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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조사] 풀피리 43

제7장 나라카(地獄)

※ 오리캐 주인공 BL 호러물입니다. 의성조, 소년조 위주.
지명을 포함하여 잘 모르는 부분은 지어냅니다. 원작자의 팬픽 규정을 준수합니다.
마도조사 소설과 드라마 진정령의 타임라인이 틀린 관계로 여기서도 사건 흐름이 뒤틀려 있습니다.


언젠가 부터인지 혼자 걷고 있는 게 아니라 옆에 한 명이 따라붙었다.
사실 한 명이라기보다는 한 귀신이라고 해야 정확하다. 오른쪽 눈으로 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왼쪽 눈으로 봤을 적엔 머리에 꽃 장식을 한 어린 소녀가 보였으니까. 병원에서 시력검사 할 때처럼 잎맥이 넓은 나뭇잎으로 한쪽씩 눈을 가려가며 시험도 해보았으니 착각은 아니다.
예쁘장한 아이였다. 그리고 너무 작아 덜컥 겁이 났다.
‘귀신이라도 부모가 있을지 모르는데, 이러다 약취유인 유괴범 취급 받는 건 아니겠지.’
아이는 가끔씩 콧노래를 불렀고 옹알옹알 알아듣기 어려운 혼잣말을 했다.
그리고 바짝 붙어 날 따라왔다.

“도와줘, 온서염!”
온서염은 들은 척도 안 했다.
흉살스런 종류도 아니고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니 내버려 두라는 의미인 듯했다.
그것보단 나에게 단단히 화가 난 것도 같았다.
아니, 그런데 이건 많이 억울했다. 왼쪽 눈에 비친 나루터의 모습이 더러운 마포걸레가 덕지덕지 붙은 모양새라 저리로는 가지 않겠다고 한 것뿐이다. 척 봐도 그건 좋지 않은 것들이었다. 세탁기 속에 넣어두고 30년 동안 존재를 잊어먹은 가발 느낌인데 그게 사람에게 이로운 존재일 것 같진 않았다.
어차피 배 삯도 없고, 그래서 돌아 나왔다.
그런데 온서염은 엄마와 살던 집에 가지 않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일종의 태업 중이었다.
이쪽에서 세 번 부르면 한 번 대답하는 걸로, 그것도 단답형으로 짧게 대답하는 것으로 복수를 하고 있는데 진짜 찌질한 성격이었다.
그가 걸람이고 내가 온서염이니 누워 침을 뱉는 것과 마찬가지이긴 한데, 아무튼 찌질했다.

이렇게 나오시겠다 이거지.
내면의 짝꿍으로부터 도움을 얻는 건 포기하고 왼쪽 눈으로 어린애를 관찰했다.
아이는 전반적으로 깔끔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입에 담기도 역겨운 흉악한 일을 당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포동포동하게 살이 오른 외모로 보아 굶어 죽은 것도 아니었다. 아이가 내 시선을 알아차리고 베시시 웃자 윗니가 없었다. 이갈이 중이었다.
“아니, 이렇게 어려서 귀신이 되면...” 성불은 언제 하는 거냐고.
따라오지 말라고 손짓발짓으로 설명하며 턱에 힘을 주고 으음! 소리를 내었더니 웃기만 한다.
일부러 못 알아들은 척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알아듣지 못했다.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키며 따.라.오.지.말.라.고. 모양을 잘 보라 설명해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냥 쟤는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애기야. 나랑 여기에 있음 안 돼. 엄마 어딨어, 아빠 어딨어?”
물어봐도 장난을 치며 마냥 노느라 바빴다.

죄 지은 사람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쨌든 나는 결백하다. 나는 맛있는 거 준다한 적 없고, 같이 놀자 꾀지도 않았다.
턱을 괸 자세로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수풀 속에 주저앉자 애기도 따라 옆에 앉았다.
“뭐야, 이번엔 소꿉장난이야?”
풀을 잘게 조각내고 꽃잎을 하나하나 따서 흙과 섞더니 그걸 나뭇잎에 넣고 만두를 빚었다.
그 모양이 하도 웃겨 나뭇잎 만두를 집어 들어 입에 넣는 척하고 냠냠 소리를 내었더니 까무러치며 좋아했다.
그래, 음식 솜씨가 좋구나. 나중에 만두장사를 해도 대성을 하겠어.
아이의 웃는 모습이 좋아 만두를 하나 더 집어 입에 넣는 척했다.
주변에 아무도 없어 정말 다행이었다. 남들이 이런 내 모습을 봤음 단단히 실성했구나 여겼을 거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나 스스로도 내가 미쳤다는 생각을 어느 정도 하고 있었다.
입안으로 흙 맛이 돌고 어금니 틈새로 풀이 끼고 있는데 귀신을 부추겨 만두 하나만 더 달라고 하고 있으니 제정신이 아닌 거 맞다.

《저걸 궁기도까지 데리고 갈 거야?》
온서염이 성가신 걸 끌고 다닌다며 잔소리를 했다. 도와달라며 내 쪽에서 애원했을 적엔 들은 척도 하지 않더니 이제 와서 딴소리다.
“얘기가 안 통하는데 나더러 어쩌라고. 나는 분명 쟤더러 따라오지 말라고 말했다.”
나 또한 시큰둥하게 반응하며 엉덩이에 묻은 흙을 털었다.
소꿉장난에 심취해 있던 아이가 재빨리 반응하며 벌떡 일어나 내 옆으로 가까이 붙었다.
마음대로 하라지. 어깨에 올라타지 않은 것만으로 다행으로 여기기로 했다.

궁기도는 지명으로 찾으면 나오지 않는 곳이라고 했다.
상고시대부터 궁설, 혹은 궁기도라고 불린 옛길로 그런 이름이 붙은 연유는 궁기라는 괴물이 살았던 곳이었기 때문이라나. 그래서 궁기(窮奇) 괴물 이름에 길 도(道)를 붙여 궁기도가 되었다.
궁기가 뭐냐는 내 질문에 온서염은 개의 울음소리를 내는 날개 달린 호랑이라고 했다.
‘또 호랑이냐. 지긋지긋하게 호랑이가 얽히네.’
궁기는 불효를 조장하고, 악한 사람에게 보물을 선물하며, 착한 사람을 잡아먹는 악신이라서 고대의 영웅이 무려 여든하루 일에 걸쳐 퇴치를 했다고 한다. 그 궁기를 죽이고 천제께 제사를 드린 곳이 궁설이고, 몇 백 년 전까지는 일종의 관광명소처럼 인식되었던 듯하다.
하지만 애초부터 농사가 불가능한 척박한 지형이라 마을이 형성되지 않았다.
온서염의 말로는 바위와 자갈이 가득인 곳이라고 했다. 땅이 그 정도로 척박해진 이유는 지금도 사라지지 않고 남은 궁기의 독기 때문이었다.

“방금 전 서염 오빠가 하는 말 들었니? 거긴 꽃이 없대.”
아이가 내 말을 알아듣기는 하는 건지 모르겠다. 애초에 나는 무당이 아니라서 귀신과의 대화에는 소질이 없었다. 절대 상대가 여자아이여서가 아니다.
“풀도 자라지 않아 아까처럼 소꿉장난 하는 게 불가능할 것 같은데. 어쩔래. 그래도 따라올래?”
아이는 빠진 이를 자랑하듯 헤실 웃기만 했다.
에라, 나도 모르겠다. 제풀에 지치면 알아서 돌아가겠지.
그보다는 지도에도 안 나온다는 곳을 온전히 온서염의 오래되어 빛바랜 기억에 의존하여 찾아가야 한다는 점이 문제다. 솔직히 내 생각으론 미션 성공 확률은 바닥이었다.

“차라리 배를 타고 외국에 가보고 싶다.”
이 시대에도 해상무역은 있을 거다. 이 세상이 역사대로 흘러가고 있다는 확신은 없어도 – 좀비가 있으니 내가 아는 실제 역사가 아니라 십중팔구 판타지다 – 외국으로 소금이나 도자기를 팔러 다니는 내 모습을 상상해봤다. 담이 작은 탓에 거상이 된 내 모습은 상상이 가질 않았고, 침침한 눈으로 물건의 개수와 포장된 상자를 하나하나 세고 있는 장면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배 멀미를 하면 어쩌지.
서른네 살 회사원 안선준은 멀미를 안 했다. 멀미를 했다면 그토록 장시간 대중교통을 타고 출퇴근을 하지 못했다. 제주도 가는 비행기를 탔을 적에도 괜찮았다. 하지만 걸람은 얘기가 다르다.
“서염은 혹시 바다를 본 적 있어?”
《없어.》
그렇다면 버킷 리스트로 만들어두자. 해변에서 모래장난도 하고 배도 타야지. 이 시대에 해상으로 유럽까지 가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말레이시아나 베트남이라면 가능할 - 여기까지 생각하다 의식의 흐름이 뚝 끊겼다.

어떤 의미에선 장관이었다. 그러나 억새풀이 장관인 그런 풍경은 아니었다. 비비면 덧난다는 걸 알았어도 눈을 세게 문질렀다. 그런들 사라질 종류는 아니었다만, 어째서인지 들판 가득 혼백들이 바다 거품처럼 일렁였다. 마치 무허가 공장들이 오염수를 무단으로 방류하여 강이 포말로 뒤덮였다던 해외토픽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오래되어 부서지고, 그러다 바람에 떠오르고, 마지막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가라앉고.
물결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속이 메슥거렸다.
《가까이 가지 않는 게 좋겠어.》
격하게 동감한다.
허공에 밧줄이 늘어져있고, 그 밧줄마다 시커먼 인영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숫자가 서른을 넘어갔다. 그들의 정체가 무고한 사람들인지, 붙잡혀 벌을 받은 도적들인지는 알 재주가 없다. 너무 오래 전에 죽었고, 마냥 곱씹고 있기엔 세월이 길었다. 나무조차 뿌리가 썩어 쓰러졌건만 나뭇가지에 묶인 몸은 계속해서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그것들과 시선이 마주쳤다는 느낌이 들자 얼른 고개를 숙였다.
사방이 지뢰밭이다.
안달을 내며 공중에 매달린 것들에게 팔을 뻗는 여자아이를 향해 지지는 만지는 거 아니라고 주의를 주고 길에서 벗어났다.

Take me home, Country roads.

옛날 노래 가락을 흥얼거리며 저무는 해와 노을이 지는 풍경을 눈에 담았다.
“집에 가고 싶다.”
내게는 집이라고 떠올릴만한 곳이 없는데도 막연히 그리웠다. 이 드넓은 천하에 누울 곳 하나 없다.
“누나 보고 싶다.”
택배로 김치 보냈다고 전화해주던 누나가 그립다. 돈은 언제 모을 것이며, 여자 친구는 언제 만들 거냐고 윽박지르던 목소리가 듣고 싶다. 눈물은 나오지 않는데 코가 고춧가루 버무린 것처럼 맵다.
“국물 떡볶이 먹고 싶다.”
기왕 코가 매운 거, 혀가 얼얼한 정도로 뜨끈한 떡볶이가 먹고 싶어졌다.
고춧가루 한 스푼에 고추장 한 스푼, 설탕 세 스푼에 진간장 두 스푼. 양배추에 소시지 넣고.
지금처럼 땅속 암반 500미터 아래로 추락한 기분일 적엔 맛있는 걸 상상하면 괜찮아진다.
이참에 버킷 리스트 하나 더 추가다. 어떻게든 떡볶이를 직접 만들어 먹어본다. 여기서 고추를 재배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만 만약 없음 남방으로 배를 타고 내려가 직접 찾아보자. 고추는 더운 지방이 원산지라서 –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전부 쓸데없다.

옆에서 풀깍지를 만들며 놀던 작은 아이가 갑자기 환히 웃었다. 꼭 밥 먹으라고 부르는 엄마 목소리를 들은 아이처럼 굴었다. 그러더니 다섯 걸음 뛰어가 멈춰 서서 손짓하고, 다시 세 걸음 뛰어가 멈춰 서서 손짓했다.
하는 동작이 따라오라 하는 것 같아 아이가 하자는 대로 했다.
《그러다 귀신에게 홀린다.》
온서염이 조심하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간만에 듣는 웃긴 얘기였다. 누가 누굴 조심하라는 건지.

한참을 앞서 나가던 아이가 얼마 후 제자리에서 종종 뛰었다.
잔뜩 신이 난 것도 같고, 칭찬을 바라는 것처럼도 보였다. 미리 꺾어둔 꽃을 흔들며 나를 가리켰다.
그런 아이의 앞에 영하 20도 냉동창고에서 금방 빠져나온 것처럼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는 사내가 커다란 고금을 들고 서 있었다.

아이가 앞니 빠진 입을 열어 무어라 종알거리자 고금의 줄이 디잉, 딩 하고 높은 음으로 울렸다.
찾는 귀신. 여기.
문령으로 아이의 말을 알아들은 함광군이 연주를 하도 오래해서 빨갛게 변한 손가락을 줄에서 천천히 떼어냈다.

Posted by 미야

2021/12/16 19:53 2021/12/16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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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조사] 풀피리 42

제7장 나라카(地獄)

※ 오리캐 주인공 BL 호러물입니다. 의성조, 소년조 위주.
지명을 포함하여 잘 모르는 부분은 지어냅니다. 원작자의 팬픽 규정을 준수합니다.
마도조사 소설과 드라마 진정령의 타임라인이 틀린 관계로 여기서도 사건 흐름이 뒤틀려 있습니다.


물결에 일렁이는 태양을 본 것 같다고 막연히 생각하는 것과 물에 둥둥 떠내려가고 있음을 깨닫는 건 거의 동시였다.
주변에서 큭큭거리며 웃는 소리가 들렸다. 높이가 허벅지 정도밖에 오지 않는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으면 바나나를 밟고 넘어진 것과 마찬가지의 효과가 발생한다. 웃음이 터지는 거다.

한참을 허푸거리며 몸을 세우자 높이가 낮은 점방 다리가 보였다. 큰 비가 오면 쉽게 떠내려가도록 설계된 점방 다리는 허름한 모습과 달리 지나가는 통행인이 제법 있는 편이었는데 이 근방의 물살이 약하고 물의 깊이가 낮아 먼 길을 돌아서라도 구태여 이쪽으로 건너가는 눈치였다.
그리고 나는 그 다리 위를 걷다 아무래도 발을 헛디디고 떨어진 것 같다.
“젊은 놈이 대낮부터 술에 취했냐? 아하하!”
짐을 지고 가던 지게꾼이 내 꼬락서니를 보곤 배가 터지도록 웃느라 바빴다. 여인들도 마찬가지로 손가락질을 하며 웃었다. 어지간히도 모양 빠지게 굴렀던 모양이다.

귀에 들어간 물을 빼기 위해 머리를 탁탁 소리 내어 때렸다.
웃긴 건 웃긴 거고, 나는 누구고 여긴 어디여.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
구경꾼들의 웃는 소리가 요란한 중에 물살을 가르며 가장자리로 걸어갔다.
옷을 입은 채로 물기를 쥐어짜고 있자 그제야 사람들이 구경을 멈추고 제 갈 길을 가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필름 중간이 깨끗하게 잘려져 나갔는디?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거?
‘금린대로 가는 길에 습격이 있었고, 눈을 베였고, 납치를 당했고, 고문을 당했고...’
강가 주변을 두리번거려봤다. 당연한 얘기지만 생전 처음 와보는 낯선 곳이었다.

그도 그렇지만 시선의 높이가 평소보다 높아 뭔가 잘못된 듯해서 걱정스럽다.
입고 있는 옷의 소매 길이가 졸아든 연근처럼 짧았고 바지도 발목이 드러났다. 이래선 동생 옷을 잘못 입고 나온 몰골이다. 운심부지처에선 튼튼하고 좋은 옷감을 쓰는 줄 알았는데 물에 젖으면 확 줄어드는 성질이 있었던 걸까, 혼방이 아닌 면 재질의 옷을 잘못 빨면 줄어든다는 말을 들은 적은 있다.
‘햇볕에 말리면 지금보다 더 줄어드는 거 아냐? 그럼 곤란한데.’
근처 나뭇가지에 겉옷을 잘 펴서 널어두고 근처에 아무렇게나 앉았다.
앉고 나서도 시선의 높이가 예전 같지 않아 어쩐지 어색했다.

“어이, 거기! 다리에서 떨어진 덜 떨어진 놈!”
가죽 보호구를 착용한 남자 둘이서 손을 깔대기 모양으로 만들어 입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물 많이 먹었냐? 다친 곳은 없고?”
방범대원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다. 제대로 군사훈련을 받은 건 아니지만 마을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치안조직 소속의 사람들인 것 같았다. 옆구리에 소박한 모양의 칼을 하나씩 차고 있었고, 소속감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멋을 내기 위함인지 감청색 망토 같은 걸 두르고 있었다.
나는 괜찮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팔을 흔들어 보였다.

두 사람이 자기네들끼리 대화를 나눴다.
“지나가는 사람이 너무 많아. 통제를 할 필요가 있겠어. 다리도 너무 흔들려.”
“괜찮아. 점방 다리는 원래 흔들리는 법이니까. 균형을 못 잡고 떨어지는 사람이 이상한 거지. 염곤 나루터에서 수신귀가 나타났다고 해서 다들 이쪽으로 몰려오는데 통제까지 하면 더 혼란해져.”
“상황을 더 두고 볼까나. 그래도 다리에서 떨어진 사람이 있다고 보고는 하는 게 좋겠어.”
“보고를 하는 김에 확실히 하자고. 어~이. 거기 홀딱 젖은 놈! 누가 밀어서 떨어진 건 아니지?”
모르겠다. 기억이 안 났다. 어쨌든 다들 웃었으니 남들과 시비가 붙은 건 아닐 거다.
나는 재차 팔을 흔들어 걱정하는 그런 종류가 아니라고 표현했다.
누가 밀어서 라기 보단 눈이 흐릿해서다. 상처는 거진 나았어도 시력은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발을 헛디뎌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다. 그나마 빠진 곳의 깊이가 얕아 다행이었다. 최근 비가 내린 적이 없는 거다. 청수오는 평소 수량이 적었지만 집중호우가 쏟아지는 날엔 수위가 급격히 올라...

“잠깐. 이건 내 기억이 아닌데?”
쓰게 웃으며 고장 난 라디오를 고치는 요령으로 머리통을 툭툭 쳤다. 라디오 채널이 엇나가 잡음이 잔뜩 섞인 느낌이었다. 옆에선 간첩들이 난수방송 중이고 바늘을 미세하게 조정하자 라디오 DJ의 말소리와 음악소리가 겹쳐서 들려오는 거다. 이쪽에서 클래식 음악을, 저쪽에선 성인 가요 타임이다.
이를 어쩐다. 꿈이라고 생각했는데 꿈이 아니었고, 머릿속으로 다른 사람의 말소리가 들렸다.
《여긴 어렸을 적에 살았던 곳과 가까운 장소라 잘 아는 것뿐이야.》
“저기요? 온서염 씨?”
《왜.》
“진짜로 온서염이네.”
완전 망했다. 도대체 무엇부터 잘못되었다고 해야 할지 짐작도 안 갔다. 사실 전부 잘못되었다.
콧물인지 강물인지 모를 국물을 들이마시고 침착함을 가장했다.
그래봤자 온서염이 나고, 내가 온서염이다.

“차근차근 하자고. 일단 여기가 어디야.”
《형주.》
강원도라고 하면 내가 알아 듣냐고! 삼척, 동해, 강릉, 이런 식으로 압축해줘야지!
“보다 자세하게 안 되겠어? 정신을 차렸는데 장소도 모르겠고, 날짜도 모르겠고, 지금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도 모르겠는데 황당하잖아. 눈치껏 보아하니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그동안 잘만 돌아다닌 눈치인데 이거 전부 네 짓이지?”
《그럼 네가 기절해 있는 동안 다리 뻗고 누워 있으라고? 열흘이나?》
“열흘?!!! 그럼 깨웠어야지!”
《항의는 저쪽에다 해. 깨우고 싶어도 깨울 수 없었어. 초혼을 한답시고 네 혼을 들었다 놓았거든.》
“초혼?”

습격이 있었다고 보고가 올라갔을 거고, 하인들 대다수가 살해당했다. 나는 실종상태였다. 아니, 시체만 못 찾은 상태였다. 나 홀로 살아남았을 거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을 거다.
그래서 혼백이라도 불러 사연을 들어보자며 운심부지처 사람들이 걸람을 부르며 초혼을 한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꿈인지 생시인지 어두운 방안으로 택무군과 남계인 선생님, 함광군, 그리고 세 명의 다른 수사들이 기괴한 음률로 고금을 튕기고 있었다.
‘나 아직 안 죽었거든요?! 빈사상태이긴 한데 안 죽었거든요? 당장 멈추라고, 멈추라고! 이 개새끼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택무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초혼의식을 서둘러 중단시켰다.

손바닥으로 이마를 철썩 때렸다. 그것도 꿈이 아니었다는 거지, 미치고 환장하겠네.
욕설을 듣고 남계인 선생님 거품 물었겠군. 그것만으로도 이미 사형 확정이다.

“그래서 열흘 동안 의식불명이었다고?!”
물이 줄줄 흐르는 바지를 쥐어짜며 물어보았더니 온서염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내 혼이 정신을 못 차리는 동안 혼자 남은 온서염은 도주를 결심, 예전에 어머니와 같이 숨어 살던 집을 떠올리고 거기로 찾아가려 했단다.
“거기가 어디인 줄은 알고?”
나로서는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초혼의 실패로 내가 안 죽었다고 밝혀진 셈이니 고소에서 수사들을 풀어 내 행방을 미친 듯이 찾고 있을 텐데 얘는 엄마와 살던 집에 가겠다고 제멋대로 딴 짓 중이었다. 도중에 강에 빠져 물이나 먹고. 자~알 한다.
《시끄러. 너도 고소로 돌아가고 싶은 건 아니잖아.》
“당연히 아니지. 고소로 잡혀가면 죽어. 거기 사람들이 사술을 얼마나 끔찍하게 여기는데.”
꿈이라고 여겼지만 주시를 잡아먹은 기억이 있다. 어쩌면... 산 사람도 먹은 것 같다.
토기가 올라오려 했다. 실제로도 헛구역질을 했다.
《먹지 말라고 했을 적에 말을 듣지 않은 건 너야.》
“됐고요. 그만 꺼지세요.”
혼선된 주파수를 어떻게든 고쳐놓던가 해야지. 졸지에 이중인격자가 되어버렸다.

제대로 마르지 않아 쉰내가 진동하는 겉옷에 팔을 꿰었다.
외지인의 몸으로 물가에 앉아 혼잣말을 하고 있음 사람들 눈에 너무 띈다. 지금도 점방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 다수가 내가 있는 방향을 흘끔거리고 있다. 일단 다리는 안 건너는 것이 좋겠다. 고개를 숙여 땅만 쳐다보며 서둘러 자리를 옮겼다.

“그래서 옛날 숨어 살던 곳이 어디라고?”
《꺼지라고 할 때는 언제고.》
온서염이 단단히 삐진 투로 말했다. 나는 살살 달래는 목소리로 산 사람 소원도 들어주는데 죽은 사람 소원을 못 들어주겠냐며 재차 거기가 어디냐고 물었다.
“옛날에도 숨었으니 지금도 숨을 수 있지 않을까.”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그리 말했다.

온서염의 어머니는, 그러니까 내 어머니는... 이쯤해서 혀를 깨물었다.
어머니는 이릉노조 위무선처럼 일종의 마법사였던 것 같다. 아들이 병사하자 남편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음철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어쩌면 ‘훔쳐내어’ 주시로 되살려냈다.
그리고 은밀한 곳에 아들을 숨겨뒀다.
사실을 캐묻자 남편을 죽이기로 결심하고 아들이 있는 방에 밀어 넣었다.

앞만 보고 걷는 속도가 나도 모르게 빨라졌다. 다리가 엉킬 지경이었지만 속도를 줄이진 않았다.
남편을 죽이고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몸을 숨겼다.
그 와중에도 여러 가문의 수행자들을 잡아 아들에게 먹였다. 당시는 전쟁 중으로 – 나도 모르게 나뭇잎을 잡아 거칠게 비틀었다. 엿본 기억이 전부 망상이나 꿈이 아니라고 한다면 온서염이 먹어치운 사람은 두 자리 수를 아무렇지도 않게 넘겼다.
그래서 병사를 풀어 모자를 잡아 죽이려한 거다.
신음이 터져 나왔다.
쫓기고 쫓겨 어머니는 결국 죽었다.
여자는 자신의 최후를 짐작했던지 도중에 아들을 흙속에 파묻었다.
‘기혈을 눌러 반 가사상태로 만들기는 개뿔...’
직접 온서염을 죽여 묻었던 게 아닐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 자신의 얘기지만 객관적으로 접근해보면 그렇게 생각하는 게 타당하다.
그리고...... 여섯 살로 추정되는 걸람은 지저분한 모습으로 소산 거리를 방황하다 사람들 눈에 띄었다.
채소 가게 아들이 이거나 처먹으라며 썩은 과일을 던졌다.
걸람은 과일을 먹고 탈이 단단히 났다. 열이 펄펄 끓었고 의식이 없었다. 그 상태로 의장에 던져졌다.
그래서 죽었다. 아마도 그랬을 거다. 탈수증이 왔는데 자연치유가 되었다고? 그럴 리 없다.
그렇게 몇 번이나 죽고, 몇 번이나 되살아나고, 다시 죽고, 다시 살아나고... 자리에 우뚝 서서 원망을 담아 하늘을 쳐다보았다.

여기는 지옥이다.
나는 이 세계에 갇혀버렸다.

Posted by 미야

2021/12/14 16:18 2021/12/14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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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조사] 풀피리 41

제7장 나라카(地獄)

※ 오리캐 주인공 BL 호러물입니다. 의성조, 소년조 위주.
지명을 포함하여 잘 모르는 부분은 지어냅니다. 원작자의 팬픽 규정을 준수합니다.
마도조사 소설과 드라마 진정령의 타임라인이 틀린 관계로 여기서도 사건 흐름이 뒤틀려 있습니다.


삼킨 물을 토하는 거라 생각했다.
입안에 가득 찬 이물질을 뱉어내는 동안 호흡이 어려워 괴로웠다.

이발소 의자에서는 벗어난 상태였다. 엎드린 자세로 정신을 차린 곳은 상투를 푼 채 칼을 쓰고 앉아있으면 어울릴 법한 감옥이었고, 뿌옇게 흐려진 눈에는 온통 검댕밖엔 안 보였다. 어쩌면 눈이 잘못되어 얼룩이라 착각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 요란하게 쿨럭거렸다. 그런데 실제로 뱉어낸 물의 빛깔이 석탄의 색이었다. 온통 뿌옇고 검었다.
기침이 멎지를 않았다. 이제 코로도 검은 가루가 쏟아졌다.
‘그렇군, 꿈을 꾸고 있는 거군.’
코로 가루를 뿜고 있음에도 몸은 가벼웠다. 역시나 꿈이다. 그렇지 않다면 내 몸 주변으로 나풀거리며 날아다니는 검댕의 존재를 설명할 수가 없었다. 검댕은 빠르게 멀어졌다가 봄의 왈츠를 추듯 스륵 돌아 나에게로 돌아왔다. 손으로 가볍게 쥐자 정전기가 일어난 것처럼 따끔했다. 날벌레에 물린 것 같기도 했다. 손을 펴자 날파리처럼 생긴 것이 날아올랐다.

갑자기 카메라 앵글이 바뀌며 시야의 높이가 변했다. 앉았다가 벌떡 일어서기라도 한 것 같았다.
꿈이라면 가능한 일이기에 이상하게 여기진 않았다. 덜 회복되어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옥문을 움켜쥐고 흔드는 내 손이 들어왔다. 배추 250근을 한 번에 들어 올리는 괴력에 정체불명의 검은 가루까지 합세하자 강철로 만든 경첩이 둘로 쪼개지며 옥문이 주저앉았다.
큰소리가 나자 경계를 서던 자가 횃불을 들고 뛰어왔다.
가까이 불을 비춰보고는 어째서인지 비명을 질렀다.
검은 가루가 파리 떼처럼 몰려가 그 남자의 얼굴을 덮었고 자지러지던 비명이 뚝 그쳤다.
‘와... 특수효과가 꼭 영화 미이라 같다.’
사람이 저리 죽을 리 없으니 역시 꿈이다. 쓰러진 남자를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쳐 출구를 찾았다.

한쪽은 복도였고 한쪽으로 감옥 같은 공간이 길게 나열되어 있었다. 그 감옥의 어둠 깊은 속에서 그르륵, 그륵 이러고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소음이 들렸다.
‘이건 워킹데드 1시즌이네.’
가까이 접근하면 썩은 손톱이 달린 마른 여자의 손이 튀어나와 벽을 긁을 것이다.
‘이곳에 죽은 자가 있음! 접근하지 마시오.’ 경고문이 걸려 있음 딱 주인공이 깨어난 병원 장면이었다.
호기심이 생겨 그 안을 들여다보고 싶었는데 원래 꿈은 자각몽이 아닌 이상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법이라서 금세 장면이 바뀌었다.

이번에는 불편한 다리로 계단을 오르는 중이었다. 시야가 좋지 않아 몇 번을 미끄러졌는지 모른다.
무릎을 찧었을 적엔 제법 아팠다.
‘응? 아프다고?’
허우적거리다 말고 이상하다 생각했다. 꿈에서 넘어지면 무릎이 아픈가?
벽면을 더듬거리며 방향을 잡다 말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쩌면 턱이 아픈 걸 착각한 것일 수도 있다. 멍들고 어금니가 빠져 얼굴이 퉁퉁 부었다.

계단을 올라가 출구를 찾았다고 여겼는데 막다른 방이 나왔다.
이번에도 검은 벌레가 출동해서 자물쇠를 갉아먹었다. 황제의 보물창고 문지기도 이 벌레들 앞에선 맥을 추지 못할 것이다. 커다란 쇠붙이가 형태를 잃고 추락하자 안에서 희게 눈을 까뒤집은 주시들이 무더기로 튀어나왔다. 입고 있는 옷은 단정했으나 피부가 썩어 냄새가 엄청났다. 그런 놈들이 딱딱 턱을 놀리며 내 몸을 씹으려 했다.

이러다 이빨 자국 생긴다 걱정하던 찰나 위치가 역전되어 내 입으로 남의 살이 가득 찼다.
이제 살을 씹고 있는 건 걸람, 피를 흘리는 자는 아버지가 되었다.
아버지가 발버둥 쳤다.
‘이게 무슨! 이게 무슨!!’
나는 눈을 하얗게 까뒤집고 게걸스럽게 살을 탐했다.
‘살려주시오! 부인! 살려줘!’
문밖에서 어머니가 지키고 서계셨다.
여자는 남편이 산채로 잡아먹히고 있음에도 결코 문을 열지 않았다.
‘상공, 아들을 위해섭니다. 온서염, 내 아들아. 그렇게 먹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쳐주지 않았느냐.’
걸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고 씹던 살을 뱉어낸 아이는 까맣게 변한 손을 뻗어 아버지의 맨 살을 더듬었다.
‘명혼을 삼키는 거다. 붙잡고 끌어와 네 것으로 삼으렴.’
어머니의 지시에 아이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겁에 질린 아버지가 어떻게든 걸람을 뿌리치려 했지만 아이는 괴물처럼 자신의 입을 아비의 심장이 있는 피부로 가져갔다.

《그만둬. 이런 걸 떠올리고 싶진 않아.》
경고하는 온서염의 목소리가 들렸고 나는 걸어 다니는 시체로부터 얼른 입술을 떼어냈다.
《그런 건 먹지 마. 여기서 나가.》
온서염의 말대로 더는 움직이지 않게 된 시체를 바닥에 집어던졌다.
시체 곁을 방황하던 검은 벌레들이 꾸물거리며 미련을 드러냈지만 내가 다른 길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하자 얌전히 따라왔다. 뒤를 돌아보자 흐릿한 검댕 얼룩이 꼭 도둑놈이 남긴 발자국처럼 보였다.
그 자국이 재밌다고 생각하며 도로 앞을 향했는데 갑자기 벽이라고 생각한 곳에서 창이 튀어나와 내 옆구리를 깊게 찔렀다.

“아?”
벽이 아니라 벽으로 위장된 통로였다.
창을 든 남자가 날카롭고 짧게 휘파람을 불어 동료에게 신호하자 이번엔 검을 든 사람이 나타났다.
이런 일에 대비하여 평소 훈련을 해왔는지 창과 검의 호흡이 딱딱 맞았다.
“흉시야? 이거 흉시냐고. 얼굴이 피범벅이잖아.”
“몰라. 어쨌든 물리면 안 돼. 최대한 벽으로 밀어!”
그러다 검을 들고 있는 쪽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무기를 떨어뜨렸다. 돌아보자 검댕이 그의 얼굴을 빈틈없이 덮고 있었고, 한눈에 봐도 살 가망이 없어 보였다.
창으로 미는 힘이 약해졌다. 흉살을 당한 동료의 모습에 놀라 무의식적으로 팔에서 힘을 빼버린 거다.
옆구리 살이 찢어지는 걸 개의치 않아하며 몸통을 비틀자 창을 든 자의 자세가 나빠졌다.
그걸 기회로 그 자의 목덜미를 와지끈 물어뜯었다.
《먹지 말래도.》
온서염의 잔소리에 눈살을 찌푸리며 소매로 입가를 닦았다.
눈이 제대로 낫지 않아서인지 소매에 묻은 체액의 색이 붉지 않고 검었다.
아무래도 눈을 찾아야겠다. 불편해서 참기 힘들었다. 잘 보이는 눈으로 갈아 끼워야겠다.
그리 생각하며 여기저기를 쏘다니다 미로 같은 구조를 벗어나 운 좋게 출구를 찾았다.

오랜만에 들이마시는 공기가 시원했다.
검댕으로 얼룩진 눈은 빛을 거의 구분하지 못했지만 머리 위로 따스한 햇살이 비치고 있음은 냄새로도 알 수 있었다. 화창한 날이었다. 시각은 대낮이었다. 운심부지처의 문하생들은 지금쯤 몸을 풀고 체력단련을 한창 하고 있을 때였다.
다만 지금 여기서 빠르게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은 거기 문하생들처럼 체력단련의 시간을 가진 눈치는 아니었다. 소지한 무기의 종류가 압도적으로 창이 많았는데 몸에 금단을 맺고 수련을 하는 사람들치고 창술을 연마하는 자는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창은 리치가 길어 일반인들이 익히기엔 좋은 무기지만 영력을 사용하는 무기로는 걸맞지 않았다. 그러니 여기 모인 사람들은 도를 수련을 하는 자가 아니고...... ­
“야, 이 새끼들아! 깜짝 놀랐잖아. 니들은 예의도 없냐. 꼼짝 마라, 이런 말부터 해야지!”
사극 드라마도 안 보는 것들 같으니.
에워싸고 창으로 찌르려 해서 하마터면 고슴도치가 될 뻔했다.
나를 보호하려는 건지 철가루 검댕이 미친 듯이 회오리쳤다.
그깟 석탄 가루라고 얕보면 큰 코 다친다. 오는 길에 몇 명을 먹어치운 뒤라 힘이 장사였다.

비명소리가 요란했다. 검댕 묻은 얼굴을 쥐어뜯으며 바닥을 뒹굴던 자들이 칠공으로 피를 뿜었다.
거치적거린다. 비켜라.
똑바로 걸어 나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느라 바쁜 놈 앞에 섰다.
음...... 신장의 차이 탓에 올려다보고 있자니 불쾌했다.
내 마음을 읽었는지 철가루 검댕이 일제히 몰려가 남자의 몸을 강제로 찍어 눌렀다.
“거의 숨을 쉬지 않았...는데, 어떻게?! 분명 그랬는데?! 그리고 그 힘은...!! 허억.”
손이 작으니 손바닥을 활짝 펴도 남자의 얼굴을 다 덮는 건 무리였다. 농구공처럼 가지고 놀다 땅바닥에 드리볼을 해볼 작정이었는데 이래선 무리다. 쯧, 하고 혀를 차고 손을 치우자 손가락 숫자만큼 눌린 자국이 생겼다. 둥글게 눌린 붉은 자국이 연지라도 찍은 모습이라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아니, 그런데 마음대로 웃지도 못해.
내가 웃자 강제로 꿇려져 나를 올려다보던 눈에 공포가 서렸다.
무서워하긴. 나는 물고문도 안 할 건데. 상냥하게 웃으며 덥석 남자의 머리통을 물었다.
비명소리로 귀가 다 얼얼했다.

“이건 꿈이지?”
《응.》
“그리 기분 좋은 꿈은 아니네. 프로이드의 이론대로라면 나는 아직도 구강기 단계라는 거잖아.”
피투성이가 된 입을 닦으며 그렇게 말했더니 온서염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사실 나도 잘 몰라. 교양수업으로 심리학 개론 들은 지도 오래고... 구항남잠생, 구강기-­항문기-­남근기-­잠복기-생식기, 이러고 개굴개굴 염불 외웠던 것밖에 기억 안 나. 그런데 구항남장생 이런 거 몰라도 사는 데 아무 지장 없지. 우울하면 치맥이고, 슬프면 노래방이야.”
《치맥이 뭐야?》
“그러게. 치맥이 뭘까. 그게 어떤 맛이었는지 이젠 생각도 안 난다.”

내가 열고 나온 길을 따라 제법 되는 숫자의 주시들이 비틀비틀 걸어 나왔다.
다들 썩은 내를 심하게 풍겼고 눈은 동공이 없이 흰자만 보였다.
농사를 짓던 사람들일까, 아님 가게에서 장사를 하던 사람들일까.
입고 있는 옷의 옷감이 좋은 것으로 보아 생전에 그래도 나름대로 한 가닥 했던 사람들이었을 거다. 어떤 사연인지는 모르나 시변한 이후부터 오랫동안 지하 감옥에 갇혀 있었던 것 같다.
놀랍게도 그중에는 여인도 있었고, 나이 많은 노인도 섞여 있었다. 얼굴이 썩어버린 탓에 전부 형제자매처럼 보였는데 어쩌면 생전에도 한 가족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사람은 엄마, 이 사람은 아빠, 그리고 저기서 구멍 난 머리통을 맛있게 먹고 있는 건 삼촌...
아비규환이었다. 검댕 벌레들까지 합세해서 서로 먹고 먹히고 난리였다. 쩝쩝 소리가 요란했다.

이제 그만 꿈에서 깨고 싶다. 머리를 주먹으로 툭툭 때렸다.
왜 깨질 않는 거지. 게다가 눈은 왜 이렇게 시리고 쑤시는 걸까.
머리를 들자 물속에 잠수한 채 올려다 본 햇님처럼 일렁이며 반짝이는 밝은 빛이 보였다.
어쩐지 그게 꼭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느껴져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Posted by 미야

2021/12/10 17:09 2021/12/10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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