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4시즌을 기준으로 잡았으나 드라마의 스토리 라인과 일치하는 건 아닙니다. ※
행선지도 알리지 않고 무작정 외출하겠다는 말을 꺼냈음에도 딘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아니,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는 표현을 쓰기엔 어폐가 있다. 두 눈을 어린애처럼 반짝반짝 빛내면서「어디 가? 누구랑 만나? 혹시 데이트야?」진심으로 궁금해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까.
차마 입밖으로 꺼내지 않은 건 수줍음 많은 동생을 배려해야 한다고 진심으로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새끼손가락을 들어보이며 음탕하게 씨익 웃었다간 샘은 아마 발광할 터, 그래서 묻지 않았고, 권총은 왜 안 가져가느냐 잔소리도 하지 않았다. 대신 약간의 지폐를 반으로 접어 샘의 호주머니 속으로 은밀히 넣어주었는데 그 동작은「올해도 잘 부탁합니다」라며 뇌물을 찔러주는 악덕 업주를 많이 닮아 있었다.
샘은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티를 냈다.
『형이 이러는 거, 짜증나.』
『시끄러, 짜샤. 형이 오랜만에 귀여운 동생에게 용돈을 주겠다는데 왜 지랄이야.』
그러면서 딘은 동생의 정리되지 않은 머리카락을 불만스럽게 쳐다봤다.
길게 자란 옆머리는 삐죽 튀어나왔고 뒷머리는 무슨 잡초처럼 덩굴을 치고 있다. 슬픈 노릇이다. 빗질을 아무리 부지런히 해도 곱슬머리는 여차하면 제멋대로의 방향으로 날뛰어버린다. 헤어왁스를 사용해 단단히 고정을 시키면 상황은 개선되겠으나 대신「멍구」가 되어버린다는 단점이 있다. 유일한 해결책은 가위를 사용해서 길이를 짧게 다듬는 것이다. 그가 귀 부근에서 짤각거리며 움직이는 가위를 대단히 끔찍해 한다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서도.
『나가기 전에 물이라도 발라야 하는 거 아냐?』
『그래?』
멋내기에 별 관심이 없는 샘은 딘이 던지는 시선의 방향을 쫓아 대충 여기겠거니 지레짐작하며 뻗힌 머릿결을 쓸어 넘겼다.
순간 딘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왜?』
『아냐, 아냐. 진짜로 별 거 아냐.』
피가 통하질 않아 저리기라도 한 것처럼 손바닥을 오므렸다 폈다 하던 딘은 신경 쓰지 말라는 투로 싱긋 웃었다.
그러니까 이건 말도 안 된다. 다 큰 남동생의 머리를 쓰다듬는 괴팍한 취미따윈 그에겐 없다. 손가락 틈새로 부드럽게 휘감기는 머릿결의 촉감 따위가 다 뭐냐. 땀에 젖은 두피, 그런 거 모른다. 하지만 한편으론 자세히 알고 있는 것도 같다. 손바닥을 활짝 펴서 뒷통수를 감싸안으면 이렇게, 이런 식으로 묵직하게...
『엉?』
까마득히 먼 옛날에 비누 거품이 맵다며 도망치던 동생을 몽둥이로 뚜드려 잡아 머리를 감겨주던 기억이라고 하기엔 어쩐지 아구가 안 맞는다.
「크리스티」와는 일절 연락이 되질 않고 있다.
「미쳤어? 천사를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만나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
딘을 지옥에서 꺼내온 존재가 천사라고 판명나기가 무섭게 그녀는 얼굴색을 바꿨다.
「난 떠나. 잘 있어, 샘. 계속 건강하길 바라.」
우습게도 갑작스런 루비의 작별 인사는 장기 출장을 떠난 남편이 비행기 표를 끊고 돌아왔으니 우리 관계는 이제 끝장났노라 선언하는 것과 흡사했다. 그녀는 답지 않게 허둥거렸고, 누구에게라도 들킬까봐 조급해하는 눈치였다. 저만치서 이혼 전문 변호사가 흡족한 표정으로 계산기를 두들기고 있다는 식이었다. 고개를 숙인 채 종종 걸음으로 떠나려는 걸 붙잡자 꽥 소리까지 질렀다.
「나는 악마고 저쪽은 천사야. 혹시라도 그들이 날 발견하면 어떻게 반응할 것 같아? 안녕하쇼, 형씨. 지상에서의 생활은 재밌소? 이러고 담배라도 권할 것 같아? 천만에. 내 몸을 반으로 접어선 다시 일곱 번을 찢은 뒤에 다짜고짜 심문부터 하려고 들 거야. 내가 널 돕고 있다고 말해도 소용없어. 물에 적신 밧줄로 묶어 허공에 높게 매달아선, 손바닥과 발바닥에 못을 박고, 이마에 낙인을 찍고, 불타는 석탄으로 가슴을 지질 걸. 그렇게 뒈지는 건 절대로 사절이야.」
천사를 본 적도 없고, 아는 것도 거의 없다고 말했으면서 루비가 입에 담은 심문 방식은 꽤나 구체적이었다.
그래서 샘은 천사가 과연 그런 식으로 잔혹하게 행동할 것인지를 고민했다. 하지만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천사는 상냥하니까. 자비로우니까. 중세 시절에 마녀라 고발된 자를 장작불에 세워 화형에 처하던 인간의 야만과는 닮지 않았을 거라 믿는다.
「난 천사가 두렵지 않아, 루비.」
루비는 그렇게 대답한 샘을 바보 천치인양 쳐다보았다.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트럭을 보고도 피하려고 하지 않는 어린애라도 되는 것처럼 비웃었다. 그리곤 등을 돌렸다.
에바레카 에호와 엘로헤카.
너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시리라.
샘의 몸에서 기운이 빠져나갔다.
축복의 말임에도 오히려 저주처럼 느껴지는 건 역시 그녀의 정체가 악마이기 때문일 것이다.
신께서 내려주신 축복.
맛탄(선물), 슈미타(해방), 로하브(그들의 힘).
눈물 자국을 감추기 위해 손바닥으로 얼굴을 세게 문질렀다.
『당신은 천사인가요.』
유행이 지난 양복을 곱게 차려입은 초로의 신사는 그 질문에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천사냐고? 곧이어 초콜릿처럼 검은 피부 위로 홍조가 번졌다. 최고로 아름답다거나, 선량하다는 칭송의 의미로「천사 같다」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는 만큼, 그의 부끄러워하는 태도는 지극히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평소에도「선한 사마리아 인」이라며 이웃들로부터 존경을 받아왔어도 천사의 옷자락까진 닿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거라 여겨왔다. 천사라니. 노인은 교회 유리창에 장식된 아기 천사 그림을 곁눈질로 훔쳐본 뒤에 짐짓 헛기침 했다.
『안타깝지만... 어흠. 아니라오.』
『그렇군요. 나는 천사를 만나고 싶었는데.』
이곳 교회는 365일 내내 열려있다. 도둑의 침입을 걱정하는 신도들은 운영 방침에 불만을 토로했지만 목사의 뜻은 의외로 확고해서 예배당 입구로 자물쇠가 채워지는 날이 없었다. 약에 취한 노숙자가 구석으로 오줌을 갈기는 사고(?)는 종종 발생했지만 냄새 지독한 오물이야 걸레로 닦아내면 되었다. 그리고 참나무로 만들어진 의자는 너무나 무거워서 땔감으로 쓰겠다며 훔쳐가려 해도 막상 실행에 옮기려면 장정 세 사람이 필요했다. 그 외의 금붙이는 순수하게 정신적인 종류여서 전당포에 팔아먹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는 것들이었다. 사랑, 기쁨, 소망, 믿음... 노인은 무사태평한 표정으로 예배당의 정면을 응시했다. 아니, 응시하는 척하며 사실은 피곤한 안색의 젊은이를 살폈다.
주일에는 신자들이 교회를 방문한다.
평일에는 막다른 곳에 다다른 이들이 교회로 도망쳐온다.
그리고 절망에 가득차「그래서 나더러 어쩌라고요」혼자서 혼잣말을 한다.
『미안하오. 기도하는데 방해가 된다면... 그러니까... 저기, 비켜주리다.』
『괜찮습니다. 상관없어요. 기도하고 싶어도 기도가 되질 않으니까요.』
젊은이는 피식 웃으며 손톱을 튕겼다.
『입만 열면 감사는 고사하고 원망이 터져나올 것 같아서요. 그래서 차라리 입을 다물고 있는 편이 나아요.』
딘을 살려줘서 고맙다고, 형을 지옥에서 꺼내줘서 감사하다고 말해야 한다. 그런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고 싶을 뿐이다. 카스티엘의 멱살을 잡고 드잡이라도 했으면 한다. 그게 한 점 거짓이 섞이지 않은 그의 본심이다.
『그거 아세요? 인간은 어처구니없는 욕심 덩어리예요.』
샘은 청바지의 허벅지 부분을 잡았다 놓았다 반복했다.
딘을 지옥에서 해방시킬 수만 있다면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영혼이 철저하게 파괴된다고 해도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여겼다. 만약 딘을 도와주겠다고 한다면 그 상대가 악마라고 해도 기꺼이 손을 잡을 의향이 있었다. 남은 인생을 내던지고, 삶을 내던지고, 세상을 포기하고... 그렇게 했다.
『그 사람이 다시 살아날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하겠다고 맹세했어요. 나가서 사람을 수 없이 죽이고 오라고 해도 그렇게 했을 거예요. 내가 악마가 되어야 한다고 해도 수긍했을 거예요.』
『이해합니다.』
『아뇨, 아무도 이해하지 못 해요.』
샘은 화가 치민 상태에서, 그리고 동시에 깊은 슬픔에 빠져서 고개를 열심히 가로저었다.
『난 뭐든지 할 수 있었어요.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으니까요. 나는 낙담했어요. 포기했죠. 엉망으로 망가졌어요. 그런데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어요. 천사가 은총을 베풀어 그 사람을 나에게로 돌려보내줬어요. 하느님, 감사합니다. 당연히 나는 기뻐해야 해요.』
묘하게 가시가 박힌 말투에 노인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뭐죠. 그 뜻은 기쁘지 않다는 겁니까?』
샘은 거의 속삭이듯이 음성을 낮춰서 말했다.
『그 사람은 날 사랑했다는 걸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해요.』
『교통사고 후유증... 그런 겁니까?』
머리를 심하게 다쳤거나, 장기적인 혼수상태에 빠졌던 사람들 중엔 간혹 기억을 잃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다. 그리고 그 기억은 때로는 영구적으로 손실되어 회복되지 않는다. 노인은 아마도 치명적이었을 사고를 상상했고, 그것은 비행기와 기차, 그리고 자동차, 오토바이 등등으로 시시각각 모습을 바꿔갔다. 그리고 하얀 가운을 걸친 의사가 각종 튜브와 기계 장치에 연결된 환자의 눈꺼풀을 뒤집는 장면까지 이어졌다. TV 연속극에서나 그럴 뿐이고 실제로 병원에선 그러지 않는다는 건 어디까지나 둘째다.
『어쨌든 무사히 깨어난 거죠? 그렇다면 잃어버린 기억을 하나하나 설명해주면 되지 않을까요. 사진을 보여준다거나, 데이트를 하던 소중한 장소로 그 사람을 데려간다거나.』
『그에게 사실대로 말하라고요. 당신과 나는 살을 섞었던 사이라고?』
샘은 구제불능의 미치광이처럼 눈빛을 번득였다.
『피붙이의 하체를 탐했노라고, 남녀가 교합하듯 형제끼리 교합했다고 말하라고요?』
가엾게도 노인은 혀가 입천장에 달라붙었다.
미움이 아니라 사랑인데도 죄.
끔찍한 죄.
『천사가 저에게 벌을 주려는 건가요.』
그것은 고통에 가득찬 소리였다.
『그 감정은 옳지 않다, 그 행동은 옳지 않다 나에게 가르치는 건가요.』
감사의 기도는 그래서 막혔다.
샘은 아무도 자신의 일그러진 얼굴을 볼 수 없도록 등을 구부렸다.
나는 잘못하지 않았어, 잘못되지도 않았어.
반복해서 중얼거리며 손으로 눈을 문질렀다.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