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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유, 제기랄. 눈 딱 감고 왔던 길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우리가 보고 있는 건 5층 높이의 건물이었다. 특정 양식을 따른 것이 아니고 전반적으로 팔각형으로 각이 진 길죽한 생김새의 목조 건물이었다. 도둑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해서인지 3층 높이까지는 환기를 위한 용도로의 작은 덧창만 나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4층과 5층에는 사람 몸이 그대로 빠져나올 수 있는 큼직한 통유리창이 달렸는데 아래에 달린 창은 작고 위에 붙은 창의 크기는 매우 커서 그 탓에 착시효과를 일으켜 건물 자체가 시각적으로 매우 불안정하게 보였다. 뭐랄까, 지나치게 작은 신발을 신은 덩치 큰 사람처럼 보였다. 본인은 편하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보는 입장에선 아장아장 걷다 못해 쓰러질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손바닥을 눈가로 가져가 꼭대기의 모양을 관찰하던 린청은 건축가의 무지를 탓했다.
『어차피 밧줄을 걸어 4층으로 침입하면 그만이잖아.』
그렇기는 하다만, 그런 수고를 일부러 하게끔 만들었다는 점에서「보물창고」어쩌고의 단어가 자꾸만 귓가를 맴돌았다. 게다가 사람이 벽을 타고 오르면 다른 사람들 눈에 쉽게 띄게 되는 법이다. 은밀히, 남들 모르게, 눈에 띄지 않도록 - 이라는 절도 수작의 기본 규칙이 깨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대해 뭐 들은 건 없어? 하수들이나, 주변에서 떠든 얘기가 없느냐고.』
열쇠를 두 손으로 쥐고 있던 송주는 필사적이다 싶을 정도로 고개를 흔들어댔다.
그러더니 모른다, 혹은 안다, 답을 하는 대신 영 신통치 않게 말했다.
『아마도... 아닐 거야.』
밑도 끝도 없이 뭐가 아니라는 건가.
입술이 달짝달짝 움직이는 걸 봐선 뭔가를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머릿속에 떠오른 이야기를 괘념치 않고 입 밖으로 꺼내면 재수가 단단히 없을 거라 믿는 눈치다. 절박한 눈빛이 우리에게로 쏟아졌다. 하지만 그렇게 입을 조가비처럼 닫고 있어선 그렇다, 아니다, 어느쪽으로도 맞장구를 쳐줄 수가 없었다.
소년은 내부의 불온한 공기를 미리 읽으려는 듯 손을 내밀어 자물쇠 부분을 더듬었다. 왼손에 든 열쇠를 열쇠구멍에 꽂을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보다는 오른손에 쥔 북어포에 더 신경을 썼다.
『있잖아... 열쇠가 녹슬어 움직이지 않았다고 거짓말 하자.』
『숙희 님이 한 말을 기억 못하는구나, 송주. 우리가 제대로 청소를 했는지 나중에 자기가 직접 와보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잖아. 그러면 자물쇠가 움직이지 않았다는 그런 거짓말, 그 자리에서 금방 들통 날 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거라면 일찍 들어가는 편이 나아. 이런 말도 있잖아. 매도 먼저 맞는게 낫다.』
『시끄러, 변방인. 내가 아는 상식은「매는 가급적 안 맞는 편이 좋다」이다.』

드디어 열쇠를 꽂긴 했는데 그게 왼손이었다. 덜걱덜걱 흔들었지만 이래선 가위를 왼손에 쥐고 천을 자르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소리만 요란했지 일정 부분에 이르면 뭔가에 걸린 것처럼 둔탁한 소음을 냈다. 그런데도 송주는 손목에 힘을 주고 억지로 비틀려고만 했다. 보다 못해 내가 나서 열쇠를 오른쪽으로 회전시켰다. 뻑뻑한 느낌이었지만 반회전 하자 찰칵, 소리가 제대로 났다.
『아직 열지 마! 준비 좀 하고.』
네, 네. 영험하신 북어포를 챙기셔야죠. 알다마다요.
손잡이를 잡고 하나부터 열까지 숫자를 천천히 세었다. 그리고 문고리를 힘을 주어 잡아당겼는데...
투웅
격렬하게 부딪치는 감각에 소스라쳤다. 생뚱맞게 밖에서 미는 문이었다.

『창문이 좁아서 그런가. 안이 많이 어둡군.』
『물통을 여기에 놓아서 문이 도로 닫기지 않도록 하자.』
『아직 내부로 들어가지 마. 눈을 감고 있다가 시야가 어둠에 익숙해진 뒤에 들어가.』
아이들이 이것저것을 말하는 동안 나는 코를 킁킁거려 태어나기 이전부터 세포에 각인된 익숙한 냄새를 맡았다. 오래되어 낡은 것들의 냄새... 곰팡이... 그리고 좀약의 냄새... 환의로 몸이 떨리려 했다. 신룡님, 감사합니다. 이 안쪽에는 책들이 잔뜩 쌓여 있는 것이 분명했다. 책이다. 다른 것들도 아닌, 책들이다! 그것도 책장 하나를 채운 분량이 아니라 엄청나게 많았다!

신 난다, 외쳤던 것 같다. 아니면 끝내준다, 그렇게 말한 것도 같다.
서둘지 말라 만류하는 린청을 나도 모르게 뿌리치고 그 안으로 뛰어들어 냄새의 근원지를 찾아 정신없이 뛰기 시작했다. 책! 분명히 이것은 책! 발을 구르자 발치에서 무수히 많은 먼지가 피어올랐다. 그래도 상관하지 않고 벽면 가장자리부터 시작해 내부를 한 바퀴 죽 훑었다. 어디냐, 분명 가까운 곳에 서가가! 회색으로 덩어리진 거미줄을 양손으로 치우며 보물을 찾아 진격했다.
『야! 이 미친놈아! 저게 갑자기 왜 저러는 거야?!』
분류되지 않은 잡동사니가 좀 보였지만 내 흥미를 잡아끌만한 종류는 아니다. 나는 옷에 옮겨 붙은 거미줄을 털어낼 상각도 하지 못한 채 오래되어 케케묵은 책의 향기를 음미했다. 어디지? 위쪽인가?

송주의 욕설은 한 귀로 흘린 채 종종걸음으로 정 중앙으로 난 계단으로 향했다. 이때 나는 이미 눈에 보이는게 없는 상태였다. 한 걸음 내딛자 끼익 울리는 소음이 장난이 아니었지만 썩지는 않았으니 괜찮다고 여겼다. 어린아이의 몸무게조차 견디지 못하는 건 아니겠지 - 염려는 일찌감치 접고 신이 나서 한꺼번에 세 계단을 연거푸 밟아 올라갔다. 끼익, 끼익, 끼익, 체중을 실을 적마다 소름끼치는 음색이 귀를 찢었다.
『야, 인마. 사람 말이 말 같지 않아? 기다리라고 했잖아!』
송주는 내가 귀신에게 홀렸다고 믿은 것 같다. 득달같이 목덜미를 움켜잡더니 냄새 지독한 북어포로 내 머리를 찰싹 후려갈겼다.
『아니면 보물을 강탈할 생각에 정신이 나갔냐?! 엉?!』
그리고는 잔뜩 굳은 얼굴로 나를 다시 1층 바닥으로 내려서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뜻 모를 소리를 작게 중얼거렸다.
『홀렸다면 눈을 감고, 아니라면 입을 다물어라.』
잘은 몰라도 여기선 입을 다무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건은 함부로 만지지 마.』
언제부터 대장이었다고 송주는 우리들에게 명령했다.
『혹시라도 안 좋은게 닿을 수 있을 수 있으니까 주의해서 바닥 먼지만 쓸... 야~~!』
그래봤자 린청과 나는 다른 나라 사람이라서 이사실의 백성이 내리는 지시에는 따르지 않아도 되었다. 선반에서 굴러 떨어진 상자에서 요괴의 말린 눈알이 튀어나왔다는 괴담은 까마득히 잊어버린 린청이 눈앞에 놓인 장식 상자를 벌컥 열었다. 놀란 송주가 기함했지만... 내눈에도 그건 그렇게 위험한 종류가 아니었다.
『편지함인데? 이거.』
『어디 보자... 오늘은 눈을 뜨니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습니다. 당신께서 여전히 옆에 누우신 것 같아 옆자리를 더듬었지만 새벽 이슬비를 맞은 듯 싸늘하였습니다. 밤새 마신 술이 깨지 않은 오전, 두통에 괴로워하며 여전히 나는 내 곁에서 멀리 도망친 그대를 생각하였습니다. 이 지겨운 감각은 분명 취기 탓이 아니겠지요. 하여 그대는 나를 항상 괴롭게 만듭니다. 그대가 밉습니다, 그대를 증오합니다. 왜 이런 나를 불쌍하게 여기지 않는 건가요. 왜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 건가요... 뭐야, 이거. 연애편지?』
「연애편지」라는 단어에 반응, 송주의 고개가 타조의 머리처럼 불쑥 튀어나왔다. 아직 나이는 어려도 그런 쪽으로 관심이 아주 없는 건 아닌지라 호기심이 생긴 것이다. 물론 귀신이 두려운 탓에 직접 만지려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꺼리는 건 아니라서 기꺼이 코를 박아가며 글자를 읽으려 했다.
『어디보자... 식욕도 잃었습니다. 만사가 귀찮아졌습니다. 나는 이대로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자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신은 이렇게 나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는데, 나는 말라가고 있는데, 먼 이국에서 상냥하고 착한 아내를 맞이하여 행복한 미래를 맞이할 당신이 원망스럽습니다... 내용이 연애편지 치고는 영 산뜻하진 않네.』
송주는 내 의견을 구하듯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하지만 나는 빳빳하게 굳어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저 연애편지의 뒷내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받아봤던 입장에서 이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증오스럽고도 사랑스러운 이여, 미움 받아 마땅한 자여.
그대는 내 영혼을 말려 죽이고 있어.
그러니 나 또한 그대를 죽이려 드는 것이 공정하지 않겠는가.
나의 벗, 그리고 나의 안식처.
그대의 이름을... 시오재. 조용히 입술에 담아 감히 애원하노니
이 번뇌의 화염을 그대에게 고스란히 보여줄테니
네가 그렇게나 좋아하던 책들에게 둘러싸여 타 죽어버리렴.

외마디 비명이 터지려 했다.
더 읽어선 안 된다. 계속 엿봐서는 안 된다.
나는 린청의 손가락이 자칫 끼일 뻔했다는 걸 알면서도 호되게 편지함의 뚜껑을 닫았다.

Posted by 미야

2015/06/14 21:08 2015/06/14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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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급자족용 습작입니다. ※


린청과 송주 두 사람은 숙사감대부로부터 열쇠를 받으면서 귀신이 나온다던 보물창고의 위치에 대해서도 대략적인 설명을 들었던 것 같다. 도중에 길을 못 찾고 헤매는 일 없이 큰 못이 있는 현선당 앞 갈림길에서 망설임 없이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샛길을 연상시키는 좁은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
큰 나무들이 우거져 그늘이 심하게 진 탓에 오전 무렵이었음에도 어둡게 느껴졌다. 게으름을 피웠을 리 없는데 정원사들이 나무 가지치기를 전혀 하지 않아 인공으로 가꾼 것들이 아니라 숲속에서 제멋대로 자라났다는 거친 인상을 풍겼다. 그런데도 주변으로 새가 없다.
개운치 않은 섬뜩함에 쥐고 있던 걸레를 좌우로 비틀었다.
본인은 아마 깨닫지 못했을 테지만 옆에서 송주도 가래가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탁한 기침을 했다.
『바람이 시원해서 좋군.』
린청은 그런 쪽으로는 둔한 눈치다.

편돌로 포장된 언덕길은 그 기울기가 완만하여 고되게 느껴지거나 땀이 흐르는 일은 없었다. 다만...
『오호라, 올해의 공양물인가.』
상급생임이 분명한 자가 옆을 스쳐 지나가며 우리더러 들으라는 식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겁에 질려 눈알이 동그랗게 떠진 송주가「지금 무어라 하시었소?!」외치며 겁도 없이 상급생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래봤자 보라색 비단옷을 입은 사내는 우리를 완전 투명 인간 취급하며 최고급 완선 부채를 반쯤 펼쳐 느리게 부채질을 시작했다. 그 동작이 안부 인사를 올렸을 적에 내 아버지가 하던 행동과 판박이처럼 똑같았던지라 나는 멈추지 말고 계속 가자는 뜻으로 송주의 등을 가볍게 밀었다.
산책을 나온 것처럼 보이는 사내는 무심한 듯 시선을 위로 올려 현선당 앞 연못의 수면을 주시했다.
송주는 미련이 남은 눈치이나 저 상급생 남자는 우리가 말을 걸거나 옷자락을 잡고 늘어져도 결코 아는 체하지 않을 것이다.

『들었어?! 너희들도 들었냐고. 분명 공양물이라고 말했어!』
『겁주려고 장난을 친 거겠지.』
『하지만 아무리 봐도 장난치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고!』
손바닥으로 왜 자기 머리를 일부러 반복하여 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저래도 안 아픈가?
어쨌거나 흥분상태인 건 확실한 것 같아 나는 슬그머니 린청의 뒤편으로 자리를 옮겼다. 소년은 그런 나를 흘끔 쳐다보곤「이거 참...」혼잣말을 중얼거렸는데 일종의 방패 취급을 당했음에도 그리 기분 나뿐 눈치가 아니었다. 정확하게는 내가 매미처럼 등가죽에 달라붙었어도 크게 신경 안 썼다.

『것보다 이런 곳에서도 귀신이 나오나? 다른 곳도 아니고 신룡이 사는 곳이라며.』
『모기도 나오는데, 뭐. 귀신이 대수겠어?』
『아... 그런가. 안즈 네 말을 듣고 보니 이해가 간다. 일주일 전엔 나, 바퀴벌레도 잡았다?』
『거 봐. 나온다니까.』
우리 대화를 듣고 있던 송주는 자기 머리카락을 비참한 모습으로 쥐어뜯었다.
『그런 식으로 납득하지 말란 말이야, 너희들~!!』
어쨌든 결론은 이런 것이다. 나오는 곳에서는 나온다.
이사실 황궁에서 가장 유명한 귀신은 폐병을 앓아 죽은 악사 누박기로 이 자는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채 일곱 줄 현금을 연주한다. 이때 눈이 마주치면 자신의 연주에 대한 감상을 요구하며 상당히 고압적인 자세를 취한다. 좋은 연주 실력이다, 혹은 음색이 별로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이 일단 답을 해주면 그럼 이 곡은 어떻소이까, 나대며 새벽이 다 되도록 연주를 쉬지 않는다. 현금 소리가 거슬리기도 하거니와 천장에 매달린 귀신이 언제 바닥으로 내려올지 몰라 겁이 나 잠 한숨 잘 수 없어 숙직하는 관료들이 제일 싫어했다.
이 누박기가 신룡을 무서워했던가. 겁을 상실하여 황제의 침실에도 떠억 나타나기까지 했는데?
오죽하면 열 받은 친구가 제발 좀 닥치라며 천장을 향해 엄청난 무게의 침구장을 통째로 집어던진 일도 있다. 지붕이 들썩거릴 정도의 대소동이었다. 녀석은 서대륙 황제라는 지위에 올라 있었음에도 인류가 이미 귀마개라 부르는 좋은 물건을 발명했다는 걸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누박기? 못 들어봤는데.』
그래? 그렇담 30년 가까이 세월이 흘러 운 좋게 성불한 건지도.
『현금을 연주하는 귀신? 그것도 황제 폐하의 침실에도 나타나는?』
송주가 의심을 품고 뒤집어진 여덟팔자 눈썹을 하자 나는 또다시 애꿎은 걸레를 비틀어 쥐어짰다.
이건 재미삼아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내 눈으로 직접 보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친구가 침구장을 집어던져 천장에 구멍을 냈을 적에 그 옆에 나도 같이 있었다는 말은 입이 찢어져도 할 수 없다. 입 밖에 내봤자 아무도 믿어주지 않겠지만 그걸 떠나 내 입장에선 이게 또 엄청 부끄러운 얘기다.
『그런 이야기를 누구에게 들었어?』
『어렸을 적에 유모에게서.』
눈 딱 감고 거짓말하자 송주의 힘껏 당겨진 눈썹이 스르륵 제자리로 돌아갔다.
『에이, 그건 가짜야. 우리 유모도 곧잘 무서운 이야기를 공상하여 멋대로 꾸며내곤 했지. 난 또 뭐라고... 정말인가 싶어 깜짝 놀랐네.』
소년은 빗자루를 가슴에 꼬옥 끌어안은 채 다시 언덕 꼭대기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쩐지 그 걷는 속도가 방금 전과 비교해서 절반밖에는 안 되는 것 같다. 그저 기분 탓일까.

『송주, 넌 귀신이 무서워?』
린청의 질문에 소년은 수상한 약 냄새가 풍기는 조청을 실수로 목구멍 안쪽으로 삼킨 사람처럼 굴었다. 삼키기는 싫고, 뱉을 수도 없고. 당연히 무섭다. 안 무서운게 비정상이다. 하지만 사나이 자존심에 - 그것도 콩나물보다 더 싸구려라고 생각하는 두 명의 외국인 앞에서 귀신을 보게 될까봐 겁이 난다고 인정하기는 죽기만큼 싫은지라 송주는 고개를 옆으로 돌린 채 나이든 어른처럼 허허 웃었다.
『절대 그럴 리 없지.』
말은 자신 있게 했으면서도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면 호랑이 냄새를 맡은 산토끼처럼 미세하게 몸을 떨어댔다.
『대낮이야.』
『안 무섭다니까!』
『정 그렇게 무서우면 부적이라고 가지고 올 것이지.』
린청의 타박에 송주는 뜻밖의 사실을 고백했다.
『가져왔어.』
『뭐?』
『챙겨서 나왔다고... 부적.』
그러면서 땅굴이라도 파서 부끄러운 몸을 숨기고 싶어 하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나는 진작부터 눈치를 채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의 몸에서 은밀히 비린내가 풍겼기 때문이었다.
『북어포를 가져왔구나?』
눈에 띄게 당황해하는 송주는 그대로 내버려둔 채 나는 린청을 위해 간단히 설명했다.
『귀신이 나타났을 적에 오른손에 쥔 북어포를 내보이면 귀신이 사람 대신 그걸 가져간다는 속설이 있어. 이때 반드시 오른손으로 내밀어야 하고, 나중에 그 손은 소금물로 씻어야 하지.』
『말도 안 돼. 이사실 귀신들은 생선을 그렇게도 좋아한다는 거냐?』
『말린 북어의 비린 냄새가 피비린내를 연상시켜서 귀신을 혹하게 만든다고 하더군.』
『그것도 유모에게서 들은 얘기냐? 그거 진짜야?』
『나도 모르지. 일단 내 고향인 빈사국에는 바다가 없어. 그래서 북어포는 매우 귀하다고.』
린청은 고개를 길게 빼고 송주에게 다시 물었다.
『안즈의 말이 사실이야?』
송주는 묵비권을 행사하며 우리들을 빠르게 지나쳤다. 납으로 만든 무거운 신발을 신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걸음하던 방금 전과는 완전히 상반된 모습이어서 나는 배를 구부려 헛기침을 하는 척하며 슬그머니 웃고 말았다.

Posted by 미야

2015/06/13 14:25 2015/06/13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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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로 돌아오자마자 입고 있던 더러운 옷을 모두 벗어 던졌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 되자 오히려 홀가분한 기분이 들어 나는 창피함도 잊고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술에 취한 듯 금방 현기증이 일었어도 두 팔을 활짝 벌린 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어디에도 속박당하지 않은 자유를 만끽했다.
머리를 씻기 위해 찬물을 뒤집어썼을 적엔 격한 욕지기가 터져 나왔지만... 굴하지 않고 두피를 문질러 닦았다. 더운물이 가득 찬 욕조 생각이 간절했어도 숙사감대부의 엄중한 명령으로 식사를 가져온 하수에게 개인적인 목욕물까지 부탁하는 건 사실상 무리였다. 가뜩이나 싫은 표정이었는데 거기다 눈치도 없게 목욕물 이야기를 꺼냈다간 실수를 가장하고 들고 있던 쟁반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쳤을 거다. 이럴 적엔 눈치껏 구는게 좋다. 다행히 지금은 한 겨울도 아니고 해서 나는 미리 나무통에 우물물을 길어두었다.
『차가워!』
괜찮다. 사람은 찬물로 머리를 감는 것 정도로는 죽지 않...... 장담은 못 하겠다.

몸이 둘로 쪼개지는 감각을 참아가며 이를 악물고 물을 한 바가지 더 부었다. 괜한 호기였다. 네 번째 물바가지를 붓자 신체가 격렬하게 거부반응을 일으켰다. 그제야 나는 정치범 수용소에서 간수들이 죄수의 몸에 얼음장 같은 물을 끼얹는 건 순전히 고문을 하기 위해서라는 걸 떠올렸다.
『어우, 더 이상은 안 되겠다.』 
머리카락을 타고 물방울이 흘러내리는 동안 나는 제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여러 번 심호흡을 했다. 아무래도 얻어맞은 피부 아래서부터 올라오는 화기와 방금 전의 냉기가 격렬하게 부딪쳐 일종의 병목 현상을 일으키는 듯했다. 우박 섞인 폭풍우가 살가죽 아래에서 소용돌이치며 뼈와 근육의 틈새를 망가뜨리며 천방지축으로 돌아다녔다. 억지로 허리를 펴고 일어나 속의를 걸치려고 하자 살이 조각나는 통증이 등가죽을 타고 발뒤축까지 흘러내렸다. 끈 매듭을 묶으려는 손은 계속 떨렸다.

그 상태에서 침상에 가 눕는 건 많은 노력을 필요로 했다. 어떻게 무릎 하나를 올리긴 했지만 몸을 완전히 침상으로 이동시키고 바닥으로부터 발을 떼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곧 종아리가 당기며 쥐가 나려 했다. 나도 모르게 아이고 아이고 곡소리가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갖은 노력 끝에 마침내 두 다리를 뻗고 눕자 이번에는 꼬리뼈가 찌르르 아파왔다.

『거울을 보고 싶구나.』
똑바로 누운 자세에서 팔을 위로 뻗어보았다. 바짝 야윈 아이의 손은 어쩐지 낯설어 내 맘대로 움직이는 모습이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주먹을 폈다 접었다하며 작은 손톱의 모양새와 손바닥의 주름을 잘 기억해뒀다. 그래도 피곤함에 눈을 감자 어린아이의 손은 어느새 핏줄이 돋아난 성인 남자의 것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먹물이 묻었고, 필기구를 하도 오래 쥐어 엄지와 중지에 굳은살이 배었다. 관절은 툭툭 튀어나왔고 손끝은 뭉툭했다... 아니다, 이것은 안즈의 손이 아니다. 힘겹게 다시 눈을 뜨자 세로줄 모양의 상처가 생긴 고사리 손이 보였다.
『맙소사. 이러다 내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잊어먹겠어.』
쓰게 웃으며 뺨을 만져봤다. 열이 올라오는지 피부가 뜨거웠는데 신기하게도 목 아래쪽은 서늘하고 차가워 나를 헷갈리게 만들었다. 다시 더듬어 올라와 이마를 만지자 이쪽은 이미 열탕지옥, 자고 일어나면 연못에서 주워온 나무토막 신세가 될 거라는 숙사감대부의 말은 반드시 실현될 예언이었나 보다.

저녁식사로 나온 닭죽과 호박나물, 우엉조림과 바지락 튀심도 식욕을 잃어 반 이상을 남긴 상태.
그대로 까무룩 기절하려는데 꿈인지 생시인지 숙희가 말똥을 양손에 들고 나타나 잔소리를 퍼부어댔다.
「휩쓸리지 말라고 내 경고했소.」
어째서인지 나는 커다란 용으로 변해 빛도 없는 흑암의 공중을 날고 있었다.
그곳은 풍압이 엄청나 날개를 똑바로 펼 수도 없었다.
기를 쓰고 막을 펼치자 비늘이 떨어지고 피부가 찢겨져 뼈가 밖으로 드러나려 했다.
「내 충고를 귀담아 들으려 하지도 않더니만.」
고통에 몸부림치자 곱게 갈린 날개가 찌익 소리를 내며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우와~, 엄청난 얼굴.』
사흘 뒤 창고 문을 두드린 린청은 나를 보자마자 소매를 들어 눈가를 가렸다.
햇빛을 가리려는게 아니라 몹쓸 전염병에 걸려죽은 사람을 보았을 적에나 하는 행동이라서 나는 울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멀쩡하게 살아있는 사람을 세워두고 부정한 시체 취급을 하다니, 무례도 이런 무례가 없다. 문지방에 팔을 기대고 서서 죽일 기세로 쏘아보자 소년은 가만히 소매를 도로 내렸다.
『몸살이 대단했던 모양이군, 안즈. 뺨이 푹 꺼졌는데?』
『신경 꺼주세요.』
『멍은 보라색이고. 아니다, 검정색에 더 가까우려나. 한 번 만져 봐도 돼?』
『거절하겠습니다. 것보다 송주, 넌 거기서 뭐 하냐?』
놀랍게도 린청의 등 뒤로 떨떠름한 낯빛을 한 송주가 보였다. 우리와 일행이 아니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 소년은 최대한 거리를 벌리고 서서 회색의 구름이 드리워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래봤자 싫든 좋든 이미 굴비 두름이었다. 콧망울을 긁는다고 한 벌이 된 걸 취소할 수는 없는 노릇, 오늘은 우리 세 사람이 나란히 벌을 받기로 한 날이다.

『어디 열쇠야?』
두 사람은 수업에도 참석을 못 하고 대신 숙희로부터 열쇠 하나를 받아왔다. 먼지를 치우고 걸레질을 하기로 되어있는 장소의 열쇠다.
겉옷을 주워 입으며 곁눈질로 보니 척 보기에도 크기가 매우 크고 낡아빠진 열쇠다. 그리고 제법 묵직했다. 일반적으로 열쇠의 쇠막대기에서 튀어나온 부분은 요라고 하고 깎여서 들어간 부분을 음이라고 한다. 이건 요가 셋이고 음이 다섯이나 된다. 그리고 요의 생김새가 나뭇가지처럼 뻗어나와 ㄱ자형이다. 이 정도면 복제하기가 매우 까다로워서 혹시라도 다리를 건너다 물에 빠뜨리기라도 하는 날엔 강바닥이 드러나기를 기대하며 가뭄을 정성으로 기원해야 할 것이다.
『그 정도로 특이한 건가. 나는 잘 모르겠는데.』
버릇인지 콧망울을 만지며 송주가 말했다.
『그야 넌 열쇠 종류를 잘 모르잖아.』
『그러는 넌 나보다 더 잘 안다고 자신하는 거냐, 변방인!』
『네놈과 마찬가지로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우리 집 대문 열쇠와 비슷하게 생겼어. 그런데 숙희 님은 이게 어디 열쇠라고 하였지?』
『어. 그게... 내게 말하길, 귀신 나오는 보물창고의 열쇠라고 농담하던데.』

우리 셋은 나란히 팔짱을 끼고 고민에 빠졌다.
앞서 당해본지라 숙희가 농담을 하는 건지 아닌지 일단 확신이 없다.
제일 먼저 귀신이 나온다는 말이 신경 쓰인다. 진짜일까. 뭐, 한 걸음 양보하여 그깟 귀신, 복숭아 가지를 흔들어 내쫓는다고 치자. 그런데 진짜로 보물창고라면...
『걸레질하다 실수로 골동품 화병을 깨뜨리기라도 하는 날엔.』
침 삼키는 꿀꺽 소리가 천둥처럼 들려왔다.
송주가 느끼는 그 심정을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다. 이와 관련하여 전설처럼 내려오는 괴담도 있다. 어린애 울음을 그치게 하는 종류의 옛날 얘기인데 줄거리는 이러하다. 보물창고를 청소하던 몸종이 털이개를 신경질적으로 휘두르다 그만 선반 꼭대기에 올라간 화려하게 조각된 상자를 잘못 건드렸다. 바닥을 구른 상자는 걸쇠가 풀려 뚜껑이 열리고 말았는데 동그랗고 작은 것이 그 속에서 떨어져 나왔다. 몸종은 그게 귀한 바다진주일 거라 생각하고 얼른 집어 올렸다. 그런데... 가만 보니 색도 흐리고 광택이 전혀 없는 것이 아무리 봐도 진주가 아니었다.
그걸 이리저리 굴리며 그 정체를 궁금해 하고 있노라니 뒤에서 스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내 눈알이야. 그만하고 돌려줘.」
우리 세 명은 다시 팔짱을 낀 자세로 침묵했다.
그 이야기의 결말은 몸종의 두 눈이 모두 뽑혀 사라지는 것으로 끝난다.

『그 괴담이 주는 교훈은 뭐냐, 안즈.』
『먼지털이개를 사용할 적엔 신중하게.』
『그게 아니라 땅에 떨어진 건 함부로 줍지 말라는 거 아니야?』
나와 린청이 한가롭게 영양가 없는 잡담을 나누고 있자 송주가 모두를 대표하여 자기 바지주머니 속에 열쇠를 넣었다.
『속 터져 죽겠네. 지금 한가롭게 잡담이나 떠들고 있을 때냐?! 이 무식한 변방인들아!』
물론 그건 아니다. 하여 나는 얼른 빗자루와 걸레를 챙겨 밖으로 나왔다.

Posted by 미야

2015/06/11 19:41 2015/06/11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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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15/06/12 01:00 # M/D Reply Perma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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