고... 시커멓게 폭발이 일어나면서 천장이 주저앉았죠. 덕분에 거의 죽을 뻔했고, 지금도 전 무시무시한 불길에 빨려 들어가는 악몽을 꿔요.』
화재 현장에서 죽을 뻔한 소방관이 외상후 스트레스라는 판명을 받아 동생과 같이 휴가를 얻었습니다 - 라는게 아무래도 이번에 딘이 꾸며낸 줄거리인 듯했다. 주섬주섬 소매를 말아 올려 천사가 남긴 손자국을 보여주자 작은 술렁임이 일었다. 덕분에 카스티엘이 일으킨 기적의 자취는「열기에 눌러붙은 마미손 고무장갑」따위로 전락했지만 루이스의 깜짝 놀란 표정만 보자면 딘의 허풍은 충분히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진짜지 지옥에서 힘들게 꺼내온 보람이 없는 인간이다.
『그래서요? 우리의 용감한 소방관님.』
여인은 딘의 귓가에 입을 가까이 대고 그의 용감함을 칭송하기 시작했다. 허벅지를 천천히 쓰다듬으며 필라멘트 전구로 불이 들어오도록 만들었다.
『기다란 호스로 굵은 물줄기를 쏘아대는 건 제 천직이라는 거지요.』
『뜨겁게 불타오르는 곳을 향해서요.』
『바로 그거예요. 멈추지 않고, 흠뻑 젖어들도록 똑바로 쏩니다.』
노출된 젖가슴을 노골적으로 훑으며 딘은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여기까지 단계가 진행됐다면 다음으로는 적당한 장소만 찾으면 되었다. 붕가붕가의 신이여, 감사합니다. 딘은 점찍어 둔 여성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헤이! 이 형이 지대로 껀수 올렸다, 샘. 너 먼저 모텔로 돌아가... 어?』
너댓 개의 빈 잔이 테이블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동생은 코빼기도 안 보였다.
『이놈이 화장실에 갔나?』
짜증스러움은 곧 당혹감으로 변질되었다.
『샘?!』
그들에게는 지켜야 하는 규칙이 있다. 그 중 하나는 말도 없이 사라지면 안 된다는 것이다. 샘은 규칙을 어겼다. 표정이 바뀐 딘은 주섬주섬 호주머니부터 뒤져 핸드폰을 꺼냈다. 틀렸다. 음성 사서함으로 건너뛴다. 이제 샘은「무슨 일이 생겨도 전화를 받는다」는 두 번째 규칙마저 어겼다.
급한 김에 멧돼지처럼 목이 굵은 사내에게 다가가 샘의 인상착의를 설명했다.
『이봐요? 이 만큼 키가 크고...』
귀찮아하는 기색이 역력한 남자는 채 듣지 않고「모르겠수다」라고 건성으로 대답했다.
딘은 대단히 화를 낼 것이다. 샘은 그 점을 모르지 않았다.
바지 주머니에 넣어둔 작은 휴대용 기계는 반복해서 뒤집어지는 소음을 자아냈다. 차가운 밤공기 속에서 어쩐지 그 신호는 더욱 절박하게 느껴졌다. 샘은 고개를 들어 - 머리는 굉장히 무겁고, 손발은 술기운에 나른했지만 - 화물트럭이 똑바로 전진하는 걸 쳐다보며 한 발자국씩 발걸음을 옮겼다. 정면에서 쏘아오는 헤드라이트가 눈부셨다. 순간 트럭의 엔진음이 핸드폰 소리를 압도했다.
『이봐! 죽으려고 환장했어?!』
하늘에 맹세하지만 결코 그렇진 않다. 죽고 싶으냐고?
『위험하다고!』
벌린 두 무릎 사이로 상체를 구부리고 입을 크게 벌렸다. 구역질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온 것은 두 번의 커다란 딸국질 뿐이었고, 아무리 애를 써도 개운해지지 않았다.
딘은 웃지 않을 것이다. 웃기는커녕 어리광은 용서치 않겠다며 엄격한 눈초리를 할 것이다.
그런데 환하게 미소 짓는 그의 모습만이 떠올랐다. 오로지 그만이 아는 표정을 지으며 상냥하게 눈을 맞춰온다. 딘... 샘은 가만히 사랑스런 그 사람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그러자 상상은 보다 힘을 얻어 한층 더 구체적인 모습을 띄었다. 희미한 코롱 냄새, 못이 박힌 투박한 손바닥, 흔들리지 않게끔 꽉 잡아주는 팔,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입술...
걷는 속도가 빨라졌다. 뛰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걷고 있다고 하기엔 어폐가 있다.
있을 것이다. 저 너머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딘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그리고 달콤한 확신에 숨이 차올랐다.
이 세상에는 친구와 약속을 잡는 미첼이 있고, 쇼핑센터에서 식료품을 구입하는 미첼이 있다.
마찬가지로 술집에서 여자를 꼬시는 딘이 있고, 아직 샘에게로 돌아오지 못한 딘도 있다.
만나러 가야 한다. 찾아서 데리고 와야 한다. 손을 붙잡아야 한다.
『딘.』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그 사람을.
샘을 똑바로 바라보며「내 처음을 너에게 줄게」라고 기쁘게 말해줄 그 사람을.
멀지 않을 곳에 있을 내 사람을.
마치 올가미에 걸렸던 동물이 상처를 핥듯이 곰곰이 생각했다.
『이봐요! 당신 말이오. 이봐요!』
트럭은 일단 후진해서 육중한 몸체를 회전시켰다. 덜컹 소리가 컸다. 곧 문이 열리면서 사람이 뛰어내렸다. 도로 한 복판에서 젊은 남자가 미친 듯이 팔다리를 휘적거리고 있으니 무슨 문제라도 생긴 모양이라 판단한 것 같았다. 설령 아무 문제 없다고 쳐도 정신 나간 술주정뱅이를 길 밖으로 끌어내려야 했다. 이 상태라면 멀잖아 달려오는 차에 치여 온몸의 뼈가 부러질게 뻔했으니까.
『아니야, 아니야. 저리 가라고.』
방해받고 싶지 않았던 샘은 휘청거리며 방향을 바꿨다. 하지만 위에서 내려오는 명령을 제멋대로 해석한 다리가 꽈배기처럼 꼬여 이마저 쉽지 않았다. 곧바로 아스팔트의 싸늘하고도 쓴 냄새가 물씬 코를 찔렀다. 그리고 나서야 샘은 자신이 두 손을 땅바닥에 짚은 자세로 엎드렸다는 걸 알아차렸다.
발소리가 났다. 딘이 웃는다. 샘은 어떻게든 일어나려 기를 썼다. 벌겋고 두툼하게 살찐 얼굴이 걱정스럽게 그를 내려다본다. 딘이 웃는다. 의사가 필요한 거냐고? 아무 것도. 누구의 도움도 필요치 않다. 오로지... 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딘... 나만 보고 웃어줘.』
눈물이 흘러내렸음에도 그게 눈물인줄 모르고 땀이라고 생각했다. 경치가 이중으로 보이는 것 역시 땀 때문이라 여겼다.
『젠장! 당신, 미쳤어?』
트럭 운전사가 짜증을 섞어 외쳤다.
『그런가봐요.』
밀물과 썰물처럼 들락날락하는 자신의 거친 호흡소리를 귀로 들으며 샘은 눈을 감았다.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