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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장이 아닌 평복 차림새를 하고 있던 그는 옷깃을 엉망으로 풀어헤친 채 소금꽃이 핀 머리 꼭대기로 목을 축일 물을 붓고 있었다. 그래봤자 불쾌감을 주는 더위는 가시지 않아 눈빛이 난폭했다. 체온은 시원하게 내려가지 않고 그저 습도만 높아졌을 뿐으로 피부에 물 먹은 옷감이 진득하게 달라붙자 더 못 참아 했다.
누가 저 (신경질을 부리고 있는데다 옷차림도 흐트러진) 남자를 위대하신 황제의 고귀한 핏줄이라 여기겠는가. 금관을 쓰고 높은 가마에 앉은 것도 아닌데.
머리카락에서 물방울까지 뚝뚝 떨어지고 있으니 한결 더 야수 같았다.
그런 흉흉한 분위기를 풍기는 그의 옆에서도 병사들은 다행스럽게도 그럭저럭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추측하자면 시체더미 속에서도 이성을 잃지 않는 자들이니 더위를 잡순 야수 정도는 괜찮은 모양이었다.

무리 중 그나마 지위가 있을 것처럼 여겨지는 자가 공손히 아뢰었다.
『자손. 이곳에서 지체하시면... 일정이 지체되옵니다.』
『닥쳐. 네가 감히 나에게 설교를 할 작정이냐.』
언젠가 땀투성이가 되어 나에게 마실 물을 달라 요구하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도 그는 이런 식으로 모두로부터 강요를 받아가며 바둑판 모습의 도시를 죽어라 걷고 있었던 걸까.
이것이 꽃으로 장식을 한 화동이 모두의 환호를 받아가며 마을 한 바퀴를 돌아 제대로 죽지 못한 것으로부터 마을을 지키는 결계를 만든다는 의례의 재현이라면 나는 그냥 배를 잡고 웃어버릴 테다. 여기엔 꽃도 없고 환호하는 인파도 없다. 당연히 화동도 없다. 입이 찢어진다 해도 스물 셋이나 먹은 사내더러 미동이라 부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아무리 잘 생겼어도 겨드랑이에 털이 나기 시작하면 더 이상 미동이라 부를 수 없다고, 나는 그렇게...
『이 머리에 구멍 뚫린 놈. 네가 지금 날 측은한 시선으로 쳐다볼 입장이라 생각하느냐?! 응?!』
기시감이 휩쓸었다. 자손은 나와 처음 만났던 그날처럼 나를 한 팔로 붙잡아 허공에 대고 마구 털었다.
대롱대롱 흔들리며 나는 산산조각 나 보이지 않는 구멍을 통해 발밑으로 빠져나가려 하는 영혼을 수습하느라 바빴다. 그래도 차이라면 먼젓번에는 독기를 뿜어대던 그가 이번엔 엄청난 짜증을 퍼부어댔다는 점이랄까, 둘 중에 뭐가 더 괜찮고 낫고의 차이는 솔직히 잘 모르겠고 - 아무튼 먼지와 땀으로 얼룩진 사내는 눈이 반쯤 뒤집혀 폭발하기 일보직전이었다.

『화가 나.』
『그거 참 황송하옵게도.』
『더워!』
『불평하신들... 날씨는 제 힘으로는.』
『신경질 난다!』
『항의는 돌아가셔서 내전관들에게 하심이.』
『했다고했다고했다고! 그것도 한 두번 했을 줄 아느냐! 하지만 녀석들 귓구멍은 꽉 막혔단 말이다! 창리궁 마마에게도 자식이 둘이나 있잖아! 그 녀석들을 시키란 말이다. 귀찮은 일까지 전부 나에게 떠넘기고 이게 무슨 짓거리야! 좌로 걸었다, 우로 걸었다, 방향을 정해 길을 따라 무작정 걷기만 하는 건 재미가 없엇! 피곤한 건 둘째고 지루해서 기절할 것 같다고! 악령이 나와? 그럼 제령을 해! 요괴가 나와? 그럼 단칼에 베어버려! 그러는 편이 간단하고 좋잖아! 차라리 이웃 나라와 전쟁을 하라고 시켯! 적병의 머리가 필요하다고 말하면 잘라다 바치겠다! 제발~ 이렇게 빌게.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매년 이러는 거 진짜 싫어, 싫다곳!』
신경질적으로 고함을 지른 그는 숨을 크게 내쉬고는 들고 있던 내 몸뚱이를 예고도 없이 뚝 떨어뜨렸다.
『후아! 소리를 질렀더니 조금은 풀리는군.』
대신 내던져진 이쪽은 엉덩이가 쪼개지는 것처럼 아파 열심히 궁둥이를 문질렀다.

소리를 질렀더니 개운해졌다는 건 빈 말이 아니었나 보다. 한층 표정이 편안했다.
『좋다, 그럼 최대한 간략하게 설명하도록. 네가 왜 내재원이 아닌 여기에 있는 거냐, 좁쌀?』
좁쌀? 그건 도토리보다 더 작잖아!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말이죠. 본국에서 증서가 도착해 이곳 상은에서 돈으로 바꾸려고 했는데요.』
『호오, 이제 거지 신세 면했군. 그랬는데?』
『갑자기 손님 오셨다 소리를 지르더니 식칼을 들고 덤벼들더라고요.』
『얘네들이?』
너희가 그랬어? - 라고 지적당한 포박된 무리들은 부리나케 도리질했다.
『아닙니다아닙니다우리가아닙니다!우리는강도가아녜요!우리도피해자라고요진짭니다믿어주세요!』
그들의 합창을 그다지 귀담아 듣지 않던 자손은 뒤편으로 신호해 또 물을 요구했다. 도대체 얼마나 마시려는 건지. 것보다 체력이 보통이 아닌 자가 심한 갈증을 느낄 정도로 걸었다면 그 거리가 얼마나 될지 돌연 궁금해졌다. 상상 외로 엄청난 강행군이었을 수도 있다. 혼자서 루은의 여덟 대문을 기준점으로 정방돌음(오른쪽)과 정외걸음(왼쪽)을 말을 타지 않고 순전히 걸어서 돌려 했다면 살인적이라고 밖에는 표현이 안 된다. 성문 안 면적만 무려 2,750란호립에 이르기 때문이다. 설마, 다른 사람도 아닌 황족인 남성이 그런 걸 몸소 하려 했을 리가...
추측하기를 그만두고 다시 좁은 계단에서의 타평과의 싸움을 설명할 단어를 골랐다.
에, 하고 입을 여는 것과 동시였다. 갑자기 생각도 못한 물벼락이 나에게로 좌악 떨어졌다.

『어?!』
벌써 심문 들어간 거에요? 물고문인 거에요? 그러니까 설명하려고 했다니까요!
자손은 골똘히 생각에 잠겨 나를 쳐다봤다.
『생각처럼 깨끗해지질 않는 군. 끼얹은 물이 부족했던 걸까.』
영문을 몰라 입만 뻥긋 벌리고 있자니 보다 못한 이라벽치가 헛기침과 함께 끼어들었다.
『어험! 그래선 안 됩니다, 자손. 더러워진 옷은 벗어서 세탁을 해야 하는 겁니다. 사람이 옷을 입고 있는 상태에서 물을 끼얹어봤자 깨끗해지지 않습니다. 게다가 피 얼룩은 원래 잘 안 지워지는 것이고... 그리고 저어, 당하는 사람 기분도 그다지... 이건 선의를 보여주는게 아니고 모욕을 주는 거라고요.』
뭐?! 이게 다 내 옷의 더러움을 지우려는 의도에서 나온 거였어?!
선무당식 세탁 방법을 지적당한 자손의 동공이 흔들렸다.
오늘의 교훈 하나. 물을 끼얹는다고 옷은 깨끗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원래 이 남자는 뻔뻔하다.
『그렇군, 물을 끼얹어봤자 깨끗해지지 않는다는 말은 사실인 것 같군. 허나 팥알의 기분 따위 내 알 바 아니다. 어차피 내 의도는 모욕을 주려던게 아니니. 그러니 이라벽치, 네가 이 녀석을 책임지고 세탁해.』
좁쌀에서 팥알로 격상되었으나 하나도 안 기쁘다.
나를 깨끗하게 만들라는 주문에 이라벽치 또한 눈을 가늘게 떴다.
또 접니까. 이 애를 책임져야 하는 건 또 저인 거에요? 그의 표정이 그리 묻고 있었다.
반복하여 말하게 만들지 마. 이에 대응하는 자손의 눈빛은 엄격했다.

그제야 나는 포박된 무리에서 떨어져 이라벽치의 손에 이끌려 다른 장소로 옮겨졌다.
돌아보니 이미 어디론가 치워져 락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잠시 할 말이 있다며 이라벽치의 두꺼운 손을 힘주어 잡아당겼지만 그 또한 민간인이 아닌 군인, 내가 보내는 신호는 일절 무시한 채 다른 병사더러 자신이 탈 말을 가져오라 명령했다.
『에휴. 단순히 강도를 당한 건지, 아니면 네 나라에서 암살자를 보내온 건지 아직은 모르겠다만.』
그래도 그는 무겁게 한숨을 내쉬며 나를 걱정해주었다.
『이렇게 소동이 크면 이사실에서 널 사친 대상에서 제외시키고 본국으로 돌려보내려 할지도 모르겠구나.』
그 말을 듣고서야 줄곧 눈을 가리고 있던 비늘이 한꺼풀 벗겨져 나갔다는 기분이 들었다.

「빈사국으로 돌려보내질 수도 있다고?」
얼마나 사람이 이기적이면 그 즉시 락연에 대한 걱정이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한 건 앞으로의 내 처우다.
물에 젖은 발잔등을 내려다보며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아니, 뭐. 본국으로 돌려보내진다고 해도 딱히 지금과 달라지는 건 없을 것 같긴 하니까 땅이 무너졌다는 식의 기분은 들지 않지만... 그러는 수가 있었군.」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왕위계승 다툼에 휩쓸린 타국의 왕족이 사친으로 왔는데 내재원에서 떡~ 하고 암살당하면 이사실에서도 책임 문제가 불거지니까 제국 입장에선 사단이 나기 전에 반품 - 돌려보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버지가 50동을 쓰지 않았다고 한 번 가정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어.」
그 정체가 누구든 어지간히 내가 이사실에 머무는게 싫었던 것 같다.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마음대로 하라지. 상관없어. 차라리 잘 되었지. 나라고 여기가 마음에 들었던 것도 아니야.」

분위기가 어두컴컴해졌다고 느낀 이라벽치가 내 어깨를 가볍게 툭 밀었다.
딴에는 위로를 해보려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덩치가 남산이라는 걸 고려했어야만 했다.
힘에 밀쳐져 벌러덩 넘어지는 입장에선 그건 결코 위로가 아니었다.

Posted by 미야

2015/08/01 21:06 2015/08/01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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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벽치는 제일 먼저 내 옷을 알아봤고, 그 다음에야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봤다.
보통은 순서가 거꾸로일텐데 내 얼굴보다는 알거지가 된 나를 측은하게 생각해 아들 옷을 몇 점 주었다는 기억이 컸던 모양이다.
다 떠나서 이 자는 뺨을 얻어맞고 엎어진 내가 누구인지 깨닫자마자 좋아하던 여자에게 털복숭이 엉덩이를 들킨 남자처럼 혼이 나간 표정을 지었는데 아무래도 나와 얽혔던 옛날 일들을 순서대로 곱씹다가 그 종착지로 자기비하에 빠진 눈치였다.
요괴, 소동, 저 녀석은 아직 어린 아이라고요, 자손 - 화내는 자손 - 분노하는 자손, 강도로 추정되는 시체, 토사물, 어린애를 포박해서 끌고 다니다 명령에 따라 집어던짐, 모두로부터 손가락질.
죄다 무시하고 도망치고 싶다는 충동을 강하게 느낀 것 같다. 빙글 돌아서서「어디서 이렇게 소란스러운 거야! 여기가 아니라 다음 골목인가!」딴소리를 하는 걸 봐선 분명 현실도피를 하고 싶은 거였다.

『아는 얼굴입니까. 혹 친척이라던가.』
『아냐... 하은. 그런 것은 아니고... 에, 또. 그냥 알고 있는 정도.』
이라벽치가 끙 소리를 내며 다시 몸을 돌렸다. 다음 골목은 개뿔, 현실 회피는 거기까지였다.
『이 아이는 빈사국에서 올해 사친으로 왔네. 이사실로 오는 도중에 강도를 만나 봉변을 당했길래 곤란할 것 같아 도와준 적이 있어. 내재원에 문의하면 답변을 해줄 걸세. 수상한 신분은 아니야.』
『하지만 저 아이는 재(災)와 같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재가 자기 일행이라 주장했고요.』
인상을 쓰고 있던 이라벽치는 하은이라는 자의 설명을 면전에서 부정했다.
『에이. 그럴 리가 없잖아.』
하지만 하은의 고집도 만만치 않았다.
『그럴 리가 없는게 아니고 그랬습니다만.』
『하면 너는 이 아이가 술법을 써서 요괴를 부렸다고 생각하나, 하은?』
『그럴 가능성을 배재하지 않고 있습니다.』
『직접 목격했나.』
『어. 그건...』
하은이 입술을 깨물었다. 직접 봤느냐고? 그가 보았던 건 정신이 나가 칼부림을 하는 자와 그에게서 도망치는 요괴와 어린이의 조합이었다. 사람을 물어뜯는 요괴를 본 건 아니다. 그랬다면 화살을 쏨에 있어 순서가 달라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 요괴는 상처 투성이었다. 언뜻 봐도 열 군데가 넘는 베인 자국과 찔린 자국이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실수한 건가. 남자의 눈동자가 미묘하게 흔들렸다.
본인조차 인식하지 못할 눈동자의 흔들림을 이라벽치는 정확히 파악했던 것 같다.
『직접 보지 않은 것을 단서에 의거하여 합리적으로 추론하는 건 좋은 일이야. 하지만 이랬을 것이다 저랬을 것이다 단정 짓는 건 보다 신중하게 하도록 하게. 자네가 이런 류의 일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걸 모르는 건 아니지만... 으익?! 뭐야, 시체도 있잖아! 이건 상당히 엉망이군. 뭐? 다시 말해보게. 죽어 있었는데 만약을 위해 다시 목을 베었다고? 재에 오염되어서?! 그런데 피가 왜 이리 많아!』

깜짝 놀란 이라벽치가 시체를 들춰보는 사이, 나는 다른 병사에게 팔을 잡혀 자리를 벗어나게 되었다.
밧줄에 꽁꽁 묶여, 거적으로 가리워져, 짐짝으로 취급되어 - 여러가지 근심걱정이 빙글빙글 도는 가운데 락연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숨이 끊어진 건 아닌데 적절한 조처를 받지도 못하고 그대로... 고개를 붕붕 휘저었다.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보고 인간인지 아닌지 판단을 할 거라는 얘기가 떠올랐다. 그저 겁을 주려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라 진짜로 그렇게 한다면? 락연에게도 그런 몹쓸 짓을 한다면!
잡힌 팔을 빼내려 했지만 상대는 군인이었다. 관절을 통째로 뽑아내지 않는 이상 달아난다는 건 무리다.
『놓아주세요.』
나는 아무 것도 잘못하지 않았다.
『제 일행이!』
하지만 밑바닥부터 뒤흔드는 이 죄책감은 내가 큰 잘못을 저질렀음을 우회하여 증명하는 거겠지.
『그만 놓아달라고요!』
잘 훈련된 군인은 이럴수록 들은 체도 안 하는 법이다. 내 팔을 잡은 자는 나를 그냥 통상적인 물건처럼 취급했다. 들어 올려야 한다면 들어올린다. 내리라고 하면 내린다. 단지 그뿐이다. 그래서 그 자는 나를 소극 상은에서 잡아온 관계자들과 한 줄로 나란히 앉혀놓는 작은 실수를 저질렀다.

rm skawkrk dnflf thrdls rjsrk. dlfjf rjfkrhs akfgkwl dksgdkTwksgdk. 그 남자가 우릴 속인 건가. 이럴 거라곤 말하지 않았잖아.》
표준 대륙어가 아니고 북방대륙의 알란밧 방언이었다. 코가 납작하고 이마가 평평한 생김새로 보아 그쪽 출신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무역을 해온 탓에 자력으로 말을 익힌 것 같았다. 병사들이 알아듣기 어려운 알란밧 방언을 골라 쓰면서 자기네들끼리 입을 맞추려 하는 것 같았다. 소곤거리면서 남들이 모르도록 얼굴을 무릎에 파묻었는데 태도와 억양 탓에 흡사 조상신에게 기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는 그들의 말을 알아듣고 있다는 내색을 지우고 마찬가지로 고개를 푹 숙이고 몸을 조금이라도 더 작게 만들며 한껏 웅크렸다.
《알아서 하겠으니 눈 감아 달라 말한 걸 곧이곧대로 믿은 우리의 잘못일지도.》
《우린 그냥 기회만 제공했을 뿐인데.》
《제기랄, 이래서 처음부터 느낌이 안 좋았다니까. 수수료도 많이 받은 것도 아니고. 손해야, 손해!》
나는 자세를 바꾸지 않은 채 가만히 그들 대화에 끼어들었다.
djfaksms qkedkTsmsepdy. 얼마를 받았는데요.》
《많지 않다니까. 겨우 50동... 허억?》
남자는 흡사 나른한 졸음에서 깨어난 것처럼 목을 똑바로 세웠다. 착각인가! 설마, 착각이겠지. 단춧구멍을 닮은 작은 눈이 재빠르게 내 얼굴을 위아래 방향으로 훑었다.
anjdi. qkdrma sjduTsl? 뭐야. 방금 너였니?》
rmfo, sork akfgoTek. dl ehowl toRldi. 그래, 내가 말했다. 이 돼지 새끼야.》
이를 악물고 대꾸하자 상은 사람의 낯빛이 새카맣게 변했다.

50동이라. 하루 벌어먹고 살아가는 평민에게는 입맛이 동할 큰돈이지만 귀족에게는 눈이 튀어나올 정도의 금액은 아니다. 최하위 막노동꾼의 하루 임금은 대략 30전이고, 글을 쓸 줄 알거나 기술을 배우면 200~300전까지 오른다. 100전이 1동이니까 상위 노동자의 약 2년치 (추정) 급료다. 그게 내 목숨 값이었다. 암산을 해보니 속이 쓰렸다.
하지만 아버지 성격에 굳이 날 죽이겠다며 50동을 썼다는 건 놀라웠다. 이익과 손해를 따져보곤「당분간 내버려 두어라」이러는게 그 남자 성격에 맞을 것 같다. 내가 당장 빈사국으로 쳐들어가 집안을 장악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다, 빈사국 왕의 핏줄을 이은 서녀라서 내 존재 자체가 위협인 것은 더더욱 아니며... 나 같은 쭉정이는 그냥 멀리 보내놓고 나 몰라라 이러고 잊어버리면 되는데 굳이 손을 써서 나를 죽이겠다고 바득바득 우길 까닭은... 젠장. 서글퍼져 배까지 고파졌다.

결박되어 있던 자들이 작전을 바꿔 병사들에게 호소하기 시작했다.
『제 말을 들어보세요. 전부 오해하신 거라니까요! 아무렴 우리가 사무월 기간에 사술을 써서 요괴를 부리겠어요? 우리는 그렇게 미친 사람들이 아닙니다. 위대하신 황제폐하의 핏줄께서 마을 곳곳을 행차하시며 땅을 다지고 계시는데 그런 발칙한 짓을 할 리가 없잖아요. 들키면 사형인데 말입니다!』
『암요, 암요! 우리가 아니라고요. 왜 있잖습니까, 저~기에 죽어있는! 외국에서 온 사내 짓입니다!』
『그 자의 짓입니다! 칼을 들고 우리를 협박했습니다!』
『그 자가 사술을 썼습니다! 눈도 시뻘겋고, 머리는 산발했고! 맹세합니다, 나리!』
『우리는 모르는 일입니다.』
『살려주세요, 살려만 주세요!』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니 모든 책임을 타평에게로 떠넘기는 작전인가 보다. 타평은 빈사국 사람이다. 게다가 도망 노예다. 모든 죄를 뒤집어 씌우기엔 매우 적합한 신분이었다. 나라도 타평을 지목하고 나섰을 거다.
그런데 잠깐, 방금 전 저 자가 뭐라고 했더라.
위대하신 황제폐하의 핏줄께서 마을 곳곳을 행차하시며 땅을 다져?

의문은 곧 풀려 내가 잘 알고 있는 목소리가 더위를 호소하며 짜증을 냈다.
『나도 내가 이 짓을 왜 해야 하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 사무월 동안 십이문대로에서 일주로까지 반복 교차하여 왕복하라니. 내전관들 머리통을 전부 박살내고 싶어 미치겠구먼. 정 해야 한다면 자기네들이 발 벗고 나와서 직접 하라고 그래! 양심도 없는 것들, 이 더위에! 그것도 두 다리로 걸어서! 미친. 말은 장식이냐?!』
더위를 먹은 것이 분명해 보이는 자손이 병사들에게 겹겹이 에워싸인 채 투덜대며 물을 마시고 있었다.

Posted by 미야

2015/07/30 12:48 2015/07/30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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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분전환용 내맘대로 습작입니다. 그런데 언제 정리정돈을 하냐... ※

그렇게 죽음을 각오하고 있는데 화살이 날아왔다.
내가 맞은 건 아니었다. 헤엄을 치며 먼 곳으로부터 날아온 화살은 내 몸뚱이가 아닌 타평의 미간을 꿰뚫었다.
고통을 느낄 새도 없었을 것이다. 날이 부러진 식칼을 높게 든 채로 그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살았다는 안도감은 들지 않았다. 락연을 붙잡은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그의 몸이 땅속으로 꺼지는 것처럼 더욱 무거워졌다.
『락연!』
『도련님... 이 아니라 응? 뭔가 틀린데, 이 냄새는. 당신... 여자였어요?』
『이 마당에 그런게 중요하냐!』
자세를 낮춰 그의 머리를 보호하려 하자 궁수는 노리는 방향을 바꿔 머리 정 중앙이 아닌 흉부에 정확히 세 개의 화살을 동시에 쏘아 넣었다. 푹 소리에 반응, 몸이 움찔 떨렸다. 하나씩 발사한게 아니다. 살 세 개를 한꺼번에 끼워놓고 당기는 방식이었다. 이런 방식으로 화살을 날리는 사람은 흔치 않아서 - 라기 보다는 거의 없어서 궁수의 실력이 어느 정도일지 짐작해볼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운은 상대가 마음먹기에 달렸다.
그만두라는 신호로 팔을 들어 휘저었다.
『그만둬! 이 자는 적이 아니야! 락연은 적이 아니라고!』
나의 외침을 들어서인지, 아니면 락연이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다고 판단을 한 것인지 공격이 멈췄다.

『어린애는 쏘지 마.』
명령하는 목소리는 더할 나위 없이 차갑고 반듯해서 듣는 순간 소름이 돋으려 했다.
『그쪽은 신속히 정리해. 재(災)에 오염되었다.』
정리한다는 건 무슨 뜻? 흐릿해진 눈을 들어 보니 붉은 갑옷을 입은 자가 바닥에 쓰러져 있던 거구의 목을 베고 있었다. 나는 기겁하며 락연의 옷자락을 움켜잡았다. 순서가 되면 그들이 락연의 목도 베어버릴까 걱정이었다.
『그의 안부가 걱정스러우냐?』
명령하던 자가 내 쪽을 노려보았다. 목소리만큼이나 냉정한 눈동자였다. 타인이 들어설 여지가 요만큼도 없는, 쓸데없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그런 느낌이었다.
『인간 아닌 걸 염려한들 무엇 하겠다고.』
내뱉듯 말한 뒤 손가락을 튕겨 움직임을 멈춘 락연으로부터 나를 강제로 떼어 놓으라 명했다.
『재앙을 뿌리는 것들이다. 말살해야 마땅한 것들이지.』
그의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아니면 너도 저 부정한 것과 한 패냐.』

억지로 턱을 세게 잡혀 고개를 들어야 했다.
『우-』
『벙어리가 아니면서 왜 입을 다무는 거지.』
나는 잡은 턱을 놓아달라고 손짓발짓으로 애원했다. 그래도 사내는 강경했다.
『수상해.』
『뇌에 구멍이 뚫린 것도 같고.』
『비린내도 나고.』
뺨이 오목하게 쪼그라들 정도로 힘을 주던 손을 치우면서 그가 쏘아붙였다.
『게다가 못 생겼어!』
아무리 외모에 관심이 없던 나도 확신하여 선언하는 말에 자존감이 확 무너지려 했다.

락연과 죽은 남자들은 검은 천으로 씌워져 어딘가로 치워졌다. 엉거주춤 일어서 들 것에 실린 락연을 따라가려 하자 단칼에 거부당했다.
『제 일행인데요.』
그래서 다시 비난을 받았다.
『이 자가 의원에게 갈 것 같은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요괴를 치료하는 의원이라는 건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
『그런데 이 자를 따라가겠다고? 그거 참 호기롭구먼.』
멸시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던 남자는 입 꼬리를 슬그머니 당겨 비웃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원한다면 따라가도 좋다, 소년. 그쪽에서 너를 찬찬히 해부해줄 테니. 산 채로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보고 인간인지 아닌지 적당히 판단을 해줄 거다.』
『저는 소년이 아니라 사실은 여...』
바로 그 순간 솥뚜껑을 닮은 손바닥이 얼굴을 향해 날아들었다.

격통에 반응하여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자니 그가 다시 부하들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소극 상은을 폐쇄하고 관계자 전원을 체포해. 죄명은 루은에서 허가 없이 사술을 사용하여 요괴를 부린 죄다.』
『복명.』
『반항하면 전부 베어라.』
병사들은 2개조로 나뉘어 명령을 수행했다.
나는 주제를 모르고 다시 나서야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소극 상은에서 사술을 사용하여 요괴를 부린 건 아니었기에 상황을 설명하고 막아야 한다 생각했다.
『그런게 아닙니다. 락연은 애초부터 저를 따라서 내재원으로부터 왔고...』
『그렇다면 네가 요괴를 부렸다고 실토하는 것이냐?』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이 남자와는 얘기가 통하지 않는다. 요괴에 대한 강한 거부감도 그렇지만 이사실에서 사역하는 사람 아닌 존재들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는 것 같았다. 이 남자의 상식은 루은은 철통방어가 되는 신성한 땅이고, 신룡의 은혜로 부정한 것들이 침입할 수 없다는 거였다. 여덟 성문은 주술에 걸려 있고 저주받은 것들은 감히 통과할 수 없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을을 침범하는 것들은 적룡신의 이름으로 처단해야 마땅하다 - 신념은 확고해서 내가 사정을 설명하려고 하면 그것들 전부가 변명이나 거짓이 되어버린다.
그가 검집으로 손을 가져갔다.
『다시 묻겠다. 네가 요괴를 부렸다고 실토하는 것이냐?』
예, 라고 대답할 수도 없고, 아니오, 라고 할 수도 없고.
시간을 지체하자 손톱으로 검 손잡이를 튕겼다. 은백색으로 빛나는 날 부분이 겁집에서 약간 솟아올랐다. 그것만으로도 무척 훌륭한 위협이었다.

『왜 이렇게 소란스러워.』
그때 키가 매우 큰 자가 골목으로 불쑥 나타났다.
목소리를 듣고 남자는 엄지손가락을 움직여 약간 올라온 검을 다시 검집 안으로 돌려 넣었다.
『무슨 일이야, 하은. 강도냐?』
『그게 아니라 요괴가...』
『요괴? 이런 곳에서?』
반문하다 말고 키 큰 남자가 나를 보고 들입다 손가락질했다.
『뭐야! 저거. 내 아들 놈 옷을 입고 있잖아!』
나도 지지 않고 소리 질렀다.
『이라벽치 님!』구세주라도 만난 기분이었다.

Posted by 미야

2015/07/29 10:44 2015/07/29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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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15/07/29 23:33 # M/D Reply Permalink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2. 미야 2015/07/31 09:47 # M/D Reply Permalink

    항상 감상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자급자족용 - 이라 적고 자뻑용이라 읽는다 - 이라고 해도 좋아해주시는 분이 있다는 사실에 항상 기쁨을 느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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