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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조사] 풀피리 40

제7장 나라카(地獄)

※ 오리캐 주인공 BL 호러물입니다. 의성조, 소년조 위주.
지명을 포함하여 잘 모르는 부분은 지어냅니다. 원작자의 팬픽 규정을 준수합니다.
마도조사 소설과 드라마 진정령의 타임라인이 틀린 관계로 여기서도 사건 흐름이 뒤틀려 있습니다.


사람은 의외로 튼튼한 구석이 있어 손가락뼈가 다섯 번 부러지는 정도로는 의식을 잃지 않았다.
웅웅거리는 귀로 소리를 듣고, 침 흘리는 입으로 신음을 뱉으며 기절하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상대는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며 고통의 가감을 조율했다.
여기가 어디고, 나는 누구인지를 한참 헷갈리고 있는데 뺨을 여러 번 맞았다.
눈을 떠도 앞이 새카매서 제대로 반응을 못했더니 마지막에는 주먹으로 후려갈겼다.
목구멍으로 빠진 어금니가 넘어가는 걸 느끼며 흐느꼈다. 어떻게든 편안해지고 싶어 차라리 더 세게 맞고 싶었다. 기절만 하면 소원이 없을 것 같았다.

“효성진 도장을 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 그동안 난 산속에 살인 곰이랑 같이 갇혀 있었다고.”
그동안 내가 떠들어댄 내용은 두서가 없었다. 아무튼 닥치는 대로 떠벌렸다. 배추 배달을 하면서 얻어먹던 엿기름 바른 누룽지 이야기에 밭에 거름을 뿌리던 진소 노인 이야기까지 다 했다. 약양의 의장에 숨었던 일, 내세에 부자가 되기를 기원하며 지전에 일억 원, 십억 원 금액을 적었던 것도 떠들어댔다. 송자침이 주먹밥 하나 보태어준 적 없으면서 나더러 덩치가 작다 흉봤던 것도 시시콜콜 일러바쳤다.
“이봐요... 듣고 있어?”
목이 타들어갔다. 그렇지만 물을 달라고 부탁하기가 겁이 났다.
고문이 취미생활인 저 자는 나에게 물을 먹인다면서 입이 아니라 콧구멍에 주전자 주둥이를 꽂고도 남았다. 앉은 의자의 기울어진 각도를 보아 물고문 코스는 여흥거리로 이미 준비가 되어있을 거였고, 내가 먼저 물을 달라고 하여 고통을 앞당기고 싶진 않았다.
“듣고 있냐고. 이 씨발 잡놈아. 5년 동안 아무 소식을 듣지 못했어. 효성진 도장이 어디서 잘 살고 있는지는 나도 몰라. 알았음 내가 짐 싸들고 쳐들어갔을 거야.”

문득 효성진이 나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 내용이 떠올랐다.
난릉 금씨와 고소 남씨는 한패다. 믿지 마라. 미안하다.
잘 살고 있는 사람이 그런 식으로 소식하진 않지. 나는 넋 나간 사람처럼 흐느끼며 웃었다.

“이제 음호부에 대해 말해봐라.”
“켈로그 콘푸로스트. 아침마다 호랑이 힘이 솟는다.”
“왜 이래. 아직 괜찮잖아? 재미 보는 중에 정신 나간 척하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야.”
그가 맞아서 퉁퉁 부운 내 뺨을 꾹꾹 눌렀다. 눌릴 적마다 피부가 질척거렸다.
“정신 안 나갔어. 음호부가 뭔지는 나도 알아. 호랑이라고 들었어. 호랑이 호. 호랑이 조각.”
“그래, 음철로 만들어진 호랑이 조각이다. 효성진 도장이 빼돌렸지.”
“응? 음철? 뭘 빼돌려? 음호부? 뭔 미친 소리야. 그럴 리가 없는데?”
낄낄거리는 내 목소리가 DC 빌런 조커의 그것처럼 기괴해졌다. 감정이 조절이 되지 않았다. 나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폭소를 터뜨렸고, 막판에는 갈비뼈가 아려질 지경이 될 때까지 마구 웃었다.
“맙소사, 뭘 빼돌렸다는 거야. 못 찾았어. 팔관 저택 참상의 증거라고 송자침이랑 둘이서 그렇게 찾아다녔는데. 설양 그 망할 새끼가 어디에 숨겼는지 결국 못 찾았다고. 그 덕에 고소 남씨는 뒤로 빠지고, 운몽 강씨는 이죽거렸고, 난릉 금씨는 과장된 헛소문으로 치부해버렸고, 청하 섭씨는 쫄딱 망했다! 하하하! 아, 그런데 아저씨, 설양이 누군지는 아세요? 하하하!”

웃다가 사례가 들려 잠시 꺽꺽거렸다.
“당신이 음호부가 뭔지 알아? 동네 깡패 같은 놈이 음호부를 만들었지. 설양 그 새끼가 음호부를 만들... 아니다. 이릉노조라고 했는데. 응? 아니다. 설영이 맞아. 그 자식이 음호부를. 그 자식, 새끼손가락이 없었어. 앗핫핫이히힛!”

요괴를 잡고 악신을 겁박하실 신묘하신 설 공자, 손가락 하나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심지어 새끼손가락만 있어도 충분할 겁니다.
그런데 그에겐 새끼손가락이 없었다.
새끼손가락이 없으니 요괴를 잡고 악신을 겁박할 수 없다며 그가 화를 내며 말했다.
‘내 기분이 어떠했겠어, 걸람. 너도 짐작이 가지? 슬펐어. 화났어. 속상했어. 속에서 분이 올라왔어. 그러자 내 새끼손가락을 망가뜨린 인간에게 복수가 하고 싶어지더라. 당연하지! 복수를 해야 하는 거 아니겠어? 그래서야. 내가 상씨 집안 사람들 전부를 죽인 건 그래서야.’

웃음을 뚝 그치고 정색하며 질문했다.
“아저씨는 새끼손가락 있어요?”
대답 대신 긴 한숨이 날아왔다.
요즘 애들은 의지박약이니, 우리 때는 더 심신이 강인했다느니 식의 불평을 늘어놓으며 그가 내 콧구멍으로 금속의 기다란 관을 삽입했다.
그 다음부터는 말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뒤로 기대어 누운 상태에서 주는 물을 꼴깍꼴깍 받아 삼키며 아가미가 제거된 금붕어처럼 팔딱거렸다. 채 삼키지 못한 물이 기도로 넘어가 기침이 터져 나왔지만 물을 붓는 속도는 일정하게 유지되었다. 높으신 분의 술잔을 채워나간다는 식으로 얼마나 정성을 들이던지 물이 옆으로 새지도 않았다.
시원하게 한 잔 들이키면 좋았을 물이 그렇게 괴로울 수가 없었다.
머리에서 하얗게 불꽃이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점멸했다.
차라리 기뻤다. 이제 드디어 기절이라는 걸 할 수 있었다. 꼬록 소리를 내며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여자와 남자, 그리고 어린 남자아이.’
귀신이 보였다. 내 앞으로 허깨비처럼 세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아마도 한 가족인 듯하다. 세 사람 모두 얼굴 부위가 새카맣게 지워진 상태여서 내가 알던 사람인지 알아볼 수는 없었다. 부부는 젊었다. 아이는 여섯 살 정도로 되어 보였다.
여자가 아이 손을 단단히 잡고 있었다. 어쩐지 화가 난 기색이고 말을 붙이기가 두려울 정도로 신경질적이었다. 부부싸움이라도 했는지 남자는 모자와 떨어져 덩그러니 혼자 서서 바닥만 쳐다보았다.

‘안 됩니다, 부인.’
‘무엇이 안 된다는 겁니까. 당신은 다른 누구도 아닌, 해와 함께 공적을 빛내며, 해와 함께 장수하는 온씨 사람입니다!’
‘그러니 안 된다는 겁니다. 아니. 부인 말대로 못하겠습니다. 저는 못합니다.’
남자의 거절하는 말에 여자의 기세가 악귀처럼 흉흉해졌다.
‘이 우유부단하고 지질한 인간 같으니라고! 그저 작은 조각만 가져오면 된다고 했잖아! 손톱보다 작아도 됩니다. 정말 작은 조각이라도 괜찮아요. 그것조차 못한다는 겁니까! 당신 아들을 살리는 일인데?’
‘죽은 건 죽은 거요. 음철을 사용하겠다는 계획은 포기하시오.’
‘싫어. 포기 못하겠다고! 우리 아염을 살릴 방도가 있는데 당신은 아비가 되어 포기하겠다는 겁니까!’
머리를 풀어헤친 여자가 남자의 등을 때렸다.
‘쌀알처럼 작아도 됩니다. 아염을 살리려면 그 조각이 필요해. 가져와, 가져오라고!’

어머니 옆에 선 키 작은 어린아이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아이는 병색이 짙어 몸집이 왜소했다. 얼굴은 새카만 안개 같은 것으로 덮여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익숙했다.
“걸람?”
《내 이름은 온서염이다.》
아이가 나와 똑같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니, 그렇지 않다.
어떻게 해도 같을 수가 없었다. 지금의 나는 서른네 살의 회사원 안선준이었으니까.

나는 놀란 얼굴로 아직도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부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럼 저 두 사람은...”
《내 부모님이다.》
아... 그렇군. 알겠다. 이건 걸람의 기억이다. 이렇게 구분지어 말하는 건 모양새가 우습지만 여섯 살 이전의 걸람의 기억이 물고문으로 쇼트가 난 뇌에서 강제 재생이 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본명을 떠올렸으면서 왜 부모님 얼굴 부분이 진하게 먹칠이 되어 있는지 그 까닭을 모르겠다.

호기심이 생겨 세 사람에게로 가까이 접근했다.
그러자 싸움을 멈춘 부부가 등을 꼿꼿하게 세우고 똑바로 섰다.
걸람까지 합세하여 세 사람이 나란히 서자 마치 의류상가에 장식된 마네킹 장식 느낌이었다.
“이 사람이 내 아버지?”
펑퍼짐한 체격에 싸구려 바람막이 점퍼를 곧잘 입고 다녔던 그 사람이 내 아버지였다. 젊어서 상처하고 누나와 나를 힘들게 키워내셨다. 키가 크고 몸이 호리호리한 이 남자는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다.
“어머니?”
어째서인지 여자를 봤을 적에 생리적으로 싫다는 느낌이 먼저 들었다. 그립다던가, 품에 안기고 싶다던가, 고운 살결을 만지고 싶다는 생각은 일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 감정은 걸람의 것이 아니라 서른네 살 회사원 안선준의 것이다. 나와는 다르게 걸람... 아니, 온서염은 작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어머니의 옷자락을 놓으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한손으로 팥알처럼 생긴 금속조각을 목숨인양 쥐고 있었다.

《나는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해.》
온서염이 말했다.
《그러니 너도 기억을 하지 못할 거야.》
온서염이 손바닥을 펼쳐 팥알처럼 생긴 그걸 나에게 보여주었다.

뭔가 대단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다이아몬드나 루비, 에메랄드라면 그만한 크기도 눈 튀어나오게 비쌌을 거다. 그런데 이건 그냥 쇳덩이에서 떨어져 나온 작은 불순물 조각이었다. 검은 빛깔에 가까웠고 광택은 거의 없었다. 땅바닥에 떨어뜨리면 도로 찾을 수는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그만큼 볼품이 없어 쓰레기라고 생각하고 휴지통으로 버려도 그만인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지.’
월석 같은 걸까? 아니면 운석? 부부가 다투면서 이걸 뭐라고 불렀더라...... 그래, 음철이었다.
‘운철이라 했는데 내가 잘못 들은 걸지도? 운철이면 그거잖아. 루팡3세 이시카와 고에몽의 검. 그런데 표면이 지저분한 걸로 보아 운철이 아닌 것도 같고... 뭐지? 이건.’
경계심을 드러내며 손톱으로만 조각을 살짝 건드려 보았다.
모르겠다. 아무 느낌도 없고 그냥 막연했다.
나는 뒷목을 긁으며 난처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역시 너도 기억을 하지 못하는구나.》
아이가 무감각한 어조로 말했다.
기억을 하지 못해 유감이라는 건지, 아니면 기억을 하지 않아 다행이라는 건지 구분이 안 갔다.
어쨌거나 내가 기억하는 단편적인 조각은 어머니가 날 흙속에 묻었다는 거다. 어머니는 창과 칼을 든 병사들에게 쫓기고 있었다. 나는 흙에 파묻혀 죽어갔다.
《아니야.》
그 이전을 떠올려 보라며 걸람이 잔뜩 쉰 목소리로 속삭였다.
《떠올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몸이 약했어. 어머니가 지극정성을 들였지만 죽어버렸지.》
소년은 검어 보이는 조각을 내게 내밀었다. 마치 가져가라고 종용하는 듯했다.

《이것이 바로 음철이다.》
걸람이 내 손바닥 위로 조각을 살며시 내려놓았다.
허벅지까지 닿지도 않는 작은 어린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안개처럼 흐릿했지만 걸람의 뺨은 하도 울어 눈물범벅이었다. 거기다 눈물마저 검은색이었다.
모든 것이 검었다. 검은 재와 검은 먼지, 검댕이 사방에 있었다.
아이가 입을 벌렸다. 순간 아이의 입속으로부터 검은 철가루가 폭발하듯 비산했다.

Posted by 미야

2021/12/09 10:03 2021/12/09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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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조사] 풀피리 39

제7장 나라카(地獄)

※ 오리캐 주인공 BL 호러물입니다. (잔인한 표현 가감 없이 사용합니다) 의성조, 소년조 위주.
지명을 포함하여 잘 모르는 부분은 지어냅니다. 원작자의 팬픽 규정을 준수합니다.
마도조사 소설과 드라마 진정령의 타임라인이 틀린 관계로 여기서도 사건 흐름이 뒤틀려 있습니다.


암살에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일반적으로 범인은 현장에서 빠르게 달아나는 것이 국룰이다.
복면을 사용하여 얼굴을 감췄으니 정체가 드러난 것도 아니다. 공력을 쓰는 수사들은 청하로 방향을 튼 염방존을 따라가 여기엔 마차를 끄는 마부와 하인들밖엔 없었다. 1회 출연 알바비 5만원 지급에 이름도 나오지 않을 엑스트라를 굳이 수고를 들여 죽여 없앨 까닭이...
내 옆에서 가슴을 찔린 하인이 꾸르륵 이상한 소리를 내고 있다. 폐에 피가 고여 익사하는 중이다.
그 옆에선 복면인이 하나하나 급소를 찔러 확실하게 죽었는지를 확인을 했다.
아직 죽지 않은 자가 외쳤다.
“약속이 틀리잖소!”
맨 처음에 내 등을 떠민 남자다.
이상했다. 저 대사는 ‘나는 외아들이고, 집에 늙은 어머니가 계시오! 제발 살려주시오!’ 여야 했다. 저래선 원래 복면인과 처음부터 한통속이었다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고통으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와중에 멱살이 잡혀 들어 올려졌다.
“이놈이 맞느냐?”
어째서인지 복면인은 무릎을 꿇고 앉은 하인에게 내 얼굴을 확인시켰다.
부처에게 향을 올릴 기세로 절을 하며 ‘그놈이 맞다.’ 하자 그 즉시 칼춤이 이어졌다. 무엇을 약속받았는지는 몰라도 복면인은 처음부터 그를 죽일 계획이었는지 손속에 머뭇거림이 없었다.
“그깟 돈 몇 푼에 열리는 입이라면 살려둘 필요가 없지.”
그렇게 말한 사람은 비어있는 마차를 조정하던 마부였다.
암살자가 마차를 노리고 뛰어내렸을 적에 마부는 재빨리 고삐를 집어던지고 바닥을 굴렀다. 돌이켜보면 잘 짜인 각본대로의 움직임이였던 것도 같다.
정신이 실 가닥 같이 끊어지려는 찰나, 마부와 내 눈이 서로 마주쳤다.
아니, 내 눈과 마주친 건 잘 버려진 단도 날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똑바로 세워진 칼날이 내 눈을 가로로 그었다.

“뭐야. 씨발 것들. 염방존을 노린 거라며...... 야, 이 미친 새끼야! 아악!”
“앞으로 눈은 필요가 없을 것 같아 미리 없앴다. 혀는 필요하다는 게 참 아쉽군.”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나를 거적 같은 것으로 대충 싸더니 다시 나무로 된 궤짝 같은 곳에 넣었다. 앞이 보이지 않아 내가 들어간 상자가 뭔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다만 관은 아니었다. 안에서 다리를 똑바로 펼 수 없어 무릎을 접어야 했다.
“옮겨라.”
우두머리로 짐작되는 자가 명령하자 궤짝이 들어 올려졌다. 이동은 신속했다.

‘염방존을 노린 것처럼 술수를 부렸지만 처음부터 노린 건 나였어. 이놈들 정체가 뭐지.’
고통을 참지 못하고 신음하자 궤짝이 크게 요동쳤다.
조용히 하라는 말을 참으로 와일드하게도 하는 사람들이었다.
‘나라면 강도로 위장했을 텐데... 아니,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지. 아파 죽겠어! 날 이렇게 잡아가는 이유조차 모르는데 눈도 안 보이게 되고!’
눈꺼풀은 절반이 잘려나갔고 대신 그 자리에 피가 엉겨 붙었다. 상처는 아물겠지만 시력이 돌아올 것인지는 확신이 가지 않았다. 일부러 눈을 망가뜨렸으니 치료를 제대로 해줄 리도 없고, 흉터가 남은 눈이 제 역할을 제대로 해줄지는 알 수 없었다.
눈도 그렇지만 그보다 당면한 문제가 더 심각했다.
궤짝에 틈새가 없어 얼마 지나지 않아 산소가 고갈되고 있었다.
게다가 거적으로 둘둘 말린 상태다.
‘산소부족으로 얼마 후면 기절하겠는데.’
그걸 노린 거라면 칭찬해주겠다. 귀에서 이명이 들렸고, 물 먹은 솜이 코 속으로 가득 들어오는 기분이 들면서 의식의 줄이 뚝 끊어졌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적엔 궤짝에서 꺼내어져 실내로 이동되어 의자에 묶인 상태로 바뀌어져 있었다.
눈이 회복되지 않았기에 공기의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 분위기를 확인할 수밖에 없었는데 악취가 상당했다. 가까운 곳으로 피가 살점이 썩어가고 있어 도축장인가 생각했을 정도다.
동물을 도축했든, 사람을 도축했든, 청소상태가 매우 불량해서 생리적으로 구역질이 나왔다.
지금의 내 상태를 의식한다면 구토는 어떻게든 참아야 했다. 역겨운 오물을 한바가지 쏟는 것도 그렇지만 이물질이 기도로 들어가는 날엔 대 참사다.
내가 이런 걱정을 하는 까닭은 앉은 의자의 각도가 예사롭지 않아서이다.
손님의 면도를 돕기 위해 뒤로 젖혀진 이발소 의자 같았달까, 비스듬하게 눕혀져 있으니 토하면 필연적으로 구토물 일부가 목으로 넘어가게 되어 있었다.
‘이발소 의자일 리 없으니 고문용 의자이겠군.’
끙끙거리며 의자에 묶인 팔과 다리를 버둥거렸다.
움직임에 따라 철겅거리는 쇳소리가 났다. 중세시절 고문의자처럼 쇠고리에 사지를 고정시켜 둔 것 같았다. 주먹을 쥐고 팔을 움직이자 삐걱거리는 소리만 났을 뿐, 움직임이 용이하지 않았다.

“효성진 도장의 제자님께서 드디어 정신을 차리신 거 같군.”
거짓말 보태지 않고 펄쩍 뛰었다. 아무리 눈이 보이지 않아도 귀는 멀쩡한데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이 있다는 기척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거기다 목소리가 들린 방향도 짐작이 쉽지 않았다. 방음설비가 된 음악실처럼 벽이 울퉁불퉁하여 소리의 전달을 먹어치우는 눈치다.
나는 겁을 집어먹은 채 보이지 않는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쓸데없는 짓이라는 걸 알았지만 의외로 상대는 나를 볼 수 있어도 나는 상대를 볼 수 없다는 점이 무서웠다.

“거기 누구요!”
“지금 이 시점에서 그게 중요할까?”
스윽, 스윽,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어쩐지 숫돌에 날을 가는 소리와 비슷하게 들려 전설의 고향 드라마에서 구미호가 나그네의 간을 꺼낸답시고 부엌에서 칼을 가는 장면이 연상되었다.
눈이 보이지 않으니 공포는 배가 되었다.
“그럼 무엇이 중요하다는 거요!”
“네가 효성진의 제자라는 것이 중요하지.”
“제자? 누가요. 나? 나 그 사람 제자 아닌데?? 언제부터 내가 제자가 되었지?”
“그래, 어쩐지 그렇게 나올 거 같더라. 처음부터 고분거릴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
다시 작게 달그닥 소리가 이어졌다. 그게 밥그릇을 정리하는 소리 같기도 하고, 아니면 치과에서 썩은 이빨 쑤실 도구를 정리할 때 나는 소음처럼 들리기도 했다. 물건은 핀셋처럼 가벼운 종류부터 망치 같이 무거운 종류까지 다양했다.

순간 훅, 하고 얼음처럼 찬바람이 불었다. 나는 질겁했다.
“몇 살이지?”
“이거 하나는 확실하게 합시다. 제대로 대답을 하기 싫어서가 아니고요... 진짜로 제가 나이를 정확하게 몰라요. 어쨌든 댁에게 최대한 협조하고 싶은 마음이라는 건 알아주세요!”
“그래서 몇 살이지?”
“올해 스물하나라고 하면 믿지 않으시겠지만 제가 헤아려봤을 적엔 그 정도 나이가 됐습니다! 거짓말로 속이려는 것도 아니고, 농담 따먹기 하자는 건 더더욱 아닙니다!”
“몇 살이지?”
“아, 진짜! 저에게 왜 그러시는 건데요~~!!”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걸 봐선 제대로 걸린 거다. 상대는 전문가였다.
나는 대충 이쪽이겠거니 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 최대한 불쌍하게 보이도록 울상을 지어보였다. 효과는 없겠지만 어쨌든 상대방에게 협조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싶었다. 나는 숨기는 것도 없고, 감추고 있는 비밀도 없다.

“몇 살이지.”
“스물하나 입니다. 그런데 못 먹고 자라 열네 살이라고 다들 착각합니다.”
“몇 살이지.”
“선생님.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제가 웃자고 이러는 거 아닙니다. 저는 어려서 고아로 자랐고, 그래서 나이를 정확히 모릅니다.”
“몇 살이지.”
갑자기 끌려와 어딘지도 모르는 장소에서 정신이 들었는데 상대방은 계속 내가 몇 살이냐 묻기만 한다. 이러면 내가 굳이 대답을 할 의미가 없는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대답이 없자 다른 질문이 이어졌다.
“사람의 뼈가 모두 몇 개인지 알고 있니?”
전생에서 퀴즈로 잘 써먹는 의학 상식이다. 206개다.
“그럼 손에는 모두 몇 개의 뼈가 있는지는 아니?”
세어본 적도 없어 모른다. 농구를 하다 손가락뼈를 삐었을 때 엑스레이도 찍어봤지만 몇 개인지는 모른다. 알고 있었어야 하는 거였나.
“손가락뼈는 열네 개. 손바닥뼈는 다섯 개, 손목뼈는 여덟 개란다.”
“꽤 많군요.”
대답하기가 무섭게 엄지손가락이 뚝 부러졌다.
“으하하악, 아륵!!”
“축하한다. 이제 네 손가락뼈가 열다섯 개로 늘었구나.”

이러지 말고 그냥 원하는 게 뭔지 시원하게 물어봐줬음 좋겠다. 나는 미친 사람처럼 발버둥 쳤다. 굳이 기선제압 이런 거 하지 없어도 순순히 다 말해줄 거였다. 뭘 원하는데. 뭘 바라는데. 아니면 그저 고문이 좋아서 이러는 거냐고. 그러지 말고 궁금한 거 있음 다 물어보라고. 팬티 사이즈에 동정 잃은 날짜까지 다 말해줄 수 있다. 나는 지켜야 할 자존심 같은 건 가지고 있지도 않고, 신념이나 신앙도 가지고 있지 않다.
“표정이 왜 그래. 기쁘지 않은 거니? 그럼 손가락뼈가 열여섯 개가 되면 행복해질까?”
“아니오!”
대답을 듣고도 놈은 삶은 닭 뼈 고르듯 손가락 이곳저곳을 만지작거렸다.
이어 우드득 불쾌한 소리를 내며 뭔가가 끊어졌다.
“아으악! 악! 아니라고 했잖아! 아악! 악악!”
“그래, 넌 올해 몇 살이지?”
확실히 알겠다. 이놈은 제정신이 아니다. 사이코다. 내 나이가 몇 살이나 묻는 건 핑계고 내 뼈의 개수를 하나둘 늘려가면서 기뻐하고 있다.

“이유나 좀 알자! 그냥 취미생활로 이러는 건 아닐 거 아냐!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러는 건데!”
“여전히 화를 내는 걸 보니 아직 팔팔하네. 한참 즐길 수 있겠어.”
그가 기특하다는 투로 내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과연 명월청풍 효성진이 제자로 삼을 만해. 그럼 나랑 같이 오랫동안 놀아볼까? 자, 그럼 다시 질문할게. 네 나이가 몇이지?”
“야, 이 개새끼야악~!! 허윽.”
비명 섞인 욕설을 퍼부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맹렬하게 두뇌를 풀가동시켰다.

‘명월청풍 효성진의 제자.’
이 사람들은 효성진과 연관 지어 나를 고문하고 있었다. 도대체 왜?

Posted by 미야

2021/12/08 11:59 2021/12/08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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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도조사] 풀피리 38

제6장 구름 위의 무간

※ 오리캐 주인공 BL 호러물입니다. 의성조, 소년조 위주.
지명을 포함하여 잘 모르는 부분은 지어냅니다. 원작자의 팬픽 규정을 준수합니다.
마도조사 소설과 드라마 진정령의 타임라인이 틀린 관계로 여기서도 사건 흐름이 뒤틀려 있습니다.


“볶은 땅콩 먹어볼래요?”
금린대로 예절공부를 하러 떠나기 일주일 전, 남사추의 처소로 초대를 받았다.
모두의 눈초리가 흡사 곰벌레를 보는 듯하였기에 남사추의 이러한 호의는 가뭄의 단비 느낌이었다.

단짝인 남경의는 사추와 단 둘이서 방에 남으면 좋지 않은 소문이 돈다는 이유로 깍두기 역할을 자처하고 옆에 앉았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목적은 주전부리였다. 사추가 나 먹으라고 사온 과자도 한주먹이나 쥐어선 게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밀가루 반죽에 단감조림과 땅콩을 넣어 불판에 구운 과자는 기차역에서 팔던 호두과자 느낌이었는데 크기가 훨씬 더 크고 맛도 달았다. 남사추와 나는 하나만 입에 넣고도 금방 질려버렸지만 먹보 돼지 남경의는 덥썩 물어 세 개를 먹어치웠다. 고소 사람들은 다들 식욕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데 얘는 남씨 직계라면서 돌연변이처럼 굴었다. 부스럭 소리를 내며 아예 봉지를 품에 끌어안고 네 개째를 손에 쥐고 먹는 걸 보니 웃음도 안 나왔다. 그래도 예의를 따져 음식을 입에 물고 있을 적엔 떠들지 않아 그거 하나는 좋았다.
 
“그래, 단수 양반. 금린대에 공부하러 가서는 아무에게나 결혼해달라고 하지 말라고?”
두 번 씹고 벌써 끝났다. 과자가 입에서 살살 녹는가 보다. 입안 음식물을 삼킨 남경의가 리얼 탄산 100% 음료의 쏘는 맛으로 말했다.
“금릉에게 실수로라도 청혼하면 뼛가루로 변해 운심부지처로 돌아오게 될 테니 조심해.”
네이밍 센스가 괴상한 사람은 세상에 두 명으로 나눠지지 않았다.
슬프게도 금릉과 여란은 동일 인물이었다. 진짜지 사람은 하나인데 본명과 자, 호로 나눠 부르는 이유를 모르겠다. 금릉은 이름이고 금여란은 자라고 한다.
“얘가 은근 상식이 부족해서 말이지.”
과자 부스러기를 옆으로 치운 남경의가 종이에 기호를 그려가며 장황하게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이름은 부모와 스승, 매우 절친한 관계, 부부가 아니면 부르지 않는다.
남자가 지학의 나이가 되면 어른이 되었다고 여겨 자로 부른다.
호는 거처하는 곳이나 자신이 지향하는 뜻, 좋아하는 물건을 대상으로 한 경우가 많다.
“금릉은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하니까 하루라도 빨리 자로 불러달라고 우기고 있는 거고.”
마찬가지로 남사추의 이름은 남원이고, 사추는 함광군이 직접 지어준 자라고 한다. 함광군이 밖에서 데려와 아들처럼 키웠다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었다.

“어쨌든 네 입장에서 금릉, 금릉 지금처럼 이름으로 부르다간 경을 친다.”
잘 외워지지 않으면 어른은 ‘나리’ 소년은 ‘공자님’으로 명칭을 통일하라고 꼼수를 가르쳐 주었다.
“아니, 진짜로 얘가 일반 상식이 없어도 너~무 없어서 말이지... 금린대에 가서 한바탕 크게 사고 칠 것 같은 기분이 든단 말이야. 그러니 외워! 무조건 외워!”
난릉 금씨. 가문의 상징은 모란. 정확하게는 금성설랑모란문.
가문의 종주는 염방존. 금릉의 작은아버지이고 택무군과는 의형제 사이. 두 종주는 사이가 좋다.
“잠깐만. 고소 남씨의 종주님은 가장 나이가 많은 남계인 선생님이 아니었어?”
“맞을래?”
협박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야무지게 꿀밤을 때렸다. 때리면 머리에 잘 들어간다나.
이어 남경의는 이번 대 가주 염방존의 일대기로 전밀(傳密), 복살(伏殺), 결의(結義), 은위(恩威)는 꿰고 있는 것이 좋을 거라며 간단한 설명에 들어갔다.

전밀, 기산 온씨의 집에 잠입하여 정보를 빼내다.
복살, 온씨 가주 온약한을 암살하다.
결의, 금씨와 섭씨, 남씨의 종주가 의형제를 맺었다.
은위, 염방존이 선독의 자리에 올라 선독령을 추진했다.

음, 그러니까 제이슨 본 같은 사람이었나 보다. 잠입에 암살에... 화려하고 반짝거리는 외모로 뮤지컬 장르를 떠올리기 쉬우나 실제로는 장르가 느와르인 사람이었다.
“잘 해야 해, 걸람. 진짜로 금린대로 가서 잘 해야 한다고. 아님 너 죽어.”
“응, 노력할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금린대에 도착하기 전에 꾀를 내어 도중에 다른 곳으로 달아날 작정이었다. 운심부지처에서 금린대까지 두 다리로 걸어서 가려면 며칠을 가야 했고, 중간에 강을 건너거나 여장을 풀 일이 분명 있을 터였다. 죄인처럼 묶어 끌고 가지는 않을 테니 사람의 시선을 피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을 거고, 뭣하면 배에서 뛰어내릴 각오도 했다. 수영을 못해 물을 먹겠지만 익사할 일은 없다. 죽었다고 여기면 찾는다고 법석을 떨 일도 없을 테니 가능하면 깊은 물을 골라 일을 저지를 작정이었다. 나중에 적당한 겉옷가지 하나 흘려보내면 익사했다고 여길 거다.

“뭔가 수상한데.”
남경의가 불경스럽게 나를 향해 삿대질을 했다.
“꼭 그때 같잖아. 박선망 두 개 망가뜨렸던 날! 날이 늦었으니 그만 집으로 가라고 했더니 저런 표정을 짓고 공동묘지로 샜지. 분명 딴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뜨끔하여 볶은 땅콩을 주워 먹는 척하며 시선을 피했다.
“저거! 저거!”

금방이라도 드잡이를 할 것처럼 구는 친구를 도로 자리에 앉힌 남사추는 골치가 아프다는 걸 숨기지 않아하며 이마를 꾹꾹 눌렀다. 언제부터인지 남경의가 나만 보면 감정적으로 구는 것도 문제였지만 딴청을 부리는 나도 문제이긴 마찬가지였다.
내가 운심부지처를 겉돌며 마치 낯을 가리는 것처럼 굴고 있다는 건 두 사람 다 알아차린 뒤다.
왜 그러느냐 이유를 물어봐도 대답을 회피한 채 실실 웃기만 했더니 이제 더는 까닭을 묻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인내심이 닳고 있었다.

“정말로 사고 치면 안 돼요, 걸람. 요즘 같은 때는 더더욱요.”
이릉노조 위무선 사후 11년.
저승의 왕으로 군림할 것 같은 희대의 네크로멘서가 혹시라도 죽은 자의 모습으로 다시 이 땅으로 현신할까봐 수진계 사람들은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사후 첫 해, 아무 일도 없었다.
그 다음 해, 아무 일도 없었다.
그 다다음해, 역시나 별 일 없었다.
“이릉노조의 제자라고 주장하는 무리가 나타나서 택무군이 신경을 많이 쓰고 계세요.”
10년쯤 지나니 슬슬 진퉁은 잊히고 대신 짝퉁이 나서서 설치기 시작했다.
염방존이 운심부지처로 방문하여 택무군과 상의한 일도 자칭 이릉노조의 제자라고 깝치는 무리에 대해서라고 한다.

“그래봤자 이릉노조의 이름을 내걸어 가짜부적을 비싸게 팔아치우는 사람들이겠지.”
나도 경의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 그간 장터를 돌아다니면서 만났던 도사들은 영력이나 기를 쓰는 재주는 없었고 점수를 후하게 줘도 차력사 느낌이었다. 이릉노조의 초상화를 그려 파는 사람들도 제자를 자처했으나 음호부에 대해 물어보면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았다.
“아냐, 경의. 이번엔 어른들 분위기가 제법 심각한 눈치던데.”
“심각해봤자 저번처럼 피리를 불어 주시들을 덩실덩실 춤추게 하고 싶어 하는 놈들이겠지.”
“농담이 아니라는데도 자꾸 그러네.”
“흉시를 만들었다면 모를까, 위무선의 재주를 따라한 사람은 여태껏 아무도 없었어. 아니면 위무선이 다른 사람의 몸으로 탈사하여 진짜로 돌아왔다는 얘긴데 그럴 능력이 있음 10년이나 걸렸겠느냐고. 그러니 이번에도 죄다 헛소문이고, 어른들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거야.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일 뿐이야.”

손을 번적 들고 질문했다.
“경의나 사추는 흉시를 직접 본 적 있어?”
대답 대신 꿀밤을 또 맞았다.
“너는 그런 거에 관심 갖지 말라니까 그러네.”
결론만 말하자면 사추와 경의는 흉시를 본 적이 없었다. 아니, 볼 수가 없었다.
이릉노조 위무선이 만들었다는 최강의 흉시는 이미 금린대로 끌려가 잿가루가 되었고, 이후 사술비법에 관심이 많은 자들이 흉시를 만들고자 했으나 재주가 부족하여 뜻한 바를 이룰 수 없었다.

남경의가 주먹으로 내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어디 가서 흉시 본 적 있느냐 묻고 그러면 안 돼. 진짜로! 지~인짜로! 금린대에 가서 흉시 어쩌고 입 벌리는 날엔 너 죽어. 흉시 금지! 귀장군 금지! 온녕 금지! 위무선 금지! 음호부 금지!”
“뭔 금지가 그리 많아.”
“농담이 아니야. 귀장군 온녕이 금릉이 갓난아기 시절일 적에 걔 아버지를 죽였거든.”
“어? 금릉 네 아버지 안 계서?”
“아...... 진짜!!”
“그럼 어머니는?! 혹시 어머니도 안 계시는 건 아니겠지?!”
“미치겠네. 금릉의 어머니는 위무선에게 살해당했어.”
“맙소사. 그럼 내 학부모 면담은?!!!”
“무슨 면담? 얘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군.”
되었다. 어차피 금린대로 갈 생각 자체가 없었으니까.
그래도 어쩐지 어제 먹은 밥이 지금에 와서 체한 느낌이었다.
효성진 도장이 만든 진법이 파괴되었을 적에 금릉은 정신을 잃은 채 계속 엄마 아빠를 찾았다.

위장이 있는 부분을 손바닥으로 문지르자 남경의도 덩달아 속 아픈 표정을 지었다.
“너, 진짜 금린대에 가서 잘 할 수 있겠어? 내가 진짜 걱정이 돼서 그래.”
“정 힘들면 편지해요, 걸람. 택무군께 말씀드리고 다시 운심부지처로 돌아오게 할 테니.”
“자, 그런 의미에서 복습이다. 흉시 금지! 귀장군 금지! 온녕 금지! 위무선 금지! 음호부 금지!”
“에잇, 귀찮아. 아무렴 까무러치겠냐.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인데.”
결론만 말하자면 까무러쳤다. 그것도 금린대 그림자도 못 밟아보고서 말이다.

“습격이다~!!!”
약속대로 나를 데려가기 위해 염방존이 자기네 수사들을 운심부지처로 보냈다.
그렇게 금린대로 귀환하려는 수사들과 합류한지 이제 겨우 반나절.
원래대로라면 염방존이 타고 있어야 했을 마차는 텅 비어 있었다. 도중에 그의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가 날아들었기 때문이었다. 편지를 보낸 이는 청하의 섭 종주였다.
염방존은 말을 갈아타고 소수의 수행원들과 같이 청하로 길을 바꿨는데 습격을 계획한 복면의 무리들에겐 그 따뜻한 알림소식이 가지 않았던 모양이다.
“분수를 모르고 선독의 자리에 오른 염방존은 죽어라!”
평소 제이슨 본에게 원한을 품은 무리가 제법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은 하늘에서 박쥐처럼 퍼덕이며 날아들어 시퍼런 칼날을 마차에 바로 꽂아 넣었다.
“비었잖아!”
습격을 실패했음을 깨달은 복면인은 칼날을 나 같은 잡객과 하인들에게 돌렸다.
벌벌 떨고 있던 하인 하나가 지 목숨을 부지해보겠다며 내 등을 떠밀어 복면괴인에게 바쳤다.
복면괴인이 검을 휘둘렀고 어깨가 스걱 잘렸다.
쓰러지면서 투덜거렸다.
어렵게 탈주계획을 세웠는데 뭐 하나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다, 진짜.


제6장 구름 위의 무간, 끝.

Posted by 미야

2021/12/07 11:24 2021/12/07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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