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
애쉬 가라사대, 퍼스트 네임, 미들 네임, 죄다 불명이고 나이 및 거주지 역시 불명. 하지만 자타가 공인하는 이 시대 최고의 뱀퍼라 했다.
누가 뭐래도 자타가 공인하는? 이쯤해서 딘은 로드 하우스로 전화를 걸어「네놈이 사람을 추천하는 기준은 실력이 아니라 젖가슴 사이즈냐!」따지고 싶어졌다. 그러나 체면상 사람을 면전에 세워두고 그딴 소리를 지껄일 수는 없는 노릇이고... 얼굴 근육에 경련이 일어나는 걸 애써 참으며 리에게 반대편 의자에 앉으라 권했다.
제기랄, 이놈의 망할 여자는 옷을 입은게 아니라 입다 말았다. 그것도 허겁지겁 벗어던진 걸 다시 허겁지겁 주워 입었다. 그쪽으로는 눈치가 젬병인 샘도 단번에 알아차리고 안색이 변했다. 남자와 밤새도록 뒹굴고는 머리도 빗지 않고 그대로 뛰쳐나온 꼬락서니다. 서둘다 팬티를 뒤집어 입지는 않았을까. 그럴 가능성 많다. 브래지어는 무작정 손에 쥐고 있다가 핸드백에 꾸셔 넣었을지도. 스타킹의 스타일을 망친 얼룩의 성분이 과즙이 아닐 거라는 짐작에 그저 착잡할 따름이다.
젖꼭지가 훤히 보이는 셔츠로 시선을 주지 않으려 기를 쓰며 평정심을 가장했다.
「어쩐지 애쉬와는 죽이 착착 맞을 것 같군.」
나름대로 예의를 갖춰 셔츠를 새로 갈아입고 깨끗하게 면도까지 끝낸 이쪽만 바보가 된 셈이다.
『미안, 미안. 이런 모습이라. 주로 밤에 움직이는 체질이라 아침엔 영 정신을 못 차려.』
그게 꼭 체질 탓만은 아닐 터인데? 딘은 묵묵히 고개를 숙이곤 있지도 않은 청바지의 보푸라기를 잡아뜯었다. 일부러 대꾸를 할 필요성도 못 느꼈다. 그렇게 불편한 침묵이 잠시 이어졌다.
『자! 그러지 말고 일단은 좀 먹자. 난 배가 고파 죽겠어. 이 가게에선 뭘 시키는게 좋아?』
샘이 어정쩡하게 대답했다.
『에그 토스트가 맛있어요.』
『양이 적잖아.』
나름대로 신경써서 추천해준 메뉴를 일언지하로 묵살한 리는 고개를 길게 빼고 다른 사람들의 식탁을 염탐했다. 무심하게 인쇄된 메뉴판 글씨보단 아무래도 식사 중인 사람들의 표정이 훨씬 더 생생한 정보를 전달해주는 법이다. 왼편으로 보이는 40대의 머리숱 적은 남자는 콘 샐러드와 구운 소시지를 주문했다. 씹는 속도가 현저히 느린 걸 봐선... 에이.『저건 맛 없겠어.』그 반대편에선 마트 계산원인 듯한 여자가 크림 스프와 버터 바른 빵을 음미 중이었다.『70점.』화장실 입구 가까이로 진공 청소기처럼 음식을 흡입하고 있는 트럭 운전사가 보였다.『완벽해. 난 저 사람과 같은 걸 먹을 거야.』날씬한 몸매와는 별도로 리에겐 식탐이 있는 듯했다. 입술 위로 맑은 군침이 - 생기가 돌았다.
『어제 저녁엔 죄송했어요, 리.』
절대로 미안해하는 표정이 아니었음에도 샘은 사과부터 했다. 아침나절부터 형으로부터 그렇게 해야 한다고 단단히 다짐을 받은데다 어쨌든 얼토당토한 오해를 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눈치가 없어서 그쪽이 헌터라곤 생각을 못 했어요.』
별 거 아니라며 리는 손사래를 쳤다.
『괜찮아. 고개 숙일 필요 없어. 오해 받게끔 분위기를 조장한 내 잘못도 없잖아 있으니까.』
분위기만 조장한게 아니라 정말로 그쪽인 거 아냐? - 입만 열지 않았을 뿐이지 그 생각을 굴뚝처럼 하고 있는 건 분명했다. 손톱으로 테이블 모서리를 만지작대는 샘의 눈빛은 더할나위없이 냉랭했다. 모두가 찬양해 마지않던 상냥하고 친절한 미소는 진작에 치워졌다. 대신 진열장을 앞켠을 차지한 건 언제 녹을지 추정이 불가능한 히말라야의 만년설이었다. 혀를 델 만큼 뜨겁고 진한 커피가 서빙되어 나왔음에도 덕분에 샘의 주변 온도는 계속해서 영하권에 머물렀다.
『그런데 그쪽은 전갈좌?』
질문의 내용으로 보자면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건 딘도 마찬가지다. 기가 드세거나, 성격이 더럽거나, 남자를 깔고 앉을 것처럼 생긴 여자 - 이를테면 소크라테스의 마누라인 크산티페 같은 여자는 무조건《전갈좌》다. 물론 이것은 잘못된 선입관으로 잡지에 나온 심심풀이용 별자리 점괘보다 질이 더 나빴다.
『응? 나는 사수좌인데.』
틀림없이 맞을 줄 알았는데 왜 아니라는 거지 - 하면서 딘이 머리를 만졌다.
『그거 이상하네. 분명히 전갈좌일 거라 생각했는데.』
아무튼 흐트러진 옷무새로 다리를 쩍 벌리고 앉는 여자는 질색이었다.
「한 가지 좋은 점도 있네. 아무리 얼굴이 예뻐도 형은 저 여자에겐 작업을 걸지 않겠군.」
샘의 입술 끝부분이 살짝 올라갔다. 숯덩이처럼 뜨거운 커피가 목구멍을 넘어갔다.
빙빙 돌려 말하는 건 취미가 아닌 듯했다. 촉촉이 젖은 데니쉬롤을 큼직히 찢어 덩어리째 입에 넣으면서 리는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자, 그래서 말인데... 너희들, 애쉬의 말로는 뱀파이어에게 노림을 당하고 있다고 하던데.』
아침 식사를 즐기는 일반인들에 대한 배려는 요만큼도 없는 행동이었다. 딘은 신음했다.
『여긴 식당 한 가운데야, 리. 부탁이니 다른 사람들 귀를 생각해.』
『흥! 괜한 걱정이야. 누가 우리에게 관심이나 둘 것 같어?』
『뭘 모르시는 말씀. 이미 충분히 시선을 받고 있다고. 저쪽에 앉은 트럭 운전사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당신 옷을 열 번은 넘게 벗겼다는 건 아시는감?』
『알다마다. 하지만 그가 열심히 훔쳐보는 건 내 몸뚱이지 여기는 아니니까 괜찮아.』
그러면서 리는 자신의 관자놀이 부근을 손가락으로 꾹꾹 눌렀다.
『그런데 시작하기 전에 먼저 이 말부터 해둘게. 내가 너희들을 나흘 남짓 미행을 해봤는데 특별히 수상하다 싶은 징조는 전혀 없었거든?』
그건 윈체스터 형제들을 기절초풍하게 만들고도 남는 폭탄 발언이었다. 나흘 남짓 미행을 했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그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눈을 휘둥글 떠보였다. 녹색의 눈동자와 눈동자 사이로 투명한 모르스 부호가 총알처럼 날아다녔다.
「맙소사, 샘. 무슨 낌새를 느꼈던 적 있어?」
「없어.」
「저쪽에서 미행을 했다잖아.」
「전혀 눈치 못 챘어.」
「이런 일이 가능하긴 한 거야?!」
헌터로서의 자존심과 긍지가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딘은 상처 입은 목소리로 외쳤다.
『거짓말!』
『어머? 진짜야. 수상한 거 없었대도.』
『그게 아니라 우릴 미행했다는 거 말이야. 우린 전혀 몰랐는데.』
『바보 같은 소리! 손이라도 흔들면서「지금부터 미행을 하려 합니다. 각오를 해주세요. 화장실에 가면서 방구를 뀌면 이미지가 구겨질지도 몰라요.」이랬어야 했다는 거야? 상대방 몰래 뒤를 밟는게 미행의 사전적 의미야. 알아차리게 미행하는 건 미행이 아니지.』
이런 걸 가리켜 확인 사살이라 한다. 심각한 균열이 발생한 벽돌을 향해 쇠망치를 깡깡 내리친 뒤에 사방에 널린 파편은 무시해도 그만이라며 다시 먹는 일에 열중했다. 잘게 찢은 계란에다 토마토를 얹고는 당근과 같이 하여 맛있게도 냠냠. 걸신 들렸다. 구운 감자를 절반으로 토막내곤 한 입에 꿀꺽이다. 그러고도 성이 차질 않아 다음으론 베이컨을 공략했다.
『다만 뱀파이어들은 인간과는 다른 시간적 개념 속에서 살고 있지. 녀석들 수명이 인간보다 세 배 가까이 기니까. 그런 연유로 기껏해야 사나흘 가지고「습격의 징조는 없음」이라고 섣불리 판단을 내리지는 않을게. 달력에 3이라고 표시가 되어 있어서 석 달 뒤라고 생각했는데 무려 3년 뒤에 나타나 모두를 놀라게 만들었다 - 식의 이야기도 가능하거든. 기본적으로 뱀파이어 녀석들은 조급한 편이지만 영리한 놈들은 기다림의 미덕이 뭔지를 아주 잘 알아.』
여기까지 말한 리는 계란에다 깨 소스를 더 뿌렸다.
『어쩌면 3년이 아닐 수도 있어. 길게는 30년도 가능하지. 그들은 한 번 노린 멋익감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거든. 이건 너희들에겐 결코 좋은 소식이 아닐 거야. 현장에서 뼈가 굵은지 30년이나 흘러 은퇴를 결정하고 태평하게 낚시질이나 하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등뒤에서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는 거야.「거기 누구쇼?」하고 돌아다 보았더니 하얗게 빛나는 엄니가「바로 납니다」라고 대답하는 걸 상상할 수 있겠어?』
딘은 묵직한 한숨과 함께 튀긴 생선 조각을 접시 밖으로 치웠다.
『상상하게 하지 마. 입맛 떨어져.』
사실 어렵게 상상할 필요도 없다. 그들은 그렇게 당한 사람 하나를 아주 잘 알고 있다.
『다니엘 젱킨스.』
제대로 먹은 것도 없으면서 냅킨으로 입가를 닦은 샘이 그 불운한 남자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젊은 시절엔 뱀파이어 헌터로 제법 유명했다고 들었어요. 은퇴 후엔 콜로라도 주 매닝에서 은거했고요. 하지만 평온한 노후는 아니었어요. 곰에게 맞아 죽은 것처럼 해서 자기 집에서 시체로 발견되었죠. 거기 경찰들은 미치광이 강도의 소행이라 추정했지만 범인은 여지껏 못 찾았어요. 그도 그럴 것이 영감님을 살해한 건 사람이 아니였으니까요. 루더라는 자가 리더로 있던 뱀파이어 무리가 바로 그를 죽인 범인이었어요.』
『그가 죽었다는 소식은 나도 들었어. 바보 같은 젱킨스... 늙다보니 만사가 게을러져서 냄새 지우는 일을 까맣게 잊은 거야. 일주일에 한 번 목욕하는 건 빼먹어도 괜찮지만 그건 잊어선 결코 안 되는 거였어.』
두 장째 베이컨을 포크로 찍으면서 그녀가 나즈막히 중얼거렸다.
『냄새요?』
『뱀파이어의 코는 개의 후각의 꼭 다섯 배야. 냄새로 개체를 구분하지. 거기다 한 번 맡은 냄새는 절대 잊지 않아. 그들의 능력으로는 8,800㎢ 면적을 자랑하는 광활한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에서 딱 한 사람만 찝어 찾아낼 수도 있어. 우리처럼 GPS 기술을 빌릴 필요도 없지. 마음만 먹으면 네브라스카에서 뉴햄프셔까지도 아무렇지도 않게 따라올 걸. 때문에 우리들 뱀파이어 헌터들은 냄새를 추적당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고 있어.』
『아.』
그러고보니 생각난다. 존도 비슷한 얘기를 꺼내면서 그 부분을 걱정했더랬다.
『우리 아버지는 뱀파이어가 우리들 냄새를 못 맡게 하려고 썩은 짐승의 가죽을 태웠죠.』
그 말을 듣기가 무섭게 리의 표정이 나빠졌다. 자동차에 깔려 죽은 개라도 봤다는 식이다.
『겍! 뭘 태웠다고라? 싫다... 머리 정수리를 민둥산이로 밀어댄 18세기 승려들이나 그랬을 거다. 고리짝 시절의 속설을 믿고 스컹크 냄새를 풍겼다는 거니?』
샘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모르긴 해도 냄새가 아주 나쁘긴 했어요.』
『그리고 장담하는데 그리 썩 좋은 효과도 못 봤을 거다. 세상에, 그런 멍청한 방법이라니.』
「멍청하다」라는 표현에 샘은 기분이 상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존은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정확히 아는 것과, 알고자 노력하는 건 아무래도 차이가 컸다. 많은 책을 읽고 정보를 구했어도 그것이 꼭 옳은 것들이었다곤 할 수 없다.
「18세기 승려들이나 쓰는 방법이었대요, 아빠.」
딘도 존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언뜻 보기에 그는 언제나처럼 무덤덤한 표정이었지만 왠지 그 시선 만큼은 굉장히 먼 곳을 보고 있었다. 갑자기 불안해진 샘은 하던 곁눈질을 멈추고 얼른 형의 팔꿈치를 찔러 필요하지도 않은 소금병을 집어달라고 부탁했다.
『좀 있다 내가 냄새를 감추는 효과적인 방법에 대해 가르쳐줄게. 필요한 재료들이니 혼합 방법이니 하는 것이 제법 복잡하니까 필기를 해둘 노트가 필요할 거야. 식당에서 나가면서 적당한 사이즈의 수첩을 하나 사도록 해라. 그건 그렇고 너희들, 젱킨스를 죽인 뱀파이어를 추적했구나. 그와는 절친한 친구였었나 보지?』
『아뇨. 아버지의 지인이었어요.』
그 대답에 쓴웃음 비슷한 것이 리의 입가로 올라왔다.
『호오, 이거 놀랍다. 동료도, 친구도, 혈연 관계도 아닌, 그냥 아버지가 아는 사람이었는데 얽혀 들어갔다 이 말이니? 이거 의리가 보통이 아니시구먼.』
『비꼬는 건가요.』
샘이 예민하게 반응하자 리는 살짝 색을 바꿨다.
『그냥 감탄하는 거라고 하자, 샘 윈체스터. 정식 뱀파이어 헌터도 아니면서 젱킨스의 복수를 하려 했다는 건 아무나 흉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아무튼 거기에 대한 자세한 이야긴 나중으로 하고... 중요한 것부터 질문할게. 젱킨스를 습격한 무리의 리더가 루더라고 했지?』
『예.』
『오케이. 그의 조무래기를 몇 건드린 모양이군. 루더가 너희들을 노리고 있나.』
『아뇨. 루더는 죽었어요. 우릴 노리는 건 그의 가족이라 들었습니다.』
『흐음. 그거 대단한걸. 그럼 루더의 목은 둘 중에 누가 베었지.』
『아무도요. 아버지가 콜트로 그를 쏘았...』
『뭐얏?!』
갑자기 리의 안색이 돌변했다. 얼굴색만 바뀌었던가. 펄쩍 뛰며 테이블 앞으로 몸을 던졌다.
『지금 콜트라고 했어?!』
끓는 기름에 물이 부어졌다. 아니면 염산에 구리 조각이 떨어졌다. 반응이 지나치게 격렬했다.
자글자글 소리를 내는 리의 눈빛 앞에서 샘은 어쩐지 자신이 해서는 안 되는 말을 무심코 털어놓은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