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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마리의 늙은 암말은 줄을 걸어 잡아끌자 시키는 대로 얌전히 끌려나왔다.
행동이 워낙 느려 꾸벅꾸벅 조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기둥에 매듭을 묶는 동안 코를 벌름거려 내 냄새를 맡더니 그 즉시 흥미를 잃은 눈치다. 마차를 끌기 위해 당장 밖으로 나가야 하는게 아니라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투다. 심지어 녀석들은 꼬리를 좌우로 흔들어 파리를 쫓는 일조차 귀찮아했는데 어쩌면 이른 더위 탓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녀석들의 엉덩이를 툭툭 치는 것으로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대신했다.
반대로 거세한 숫말은 아까부터 이리저리 움직이며 내 눈치를 살피느라 바빴다. 소금에 절인 육회, 소금에 절인 말고기 육회 - 부릅뜬 눈이 긴장감을 드러내며 나의 접근 자체를 기피했다. 청소 솔을 들어 보이며 줄을 잡으려 하자 뻣뻣하게 굳어 가뜩이나 긴 주둥이를 더욱 길게 내밀었다. 가만 보니 땀도 흘리는 눈치다.
『그러니까 얌전히 굴란 말이야, 인석아.』
숫말은 소심하게 푸르르 소리를 내며 고개를 젖혔다.
덕분에 얼굴에 침이 튀었지만, 뭐 괜찮다. 나는 그걸「보복행위」로 여기지 않기로 했다.

마사 청소는 그야말로 두뇌가 쓸모없는 단순 노동이다. 말에게 먹이를 주거나 데리고 나가 운동을 시키라고 주문을 받았더라면 많이 곤란했을 것이다. 하지만 청소라는 건 말 그대로 배설물이 엉겨 붙은 지저분한 곳을 깨끗이 치우고, 물을 뿌려 바닥 솔질을 한 뒤에, 새 짚을 가져와 깔면 끝나는 일이다.
마분 - 그러니까 말의 똥은 버리지 않고 한 곳에 모아두는데 예로부터 화초를 키우는데 이만한 비료가 없다 하였다. 정원을 가꾸는 이들이 앞을 다퉈 가져가겠다 난리를 피우기에 똥도 그만큼 대접을 받았다. 다만 모아두는 장소가 마사에서 제법 떨어져 있어 외발수레에 퍼 담아 그곳으로 옮겨야 한다는 애로점이 있다.
무거운 쇠스랑을 이리저리 굴려 똥을 한 곳으로 모으고 난 뒤, 나는 고민에 빠졌다. 외발수레는 이름 그대로 바퀴가 하나라서 조금만 실수하면 균형을 잃고 옆으로 자빠진다. 초보자가 다룰 도구가 결코 아니라는 말씀. 힘이 장사여도 요령이 없으면 온몸에 똥 폭탄을 뒤집어쓰게 된다.

『여어, 도토리. 말이 재채기 한다~』
똥 폭탄은 이 경우에도 뒤집어 쓸 수 있는데 사람이 기침을 하면서 불가항력적으로 방귀를 뀌는 걸 상상하면 된다. 유감스럽게도 말은 달리면서도 배변을 하는 동물이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초식동물의 항문이라는 건 참으로 절조가 없다.
귀로는 알아들었음에도 반 박자 느리게 반응한 탓에 허리 아래로 오물이 튀었다.
『에잇, 젠장. 야! 너 진짜로 이럴 거야?!』
무어라 야단하자 거세한 숫말이 푸르르 주둥이를 떨며 불만을 표현했다. 하긴, 이 모든 건 생리현상일 뿐으로 녀석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닐 것이다. 엉덩이를 이쪽으로 쭈욱 내밀고 있는 모습이「고의」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만들긴 했어도...
의심의 눈초리로 째려보자 말의 귀가 위아래 방향으로 팔랑팔랑 흔들렸다. 내가 보기엔 완전 딴청이다.

등 뒤에서 자손이 큭큭 숨 죽여 웃기 시작했다.
『말이 무슨 죄가 있냐. 경고까지 해줬는데 피하지 못한 쪽이 잘못이지. 안 그렇누?』
사람 아닌 짐승을 편들어준 자손은 한가로운 태도로 휴대용 곰방대를 품속에서 꺼내들었다.
설마, 여기서 담배를 피우려고? 허겁지겁 쇠스랑을 구석에 세워두고 - 그걸 들고 나섰다간 흉기를 들고 황족을 위협한 죄로 태장이 100대다 - 서둘러 만류했다.
『사방에 마른 짚더미가 있습니다. 여기선 화재 위험이 높으니 삼가주세요.』
『허어, 다른 인간도 아닌 이 내가 부주의하게 불을 낼까 싶으냐?』
자손의 한쪽 눈썹이 말도 안 되는 높이까지 올라갔다.
『설령 불이 나도 밉상인 네 녀석과 쓸데없는 말 몇 마리가 타죽기밖에 더 하겠어?』
참 징그럽게도 말을 하는 사람이다.
그래도 고집을 피워가며 곰방대에 불을 붙이는 대신 슬그머니 옆구리에 끼어 넣는 걸 보니 안심이다.
나는 표정을 누그러뜨리고 다시 말똥을 치우는 작업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외발수레를 쓰는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있잖아, 도토리야. 진짜로 말고기가 그렇게 맛이 괜찮아?』
『저도 얘기만 들어봤습니다.』
『노루 고기와 비슷하려나?』
『모르죠. 직접 먹어본 적이 없으니.』
『그런 주제에 소금에 절인 육회가 최고 어쩌고 떠들어댄 거냐? 쳇, 창리궁 마마에게 한 접시 보내볼까 했는데 관둬야겠군.』
창리궁? 어디를 가리키는 건지 모르겠다. 예전에는 그럼 이름의 장소가 없었다. 창리궁 마마라는 건 또 누구일까. 황제의 여러 비빈들 중 한 명일까? 슬그머니 발등으로 시선을 내리고 나도 모르게 투덜거렸다.
『관두고말고 처음부터 무리에요. 애초에 어느 말을 잡으려고요.』
『뭐가 걱정이야. 아무 말이나 내키는 대로 한 마리 골라서 목을 베면 되는데.』
『그럼 안 되죠. 엄연히 말 주인이 따로 있지 않습니까.』
『내 알 바 아니다. 어차피 이것들 전부가 결국 이사실의 소유물이다.』
『아니오, 이건 송주라는 자의 사유 재산입니다.』
순간 얼마 전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으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는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그게 뭐였더라, 가만히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데 곰방대가 불쑥 나타나 내 머리를 때렸다.

『아야!』
『이 버르장머리 없는 놈. 인석아, 너는 네 애비에게 뭘 배웠느냐. 이럴 적엔 손바닥을 비비며 당신 말씀이 진실로 맞사옵니다, 이러고 아부를 해야 할 것 아니야. 이곳에 있는 말 전부가 이사실의 재산입니다. 황제 폐하의 소유물이고, 황실의 물건입니다. 자손께서 원하시면 아무 말이나 그 목을 베셔도 좋습니다. 육회 만들어 잡수셔도 괜찮으니 대신 저에게 한 점 맛을 보게 해주십시오~ 이렇게 말하는게 정답이지. 너처럼 그딴 식으로 꼬박꼬박 말대꾸를 하는 놈이 있을 것 같으냐.』
『하지만...』
곰방대 공격이 재차 이루어졌다.
『아얏!』
『발랑 까진 것 같으면서도 의외의 면에서 순진한 녀석이군. 저 숫말을 죽여 그 엉덩이 살로 맛있게 요리를 해먹읍시다, 이렇게 날 설득해야지. 저 말은 널 때리고 마굿간 청소를 시긴 자의 소유물이잖아. 애기 도토리 너는 복수하고 싶은 마음도 없는 거냐?』
그런 사적인 걸 어떻게 꿰고 있느냐 따져 묻는 것도 잠시 잊었다.
나는 따끔거리는 정수리를 문지르며 그 무슨 당치 않은 말씀이세요, 이러고 소리를 질러댔다.
『당사자에게 복수를 하면 하는 거지, 말 엉덩이를 육회로 만드는게 무슨 복수가 됩니까!』
그렇게 외치자 속이 텅 빈 곰방대가 눈앞을 왔다갔다 움직이며 위협 아닌 위협을 가했다.
『아버지가 미우면 그 아들을 죽이고, 아들이 미우면 그 집의 개를 죽이는 거야. 그걸 모르느냐.』
『압니다! 모르긴 뭘 몰라요! 하지만 머리로 아는 것과 그걸 실제로 행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지요.』
『호오?』

나는 조금 화가 났던 것 같다. 어쩌면 흥분한 건지도 모른다.
똥을 외발수레에 하나 가득 퍽퍽 퍼 담고는 손잡이를 불끈 잡았다.
그리고 다섯 걸음도 채 떼지 않고 수레를 옆으로 멋지게 뒤집었다. 사방이 똥이었다.
『그럼 당사자에게 직접 복수할 거야?』
넘어져서 어떻하냐, 진작에 조심하지, 이런 얘기는 죄다 잘라먹고 자손이라는 자가 하는 말은 이거였다.
맵고 쓴 맛을 풍기면서 동시에 조청처럼 달콤하게.
덕분에 이가 썩으려 했다.
상체를 기울이더니 수레를 바로 세우려고 노력하는 나와 가만히 눈높이를 맞췄다.
『복수할 거지?』
그러고 미소를 짓는데 세상에, 도원에 산다는 날개옷 선녀가 강림한 것처럼 아름다웠다.

Posted by 미야

2015/06/05 10:27 2015/06/05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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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펌은 사절합니다. 자급자족 습작입니다. 일부 내용이 계속 수정되고 있습니다. ※


맞은 곳이 퉁퉁 부어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마음이 편했다. 앞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면 감히 이족보행을 하는 넝마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주변 시선이 부담스러워 견디지 못했을 거다.
다만 눈과 달리 귀는 제대로 열려진 상태였기에 숨을 훅 소리 나게 들이마시거나, 혀를 차거나, 숙덕거리는 기척 전부를 고스란히 느껴야만 했다.
「세상에, 핏자국이라도 지우고 나올 것이지.」
「와... 면신인가. 멋지게 얻어맞았군.」
「뉘집 아들이지? 응? 뭐라고. 변방인? 과연, 그랬군.」
그중에는 지나쳤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소수의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다수가 면신 관습을 두둔하면 두둔했지 내 처지가 가엾다며 동정심을 드러낸 자는 없었다는 점이다. 반대로 웃는 자는 있었다. 내 생각엔 재밌다 여길 요소가 눈꼽만치도 없는데 분명히 숨 죽여 낄낄거렸다.

모르겠다. 기분 탓은 아닌데. 어쩐지 기분이 나빠져 웃음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거기에는 사람이 없었다.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리자 길게 늘어진 나무 그림자만 보였다.
가만 생각해보니 현선당 돌담 아래에서 느낀 수상쩍은 기척과 매우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만... 설마, 그때부터 내 뒤를 계속해서 졸졸 따라왔다면 악몽이 따로 없게 된다.
「가뜩이나 힘들어 죽을 지경인데.」
넌더리를 내며 작은 조약돌을 주워 나무 그림자를 향해 던졌다.
하지만 팔에 힘이 없어서 그런지 내가 던진 돌은 제대로 날아가지도 못하고 절반쯤 이르러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그러자 웃는 소리가 아까보다 더 커졌다.
「그려, 맘대로 웃어라. 웃으면 복이 온다고 그러더라.」
드러내어 해코지를 하지는 않으니 당분간 내버려둬도 좋겠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며 오늘의 일터, 마굿간을 향해 다시 걷기 시작했다.

마굿간 앞에는 이미 선객이 있어 두 명의 아이가 훌쩍거리며 구석에 앉아 있었다. 일하는 하수들과 다르게 연두색과 분홍 같은 고운 빛깔로 염색을 한 비싼 옷을 입고 있기에 나처럼 면신을 당한 아이들인가 보다 추측하고 가볍게 목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어랍쇼, 내 얼굴을 보자마자 대낮에 몽둥이에 맞아 죽은 귀신이 나왔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왜 울어, 왜!』
『하지만 얼굴이 귀신 같은 걸.』
『그래, 멋지게 알록달록하지. 하지만 죽은 건 아니라고? 그러니 멋대로 산 사람을 귀신으로 만들지 말아줘.』
그렇게 부탁했건만 아이들은 울음을 그치기는커녕 반대로 더 통곡하기 시작했다.
아마 내 모습을 통해 자신들의 처지가 직접적으로 피부에 와 닿았던 것 같다. 손등으로 눈가를 훔치더니「이러려고 여기에 온게 아닌데」한탄했다. 집을 떠나온 처지가 서글프고, 구박받는 신세가 속상하고, 얻어맞는게 무서우니 눈물이 나올 법도 하다. 녀석은「어머니, 보고 싶어요.」라고도 했다. 소매가 수분으로 푹 젖어 밝은 연두색 옷감은 어느새 짙은 초록으로 바뀌었다.

『울지 마.』
내가 듣기에도 말하는 내 목소리는 쌀쌀맞았다.
『울면 체력이 떨어져.』
상냥하게 달래는 위로의 한 마디를 내심 기대했던 아이들은 사색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최선이었다. 조금만 참으면 괜찮아질 거라고 그리 말하면 무익한 사탕발림이 될 터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가만히 기다리면 저절로 해결된다고? 누군가 나서서 구원해줄 거라고? 도와줘? 누가. 황충이 소중한 벼를 먹어치우고 있는데 저절로 재앙이 사라지길 기다리겠다고? 실제로 하는 일도 없으면서 막연히 사당에 들어가 조상신에게 기도하는 부류는 딱 질색이다. 들판에 큰 불을 놓아 차라리 같이 죽자 이러는 것도 곤란하긴 하지만 - 낙망한 채 신세한탄이나 하고 있는 것보다는 불을 놓는 편이 낫다. 이런 식으로 주저앉아 우는 건 쓸데없다.

나는 아이들을 그대로 지나쳐 송주의 소유인 말이 어디에 있는지부터 찾았다.
『진짜로... 할 거야?』
눈물을 글썽대고 있던 아이가「더럽잖아」하소연했다.
『더러우니까 치우는 거지. 그게 청소잖아.』
『그래도!』
『하겠다고 했으면 해야지.』
싫다면 처음부터 하겠다는 말을 꺼내지 말았어야 한다.

명문가 소유임을 증빙하는 마사의 명패를 하나씩 살펴 어렵게 세 필마를 찾았다.
말들은 자기 주인을 닮아 인상이 고약했다. 털이 짙은 갈색이었던 놈은 앞다리로 바닥을 긁으며 두 귀를 뒤로 바짝 젖혔는데 가까이 가면 물어뜯겠다며 이빨로 딱딱 소리도 냈다. 성격이 그 지경인지라 바닥에 흘린 배설물도 일부러 밟아서 마구 짓이겨 놨다. 거세한 말 주제에 하는 짓이 지랄 맞았다.
『......』
어떻게 나오려나 가만히 눈을 마주치자 이번엔 흥분하여 머리를 홰홰 저었다.
저런 놈은 낯선 사람이 접근하면 십중팔구 뒷발차기를 한다. 그걸 모르고 무작정 마사 안으로 들어갔다간 벽으로 튕겨나가 뼈가 부러진다. 염소에게 차여도 몇 일은 끙끙거려야 하는데 하물며 상대는 몸집이 큰 숫말이다. 나처럼 작은 아이는 자칫하면 목숨도 위태롭다.
「청소 이전에 저 포악한 놈을 마사에서 끄집어 내는 일이 급선무겠군.」
다시 한 번 부운 눈을 억지로 치켜뜨고 말의 눈동자를 응시했다.
그리고 옆에선 듣지 못할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소곤거렸다.
『듣자하니 말고기는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지경으로 기가 막히다던데.』
바닥을 부산하게 긁어대던 앞다리의 움직임이 그 즉시 따악 멈췄다.
영악한 것.
나는 혀를 안쪽으로만 부드럽게 굴려 다시 한 번 말했다.
『특히 소금에 절인 육회가 별미라지?』
흰자위가 잔뜩 드러난 말의 눈이 이렇게 묻고 있었다.「거, 진심으로 하는 소리요?!」

『하하하, 크하, 으하하, 아이고 나 죽네~』
덧붙여 설명하자면 지금 내 뒤에서 배를 잡고 깔깔거리고 웃느라 숨 넘어가게 생긴 이는 예의 울보가 아니다. 그보다 나이가 곱절은 많고, 이름으로 부르기도 송구하여「자손」이라는 명칭으로 부르는 자다. 근접하기도 어려운 귀인이 왜 이런 누추한 곳을 혼자의 몸으로 어슬렁대는지 이해가 안 갔다. 것보다 이렇게나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나는 눈치를 전혀 못 챘다. 발자국 소리 같은 거, 하나도 안 났다.
『끝내준다. 완전 악랄한 녀석이야. 그게 말 앞에서 할 얘기냐. 소금에 절인 육회가 별미라니! 으하하하! 게다가 쫄았어! 말이 어린애 농담에 쫄았다고~!! 와하하!』
『자손...』
『아이고, 배야~!! 나 미친다, 미쳐.』
『그만 웃으세요.』
저 남자의 신분을 생각하자면 돌아서서 최소한 반절이라도 올려야 할 것이다. 하지만 기분이 단단히 잡친 나는 예절이고 나발이고 생략한 채 솔과 주걱 따위의 도구를 찾아 안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아.이.고. 배.야?』
나로부터 무시를 당했다고 차마 생각을 못한 자손은 목을 길게 빼고 그런 내 뒤를 졸졸 따라왔다.

Posted by 미야

2015/06/03 14:56 2015/06/03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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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들이 어디서 개수작질이야.」
혈압이 치솟아 머리가 어질어질해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일일이 맞대응하기도 피곤한 노릇이라 나는 잠시 생각한 끝에 귀가 먹어 아무 말도 못 들었다 거짓 행세를 하며 그들을 스쳐 지나가려 했다.
그러나 그들은 땅을 보고 걷는 나를 가로막았다. 손을 봐주겠다며 단단히 벼르고 있는 상황에서 회피하려는 내 의도 따윈 가볍게 묵살될 수밖에 없었다. 무리 중 이른 여드름이 난 소년이 우악스럽게 내 팔뚝을 잡더니 송주 앞으로 데려가 다시 세웠다. 좌우로 흔들어 뿌리치려 했지만 손아귀 힘이 제법 셌다. 버둥거리자 이번엔 아예 양팔을 잡혔다.
이런 자세일 때 배를 맞으면 내장이 끊어지는 것처럼 상당히 아픈 법이다.
그다지 도움이 될 것 같진 않았지만 나는 아랫배를 잔뜩 집어넣고 힘을 주었다.

『네가 지금 이일 저일 가리게 생겼어? 마굿간 청소라도 감지덕지 생각해야지. 게다가 넌 지금 이사실에서 공짜 밥을 먹고 있잖아. 감사하는 마음으로 뭐라도 일을 해야 할 거 아니야. 이 거렁뱅이야.』
그런데 이 인간은 미리 짐작했던 것과 달리 배를 때리지 않고 내 뺨을 후려쳤다.
맞을 거라 각오했던 부위가 아닌데다 아무래도 얻어맞은 곳이 얼굴이다 보니 충격이 훨씬 컸다. 순식간에 입안이 부어오르기 시작했는데 통증은 둘째고 머리를 맞았다는 치욕감이 대단했다.
노리고 일부러 그런 거라면 칭찬할 만하다. 도발이 뭔지 잘 안다는 의미니까.
『어쭈? 이 녀석 표정이 달라졌다.』
『노려보면 어쩔 거냐.』
『어이, 송주. 한 대 더 갈겨.』
성미 고약한 녀석은 친구의 부추김에 내 왼쪽 뺨마저 갈겼다.
고개가 획 돌아가면서 눈앞으로 별똥별이 반짝였다. 이번엔 입술이 찢어졌는지 피 맛이 느껴졌다.

『알겠어? 마굿간을 청소하는 거다.』
송주는 손가락을 세워 보이며 날 다그쳤다. 청소를 하지 않겠다고 하면 더 심한 폭행을 가할 기세다.
그래봤자 나는 눈앞에 들이밀어진 손가락을 씹어 먹겠다며 노려봤다. 목구멍 안쪽에서 폭우로 불어난 개천이 바위를 굴리는 으릉 소리도 났다.
『내가 왜 마굿간을 청소해야 하는데?』
『이 녀석은 기억력도 형편없군. 말했잖아. 이사실에서 공짜 밥을 먹여주면 일을 해야지.』
『이사실에서 공짜 밥을 먹여주는 댓가로 마굿간 청소라... 그렇다면 나더러 황제 폐하의 군마장에서 말을 돌보라는 얘기냐?』
송주는 그 무슨 귀신이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럴 법도 했다. 말은 상당히 비싼 동물이다. 그리고 황제의 군마는 으뜸 중의 으뜸이라 때로는 사람보다 융숭한 대접을 받는다. 나 같은 계집은 당연히 근처에도 갈 수 없고 군마장에는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육사가 배치되어 있다. 게다가 말을 돌보는 자의 계급은 쌀 창고지기보다 두 계단 더 위다. 당연히 녹봉도 많다.

『주제를 알아야지. 네가 돌볼 말은 군마장의 말이 아니고 우리 집에서 가져온 세 필마다.』
『어째서? 이해가 가지 않는다.』
따져 묻는 내 목소리는 앙칼졌다. 바다에서 큰물이 육지를 향해 밀려오고 있었다. 들판을 덮고, 야산을 덮는, 무겁고 어두운 물. 그것은 잠시 왔다 사라지는 종류가 아니었다.
『말이 되지 않잖아. 공짜로 먹이고 재워주시는 황제 폐하의 은덕을 입은 내가 그 감사의 마음으로 너희 집 말을 돌봐야 한다는 거냐? 그래선 아귀가 안 맞아.』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힌 듯하다. 송주가 어, 하고 콧잔등을 찌푸렸다.
『하, 하지만 넓게 보면 우리 집 말들도 결국은 황제 폐하의 소유물이니까... 이사실의 주인은 폐하이시다.』
『그럼 따져 묻자. 네 말들을 가져다 팔면 그 돈은 온전히 황제 폐하의 것이냐, 아님 네 것이냐.』
『어... 그건.』
이윽고 내 목소리는 아쟁이 내는 가장 높은 음역까지 올라갔다.
『이 고등어 회충 같은 놈! 왜 말을 더듬어. 결국 아니라는 거잖아. 잘 들어라, 그렇다면 네놈은 황제 폐하가 내려주신 은혜를 적손이 아닌 네놈과 네 집안에 갚으라고 감히 요구한 거잖아. 그것이야말로 용서받지 못할 모리배의 행위! 창피한 줄 알아야지!』

송주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당연히 부끄러운 것과는 거리가 먼 이유로 혈색이 바뀐 것이다.
『이, 이놈이!』
말싸움에서 이기지 못하면 다음으로 등장할 건 폭력이다.
뺨을 치는 것만으로는 분을 삭힐 수 없었던 그는 주먹을 쥐고 나의 가슴 부위를 쳤다. 뼈가 끊어질 것처럼 아파 몸을 웅크리자 이번엔 무릎이 같은 부위를 치고 올라왔다.
비명도 못 지르는 상황이라는 건 바로 이런 것이다. 아마 나는 꼴사납게 벌린 입으로 침도 뚝뚝 흘렸을 것이다. 진짜로 숨이 꼴딱꼴딱 넘어가려 했다. 흉부를 정통으로 맞으면 멎었던 심장도 도로 뛴다고 하니 당연히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찌르르 울리던 울림은 그 즉시 수천 배로 확산되어 내부 장기를 위아래로 뒤흔들었다. 덕분에 의식이 흐려져 사람 얼굴이 으깬 감자처럼 보였다.
『잡아 올려!』
명령이 떨어지자 양팔을 붙잡고 있던 소년이 발뒤축을 높게 세웠다. 덩달아 내 몸도 둥실 떠올랐다.
그야말로 표적으로 삼기에 안성맞춤, 잡아당겨져 상의가 말려 올라가 배꼽이 드러나려 했다.
『이게 입은 살아가지고!』
어렵사리 실눈을 뜨고 보니 녀석이 오른손을 말아 쥐고 복부를 향해 주먹을 날리려 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을 하기로 하고 그나마 자유스럽게 움직일 수 있는 다리를 뻗어 송주의 거시기를 있는 힘껏 걷어찼다.
『크어억!』
나도 남자였던 적이 있어 그 고통에 대해 잘 안다. 보나마나 시커먼 나비가 공중을 어른대었을 거다. 국부를 움켜쥔 소년은 솥단지를 철쑤세미로 긁어대는 기괴한 소리를 내더니 이내 한쪽 무릎을 꿇었다. 좋다 이거야. 나는 멈추지 않고 한 번 더 걷어찼다. 이번엔 거리가 다소 짧았다. 제기랄, 기함하며 또 한 번 발길질했다.
아쉽게도 세 번째 공격은 완전히 헛발질로 끝났다. 내 양팔을 붙잡고 있던 소년이 황급히 내 몸뚱이를 끌고 뒤로 물러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이야말로 아랫배에 힘을 줄 때라고 직감했다. 각오하는 것과 동시에 구경하고 섰던 이들이 저마다 욕을 퍼붓고 주먹을 휘둘러대기 시작했다. 곧 힘으로 밀쳐서 구르면서 넘어졌고, 코가 뜨뜻해졌다. 아무래도 코피가 터진 것 같았다.
『변방인 주제에 어디서 감히!』
그들은 나를 벌레를 잡듯 계속해서 밟아댔다.

『당장 오늘부터 마굿간 청소를 하도록 해! 아니면 죽을 줄 알아!』
흘러나온 피가 숨구멍을 막아 나는 어쩔 수 없이 헐떡거릴 수밖에 없었다.
『알앙어. 그망 때려. 마궁간 청소 항게. 하지망 옹짜로는 앙야!』
『지금 뭐라고?』
내가 하는 말을 정확히 알아들을 수 없었던 소년들은 저마다 손바닥을 귓가로 가져갔다.
『다시 말해봐.』
『청소는 항 거야. 다망 댕가 없잉 안 해.』
『청소는 하겠지만 대가 없이는 안 하겠다고? 지금 네가 말한 내용이 그거야?』
맞다는 의미로 나는 힘들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타구니가 아픈 탓에 여전히 등을 구부정히 한 송주가 이를 갈아댔다.
『웃기고 있네. 돈은 못 줘. 이 빌어먹을 놈아!』
빌어먹을 년이라고 정정해줘라, 이 회충 같은 놈.
『동은 필요 없어. 너한테 돈 안 받아.』
입안에 고인 피를 퉷, 하고 뱉으면서 말했다.
『돈은 필요 없다고?』
『그래. 내가 웡하는 댕가는 돈이 아니야. 다른 거야.』
나는 핏물이 뚝뚝 흐르는 얼굴을 들어 녀석들을 하나하나 쏘아보며 머리속에 각인해뒀다.

Posted by 미야

2015/06/02 13:59 2015/06/02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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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15/06/02 19:11 # M/D Reply Perma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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