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톳불의 노래" 와는 시기가 연결되지 않아요.
『사막으로 나가는 건가.』 괴물을 잡는 장검을 가진 자가 목소리를 크게 했다.
이부와 청년은 동시에 서로를 쳐다봤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의미가 함축된 눈빛으로 열 마디 말보다 더 많은 정보를 교환했다.
「이런 식으로 등장한 것치고 정상적인 사람을 본 적이 없는데.」 「키는 나만한데 아직 변성기도 겪지 않은 목소리네. 도대체 나이가 어떻게 되는 거야.」 「저놈의 검은 왜 저리 크담.」 「머리 꼭대기까지 후드를 눌러쓰고 눈만 빼꼼 내밀고 있으니 수상한 사람 같잖아.」 「사막 안내자는 널리고 널렸는데 왜 하필이면 우리 쪽으로...」
출발 준비를 끝마친 사막 썰매를 흘끔 쳐다본 소년이 다시 말했다. 『돈은 후하게 쳐 주겠다.』 자신의 말이 한 점 틀리지 않음을 증명하고 싶었던지 소년이 제법 묵직해 보이는 주머니를 꺼내 보였다. 쥐고 흔드니 쩔렁 소리가 난다. 싸구려 구리붙이나 자갈을 넣어 속임수를 쓰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동으로 만든 대륙 통화이거나 은화다. 그것이 돈 주머니임을 확신한 - 게다가 주머니에 든 금액이 상당하다 - 이부의 표정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무엇을 원하시오.』 『테라로 가고 싶다.』 젠장맞을. 이럴 줄 알았다니까. 이부가 바닥에 침을 뱉었다. 『못 가오.』 『어째서?』 『먼저 온 손님과 가는 방향이 다르오.』 『사막으로 가는 거 아니었나.』 『사막은 사막인데 같은 사막이 아니오.』
염연히 다르고 말고. 한쪽은 관광지고 다른 한쪽은 전쟁터다. 이부는 골치가 아프다는 표정을 감추지도 않고 머리를 긁어댔다. 모험가들을 데리고 관광지를 돌아다니는 것과 당장에라도 폭탄이 날아올 것 같은 험한 곳을 돌아다니는 건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가 있다. 일부러 위험한 걸 자처하면서까지 돈을 벌고 싶지는 않다. 먹여 살려야 할 처자도 있... 이쯤해서 이부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으~앗! 아직 장가를 가지 않았으니 먹여 살릴 처자가 없잖아! 가느다란 개미 허리를 가진 꿈 속의 마누라를 상상하며 이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 언제 장가들어 토끼 같은 자식들의 재롱을 보나. 『다른 안내자를 찾아보시오. 나는 선약이 있소.』
그래도 소년은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 『어쨌든 사막으로 나가는 건 맞지?』 『그렇수다만...』 『방향이 같은 곳까지라도 태워주게. 도중에 내리라고 하면 군소리 않고 얌전히 내리겠네.』 짐작컨대 이부와 같은 반응을 보인 사막 안내자들을 한 다스는 미리 만났던 것 같다. 돈을 보여줘도 싫다고 한다. 두 배, 세 배, 아니. 다섯 배로 준다고 해도 모르는 척한다. 그러니 구걸하고, 애원하고, 떼를 써본다. 소년의 말투엔 절박감이 묻어 있었다.
이부는 난처해하며 머리를 더 심하게 긁었다. 안 된다면 안 되는 거라니까. 말을 하면 좀 알아 들어라, 이 찐드기 같으니라구. 그리고는 옆에 선 청년의 옆구리를 찔렀다. 「뭐하고 있소.」 「에?」 「싫다고 해, 어서. 동행하기 싫다고 말하라고.」 「나, 나는... 그, 그런...」 「난리통에 휩쓸리고 싶냐구. 그러니까 말해.」 마지못해 젊은이가 입을 벌렸다. 『에, 나는 그러니까...』
하지만 그 전에 저쪽에서 먼저 선수를 쳤다. 눌러쓰고 있는 후드를 벗어내리자 새빨간 머리카락이 탐스럽게 흘러내렸다. 저주스런 불꽃의 빛깔이다. 사람의 마음을 농락하곤 잿더미로 만들어 버리는... 이부의 눈이 접시가 되었다. 여자다. 변성기가 지나지 않은 소년이 아니라 아름다운 여자였다. 냉정하게 굳게 다문 입술이, 그리고 곧게 뻗은 콧날이 오아시스의 바람 같다. 크고도 붉은 눈동자가 보석처럼 반짝인다. 멋지다. 천진난만한 외모에 숨겨진 잔혹함이 참을 수 없게 매혹적이다. 이부는 자신이 생전 처음 여자를 보는 얼뜨기처럼 뺨을 붉혔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자리를 같이 한 청년 역시 정신을 놓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천천히, 매우 천천히 손가락으로 눈가를 문질렀다. 『도중까지만이라도 괜찮네. 나는 그저... 몸져 누우신 아버님께 마지막으로 술 한 잔을 올리고 싶어서... 흑!』
눈물을 삼키는 소리에 반응, 이부는 재빨리 몸을 날려 사막 썰매에 실은 짐 꾸러미를 한편으로 치워 자리 하나를 급히 만들었다. 비싸다는 새 방풍 마스크까지 어디선가 찾아 꺼내놨다. 그리고 큰 목소리로「어서 빨리 타도록 하십쇼~!」라고 말했다. 엉겹결에 동행이 생긴 젊은이가「그렇다고 내 가방을 버리면 어떻게 합니까!」라고 항의해도 가뿐히 씹었다. 적이 포탄을 바가지로 퍼부어도 기어코 뚫고 지나가 보리라. 성난 사자가 울부짖어도 전진하리라. 이부는 흥분하여 출발의 깃대를 높이 올렸다. 『테라로 갑니다~! 테라~』
예나 지금이나 미인계가 장땡이다. 거기다 초선의 눈물이 더해지면 천하의 여포도 동탁을 배반한다. 그것이 눈물이 아니라 손가락으로 바른 침이라 해도 남자들의 마음은 가볍게 부셔진다. 보태어 슬픈 미소를 살짝 지어라. 그 누가 항복을 선언하지 않고 버티리.
사막 썰매에 올라타자마자 도로 후드를 깊숙이 눌러쓰는 여자를 보고 청년은 쓴 웃음을 지었다. 이거, 이거. 만만치 않은 상대를 만났다. 사막 썰매 지붕에는 뜨거운 햇살과 자외선을 반사하는 특수 코팅 차양막이 드리워져 있다. 그리고 티카티카 바위 새는 닭처럼 생긴 외모와는 달리 말보다 빠르게 달린다. 이걸 다시 말해보랴. 발가벗고 온갖 난리를 피워대도 사막 썰매에 타고 있는 이상 다른 사람의 눈엔 잘 안 보인다. 뭔가 온다 싶어 뒤를 돌아다 보면 이미 휙- 하고 저 만큼 앞을 지나간다. 따라서 썰매에 탄 사람이 제대로 옷을 입었는지, 아님 홀딱 벗었는지를 가려내려면 올빼미보다 더 커다란 눈과 엘프의 눈썰미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드를 깊숙이 눌러썼다는 건... 좋게 말하면 조심성이 많다는 거고, 나쁘게 말하면 구린 곳이 많다는 거다. 내기를 해도 좋다. 저 여자는 초원을 걸어도 자기 발자국을 지워가며 앞으로 나아갈 거다.
『이것도 인연인데 이름이나 알고 그러십시다.』 포장도 뜯지 않은 여자의 새 방풍 마스크와 토사물 찌꺼기가 달라붙은 자신의 처량맞은 마스크를 번갈아 쳐다보던 청년이 퉁퉁 부운 얼굴로 말했다. 『나는 그라바스요. 댁은?』 『유나.』 언제 울먹였느냐며 그 목소리엔 떨림이 없다. 순 사기꾼. 그라바스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그거 압니까? 사람이 죽은 다음에야 마지막 술을 올리는 겁니다.』 당연하다. 아파서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사람에게 술을 먹이는 멍청이 짓을 누가 하냐. 혼수상태의 환자인 경우엔 더더욱 못 한다. 설마하니 코에다 튜브를 꽂고 술을 들이붓지는 않을 것이고... 그딴 짓을 저지르면 그건 배 아파 낳은 자식이 아니라 웬수다. 뭐, 술 냄새가 코가 아프도록 진동한 나머지 데리러 온 저승사자가 이마를 찡그리며「술이 깰 즈음에 다시 오겠네」라고 한다면야 시도해볼만은 하겠지만. 그럴 일이 절대로 없다는 점에서 생애 마지막 술은 장례식에서 올리게 된다.
여자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다가 똑 부러지는 말로 이렇게 대답했다. 『돌아가셨다.』 『어랍쇼. 방금 전에는 몸져 누우셨다고 했잖아요. 분명히 그랬다고요.』 『2분 전에 돌아가셨다.』 『우와~. 무지하게 솔직한 언니네.』
「댁이 잘못 듣고 착각한 거예요」라고 잡아떼지 않고 완곡어법으로「방금 전에 내가 한 말은 거짓말이다」이라 인정한다. 그라바스는 어깨에서 힘을 빼고 싸우려던 의지를 꺾었다. 솔직한 사람에겐 약해진다. 하여 여차하면 사막 썰매에서 여자를 끌어내리려던 계획은 백지로 돌리고 이부가 잔뜩 쌓아올린 짐 꾸러미를 다시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부의 썰매는 3인승이다. 그래도 워낙에 실린 짐이 많아 두 사람이 앉아 있기엔 좁은 감이 없잖아 있었다. 여자가 좀 더 편하게 앉을 수 있도록 공간을 넓혀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게중에 가장 작아 보이는 짐을 자기 무릎 위에 올려놓고 최대한의 편의를 여성에게 양보했다. 여자에겐 잘 해야 한다. 어려서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얘기다.
여자는 조금은 놀란 눈치다. 『그럴 필요까진 없다.』 『아뇨. 이럴 적엔「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거예요, 유나.』 『내 엉덩이는 작다. 나보다는 자신을 걱정해라.』 남자의 말투를 쓰면서 유나는 냉정하게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과시하듯 자신의 장검을 들었다 놓았다. 그렇다고 여차하면 베어버리겠다는 위협은 아니고... 저 동작의 의미는 아마도 자신은 보호를 받아야 할 약자가 아니라는 뜻일 거다. 오히려 여자는 그 반대를 생각하는 듯했다. 남자답지 못한 좁은 어깨와 팔뚝, 그리고 보들거리는 손. 냄새가 심하다고 마스크를 멀리하는 소심함... 유나는 이부가 꺼낸 새 마스크를 그라바스를 향해 툭 던졌다. 『이걸 써라.』 애 취급에 꼬맹이 취급. 그라바스는 땅이 꺼져라 한숨 쉬며「이건 또 뭡니까~」하고 하늘을 원망했다. 『그럴 필요는 없는데요.』 『이럴 적엔「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거다.』 당했군. 그라바스는 희미하게 웃고 있는 여자 앞에서 할 말을 잊었다.
Posted by 미야
2006/06/17 10:53
2006/06/17 10:53
- Response
-
No Trackback
,
-
http://miya.ne.kr/blog/rss/response/59
Trackback URL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
겉 딱지는 슬레이어즈라고 해도 오리지널 성향입니다. 1기 및 4기라고 라벨을 붙인 녀석은 전부 그렇습니다. [죄는 반복된다] 이후로 일부 내용이 연결됩니다. 아차, 이거... 큰일났군. [죄는 반복된다] 글은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아 서관에 없습니다. 기억에 의존하여 주세요. 죄송혀요. 기분전환용 현실도피입니다. 짐짐하신 분은 가볍게 패스~
첫 번째 감상은 덥다. 두 번째 감상은 무지 덥다. 세 번째 감상은 미치도록 덥다. 그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나더러 지금 죽으라는 거니.
혀를 내밀고 숨을 껄떡거려도 나무 한 그루 서있지 않은 땡볕에서의 체감 온도는 섭씨 38도를 기록하고 있다. 억 소리도 나오지 않아 눈만 감고 부처님 알라를 찾았다. 여기서 알라가 누구냐고 묻지 말도록. 대답할 기운도 없다. 정 궁금하면 이글거리는 저 하늘 위의 태양에게 가서 따져라.
『여어~ 젊은이. 지금쯤 물을 마시는게 좋을 걸.』 『생각 없어요. 생각만 해도 메슥거려요.』 『그래도 억지로라도 마셔두는게 좋아. 아니면 나중에 기절해서 모래밭에 생으로 파묻힌다.』
초보 여행자들에겐 지옥과도 같은 경험일 거다. 사막 기후엔 이골이 난 이부에겐 이까짓 더위는 껌이나 마찬가지지만 초원 지대를 거쳐 성지까지 순례하는 보통의 인간들에겐 생으로 화장당하는 듯한 끔찍한 날씨다. 바위 사이즈의 티카티카 새의 큼지막한 알이 통째로 익어나간다. 보호 장비 없이 함부로 돌아다녔다간 2시간 내로 탈수증을 일으키고 사망에 이를 수 있다. 맨 살을 내놓으면 저녁에 화상으로 물집이 잡힌다. 징그러울 정도로... 뜨겁다.
이부는 오랫동안 모래 바람을 맞아 노랗게 탈색이 되어버린 눈동자로 사막을 지긋이 응시했다. 낙원은 고사하고 지옥을 그대로 베껴온 듯한 저 풍경이 신이 강림한 땅의 참 모습. 주변에 자리한 모든 생명을 말살하고 나서야 신은 하계를 떠났다. 그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지금도 생명은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그따위가 신이야? - 하고 이부는 의심했다. 그래도 참배객들에겐 저 지옥이야말로 살아 역사하는 신앙의 표적이라니 놀랍다.
『메슥거리면 소금 사탕을 입에 넣고 있게. 어지럽다 싶으면 이미 늦어. 주의해야 할 걸세.』 『추, 충분히 주의하고 있어요.』 충분히 주의하긴. 개뿔. 그제야 사탕 봉지를 털어 소금 알갱이를 입에다 넣는 젊은이를 보고 이부는 혀를 끌끌 찼다. 여행 가이드로부터 미리 설명을 들었음에도 곧잘 잊어먹는다는게 문제다. 수분과 염분 섭취를 게을리하면 말 뼈다귀가 될 거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강조를 해도 너무 더운 나머지 머리가 백지가 되어버린다. 덕분에 호주머니에 소금 사탕을 산더미처럼 넣어두고, 옆구리에 물이 충분히 든 수통을 꿰고 있음에도 털썩 - 하고 대자로 쓰러지는 여행자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갖고만 있음 뭘 해. 입에다 털어 넣어야지. 이부는 눈을 가늘게 하고 피부가 하얀, 외지인이 분명한 청년을 쳐다봤다. 도중에 기절한다에 동전 하나를 건다.
『자, 그래서?』 『그래서라니오?』 『자네, 사제야?』 오랜 여행에 바짓단은 헤어졌다. 그러나 튼튼하게 잘 만들어진 고급품이다. 십중팔구 가난한 농민의 아들은 아니다. 벼루에 먹을 꽤나 갈아댔을 것 같다. 부드러워 보이는 손바닥은 노동을 해보지 않은 손이다. 단정하게 손질된 손톱 역시 곡괭이, 망치, 도끼, 기타등등의 도구와는 담 쌓았다. 거기다 착하게 생긴 외모가 확신을 더한다. 때가 꼬질거리는 옷을 벗기고 사제들의 시에를 뒤집어 씌우면 배경으로 청명한 목탁 소리가 들려올 것 같다. 이참에 고개를 숙이고 축복을 내려달라고 빌어볼까. 이부는 사람 좋게 웃었다. 『아니면 사제 지망생?』
젊은이는 손사레를 치며 따라 웃었다. 『아뇨, 아뇨. 왕잡니다.』 『응?』 『왕자라고요. 중이 아니라 왕자예요.』 기절한다에 동전을 걸었던 걸 취소한다. 저 정도의 넉살이라면 우물에 빠뜨려도 안 죽는다. 왜냐고? 주둥이가 둥둥 떠오르니까. 마음에 든다. 재밌는 농담에 목젖이 보여라 껄껄 웃어대면서 이부는 청년의 어깨를 쳤다. 오랜 고행과 금식으로 얼굴이 시쳇빛이 된 사제들은 농담이라는 걸 모른다. 그런 인간들을 끌고 사막을 방황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연옥의 유황 향기를 맡게 된다. 반면 이런 손님을 만나면 즐겁다. 물기 하나 없는 자갈 밭에서도 모험가들의 하프를 뜯으면서 생쥐의 노래를 부른다. 라라라 하고 반복되는 하밍 소리에 피곤도 잊는다. 이부는 기분이 좋아져서 티카티카 새의 고삐 조임새를 신나게 잡아당겼다. 예감이 괜찮다. 이번 성지 순례는 썩 훌륭할 것 같다.
『저~런. 정말로 왕자인데. 안 믿어주네.』 『하하하! 그러면 나는 시바의 여왕일세. 자, 그만하고 슬슬 출발 준비를 해보지. 여기서 머뭇대며 시간을 보내면 까딱하다 집에도 못 가게 될 걸세. 요즘엔 테라 쪽이 워낙에 시끄럽기 때문에 서두르는게 좋아. 아니면 내란에 휩쓸려 폭탄에 맞는다구. 성지 순례도 조만간 금지될 거야.』
폭탄이라는 단어에 청년이 움찔했다. 『내란? 폭탄?!』 『아아, 이 동네 사정이 워낙에 거칠어서 말일세. 그렇게 되었네.』 그렇게 대꾸하면서 이부는 최종적으로 사막 바위 새의 눈에 가리개를 씌웠다.
성지엔 풀 한포기 나지 않는다. 대신 환몽석이라는 고가의 보석이 나온다. 무채색에 반투명한 이 돌은 무지막지한 고열에 바위나 나무 같은 것이 1, 2초라는 짧은 시간에 녹아서 만들어진 보석이다. 대략적으로 둥글고 시커먼 이물질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모양만 따지면 볼품 사납다. 그래도 신이 강림하면서 부차적으로 생겨난 물질이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만만치 않은 고차원 에너지가 그 속에 녹아 있다고 한다. 돌을 가지고 있으면 환상이 보인다. 더러는 마력이 증폭한다고도 한다. 이부는 믿지 않지만 가사 상태의 사람의 손에 돌을 쥐어주면 소생한다는 말도 있다. 너무 뜨거워 숨 쉬기조차 힘든 땅으로 그래서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환몽석을 캐고, 그걸 팔고, 다시 빼앗기 위해.
이부는 냉소적으로 말했다. 『사람이 모이면 무슨 일이 생기는지 아나? 다툼이 생긴다네.』 공식적으로 성지는 어느 나라의 지배도 받지 않는다. 하지만 성지를 오작가작 하는 인간들은 타국의 지배를 받는다. 이게 문제다. 『돈은 권력을 불러. 권력은 다시 돈을 부르고. 이 둘이 짝짜궁하면 아주 골치가 아파. 어중이 떠중이까지 끼어들어 아주 쓰레기통이 되어버리지. 테라는 요즘 난리도 아냐.』
그렇다고 해도 남의 일이다.「생존자 마을」출신인 이부는 다른 마을 일엔 깊게 관여하려 하지 않았다. 트롤이 깃발을 흔들며 단체로 지나가도 쳐다보지 말아라 - 라고 그의 아버지는 가르쳤다. 다른 마을에서 학살이 벌어진다 해도 그는 개입하지 않을 것이다. 남의 일이다. 남의 동네로 흐르는 피다. 왜 그걸 가지고 고민을 해야 하는데? 목소리를 내며 진흙탕 게임에 끼어들면 어리석은 원숭이가 될 뿐이다.
『오히려 당신이 성직자 같네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젊은이가 말했다. 『어? 내가?』 『우리의 문제를 대신 처리 해달라 엎드려 신에게 기도만 하죠. 문제는 인식하고 있지만 결코 해결 의지는 보이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성직자.』 밝게 웃으면서 꽤나 시니컬한 이야기를 주워 삼킨다. 이부는 눈을 동그랗게 하고 젊은이를 다시 봤다. 순둥이인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다? 이부는 조금은 경계하며 젊은 손님에게 방풍, 방사용 마스크를 내밀었다. 사막의 모래 먼지를 뚫고 지나가려면 거미줄처럼 가는 실로 촘촘히 짠 특수 마스크가 필요하다. 이걸 뒤집어 쓰면 대단히 덥다. 그러나 폐에 모래가 가득 쌓여 죽는 것보단 낫다.
『나는 괜찮아. 나는 자유인이니까. 하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선 혀를 조심하게. 성직자라면 하느님 다음이라 생각하는 이들은 자네의 그런 발언을 그냥 넘기려 하지 않을 거야.』 『그렇겠죠. 정곡을 찔린 나머지 화내겠죠.』 『화만 낼까. 권위 의식에 찌든 인간들은 자신들의 허물을 꼬집는 말을 용납하지 않아.』 『알았어요, 주의할게요. 충고 고마워요.』
청년은 산뜻하게 말하고 이부가 가르쳐준 방식대로 마스크를 뒤집어 썼다. 그러니까 단추를 풀고, 뒤로 넘겨서, 이 부분을 둘로 접고, 얼굴에다... 그러고 나서 곧 후회했다. 누군지도 모를 여러 사람이 번갈아 사용했을 마스크에선 시큼털털한 악취가 났다. 뭡니까, 이건~ 이라 절규하며 재빨리 벗었다. 경악하여 자세히 보니 말라붙은 토사물 찌꺼기도 묻어 있다. 이부를 힘차게 노려봤더니 딴짓한다. 『가끔 사막 썰매를 타면서 멀미를 하는 사람도 있더라고.』 『그럼 세탁을 해놨어야지요!』 『그 천은 시노아 타천충의 특수한 체액으로 짠 거야. 물에 넣어 빨면 망가져.』 『그럼 새것으로...』 『비싸.』 싫으면 관두라지, 하면서 이부는 씹는 담배를 어금니로 질겅 물었다. 『그깟 냄새에 성지 순례를 포기할 거야?』 『그건 아니지만...』 『그럼 뭐가 문제야.』 『저어, 그게 말이죠. 뭐가 문제인가 하면...』
대답을 다 못 마치고 젊은이는 다른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엉겹결에 이부도 청년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인상을 찡그렸다. 더러운 방풍 마스크는 잊어버렸다. 무지막지한 장검을 꿰찬 소년이 태양을 등지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Posted by 미야
2006/06/16 12:44
2006/06/16 12:44
- Response
-
No Trackback
,
-
http://miya.ne.kr/blog/rss/response/58
Trackback URL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
엄격히 말해 슬레이어즈는 아닙니다만. 재미 붙였쪄요. 어떠케요.
오랜만에 폭신한 침대에서 죽은 듯이 푹 잤다. 기지개를 켜고 눈을 부비니 오전 9시. 아뿔싸, 늦잠 잤다. 버릇대로 눈을 돌려 이웃 침대부터 확인했다. 짐작했던 그대로 시트에 주름살 하나 없이 정돈이 되어 있다. 간밤에 베개에 머리를 깃들인 흔적 자체를 말살했다. 한켠에 얌전히 놓여진, 여관 주인이 손질한 모양새 그대로 정리된 실내용 슬리퍼가 어쩐지 쓸쓸한 느낌을 준다. 그라바스는 머리를 긁었다. 이 나이에 예쁜 마누라가 야밤에 도망간 홀애비의 심정을 고스란히 맛보고 있다. 불합리하다. 일찌감치 일어나 피곤함에 골아 떨어진 제자는 냅두고 지 멋대로 개인 행동에 들어간 남자를 멋대로 원망하며 옷을 챙겨 입기 시작했다.
여독이 풀린 반질반질한 얼굴로 식당으로 내려가니 반가운 얼굴이 하나 보였다. 「요한슨... 혼자군.」 신문을 무릎에 펼치고 설탕을 넣지 않은 커피와 후렌치 토스트를 먹고 있다. 곁들인 계란은 반숙. 돗수 낮은 위장용 검정테 안경이 낯설다. 거기다 반듯하게 빗어 뒤로 정리하여 묶은 머리 탓에 전혀 모르는 사람 같다. 아니, 실제로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요한슨은 계단을 내려오는 소년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간장 국물처럼 생긴 어른의 커피를 홀짝거렸다. 스치고 지나가는 인기척에 반응, 잠시 고개를 들었으나 이내 신문 활자를 향해 다시 돌아간다.
오늘의 주요 뉴스. 친선 축구 게임에서 1-2로 승리. 코삭 마을, 붉은 기를 흔들며 흥분의 도가니.
야단법썩으로 형광색 잉크까지 덧바른 신문의 헤드라인을 곁눈질하며 이웃 테이블에 가 앉았다. 요한슨을 향해 아는 척 하는 바보 짓은 하지 않는다.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것엔 다 까닭이 있다. 그라바스는 무심하게 메뉴판을 들었고, 금방 구운 크로와상 둘, 우유, 그리고 야채 치즈 샐러드를 주문했다. 아침 치고는 제법 되는 양이지만 성장기 어린애 밥통은 꼬르륵 소리를 내며 지독하게 아우성을 치는 중이었다.
『저기요? 커피 리필 부탁합니다.』 저편에서 요한슨이 식당 종업원을 잡았다. 그라바스의 식사가 끝날 때까지 조용히 신문을 읽으면서 커피 마시는 일을 계속하려는 것 같다. 종이의 낱장을 넘기는 바스락 소리가 간간히 들려왔다. 신문 기사는 그다지 그의 흥미를 끌지 못했던지 후우 - 하는 한숨 소리가 이어졌다. 그의 앞으로 계란 반숙은 오래 전에 차갑게 식어 있었다.
「로우드와 막스는 어디에 있지. 사부는? 다들 같이 있나.」 건강한 아침 식사를 마치고 한참이 지났는데도 스승은 여관으로 돌아오려 하지 않았다. 행선지를 밝히지 않은 채 떠난 것치고는 시간이 늦고 있다. 검술 실력만 따져도 일류. 거기다 마법 클래스 또한 톱. 둘을 합쳐 IQ 100. 이 아니라... 아무튼 이쪽에서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도 슬슬 불안해지려 한다. 혹시라도 실수로 발을 접질러 계단에서 구르는 바람에 허리를 삐긋...
「점심 식사는 같이 하고 싶은데.」 낡아서 옆구리가 터진 신발을 들고 여관을 빠져 나왔다. 방 열쇠는 호주머니에 잘 넣어 두었다. 「도중에 돌아와서 방문이 잠겼다고 화내는 건 아니겠지.」 들고 있는 신발에선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러댔다. 탈취제의 사치를 누리지 못한 탓에 아주 죽여준다. 쓰레기통에 버릴까 하는 생각을 그래서 잠시나마 가져 보았다. 이 정도면 새 신발을 구입해도 사치가 아닐 것이다. 헤어진 부분에 손가락을 집어 넣어 보았다. 검지와 중지가 동시에 들어간다.
그래도 그라바스는 수선집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무도회장에 나갈 적에 새 구두를 신으면 나중에 피 범벅이 된다는 걸 어렸을 적에 시종장으로부터 들은 기억이 있다. 뭘 모르는 새내기 아가씨들이 곧잘 그런 실수를 저지른다는 것도 같이. 살갗이 짓무르고 벗겨져 거의 고문 수준이 되었음에도 그걸 필사적으로 감추고 웃음을 짓는다. 그래서 무도회장에 깔린 카페트는 반드시 빨강. 새하얀 카페트를 깔았다간 왈츠와 함께 뿌려진 핏방울로 무시무시한 광경을 연출하게 된다. 구멍에 집어넣은 손가락을 도로 뺐다. 새 신발을 신으면 걷는 동작이 며칠은 굼뜨게 된다. 길 한복판에서 닌자 거북이를 만났을 적에「새 신발 탓에 발이 아파 잘 움직이지 못 했습니다」라고 하면 개그다. 그러니 새 신발 구입은 나중으로 미루고「아이구, 구려~!」라고 비명을 지를 구두 수선공에게 두둑한 팁을 쥐어 주자. 단, 신발 밑창은 새 것으로 교환해야 한다.
맑은 날씨다. 하늘엔 구름 한 점 없다. 2층 창가로 널린 빨랫감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이야, 좋다~ 라고 환호하며 손바닥으로 햇살을 가렸다. 반짝반짝 빛나는 가루가 공기 속에 녹아들어가 있다. 기분이 한층 더 좋아져서 팔을 위로 쭈욱 뻗으면서 멋지게 기지개를 켰다. 『잡화점에 들리는 김에 팬티라도 살까...』 요한슨 일행이 빌려 입었던 스승의 팬티는 일찌감치「소각-말살-그딴 거 없애버려-화이어볼」주문에 맞아 재가 되었다. 갈아 입을 팬티의 숫자가 부족하다. 현재 행방이 묘연한 스승이 잡화점에 들려 부인들 틈바구니에서 자신이 입을 팬티를 손수 고르고 있을 거라는 상상은 되지 않았다. 제르가디스는 부끄럼쟁이다. 속옷 가게에 걸린 여성용 브래지어에 뺨이 굳어자기 멋대로「뒤 돌아~ 갓」구령을 붙였을 거다. 그러니 제자가 대신 고생을 하도록 하자.
그리 생각하며 골목을 빙글 돌았을 때였다. 쨍그랑 하고 어디선가 유리창이 깨졌다. 무슨 일인가 싶어 뒤를 돌아보려고 했다. 그 전에 대단히 힘찬 손길이 왕자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우앗?!』 『쉿. 이리로.』 어느 틈에 나타난 건지 긴장한 요한슨이 건너편을 주시하며 그라바스의 등을 재빨리 떠밀었다. 유리로 만든 안경 알이 희번득 빛을 반사했다. 『요, 요한슨?』 『이대로 계속 걸어가십시오. 서두르되, 뛰지는 말고.』 『적인가.』 『아마도.』 낮게 삭이는 요한슨에 말에 그라바스 또한 긴장했다. 『알겠네. 시키는 대로 하겠네.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하는 것이 도움이 되겠는가.』 말투가 덕분에 괴상해졌다. 밑도 끝도 없이 갑자기 궁중 어투라니. 개의치 않고 요한슨은 잘라 말했다. 『검을 소지하여 주십시오.』
- 그건 곤란해!
칼은 싫다. 아니, 쇠붙이라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금속으로 만든 숟가락이 싫어 일부러 나무 젓가락을 사용할 정도다. 제르가디스가「네가 정녕 내 제자냐」라고 한심스러워 해도 싫은 건 싫은 거다. 어쩌다 금속이 닿으면 몸 어딘가에서 알지 못하는 무엇인가가 찢어져라 비명을 지르는 듯한 묘한 감각을 느꼈다. 그 감각이 싫어 옷에다 다는 쇠붙이 단추마저 없애 버렸다. 「이건 병인가요, 사부.」 「아니. 네 몸은 정상이다. 단지 네 몸을 에워싸고 있는 정령들이 호들갑을 떠는 것뿐이야.」 「정령?」 「아님 자의식을 가진 에테르라고 할까. 아님 민폐나 끼치는 바보들이라고 할까.」 그리고 사부는 싫은 표정으로 정령들이「오버」하고 있는 것에 휘둘려선 안된다고 충고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금속은 매우 요긴하게, 그리고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다. 금속을 전혀 접하지 않으려면 무인도에서「윌슨」이라는 이름의 야자 나무 열매 하나 곁에 두고 외로운 생을 살아야 한다. 정 뭐하면 돌 화살로 물고기를 잡고, 나무 그릇으로 밥을 지어다 먹으라지 - 하고 스승은 넌더리를 냈다. 그러면서 검 한 자루를 손수 제자의 손에 쥐어주고 도깨비 같은 얼굴로...
화가 난 스승의 파란 눈동자를 떠올린 그라바스는 땀이 난 얼굴을 쓸어내렸다. 『검을 소지하지 않아도 충분히 내 몸 하나는 지킬 수 있다, 요한슨.』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어?』 『당신은 당신의 몸 하나만이 아닌, 세일룬을 지켜야 합니다. 자, 검을 소지하여 주십시오.』
다시 유리창 하나가 더 깨졌다. 놀란 아낙네들이 꺄아 비명을 질러댔다. 그라바스의 얼굴이 초조감에 젖어 무섭게 일그러졌다. 검을. 검을 잡아야 한다. 그래서 세일룬을... 의지와는 달리 앞으로 내어밀 팔이 경련을 일으킨다. 이를 악 다물었다. 조금만 더 손을 뻗어라. 잡아라.
.......... 젠장, 못 하겠다.
소년은 스스로가 환멸스럽다며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미안하다... 실망시켜 정말 미안하다. 요한슨, 나는...』
별 말은 하지 않았다. 요한슨은 고개를 숙인 왕자님을 그대로 두고 다른 방향의 골목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사라져갔다. 망연자실한 그라바스가 금방에라도 울 것처럼 울상을 지었어도 뒤를 돌아다 보거나 하지 않았다. 감정이라는 걸 얼굴 근육에서 깨끗하게 몰아내고 대신 크게 심호흡만 했다.
『어랍쇼. 분위기만 타고 안 넘어가네요.』 『그러게.』 『기왕에 암살자들과 한판 붙게 되었으니 이참에 왕자님에게 검을 쥐게 하자는 우리의 원대한 계획이 첫판부터 삐긋하는데요. 어쩌죠? 조금 더 압박을 해볼까요, 아님 일단 뒤로 물러날까요.』 작대기로 헛간 유리창을 깨뜨린 막스밀리엄이 제르가디스를 향해 조심스레 운을 떼었다. 깨어진 유리창과 막스밀리엄의 작대기를 번갈아 쳐다보던 제르가디스의 눈동자로 당혹감이 떠올랐다. 『누굴 닮아서 황소 고집인 건지. 어휴.』 불평하며 손가락을 따악 하고 튕겼다. 저건 그만 물러나자는 신호다. 막스밀리엄은 재빨리 작대기를 치우고 헛간 속으로 은화 세 개를 던졌다. 은화 세 개면 갈아 끼울 유리를 사고도 대다수가 남는 금액이다. 이 정도면 부랴부랴 달려나온 헛간 주인도 큰 불평은 하지 않을 것이다.
『왕자님 설득 작전은 나중에 계속하자. 그나저나 내가 적은 메모지는 잘 전달했고? 막스밀리엄.』 『그걸 두고 두말하면 잔소리라고 하는 겁니다. 그럼 가시지요. 미리 저편에 연락을 취했습니다.』
요한슨이 왕자를 그림자처럼 지키고 있다. 그렇담 별 걱정은 없을 터. 훌쩍 훌쩍 우느라 바빴던 그라바스가 잡화점에 들려선 스포티한 면 팬티 대신 엉뚱한 걸 집어 장바구니에 넣었다는 걸 모르는 스승은 서둘러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빨간색 하트가 그려진 무시무시한 걸 저녁에 당장 입게 생겼다는 걸 그는 아직 알지 못했다.
Posted by 미야
2006/06/14 13:26
2006/06/14 13:26
- Response
-
No Trackback
,
-
http://miya.ne.kr/blog/rss/response/56
Trackback URL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
처음 방문해주신 분은 하단의 "우물통 사용법"을 먼저 읽어주세요.
- 미야
Recent Comments
Site Stats
- Total hits:
- 1016180
- Today:
- 97
- Yesterday:
- 3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