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다음 편은《bloody blast》입니다. 애쉬가 죽은데다 로드 하우스까지 불탔으니 설정을 바꾸어야 할 터인데 큰일났습니다. 어허허! 제작진은 애쉬도 살려내라, 살려내라~!! ※
아침이 되기 전까지 주 경계선을 무조건 넘어야 한다.경찰 사칭죄는 심각한 범죄다. 가택 침입은? 두말할 것도 없이 대단히 중대한 범죄다.
샘은 그 커다란 손을 호주머니로 찔러넣은 채 등을 둥글게 구부렸다. 자세만 보자면 겁에 질린 고슴도치 새끼다. 근방으로 대화를 엿들을 사람도 없건만 소곤대며 목소리를 낮췄다.
『어때, 딘. 수배령이 내려질 것 같아?』
『아마도. 우리가 진짜 경찰이 아니라는게 들통나는 건 시간 문제야.』
아내는 보란 듯이 기절해있고, 거실 가재도구는 엉망진창이고, 먼지를 뒤집어쓴 시커먼 사내 둘이 옷장에서 튀어나온다. 캐빈 쉐퍼드는 당장에라도 심장마비를 일으키려 한다. 허나 관찰력이 뛰어난 그는 로버트 보이든이라는 가명의 신분증 수첩을 재빨리 기억해낸다. 윈체스터 형제들에겐 행운이다.
「무, 무슨 일이죠, 형사님들?」
딘은 재빨리 머리를 굴려 이야기를 지어낸다.
「집이 비어있다고 생각하고 침입했던 모양입니다. 중산층 가정집을 재미삼아 부수는 악동들이예요. 질 나쁜 깡패들이죠.」
키 작은 형사가 널부러져 있는 여자의 상태를 확인한다. 키가 큰 쪽은 전화기를 들어 직접 911을 호출한다. 캐빈은 그제서야 긴장을 조금 늦추고 부인의 손을 잡아준다.
「조심하셔야 해요. 침입자가 집안에 있지 않다는 건 확인했지만 그들이 아직 바깥에 머무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희가 다시 근방을 살피고 오겠습니다.」
「캐빈 쉐퍼드 씨? 엠뷸런스가 오기 전까지 부인 곁을 떠나지 마세요. 절대로요!」
다행히 캐빈 쉐퍼드는 순종적이었다. 사내는 반드시 그러겠노라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밖을 살피고 오겠다는 두 남자의 거짓말을 철썩 같이 믿으며, 전속력으로 달려올 경광등 소리를 기다렸다.
1분 1초가 아깝다. 딘은 시계를 내려다 보았다.
『서두르자, 샘. 신고를 받고나서 구급대가 현장에 도착하기까지의 평균 시간은 4분이야.』
『재니스는 괜찮을까.』
『내가 살펴봤을 적엔 맥박이니 하는 것들은 정상이었어. 깨어나면 아마 7살 이전의 기억들은 송두리째 날아갔겠지만... 그 정도면 썩 나쁘진 않잖아? 맹장을 도려냈다고 치면 될 거다.』
거기까지 말한 딘은 샘에게 빨리 차에 올라타라고 신호했다.
『내가 운전할게. 형은 지금 다쳤잖아. 지금도 다리를 절고 있고.』
『시끄러.』
『맙소사, 딘!. 그 몸으로 운전을 하고 싶어?』
『하고 싶어.』
『그거 알아? 형은 진짜지, 진짜지 얼간이야!』
결국 샘과 딘은 누가 운전대를 잡을 것인가를 두고 가위바위보를 했다.
어딘지 모르게 학습 능력이 의심스런 딘은 언제나처럼 가위를 내밀었다. 운을 믿는 건지, 아니면 운을 전혀 믿지 않는 건지 그 진의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딘은 지금 대단히 아파보였고, 샘은 형의 운을 좋은 방향으로 전적으로 밀어줄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럼 네가 먼저. 교대는 2시간 뒤에.』
역시나 아팠던 거다. 별다른 반항 없이 동생에게 선뜻 임팔라의 열쇠를 던져준 딘은 조수석으로 가서 쓰러지듯 앉았다. 방어적으로 팔짱부터 끼는 자세는 몸이 많이 아프다는 걸 의미한다. 딘은 그렇게 하면 고통이 덜하다고 동생에게 가르쳐왔다. 샘은 조수석 수납장 안으로 진통제가 있음을 알려주었다. 허벅지의 피멍은 이제부터다. 처방전 없이 구한 약이라 그 정체가 대단히 수상쩍긴 해도 미리 약을 먹어두는게 좋을 것이다.
『끄응... 의심받을 행동은 하지 말고. 과속은 절대 금지야.』
『잔소리는 관두고 이참에 눈이나 붙이지 그래, 딘.』
『안 그래도 그럴 참이야. 그런데 샘? 미리 말해두는데 장난이랍시고 내 입에다 일회용 스푼을 끼워넣기만 해봐.』
『스푼은 안 된다고? 그럼 포크로 대신할게.』
『농담하는 거 아니다, 동생아.』
『나도 죠크하는 거 아니네요. 누구 말이더라. 복수는 달콤하다고. 바이런이 그랬던가?』
『그리고 이런 말도 있지. 인생은 쓰다... 정말 쓰다.』
단단히 경고한 딘은 좌석에 몸을 기대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벌써부터 약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노곤함이 달콤하고 부드러운 사탕 포장지가 되어 딘의 얼굴을 감쌌다. 돌풍을 타고 오즈로 날아가버린 도로시가 코앞에서 손을 내밀었다. 이제 곧 그는 깡통 고철 나무꾼을 만날 것이고, 겁쟁이 사자도 만날 것이며, 요정의 대모도 볼 수 있을 터였다. 그럼 이놈의 저릿저릿한 통증과도 바이바이다. 온몸의 신경줄이 물 먹은 이불처럼 들썩거렸다. 위장에서 녹기 시작한 약이 내부에서 침착하게 작동을 하기 시작하는 걸 느끼면서 눈을 감았다. 순간 뒤로 젖혀진 코로 공기가 들어가면서 한바탕 우스꽝스런 소리를 냈다. 아무리 불가항력이라지만 자신의 두 귀로 그 소리를 들은 딘은 심하게 인상을 찡그렸다. 의식은 아직 깨어있는데 코를 골고 있다. 맙소사.
『저어, 방금 듣기 민망한 이상한 소리가 났는데...』
『젠장, 샘. 라디오라도 틀어.』
앉은 키가 곱절로 작아진 딘이 짜증을 섞어 투덜거렸다. 별 것도 아닌데 재밌어 하는 동생은 얄밉다.
아니, 사실 그건 얼토당토 않은 착각이었다. 샘은 그렇게 재밌어 하는 표정을 하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우울해 보였다. 비가 부슬비슬 내리는 가을 날에 낙엽 그림자를 보고「마지막 입새」의 주인공을 흉내내는 감성 풍부한 10대 소녀처럼 말이다. 저 마지막 잎사귀가 떨어지면 난 사신의 입맞춤을 받는 거야... 건강 검진 결과표가「너무 건강해서 탈이다」라고 말해줬다는 건 새카맣게 잊어먹곤 시한부 환자의 비극을 흉내낸다. 메디아, 오이디푸스, 죄다 덤벼라. 나는 비극의 킹이다. 그 옆으로 식어버린 커피만 있으면 지구 멸망 대 서사시까지도 가능할련지 모른다.
가로등 하나 없는 국도를 달려가며 샘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카피했다.
『저기 있잖아...』
『엉.』
『그렇게 내가 미웠어? 원념이 딘의 생각을 읽고 전화를 걸어댈 정도로... 그 정도로 미웠어?』
이놈이 또 어디 가서 이상한 거 주워먹었어.
한쪽 눈을 슬그머니 올려뜬 딘은 귀찮아 하는 기색을 명백히 하며 끙 소리를 내뱉었다. 엉덩이가 걸려서 불편했다. 조수석 시트 아래로 아무래도 작은 강낭콩 한 알을 숨겨둔 모양이다. 잠을 자고 싶건만. 딘은 정말이지 간절하게 잠들기를 원했다.
『라디오나 틀어, 샘.』
『대답을 회피하는 걸 보니 내가 진짜로 미웠구나.』
『제발 짜증나게 굴지 마. 넌 지금껏 내가 미웠던 적이 단 한 번도 없니? 엄청 많을 걸. 네 어렸을 적의 입버릇이라는 건「형은 나빠!」였다고.』
『난 10년 전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야, 딘.』
『그래, 10년 전이 아닌 오늘 이야기지. 하지만 네가 임팔라 지붕으로 총알 구멍을 뚫어 놓았잖아. 그래놓고도 내가 널 미워하지 않기를 바라는 건 사치야.』
『맙소사! 형은 나보다 임팔라가 더 소중해?』
『소중해.』
동생보단 자동차가 더 소중하다는 말에 샘이 격렬히 반발했다.
『돼지!』
『뭐어?! 너, 지금 형에게 뭐라고 그랬어.』
『원숭이!』
『야!』
『나쁜 놈!』
『거 봐, 넌 하나도 안 변했어.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마침내 라디오가 켜졌고, 샘은 한껏 화가 치민 표정으로 정 중앙을 응시했다.
야밤이라 그런가, 그저 그렇고 그런 옛날 유행가가 흘러나왔다. 이제 좀 낫군. 적당한 소음에 안도해하며 딘은 본격적으로 잠으로 빠져들 자세를 갖췄다. 시야가 너무나 흐릿해서 일직선으로 난 국도가 S자로 뒤틀려 보였다. 앞으로 펼쳐진게 바다인지 숲인지 구분도 가지 않았다.
『그래도 난 진심으로 형을 미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어.』
『거짓말.』
『거짓말 하는 거 아니야.』
『새미 어린이? 거짓말을 하면 똥구멍에 털 나요.』
『옳커니! 바로 증명되잖아. 내 거긴 매끈매끈해.』
『...』
『정말이야. 털 안 났어. 진짜야. 진짜라니까.』
『샘? 이 형은 지금 기가 막혀서 기절하려는 참이야. 나 대신 병원에 전화해 주겠어? 옛다.』
운전석을 향해 핸드폰을 집어 던지면서 딘은 생각했다. 이건 완전히 미친 짓이다. 왜 우리는 지금 말도 되지 않는 주제로 말다툼을 하고 있는 거지?
샘은 계속해서 우겼다.
『정말이야! 난 형을 진짜로 미워한 적이 없어.』
『호오... 그래? 그럼 넌 내일 아침에 화장실에서 요상한 포즈로 거시기 털을 뽑느라 고생 좀 해야 할 거다, 이 거짓말쟁이야. 네가 닥터 엘리컷에게 당했을 적에 (1x10화-Asylum) 넌 화가 잔뜩 나서 나에게 방아쇠를 세 번이나 당겼어.』
손가락을 세 개 들고 강조했다.
『한 번도 아니고 무려 세 번이었어. 알아?』
『나, 난...』
『샘? 이 마당에 가로수를 들이받으면 곤란하지 않겠어? 앞을 똑바로 보고 운전하렴. 그리고 유령에게 조정당한 거니까 횟수에는 안 들어간다는 변명따윈 집어치워. 사람은 누구라도 미워하는 마음을 품을 수 있는 것이고, 그건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야. 오히려 지극히 정상적인 거지. 그러니까 진짜로 미워한 적이 없다거나, 단 한 번도 미워한 적이 없다는 말은 하면 안 돼. 왜냐면 그건 결코 사실이 아닌 말이니까. 달에는 토끼가 살고 있지 않잖아? 마찬가지야. 절대로 미워한 적 없다는 말은 그러길 바란다는 일종의 환상이야. 나는 아빠를 사랑했어. 하지만 미워한 적도 있어. 늘 우리들 생일을 잊어버리신 것이 섭섭했어. A+ 성적표를 받아온 너에게 은탄환 만드는 걸 왜 잊었냐고 야단을 치실 적엔 기가 막혔지. 네가 기말고사 공부를 하느라 정말 힘들어 했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우리들 아버지는 진짜 무신경하다는 걸 깨닫고 조금은 슬펐어.』
그치만 괜찮다. 나쁜 마음은 곧 흘러가버린다.
딘은 감정이라는게 맨발로 달아난 얼굴로 라디오 채널 박스를 톡톡 건드렸다.
『미워해도 괜찮아. 그건 잘못된 것이 아니야.』
운전석을 쥐고 있는 주제에 샘은 도무지 앞을 보려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괜찮다고?』
『괜찮고 말고.』
『하지만 미움 받는 건 전혀 괜찮지 않아, 딘... 전혀 괜찮지 않다고.』
빙빙 돌아왔긴 했지만 결국 하고 싶은 말은 그거였던 건가.
어이가 없어서 딘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웃지 마, 딘. 난 심각해!』
『알아. 멍청아.』
기묘한 기분에 사로잡힌 딘은 손을 뻗어 동생의 말랑거리는 귓불을 잡고 꾹꾹 눌렀다.
그리고는 한껏 무게를 잡고서 위대한 임금님처럼 근엄하게 말했다.
『뿡뿡.』
샘이 어이가 없다며 입을 벌렸다.
『지금 뭐라고 했어? 뿡뿡?』
『미친 놈 잠꼬대야, 샘. 그러니 신경쓰지 마.』
청명한 푸른 하늘에서 갑자기 나타난 돌풍은 헛간을 날려버린 뒤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길은 어두웠다.
딘은 눈을 감았고, 이내 그의 의식은 바닥 없는 깊은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