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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도우 태블릿 뭘 사면 좋을까...

스마트폰이 없는 몸이라서 태블릿이나 미니노트북이 필요한 상태인데 도저히 뭘 사면 좋을지 감이 안 온다.
지금까지 유력 후보군으로 잡은 건 헬지의 탭북 듀오인데 이거 은근 평이 안 좋아...;; 가격 비싸고 화질 구리다고.
한성은 가격면에서 괜찮은데 너무 싸서 이상할 것 같고. 서피스 이건 그냥 구름. 멍하니 바라봐야 할 구름. ^^
에잇, 에잇! 짜증나.

Posted by 미야

2015/07/07 16:10 2015/07/07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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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도록 긴장하고 뜬눈으로 지새운 탓인지 목이 붓고 미열이 났다.
『어디 몸이 안 좋으십니까?』
남들보다 한 발 빠르게 조반을 먹으러 가니 밥 하던 하수가 가만히 손을 모으고 서서 내 안색을 살폈다. 그만큼 내 얼굴색이 안 좋았나 보다. 나는 아무래도 여름 감기인 것 같다며 나오는 대로 대충 둘러댔다.
『그럼 따로 만든 죽을 올릴까요.』
여기서 따로 만든 죽이라 함은 밥을 푸고 남은 솥에 약간의 야채와 물을 붓고 소금간을 하여 한소끔 끓인 걸 의미한다. 소화능력이 떨어지는 환자를 위한 식사 대용식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남은 재료들을 활용하여 소방 하수들이 먹을 음식을 자기네들끼리 만든 것이다. 음식 재료를 다듬고 아궁이에 솥을 거는 하수들의 하루는 이른 새벽부터 시작되고, 이들이 정식으로 아침을 먹는 시간은 800명에 이르는 학부생들이 식사를 다 마친 직후다. 당연히 일하는 도중에 배가 고플 수밖에 없어 남는 부스러기 재료들을 모아 죽을 끓여 먹기 시작했는데 이게 어느새 의례적으로 굳어져 주방 구석으로 따로 큰 솥을 걸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평민이 아닌 학부생에게 정겹게 먹어보라 권할 음식은 아니다.
나는 친절에 난처해하며 에둘러 거절했다.

식욕이 없었어도 기계적으로 수저를 들고 조식으로 나온 미역냉국과 쌀밥, 볶은 소고기 반찬에 호박나물 찬을 억지로 꾸셔 넣었다. 목이 아팠기에 두어 번 씹은 뒤 억지로 꿀꺽꿀꺽 삼켰더니 그 미련곰탱이 같은 식사 모습에 쟁반을 들고 나온 하수가 노골적으로 싫은 표정을 지었다. 제대로 배우지 못한, 진짜로 싫은, 변방인, 천박한, 등등의 몇몇 단어들이 귀에 들려왔다. 그래도 목숨을 부지하려면 몸에서 요구하는 필요 열량을 어떻게든 섭취해줘야만 한다. 없는 식욕을 탓하며 먹기를 게을리 하면 나처럼 약한 몸은 금방 축난다.
『우우욱!』
어쨌거나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면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치밀어 오른 걸 엉겹결에 손바닥에 뱉고 보니 밥알 모양이 그대로였다. 결국 밥을 대다수 남기고 냉국으로 위장을 달랬다.

『몸이 안 좋으십니까.』
수북히 남은 잔반을 보고 따로 만든 죽을 권했던 하수가 또 질문을 던졌다.
이쪽에서 밥을 곱배기로 먹든, 절반만 먹든 그다지 신경을 쓸 입장이 아닐텐데 오늘따라 같은 질문을 계속 하고 있으니 신경이 곤두섰다. 신경과민이라 생각을 하면서도 상대의 얼굴 모양새와 눈빛을 찬찬히 관찰했다.
『왜 그러시나요. 제 얼굴에 구멍이 뚫리겠습니다.』
사내의 눈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밝아 옅은 갈색에 가까웠는데 그것만으로는 사람인지 요괴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동공이 세로로 찢어진 것도 아니겠다, 입이 옆으로 찢어진 것도 아니겠다, 증거라고 할만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어쩔 줄 몰라 쓸데없이 앞머리를 매만졌다. 이래선 혼자서 설레발이다. 마음이 불안하니 다가오는 사람 전부를 색안경을 쓰고 보게 된다.
『아무 것도 아니에요. 제가 잠시 딴 생각을 했습니다. 미안합니다.』
적당히 사과하고 지나치려는데 남자가 고개를 숙인 채 씨익 웃었다.
어쩐지 웃는 남자의 벌려진 입 안으로 뾰족한 톱날처럼 생긴 치아가 여러 개 보인 것 같아 흠칫했지만 아마도 빛과 그림자의 농간일 거다. 사람의 치아가 저렇게 길고 날카로울 리 없다. 나는 간단히 목례를 하고 식인 물고기를 연상시키는 이빨을 더 이상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조심하세요. 딴 생각이 지나치면 길을 걷다 넘어질 수도 있답니다.』
불안해하는 걸 알아차렸던지 하수는 손을 들어 자신의 입가를 얼른 가렸다.

나는 결코 입이 헤픈 자가 아니다.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면서「사실 나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랍니다. 불의의 사고로 숨통이 끊어져도 원래의 기억과 인격을 갖고 다시 돌아옵니다, 쨔잔.」이러며 자랑할 성 싶으냐.
단 한 번도 사실을 고백한 적이 없다고 하면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겠지만.
처음은 큰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오면서 물그러미를 만났을 때였다.
어부들은 방언으로 물그라미라고도 부른다. 요컨대 물 아래 그림자라는 의미다. 수면 밖으로 나오는 일 없어 뱃일을 하는 사람들 눈에는 고래를 닮은 시커먼 그림자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간혹 흉악한 놈들 중에는 고의로 자신의 몸무게를 실어 어선과 몸통박치기를 시도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만, 대다수는 사람과 거리를 두고 깊은 먼 바다에서 오롯이 활동했다.
마물이 아니라 단순히 큰 해양 생물체의 일종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그래서 있다. 나는 물그러미가 심해 오징어의 먼 사촌이라고 씌어진 책도 읽었다. 물론 그 책을 쓴 학자가 농담 따먹기를 했을 수도 있다. 나처럼 바다라는 걸 잘 모르는 사람은 똑똑한 사람이 그렇다고 강하게 주장하면 그런가보다 가볍게 판단하는 법이다. 망할 학자는 잘들 속는다며 속으로 웃었을지도.
어쨌거나 대형 물그러미가 내가 탄 배와 충돌했고, 그 충격으로 밑바닥으로 균열이 생겼다.
나는 부모를 잃어버린 어린 계집애를 옆구리에 꿰찬 채 무작정 위로 올라가려고 발버둥을 쳤는데 아무래도 배라는 건 격벽을 많이 둘러 그 내부가 거대한 미로처럼 되어버리는지라 우리는 도중에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쿵쿵 바다가 울기에 아이가 겁을 먹자 나는 소녀를 달래려고 신기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거 아니? 아저씨는 원래 새끼용이었단다.」
「거짓말.」
「진짜야, 지금은 배 나온 뚱뚱보 아저씨지만 원래는 새끼용이었어. 용주(龍珠)라고 하는, 네 주먹보다 더 작은 구슬에서 태어났단다. 처음엔 날개도 있었어. 색은 푸르덩덩해서 어디를 봐도 내놓을 수준은 아니었지.」
아이는 약간 기운을 차렸다. 발목까지 물이 차올랐기에 나는 슬슬 아이를 안아 올려야 했다.
「그런데 왜 지금은 아저씨가 되었어?」
「밥을 너무 먹어서.」
「아니, 배가 왜 그렇게 많이 나왔느냐고 물어본게 아니라.」
「도망치는 재주가 없어 그만 잡아먹혔단다.」
「뭐?! 새끼용을 아저씨가 잡아먹었다고?! 너무해! 당장 뱉어내!」
우리들의 대화는 엉망진창이었지만 그 아수라장 가운데 의사소통이 가능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나는 뱉어내, 뱉어내 반복하여 외치며 나를 때리던 그 고사리 손을 잊을 수가 없다.
그래봤자 우리들은 갑판으로 올라갈 수 없었다. 소녀와 나는 가라앉는 배에서 끝내 탈출하지 못했고 침착함을 잃은 수많은 이주자들과 운명을 같이했다.

「술에 취해 아내에게 말했던 것도 같고.」
부부사이에 숨기는 건 없어야 한다며 고백을 했던 것도 같다. 솔직히 기억은 흐릿하다. 나에게는 제법 되는 수의 아내들이 있었고 - 남편들도 있었다. 결코 행복하지 않은 결말로 치달았지만 시오재 또한 아내를 맞이했다.
「사실 나는 사악한 악귀였다오. 용주(龍珠)를 주제도 모르고 한입에 꿀꺽 삼켰지.」
「어머나, 술을 꿀꺽꿀꺽 드시면 나빠요.」
「부인, 혹시 용주라는 걸 아시오?」
「그건 오징어 호롱이라고 하는 거랍니다. 용주가 아니에요. 맛있어 보이기에 시장에서 샀어요. 가격도 참 착해요. 다섯 마리 한 접시에 닷푼밖에 하지 않았어요.」
「그랬구려. 그런데 여기엔 왜 세 마리밖에 없을까?」
「한 마리는 오는 길에 참지 못하고 제가 먹었어요. 미안해요. 화났어요?」
「음... 다섯 빼기 하나면 몇이지?」
「셋이잖아요. 설마, 그 정도도 제가 모를까봐요.」
시오재의 아내는 처녀 시절에 사고로 머리를 다쳐 반 백치였다. 하지만 천성이 착했고 순박했다. 나는 영원히 소녀와도 같을 그녀를 사랑했다.
백발 꼬부랑 노인네가 되어 한 날 한 시에 나란히 죽자 손가락 걸고 약속했는데.

시큰거리는 콧잔등을 얼른 눌러대며 정신을 추슬렀다.
《실은 오래전부터 저희들 사이로 그런 얘기가 은밀하게 돌았습니다. 나리는 죽어도 계속하여 강생하신다고...》
누군가에게 내 은밀한 비밀을 털어놓았다. 그런데 나는 그 사실을 기억을 못 한다.
《인간의 몸으로,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태어나...》
계속해서, 끊임없이, 반복하여.
제대로 죽지도 못하고.

으슬으슬 추워왔다. 열이 더 오르는 듯하여 양팔을 껴안고 몸을 웅크렸다.
「도대체 누구에게 말을 했지?」
발가벗겨져 만장하신 가운데 내동댕이쳐진 기분이었다. 수치심과 부끄러움이 덮쳤고, 이어 돌아가는 상황을 내 손으로 어찌할 수 없다는 사실에 화가 치밀었다.

Posted by 미야

2015/07/07 13:52 2015/07/07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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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15/07/07 18:11 # M/D Reply Perma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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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청에게 뭐라도 귀띔을 해주는 편이 좋았으려나.
이 몸에 양심이라 부를 만한 것이 여전히 남아있었던지 마음이 심란했다. 충동적으로 문손잡이를 쥐고 밖으로 뛰어나가려 했다. 그러다 납덩이처럼 무거운 무기력증이 뒤통수를 잡아당겨 힘없이 돌아섰다.
괜찮을 것이다. 별 일이야 있겠는가. 어린아이를 공격하는 수호령따위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런 건 악령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사악한 건 이곳에선 발을 붙이지 못한다. 거기다 린청에게 뭐라고 경고를 하면 좋단 말이냐. 어젯밤 꿈자리에서 네가 다치는 꿈을 꿔서 걱정스러우니 몸조심하라고? 설득력 꽝이다. 
흠칫 놀라 깨닫고 보니 엄지손톱을 맹렬하게 씹어대고 있었다.

수중에 읽을 책이 없었기에 버들고리짝을 뒤져 정리하다 만 옛날 물품 구매서와 기안서 같은 서류들을 꺼내다가 글자를 읽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한심스러웠지만 마음이 심란할 적엔 닥치는 대로 글자를 읽으면 약간씩 진정이 되곤 했다.
침상에 등을 대고 편안하게 누운 채 냄새나는 것들의 낱장을 넘겼다.
15년 전 늦가을, 낙엽을 청소할 빗자루를 다량으로 주문했다. 일주일 뒤 대청소 계획에 따라 먼지를 털었는데 리장면이라는 이름의 쉰 두 살 하수가 3층 높이의 사다리에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덕분에 골반 뼈에 금이 가는 중상을 입어 이 자에게 최대 넉 달의 생계비를 지급해야 한다는 첨부 문서가 붙었다. 금이 간 거나 부러진 거나 사실상 마찬가지일테니 거동을 전혀 못할텐데 넉 달의 급여는 많이 부족한 금액 아닐까 걱정하며 뒷장을 넘겼다. 하지만 이후의 이야기는 알 수가 없고 엉뚱하게 밀가루와 식용유, 각종 채소의 구입 목록이 나왔다. 서류들을 이곳저곳 옮기면서 서로 섞인 모양으로 식품 구입에 대한 기안은 앞서 읽은 보고서보다 날짜가 2년 뒤였다.
『에잇, 재미없어!』
한심한 소리였다. 아마유 다섯 근, 근대 여섯 자루, 홰설초 열 일곱 뿌리, 이런게 재미가 있을 리가 없잖는가.
눈을 감고는 읽던 서류를 머리맡으로 치웠다.
공짜로 얻은 등잔기름을 아끼도록 하자. 아직 일렀지만 서둘러 잠자리에 들기로 결심하고 누워 있던 자세에서 몸을 반쯤 일으켜 곁상에 올려든 등불을 끄려...
『어이쿠.』
제발 이러지 말자! 일곱 줄 현금을 품에 안고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자와 시선이 정면에서 마주쳤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나리.》
중력의 법칙따윈 무시하고 박쥐처럼 매달린 채 그가 넙죽 무릎 절을 올렸다.
『허어억! 이게 누구야. 누... 누박기?! 자네, 성불했다고 들었는데?!』
《번민이 많다보니 아직... 부끄럽사옵니다. 그나저나 기쁘네요, 제가 누구인지 기억해주신 겁니까?》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나는 필사적으로 도리질했다. 나는 저런 자를 모른다. 내 눈엔 유령이 안 보인다. 폐병에 걸려 죽은 탓에 비쩍 여위어 안색 창백한 저 사내가 누구인지 안즈는 알지 못한다.
서둘러 돌아눕고 풀썩거리며 이불을 머리 꼭대기까지 뒤집어썼다. 하나, 둘, 셋, 넷. 나는 잠에 빠졌다. 쿨쿨, 냠냠.

《잠시 일어나 보시지요. 궁전 악사 누박기, 급히 나리께 드릴 말씀이 있사옵니다. 시간이 얼마 없사옵니다. 제가 여기까지 몰래 들어온 걸 들키면 산 채로 다리가 뜯겨요.》
저 자는 자신이 이미 죽었다는 걸 잊었나 보다. 산 채로 다리가 뜯기다니. 나는 이불 안에서 몸을 둥글게 말았다.
『싫어.』
《진짜 중요한 이야깁니다, 나리.》
『여기엔 나리라고 부를 만한 자가 없소이다. 누굴 찾는 거요, 누굴!』
《시오재 나리가 아니옵니까. 그렇다고 들었는데요.》
『착각하시었소. 내 이름은 안즈라고 하고, 시오재라는 자는 이미 오래 전에 명부에 들었다고 알고 있소. 꺼지쇼.』
웅크리고 누워 퉁명스레 대꾸했음에도 누박기는 완강했다.
《에이, 자꾸 왜 아니라고 그러세요. 그만 우기고 일단 일어나 보시라니까요. 진짜로 시간이 없어요.》
『누가 우긴다는 거냐. 찐빵과 만두는 결코 같지 않다고!』
《짠빵이나 만두나 그 피는 밀가루로 만들어지잖아요. 도대체 뭐가 다르담.》
『이놈이! 맛이 다르잖아, 맛이! 사람이 하는 말이 말 같지 않게 들리더냐!』
화를 내며 벌떡 일어나 앉자 코앞으로 시퍼렇게 색이 죽은 망자의 얼굴이 다가왔다. 그것도 거꾸로 뒤집힌 채다. 이런 거 안 좋다, 염통이 쫄깃거리다 못해 오그라들려 했다. 냉기에 굳은 것처럼 뺨이 파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한참만에야 마른침을 겨우 삼킨 뒤, 조금 거리를 두고 떨어지라는 의미로 손부채질을 해보였다.
다행히 누박기는 말을 잘 들었다. 만족스러울 정도는 아니었어도 코 닿을 거리로 붙어있지 않으니 살 것 같았다.
《어쨌거나 소인의 인사 받으소서. 무사 전생을 축하드리옵니다.》
『그딴 축하를 내가 왜 받아! 안 받아!』
《여하간 오랜만에 뵙습니다. 마지막으로 뵈었던 날부터 서른 해가 족히 흐른 것 같은데 돌이켜보면 시오재 님께 음월애사를 연주해드린 날이 어제처럼 느껴지는군요. 감개가 무량하여... 흑. 이렇게 어린 몸으로 다시 돌아오실 줄이야. 금강벽 곡조가 틀렸다며 책으로 머리를 얻어맞은 적도 있었죠. 고백하자면 그때 사적인 원한을 품고 저주했었습니다. 그런데... 저어, 그때 돌아가신 건 제 저주 탓은 아니겠죠?》
『유령인 주제에 말이 많군. 것보다 너.., 시간 없다 말하지 않았느냐?』
어안이 벙벙하여 가만 쳐다만 보고 있자 누박기는 또 자신의 퍼런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나는 질색했다.
《그렇지! 시간이 없지. 그러니 단도직입적으로 여쭙겠사옵니다. 진짜로 이사실을 멸망시킬 작정이옵니까.》

높은 산이 반나절만에 무너져 평평한 들판이 되었다는 식의 황당한 얘기였다. 순간적으로 사래가 들려 기침이 터져나왔다.
『차라리 옛날처럼 잠 못자게 실컷 연주나 해라. 뜬금없이 귀신 낯짝을 들이밀면서 뭔 소리야, 그게.』
《실은 오래전부터 저희들 사이로 그런 얘기가 은밀하게 돌았습니다. 나리는 원래 죽지 않는 몸이다. 육신은 죽어도 계속하여 강생하신다. 언젠가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오신다. 돌아오셔서 제국 이사실을 멸망으로 이끌 것이다...》
『에엑?!』
나는 이불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흥분한 나머지 목소리도 절로 커졌다.
『누가 그런 말을 퍼뜨리고 다니든. 구안와사에 걸려 입 돌아간 놈이 도대체 누구냐고!』
제대로 죽지 못한 나머지 전생하고 있다는 건 비밀이다. 그 사실을 누군가 알아차렸다는 건가. 도대체 누가?!
아니, 그 이전에.
나는 정색하고 목을 똑바로 세웠다.
『내가 미쳤냐! 내게 무슨 이득이 있다고 뭐 하러 제국을 멸망시켜!』
《소인이 지금 그걸 묻고 있지 않사옵니까. 진짜로 그러실 건가요?》
『어허허... 이보게, 누박기. 그대는 내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으로 보이는가? 제국을 멸망시킬 정도로?!』
《음... 그건. 솔직히... 저어.》
누박기는 난처해하며 말 꼬리를 흐렸다. 그리고는 썩어가는 우유처럼 탁해진 눈알을 빙글 돌렸다.
거 봐. 나는 무릎을 소리 나게 때렸다.
『난 그렇게 능력 좋은 녀석이 아니야. 그건 완전 헛소리일세.』
《하지만 결과만 놓고 보자면 시오재 님 탓에 벽은국이 멸망한 건 사실이잖아요.》
『미친! 내 취미가 나라 말아먹기라도 된다는 거니?! 벽은국이 왜 나 때문에 망해!』
《벽은국에서 이사실 제국으로 망명한 문장학사가 그리 한탄하던데요. 전부 시오재 님 탓이라고...》
『그려, 다 내 잘못이라고 해라. 반찬으로 올라온 두부조림의 맛이 이상한 것도 전부 내 탓이지.』
격분하며 베개를 집어던지려 하자 유령인 주제에 누박기는 눈에 띄게 안도해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아니라는 거죠? 그죠? 날조된 헛소문이라는 거죠? 아, 다행이다. 이제야 마음이 놓... 이런.》
도중에 말을 끊더니 허겁지겁 자신의 악기부터 챙겼다. 무엇인가를 두려워하며 북동 방향을 응시하는데 그가 느끼는 초조감이 시큼한 냄새로 느껴질 지경이었다.
《안 되겠다. 생각보다 훨씬 빨리 갔다 돌아오는군. 그럼 나리, 소인이 오늘 이곳에 왔었던 건 비밀이옵니다. 조만간 허락해주신다면 나리가 좋아하는 음월애사를 또 들려드리겠사옵... 이크!》
얼마나 급한지 누박기는 말도 채 마치지 못하고 하얀 연기 비슷한 형체로 변하여 부리나케 도망쳤다.
그렇게 유령의 머리가 천장으로 쑥 빠져나감과 거의 비슷하게 하여 쿵, 하고 큰 울림이 있었다.
아무래도 린청을 몰래 따라갔던 그것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 듯하다.

『헐... 이게 뭐야.』
눕지도 못하고, 일어서지도 못한 채 눈만 꿈뻑거렸다.
결국 밤새도록 뜬눈이었다.
혹시라도 눈을 감으면 천장을 뚫고 이상한 것이 내려와 잠에 빠진 나를 공격하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해하며 이불을 입안에 가만 물고 있었다. 이번에는 막대기를 들어 천장을 쿵쿵 찧을 생각은 감히 하지도 못했다.

Posted by 미야

2015/07/04 22:52 2015/07/04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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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15/07/05 01:06 # M/D Reply Perma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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