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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6/21 시즌4 : 풀무불의 노래 4 by 미야 (1)

시즌4 : 풀무불의 노래 4

실사판 세일러 문을 보면 쇼크로 재기 불능이 될지도... 중얼중얼. 어쨌거나 슬슬 심각한 모드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나름대로 걱정.


『4개월 전이다. 사막에서 환몽석을 캐던 인부 하나가 심장마비를 일으키고 급사한 것은...』
『하아?』
그라바스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뜨거운 사막에서 연장 들고 횡재를 노리는 사람 다수가 인생 종장을 살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작업장의 온도는 섭씨 40도를 오르내리고, 여차하면 몬스터가 출현하고, 동업자를 등쳐먹는 못된 인간들이 각다귀처럼 깔려 있다.
차라리 식인 상어떼에 둘러싸여 진주 조개를 캐고 만다. 이보다 더 밑바닥이라 할 수 있는 직업이 딱히 없는지라 환몽석을 캐는 작업 인부들의 삶의 수준은 누가 뭐래도 최하다.
술에 쩔었고, 담배를 지나치게 피우고, 몸에는 빈대 붙고, 식생활은 엉망.
따라서 당장 심장마비를 일으키고 쓰러진다고 해도 그렇게 어색하진 않다.

『단순한 심장마비가 아니니까 문제가 되는 것이다. 혹시 순수하게 공포에 질려 죽은 사람을 본 적이 있나. 그런 자의 얼굴은 혈전 탓에 심장마비를 일으키고 사망한 자와는 차이가 커.』

혀 뿌리가 다 보이게끔 크게 벌려진 입은 죽은 다음에도 소리 없는 비명을 질러댄다. 부릅뜨고 죽은 탓에 아무리 노력해도 눈꺼풀이 감기지 않는다. 팔뚝에 난 잔털은 모두 곤두서있고 앵두 크기로 줄어든 고환은 매우 딱딱하다. 피부는 새파랗기까지 해 시체를 염하는 사람들까지 겁에 질리게 만든다.

유나는 눈을 가늘게 하고 말을 이었다.
『그대로 내버려둘 수도 없고 해서 마을로 시체를 끌고는 왔지만 워낙에 모습이 흉흉해서 아무도 손을 대려 하지 않았던 것 같아. 속칭「막짱」이라 부르는 인부들의 우두머리가 자비를 털어 장례식을 치러주겠다고 나서기 전까지 구석에서 거적을 뒤집어쓰고 그대로 썩어갔다니까 말 다했지.』

하찮고, 외로운 인생이었다. 죽음을 슬퍼할 일가 친척이나 가족은 없었다. 초라하기 짝이 없던 소지품은 순식간에 정리되었고, 사막의 열기에 미라처럼 바짝 말라붙은 몸뚱이는 방금 세탁한 와이셔츠인양 두 번 접혀 싸구려 관에 안치되었다.

『그런데 워낙에 속물인 인간들이다보니 관 뚜껑에 못을 박기 전에 사자의 옷가지를 뒤져 돈이 될 법한 금붙이라도 있나 확인하려 했던 모양이야. 덕분에 죽은 인부가 오른손으로 뭔가를 꽉 쥐고 있다는 걸 발견했지. 검붉은 빛을 띈, 불투명한 작은 돌이었다.』
『설마... 환몽석?』
『그게 말라붙은 비둘기 똥일 리는 없잖아. 막짱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겠지. 죽은 사람에겐 필요 없는 물건이라 여기고 오그라든 사자의 손아귀에서 억지로 돌을 빼냈다더군. 싸구려 관 값이라도 벌자는 수작이었지. 덕분에 사람들은 장례 한 번에 시체를 다섯 구나 치워야 했다.』
『다섯?! 다섯이나?!』
『하나같이 미친 사람처럼 고함을 질러대다 스스로 두 눈을 뽑고 절명했다더군. 어떻게 생각하나, 그라바스. 이들이 무엇을 보았기에 자기 눈을 손톱으로 후벼파다 결국은 심장이 터졌을까?』

일부 환몽석은 과거의 일을 끊임 없이 반복해서 보여준다. 막대한 고차원 에너지에 휩쓸린 나머지 시간이 정상적으로 흐르지 못하고 왜곡된 상태로 남았기 때문이다.
돌을 들고 있으면 15년 전에 사막을 가로질러 간 붉은 꼬리 도마뱀의 족적이라던가 30년 전에 가느다란 이슬비가 내리던 풍경이 인쇄된 그림처럼 떠오른다. 흉악한 강도를 만난 여행자가 칼에 맞고 쓰러지는 장면이라던가, 어딘지 모르게 어리둥절해 보이는 오크가 좌우를 두리번거리는 모습도 종종 보인다. 돌 속에 묶여진 시간은 이렇다 할 특징도 없이 제각각이다. 언젯적 모습인지도 짐작 못할 넓은 평원을 봤다는 사람도 있다. 그냥 단순 무식하게 까맣게만 보이는 환몽석도 있다고 한다.

단, 아주 드물게 그중에는 사람을 파멸로 몰아넣는 극단적인 기억을 품고 있는 돌이 있다.
에톨로지나 왕국에 있는「재앙석」이 그 대표적인 예다.

만지면 펑퍼짐한 엉덩이를 가진 여자가 마당에 빨래를 너는 모습이 보이고「칼 갈아~ 가위 갈아~」라는 장사꾼의 호객 소리가 가까이 들린다.
그러다 개가 미친 듯이 짖기 시작하고... 엄마를 찾으며 젖 먹이 아이들이 운다.
휘잉 하고 바람이라도 부는 듯한 이상한 기척에 여자가 불안해 하며 앞치마에 젖은 손을 닦는다.
동시에 시야는 가까이에 태양이 떨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새하얗게 변하고... 이 세상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비명 소리가 사방으로 천둥치며 딱 8초간 지속된다.
마의 8초다. 이 소리를 들은 다수가 발광한다. 그래서 재앙석.
지금은 사원 지하에 여덟 겹으로 봉인되어 일반인의 접근 자체가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그라바스는 신음하며 팔짱을 꼈다.
얘기만 들어보면 이건 재앙석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차라리 자기 눈을 뽑으려 했을 정도의 격렬한 감각이다. 버티지 못해 심장이 멎거나, 혹은 터진다.
여기서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은 딱 하나다.
지금까지 그 존재의 가능성을 두고 갑을박론을 멈추지 않았던...

『나라면 그 흉측한 걸 집게로 집어 우물 밑바닥으로 집어 던졌을 거야. 그런데 테라 마을 멍청이들은 그걸 사막 한 가운데에 파묻어버리는 대신, 은으로 만든 상자에 고이 모셔놓곤「4만 크로바기네부터 시작해 보지요. 거기 신사분께서 방금 5만 크로바기네 부르셨습니다」라고 떠들어댔다. 만지기만 하면 죽는 돌을 가지고 흥정을 붙이다니, 나로서는 감히 흉내도 못 내겠어.』

성마가 어떻게 땅으로 내려왔는지에 대해서는 오늘에 이르러서도 뚜렷이 밝혀진 바가 없다.
역사 연구가들은 리나 인버스라는 대 마도사가 나름대로 연구 중이던 신마 융합 주문에 실패, 신과 마가 동시에 마도사의 몸을 집어 삼켰고, 그 결과로 주변 8km 반경 전부가 그라운드 제로가 되어버렸다고 추정하고 있다.
살아 남은 목격자도 없고, 여기에 대해 증언하려는 자도 없다. 그나마 남은 약간의 역사적 파편들도 신족의 교란 작전 탓에 신빙성을 잃었다. 무엇이 사실인지 지금에 이르러선 아무도 모른다.
일부 마도 학자들은 신마 융합 주문으로는 그런 결과가 결코 발생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부엌에서 냄비를 꺼내 토마토 페이스트를 만들려고 했는데 그만 집이 폭발했다 - 라는 식의 줄거리는 말도 안된다는 거였다. 냄비를 태우면 태웠지 집이 왜 날아가냐, 듣고 있으면「과연」이란 소리가 나오는 주장이다. 어떠한 마법 주문으로도 신이나 악마를 구현화시킬 수 없다는 마도사 스즈라메키의 절대 영역 침범 불가침 이론을 꺼내지 않더라도 수수께끼는 더욱 깊어진다.
냄비를 부뚜막에 올려놓고 가열했더니 요리의 신이 내려왔어요 - 지나가던 개가 웃을 소리다.

하지만 정말로 그런 끝내주는 냄비가 있었다는 증거가 나온다면 어떨까.
신마 강림의 순간을 고스란히 집어 삼킨 환몽석을 찾아낼 수만 있다면 요리의 신이 강림하는 냄비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5만 크로바기네따윈 문제가 아니다.

침을 꼴깍 삼킨 뒤, 그라바스는 꽉 막힌 목소리로 간신히 말했다.
『그거, 제법 돈 되겠는데요.』
얼굴을 찡그린 유나는 잠자코 손을 들어 철부지의 뒷통수를 따악~ 하고 쳤다.
『우... 진심이 아니었습니다. 말이 헛 나왔습니다. 무시해 주세요.』
그라바스는 얼른 용서를 구하고 손으로 욱씬거리는 머리를 감쌌다.

뭐, 아픈 머리통은 그렇다 치자.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걸 만진 사람들 중 누구 하나 제 정신으로 돌아오지 못해서야 그게 성마 강림 기록의 돌인지 저주의 돌인지 알 재주가 없잖아요.』
유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최소한 죽음의 돌은 된다.』
『에?』
『베개맡에 살짝 놓아두기만 하면 간단하게 사람을 죽일 수 있다. 나중에 돌을 치우면 증거도 남지 않지. 사이즈도 적당해서 더도 말고 물에 불려진 강낭콩 크기다. 나라면 비싼 돈 주고 암살자를 고용하느니 하녀 한 명을 매수해「이걸 주인 나리의 침실에 몰래...」라고 말할 거다. 해볼만 하겠지?』
『그, 그런!』
『뭘 그리 놀라나. 순진하게스리. 이 정도는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잖아.』
『서, 설마, 당신! 그런 까닭으로 그 돌을 사러 테라로 가는 겁니까. 비싼 값을 주고 암살자를 고용하느니 어리고 순진한 하녀를 꼬셔 남의 베게 밑에 그걸 감춰두기 위해?!』
에 - 지금 뭐라고 -
『다, 당신은 악당인 겁니까?! 그건 겨, 결코 정의의 이름으로 용서할 수 없... 제기랄. 이럴 적엔 높은 나무에 올라갔다 멋지게 뛰어내려야 하는데 부근엔 풀 한포기 자라지 않고 있으니 난감하군.』

이해 불가능. 여자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도 못했다.
없으니까 그렇다치고. 무슨 영문으로 당장 나무 위로 올라갔다 뛰어내려야 하는 건데?
『이봐? 진정해. 흥분을 가라앉혀. 나는 사람을 죽이는데 뱀 독 같은 건 쓰지 않아. 그럴 필요가 어딨어? 베어버리면 끝인데.』
그리고는 누가 봐도「끝장」인 자신의 커다란 검을 집어 올렸다.
『게다가 나는 마법사도 아니라서 미완성 신마 융합 주문 같은 것엔 관심이 없다. 알겠어? 나에게 있어 그 돌은 무용지물이나 다를 바 없단 말이다. 이름도 모를 암살자들의 밥줄을 걱정할만한 착한 성격도 아닌데다 서쪽 도시로 마왕을 강림시키고 싶어 미친 것도 아니라고. 이미 말했잖아. 그런 건 우물 밑바닥으로 던져버리고 싶다고. 그러니 쓸데 없는 망상은 그만 두고 그쪽에 있는 내 가방이나 이리로 던져라.』
『네?』
『아쉽지만 헤어질 시간이다, 그라바스.』
『헤어져? 여기서?』

순간 썰매가 미끌어지는 속도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가슴이 마구 방망이질을 치는 가운데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빼꼼 내밀어 밖을 살폈다.
좋지 않았다. 능선으로 뭔지 모를 시커먼 그림자가 좍 깔려 있다. 거기다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
기척에 민감해진 티카티카 새가 발악하며 도리질했다.
『이 정도로 몰려 있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뭔 일이랴. 렛셔 데몬이 300마리쯤 되겠어.』
이부가 걱정하며 입으로「치치」소리를 내어 발버둥치는 새를 달랬다.

Posted by 미야

2006/06/21 15:33 2006/06/21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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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aya 2006/06/24 11:06 # M/D Reply Permalink

    시리즈 본격 재개하셔서 정말 기쁩니다. 유나 참으로 멋있게 자란 것 같네요. 근데 유나와 그라바스라니.. 이놈의 괴로운 연줄은 참으로 얼키고 설키는군요. 이 시리즈 참으로 재미있고 매력있지만 보고 있는 마음이 편치는 못해요. 간간이 암시하셨던 대로 둘의 운명이란 게 분명코 비극일텐데...ㅠㅠ
    미야님의 최대 강점은 절륜한 문장력만이 아니라 어느 누구도 갖기힘든 초고급 상상력이라구요. 이런 재능을 초야에 묻고 있는 것이 아깝습니다. 나중 오리지널 소설을 쓰셔서 미야님 책이 정식으로 서점에 걸리는 날을 봤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제일먼저 사볼테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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